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MIFF)가 오는 23일부터 7월 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다(칸느영화제 바로 다음이다. 모스크바영화제는 식장에 파랑 카페트를 깐다. 지난번 칸느영화제에서는 '러시아의 날' 행사도 개최됐었다). 점심을 먹고 재작년 이맘때 쓴 모스크바 통신을 잠시 읽어보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영화제 홈피에 들어가보고 알게 된 것이다. 영화제의 약력을 살펴보니 1935년에 처음 개최된 이 영화제는 국제영화제로선 베니스 영화제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59년부터 1995년까지는 격년에 한번씩 열리다가 1995년 이후로는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는 저명한 영화감독 니키타 미할코프가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데(사진은 2001년 행사장에서 잭 니콜슨과 포옹하고 있는 미할코프), 올해도 그런지는 모르겠다(변동사항이 있는 듯하다).

해마다 메인행사가 개최되던 극장도 이번엔 바뀌었다는데(원래는 푸슈킨거리의 러시아극장(사진)이 주극장이었다), 노브이 아르바트 거리의 멀티플렉스 '10월(Oktyabr)'이 그것이다. 지난해 9월 개관한 이 극장은 9개의 상영관과 3,174석의 객석을 갖고 있다. 아래는 노브이 아르바트 거리. 극장은 24번지에 있다고 한다.

대충 그렇다. 어차피 구경도 가지 못할 영화제에 대해서 주절거리는 것도 속없다. 대신에 재작년에 구경했던 모스크바 영화제 얘기를 약간 덧붙이도록 한다(그때 모스크바는 오늘처럼 부슬비가 자주 내리던 날씨였다). 2004년 모스크바 영화제는 6월 18일에 개막된바, 그맘때 쓴 통신문의 한 대목을 옮겨오려는 것(그때 본 영화들 얘기는 나중에 따로 다루겠다). 주로 미국의 영화감독 퀜틴 타란티노와 프랑스의 여배우 소피 마르소에 대한 것이다.

오늘 저녁에 모스크바영화제의 전야제가 열린다. 26일까지인가가 영화제 기간인데, 2-3일 전부터 세계영화계의 몇몇 명사들이 모스크바를 찾고 있다.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은 퀜틴 타란티노인바, 그의 <킬빌2>가 이번에 모스크바에서는 개봉됐다. 나는 이 영화의 복사본 비디오CD를 3,200원 주고 사서 보았는데, 이미 두어 달 이전부터 이 복사본 <킬빌2>는 비디오/음반 가게마다 깔려 있었다(한국은 모스크바보다 영화시장이 크니까 이미 개봉했을 걸로 짐작된다). 나는 <킬빌1>, <킬빌2>를 모두 모스크바에 와서 봤는데, 타란티노판 이 ‘무협판타지’의 주제는 다소 고전적인 ‘엄마 되기의 어려움’이다(이하의 내용은 일부 스포일러일 가능성이 있음). 그런 의미에서 ‘불량소녀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교육용’ 영화.

 

 

 



아니, ‘엄마 되기’보다는 ‘엄마로 태어나기’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첫 아이를 낳을 때 산모들은 아이를 낳으면서 동시에 ‘엄마’를 낳는다). 영화에서 무협 판타지는 ‘산고(産苦)’에 대응하는바, 그때 태어나는 것은 ‘아이’라기보다는 ‘엄마’이다. 우마 서먼은 자신이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에, 즉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에 무자비한 복수를 결심/결행하게 되며, 결말에서는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에 감격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엄마가 되기 위한 조건이 ‘킬빌’이라는 것. 여기서 ‘빌’은 (아이의) ‘아버지’이니까, ‘킬빌’은 일종의 ‘부친살해’인 셈이다. 물론 이 부친살해는 전도돼 있다(지젝식으로 말하면, ‘트위스트’돼 있다).

이 영화에서의 부친살해 욕망은 아이가 엄마에 대한 애정 때문에 아버지에 대해 갖게 되는 욕망이 아니라, 엄마가 아이에 대한 애정 때문에 (아이의) 아버지에게 갖게 되는 욕망이다. 영화에서 우마 서먼은 그 욕망을 실행한다. 왜 ‘아버지’가 제거되어야 하는가? ‘나쁜’ 아버지, 혹은 아버지로서의 자격이 없어 보이는 ‘부족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형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킬빌>은 내러티브상으론 포스트모더니즘 영화가 아니라, 모더니즘 영화이다. 지젝이 <히치콕>의 ‘모더니즘’에 대해서 지적한바, “(악마적, 외설적인) 부성적 인물에 의해 트라우마를 입은 여주인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히치콕>, 16쪽).



다른 한편으로, <킬빌>의 이러한 주제는 타란티노식 영화의 비밀을 엿보게 한다. 즉 타란티노의 트라우마는 무엇일까, 라는 것. 타란티노가 ‘작가’라면(그러니까 그의 ‘유희정신’에 어떤 ‘진정성’이 있는 걸로 가정한다면), 아마도 그에겐 ‘아버지’가 결여돼 있거나, 적어도 ‘아버지의 이름’이 결여돼 있다. 이른바, ‘부성 콤플렉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의 전매특허적인 패러디 혹은 패스티쉬(=짜집기) 스타일은 그러한 결여가 낳은 ‘자유’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방황의 산물이다. 그는 ‘아버지’를 부정하면서(그것이 스타일의 유희를 낳는다), 동시에 그리워한다(그것이 스타일에 대한 오마주를 낳는다).

러시아의 한 비평가는 타란티노에 대해, ‘비상한 재능’이 아니라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감독(이라기보다는 비디오가게 점원)이라고 평한바 있는데, 그때 ‘기억’의 대상이 되는 것은, 즉 그 ‘기억’의 ‘주인-기표’는 ‘아버지’이다. 그 ‘아버지’가 부재하는 한 그는 계속 ‘악동’으로 남을 것이다(그러한 타란티노와 비교해볼 만한 또 다른 ‘악동’이 페도르 알모도바르이다).

어쨌든 <킬빌>의 타란티노는 현재 모스크바에 있지만, 히로인 우마 서먼과 대릴 한나는 동행하지 않았는데, 오늘자 <이즈베스찌야>에는 이 두 여배우와의 현지 인터뷰가 실렸다. 어제는 ‘정치적 활동가’이기도 한 수잔 서랜든과의 인터뷰가 실렸고(흥미로운 부분을 발췌해볼까 했지만, 그만두기로 한다. ‘한 마디’가 또 어디로 샐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때의 우상이었던 프랑스의 여배우 소피 마르소도 어제 러시아를 방문했다. 모스크바 영화제와는 무관하게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한 프랑스 귀금속 전시회의 ‘얼굴’로 온 것인데, 그녀는 이미 여러 차례 러시아를 다녀간 바 있다. 하긴, 영화 <안나 카레니나>의 주연도 맡았었으니까 인터뷰대로 러시아는 익숙하겠다. 영화배우에다가 감독으로도 근래에 데뷔했고,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이 여배우도 어제 TV인터뷰를 보니까 어느덧 ‘나이’가 완연했다(내 기억에 그녀는 나보다 한 살 더 많다).

 

오늘자 <이스베스찌야>에 실린 인터뷰를 보니까, 그녀가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일은 정원을 산책하거나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다. 가장 두려워하는 건, 아무일 없이 쉬는 것. 그러니까 아무런 할일이 없으면 불안해 하는 타입인 듯하다(‘할일’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대중의 주목, 혹은 시선일 것이다).

얼마 전에는 그녀가 장 폴 벨몽도(한때 프랑스 영화는 알랭 들롱의 영화와 벨몽도의 영화로 나뉘었다)와 함께 주연한 영화가 이곳 TV에 방송됐었는데(지난달에는 <라붐> 시리즈도 방영됐다), 내가 거의 20년 전에 본 영화였다. 고등학교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기간에만 유일하게 일찍 집에 돌아갈 수 있었는데, 그런 기간에 나는 영화를 보러 다니곤 했다. 바로 그렇게 본 영화 중 하나. 그런데, 내가 놀라는 것은, 정작 그 20년이란 시간의 경과가 아니라, 그 20년의 시간에 대한 ‘감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냉담한 것인지, 관대한 것인지, 혹은 아직 젊은 것인지, 너무 늙어버린 것인지 잘 가늠이 되질 않는다...

04. 06. 18/ 06. 06. 14.

P.S.(*타란티노의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도 같이 옮겨놓는다.) 지난 금요일(18일)에 타란티노의 <킬빌2>가 공식 개봉됐고, 어제(19일) <이즈베스찌야>에는 타란티노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인터뷰어는 칸느 영화제 얘기를 할 때 언급됐었는데, 마리야 쿱쉬노바이다. 짧은 인터뷰에서 주요 질문은 세 가지였는데, 첫번째 질문은 (한 편의 영화를 찍은 다음에 둘로 나눈 게 아니라) 처음부터 <킬빌>을 두 편의 영화로 따로 찍을 생각을 했느냐는 것. 타란티노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다만, 문제가 됐던 건, 시나리오였는데, 원래는 한편의 영화를 목표로 씌어졌다는 것. 타란티노는 그걸 도저히 90분에 다 집어넣을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빼놓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던 차에, 제작자가 둘로 나누는 게 어떨까라는 제안을 해서 “만세!”를 불렀다는 것.

두번째 질문은 <킬빌3>도 나오느냐는 것. 이에 관해서는 흥미를 느낄 만한 팬들도 있을 듯한데, 타란티노의 대답은 역시 그렇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킬빌1>을 유심히 본 관객이라면, 대충 <킬빌3>가 어떤 내용이 될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일 첫장면에서 우마 서먼이 블랙맘바와 결투를 벌일 때 블랙맘바의 유치원생 딸(니키)이 끼어든다. 우마 서먼이 결국은 맘바를 죽이게 되는데, 그 장면을 본 니키에게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복수하러 오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기다리겠다고. 그게 <킬빌3>다. 그런데, 어린 니키가 엄마의 복수라도 하려면 좀 커줘야 될 게 아닌가? 그래서, 타란티노의 대답은 <킬빌3>는 한 15년쯤 후에 나올 거라는 것이다. 그는 니키가 커가는 과정을 미리 찍어둘 예정으로 있다.(*아래 사진은 어린시절의 타란티노.)



그렇게 되면, 복수는 끝이 없는 게 아닐까?(우마 서먼도 딸이 있으니.) 타란티노의 대답은 그럴 수도 있지만, ‘타란티노의 세계’(관객이 이해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에서는 이게 완결편이 될 거라고. 그래서 <킬빌>은 아마도 타란티노판 ‘복수의 3부작’이 될 것이다(<킬빌2>에는 “복수는 곧 사랑”이라는 대사도 있으니까, ‘사랑의 3부작’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리고 이 ‘복수의 3부작’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박찬욱이다. 쿱쉬노바이 세번째 질문은 그에 관한 것이다. 이 대목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으므로 번역하겠다.



-(쿱쉬노바) 칸느에서 당신은 한국영화 <올드보이>에 표를 던지셨죠. 똑같이 복수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내용은 서로 다릅니다. <올드보이>가 비극적인 복수자를 다루고 있다면, 당신의 영화에서는 복수도 (자기)만족일 뿐인데요.

 

 

 

 

-(타란티노) <올드보이>는 영화제에서 아주 뛰어난 영화였죠. 저로선 이 영화가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진짜 걸작이라고 생각돼요. 영화는 한국영화를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문화 현상으로 변모시키고 있습니다. 복수에 대해서는… 당신이 내용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주제에 관해 두 편의 영화를 찍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Sympathy for Mr. Vengeance)>과 <올드보이>. 그리고 지금은 세번째 영화를 찍을 건데, 이 세 편의 영화에서 그는 복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각기 다른 결론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복수가 사랑으로 손에 손을 맞잡는 게 아니라면, 해석의 여지는 활짝 열려 있어요. 비극적인 복수자를 보여줄 수도 있고, 복수의 유익함, 즉 정의의 승리를 보여줄 수도 있죠. 또 복수자가 느끼는 카타르시스나 환희, 만족감을 보여줄 수도 있죠.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 역시 복수에 대한 영화라는 건 나로선 처음 듣는 얘기인데(*다시 읽으니 코믹하다. 우리는 그가 무얼 어떻게 찍었는지 알고 있다!), 타란티노의 말인 만큼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현재 어느 정도 진행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게 된 만큼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사실, 객지에서 이런 류의 기사나 인터뷰를 읽는 일은 ‘만족감’을 준다. 그 만족감은 TV에서 한국기업들의 광고들을 볼 때 느끼는 ‘대견함’과는 차원이 좀 다르다. “너 돈 좀 있구나”와 “너 뭘 좀 아는구나”의 차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요즘은 타란티노가 외교관 열 명이 달려들어도 못할 일들을 거뜬히 해내고 있다(한국 외교관이 <이즈베스찌야>와 인터뷰 할일이 있겠는가?).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문화현상”이라!..(*아래 사진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무덤을 찾은 타란티노. 파스테르나크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한 사람이라고. 타란티노가 좀더 그럴 듯하게 보이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