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이주의 발견' 거리가 될 만한 저자를 물색해보는데, 이번 주에는 두 명이다. 중국학자 프랜시스 우드와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 모두 이번에 처음 책이 나오면서 알게 된 이름들이다. 분야가 상이하기에 두 사람이 안면이 있었을 성싶지 않지만, 공통점을 꼽자면 둘다 여성이고 연배가 비슷하다는 것 정도. 프랜시스 우드가 48년생이고 아이리스 영은 49년생이다(안타깝게도 영은 2006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먼저 우드의 책 <실크로드 - 문명의 중심>(연암서가, 2013). 실크로드를 다룬 책은 적잖게 나와 있어서(정수일 교수의 책이 대표적이다) 주제가 새로운 건 아니다. 기댈 건 저자의 전문성과 명망.
영국 국립도서관의 중국문헌 담당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저자는 국제 돈황 프로젝트의 운영위원이기도 한데, 명성을 얻은 것은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 갔는가?>(1995)를 출간하면서다. 저자의 주장은 마르코 폴로가 실제로 중국에 간 적이 없으며 <동방견문록>은 한 사람의 저작이 아니라 여러 여행기를 모아놓은 책이라는 것.
학계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정리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흥미를 끄는 주장인 것만은 분명하다. 저자 소개에 이 책으로 "우리에게 이름을 알렸다"고 돼 있어서 혹시나 싶어 찾아봤지만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내친 김에 소개되면 좋을 듯싶다. 저자의 책으론 <진시황과 병마용>(2008), <중국의 매력: 마르코 폴로에서 발라드까지의 작가들>, 공저 <금강경: 세계에서 최초로 인쇄된 책에 관한 이야기>(2010) 등이 있다.
원제가 '정의를 위한 책임'인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이후, 2013)는 아이리스 영의 유작이다. 그래서 저자 서문 대신에 마사 누스바움의 '여는 글'이 붙어 있다. 시카고대학 정치학과 교수였던 저자는 <정의와 차이의 정치학>(1990)이란 책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는데, "기존 정의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차이를 인정하는 새로운 정의론을 발전시켰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가장 중요한 정치철학자 가운데 한 명'이란 평판도 있는 걸 보면, 명망을 짐작해볼 수 있다.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는 어떤 내용인가. 소개는 이렇다.
같은 일터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임금 체계를 적용받을 때,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미등록 노동자라서 학교에 공식 입학 허가를 받지 못할 때, 그리고 대도시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송전탑을 뒷마당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을 때, 우리는 무언가 세상이 잘못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의 첫 번째 미덕은 이러한 ‘잘못’에 ‘구조적 부정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가시화했다는 데 있다. 더 나아가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설명을 통해 우리 모두의 삶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보여 준다. 그러면서 각자가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자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다는 것 또한 확신한다.
굳이 덧붙이자면, <실크로드>나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나 모두 만족스런 독서 경험을 제공해줄 것으로 확신한다...
13. 06. 22.
P.S. 순위에서 밀리긴 했지만 <편애하는 인간>(셍각연구소, 2013)의 저자 스티븐 아스마도 '이주의 발견'에 값한다(흥미 면에서는 <실크로드>나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를 앞선다). 저자는 시카고 컬럼비아대학의 교수이며 <나는 왜 불교도인가>, <괴물에 대하여> 등의 저작을 갖고 있는데, <편애하는 인간>(2012)은 그의 최신작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인생은 공정하지 않다. 일단 이것을 받아들이면 편파성과 편애의 세계에도 놀라운 의미와 윤리적 책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 가족이나 친구가 다른 사람보다 더 가치가 있든 없든 나에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내 사람이고 나는 언제나 다른 누구보다 그들을 특별하게 대하며 더 많이 챙긴다. 가족이나 친구가 어떤 분야에서 최고인 까닭에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기 분야의 장인이나 달인이 아니다. 내가 그들을 우선시하는 것은 순전히 그들에 대한 내 애정과 내가 그들과 함께한 세월 때문이다. 이 경우 편애는 자유주의자가 말하는 공평, 즉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공정 개념과 능력에 따른 보상이라는 보수주의자의 공정 개념을 앞선다. 이 책이 윤리 영역에서 근대성과 전통의 통합을 모색하는 담화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