처음 소개된 저자의 책 가운데 눈에 띄는 책을 고르는 '이주의 발견'이다. 이번 주에는 에스더 M. 스턴버그의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더퀘스트, 2013). 검색해보니 저자도 <내면의 균형>이란 책에 이어서 두번째 책인 듯하니 '신진 저자'다. 그럼에도 '신경건축학'이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가고 있다고 소개된다.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는 바로 그 신경건축학의 문제의식과 적용을 보여주는 책이다. 원제 자체가 <힐링 스페이스>(원서의 표지가 번역본보다는 '힐링'에 충실하군).

 

 

사실 공간이 바뀌면 마음도 달라진다는 건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도 부합한다. 신경건축학은 그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소개는 이렇다.

스턴버그는 지금껏 감각, 정서, 면역체계를 둘러싼 복잡한 관계들을 밝혀낸 심리학과 뇌과학, 의학 연구의 역사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그 첫머리에 나오는 한 가지 예는 바로 ‘창밖으로 자연 경관이 내다보이는 병실의 환자들이 창밖으로 콘크리트 벽만 바라봤던 환자들보다 빨리 나았다’는 1980년대 연구다. 쾌적한 풍경이 보인다고 해서 어떻게 병이 빨리 나을 수 있었을까? 저자는 감각의 뇌과학적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일련의 장소와 상황들을 탐색하며 이 질문의 답을 찾아나간다.

정재승 교수는 추천의 글에서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학문"을 신경건축학이라고 정의했다.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책일까. 역시나 정재승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1)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경험과 직관, 관습으로 축적되어 온 건축학적 전통이 실제로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 결과를 일러주며, 건축학이 좀더 '증거 중심의 학문'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게 해준다. (2)신경과학을 탐구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뇌에 대한 이해가 건축학이라는 경이로우면서도 중요한 분야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제공해줄 것이다. (3)누구에게나: 이 책은 내 삶이 공간을 뇌와 마음, 힐링과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는 유익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자연스레 궁금해진 건 한국인의 대표 주거공간인 아파트를 신경건축학적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마침 박철수의 <아파트>(마티, 2013)도 지난주에 출간됐다. 박해천의 <콘트리트 유토피아>(자음과모음, 2011),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후마니타스, 2007)과 함께 묶어서 읽어볼 만한 책. 저자는 아예 한국을 '아파트단지 공화국'이라고 일컫는다.

 

우리야 으레 아파트에 사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기이하게 여긴다(대단위 아파트를 많이 지었던 사회주의 시절 러시아도 우리만큼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보통 도시의 독신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공간, 정도가 아파트에 대한 인상인 듯하다(그러니 결혼한 사람들이 아파트라는 몰개성적 공간에 거주한다는 게 이상하게 보이는 것. 우리는 땅값이 비싸다는 걸 고려해야 할까). 아무튼 중요한 건 경제성이나 생활의 편이성이란 이유 말고, 신경건축학적으로도 아파트란 공간이 살 만한 곳인지,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는 것...

 

그런 생각을 아파트 15층에서 적는다. 지금이야 적응이 됐지만 오래전 아파트 14층에 살 때 처음 몇 달 동안 '공간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기억도 문득 떠오른다. 공중에서 수감생활하는 기분이었다...

 

13.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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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에 '이주의 발견'을 골라놓는다. 처음 소개된 저자의 책 가운데 탐나는 걸 고르는 것인데, 지난주에 나온 육중한 책,  리처드 홈스의 <경이의 시대>(문학동네, 2013)가 단연 눈에 띈다. 사실 관심을 부추긴 건 제목이 아니라 부제다. '낭만주의 세대가 발견한 과학의 아름다움과 공포'.

 

 

과학사 책으로 분류가 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낭만주의 관련서라는 데 더 흥미를 느낀다. 대략적인 내용 소개는 이렇다.

리처드 홈스는 허셜과 데이비뿐 아니라 조지프 뱅크스, 토머스 베도스, 마이클 패러데이 같은 ‘과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 그리고 이들의 발견과 발명을 돌파구 삼아 영감을 얻었던 메리 셸리에서 콜리지, 키츠 등 낭만주의 작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채롭고 흡입력 있는 내러티브로 낭만주의 시대를 채워간다. 이와 더불어 과학이 경이감과 더불어 두려움을 유발하지 않는가라는 질문, 발견과 발명이 세상에 새로운 희망뿐 아니라 새로운 공포를 가져다주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환경이나 기후변화, 유전공학, 대체의학, 외계 생명, 의식의 정체, 심지어 신의 존재를 둘러싼 현대 과학의 논쟁을 이해할 단초를 마련한다.

과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한 쪽에 있다면, 다른 쪽엔 그들의 "발견과 발명을 돌파구 삼아 영감을 얻었던 메리 셸리에서 콜리지, 키츠 등 낭만주의 작가들의 이야기"가 있는 셈.

 

 

목차를 보니 내가 제일 먼저 읽어볼 만한 장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영혼'이란 제목의 7장이다. "인간 생명의 본성’을 둘러싼 생기론 논쟁은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배경이 된다"는 게 단서다.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글도 쓰고 강의도 여러 번 해보면서 그 과학적 배경에 대해 더 알고 싶었는데, 때마침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책인 듯싶어 반갑다...

 

13. 0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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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이주의 발견' 거리가 될 만한 저자를 물색해보는데, 이번 주에는 두 명이다. 중국학자 프랜시스 우드와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 모두 이번에 처음 책이 나오면서 알게 된 이름들이다. 분야가 상이하기에 두 사람이 안면이 있었을 성싶지 않지만, 공통점을 꼽자면 둘다 여성이고 연배가 비슷하다는 것 정도. 프랜시스 우드가 48년생이고 아이리스 영은 49년생이다(안타깝게도 영은 2006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먼저 우드의 책 <실크로드 - 문명의 중심>(연암서가, 2013). 실크로드를 다룬 책은 적잖게 나와 있어서(정수일 교수의 책이 대표적이다) 주제가 새로운 건 아니다. 기댈 건 저자의 전문성과 명망.

 

 

영국 국립도서관의 중국문헌 담당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저자는 국제 돈황 프로젝트의 운영위원이기도 한데, 명성을 얻은 것은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 갔는가?>(1995)를 출간하면서다. 저자의 주장은 마르코 폴로가 실제로 중국에 간 적이 없으며 <동방견문록>은 한 사람의 저작이 아니라 여러 여행기를 모아놓은 책이라는 것.

 

 

 

학계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정리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흥미를 끄는 주장인 것만은 분명하다. 저자 소개에 이 책으로 "우리에게 이름을 알렸다"고 돼 있어서 혹시나 싶어 찾아봤지만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내친 김에 소개되면 좋을 듯싶다. 저자의 책으론 <진시황과 병마용>(2008), <중국의 매력: 마르코 폴로에서 발라드까지의 작가들>, 공저 <금강경: 세계에서 최초로 인쇄된 책에 관한 이야기>(2010) 등이 있다.

 

 

원제가 '정의를 위한 책임'인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이후, 2013)는 아이리스 영의 유작이다. 그래서 저자 서문 대신에 마사 누스바움의 '여는 글'이 붙어 있다. 시카고대학 정치학과 교수였던 저자는 <정의와 차이의 정치학>(1990)이란 책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는데, "기존 정의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차이를 인정하는 새로운 정의론을 발전시켰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가장 중요한 정치철학자 가운데 한 명'이란 평판도 있는 걸 보면, 명망을 짐작해볼 수 있다.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는 어떤 내용인가. 소개는 이렇다.

같은 일터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임금 체계를 적용받을 때,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미등록 노동자라서 학교에 공식 입학 허가를 받지 못할 때, 그리고 대도시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송전탑을 뒷마당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을 때, 우리는 무언가 세상이 잘못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의 첫 번째 미덕은 이러한 ‘잘못’에 ‘구조적 부정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가시화했다는 데 있다. 더 나아가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설명을 통해 우리 모두의 삶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보여 준다. 그러면서 각자가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자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다는 것 또한 확신한다.

굳이 덧붙이자면, <실크로드>나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나 모두 만족스런 독서 경험을 제공해줄 것으로 확신한다...

 

13. 06. 22.

 

 

 

P.S. 순위에서 밀리긴 했지만 <편애하는 인간>(셍각연구소, 2013)의 저자 스티븐 아스마도 '이주의 발견'에 값한다(흥미 면에서는 <실크로드>나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를 앞선다). 저자는 시카고 컬럼비아대학의 교수이며 <나는 왜 불교도인가>, <괴물에 대하여> 등의 저작을 갖고 있는데, <편애하는 인간>(2012)은 그의 최신작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인생은 공정하지 않다. 일단 이것을 받아들이면 편파성과 편애의 세계에도 놀라운 의미와 윤리적 책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 가족이나 친구가 다른 사람보다 더 가치가 있든 없든 나에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내 사람이고 나는 언제나 다른 누구보다 그들을 특별하게 대하며 더 많이 챙긴다. 가족이나 친구가 어떤 분야에서 최고인 까닭에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기 분야의 장인이나 달인이 아니다. 내가 그들을 우선시하는 것은 순전히 그들에 대한 내 애정과 내가 그들과 함께한 세월 때문이다. 이 경우 편애는 자유주의자가 말하는 공평, 즉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공정 개념과 능력에 따른 보상이라는 보수주의자의 공정 개념을 앞선다. 이 책이 윤리 영역에서 근대성과 전통의 통합을 모색하는 담화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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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눈에 띄는 신간 가운데 하나는 알랭 바디우와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의 대담집 <라캉, 끝나지 않은 혁명>(문학동네, 2013)이다. 저명한 철학자와 정신분석사가가 라캉의 사상을 논한 책인데, 일단은 저자들의 이름값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된다. 게다가 책이 아주 얇은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책갈피에 실린 루디네스코에 대한 소개를 보면, 그녀는 "라캉 사후 프랑스의 정신분석 역사를 집대성한 <프랑스 정신분석사>(1권 1982, 2권 1986)를 썼고, 라캉 전기 <자크 라캉>(1993)에서는 라캉을 중심으로 20세기 중반 프랑스 지성계의 풍경과 정신분석계의 분열상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국내에는 그 <자크 라캉>(새물결)이 두 권짜리로 번역돼 있다.

 

 

 

조금 더 읽어보면, "그 밖에 <왜 정신분석인가?>(1999), 미셸 플롱과 공저한 <정신분석 사전>(1997), 광기에 빠져 정신병동에서 생을 마친 여성 혁명가를 다룬 전기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 프랑스혁명기의 한 멜랑콜리한 여성>(1989), <우리 자신의 어두운 면: 성도착의 역사>(2007) 등을 펴냈다."

 

소개에서 <왜 정신분석인가?>는 얇은 책인데 아직 번역되지 않았고, <정신분석 사전>은 <정신분석대사전>(백의, 2005)라고 번역됐지만 절판됐다.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도 아직 번역되지 않았고, <우리 자신의 어두운 면>은 <악의 쾌락, 변태에 대하여>(에코의서재, 2008)로 번역됐지만 번역에 흠이 많다.

 

 

 

바디우의 책이야 다수 소개돼 있는 만큼(주저들은 빠져 있다) 더 언급하는 건 군더더기일 테다. 다만 그의 <사도 바울>(새물결, 2008)의 역자가 <라캉, 끝나지 않은 혁명>의 역자이기도 하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역서 가운데 근간으로는 바타유의 <주권>과 장 미셸 팔미에의 <발터 벤야민: 넝마주의, 천사, 꼽추난장이>가 있다 한다(<주권>은 <저주의 몫>의 일부인 듯하다). 아무려나 기대를 갖게 하는 책들이다.

 

다시 <라캉, 끝나지 않은 혁명>으로 돌아와서, 바디우와 루디네스크가 말하는 라캉의 현재적 의의는 무엇인가. 한 대목씩만 인용해놓는다.

 

저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할 수 있는 하나의 무기를 라캉에게서 보고 있어요. 통제할 수 없는 일탈에 사로잡힌, 민중도 주체도 없이 비인간화된, 금융 자본주의 말이에요. 이 광기에 대항해 라캉에게서 영감을 얻는 것은 질서 안에 무질서를 심는 일일 수도 있죠. 역사의 전환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모범적 텍스트인 <사드와 함께 칸트>(1963) 읽기가 그것을 증언합니다. 여기서 동일한 문제틀의 상이한 두 측면이 관건임을 보여주기 위해 정언명령을 주이상스의 명령에 결부시키는 일, 이것은 현대사회의 상이한 두 측면인 과학주의와 몽매주의에 맞서 똑똑하게 분노할 수 있게 해줍니다.”(루디네스코)

 

현대 세계는 불확실성과 방향 상실, 항구적 위기의 유령에 사로잡혀 있죠. 그런데 라캉은 위대한 혼돈의 사상가입니다. 더 풀어서 말하면, 우리는 정신분석을 주체의 혼돈에 대한 정돈된 사유라고 정의할 수 있겠죠. 이 점에서 정신분석은 마르크스주의와 매우 유사합니다. 마르크스주의 또한 자본주의의 모든 혼돈을 구성하는, 격렬한 혼란과 만족시킬 수 없는 탐욕스러운 모순들 위에 근거한 집단적 실존을 명료하게 이해하고자 하니까요. 우리가 지금의 위기를 성찰하려면 라캉은 필수불가결한데, 왜냐하면 그가 이 혼돈 자체에서 어떤 내재적 질서를, 상징계의 지평과 연계된 참조틀을 재포착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입니다.”(바디우)

 

13. 0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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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을 이용해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처음 소개된 저자의 책 가운데 매주 한 권을 고르는 것인데, 이번주엔 신경과학자 탈리 샤롯의 <설계된 망각>(리더스북, 2013)을 골랐다.

 

 

'낙관 편향' 혹은 '낙관주의적 편향'이라는 원제에 비추어 <설계된 망각>이란 제목은 다소 협소한 감이 있다. 전반적인 내용은 '살기 위해, 뇌는 낙관주의를 선택한다'는 부제에 집약돼 있다. 소개는 이렇다('낙관주의적 편향'을 검색하면 저자의 TED 강연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TED 강연서'라는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도 될 만큼 요즘 강연 관련서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미래에 대한 기대는 왜 그토록 긍정적인가? 심리학과 신경과학의 프리즘으로 밝혀낸 불합리할 만큼 낙관적인 뇌의 생존 본능. 낙관 편향은 미래에 틀림없이 닥쳐올 고통과 고난을 정확하게 지각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인생의 선택권을 제한된 것으로 보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이런 낙관 편향을 유지하기 위해 뇌는 무의식적인 망각을 설계해두었다.
이 책은 인간 두뇌의 가장 위대한 기만 능력들 가운데 하나인 낙관 편향을 탐구한다. 그리고 낙관편향을 지속하기 위해 뇌가 어떻게 낙관의 훼방꾼들을 퇴색시키거나 망각하게 하는지 설명할 것이다. 아울러 이 편향이 적응에 도움이 될 때는 언제이며 파괴적일 때는 언제인지 살펴보고, 적당히 낙관적인 착각은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일독해볼 만하다. 저자는 이스라엘 태생의 신경과학자인데, <설계된 망각>(2012)은 <기호와 선택의 신경과학>(2011)란 책으로 좋은 반응을 얻은 후에 연이어 펴낸 책이다.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세일러)는 이렇게 평했다. "융숭한 한턱. 이야기의 노하우를 아는 과학자가 쓴 매력적이고 재미있고 쉬운 책.”

 

 

 

낙관 편향에 대해서는 행동경제학 책에서도 종종 언급이 되는데,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김영사, 2012)이 대표적이다. 행동경제학은 카너먼과 리처드 탈러의 책이 기본서인데,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의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참조하고 있다. 인간의 경제활동에는 합리적 동기 못지 않게 비합리적 동기가 작용한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낙관 편향'은 흥미로운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설계된 망각'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각자의 숙제로 남는다...

 

13. 0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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