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MIFF)가 오는 23일부터 7월 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다(칸느영화제 바로 다음이다. 모스크바영화제는 식장에 파랑 카페트를 깐다. 지난번 칸느영화제에서는 '러시아의 날' 행사도 개최됐었다). 점심을 먹고 재작년 이맘때 쓴 모스크바 통신을 잠시 읽어보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영화제 홈피에 들어가보고 알게 된 것이다. 영화제의 약력을 살펴보니 1935년에 처음 개최된 이 영화제는 국제영화제로선 베니스 영화제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59년부터 1995년까지는 격년에 한번씩 열리다가 1995년 이후로는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는 저명한 영화감독 니키타 미할코프가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데(사진은 2001년 행사장에서 잭 니콜슨과 포옹하고 있는 미할코프), 올해도 그런지는 모르겠다(변동사항이 있는 듯하다).

해마다 메인행사가 개최되던 극장도 이번엔 바뀌었다는데(원래는 푸슈킨거리의 러시아극장(사진)이 주극장이었다), 노브이 아르바트 거리의 멀티플렉스 '10월(Oktyabr)'이 그것이다. 지난해 9월 개관한 이 극장은 9개의 상영관과 3,174석의 객석을 갖고 있다. 아래는 노브이 아르바트 거리. 극장은 24번지에 있다고 한다.

대충 그렇다. 어차피 구경도 가지 못할 영화제에 대해서 주절거리는 것도 속없다. 대신에 재작년에 구경했던 모스크바 영화제 얘기를 약간 덧붙이도록 한다(그때 모스크바는 오늘처럼 부슬비가 자주 내리던 날씨였다). 2004년 모스크바 영화제는 6월 18일에 개막된바, 그맘때 쓴 통신문의 한 대목을 옮겨오려는 것(그때 본 영화들 얘기는 나중에 따로 다루겠다). 주로 미국의 영화감독 퀜틴 타란티노와 프랑스의 여배우 소피 마르소에 대한 것이다.

오늘 저녁에 모스크바영화제의 전야제가 열린다. 26일까지인가가 영화제 기간인데, 2-3일 전부터 세계영화계의 몇몇 명사들이 모스크바를 찾고 있다.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은 퀜틴 타란티노인바, 그의 <킬빌2>가 이번에 모스크바에서는 개봉됐다. 나는 이 영화의 복사본 비디오CD를 3,200원 주고 사서 보았는데, 이미 두어 달 이전부터 이 복사본 <킬빌2>는 비디오/음반 가게마다 깔려 있었다(한국은 모스크바보다 영화시장이 크니까 이미 개봉했을 걸로 짐작된다). 나는 <킬빌1>, <킬빌2>를 모두 모스크바에 와서 봤는데, 타란티노판 이 ‘무협판타지’의 주제는 다소 고전적인 ‘엄마 되기의 어려움’이다(이하의 내용은 일부 스포일러일 가능성이 있음). 그런 의미에서 ‘불량소녀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교육용’ 영화.

 

 

 



아니, ‘엄마 되기’보다는 ‘엄마로 태어나기’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첫 아이를 낳을 때 산모들은 아이를 낳으면서 동시에 ‘엄마’를 낳는다). 영화에서 무협 판타지는 ‘산고(産苦)’에 대응하는바, 그때 태어나는 것은 ‘아이’라기보다는 ‘엄마’이다. 우마 서먼은 자신이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에, 즉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에 무자비한 복수를 결심/결행하게 되며, 결말에서는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에 감격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엄마가 되기 위한 조건이 ‘킬빌’이라는 것. 여기서 ‘빌’은 (아이의) ‘아버지’이니까, ‘킬빌’은 일종의 ‘부친살해’인 셈이다. 물론 이 부친살해는 전도돼 있다(지젝식으로 말하면, ‘트위스트’돼 있다).

이 영화에서의 부친살해 욕망은 아이가 엄마에 대한 애정 때문에 아버지에 대해 갖게 되는 욕망이 아니라, 엄마가 아이에 대한 애정 때문에 (아이의) 아버지에게 갖게 되는 욕망이다. 영화에서 우마 서먼은 그 욕망을 실행한다. 왜 ‘아버지’가 제거되어야 하는가? ‘나쁜’ 아버지, 혹은 아버지로서의 자격이 없어 보이는 ‘부족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형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킬빌>은 내러티브상으론 포스트모더니즘 영화가 아니라, 모더니즘 영화이다. 지젝이 <히치콕>의 ‘모더니즘’에 대해서 지적한바, “(악마적, 외설적인) 부성적 인물에 의해 트라우마를 입은 여주인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히치콕>, 16쪽).



다른 한편으로, <킬빌>의 이러한 주제는 타란티노식 영화의 비밀을 엿보게 한다. 즉 타란티노의 트라우마는 무엇일까, 라는 것. 타란티노가 ‘작가’라면(그러니까 그의 ‘유희정신’에 어떤 ‘진정성’이 있는 걸로 가정한다면), 아마도 그에겐 ‘아버지’가 결여돼 있거나, 적어도 ‘아버지의 이름’이 결여돼 있다. 이른바, ‘부성 콤플렉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의 전매특허적인 패러디 혹은 패스티쉬(=짜집기) 스타일은 그러한 결여가 낳은 ‘자유’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방황의 산물이다. 그는 ‘아버지’를 부정하면서(그것이 스타일의 유희를 낳는다), 동시에 그리워한다(그것이 스타일에 대한 오마주를 낳는다).

러시아의 한 비평가는 타란티노에 대해, ‘비상한 재능’이 아니라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감독(이라기보다는 비디오가게 점원)이라고 평한바 있는데, 그때 ‘기억’의 대상이 되는 것은, 즉 그 ‘기억’의 ‘주인-기표’는 ‘아버지’이다. 그 ‘아버지’가 부재하는 한 그는 계속 ‘악동’으로 남을 것이다(그러한 타란티노와 비교해볼 만한 또 다른 ‘악동’이 페도르 알모도바르이다).

어쨌든 <킬빌>의 타란티노는 현재 모스크바에 있지만, 히로인 우마 서먼과 대릴 한나는 동행하지 않았는데, 오늘자 <이즈베스찌야>에는 이 두 여배우와의 현지 인터뷰가 실렸다. 어제는 ‘정치적 활동가’이기도 한 수잔 서랜든과의 인터뷰가 실렸고(흥미로운 부분을 발췌해볼까 했지만, 그만두기로 한다. ‘한 마디’가 또 어디로 샐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때의 우상이었던 프랑스의 여배우 소피 마르소도 어제 러시아를 방문했다. 모스크바 영화제와는 무관하게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한 프랑스 귀금속 전시회의 ‘얼굴’로 온 것인데, 그녀는 이미 여러 차례 러시아를 다녀간 바 있다. 하긴, 영화 <안나 카레니나>의 주연도 맡았었으니까 인터뷰대로 러시아는 익숙하겠다. 영화배우에다가 감독으로도 근래에 데뷔했고,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이 여배우도 어제 TV인터뷰를 보니까 어느덧 ‘나이’가 완연했다(내 기억에 그녀는 나보다 한 살 더 많다).

 

오늘자 <이스베스찌야>에 실린 인터뷰를 보니까, 그녀가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일은 정원을 산책하거나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다. 가장 두려워하는 건, 아무일 없이 쉬는 것. 그러니까 아무런 할일이 없으면 불안해 하는 타입인 듯하다(‘할일’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대중의 주목, 혹은 시선일 것이다).

얼마 전에는 그녀가 장 폴 벨몽도(한때 프랑스 영화는 알랭 들롱의 영화와 벨몽도의 영화로 나뉘었다)와 함께 주연한 영화가 이곳 TV에 방송됐었는데(지난달에는 <라붐> 시리즈도 방영됐다), 내가 거의 20년 전에 본 영화였다. 고등학교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기간에만 유일하게 일찍 집에 돌아갈 수 있었는데, 그런 기간에 나는 영화를 보러 다니곤 했다. 바로 그렇게 본 영화 중 하나. 그런데, 내가 놀라는 것은, 정작 그 20년이란 시간의 경과가 아니라, 그 20년의 시간에 대한 ‘감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냉담한 것인지, 관대한 것인지, 혹은 아직 젊은 것인지, 너무 늙어버린 것인지 잘 가늠이 되질 않는다...

04. 06. 18/ 06. 06. 14.

P.S.(*타란티노의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도 같이 옮겨놓는다.) 지난 금요일(18일)에 타란티노의 <킬빌2>가 공식 개봉됐고, 어제(19일) <이즈베스찌야>에는 타란티노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인터뷰어는 칸느 영화제 얘기를 할 때 언급됐었는데, 마리야 쿱쉬노바이다. 짧은 인터뷰에서 주요 질문은 세 가지였는데, 첫번째 질문은 (한 편의 영화를 찍은 다음에 둘로 나눈 게 아니라) 처음부터 <킬빌>을 두 편의 영화로 따로 찍을 생각을 했느냐는 것. 타란티노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다만, 문제가 됐던 건, 시나리오였는데, 원래는 한편의 영화를 목표로 씌어졌다는 것. 타란티노는 그걸 도저히 90분에 다 집어넣을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빼놓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던 차에, 제작자가 둘로 나누는 게 어떨까라는 제안을 해서 “만세!”를 불렀다는 것.

두번째 질문은 <킬빌3>도 나오느냐는 것. 이에 관해서는 흥미를 느낄 만한 팬들도 있을 듯한데, 타란티노의 대답은 역시 그렇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킬빌1>을 유심히 본 관객이라면, 대충 <킬빌3>가 어떤 내용이 될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일 첫장면에서 우마 서먼이 블랙맘바와 결투를 벌일 때 블랙맘바의 유치원생 딸(니키)이 끼어든다. 우마 서먼이 결국은 맘바를 죽이게 되는데, 그 장면을 본 니키에게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복수하러 오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기다리겠다고. 그게 <킬빌3>다. 그런데, 어린 니키가 엄마의 복수라도 하려면 좀 커줘야 될 게 아닌가? 그래서, 타란티노의 대답은 <킬빌3>는 한 15년쯤 후에 나올 거라는 것이다. 그는 니키가 커가는 과정을 미리 찍어둘 예정으로 있다.(*아래 사진은 어린시절의 타란티노.)



그렇게 되면, 복수는 끝이 없는 게 아닐까?(우마 서먼도 딸이 있으니.) 타란티노의 대답은 그럴 수도 있지만, ‘타란티노의 세계’(관객이 이해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에서는 이게 완결편이 될 거라고. 그래서 <킬빌>은 아마도 타란티노판 ‘복수의 3부작’이 될 것이다(<킬빌2>에는 “복수는 곧 사랑”이라는 대사도 있으니까, ‘사랑의 3부작’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리고 이 ‘복수의 3부작’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박찬욱이다. 쿱쉬노바이 세번째 질문은 그에 관한 것이다. 이 대목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으므로 번역하겠다.



-(쿱쉬노바) 칸느에서 당신은 한국영화 <올드보이>에 표를 던지셨죠. 똑같이 복수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내용은 서로 다릅니다. <올드보이>가 비극적인 복수자를 다루고 있다면, 당신의 영화에서는 복수도 (자기)만족일 뿐인데요.

 

 

 

 

-(타란티노) <올드보이>는 영화제에서 아주 뛰어난 영화였죠. 저로선 이 영화가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진짜 걸작이라고 생각돼요. 영화는 한국영화를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문화 현상으로 변모시키고 있습니다. 복수에 대해서는… 당신이 내용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주제에 관해 두 편의 영화를 찍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Sympathy for Mr. Vengeance)>과 <올드보이>. 그리고 지금은 세번째 영화를 찍을 건데, 이 세 편의 영화에서 그는 복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각기 다른 결론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복수가 사랑으로 손에 손을 맞잡는 게 아니라면, 해석의 여지는 활짝 열려 있어요. 비극적인 복수자를 보여줄 수도 있고, 복수의 유익함, 즉 정의의 승리를 보여줄 수도 있죠. 또 복수자가 느끼는 카타르시스나 환희, 만족감을 보여줄 수도 있죠.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 역시 복수에 대한 영화라는 건 나로선 처음 듣는 얘기인데(*다시 읽으니 코믹하다. 우리는 그가 무얼 어떻게 찍었는지 알고 있다!), 타란티노의 말인 만큼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현재 어느 정도 진행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게 된 만큼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사실, 객지에서 이런 류의 기사나 인터뷰를 읽는 일은 ‘만족감’을 준다. 그 만족감은 TV에서 한국기업들의 광고들을 볼 때 느끼는 ‘대견함’과는 차원이 좀 다르다. “너 돈 좀 있구나”와 “너 뭘 좀 아는구나”의 차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요즘은 타란티노가 외교관 열 명이 달려들어도 못할 일들을 거뜬히 해내고 있다(한국 외교관이 <이즈베스찌야>와 인터뷰 할일이 있겠는가?).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문화현상”이라!..(*아래 사진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무덤을 찾은 타란티노. 파스테르나크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한 사람이라고. 타란티노가 좀더 그럴 듯하게 보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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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에 <씨네21>을 읽다가 러시아 영화 개봉 소식을 접했다. 이번주에 개봉한다는 <러시안 묵시록>이 그것인데, 지난 2004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되어(포스터를 보니 12월 9일에 개봉됐다) '엄청난 흥행기록'을 세웠다는 블록버스터이다(그때 모스크바에 있었던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역시나 그해 봄에에 개봉되어 여름에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던 <나이트 워치>에 이어서 러시아산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데 의의가 있는 영화인 듯싶다.

 

 

 

 

<나이트 워치>를 우리의 <쉬리>에 견주는 의견들도 있었는데, 체첸반군의 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인 만큼 <쉬리>와 더 잘 비교되는 영화는 <러시안 묵시록>이겠다. 물론 작품성이 뛰어난 건 아닐 테지만(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떠올리면 되겠다(<나이트 워치>). 하도 오랜만에 소개되는 러시아 영화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관련기사를 옮겨온다. nkino의 전은정 기사가 쓴 리뷰로 제목은 "<러시안 묵시록> - 테러를 필요로 하는 스펙타클의 사회?"이다.

-비행기 한 대가 뉴욕의 무역센터를 향해 돌진하는 순간 전세계인들의 마음 속에 테러가 ‘남 일’이 아닌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깊게 각인됐다. 특히 9.11 사태는 현실에서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람들로 하여금 테러를 ‘현실’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아랍과 이슬람 문화권을 실체가 정확히 규명되지 않는 공동의 적으로 확실하게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 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인 7백만 달러 이상을 투입했다는 ‘매머드급 액션 스릴러’ <러시안 묵시록 Lichnyy Nomer>(*러시아어 원제는 '개인번호', 곧 '군번'이란 뜻이며, 영어제목은 'Countdown')의 소재 역시 ‘테러’다. 러시아 역시 테러와 인연이 깊은 나라이기 때문에 러시아와 테러의 조합은 꽤 자연스러워 보인다. 영화는 군사 첩보 활동을 벌이다가 체첸 독립군의 포로가 된 알렉세이 스몰린 소령(알렉세이 마카로프)이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자백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스몰린 소령의 증언이 고문에 의한 것이었음이 알려지고 난 후, 체첸 반군과 손잡은 이슬람 과격파 안사르 알의 대형 테러 계획, 그리고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러시아 연방 보안국, 테러의 중심부에 카메라를 들이댄 열혈 여기자 캐서린 스톤(루이스 롬바드) 등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영화는 1816년 카프카즈 정복으로 시작된 러시아 팽창 정책의 희생자인 체첸인들이 세기가 바뀌도록 끊임없이 러시아를 향해 투쟁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한다. 많은 체첸인들이 회교도라는 사실도, 그들이 벌이는 테러의 정치적인 목표도 관심이 없다. <러시안 묵시록>은 명백히 대중들의 취향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액션 블록버스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슬람 과격파와 손잡은 체첸 반군과 러시아 정부와의 대립과 그와 관련된 정치적인 배경보다는 화려한 볼거리, 그리고 영웅적인 한 사내의 활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볼거리라는 면에서 볼 때 <러시안 묵시록>은 할리우드 영화들에 비해 크게 쳐지지 않는다. 러시아군의 전폭적인 지원과 협력에 의해 실제 군사기재들이 총동원 된 이 영화의 전투 신들은 꽤 사실적이다. CIA 작전부 부사령관과 러시아연방보안국 부사령관, 러시아 공군 총사령관 등이 영화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느니, 장갑차 추격 신에서 레닌 거리를 완전히 봉쇄하고 찍었다는 식의 홍보 문구 역시 ‘실감나는’ 영화의 그림을 강조하고 있다.  

-대중영화가 필요로 하는 영웅, 그리고 피도 눈물도 없는 돈 많은 악당, 영웅을 돕는 조력자도 당연히 등장한다. 안사르 알과 체첸이 러시아 서커스 극장에 모인 아이들과 일반인들을 인질로 삼고 유엔을 상대로 협상을 시도할 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또한 사랑하는 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나홀로 서커스장에 진입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중심인물이 바로 스몰린 소령이다.

-체첸 측의 포로였다가 살아남은 러시아 장교 알렉세이 가르킨이 겪은 사건과 2002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테러범들의 인질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영화는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관객들에게 사실적인 공포를 전달하려 한다. ‘볼거리’로서 제공되는 테러의 모습은 매우 현실적인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노출되지만 역설적으로 그 안에는 진짜 현실의 모습은 없는 경우가 많다. ‘테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지만 7천원으로 살 수 있는 ‘테러’란 그냥 단순한 흥밋거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씁쓸한 기분이 들게 하는 영화다.(*씁쓸하지 않은 러시아 영화들도 물론 많이 있다. 우리가 보고 싶어하지 않을 따름이다.) 

06.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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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5월에 모스크바 통신문에 올렸던 걸 옮겨놓는다. 원래 제목은 '키노와 류베와 오쿠자바'이지만, 잡다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그냥 '모스크바의 5월'이라고 해둔다. 원래는 지난달에 정리를 해두었어야 마땅했지만, 이제서야 생각이 났다. 비가 오는 날씨가 문득 비가 자주 오던 그해 모스크바의 5월을 떠올리게 했다.

5월 9일은 (분위기로 보아) 러시아 최대의 국경일이다. 다름아닌 승전기념일인데, 1945년 5월 9일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공식적으로 항복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작년 2005년에 승전 60주년 행사가 성대하게 개최된 바 있다. 사진은 1945년의 베를린). 당시 소련은 미국, 영국 등과 함께 연합군에 속해 있었다. 2차 대전을 다룬 대부분의 전쟁영화들은 주로 미-영연합군과 독일이 대치했던 서부전선에서의 참상과 전쟁영웅들을 주로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낳은 것은 독일과 소련이 격전을 벌인 동부전선이었다(최대 격전지인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묘사한 영화와 책들이 국내에도 소개돼 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2천만 이상의 군인과 민간인들이 희생됐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생중계된) 공식 행사는 우리의 국군의 날 행사와 비슷하게 진행됐는데, 크레믈린 광장에 도열한 각 부대 장병들에게 국방장관이 “59주년 전승기념일을 축하한다”고 하면, 매번 장병들이 “우라, 우라, 우라”(만세삼창)으로 화답하는 식이었다. 장관의 축하가 끝나고 푸틴 대통령에게 경과를 보고하자, 이어서 푸틴의 치사가 이어졌고, 그 이후엔 열병과 행진이 시작됐다.

바로 그제(7일) 푸틴의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기 때문에, 크렘믈린 광장에서의 사열과 열병이 이틀만에 또 진행된 셈. 크렘믈린의 대통령궁에서 성대하게 치러진 취임식은 황제의 대관식을 방불케 했는데(사실, 러시아 대통령은 임기제 ‘황제’이다), 열병식이 벌어진 장소는 영화 <시베리아의 이발사>(<러브 오브 시베리아>로 개봉)에서 황제 알렉산드르 3세로 분한 감독 니키타 미할코프가 사관학교 졸업생들의 열병을 받던 그 장소였다.

공휴일이 휴일인 토요일이나 일요일과 겹치는 경우 러시아에서는 다음 월요일도 자동적으로 휴일이 된다. 그래서 내일(10일)까지가 휴일인 셈인데, 지난 메이 데이 이후 승전기념일을 전후한 대략 10일간이 러시아에서는 거의 연휴인 듯싶다. 그래서 학생들이 이 기간 동안에 여행일정을 많이 잡기도 하며, 학교 부근은 정말 조용하고 한산하다. 물론 지난 목요일에 내가 다니는 필팍(인문대학) 건물 앞에 있는 승전기념탑(혹은 전몰용사 추모탑) 앞에서는 참전용사들도 참여한 기념식과 헌화식이 치러졌다. 망치와 낫이 그려진 구소련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군복과 정장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앞장을 서고, 젊은 학생들이 뒤를 따랐으며, 장엄한 군가들이 울려퍼졌다.

 

 



내가 처음 들은 노래는 <모래시계> 주제가로 잘 알려진, 유리 감자토프의 시에 곡을 붙여서 이오시프 코브존이 부른 '백학'이었다(이 이름을 딴 한국식당도 모스크바 강변에 있다). 알다시피, 이 노래는 2차 대전시 전사한 전우들이 백학이 되어 하늘을 날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 오늘 낮에 나에게도 얼굴이 낯익은 (아마 국내에도 다녀간 듯) 러시아의 젊고 유명한 테너 가수가 전쟁가요/가곡만을 부르는 콘서트가 국영 '러시아'방송을 통해 방영됐는데, 이 노래를 들으며 눈시울을 적시는 청중들도 여럿 있었다.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가끔 생각하지, 피로 물든 들녘에서
돌아오지 않는 용사들이,
잠시 고향 땅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백학으로 변해 버린 듯하여

그들은 그 옛적부터 지금까지
날아만 갔어, 그리고 우리를 불렀어
그래서 우리는, 자주 슬픔에 잠긴 채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잊은 건 아닐까.

날아가네, 날아가네, 저 하늘에 지친 학의 무리
날아가네, 저무는 하루의 안개 속을
무리 지은 대오의 그 조그만 틈새,
그 자리가 혹 내 자리는 아닐는지.

그날이 오면 학들과 더불어
나는 회청색의 그 어스름 속을 날아가리.
대지에 남겨 둔 그대들 모두를 
천상 아래 새처럼 목놓아 부르면서.

노래 얘기가 나와서 덧붙이면, 지난주 발음교정 수업시간에 유명한 그룹 <류베(Lyube)>의 노래를 들은 것이 계기가 돼(나는 이름만 듣고 있었는데), 문구점에서 그들의 MP3음반을 샀다. 내가 산 1집에는 1991년부터 1997년까지 발표한 6개의 앨범이 들어가 있었는데(총 6시간 42분 분량), 이 선집 시리즈는 올해 새로 나온 것이다(값을 120루블=6천원). 그리고 마침 지금 <제1방송>에서는 류베의 콘서트를 방영하고 있다(http://www.youtube.com/watch?v=5xSOK7ODLSM).

활동 경력이 15년쯤 된 듯한 중견밴드인데, 악기를 연주하는 멤버들은 6명이고, 솔리스트로 보컬을 맡고 있는 니콜라이 라스토르구예프는 공식적으로 ‘러시아 인민 예술가’로 돼 있다(그들의 명성을 알게 한다). 그는 짧게 친 머리에(소위 ‘깍두기 머리’) 큰 키는 아니고 덩치가 좋은, 그러면서 단단해 보이는 체구의 아저씨이다(룸메이트는 버스기사처럼 생겼다고 했다). 나는 이런 밴드가 맘에 든다.

 

 



류베의 앨범과 같이 산 건, 나온 지 몇 년 된 듯한 <키노(Kino)>의 선집 디스크 중 제3집이다(한국에서 많이 듣던 노래들도 다 들어가 있다). 역시 MP3이고, 87년부터 90년까지의 공연실황들을 주로 담고 있으며, 영화에 출연해서 부른 노래들도 들어가 있다. 영화세미나 시간에 빅토르 최가 반항적인 대학생으로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잠깐 보기도 했다. 지금은 요절했지만, 그는 그룹 키노를 이끌던 리더로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교포 3세쯤 될까? 키노의 노래 대부분은 그가 작사/작곡한 것이다). 빅토르 최의 키노는 내가 학부에 다닐 때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였다(http://www.youtube.com/watch?v=PNZYPqdtNnU).

70년대를 대표하던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은 비소츠키나 오쿠자바(발음은 ‘아꾸자바’) 같은 ‘음유시인’들이었는데(이들은 현재 공식적으로 20세기 문학사에 편입돼 있다. 어제의 전야제에 이어서 오늘부터 ‘오쿠자바 탄생 80주년 기념 페스티발’이 한 보름간 열린다), 사정을 잘은 모르지만, 이런 러시아식 록밴드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건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인 80년대 중반부터이지 않을까 싶고, 키노는 당대 최고의 밴드였다(물론 국내에도 소개된 지는 오래됐다). 이제는 ‘전설’만이 남았을 뿐인데, 그들의 노래가 사랑 받는 한 그 전설은 그래도 영원히 ‘현재적’일 것이다. 아르바트거리에 남아있는 추모의 벽처럼(온갖 페인트의 헌사가 바쳐진 이 낡은 벽만은 재건축 불허라고 한다).

요즘은 이들의 노래를 하루에 몇 시간씩 틀어놓는다. 고급스런 러시아 발레나 오페라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건 이런 대중음악이다. 물론 요즘 미국식으로 ‘팝’화된 러시아 미소년/미소녀들의 노래까지 좋아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난 좀 구닥다리가 좋다(아코디언이 들어간 밴드를 좋아한다). 해서, 노래가 맘에 들면, 가사를 프린트하기도 하고. 또 맘에 드는 가수들을 ‘발견’할 때까지는 아마도 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을 것 같다. ‘러시아식’이라고 했는데, 나는 하드록과 현란한 기계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대신에 노래에 서정과 절규가 적절히 배합돼 있는 걸 좋아한다(클래식보다는 뱃노래를 좋아한다). 대중음악의 경우에도 언제나 더 오래 남는 건 기교가 아니라 진정성이다. 거기에 잘 맞는 건 러시아나 북유럽의 밴드들 같다(아키 카우리스마키 영화에 나오는 핀란드 밴드들!). 아, 수업시간에 들었던 류베의 노래가 지금 나오고 있다. “내 이름을 조용히 불러줘.”(빠자비 미냐 찌하 빠 이미니 “Pozovi menja tikho po imeni” http://www.youtube.com/watch?v=LTlmDzyQpJU) 같이 듣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여기까지 쓰고서는 1호선 취스뜨이 쁘루드이역에 있는 '소브레멘닉'(‘동시대인’이란 뜻) 극장에 가서 연극 <뇌우>를 보고 왔다. ‘취스뜨이 쁘루드이’는 ‘깨끗한 연못’이란 뜻인데, 전철역에서 극장으로 10분쯤 걸어가야 하는 길 오른편에는 공원과 함께 (연못이라고 하기엔) 좀 큰 연못이 있고, 수상 공연장 같은 것도 있다. 소브레멘닉에서는 지난 4월 중순에도 러시아에 온 이후 최초로 연극관람을 했었는데, 그때 본 프로그램은 폴란드의 영화감독 안제이 바이다가 연출한 <악령>이었다(객석이 꽉 찼었다).

물론 카뮈가 각색한 대본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는데, 사실 기대를 갖고 본 이 연극이 기대에 훨씬 못 미쳤기 때문에(줄거리 따라가기 바쁜 연극이었다. 배역들도 내가 읽은 원작과는 너무 다르고), 그동안 연극 관람에 큰 흥미를 갖지 못했었다. 하지만, 오스트롭스키 원작의 <뇌우>는 TV에서도 한번 소개가 됐고, 러시아 선생님의 권유도 있어서 관람하게 된 것.

제목은 <뇌우>이지만 주제와 인물들만 원작에서 따온 2막의 ‘판타지’극이었는데, 여성 연출가가 여러 장면에서 안무까지 도입하여 새롭게 시도한 공연이었다. 오스트롭스키는 19세기 러시아 최대의 드라마작가로서 <뇌우>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데(열린책들에서 나온 <러시아희곡1>에 번역돼 있다), 볼가강 주변 소도시의 상인집안에서 엄한 시어머니를 둔 며느리 카테리나가 장사를 떠난 남편 몰래 정부와 바람을 피웠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남편에게 자백하고 강에 뛰어들어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작품에 나오는 ‘뇌우’는 억압적인 사회적 규범을 상징하는데, 카테리나는 이 뇌우 소리를 두려워했었다. 조금 다르게 이해하면, 이 드라마는 여성의 ‘볼랴’에 대한 공포를 주제로 하고 있다.

‘볼랴’는 ‘자유(의지)’란 뜻인데, 그걸 여기서는 ‘여성적 욕망’으로 이해해도 별 무리는 없다(그리고, 언제나 여성의 욕망은 남성의 욕망보다 더 크다! 어느 남자가 바늘로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는가?). 이 볼랴는 여성 자신에게도 낯선 어떤 것이고,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여성성은 여성 자신에게도 타자이다?). 거기에 대응하는 적합한 우리말은 ‘자유부인’이라는 조어에서의 ‘자유’이다. 그것은 사회의 상징적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제한되고(거세되고), 금지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다. 아들의 어머니로서 시어머니-여성은 (자신의 욕망이기도 했던) 며느리-여성의 욕망을 억압하고 감시하며 통제한다! 때문에, <뇌우>와 <자유부인> 모두에서 여주인공이 사회적인 응징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 사회적 응징의 반복적인 무대화는 거꾸로, 이 여성적 ‘볼랴’ 혹은 ‘자유’에 대한 사회의 신경증적 불안을 무대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사를 알아듣긴 힘들어도 전반적인 줄거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 내용을 따라가는 건 문제가 없었는데, 보고 난 인상은 너무 어중간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다. 정격 공연이 아닌, ‘파격’ 공연인 바에야 더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더 파격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공연은 몇몇 새로운 장면에도 불구하고 이도저도 아닌 식이 돼 버렸다. 게다가 2막은 1막에 비해서 긴장도 떨어지고, ‘뇌우’의 상징성도 거의 사용되지 않은 가운데 짧게 끝나버려서 왜 굳이 제목이 ‘뇌우’인지가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 내막에 대해서 오래 궁금해 할 여유는 없었고, 나와 룸메이트는 주연배우들의 인사가 끝나자 극장문을 나섰다. 나는 레프 도진의 <바냐 아저씨>나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얼마전 읽은 공연평에 의하면, 한국에도 다녀간 바 있는 도진은 생전에 ‘거장’이 되었다).

러시아에서의 대부분의 공연은 저녁 7시에 시작한다. <뇌우>도 마찬가지였고, 막간의 중간 휴식 15분 정도를 빼면, 2시간 20분쯤 되는 공연이었던 듯싶다(<악령>은 3시간이었다). 오늘은 전승기념일이라 그런지 공연 시작 전 잠시 동안 관객 전체가 기립하여 방송에 나오는 구령에 따라 묵념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러시아에선 러시아식으로 하는 수밖에!). 그런 거 저런 거 빼면, 2시간 10분쯤? 9시 45분쯤 극장문을 나섰는데, 해가 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제 막 어둠이 내리고 있었는데, 더불어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모스크바의 5월은 싱그럽다. 봄비에 실려서 가로수 냄새와 풀 냄새까지 코끝에 스친다(봄비가 내리는 광화문을 나는 좋아했었는데…). 보슬비를 맞으며 걸어가는데, 왼편의 공원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이제 막 어느 밴드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들의 노래가 귀에 익었다 싶었더니 류베의 노래였다. ‘혹시나’ 싶었지만, 류베는 아니었고, 머리를 치렁치렁 기른 젊은 밴드가 류베의 대표곡 하나를 부르고 있었다. “안개 저 너머에”라는 발라드. 푸른 바다에서 배를 타고 안개 저 너머에 있는 고향으로 귀향하고 있는 한 사내를 노래하고 있다. 아직은 멀었지만, 나도 푸른 하늘, 구름 저편에 있는 고향으로 귀향할 날이 올 것이다...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 TV에서는 두 곳에서 오쿠자바 특집방송이다(사진은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오쿠자바 동상). 한 곳(‘문화방송’)에서는 생전의 오쿠자바의 공연 장면과 회고 등을 내보내고 있고, 다른 한곳(렌티브이)에서는 오늘부터 시작된 오쿠자바 페스티발을 녹화해서 보내주고 있다. 한 음유시인을 기억하는 야외 공연장에는 남녀노소 만 여명 이상이 질서정연하게 모여 있다. 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는 데 있어서 러시아 사람들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다(프랑스 사람들과 한번 비교해 봐야겠지만). 다음주에는 오쿠자바 음반도 하나 사야겠다. 이 참에 당신(들)도 한번 구해보시기를. 키노와 류베와 오쿠자바(그리고 비소츠키)를…



04. 5. 9./ 06.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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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모스크바 통신문에 올렸던 글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북매거진 <텍스트>의 청탁을 받고 씌어진 글인데, 분량상 이 글의 축약본이 <텍스트>에는 실렸었다. 안톤 체홉(체호프)의 작품을 읽으면서 '세계문학'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글이다.

 

 

모스크바 체류 6개월째(*이 글은 2004년 9월 중순에 씌어졌다). 이런저런 ‘현지사정’으로 그동안 단 한편의 글도 기고하지 못했는데, <텍스트>는 새로운 기획의 한 꼭지를 내게 맡겼다. 편집진에서 내게 요구한 것은 “체홉을 읽는다는 것, 혹은 러시아 문학을 읽는다는 것, 더 나아가서는 순수문학, 아니 그보다는 ‘진짜 문학’을 읽는다는 것의 유의미성에 대한 소고”이다. 러시아 작가들 가운데 유독 안톤 체홉(1860-1904)이 거명된 것은 올해가 그의 사망 100주년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그가 사망한 달인 지난 6월에 이미 관련행사들이 개최된바 있으며, 한국에서도 최근 이를 기념한 작품집 두 권, <벚꽃동산>과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4)이 출간되었다(*물론 이후에 5권짜리 선집을 포함해서 더 많은 책들이 나왔다. 가장 최근에 (재)출간된 건 <체호프 단편선>(문예출판사)이다). 새로 번역돼 나온 책들에 대한 리뷰를 겸하면서 ‘체홉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이 <텍스트>의 성격에 부합하는 작업일 듯하지만, ‘현지사정상’ 내가 참조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어 문고본 체홉과 (후배에게 며칠 빌린) 한국어본 작품집 <귀여운 여인>(혜원출판사, 2000)뿐이다(이하에서의 체홉 인용 쪽수는 이 작품집의 것이며, 번역은 일부 수정됐다).

<텍스트>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나는 체홉의 단편들 중 <6호실>(1892)과 <상자 속의 사나이>(1898)를 다시 읽었고, 거기에 최근에 번역/소개된 가라타니 고진의 <언어와 비극>(도서출판b, 2004)을 겹쳐 읽었다. 고진의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은 “세계종교에 대하여”인데, 나는 ‘세계종교’에 대한 고진의 사유를 ‘세계문학’에 대한 것으로 고쳐 읽어도 무방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해서, 이 글의 골격이 짜여진바, 나는 체홉의 두 단편 읽기를 통해서, ‘진짜 문학’, 곧 ‘세계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리고 그것을 읽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따져보고자 한다(이러한 주제가 다소 주제넘은 것으로 보인다면, 그건 이런 걸 주문한 <텍스트>의 탓이다).

체홉의 전기나 연보를 유심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것이 1890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서른에 감행한 사할린 여행이다. 알다시피, 체홉은 순전히 생계의 방편으로 모스크바대학 의학부 학생시절에 유머 단편들을 쓰기 시작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이 시기에는 ‘체혼테’ 등의 필명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어느덧 10년, 체홉은 자신의 삶과 작가생활에 있어서 어떤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를 타개/돌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획하고 실행한 것이 사할린 여행이었다.

 

시베리아 철도가 개설되기 이전이라 사할린 섬으로의 여행은 마차로 시베리아를 횡단해야 하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체홉은 1890년 4월에 길을 떠나 7월에 사할린 섬에 도착하고 3개월간 체류하면서 당시 유형지였던 사할린 섬의 실태를 조사하고 주민들 혹은 죄수들과 일일이 만나 면접카드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이때 작성한 카드만 8,000장 이상이었다). 그리고는 바닷길을 통해 다시 모스크바에 돌아온 것이 그해 12월이었다. 이 여행 이후에 그는 <시베리아 여행>(1890)이란 기행문과 <사할린 섬>(1895)이라는 아주 ‘객관적인’ 보고서를 발표하며, 문학사가들은 이 여행을 통해서 사회적 현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보다 넓어지고 깊어진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사할린 여행 이후의 체홉을 ‘중기 체홉’으로 분류해도 좋으며(‘후기 체홉’은 <갈매기> 이후 드라마 작가로서의 체홉이다), 이 중기의 체홉은 ‘코믹’과 ‘우수’의 작가 ‘체혼테’와는 연속적이면서도 좀 다른 체홉이다. 즉, 그의 코믹과 우수는 저울추를 단 것처럼 다소 무거워진 코믹과 우수가 되었다(그걸 비극과 비애라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한 시골 자선병원의 의사가 자신의 생활에 환멸을 느끼던 차에 정신병동에서 유일하게 총명한 청년을 만나 자주 대화를 나누다가 미친 걸로 간주되어 감금되고 결국은 맞아 죽은 이야기를 그린 <6호실>과 자신을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보호/방어하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허무한 죽음을 맞은 시골학교 교사를 그린 <상자 속의 사나이>는 이러한 중기 체홉의 대표작들이다.

 

<6호실>의 주인공인 의사 안드레이 예피므이치는 시골 자선병원의 원장으로 부임하여 아주 불결하고 암담함 병원상태를 둘러보고는 “이 시설이 비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거주자의 건강에도 매우 해롭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현재로서 가장 현명한 조치는 환자를 퇴원시키고 병원을 폐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320-1쪽). 그러니까 문제는 환자가 아니라 병원 자체였던 셈. 하지만, 그는 곧 그러한 ‘현실’과 타협하고 만다.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하며 또한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해서이다. 그는 지성과 성실(=정직)을 사랑했지만, “박력(=의지)과 자기 권리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주변의 무지와 불성실(=부정직)을 그대로 방치하고 만다.

물론 안드레이 에피므이치도 처음엔 사명감을 가지고 매우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의 단조로움과 무익함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322쪽) 그가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시골 읍의 사망률은 전연 줄지 않았고 환자의 발걸음도 도무지 그칠 줄 몰랐던 것이다. 그는 결국 체념하게 되며 자신의 체념을 죽음과 고통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서 정당화한다(체념과 나태는 철학의 어머니이다!).

가령, “푸슈킨은 죽음에 임하여 무서운 고통을 맛보았고(참고로, 푸슈킨은 결투에서 복부관통상을 입고 반나절 이상을 신음하다가 죽었다), 불쌍한 하이네는 여러 해를 중풍으로 병석에 누워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일개 안드레이 예피므이치나 마트료나 사비쉬나 따위가 고통을 맛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그들의 생활은 무미 건조하기 짝이 없어서 만약에 고통마저 없다면 아주 공허하게 되어 아메바의 생활과 다를 바가 없게 될 텐데 말이다.”(322쪽) 그는 이런 논리, 즉 우리가 아메바와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고통은 필요하다는 ‘고통의 철학’에 압도당해서 아예 병원에 가는 일조차 그만두고 만다.

 

작가 체홉은 삶의 문제에 대한 ‘철학화’, 혹은 삶에 대한 철학의 (과잉)결정에 언제나 회의적이었다(때문에 그는 톨스토이즘과도 결별한다). 안드레이 예피므이치의 ‘고통의 철학’(=고통의 일반화) 또한 그 자체의 논리로는 완벽하지만, 거기에는 고통의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고진의 표현을 빌자면, 거기엔 ‘이 나’의 고통, 즉 고통의 단독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안드레이 예피므이치 라긴’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막연하게 존재했다. 즉 존재했던 것은 ‘안드레이 예피므이치 라긴’이란 단독자가 아닌 그의 유령이자 그림자였던 것이다.

“내가 왜 죽어야 하나?”가 아니라 “아아, 어째서 인간은 죽어야 하나?”와 같은 철학적 상념에 빠져서 책읽기에만 몰두하던 안드레이 예피므이치는 그러던 차에 어느 봄날 정신병동인 6호실을 방문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의 유일한 대화상대가 될 만큼 사색적이고 총명한 청년을 만난다. 피해망상증 환자로 분류돼 6호실에 수용된/감금된 이반 드미트리치 그로모프였다(사람들은 그를 애칭인 ‘바냐’로 불렀는바, 그는 ‘바냐 총각’이다).

“일반 사람들은 행복이나 불행을 외부에서 구합니다. 즉, 마차(=여행)나 서재(=독서)에서 구합니다만 사색적인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서 찾습니다.”(341쪽)란 의사 안드레이의 ‘철학’에, 환자 이반은 “그런 철학은 오렌지꽃이 피는 따스한 그리스에 가서나 설교하시죠. 여기선 기후가 맞지 않으니까요.”라고 대꾸한다. 그리고 의사가 늘어놓는 ‘스토아 철학’ 예찬에 대해서 환자는 성난 표정으로 말한다. “외적인 것, 내적인 것… 미안합니다만 내게는 이해가 안됩니다. 내가 아는 건 신이 나를 따뜻한 피와 신경으로 창조했다는 한 가지 사실뿐입니다! 유기적 조직은 생활능력이 있는 경우에 모든 자극에 대해 반드시 반응해야 합니다. 그래서 난 반응을 하는 거죠! 고통에 대해서 나는 비명과 눈물로 대답하고 비열성에 대해서는 분개로, 추행에 대해서는 혐오로 대답하는 겁니다. 유기체가 저급이면 저급일수록 감수성이 둔하고 자극에 대한 반응이 약하며, 반대로 고급일수록 현실에 대해 한층 더 민감하게 정열적으로 반응합니다. 이런 것을 어째서 모르십니까? 의사이면서도 이런 시시한 것도 모르다니!”(342쪽)

다소 길게 인용된 이 대목에서(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안드레이와 이반, 즉 의사-환자의 관계는 전도된다. 이것은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수행한 ‘가치의 전도’를 연상시키는데(사실 저급한 존재와 고급한 존재의 구별은 바로 니체의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가 따라서 ‘정신병자’ 바냐의 레슨이라는 형식을 띠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요컨대, “이반 드미트리치 그로모프는 이렇게 말했다”가 되는 것이다(그의 성 ‘그로모프’의 어근인 러시아어 ‘그롬’은 ‘번개’ ‘벼락’이란 뜻이다).

이반이 무엇보다도 문제삼는 것은 인간의 평안과 만족이 자기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고 간주하는 현자적, 혹은 철학자적 태도이다. 그는 의사 안드레이에게 “당신은 인생을 깨닫느니 고통에 대한 멸시니 하는 문제를 꺼낼 자격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즉, “당신은 예전에 괴로워한 적이 있나요?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나요? 당신은 어릴 때 회초리로 맞은 적이 있습니까?”(344쪽) 이에 대해서, 안드레이는 자신의 양친이 육체적 형벌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고 답하지만(즉, 그는 한번도 맞아본 적이 없다), 이반 왈 “하지만 난 아버지한테 사정없이 맞았죠.”(작가 체홉 또한 식료품 가게 주인이었던 아버지한테 어린시절 사정없이 맞았다.)

그러니 이반이 보기에 안드레이가 고통을 경멸하고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는 것은 그가 생활(=삶)이란 걸 전혀 모르며 이론적으로만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에 대한 구분이나, 생활과 고통, 죽음에 대한 경멸 따위는 모두 러시아 놈팡이들의 철학에 불과하다(놈팡이들이 부유하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한 놈팡이 철학의 궁극적인 귀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같은 6호실에 감금돼 있는, 멍청한 얼굴에 뚱뚱하게 비계살이 찐 농부인바,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생각하거나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고 몸은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면서 먹기만 하는 불결한 동물이었다.”(317쪽)

병동의 수위 니키타가 그의 시중을 들 때마다 자기 주먹이 아픈 것도 아랑곳없이 힘껏 때려 패지만, “무서운 것은, 그가 얻어맞은 사실이 아니라, 이 무감각한 동물이 구타에 대해서 비명이나 몸을 피하거나 눈을 부라리는 따위의 반응조차 나타내지 않고, 묵직한 통처럼 약간 흔들릴 뿐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무감각한 동물’ 혹은 ‘묵직한 통’은 현실을 초월해 있으며, 바로 그런 점에서 이 ‘철학적인’ 통은 ‘디오게네스의 통’이라 할 만하다.

요컨대, 고통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이 농부야말로 철학자연하면서 고통을 무시하는 의사 안드레이 예피므이치의 짝패이자 이면이다(안드레이 왈 “디오게네스는 통속에서 살았습니다만 지상의 모든 국왕보다도 행복했던 것입니다”). 그에 대한 이반의 결론은 이렇다. “당신은 고통을 무시하고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당신 역시 손가락이 문에 찌이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댈 겁니다!”(345쪽) 안드레이 예피므이치는 이러한 이반 드미트리치와의 대화에 감명을 받아서 이후에 6호실에 자주 드나들게 되며 그로 인해서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사서 면직되며 결국은 ‘치료’를 위해서 강제적으로 6호실에 감금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그는 자신의 일상생활과 현실의 ‘바깥’이었던 이 정신병동에서야 비로소 생활이 무엇인지, 현실이 무엇인지, 고통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된다. 즉, 그는 답답한 마음에 한밤중에 산책을 나가겠다고 수위인 니키타를 윽박지르다가 난생처음 구타라는 걸 당하게 되는바, “갑자기 니키타가 문을 홱 열더니 두 손과 무릎으로 난폭하게 예피므이치를 밀어젖혀 놓고 주먹을 들어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는 파도 위로 떠오르려고 하는 것처럼 양팔을 휘젓기 시작하다가 누구의 침대인지 붙잡았다. 그때 니키타가 두 번 등을 후려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공포심을 가지고 또 한번 얻어맞을 것을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369-70쪽)

안드레이는 자신이 20년 이상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고통’에 대해서 몰랐을 뿐 아니라, 알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에겐 비로소 “양심이, 니키타처럼 완고하고 난폭한 양심이, 그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오싹 소름이 끼치게 하는 분노로 몰아세웠다.”(370쪽) 하지만, 그건 좀 뒤늦은 분노였다. 그는 바로 다음날 저녁 무렵에 뇌일혈로 사망했으니 말이다.

다소간 어이없는 주인공의 죽음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상자 속의 사나이>는 <6호실>을 닮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상징적 공간은 ‘6호실’에서 ‘상자’로 더 축소되었다(덕분에 그 상징성은 더 확대된다). 6호실에는 적어도 대여섯 명의 환자가 함께 감금돼 있었지만, 시골학교의 그리스어 교사 벨리코프의 ‘상자’는 오로지 그만의 것이다. 그가 왜 ‘상자 속의 사나이’인가? 그는 “날씨가 매우 좋은 때에도 덧신을 신고 우산을 드는 데다가 반드시 솜이 든 방한 외투를 입고 외출”했기 때문이다.

화자인 동료 교사 부르킨에 의하면, “어쩌면 그것은 격세유전의 한 현상으로 인류의 조상이 아직 사회적인 동물이 되지 못하고 각자가 자기 동굴 속에서 살고 있었던 시대로 되돌아가려는 건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그저 인간의 다양한 성격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243쪽) 어쨌든 벨리코프가 자신을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격리시켜 방어하려는 ‘상자들’로 자기를 감쌀수록 그에게서 사회적 동물로서의 자질, 즉 사회성은 배제/결여되게 된다. 이 벨리코프가 찬양한 것은 과거의 세계, 그리스어의 세계뿐이었으며, 그에게 인간은 “듣기 좋고 아름다운 말” 그리스어의 ‘안트로포스’에 의해서 지시될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꽤나 똑똑한 동료교사들을 포함해서 학교 전체가 꼬박 15년 동안 “언제나 덧신을 신고 우산을 들고 다닌 이 사나이”, 언제나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던 이 소심한 사나이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다(러시아 연구자들은 알렉산드르 3세(1881-1894)와 벨리코프의 친연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나이가 마흔이 넘은 이 노총각 벨리코프를 타지에서 온 동료교사의 누이인 서른 살의 바렌카와 결혼시키려던 일이 어떻게 실패로 돌아갔는가에 대한 것이다. “아무 일도 생기지 말아야 할 텐데”란 말(이 또한 그의 ‘상자’이다)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이 사나이에게 결혼이란 ‘일’만큼 어울리지 않는 것도 드물어 보이지만, 하여간에 그는 주변의 모의 덕분에 거의 결혼할 뻔한다. 하지만, 결혼 뒤에 어떤 일이 생길는지 확실할 수 없었던 벨리코프는 바렌카에 대한 청혼을 주저하며, 그러던 중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고 만다.

사건이란 건 언제나 활달하며 ‘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바렌카가 어느 일요일에 동생 코발렌코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는 걸 벨리코프가 목격하게 된 것을 말한다. 너무도 날씨가 좋아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활기차게 재잘거리고 지나간 바렌카와는 대조적으로 벨리코프는 안색이 창백해진다. 그로선 부인네나 처녀가 자전거를 탄다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요컨대 ‘상자 속의 사나이’가 견딜 수 없었던 건 ‘살아있는 삶’이었다). 게다가 그건 공고로써 ‘허가’된 일도 아니지 않은가!

충격을 받은 벨리코프는 다음날 학교도 결근한 채 저녁 무렵 여름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역시나 두꺼운 옷을 껴입고 주의를 당부하러 코발렌코를 찾아가지만, 오히려 봉변만을 당하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바렌카는 예의 또 ‘하하하’ 하는 웃음을 터뜨리고, 결국은 ‘무슨 일이 터져버린’ 벨리코프는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앓아 눕게 되며 한달 뒤에 죽고 만다.

벨리코프 이야기의 결말은 이렇다. “관 속에 든 그의 표정은 조용하고 편안해 보였으며 명랑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흡사 드디어 상자 속에 들어가게 해 주어서 이제 두 번 다시 그곳에서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기뻐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렇죠, 그는 글자 그대로 자기의 이상에 도달한 셈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경의를 나타내려는 듯 장례식 날은 잔뜩 흐려서 비가 올 듯한 날씨였으므로 우리들은 모두 덧신을 신도 우산을 들고 있었습니다.”(255-6쪽)

 

 

요컨대, ‘상자 속의 사나이’의 삶은 상자(관) 속에 들어감으로써 완성된 것인데, 그러한 사실이 암시하는 것은 그의 ‘상자-속의-삶’이란 것 자체가 이미 절반은 죽은 삶이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죽음(=상자)이란 외피를 두름으로써만 연명할 수 있었던 삶, 살아있지만-죽어있는 삶을 살았던 것. 그렇다면, 이 작품 또한 ‘살아있는 삶’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인바, 이 주제는 성 바울의 주제(“너희는 너희가 살아있는 줄 아느냐?”)이면서 동시에 러시아문학의 고유한/유구한 주제이기도 한다(특히 도스토예프스키 계보의 주제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체홉은 러시아 문학의 전통 바깥에 있지 않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주제를 제기만 할 뿐, 어떠한 해답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와 구별된다.

사실 <상자 속의 사나이>는 벨리코프의 죽음만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는다. 벨리코프의 죽음으로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제는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생활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똑같이 고지식하고 걱정스럽고 무의미한 생활, 공식적으로 금지돼 있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도 않은 생활, 요컨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생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벨리코프는 무덤에 묻혔지만 그런 ‘상자 속의 사나이’는 많이 있으며 앞으로 또 나올 것이었다. 러시아 연구자들은 이것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니콜라이 2세(1894-1917)의 치세에 견주지만, “혁명은 안되고 방만 바꾼” 치세가 러시아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를 마친 화자 부르킨은 헛간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쳐다본다. “(그에겐) 어둠의 적막 속에서 여러 가지 고통이나 괴로움이나 슬픔에서 벗어나 밤의 그늘에 감싸여 왠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슬프고 아름다워지고 어쩐지 하늘의 별들도 정다운 감동을 지닌 눈길로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지상에는 이제 악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원만하게 수습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257쪽) 벨리코프의 ‘코믹’한 삶에 덧붙여진 것은 이렇듯 지상의 악에 ‘무심한 자연’이 낳는 ‘우수’이다(‘무심한 자연’은 투르게네프의 주제이다).

체홉과 동시대의 러시아 작가 레스코프는 “사방이 다 6호실이다. 이것이 러시아다”라고 말했고, 한 여성 작가는 “저에겐 전 러시아가 상자 속 같이 느껴진답니다”라고 체홉에게 편지를 썼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진단을 더 확장하여 “세계는 6호실이다” 혹은 “세계는 상자 속이다”, “우리 모두는 상자 속의 인간”이라고 일반화시켜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예 ‘상자성’이라는 일반 개념까지 만들어서 말이다. 그럴 경우, 체홉의 문학은 러시아 문학을 거쳐서 문학 일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것이 문학이 갖는 ‘개별성(부분)-일반성(전체)’의 구도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언어와 비극>의 한 장 “단독성과 개별성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옛날 논리학으로는 결코 ‘이 나’와 같은 것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문학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근대소설에서는 확실히 일반적이지 않은 ‘이 나’가 쓰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개별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이미 일반적인 것입니다. 근대소설은 오히려 개별적인 것이 일반적인 것을 의미하는 장치입니다… 따라서 단독성은 문학이 아니라 반대로 논리학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고 말해도 좋습니다.”(356-7쪽)

고진에 따르면, 문학(특히 근대소설)은 ‘개별성-일반성’의 구도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논리학이 다루는 ‘단독성-보편성’의 구도와는 무관하다. 즉 “마담 보바리는 나다, 곧 우리는 마담 보바리이다”라거나 “안나 카레니나는 나다, 곧 우리는 안나 카레니나이다”와 같은 개별성의 일반화, 혹은 상징화가 근대소설이 가진 특장이었는바, 그것은 진정한 단독성/보편성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인용한 대목이 내게는 그렇게 읽힌다. 하지만, 고진 자신이 주장하듯이 단독성의 문제는 “고유명의 문제로 귀착”(449쪽)되며, 문학은 다른 무엇보다도 고유명의 세계인데, 문학에서는 단독성이 발견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과잉)일반화로 보인다.

“우리는 마담 보바리이다”라거나 “우리는 안나 카레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마담 보바리’나 ‘안나 카레리나’라는 개별성이 ‘우리’라는 일반성으로 곧장 환원된다는 걸 뜻하지 않는다. “어떤 단어가 고유명인가 그러지 않는가는 개체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455쪽)다는 고진의 주장을 그대로 되돌려주자면, 문학(이라는 고유명사적 세계)에서 개별성-일반성의 구도를 보는가, 단독성-보편성의 구도를 보는가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즉, 그것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간) 결정하는 것이다. 더불어, 근대소설은 근대소설 자체를 넘어선다는 고진의 주장을 역시 그에게 되돌려주자면, (진정한)근대소설은 “근대소설은 오히려 개별적인 것이 일반적인 것을 의미하는 장치”라는 규정을 넘어선다.

하지만, 고진의 관점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에도, 체홉의 문학은 근대소설에 못 미치거나 그것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에서 개별적인 것(고유명사)은 언제나 일반적인 것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체홉의 문학은 ‘개별성-일반성’의 구도 안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고진은 그러한 구도를 넘어서는 일이 ‘단독성에 집착하는 작가’ 카프카처럼 오히려 알레고리를 선택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언급하는데, (체홉의 경우를 보건대) 알레고리가 아닌 다른 방식 역시 가능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그것은 알레르기의 방식이다.

가령 <상자 속의 사나이>의 결말에서, 부르킨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수의사 이반 이바느이치가 “우리가 숨막히는 좁은 동네에 살면서 필요도 없는 서류를 쓰거나 카드놀이를 하는 것, 그것도 역시 상자와 다름없지 않을까요? 우리가 게으름뱅이나 궤변가나 주책없는 경박한 여자들과 일생을 보내고 여러 가지 어리석은 말들을 주고받는 것, 그것도 일종의 상자가 아닐까요?”(257쪽)라고 동의를 구하면서 “이제는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 없어요!”라고 결론을 내리자, 부르킨은 이렇게 대꾸할 따름이다. “또 얘기가 빗나갔군요. 이반 이바느이치. 아무튼, 오늘은 잠이나 잡시다.”(258쪽)

 

후기 톨스토이식의 ‘(도덕적) 교화로서의 문학’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체홉은 우리의 삶이 그렇게 한 순간에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때문에 언제나 거창한 이념이 아닌, 삶의 ‘부스러기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한 그가 모든 종류의 일반화, 곧 철학화에 알레르기를 보였던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알레르기를 선택함으로써, 체홉의 문학은 고진이 말하는 ‘개별성-일반성’의 구도를 넘어서 ‘단독성-보편성’의 구도로 진입한다.

‘개별성/일반성’과 ‘단독성/보편성’을 구별하는 고진의 사유가 가장 빛을 발하는 대목은 (내 생각에) 세계종교론에서이다. 고진의 ‘세계종교’와 대별하고 있는 것은 ‘공동체의 종교’인바, 이것은 “인간이 집단이나 공동체로 살아가기 위해 강제되는 다양한 구조/시스템”(241쪽)이다(고진이 이렇듯 종교를 광의의 의미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거의 문화와 등가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 공동체 종교의 대전제는 안(=내부)과 바깥(=외부)의 구분이다. 반면에 이러한 공동체 종교에 대한 비판으로 출현한 세계종교는 더 이상의 외부가 없는 세계, 즉 ‘외부가 없는 세계’로서의 ‘무한한 세계’를 제시하는 종교이다. 이 세계종교의 구호는 두 가지인바, “신을 두려워하라”와 “타자를 사랑하라”가 그것이다.

고진은 이러한 관점을 유대교에 적용함으로써 유대교에 내재해 있는 (모순적인) 두 가지 계기를 ‘모세의 신’과 ‘야훼의 신’으로 구별/분리해낸다(이러한 구별/분리를 매우 힘겨워하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는 지젝과 대조된다). 그에 따르면 야훼의 신은 유대 공동체의 신이며, 반면에 공동체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모세의 신은 세계종교의 신이다. 이 모세의 신은 사람들에게 ‘공동체에서 나가라’라고 이른바 ‘사막에 머물라’고 고한다(259쪽). 그리고 이때의 ‘사막’은 꼭 물리적인 사막이란 의미가 아니며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라는 의미이다.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상업적 공간이고 교통공간이다(고진은 사회를 그러한 교통공간으로 규정한다). 독백이 아닌 대화가 가능한 것은 그러한 (교통)공간, 즉 ‘사막’에서일 뿐이다.

 

 

 

 



 

 

 

세계종교가 ‘사막의 종교’란 의미에서 세계문학 또한 ‘사막의 문학’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것은 모든 공동체를 거부하는 공동체 ‘바깥의 문학’이며,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의 문학’이다. 거꾸로 공동체의 존속과 안녕을 위한 문학은 어떠한 경우에도 세계문학이란 이름에 값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문학은 세계문학이 아니며, 세계문학은 민족문학이 아니다. (올바른)민족문학이 곧 세계문학이 된다고 믿는 것은 우리의 공동체적 편견에 불과하다. 세계문학이란 야훼의 신이 아닌 모세의 신을 섬기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문학의 대척점에서 공동체의 문학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다. 야훼의 신이 번창하듯이 공동체의 문학 또한 번성해왔고 번성해갈 것이다. 이것을 나는 ‘상자 속의 문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상자 속의 문학’은 공동체문학의 다른 이름이고 민족문학의 다른 이름이며, 상업주의 문학의 다른 이름이다(상업주의는 고진이 말하는 ‘상업적 공간’과 무관하다). 이 ‘상자 속의 문학’은 모든 외부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종족과 재산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덧신을 신고 우산을 든다. “항상 색안경을 끼고 털 스웨터를 입은 데다가 귀를 솜을 싸고, 합승마차를 타면 반드시 포장을 치게 한다.” <상자 속의 사나이>에서 벨리코프의 운명이 그러했듯이 ‘상자 속의 문학’이 가장 편하게 들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상자(관) 속이다.

앞에서 나는 체홉의 전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1890년의 사할린 여행이라고 적었다. 고진의 표현을 빌자면, 사할린이야말로 체홉에게서 공동체의 바깥, 즉 ‘사막’이 아니었을까? 그가 ‘(재능 있는) 생계형 작가’에서 진정한 작가로 발돋움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나는 그 ‘사막의 발견’에 있다고 생각한다. 고진에 따르면, 이 ‘사막의 발견’은 데카르트에게서 의심하는 주체, 즉 ‘코기토의 발견’에 맞먹는 것이다. 코기토란 것은 상이한 다수의 공동체의 차이를 지각하는 것이고, 자기가 사는 공동체의 임의성/우연성을 아는 것이다(265쪽). 그런 의미에서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인류학적’ 코기토이며, 체홉이 사할린 섬에서 수행했던 작업 역시 (우연찮게도) 인류학적 현지조사였다.

 



<6호실>에서 6호 병동이 안드레이 예피므이치에게 뜻하는바 또한 ‘사막’에 다름 아닌데, 그곳에서 자신과 전혀 생각이 다른 타자, 즉 다른 언어로 말을 하는 이반 드미트리치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즉 6호실은 그의 삶에서 유일한 교통공간이자 사막이며, 거꾸로 소도시 사람들에게는 ‘공동체’를 위해서 배제되어야 하는 ‘외부’ 공간이다. 병동 수위 니키타의 물리적 폭력은 공동체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구분하는 비가시적 폭력의 가시적 대응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사방이 다 6호실이다. 이것이 러시아다”라고 한 레스코프의 말은 <6호실>에 대한 부적절한 일반화이다. 러시아에는 ‘6호실’이 넘쳐나는 게 아니라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우리에게 6호실을 달라!”고 말해야 하지 않았을까?

해서 겉보기와는 달리, 교통공간으로서의 ‘6호실’은 ‘상자’와는 전혀 다른 의미연관을 갖는다. <상자 속의 사나이>에서 ‘6호실’에 대응하는 것은 (가능할 뻔했던) ‘바렌카와의 결혼’이다. 그것이 공간으로 표시될 수 있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바렌카는 소러시아(=우크라이나)에서 온 타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소러시아어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큰소리로 ‘하하하’ 웃는다(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벨리코프 또한 그녀의 그러한 모습에 반하지만, 그에겐 자신의 ‘상자’를 벗어 던지고 진정 타자를 사랑할 용기가 결여되어 있었다. 때문에, 갑자기 ‘돌발적인 사건’(kolossalischeSkandal)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그는 만들어내기라도 했을 텐데), “그도 결국은 청혼해서 불필요하고 어리석은 결혼이 성립되었을 것”(250쪽)이라는 부르킨의 예상은 부정확해 보인다. 그가 말하는 ‘돌발적인 사건’이란 벨리코프에게서 ‘진정한 사건’을 가로막는 버팀목으로서의 유사-사건이기 때문이다. 벨리코프의 삶에서는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자세하게 읽어본 체홉의 두 작품 <6호실>과 <상자 속의 사나이>는 각각 ‘안드레이 예피므이치-이반 드미트리치’, ‘벨리코프-바렌카’란 고유명 쌍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만남은 (외부적) 편견에 의해서, 그리고 (내부적) 의지 결핍에 의해서 좌절되었다. 하지만, 고유명이 관여한다고 해서 어떤 이야기가 막바로 보편성의 차원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고진이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문학의 보편성이란 건 그것이 (고진의 용어로) ‘공동체’가 아닌, 교통공간으로서의 ‘사회’를 문제삼을 때 얻어진다. 내가 체홉의 문학을 공동체의 문학이 아닌 세계문학의 범주에서 읽고자 하는 것은 그에게서 그러한 ‘사회에의 관심’을 읽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대략적이나마 ‘진짜 문학’으로서의 ‘세계문학’이 무엇인지는 밝혀졌으리라고 본다. 이제 그것을 읽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따져볼 차례이다. 나의 대답은 간단하며 이미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진정한 문학은 우리게 (우물이 아니라) ‘사막’을 보여주는 문학이며 ‘사막’을 체험하게 하는 문학이다. 즉, 그것은 우리에게 인류학적 여정을 가능하게 문학이다. 해서,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임의성/우연성을 자각하게 함과 동시에 세상은 넓다는 건 교육하는 문학이다. 고진이 인용하고 있는 ‘non-Jewish Jew’(비유대적 유대인)이란 표현을 비틀면, 우리로 하여금 ‘non-Korean Korean’(한국인이 아닌 한국인)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진짜 (한국)문학이 가져야 할 몫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문학을 갖고 있는가?

04. 0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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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7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수신문에서 레프 도진의 <형제자매들>에 대한 연극평을 옮겨놓는다. 연극평론가 노이정씨의 글이다.  

교수신문(06. 06. 03) 7시간 30분의 감동…연극 한편의 놀라운 힘 

얼마전 내한한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의 ‘형제자매들’에 쏟아졌던 관심만큼이나 그 여파가 적지 않다. 연극 한편이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깨달음을 줄 수 있을까. 레프 도진이 연출한 이 작품에서 우리는 사라져가고 있는 연극의 힘을 재발견했다. 특히 우리 연극인들에게 반성의 거울이 됐다. 배우들, 극작가들, 연출가들에게 이 연극은 우리가 연극에 담긴 가능성을 얼마나 지레 포기하고 있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이렇게 쉬우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다니!

1985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기 직전 초연해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순회공연을 해온 이 작품은 말리극장의 예술감독으로서 레프 도진의 초기작이다. 스탈린 시대 러시아 북부 아르항겔스크 지역을 배경으로 한 아브라모프의 소설 4부작 중 앞의 3부(‘형제자매들’(1958), ‘두 해 겨울과 세 해 여름’(1968), ‘길과 갈림길’(1978))를 연극화했다. 공식적으로는 2년 간 준비했다지만 1977년 배우들과 함께 아브라모프가 살고 있는 마을을 직접 찾아가 생활하는 등 도진의 고백에 따르면 준비기간은 10년에 이른다.

공연 전 우리가 주목했던 건 7시간 30분(순수 공연시간 5시간 20분)이라는 공연시간이다. 세계적으로 10시간을 넘는 연극 작품도 꽤 있지만 요즘 국내 연극은 2시간을 채 넘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효율로, 속도로 계산하는 시대에 몸으로 대항하는 이 연극은 우리 관객에게도 느린 호흡으로 살 기회를 제공했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동지들이여, 시민들이여, 형제자매들이여!”이라는 스탈린의 연설과 함께 배경에 1940년대 전쟁기록영화를 투사하면서 시작된 연극은 1941~1950년대에 이르는 기간동안 러시아 집단농장 콜호스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대기적으로 보여줬다. 러시아판 인생유전이라 할만하다. 나이가 차지 않아 참전 못한 청년 미하일과 남자들이 없는 마을을 책임지는 콜호즈 여위원장 안피사 등의 이야기가 이 펼쳐지는 제1부 ‘만남과 이별’, 전쟁이 끝나 남자들이 돌아오고 스탈린 독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제2부 ‘길과 갈림길’ 사이에 십 년의 세월이 있다.

연극은 많은 사람들의 운명의 교차를 다룬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역사의 소용돌이에서는 이 위로도 배신으로 변하고 마지막에는 불신과 분열의 분위기가 무대를 지배하게 된다. 농촌에 남은 사람들, 도시로 간 사람들의 삶은 달라지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영광의 인물과 위기의 인물도 끊임없이 생겨난다.

이것이 정해진 스토리대로, 쓰여진 텍스트대로 진행된다면 아마도 매우 지루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은 주요 인물들의 에피소드에 집중돼 그 이야기들 사이에서 긴장과 이완을 체화한다. 보는 관객도 그 흐름에 따라 집중과 이완을 하게 된다. 이것을 도진은 하나의 교향악이라 표현했다. “드라마에는 그 자체에 멜로디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는 이 긴 시간 동안 관객이 편안히 연극을 볼 수 있는 것은 그 자체에 들어있는 음악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마리아 셰브초바는 이 연극의 스타일을 ‘산문의 연극’이라 칭했다. 배우들이 “소설을 온전히 공연하면서” 즉흥적 시도를 통해 “대본의 신체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소설의 강건한 내러티브는 배우들의 몸과 목소리를 통해 응축된다. 전체적으로는 비극적인 톤을 가진 이 작품을 우리가 힘들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은 한 사건이 끝나면 다른 사건을 맞기 위한 여유가 생기고, 비극적 사건들 사이에는 긴 희극적 릴리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아니한가. 



여성과 남성 집단으로 나뉘어 질펀한 음담패설을 나누는 마을 주민들의 집단적 휴식, 씨뿌리기도 축제와 같이 함께 하는 농촌의 전통이 이 연극에 희극적 에너지를 부여한다면, 불행하게도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양이 적어진다. 집단농장의 삶이 곤고해지면서 사람들의 집단성은 분열되고 이기심이 싹트며 연극 첫 막에서 제시되던 카니발리즘적 에너지는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다.

집단성의 해체, 혹은 코러스로 합류해 들어가는 개인에서, 개인으로 해체돼가는 코러스로 변화를 보여주면서 연극이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는 명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머니즘이 살아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단지 어떤 한 시기의 정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정치적 허구와 그 안에서 고통받는 인간 사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고발이다.

이 긴 공연의 모든 사건 속에 뗏목과 장대들이 있다. 10여 년의 삶의 다양한 무대들, 방과 집, 헛간, 목욕탕 등의 사적 공간과 파종과 축제의 무대가 되는 공적 공간들은 뗏목 모양으로 만들어져 무대 중앙에 매달린 단 하나의 나무판으로 만들어진다. 360도로 회전하고 아래위로 오르내리면서 모든 장면의 배경이 되어주는 이 뗏목은 나무로 만들어진 등장인물과도 같다. 무대를 감싸고 선 20개의 장대들은 숲인 듯 감옥인 듯 이곳을 탈출하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에워싼다.

이 공연을 보고 아무도 이것이 새롭다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이 공연은 ‘새로움’이 아니라 ‘낡음’을 강조한다. 목재로만 제작된 무대, 배우의 연기와 제스처만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들, 모든 관객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삶의 원초성에 대한 대사들. 그런데 왜 이 연극은 낡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가.

이 연극이 처음으로 서유럽에 소개될 때 서유럽 관객들도 연극에 놀랐다. 1988년 파리 가을축제에 초청된 이 공연을 보고 현 보비니 극장 예술감독인 파트릭 소미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건 우리가 연극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하는 것들의 종합이잖아. 코러스적 성격, 준 자연주의성, 서사적이고 교훈적인 인물. 이건 이젠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것들인데.” 그런데 도진과 말리극장의 연극들은 계속 서유럽에 초청됐고 인정받았다. 1992년에 초청된 ‘가우데아무스’(2001년 내한)와 1994년의 ‘폐소공포증’은 유럽의 새로운 연극 현상인 ‘코러스성’(등장인물들이 코러스가 되는 현상)의 문제를 무대로 회귀시킨 작품으로 인정되기도 했다. 



2002년 유럽연극상을 수상한 도진은 인터뷰에서 그의 연극의 근원을 스승과 제자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우리사회가 진보의 행렬 속에서, 새로운 지식습득의 방법 속에서 상실한 것 중 하나로 그는 ‘전통적 가르침’을 들었다. 피와 살이 흐르는 선생이 인터넷과 컴퓨터로 대체되는 상황. 그는 선생은 제자들에게 사물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사람이며 제자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 말하면서 유년기부터 자신의 삶을 만들어온 스승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첫 연극 스승은 두브로빈이다. 메이어홀드의 제자였으나 소련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연극을 만드는 것이 금지되자 전문적 활동을 포기하고 어린이들과 작업했던 그의 스승. 도진은 12살 때 수영강좌가 마감돼 연극을 하게 됐고, 그를 만났다. 도진이 말하는 두브로빈의 수업은 다음과 같다. 스승은 자기 주위에 아이들을 둘러앉게 하고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아이들은 아무거나 물었고 그는 마치 랍비와 같이 모든 것에 대해 설명했다. 도진의 회고에 따르면 그때부터 그에게 극장은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하는 장소가 되었다 한다. 이 선생에게서 도진은 즉흥의 방법, 낡은 텍스트를 바꾸는 기적을 배웠다.

피터 브룩의 러시아 순회 공연과 조르지오 스트렐러 작품 ‘벚꽃동산’의 단 한 장의 사진에 자신의 상상력이 불타올랐다고 고백하는 도진은 실상 가장 중요한 훈련은 제자들과 수업이라고 단언했다. 제자들은 자신의 젊음을 이야기하여 선생을 늙지 않게 한다. 그리고 선생은 같은 것을 다른 세대에게 반복해서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워져야 한다.

이 이야기에 새로운 것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거기엔 다만 우리에게 잊혀진 것이 있다. 가르침과 배움에 관한, 인간과 연극의 진실에 관한 오랜 믿음이.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생존할 수 없다고 느끼는 이 시대에 그의 연극은 사람 사이의 교류에 대한 오랜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아리안느 므누슈킨이나 피터 브룩, 오태석 등 우리가 아는 연극의 대가들은 모두 이 믿음에서 연극을 시작한다.(노이정/ 연극평론가) 

06. 06.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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