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01 | 10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계속 '러시아문화의 이해' 시리즈이다. 예전에 한국인이 러시아에 대해 갖고 있는 갖고 있는 상투형, 상투적인 이미 지 혹은 고정관념 세 가지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걸 좀 보완하겠다. 일단 모스크바 통신의 한 대목을 옮겨놓겠다.

 

 

 

 

한국인이 러시아에 대해 갖고 있는 상투적인 이미지 혹은 관념 세 가지는 크레믈린, 보드카, 그리고 러시아 미인들이다. 그래서 보통 한국인들의 모스크바 관광코스는 크레믈린의 붉은 광장에 가서 사진 한 장 찍고, 바로 앞 볼쇼이극장에서 발레공연을 보고, 한국 가라오케에서 러시아 여성들의 접대를 받으며 보드카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한편으로 관광객들이 선물로 가장 많이 사 가는 것도 보드카와 러시아 민속인형인 마트루슈카이다. 이미지들을 나열해 보면, 먼저 크레믈린.  

그리고, 볼쇼이극장에서의 공연 관람. 레퍼토리는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이면 금상첨화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리고, 보드카. 한국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보드카인 '스탄다르트', 그리고 한국인이 상상할 법한 러시아 여성(만지지는 마시길).

 

지난 학기(2004년 1학기) 수업시간에 그런 얘기를 했더니, 세 번째에 대해서는 담당 교수나 동료 학생들(독일 학생들이었는데) 아무도 동의를 하지 않았다(그걸로 봐서, 러시아 여성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념은 일종의 판타지이다. 이스라엘에도 그런 판타지가 있는 모양인데, 며칠 전에는 러시아여성들은 이스라엘 접객업소에 팔아넘긴 업자가 구속되기도 했다). 그들이 ‘미인들’의 나라로 꼽은 건 프랑스나 스페인 등이었다(한편으로 러시아 남자들은 동양에서 온 ‘평범한’ 여학생들을 예쁘다며 추근거리기도 한다). 물론 최근에는 늘씬한 테니스 스타 마리야 샤라포바가 한국인이 상상하는 러시아 여성의 '표준치'일는지도 모르겠다.

Мария ШараповаМария Шарапова

물론 러시아 여자들이 평균적으로 (같은 서양이라도) 미국 여자들보다는 아름다운 편이다. 그건 키가 크고, 눈이 크고(속눈썹이 유난히 길다), 콧대가 높으니까(거기에다 더 최악인 건 지성미마저 풍길 때이다), 그런 걸 미의 기준으로 갖고 있는 한국인의 안목에서는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 여성들 대부분이 미인축에 드는 것은 아니며(어느 나라, 어느 인종이건 상위 5% 정도는 다 아름답다), 그나마 요즘은 미인들의 대부분이 (1)해외에 나가 있거나 (2)벤츠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두 가지 유력한 설이다) 길거리에서 ‘아찔한’ 미인들과 마주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전혀 없지만 않을 따름이다.

그렇다고 그런 미인들과 마주치면 또 어쩔 텐가? 당신은 ‘아름다움’을 견뎌낼 수 있는가?!(추(醜)만이 우리를 고문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 우리가 더 견딜 만한 건 ‘넓게 보아’ 아름다운 쪽 정도이다(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그 정도에 만족할 일이며, 혹 당신이 러시아에 온다면 엉뚱한 기대는 하지 말 일이다. 뭐라, 결혼을 하겠다고? 영화 <버스데이 걸>(2001)을 따라서 인터넷으로 주문해 보시길. 당신을 수갑 채워줄 러시아 여인이 배달될지도 모른다. 당신의 판타지 속에서...

06. 03. 07.

P.S. 본문에서 제시한 상투형은 아무래도 '남성 버전'인 듯하다. 여성 버전을 잠시 상상해보면, 시베리아의 자작나무숲은 어떤가(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를 참조할 수 있겠다). 혹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실제로 타본 사람은 절대로 아무도 권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름날의 백야. 사진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거기에 페테르부르크의 여름 정원.

끝으로 '삶에 혹독함에 굳어버린 얼굴들'. 일리야 레핀의 '볼가강의 배끄는 사람들'(1873).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woshot 2006-03-0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고정관념에 덧붙여 "그토록 아름답던 여인"이 결혼하면 "푹 퍼진다"가 있었드랬습니다..-.-;;

로쟈 2006-03-07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토록 아름답던 여인'이 러시아 여성인가요?

비로그인 2006-03-07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보고 호기심에 열어봤는데, 제가 상상하는 러시아는 없네요. 전 모래황무지에 칼바람만 살고 있는 벌판, 그 위를 지나고 있는 기차칸 안에 있는 추위나 기타 삶의 혹독함에 굳어버린 사람의 얼굴, 그리고 피아노가 딱 떠오르는데.. 제가 여자라서 그런가요?.. 보드카도, 러시아 미녀도 떠오르지 않을 걸 보니...ㅎㅎ 글 잘 읽었습니다.^^ 러시아 너무 가보고 싶어요~

로쟈 2006-03-07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 버전도 더 '상상'해보았습니다. 한데, '삶의 혹독함에 굳어버린 사람의 얼굴'은 러시아만의 것은 아닌 듯한데요.^^

twoshot 2006-03-08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토록 아름답던 여인'이 러시아 여성만은 아니겠으나 저의 댓글은 러시아여성을 전제한 것이었습니다. 중국동포인 제 친구의 말도 그렇고 결혼 전과 후과 많이 다르다는 얘기였읍니다...쿨럭...

로쟈 2006-03-08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 전과 후과 많이 다르다"도 러시아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겠네요.^^

로즈마리 2006-03-13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하면...왠지...도스토예프스키만 생각나는데...ㅠㅠ 그리고 처절한 가난의 냄새...그게 제가 가진 선입견? 인듯
 

'러시아 문화의 이해'란 과목의 강의 첫날이었다. 이번에 처음 가보는 캠퍼스인지라 조금 일찍 나섰어야 했지만 예의 늑장을 좀 부리다가 5분 지각하면서 강의실에 들어섰다. 생각보다는 많은 학생들이 앉아 있었는데 아마도 연휴에 지각으로 수강신청한 학생들이 좀 되었던 모양이다. 처음 맡은 과목은 아니어서 수업준비에 많은 공력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제대로 하자면 한 주에 책 한권 분량은 읽어야 한다. 하지만, 딜레마스러운 건 그렇게 나 자신을 업데이트하는 게 수강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

 

 

 

 

가령 러시아 사학자인 리처드 파이프스 교수의 'Russian under the Old Regime'(1974) 같은 고전적인 역사서도 읽고는 싶지만(나는 책상에 놓여 있는 이 책의 머리말만 읽는다. 한편 이 책은 재작년에 러시아어본도 나왔다. 한국어본은?), 읽을 시간을 내지 못한다(방학때 뭐했느냐고? 방학때 강사료가 나오나? 나는 '무임금 무노동'의 원칙을 지킨다). 교양 교재로 추천하기에는 이래저래 너무 방대한, 하지만 경탄할 만한 저작 <나타샤 댄스>(이카루스미디어, 2005)에서 저자 파이지스가 주제별로 추천하고 있는 도서들을 일람하면서 또 10여 권 이상의 책들을 메모해 두었지만, 그걸 다 챙기다가는 한 달 강사료가 날아갈 것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건강에 좋은 건 그냥 참아두는 것이다. 적당히 안 읽고 강의하기.

한데, 그런 건 과목 자체의 요구이기도 하다. 교양과목은 '인포테인먼트' 성격이 강해서 좀 '진지한' 10% 정도의 학생을 제외하면 적당한 지식과 적당한 재미를 적당히 (얼)버무려야 '효과'를 볼 수 있다(실상 강의명이 '러시아 문학의 이해'가 아니라 '러시아 문화의 이해'라는 것 자체가 이미 그러한 '에누리'를 전제한다. 전공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내가 강의하는, 강의해야 하는 내용을 내가 학생일 때는 들어본 적이 없다!). '강사가 아는 게 많다'는 게 이른바 '좋은 강의'의 한 필요조건일 수는 있겠지만, 충분조건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게다가 '재미'는 애드립으로만 다 충당되는 것도 아니어서(직업이 개그맨이 아닌 이상) 어느 정도는 '준비'도 해야 한다. 그 '어느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첫 대면 강의의 목적 중 하나이다. 이것이 그간의 강사 '짬밥'으로 터득한 바이지만, 이러한 노하우로도 수위의 강의평가를 얻어내지 못하는 걸 보면 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분들이 계신 것(이 분들은 언제 은퇴하시는가?).    

강의 자료로 쓸 만한 자투리들을 가끔 정리해놓으려고 하는데, '서비스' 문제에 대한 건 작년 연초에 쓴 모스크바 통신에서 따온 것이다. '현장감'은 좀 있으나 이미 '지나간 얘기'이기도 해서 멋쩍긴 하지만, 멋쩍은 일이라고 가려온 처지도 아니므로 그냥 밀어붙이기로 한다.   

2005년 새해가 밝았다. 어제의 일이다. 러시아는 어제부터 1월 9일까지가 공식 휴일이다. 연말에 개정된 법에 따라 그렇게 됐는데, 덕분에 다음 한 주 내내 생활이 불편할 듯하다. 일단 휴일이면 기숙사가 있는 본관 건물의 중앙통로가를 막아놓는 탓에 전철역이건 인터넷카페건 밖에 좀 나가자면 400미터쯤을 돌아나가야 한다. 게다가 인문대학 구내의 PC방이 놀기 때문에 디스켓을 사용하려면 카페막스(인터넷카페)에 가서 매번 10루블(400원)을 더 내야 한다(*사진은 내가 주로 이용했던 대학구내 카페막스의 카운터. 오른쪽은 카페막스의 로고이다).

10시간짜리 인터넷 이용료는 이미 지난달에 400루블에서 550루블로 대폭 올랐다(러시아는 인터넷 이용료가 더 비싸지는 드문 나라일 것이다). 그렇다고 1시간 단위로 끊자니 최고 90루블까지 하므로 (왜 이렇게 비싸냐고 따지는 대신에) 결국은 울며 겨자먹기로 550루블을 주고 끊는 수밖에 없다(10시간을 한달 이내에 써야 한다).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이라는 카페막스도 12월 31일에는 문을 닫았고, 듣기에 어제도 단축영업을 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연초인바, 다시금 새겨둘 것은 “착취가 없으면 서비스도 없다”는 문구이다(이건 거꾸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서비스가 없으면 착취도 없다.” 이걸 운동주의적인 문구로 바꾸면, “서비스를 없애야만 착취도 없어진다”).

자본주의화(민영화) 이후에 러시아 또한 ‘서비스(=착취) 없는 사회’에서 ‘서비스(=착취) 사회’로 이행해가고 있는바, 아직은 초보적인 구석이 많아서 어느 상점이나 식당에서건 불친절은 예사로 경험하는 일이다(그러니까 아직도 ‘서비스’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가 많다). 이런 러시아와는 반대로 ‘서비스 사회’에서 ‘서비스 없는 사회’로 얼마간 거꾸로 이행해간 나라들도 있으니 영국과 프랑스 같은 서유럽의 ‘선진국’들이다(서로 비슷하게 ‘불편한’ 나라인 영국과 러시아는 둘다 석유 수출로 먹고 산다는 점에서도 처지가 닮았다).

지난달에, (인구가 고작 100만명임에도) 영국의 제2도시라는 버밍엄(버밍검?)에 유학중인 후배가 모스크바에 잠깐 들러서 전해준 얘기에 따르면, 멀쩡한 지하철이 예고도 없이 안 다니고, 버스 기사가 운전중에 손님들에게 그냥 다 내리라고 요구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일반 시민들은 거기에 익숙해서인지 곧바로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다고 한다(후배의 말이 프랑스는 이런 영국보다도 한술 더 뜬다고). 일반 교통요금이 모스크바보다 10배는 더 비싼 도시에서(전철요금이 모스크바가 400원인 데 반해, 버밍엄은 4,000원이다, 그것도 한 구간이) 그런 불편을 겪으면서도 불평없이 살아간다는 건 우리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그런 식으로 서비스가 없는/부족한 만큼 착취도 없을 것이며, 따라서 그만큼 ‘인간적’일 거라는 것. 적어도 ‘인간적인 사회’를 ‘착취없는 사회’로 우리가 정의하는 한에서는 말이다.

‘서비스’란 무엇인가? 외래어로서 이미 국어사전에도 올라가 있는 이 말의 사전적 정의는 먼저, “생산된 재화를 운반/배급하거나 생산/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함”이란 뜻이다. 서비스 없는 사회, 즉 (보다) ‘인간적인 사회’는 그런 재화나 노무를 제때에(혹은 아예) 배급/제공하지 않는 사회이다(생산자/노동자에겐 쉴 권리가 있다!). 당연히 ‘인간적인 사회’는 ‘없는 게 많은 사회’이며 ‘줄이 긴 사회’이다(‘인간적인 사회’가 고려하는 것은 인간의 필요(need)이지 욕망(desire)이 아니다). 부족한 재화나 노무를 배급/제공받기 위해서 ‘평등한’ 인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줄을 서는 것밖에 없다. 이 ‘줄 문화’를 전면적으로 다룬 문학작품이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작가의 한 사람인 소로킨의 <줄>이다(우리말로는 <세계의 문학>에 번역된바 있는데, 단행본으로는 출간되지 않았다).



모스크바는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아직도 러시아에는 (상점에서의) 줄서기 문화가 남아있으며(불과 10년전만 하더라도 모스크바에서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기 위해서는 1시간 이상씩 줄을 서야 했다. 그때 유학왔던 친구는 그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한번에 3-4인분씩 폭식을 하곤 했었다. 하긴 지금도 맥도널드에 가면 10-15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2004년판 회화교재에조차도 ‘상점회화’의 핵심으로 ‘줄서기’가 다루어진다. 가령, “당신이 (이 줄의) 마지막 사람입니까?”라거나 “제 자리 좀 맡아주세요” 같은 표현들이 그런 것들이다. 당신 생각에 이 (인간적인) ‘줄 서기’가 아주 단순한 것 같지만, 사실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왜냐하면, 자기 자리를 맡아달라고 해놓고 한번에 여러 군데에 줄을 서기 때문이다(물건을 한 종류만 사는 게 아니므로).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줄을 짧게 서기 위해서는 절묘한 시간 계산과 순발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오랜 줄 문화의 경험 때문인지 러시아 사람들은 웬만한 줄서기에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않는 듯하지만, 이런 걸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은 저절로 욕이 나온다. 가령, 공항 입국장에서부터 짐을 들고 2시간씩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모스크바 국제공항에서의 그런 모습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하는데(거기에 익숙한 사람은 1시간내로 입국장을 빠져나올 경우 ‘만세!’를 부른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국제공항이야말로 가장 ‘사회주의적’이며, 가장 ‘인간적’이라고 할 만하다. 일반적으론, 그걸 뭉뚱그려서 ‘러시아적’이라고도 하지만, 그건 불충분한 일반화이다. 요는 그러한 ‘인간적인’ 태도의 전제인바, 그것은 “(같은 인간으로서) 내가 왜 굳이 당신한테 애써 봉사해야 하는가?”이다(“당신이 그렇게 잘났나?”). 인간은 평등하지 않은가?!

거기서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이 ‘서비스’의 두번째 사전적 의미인바, 그것은 “개인적으로 남을 위하여 돕거나 시중을 듦”을 뜻한다. 이걸 달리 ‘봉사’ 혹은 ‘접대’라고 말한다. ‘봉사’란 ‘접대’를 순화시킨 말인바, 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서비스가 없는 사회’로서의 ‘인간적인 사회’란 ‘접대가 없는 사회’이다. 그리고 그와는 대척점에 놓여 있는 ‘비인간적인 사회’, 돈만 있으면 ‘서비스 만땅’인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다. 예컨대, ‘돈있는’ VIP는 모스크바 공항도 귀빈실을 통해서 바로 빠져 나간다. ‘자본주의 러시아’에서 2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건 ‘돈없는 사람들’이지 자본가들이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기본 원료는 봉사료/접대료이다(그래서 ‘봉사비/접대비’가 된다). “난 네가 돈을 주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가 자본주의의 캐치프레이즈이다. 이건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이현세 만화의 구호이자(‘까치’의 대사) 이장호의 <공포의 외인구단> 주제가를 패러프레이즈한 것인데, 그러한 패러프레이즈가 암시하는 바는 이 둘이 동형적이라는 것이다. 둘 모두에 걸려 있는 것은 ‘욕망(desire)’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욕망의 무한성에 대응하는 지표이다(때문에 “돈을 그 정도 벌었으면 됐지”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동형성을 간과하는 태도가 ‘순진한 태도’이며, ‘소녀적 태도’이다(즉,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에 감동하는 태도가 ‘소녀적 태도’인바, 물론 이것은 곧 ‘아줌마적 태도’로 전화하게 된다. “돈이나 벌어오면서 그런 소리를 해!”).

자본주의의 기본 원료가 봉사/접대인 한에서, ‘접대 없는 자본주의’란 말은 ‘인간적인 자본주의’만큼이나 모순형용이다(‘앙꼬 없는 찐빵’이란 얘기다). 혹은 (지젝이 즐겨 인용하는) ‘카페인 없는 커피’나 ‘섹스 없는 섹스’ ‘아편 없는 아편’ 정도쯤 될까? 그렇다면, 접대의 한 유형이자 대표종(種)으로서의 성접대의 경우는 어떤가? 몇 달 전부터 한국에서는 (새로운) 성매매 방지법이 발효/적용 중인 듯한데, 좌파라면, (개량주의적/타협적 좌파가 아니라) 적어도 자본주의의 타파만이 인간적인 사회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근본주의적/비타협적 좌파라면 그러한 법안에 대해 반대했어야 하지 않을까? ‘생존권’을 주장하는 접대여성들(성노동자들)이나 포주들과는 좀 다른 이유에서 말이다.


 

 


지젝이 주장하는바, “우리가 레닌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이다. 즉 진심으로 빈민의 곤경을 동정하는 어떤 선한 신부를 동료 볼셰비키가 칭찬하는 것을 들었을 때의 레닌처럼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닌은 볼셰비키가 필요로 하는 것은 술에 취해 농민들에게서 부족한 자원의 마지막 한 조각마저도 강탈하고 그들의 아내들을 강간하는 신부들이라고 논파했다. 그들은 신부가 객관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해 농민들로 하여금 분명히 자각하도록 한 반면, ‘선한’ 신부들을 그들의 통찰을 어지럽혔다는 것이다.”(<이라크>, 198쪽)

조금 번안해서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타파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연말 보너스를 챙겨주는) ‘선한’ 자본가들이 아니라 (보너스는커녕 월급까지도 떼먹는) ‘악독한/악랄한’ 자본가들이다(다행히도/불행히도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자본가들이야말로 노동자들로 하여금 정말로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분명히 자각하도록” 할 것이 아닌가? 그런 사정은 성접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의 표본으로서의, 성의 무한 상품화이고 성노동자에 대한 악독한/악랄한 착취이다(군산에서인가 이리에서인가 시범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그러한 착취만이 전선(戰線)을 교란시키지 않고 분명하게 해줄 것이기에.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지젝은 금융 투기와 인도주의적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소로스 같은 인물들은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시장 폭리자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훨씬 더 위험하다”(같은 쪽)고 말하는 것이다(아이러니컬한 것은 헝가리 출신이자 칼 포퍼의 제자임을 자임하는 그 소로스가 하는 ‘인도주의적 활동’에 구 공산권 국가들의 “문화적이고 민주적인 활동을 위한” 재정지원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고, 러시아에서 출간된 지젝의 책들도, 전부는 아니지만, 이 소로스 펀드의 지원하에 출간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지젝이 지난 미대선에서 부시가 당선된 사실에 전혀 유감스러워하지 않은 것은 아주 당연하다(오히려 내심으론 아주 반가워했을 법하다).

그러한 레닌주의적 정신에 충실할 때, 이라크 파병(연장)에 반대하는 것은 개량주의적 좌파들, 혹은 얼치기 좌파들의 행태이다(물론 ‘반대하는 척’ 할 수는 있다). 오히려 적극 찬성해야 마땅하다(그래야지 ‘자본주의와의 전쟁’도 빨리 끝장을 볼 게 아닌가?). 즉, 친미 수구주의자들과 같이 행동해야 하는 것. 그건 성매매 방지법안을 놓고서도 마찬가지이다. 포주들과 같이 행동해야 하는 것. 비록 전혀 다른 이유/계산에서이긴 하지만.(해방공간에서 제출된 한반도의 신탁통치안에 대해서도 ‘반탁’에서 돌연 ‘친탁’으로 돌아선 공산주의자들의 행태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적과의 동침’은 레닌주의이건 마오주의이건 간에 A급 좌파의 기본 ‘전술’이다(수단으로서의 모든 ‘전술’을 정당화하는 건 목적으로서의 ‘전략’이다).



반면에, 성매매/성접대에 반대함으로써 ‘접대 없는 자본주의’를 희구하는 태도는 ‘인간적인 자본주의’, 혹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가능성을 용인하는 태도이다(‘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가 불가능한 만큼만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도 딱 불가능하다). 그것이 소위 개량주의적/타협적 태도이며, ‘카페인 없는 커피’처럼 ‘무해한 자본주의’(적어도 ‘덜 유해한 자본주의’)를 우리가 가질 수 있다고 믿는 태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량주의적 좌파(가령, 제도권 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와 자유주의자(가령, 고종석) 간의 간격은 그리 크지 않은 듯하다(가령, 고종석은 ‘마약 없는 마약’ 마리화나의 합법화를 지지하며, ‘섹스 없는 섹스’ 사이버-섹스를 지지할 법하다. 민노당도 마리화나와 사이버-섹스를 지지하나?). 적어도, 근본주의적 좌파나 우파(=수구반동)와 비교해본다면 말이다(고종석은 칼럼 ‘세속사회를 위하여’에서 세속사회에 덜 간섭하는 ‘덜 유해한 종교’를 지지한다. 나는 그걸 데리다식의 ‘종교 없는 종교’의 고종석 버전으로 이해하고 싶다.)

06. 03. 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틈나는 대로 이전에 쓴 글들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 혹은 이미지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이게 요즘 '공부'를 하다가 머리가 막힐 때 하는 나의 '단순작업'이다). 이 글은 모스크바 통신에서 '문학사가의 삶, 영화감독의 삶'이란 제목으로 띄운 글의 일부이다. 러시아의 저명한 문학사가 바쭈로와 영화감독 랴자노프를 기리며 혹은 기억하며 여기에 다시 옮겨둔다.

미하일 레르몬토프와 관련하여 기억해 둘 만한 이름은 저명한 러시아 문학사가이자 푸슈킨 시대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서 몇 년 전에 작고한 바짐 바쭈로(V. Vatsuro; 1935-2000) 교수이다(왼쪽은 청년 바쭈로이고, 오른쪽은 노년의 바쭈로이다).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푸슈킨연구소>(러시아어를 직역하면, ‘푸슈킨의 집’이다)에 오래 봉직한 걸로 아는데, 나는 그 연구소에서 학위를 받은 후배에게서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간혹 나도 자신이 전공자인지 의심스럽다!). 얼마전에 언급한 유리 로트만과 같은 세대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1922년생인 로트만보다 13살이나 아래이니까 한 세대 정도 차이가 난다.

로트만이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인정한 학자였지만, 바쭈로란 이름이 전공자들에게조차 생소한 것은 그가 (체계를 만드는) ‘문학이론가’나 (작품을 해석하는) ‘문학연구자’라기보다는 작품 안팎의 1차 문헌자료를 주로 다루는 ‘문학사가’였기 때문이다(최근에 나온 그의 논문선집에서도 그는 “탁월한 러시아문학사가”로 소개돼 있다). 때문에, 그의 책들에서는 우리에게 생소한, 푸슈킨 시대(19세기 전반기)의 마이너 작가들이 아주 자세하게 다루어진다. 옆에서 보기엔, 지나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우리 같으면 대학원에서도 안 다루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그 바쭈로의 유고논문집들이 나오고 있다. 작년에 NLO(한번 소개했던 출판사)에서<러시아의 고딕 소설>이 출간됐고(544쪽, 2,000부 발행, 왼쪽의 책), 1994년에 초판이 나왔던 <푸슈킨 시대의 서정시: ‘엘레지파’>의 2판이 나우까출판사에서 나왔으며, 바로 지난주에는 (앞에서 말한) <논문선집>이 나왔다(빨간색 하드카바에 ‘바쭈로’란 이름이 큼직하게 박힌 이 책은 824쪽이고, 발행부수는 표시돼 있지 않지만, 많이 찍었을 거 같지는 않다. 오른쪽의 책).

필팍(인문대학)의 서점 <그노지스>에서 200루블에 산 이 책에서 나에게 인상적인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책 중간에 8쪽에 걸쳐 실린 그의 사진들이고, 다른 하나는 연구업적 연보. 먼저, 사진. 첫사진은 어린 바쭈로가 엄마인 류드밀라 발렌찌노브나의 품에 안겨서 목을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다. 쌍꺼풀이 크게 진 눈에(눈매가 엄마를 닮았다) 볼살이 도톰한, 얌전한 개구장이처럼 생긴 이 아이가 나중에 책에 파묻혀 사는 문학사가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장에는 1962년, 그러니까 27살(우리나이로 28살)의 바쭈로가 나온다. 70년대가 넘어가면 바쭈로는 두툼한 뿔테안경을 쓰고 얼굴이 콧수염과 구레나룻으로 뒤덮인 모습이지만, 20대 후반의 젊은 바쭈로는 아주 핸섬한 청년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스냅사진으로 찍혔다. 이어지는 사진들은 대부분 그가 다른 학자들과 같이 찍은 사진들이다(1991년의 블록학회에서 로트만과 담소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들어 있다. 둘 다 머리가 희끗하다). 가족 사진이 없는 것이 아쉽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는 23쪽에 걸쳐서 모두 295건에 달하는 그의 연구업적 목록이 나와 있는데, 약간 의외로 청년 바쭈로의 초기연구는 레르몬토프에 집중돼 있다. 그리고 놀라운 건 그가 1959년에 나온 레르몬토프 전집(V. 마누일로프 편집)의 2권과 3권에 각각 “레르몬토프의 드라마”와 “레르몬토프의 서사시”란 작품해제를 싣고 있다는 사실이다. 1959년이면 그의 나이 24살 때인데, 그때 이미 학계(혹은 편집자 마누일로프)의 인정을 받을 만큼 유능한 학자(학생이 아니라)였다는 얘기가 된다! 그가 푸슈킨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는 건 1963년부터이다.

바쭈로의 이러한 유고집들이 나오는 데 가장 애를 쓰고 있는 사람은 미망인 바지마 에라즈모비차 따마라 페도로브나 셀레즈뇨바 여사이다(이름이 왜 이렇게 긴지는 모르겠다). 지난번 통신문에서 ‘미용사의 남편’ 얘기를 잔뜩 했지만,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학자의 아내’는 주로 그런 일들로 여생을 보내게 된다(그게 그녀식의 ‘배꼽춤’인 것이다). 애서가의 아내는? ‘애서가의 운명’에서 암시한바 있지만, 아마도 책들을 헌책방에 근수로 넘기면서 여생을 보내지 않을까?...



다시 신(新)아르바트거리의 <돔 끄니기>(영어로는 '북스토어'). 2층의 신간매장에 가서 열심히 찾은 건 영화관련서들이었는데, 놀랍게도 정말 초라했다. 영화이론서들은커녕 자네티의 <영화의 이해> 같은 종류의 책도 전혀 없었고, 러시아 영화감독론도 전무했다(두어 권 나온 타르코프스키에 관한 책들도 당연히 없고, 새로 나온 에이젠슈테인의 저작집들도 없고). 그나마 욕심이 났던 책은 가장 최근에 나온 것으로, 영화 속의 20세기 러시아사를 주제별로 짚어본 책이었는데, 가격이 400루블을 훌쩍 넘었다(18,000원 가량). 들고 간 돈도 얼마 없었기 때문에, 이를 가는 수밖에. 그래도 발행부수를 보니까 이해가 갈 만했다. 500부 발행. 그러니까, 이 책을 사게 되면, 500명 안에 드는 것이다!

시나리오 같은 경우 조그만 소책자로 나오는 정간물이 있었는데, 대부분 내가 못 들어본 최근의 영화들이어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직원에게 라쟈노프에 관한 책이나 그가 쓴 책이 없는지를 물어봤는데, 두 권을 찾아주었다('랴자노프'의 러시아어 발음은 '리자노프'이다). 하나는 얇은 것으로, 시인이자 극작가이기도 한 이 영화감독과 그 주변사람들의 짤막한 글들을 모은 ‘그림책’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의 두툼한 ‘회고록’ 혹은 ‘자서전’이었다. 몇 번 망설이다가 (그래봐야 1만원도 안되는 책값이다!) 자서전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바그리우스출판사의 ‘나의 20세기’ 시리즈(정치가나 작가들이 대부분인데, 영화감독 중에는 페데리코 펠리니나 밀로스 포만 등의 이름이 보이고, 배우들 가운데는 브리지트 바르도와 캐서린 햅번이 눈에 띈다) 중의 하나로 나온 <엘다르 랴자노프>는 2000년에 나온 걸 이 출판사에서 작년에 다시 찍은 것이다. 하드카바에 637쪽 분량이고, 흑백화보도 풍성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돈은 안 아까운 책이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젊은 시절의 랴자노프).

일단 이 책에서도 화보들을 먼저 보게 되는데, 세 군데에 나뉘어 실린 화보의 제일 첫 페이지에는 (아마도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사진인 듯한) 20세의 라쟈노프가 나온다. 중년 이후의 라쟈노프와 비교해보면, 도저히 동일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잘생기고 퍽 진지해 보이는 청년이다. 그가 1927년생이니까 40년대 후반에 찍은 사진일 것이다. 그런 인상이 30대 초반 정도까지도 유지되는 듯하다. 머리가 이미 빠지기 시작하지만, 짙은 눈썹의 강인한 눈매, 그리고 단단한 턱은 남자다운 매력을 물씬 풍긴다. 라쟈노프 자신이 “이건 테너 가수가 아니라, 나입니다!”라고 설명을 달아놓았을 정도이다.

20세의 사진 뒤쪽에는 그의 엄마가 백일도 안된 라쟈노프를 안고 찍은 사진이 있다. 벌거벗은 채 장난감을 한 손에 들고 있는 8개월 된 라쟈노프도 보이고(엄마를 닮았다), 서너살쯤 된 라쟈노프가 아버지와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도 그 옆에 있다(아빠를 닮았다). 이 아이가 나중에 러시아의 거장이 된다! 그의 부모는 라쟈노프가 3살 때 이혼했으며, 아버지는 1938년(스탈린 시대 최대 숙청기)에 체포되었다고(아마 총살되었거나 강제수용소에서 죽었을 것이다).

20대엔 주로 다큐멘터리 작업에 동원되다가 그가 극영화 감독으로서 정식 데뷔하게 되는 것은 1956년이다. 그러니까 그의 나이 29세 때이고(우리 나이로 30세), 해빙기(흐루시초프 시대)의 대표적인 풍자코미디인 <카니발의 밤>이 그의 데뷔작이다. 이때부터 라쟈노프는 헝클어진 머리에 얼굴이 점점 넙적해지는 중년의 아저씨 타입이 된다. 거기에 선글라스를 끼면, 누가 봐도 공사장 작업반장이거나 영화감독이다. 맨마지막에 실린 근년의 사진은 약간 수척해진 백발의 노장(老將)의 모습을 보여준다. 칠순을 넘긴 라쟈노프이지만, 눈빛만은 아직도 예리하다.

국내에 이 거장의 영화들이 소개되지 않은 건 유감스럽다. 가장 오랜 기간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러시아영화의 현장을 지켜왔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해 왔던(그의 영화 대부분이 흥행에 성공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감독이기에 그러하다. 비디오CD로 나온 그의 작품을 모두 구해보니까 9편이다(그는 비디오CD 레퍼토리 중 가장 많은 편수를 가진 감독이기도 하다). 자서전의 책날개에 실린 11편의 대표작 목록 중 근작에 속하는 두 편이 빠져 있을 뿐이다(이제 그의 영화에 관한 학술논문이나 비평문들을 도서관 등에 다니면서 구해봐야겠다).

가장 최근에 구한 1983년작 <잔혹한 로맨스>에는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는 영화감독 니키타 미할코프가 주연을 맡고 있다(총을 들고 있는 남자. 라쟈노프가 연기지도를 했을까?). 국내에 출시된 영화들 중에서는 자신이 감독한 <(자동)피아노를 위한 희곡>, <위선의 태양>, <러브 오브 시베리아>에서 그의 연기를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러시아 영화의 황제’ 미할코프는 현재(2004년) 칸느에 가 있다. 얼마전 뉴스에서 현지 표정을 전해주었는데, 얼핏 보기로 이번 영화제에서 단편영화 심사위원장인가를 맡고 있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이곳 <이즈베스찌야>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빈손으로 돌아가진 않을 거 같다고 점치고 있다. 그건 그 영화가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퀜틴 타란티노의 ‘취향’이기 때문이라고. 맞아떨어질 것인지?(*그걸 점치던 때가 있었다!) 

참고로, 그의 최고작은 해마다 연말이면 러시아 TV에서 방영되는 <운명의 아이러니 혹은 목욕 잘 하셨습니까?>(1975). 보통은 그냥 <운명의 아이러니>라고 부르는데, 사회주의 러시아의 최전성기를 대변하는 영화이다. 아래는 그 영화에 등장하는 사랑스러운 두 주인공 커플이다.

06. 02. 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로메테우스의 두 얼굴'과 마찬가지로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대한 몇 가지 생각'에서 또 다른 단락을 옮겨온다. 러시아문학에서의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것이다.  

러시아문학에서도 ‘해방된 프로메테우스’를 읽을 수 있을까? 물론이다. 이미 앞에서 셸리의 <해방된 프로메테우스>가 프랑스 혁명에 대한 정치적 우화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 지적되었지만, 세계사의 또 다른 혁명, 러시아 혁명의 경우에도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동원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유럽의 르네상스를 경험하지 못하고, 18세기초 표트르 대제(왼쪽 초상화) 시대에 와서야 서구화되면서 유럽의 한 구성원이 되었기에, 러시아 민중은 상대적으로 강압적이고 전(前)근대적인 정치적 압제 속에서 오랫동안 고통받았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1812년)을 통해 혁명의 이념이 유포되고 러시아에서도 일부 급진적인 지식인 청년들이 전제정치에 저항하는 ‘미숙한 혁명’(오른쪽 그림의 1825년의 12월 봉기)을 기도하였지만 실패로 돌아가는 바람에, 이후 20세기초까지 더욱 강화된 전제 정치체제가 계속 유지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던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사회변혁의 주도권을 잡고 성장해간 데 반해, 러시아에서는 그러한 부르주아의 성장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가운데 전제정부와 농민(혹은 농노)계급 사이에 제 3계급으로서 ‘인텔리겐챠’(=진보적 지식인) 계급이 성장하게 된다. 사실 19세기 러시아문학은 이 인텔리게챠의 문학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들 인텔리겐챠들이 1840-50년대에 목표로 했던 것은 봉건적 잔재였던 농노해방과 전제정치의 개혁이었는데, 러시아사에서 인간(=민중)을 위해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의 행위에 값할 만한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목표의 실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1861년 알렉산드르 2세의 농노제 폐지 결단으로 이 목표의 절반은 달성된다. 이 결단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하였지만, 인텔리겐챠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사상의 압력, 그리고 혁명에 대한 짜르(황제) 자신의 두려움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농노해방에 대해서 한 역사학자는 이렇게 평가한다.

"농노제의 폐지는 커다란 진보적 의미를 지닌다. 농민들은 더 이상 지주들의 소유물이 아니었으며, 지주들 또한 그들을 가축처럼 내다 팔거나 놀음판의 판돈으로 이용하고, 개와 교환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는 없었다. 농민들은 지주의 허락 없이도 결혼을 하고, 취업 전선에 나가거나 고용 노동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업과 각종 부업에도 종사하고 자신의 재산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는 권리도 얻게 되었다.(...) 개혁의 결과 러시아에는 공업과 상업의 발달 및 농업 경영의 자본주의적 양식의 발달을 위해 보다 좋은 여건이 조성되었다. 이렇게 하여 러시아는 자본주의 국가로 변모하는 노정에서 주요한 일보를 내디디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 농노해방에 있어서 인텔리겐챠의 역할을 보다 강조한다면(많은 인텔리겐챠들이 전제정부에 항거하다가 시베리아 유배를 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곧바로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도식이 여기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인텔리겐챠(=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짜르)로부터 ‘불’(=자유, 권리)을 훔쳐다 농노(=인간)에게 가져다 준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한 것이다. 이 ‘불’이 무려 약 5,000만 명의 농민과 농노들에게 영향을 끼쳐서 그들의 삶을 바꿔놓았으니, 농노해방을 프로메테우스적인 행위/사건이라 불러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 유의할 것은 이 1861년의 농노해방에는 긍정적인 프로메테우스 형상만이 확인된다는 점이다. 즉 여기에는 셸리의 프로메테우스부터 잠식하기 시작한 사탄적 형상이 아직 개입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나중에 보게 될 1917년의 혁명과 대조된다.



사탄/악마적 형상이 러시아에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1820-30년대를 대표하는 두 시인, 푸슈킨(1799-1837)과 레르몬토프(1814-41)에게서 ‘악마’(Demon)라는 시적 형상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악마’를 모티브로 한 많은 서정시와 장시(poema)를 남겨놓고 있다. 특히 레르몬토프의 장시 <악마>(1829-38)에서 ‘악마’는 신의 질서에 저항하는 반항자의 형상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명백하게 영시적 전통의 영향을 입은 것으로 보여진다(그는 특히 바이런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밀턴이나 셸리도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어느 정도 사탄적인 프로메테우스의 형상을 그의 ‘악마’에서도 읽을 수 있다는 얘기다(삽화는 <악마>의 두 주인공인 '악마'와 '타마라').

하지만 그것은 결코 명시적인 형태의 것은 아니다. 그의 ‘악마’가 어떤 명확한 이념적 동기를 가지고 신에게 대항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830년대 이후 산문소설이 주된 장르로 부상하고, 러시아문학이 사실주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이 낭만주의적 ‘악마’의 형상은 문학적 형상으로서의 힘을 대부분 잃고 만다. 그것이 자신의 힘을 되찾는 것은 세기말의 상징주의에 가서이다(물론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고려할 수 있다). 요컨대, 1860년대 농노해방을 즈음한 시기에 러시아 인텔리겐챠들이 가졌던 프로메테우스적인 이념주의에는 셸리의 프로메테우스 같은 사탄/악마주의가 묻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1860년대부터는 차츰 사정이 달라지는 듯하다. 여기에는 러시아 니힐리즘이 한몫한다(한 연구자는 러시아 니힐리즘의 기원을 1858년 정도로 잡고 있다). 투르게네프(1818-83)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1862)에서 니힐리스트로 등장하는 주인공 바자로프에게서 우리는 그러한 징후를 읽을 수 있다. 급진적 유물론자인 바자로프는 ‘니힐리즘’이라는 새로운 이념의 횃불을 들고 친구 아르카지와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자신이 일할 수 있는 ‘작업장’을 제공받지 못한 채, 1840년대 자유주의자들인 아버지 세대와 마찰만 빚는다. 그가 구원해야 할 새로운 ‘인류’가 그의 시대에는 아직 마련되어 않았던 탓에, 개구리나 해부하던 바자로프는 장티푸스 환자의 치료를 거들다가 감염되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투르게네프의 어법을 빌리자면, 그는 돈키호테적인 행동하는 인간으로 등장했다가 결국은 예의 그 햄릿적인 인간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는 일거리를 얻지 못한 불운한 프로메테우스의 형상이다. 이것은 러시아 인텔리겐챠의 또 다른 목표였던 전제정치의 개혁 혹은 전복이 더 많은 시간 흐른 뒤에야 현실화될 수 있었던 사정과 연관될 것이다.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 그의 계급적 한계가 그를 프로메테우스-바자로프 대신에 햄릿-바자로프에 머물도록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바자로프와 대조되는 것이 고리키 문학의 주인공들이다.

 

 

 

 

막심 고리키(1868-1936)는 20세기 새로운 러시아문학을 연 작가이다. 룸펜-프롤레타리아 출신의 작가로서 그는 19세기 작가들이 가졌던 민중에 대한 부채의식을 전혀 가질 필요가 없었는데, 자기 자신이 바로 ‘민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민중이었다(고리키는 자신을 ‘작가’라는 말 대신에 ‘숙련공’이라고 불렀다). 1890년대 문단에 데뷔하여 여러 단편을 발표하였던 그는 1900년대 들어서 몇 편의 희곡을 쓰게 되는데, <밑바닥에서>(1902)는 그의 일련의 희곡 중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의 문제성은 예술적 완성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제의 당당함에서 온다.

빈민굴 여인숙을 무대로 하여 착취하는 주인과 거기에 세들어 사는 여러 밑바닥 인생들을 그리고 있는 이 희곡의 주제는 4막에서 주인공 사친을 입을 통해 대놓고 말해지는 휴머니즘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진실인가, 위로의 동정(=거짓말)인가에 대한 극중인물들 간의 논쟁을 정리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 제 몸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나 남의 이마에 흐르는 땀에 의지하지 않고 독립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거짓말이란 전혀 소용없는 거야, 그러니까 거짓말이란 노예와 군주의 종교야, 진실은 자유로운 인간의 신이거든.” 그가 말하는 자유로운 인간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위안의 거짓말도 필요하지 않다. 어떠한 종교나 권위도 필요하지 않다. 그에겐 오직 진실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 진실이 그에게서 신이고, 그 자신이 그에게서 곧 신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낳기 위해서” 살고 있는 거라고 주장하는 그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인간은 진리야. 그러나 대체 인간이란 뭐야. 그건 너라든지 나라든지 또는 저것들이라든지, 이런 손톱만한 게 아냐. 그건 너두, 저것들두, 루카 영감두, 나폴레옹두, 마호메트두, 모두들 함께 모은 거야. (공중에 사람 형체의 윤곽을 그리며) 알겠나? 인간이란 이렇게 큰 거야. 모든 것의 시초와 모든 것의 종말이 이 속에 포함돼 있거든. 모든 것이 다 인간 속에 있는 거야, 모든 것이 다 인간을 위해서 있는 거야, 이 세상에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인간이 있을 뿐이고... 그밖의 것들은 모두 인간의 손이나 머리로 만들어진 거야. <인간!>, 제법 거만하게 들리지 않느냐 말이야, <인-간!>. 인간이란 본래부터가 동정할 것이 아니라 존경해야 할 성질의 것이야..."

사친의 이런 대사는 휴머니즘의 최대치를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 휴머니즘이 바로 프로메테우스의 이념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고리키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리하여, 인간은 결코 동정의 대상이 아닌 존경의 대상이라고 “거만하게” 말하는 사친에게서 우리는 새로운 프로메테우스-고리키의 형상을 보게 된다. 프로메테우스-고리키가 인간에게 가져온 ‘횃불’은 진실이고 자유이다. 어떠한 구속이나 억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인간에의 이념이다. 이때 그가 말하는 인간은 개인이 아니라 집합적인 인간, 즉 보다 ‘큰 인간’이다(고리키에게 인간은 언제나 '대문자' 인간이었다).



그리고, 이 집합적 인간이 사회적 실천과 변혁의 힘으로 묘사되고 있는 작품이 바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조로 평가되는 그의 <어머니>(1907)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인간의 시대가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레닌을 포함하여 고리키와 같은 이들이 지녔던 이같은 프로메테우스적 기획이 현실화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푸도프킨의 영화 <어머니>(1926)의 한 장면.

하지만 이미 1989년의 소련과 동구권 대변혁을 목격한 우리로서는 이 기획에 처음부터 부정적인 프로메테우스(=사탄) 상이 드리워져 있었다는 걸 놓칠 수 없다. 이미 <어머니>에서부터 자본가(=지배계급)와 노동자 계급(=피지배계급) 사이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에는 어떠한 화해의 가능성도 가로놓여 있지 않았다. 그것은 1934년 소비예트의 창작원칙이자 방법론으로 선포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긍정적 인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무모순 사회에서 아무런 내적 갈등도 경험하지 않는 사회주의적/공산주의적 인간형으로서의 긍정적 인물에는 어느덧 프랑켄슈타인적인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지 않은가. 현실정치에서 그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스탈린(1879-1953)일 것이다(스탈린 흔히 '아버지 스탈린'이라 불린다. 고리키는 생전에 권력의 수뇌부로부터 <아버지>란 소설의 집필을 제안받은 바 있다).

1936년에 고리키는 사망하는데, 확인할 수는 없지만, 스탈린에 의한 암살설도 나돌았다. 나는 그의 죽음이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애초에 고리키이 의도했던 프로메테우스적 기획이 결국엔 프로메테우스-사탄적 기획으로 전락하고 만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 이해하고 싶다. 러시아의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우리의 얘기는 이제 그러한 사실을 암시하는 데에서 그치기로 한다. 아래 사진은 레닌의 장례식(1924)에서의 고리키. 

06. 02. 22.


댓글(3) 먼댓글(1)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아이스킬로스와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26 13:50 
    원고 때문에 자료를 찾다가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대해 오래 전에 적을 글을 발견했다. 이미 글의 몇 부분을 따로 정리해놓으면서도 서두에 해당하는 대목은 빼놓았었는데 '창고 정리' 차원에서 옮겨놓는다(PC보다는 이 서재가 검색이 용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혹 참고가 될 만한 분도 계실 듯해서다).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대한 서두의 요약은 폴 디엘의 <그리스 신화의 상징성>(현대미학사, 1997)을 참조한 것이며,
 
 
2006-02-22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03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8-03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자주 찾아주시네요.^^ 종종 깨진 이미지들이 있어서 보수공사를 해야 하는데, 이 페이퍼도 그렇군요...
 

지난 화요일자(06. 02. 14) 한국일보 등에는 뉴욕타임즈(02. 12) 기사에 근거하여 러시아 영화계의 '뿌리찾기' 바람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내용을 따라가면서 몇 마디 보태기로 한다. 뉴욕타임즈 기사의 원제는 'Time to Come Home, Zhivago'(지바고, 집에 갈 시간이다)이며, 이걸 약간 변형하여 '닥터 지바고, 집에 돌아오다'란 제목을 붙인다. 주된 내용은 과거 헐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졌던 러시아 명작들이 일종의 붐처럼 러시아 영화로 다시 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 왼쪽 사진이 데이비드 린 감독의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이고, 오른쪽이 올 5월중 TV방영예정이라는 러시아판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소재로만 활용됐던 러시아 명작 소설들이 줄줄이 러시아 영화 감독에 의해 영화나 TV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2일 이런 현상을 1930년대 ‘전함 포템킨’의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감독 등이 활약했던 소련 영화 전성기에 견줄 수 있는 새로운 영화혁명이라고 평가했다.(*러시아 영화가 부흥을 맞고 있다는 전망은 몇 년전부터 나온 것인데, 2004년작 <나이트 워치> 등의 상업적 성공은 이를 뒷받침하는 한 가지 사례였다. 이러한 '성공'은 러시아의 문화적 전통과 정체성 회복의 계기로 삼으려는 노력이 현재 러시아에서 진행중인 것이다.)


 

 

 

가장 상징적인 영화는 <닥터 지바고>.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 소설을 1965년 할리우드의 데이비드 린 감독이 영화화한지 무려 41년 만에 러시아인의 손에 의해 TV 영화로 거듭난다. 구 소련 시절 금지소설로 분류됐던 이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는 것도 처음이다. 러시아 NTV는 올 5월 8시간 분량의 이 영화를 내보낼 예정이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도 러시아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앞서 마하일 불가코프의 명작 <거장과 마르가리따>는 지난해 12월 TV 영화로 만들어져(왼쪽 이미지. 오른쪽은 감독 블라지미르 보르트코) 러시아 시청자의 절반 이상을 사로잡는 경이적인 기록을 낳았다(*<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러시아 연극의 고정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한편, 현재 절판중인 국역본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새 번역본이 내년까지는 나올 예정이다). 스탈린 치하 강제수용소의 군상을 풍자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제1원>도 TV 영화로 제작돼 지난달 말 러시아 TV에서 방영됐다.(*'The First Circle'을 옮긴 <제1원>은 <제1권>(분도출판사, 1974)로 번역돼 있는 솔제니친의 장편소설을 가리킨다.) 

닥터 지바고를 제작중인 알렉산드르 프로쉬킨 감독은 “데이비드 린 감독을 존경한다”며 “하지만 그의 영화는 미국 영화일 뿐”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인의 작품을 러시아안이 해석해 영화로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 소설을 러시아인이 해석하지 않음으로써 기존 영화에 많은 오류가 숨어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린 감독은 슬라브인과 비슷한 금발의 배우 줄리 크리스티를 지바고의 연인 라라로 캐스팅했지만 원작은 라라가 벨기에인 아버지와 프랑스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비 슬라브적인 인물로 묘사한다”고 꼬집었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는 빨간 머리의 러시아 여배우 슐판 카마토바를 라라역으로 캐스팅했고 지바고 역에는 오마 샤리프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올레그 멘쉬코프를 기용했다. 멘쉬코프는 ‘러브 오브 시베리아’를 통해 한국 관객에도 익숙한 배우이다.(*'슐판 카마토바'는 '출판 하마토바'의 잘못된 음역이다. 외신기자들도 이제는 영어-러시아어 음역체계에 대해서 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올레그 멘쉬코프'는 그냥 '올렉 멘쉬코프'라고 읽어주고 싶다. 얼마전 TV에서 재방영된 <러브 오브 시베리아>의 주연배우가 올렉 멘쉬코프인데, 한국일보인가는 '올렌 멘쉬코프'라고 적었었다.)

뉴욕타임스는 “스페인 라다하라 평원에서 올 로케된 린의 영화 현실은 가공일 뿐 실제 러시아 평원을 배경으로 제작되는 이 작품이 러시아 문학과 영화의 진수를 느끼게 해 줄 것”이라는 러시아 영화계의 반응을 전했다. 러시아 영화계의 이 같은 동향은 구 소련 붕괴 후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러시아가 최근 정치안정과 유가급등에 따른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국가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여러 시도 중 하나로 봐야 할 것 같다.(*어찌되었거나, 러시아문학 전공자로서는 아주 반가운 일이다. 이걸 다 언제 구해 보나?) 

06. 02. 17.

P.S. 모스크바 통신에서 '올렉 멘쉬코프'에 대해 몇 자 적은 대목이 생각나 옮겨온다. 작년, 그러니까 2005년 새해 벽두에 쓴 것이었다.

어제보니까 러시아의 (2005년)새해맞이는 푸틴의 5분 연설로 시작된다. 그는 12월 31일 밤 11시 55분에 대부분의 TV채널에 등장해서 새해의 의미와 새해를 맞는 러시아의 각오/다짐을 되새겨주었다.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2005년이 전승 60주년이 되는 해라는 것이다(러시아/소련은 1945년 5월 독일로부터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2차 대전의 승전국이 된다. 러시아는 그 전쟁에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입은 나라이다). 러시아인의 90%가 독일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하고 독일에서의 삶을 꿈꾸기도 하지만, 독일에 대한 승리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러시아’를 지탱하는 가장 큰 이념적 버팀목이다(그걸 보충하는 것이 ‘러시아 정교’이다). 방대한 영토의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이기에 그런 버팀목은 불가불 요구된다. 사회주의 시절엔 아마도 ‘러시아혁명’이 그런 역할을 수행했을 테지만, 지금은 오직 ‘조국전쟁에서의 승리’뿐이다. 이 ‘국가 이데올로기’를 어떻게든 유지시켜보려는 노력은 옆에서 보기에 간혹 안쓰럽다.

푸틴의 연설에 이어서 채널 NTV(엔떼베)에서는 ‘올렉 멘쉬코프와의 첫밤’이라는 쇼프로그램을 방송했는데, 멘쉬코프는 <시베리아의 이발사>(<러브 오브 시베리아>로 출신>)와 <위선의 태양>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남배우이자 러시아의 국민배우이다(*그는 러시아의 '중년의 꽃미남'이다). 듣기에, 아직 미혼이며 그의 전기까지 출간됐을 정도이고 중년이지만 배용준의 인기를 능가한다(러시아 연예계라는 게 우리처럼 떠들썩하진 않지만).

그래서 그날 챙기게 된 영화가 그의 1999년작인 레지스 바르니에 감독(<인도차이나>의 감독)의 영화 <동과 서>이다(왼쪽 사진은 <시베리아의 이발사>에서 줄리 오몬드와 멘쉬코프. 그리고 오른쪽은 <동과 서>에서 산드린 보네르와 멘쉬코프). 프랑스 등 4개국 합작 영화인데, 2차 대전 종전 후 1946년 의사인 러시아 남편을 따라서 남편의 조국 ‘소련’으로 간 프랑스인 아내의 ‘지옥에서의 10여년’을 다루고 있는 영화인데(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주연은 산드린 보네르이고 카트린 드네브도 조연으로 출연한다(푸틴이 러시아의 1945년을 기념하고 있다면, 멘쉬코프는 1946년 이후에 러시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고발한다).

러시아 생활에 절망하던 프랑스 아내는 간첩 혐의로 수용소에 끌려가기도 하지만 1956년(이 해 전당대회에서의 흐루시초프의 비밀연설에 대해서는 이전에 언급했다)에 복권되며, 이후 남편의 숨은 노력으로 비밀 망명에 성공한다(그녀는 아들과 함께 불가리아의 프랑스대사관으로 망명하며, 그리스를 거쳐서 프랑스로 돌아간다). 혼자 남겨진 남편이 프랑스에서 가족과 재회하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30년 후인 1987년에 와서이다(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이들의 재회를 가능하게 했다). 아래 사진은 각각 <시베리아의 이발사>와 <동과 서>의 DVD 타이틀.

‘동’과 ‘서’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아픔을 겪은 러시아/프랑스판 이산가족을 다룬 영화인 셈인데, 우리의 관객들이라면 보면서 눈물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이다. 이런 '반공'영화가 소개되지 않는 것도 참 신기한 노릇이다(러시아 영화를 소개하는 채널조차 안 갖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므로 이럴 때는 '주변 4강'이란 말이 무색하다. 고작 '시베리아 유전'에나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인가? 심히 척박한/천박한).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딸기 2006-02-17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러시아에는 저렇게 문학이 많을까요... ^^;;

로쟈 2006-02-1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땅넓이에 비하면야.^^

비로그인 2006-02-17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구 수는 그래도 땅 넓이 만큼 많지는 않은데^^

2006-02-17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2-1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때리다님/ '고뇌'하는 인구수는 우리보다 훨씬 많은 듯합니다...
**님/ 닥터 지바고의 국역본을 모두 갖고 있지만, 찬찬히 대조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 지바고의 시 같은 경우, 대개는 맘에 들지 않더군요. 파스테르나크는 좀더 섬세하게 번역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재로선 아무 번역본이나 붙잡아도 '무드' 정도는 전달받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01 | 10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