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러시아 관련 기사들 중 눈에 띈 것을 옮겨둔다. 러시아의 유명인사들이 유럽 언론에 대해서 '변화하는 러시아'에 대한 '공정한 보도'를 호소했다는 내용이다.  

문화일보(06. 08. 04) “왜 러시아 변화상 제대로 전달 않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3일 “외국 매스미디어에 보내는 호소”라는 광고가 실렸다. 광고를 실은 이들은 옛 소련과 러시아의 학계와 문화예술계, 스포츠분야 유명인사들 이다. 이들은 신문 지면 4분의1을 차지하는 광고에서 서구 언론들의 ‘반(反) 러시아 보도’를 비판하며 민주화와 경제회복을 비롯한 러시아의 변화상을 제대로 전달해줄 것을 호소했다.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외국 네티즌들과의 대화 에 나서는 등 러시아 정부가 국가홍보를 강화하고 있는 것과 맞 물려, 명사들의 이례적인 광고가 눈길을 끌고 있다.

-호소문에 서명한 사람은 옛 소련 시절 세계체스챔피언으로 유니세프 홍보대사를 지낸 아나톨리 카르포프, 저명한 경제학자 니콜라이 페트라코프, 러시아 인민예술가인 유명 지휘자 알렉산데르 라자레프, 공훈배우 알렉세이 구스코프 등 10명이다. 옛 소련 붕괴 뒤 마피아적 기업가와 관료들이 설치는 러시아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페트라코프(사진)가 이번에는 러시아를 옹호하는 광고에 이름을 올려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최근 러시아를 범죄와 부패,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이 기승하는 나라로 묘사하는 서방 언론들의 보도가 늘고 있다”며 “그들은 러시아 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뿐 아 니라 러시아에 대한 외국인들의 투자까지 막으려고 한다”고 주 장했다. “서방은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정한 변화들을 보려 하지 않는다. 민주화는 이제 러시아에서 멈출 수 없는 대세가 됐고, 시장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러시아 기업들은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러시아가 태어날 것이다.”

-러시아 지식인들이 서방에 보내는 메시지라고도 볼 수 있는 이 글은 또 ‘러시아적 민주화’에 서구인들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에 거부감을 표하면서 문화적 다원성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호소문은 “국제정치 무대로 돌아온 러시아는 민주화를 추진하되 전통적 가치와 결합시키려 애쓰고 있다”면서 “어느 나라든, 어느 민족이든 자기네 삶을 자기네 전통과 경험에 따라 창조적으로 꾸려갈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우리도 개방과 협력을 원하는데 왜 선진국들은 우리의 과거를 들먹이며 우리의 현재를 비판하느냐”면서 “철의 장막이나 냉전 같은 것을 잘 모르는 신세대, 자기가 바라는 것을 스스 로 선택할 수 있고 자유로운 러시아의 미래가 될 새로운 세대에 게 ‘세계를 암흑의 러시아로부터 보호해야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흘러들어간다는 것은 당혹스럽다”고 토로했다. 호소문은 서방에 “냉전시절의 클리셰(상투어)에서 벗어나 객관 적으로 러시아를 바라볼 것”을 촉구하면서, “열린 대화 속에 러시아와 서방의 새로운 관계가 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으로 끝 을 맺었다.(구정은 기자)

06.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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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G8 정상회담이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바 있다. TV뉴스에 자주 나왔을 법한 장소가  회담장소였던 콘스탄틴궁이다. 이 콘스탄틴 대공의 사저를 복원한 것이라 하는데, 페테르부르크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는 소식이다. 러시아 관련 참고자료로 관련 칼럼을 옮겨놓는다. 조선일보 정병선 특파원의 기사이며, 크렘린궁에 관한 내용도 연달아 옮겨놓는다.  

Konstantin palace in Strelna

조선일보(06. 07. 28) 권위보다 국민 배려

-G8(선진공업 8개국) 정상회담이 열렸던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콘스탄틴궁(宮)이 세계적인 명소로 떠올랐다. 회담이 열리는 동안 이곳은 이미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회담장에서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한참 동안 궁내 장식물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장면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포착됐으며, 각국 정상들이 궁전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한 게 모두 기사화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곳은 미국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목장’과 같은 존재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할 때마다 사적인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자신과 친밀한 각국 정상들을 초대해 회담하고 파티를 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텍사스 목장’에서 영감을 얻어 이곳을 만들었다. 지난 2001년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목장에 초대받아 지내며 강한 인상을 받은 뒤 자신도 부시 대통령처럼 고향에다 그와 비슷한 대통령의 별장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의 의지가 콘스탄틴궁 복원으로 이어진 것이다.

-콘스탄틴궁은 제정(帝政) 러시아 때 건축됐지만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침공하면서 완파돼 건물 터만 남았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 방문 직후 궁 복원 지시를 했다. 특히 궁을 단순히 제정 시대 궁전으로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외국 정상들을 초대해 회담도 하고 함께 지내며 식사와 여가를 겸할 수 있는 실용적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의 관저이자 정상회담 장소로 손색이 없도록 한 것이다.



-콘스탄틴궁 복원에는 재건축비가 250만 달러 투입됐지만, 실내 장식 등 내부 시설에 투입된 예산은 건축비보다 10배 이상 소요됐다. 크리스털 장식과 대형 거울, 금으로 도장된 장식품이 즐비한 회의실은 눈이 부실 정도로 호화찬란하다. 궁전 주변 50㏊에는 정원과 현대식 호텔(코티지식)이 바다를 배경으로 들어섰다. G8 정상회담에 초대받은 정상들은 이곳을 숙소로 사용했다.

-지난 2003년 도시 창건 300주년 기념식 때 주 행사장으로 이용됐던 이곳은 당시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45개국 정상들을 맞으면서 처음 공개됐다. 그때는 일부 선택받은 정상만이 이곳에 묵을 수 있었다. 콘스탄틴궁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각국의 언론은 “푸틴 대통령이 제정러시아 황제처럼 군림하며 여름 궁전을 만들었다”면서, ‘콘스탄틴궁’이 아니라 ‘푸틴궁’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이곳은 개관 이후 매년 1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로 명소가 됐다. 기존 표트르 대제의 여름 궁전 ‘표트르궁’, 예카테리나 여제의 여름 궁전 ‘예카테리나궁’(*아래 사진)과 더불어 백야(白夜)로 유명한 상트 페테르부르크시(市) 최대 명물로 떠올랐다.

Czar's Village. Catherine palace. Church wing

-콘스탄틴궁은 푸틴이 이곳에서 자주 외국 정상과 회담하면서 국제적으로 알려진 면도 있지만 정부가 이곳을 단지 대통령 별장으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반인에게도 공개하면서 더 유명세를 치렀다. 실제로 이곳의 정상회담장인 대형 회의장과 숙소는 실비만 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상시 개방하고 있다. 관광도시인 상트 페테르부르크시는 콘스탄틴궁의 성공적 결과에 고무돼 제2, 제3의 콘스탄틴궁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콘스탄틴궁은 대통령의 별장이지만 대통령 소유가 아니고, 특별한 인사의 전유물도 아니며,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국민 모두의 것으로 여긴 러시아 정부의 파격적인 마인드가 가져온 하나의 수익 모델이다.

조선일보(06. 02. 10) ‘크렘린궁 패밀리’ 되려면… ‘줄’ 없으면 꿈도 꾸지마

-러시아에서 모스크바의 권력중심을 상징하는 크렘린궁. 그 행정실은 크렘린궁을 둘러싼 3개의 건물에 분산돼 있다. 행정실은 대통령 행정실로도 불리며 러시아에서는 별천지로 통한다. 그만큼 이곳에서 근무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얘기다.

-행정실은 분석국, 통제국, 외교국, 내무국, 인사국, 포상국 등 모두 12개 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직원은 약 2000명 정도. 평균연령은 45세로 알려졌다. 더 이상은 비밀이다. 행정실 직원을 뽑는 원칙은 모스크바나 상트 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에서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은 공무원들 가운데 선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맥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의 길로는 미국 백악관처럼 인턴십 연수과정을 거쳐 능력을 인정받는 경우다. 인턴들은 주로 모스크바국립대, 국제관계대, 모스크바외국어대학 학생들이 총장 추천을 받아 선발된다. 연수기간은 대개 3~4개월. 이 기간 동안 국가정보기관은 인턴이 제출한 이력서의 진위와 신분조회를 한다.

 

-실제로 모스크바국립대 졸업생들이 ‘크렘린궁 패밀리’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역사학부, 어문학부, 법학부, 언론학부, 아시아·아프리카학부 출신들이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행정실 근무자인 콘스탄틴 포르마료프(가명·35)는 “최근 공무원 채용부터 퇴직까지 구체적으로 규정한 ‘공무원법’이 제정됐지만, 아직은 크렘린궁 패밀리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모스크바대 출신에다 ‘줄과 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러시아는 '줄'과 '친구들'이 말하는 사회이다).

-대통령 행정실 직원들의 월급은 다른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적은 편이다. 부국장급 월급이 3만1500루블(1100달러 수준), 중간급은 1만루블 정도이다. 하지만 월급보다 많은 온갖 특혜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국장의 경우 국가관리용 고급별장과 자가용이 특별 제공되며, 직원 모두에게는 러시아 최고 병원으로 치는 ‘대통령총무국 산하 부속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중시하는 여름휴가 동안 흑해 요양소 이용권을 3분의 1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3주 동안 흑해요양소 이용권은 5만5000루블 수준이다.

-자녀들에게도 온갖 혜택이 주어진다. 유아(2~7세)들은 대통령 총무국 산하 부속유치원을 이용할 수 있고, 특수학교 입학도 보장된다. 대통령 총무국이 특별히 선발한 교사들이 아이들을 교육시킨다. 행정실 직원 자녀들은 두세 가지의 외국어 습득은 물론 예체능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는 등 마치 제정 러시아시대의 귀족 교육과 같은 과정을 받는다.

-이 때문에 크렘린궁 행정실은 행정직 외 기술직, 식당 종업원조차도 경쟁이 치열하다. 한번 크렘린궁 행정실 직원이 되면 20~30년 이상 평생 근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식 역시 대를 잇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크렘린궁 행정실 직원 같은 철밥통은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06. 0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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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러시아문화 페스티벌이 개최된다고 한다. 오늘자 한국일보가 전하는 소식이다. '올 가을 러시아 예술이 몰려온다'란 제하에 오미환 기자가 정리해주고 있는 내용을 옮겨온다. 대신에 기사는 축제 홈페이지를 참조하여 몇 가지 보충하면서 재구성했다.

 한국일보(06. 07. 27) 올 가을 러시아 예술이 몰려온다

-러시아 문화의 오늘을 소개하는 대규모 페스티벌이 올 가을 서울과 성남에서 열린다. 한국과 러시아 수교 기념일(9월 30일)을 앞두고 9월 15일부터 열흘 간 ‘한-러 교류축제’라는 이름으로 음악, 무용, 오페라, 연극 공연과 미술 전시회가 이어진다.

-러시아는 광대한 영토 만큼이나 문화의 폭과 깊이가 대단한 나라다.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 거인들로 우뚝한 문학 뿐 아니라 발레, 오페라, 음악, 미술, 영화 등 여러 분야에서 찬란한 전통을 지닌 예술 강국이다.

-이번 축제는 러시아의 과거가 아닌 현재에 초점을 맞춰 1980년대 말 개혁 개방 이후 지금까지, 즉 오늘의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화를 집중 소개한다. 성남아트센터를 중심으로 열리는 총 6개의 공연 중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올가 포나의 첼랴빈스크 현대무용단만 빼고 다 한국이 첫 방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올해 탄생 100주년인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나 또한 가장 기대를 갖게 되는 작품이다). 한국 초연인 이 작품은 대담한 음악과 에로티시즘 때문에 스탈린 시절 10년간 공연이 금지됐다. 줄거리는 부자와 결혼했지만 권태와 억압에 짓눌린 한 여인의 일탈이 불륜과 살인을 거쳐 자살로 끝난다는 내용이다. 공연예술 분야에서 러시아 최고 영예인 황금마스크 상을 11번이나 받은 헬리콘 오페라단이 가져와서 선보인다.

 

 

 

 

(*)이 오페라의 원작이 이전에 소개한 바대로 얼마전에 번역된 레스코프의 소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소담, 2006)이다. 헬리콘 오페라단?(러시아어로는 '겔리콘') "러시아 국내외에서 60 여 편이 넘는 오페라를 연출하며 ‘러시아 국민 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은 드미트리 버트만 . 그가 러시아의 젊고 재능있는 배우들과 음악가들을 모아 창단한 오페라단이 헬리콘 오페라단"이란다. "1990 년 4 월 10 일 에 창단한 이 헬리콘 오페라단은 7 명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350 명이라는 대규모로 성장한 무서운 오페라단이다 . 한 해 200 회 이상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며 각각 다른 분야에서 11 개의 황금 마스크상을 수상하였고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까지 인기와 호평을 동시에 누리며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홈피는 http://www.helikon.ru/)  

(*)이번 공연의 의의: "쇼스타코비치의 대표적인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 는 인간 내면의 본성을 발가벗긴다는 점에서 기존의 고전 오페라와는 상당한 차이를 느낄 수 있으며 다양한 음악적 표현기법이 생동감을 불어넣어 오페라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다.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의 대미 가 될 이번 공연은 한국 초연 이자 러시아 오페라단이 노래하는 러시아 오페라 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보기 드문 무대가 될 것이다." 참고로 오페라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제1막 - 남편 지노비는 집을 비우고

제1장 지노비의 젊은 부인 카테리나는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이도 없고, 남편은 지루하고, 날로 쌓여가는 집안일은 카테리나를 미치게 한다. 시아버지 보리스는 결혼한 지 5 년이 지났음에도 자식 하나 낳지 못한다며 카테리나를 못마땅해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지노비가 집을 잠시 떠나있게 되고 보리스는 카테리나에게 정절 맹세를 강요한다. 카테리나는 일꾼 세르게이에게 일탈적 매력을 느끼는데...

제2장 요리사 악시냐는 새로 들어온 하인 세르게이에 대한 소문을 카테리나에게 전한다. 전주인과의 불륜으로 쫓겨나 이리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세르게이는 집안 하인들과 작당하여 악시냐를 겁탈하려 하는데 이 장면을 카테리나가 목격한다. 이를 말리려던 카테리나는 세르게이와 크게 다투는데 강하게 자신을 누르는 그에게 카테리나는 일탈적 매력을 느낀다.

제3장 세르게이는 책을 빌리러 왔다는 핑계를 둘러대며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고 몸이 한참 달아있던 카테리나는 세르게이와 돌이킬 수 없는 뜨거운 밤을 보낸다.

제2막 - 불륜을 들킨 카테리나와 세르게이는 보리스를 독살한다

제4장 며느리에게 음흉한 생각을 품고 있던 보리스는 카테리나의 방 주위를 서성이다 그녀의 방에서 나오는 세르게이를 목격하고는 분노를 터트린다. 보리스는 세르게이를 그 자리에서 붙잡아 채찍으로 마구 두들겨 패고는 창고에 가두어 버린다. 허기를 느낀 보리스는 카테리나에게 음식을 좀 가져오라며 시키는데 앙심을 품은 그녀는 쥐약을 탄 버섯요리를 가져다 먹인다. 시아버지를 독살한 카테리나는 바로 창고로 달려가 세르게이를 풀어준다. 집으로 돌아온 지노비 역시 그들에게 살해당하는데...

제5장 장례식을 가식으로 치른 카테리나는 마음 놓고 세르게이와 한 침대를 쓰며 지내지만 보리스의 혼이 그녀를 가만두질 않는다. 집으로 돌아온 지노비는 아내의 부정한 행각 앞에 카테리나를 책망하며 몰아세운다. 나름 화가 난 그녀는 세르게이와 합세하여 지노비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포도주 창고에 숨겨 버린다.

제3막 - 많은 죄악에도 불구하고 카테리나와 세르게이는 결혼식을 올린다

제6장 남편이 실종된 것으로 소문을 낸 카테리나는 마음을 짓누르는 죄의식에도 불구하고 세르게이와의 결혼식을 거행한다. 결혼식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한 소작농이 정신없는 틈을 타 포도주를 훔쳐 마시려고 창고에 몰래 들어간다. 창고에서 지노비의 시체를 발견한 그는 기겁하여 경찰서로 달려간다. 결혼식장에서 체포당한 카테리나와 세르게이.

제7장 신고를 받은 경찰은 바로 결혼식장으로 달려오지만 초대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구에서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제8장 한편 포도주 창고 자물쇠가 부서져 있는 것을 발견한 카테리나는 집안의 돈을 챙겨 달아나려고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카테리나와 세르게이는 살인죄로 실형 선고를 받는다.

제4막 - 수용소로 끌려가는 중 세르게이는 여자 죄수 소네트카에게 추파를 던지는데

제9장 카테리나와 세르게이는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 가고 있다. 카테리나는 보초를 매수하여 세르게이를 어렵게 만나지만 그는 이미 카테리나에게 싫증이 날만큼 나있다. 세르게이는 새로 알게 된 소네트카의 환심을 사려고 카테리나를 꾀어 그녀의 양말을 빼앗아 낸다. 소네트카가 춥다며 따뜻한 양말 한 켤레를 구해다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랑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카테리나는 시아버지와 남편의 저주를 느끼며 소네트카를 급류 속으로 떠밀고 스스로도 몸을 던진다. 두 여인의 익사를 뒤로 하고 죄수들은 수용소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유럽에서 1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 여성 2인조 팝 그룹 타투(t.A.T.u), ‘러시아의 비틀스’로 불리는 러시아 최초의 록 밴드 ‘더 플라워즈’(The Flowers)의 첫 내한도 예정돼 있다.

 

 

 

-2000년에 결성된 타투는 2003년 발표한 음반 ‘All The Things She Said’ 로 영국에서 4주 연속 싱글 차트 1위,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3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고, 우리나라에서도 플래티넘의 판매고를 올렸다(*타투의 음반은 이미 국내에도 여러 장 나와 있으므로 더 이상의 소개는 불필요하겠다(http://www.youtube.com/watch?v=C37TVelsPiQ). 사실 노래보다는 동성애 코드와 섹스어필로 유명해진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1969년 결성된‘더 플라워즈’는 진부한 구 소련의 팝을 깨부순 혁명가들. 서구사상과 히피를 추종한다는 이유로 강제 해산되기도 했던 이 팀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고, 러시아 밴드로는 처음으로 세계 순회공연을 했다(*홈피는 http://www.flowersrock.ru).

-이번 축제에서 이들은 한국인 3세로 러시아 록의 영웅인 빅토르 최 추모공연을 한다(*과문한 탓에, '더 플라워즈'(러시아어로는 '츠베뜨이')의 노래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러시아의 비틀즈? 하긴 꽃이 있으면 벌레도 끼는 법이지. 아무튼 '빅토르 최' 추모공연이라니까 구미가 당긴다. 성남아트센터가 어디에 있는 건가?)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러시아 미술을 소개한다. 이밖에 그림자극과 피아노 라이브 연주를 결합해 환상적 무대를 연출하는 러시아 극단 뗀의 ‘그림자 극장’(*Ten'이 러시아어로 그림자란 뜻이다), 올가 포나의 첼랴빈스크 현대무용단의 최신작 공연,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팝스콘서트 등이 준비돼 있다(축제 홈페이지는 http://www.russianfestival.co.kr)

 

 06. 07. 27.

P.S. 중앙일보의 이장직 음악전문기자가 쓴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중앙일보(06. 08. 04) '스탈린 열 받게' 한 바로 그 오페라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75)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오페라 대표작 '므첸스크 (마을)의 맥베스 부인'이 세계 각지에서 대거 상연된다. 9월 30일~10월 17일 일곱 차례 무대에 올리는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프로덕션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2006~2007년 시즌에 토론토 캐나디언 오페라(8회), 제네바 그랑 테아트르(6회), 모스크바 볼쇼이 오페라(3회), 라트비아 국립 오페라(3회), 비스바덴 오페라(1회)가 '맥베스 부인'에 도전한다.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키로프 오페라단이 20일 런던 프롬스 축제, 내년 2월 4일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콘서트 형식으로도 상연한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마침내 국내 초연된다. 내달부터 열리는 '2006 한러교류축제'(중앙일보.SBS프로덕션 공동주최)의 일환으로 내한하는 모스크바 헬리콘 오페라단의 무대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맥베스 부인'을 번안한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이 원작. 억압과 굴종의 굴레에서 해방을 갈구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다.

-1934년 1월 22일 상트 페테르부르크 초연 당시 2년간 180회나 상연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2년 후인 36년 1월 소문을 듣고 궁금해 하던 스탈린이 당 간부들을 거느리고 직접 객석에 나타났다. 이틀 후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가 '음악이 아닌 혼란'이라는 제목의 비판 기사를 게재했다. '불온한 좌파가 만들어낸 불협화음'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남편을 살해하는 장면이 암살의 공포에 떨고 있던 스탈린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스탈린은 자신의 모습이 등장인물 중 경찰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를 신호탄으로 러시아 작곡계에는 검열의 회오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 유명한'상연 금지'조치는 러시아 음악사에서 가장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남아있다.

-스탈린이 사망한 지 10년 후인 1963년 1월 8일 모스크바 스타니슬라브스키 극장에서 상연된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는 이 작품의 수정판이다. 음색의 급격한 대조, 불협화음,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을 상당히 순화시킨 것이다. 침실에서 벌어지는 여주인공의 유혹 장면의 리얼리티도 훨씬 반감됐다. 소련 당국의 상연 허가를 받아내기 위해 자기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의 팔 다리를 잘라내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는 얘기다.

-헬리콘 오페라단은 볼쇼이 오페라나 마린스키 극장 같은 유명 단체는 아니지만 러시아 최고 권위의 황금가면상을 11회나 수상한 실력파 오페라단이다. 연출가 드비트리 버트만이 젊은 예술가들을 모아 1990년에 창단했다. 단원 7명으로 출범했지만 지금은 350명 규모로 급성장했다. 무엇보다도 헬리콘 오페라단의 장점은 기존 레퍼토리의 현대적 재해석이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을 누비면서 러시아 오페라의 진수를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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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G8 서방 선진국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다. 이전엔 'G7+1'이라고 표기했던 듯한데, G8이라고 하는 걸 러시아도 당당히 '선진국'  대우를 받는 모양이다. 하긴, 경제적으로야 아직 거기에 못 미치지만 외교적, 군사적으로야 못 끼여들 건 아니겠다. 오마이뉴스(06. 07. 15)에서 관련기사를 옮겨온다. 필자는 정인고 기자이고, 타이틀은 '푸틴, 피터 대제의 꿈에 도전하나'이다. '표트르 대제'를 '피터 대제'라고 표기하는 것으로 보아 필자는 러시아통은 아니고 영어권 보도을 종합해서 기사를 작성한 듯하다.

피터 대제의 야망이 반영된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 G8 정상회담의 공식로고(왼쪽)와 피터 대제의 청동기마상

-1703년 피터 대제는 핀란드만과 네바강의 어귀에 상트 페테르부르크(영어 ST. PETERSBURG), 즉 '성베드로의 도시(상트 - 성, 페테르 - 베드로, 부르크 -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한다(*이 도시는 1712년에 완공된다. '성베드로의 도시'란 뜻도 가지지만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의 도시'란 뜻도 포함하고 있다). 서구 유럽 지향적 전제 군주의 결정에 따라 러시아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고, '서구를 향한 창', '북방의 베니스'는 이렇게 해서 탄생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천국의 열쇠를 쥔 사도 베드로처럼 발트해로 나가는 열쇠이자 서구로 향하는 길목의 열쇠를 지니고, 러시아의 황실 문장인 '쌍두 독수리'처럼 동과 서를 바라보며 세계의 중심을 이곳에 건설하겠다는 피터 대제의 야망과 의지가 반영된 도시이다. 이제 피터 대제의 장엄한 모습은 G8의 로고 모델이 되어, 30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대작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의 현대판 짜르 푸틴에 의해 그 꿈이 실현되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서방 선진 8개국 회담의 올해 의장국인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열리는 이번 G8회담을 통해 러시아의 재건을 다짐하고 있다. 이번 G8회담의 공식 의제는 에너지 안보, 전염병 예방, 교육 세 가지다. 여기서 푸틴의 야심은 에너지 분야에 있다. 이미 올 1월 우크라이나와의 가스분쟁을 통해 전세계에 러시아의 야욕을 보여줬다. 냉전 시절 러시아가 핵무기 보유국으로 미국과 함께 세계를 지배했던 강국이었다면, 오늘날의 러시아는 에너지를 기반으로 과거 소련시절 초강대국의 면모와 위상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President of the Russian Federation Vladimir Putin

-한편 임기를 1년 남긴 푸틴은 이번 G8회담을 통해 자신의 인기와 권력을 더욱 견고히 하여, 순조로운 권력이양 또는 3선 전략을 추진하고자 한다. 러시아 대통령은 헌법상 연임만 가능하나, 헌법을 개정하거나 벨라루시와의 통합을 통한 신 헌법에 의해 장기집권의 길을 실현시킬 수 있다.

인권 들먹이는 서방국들, 뒤로는 자원협력 손 내밀어

▲ G8 정상회담이 열리는 콘스탄틴 궁전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인공위성,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것은 러시아의 자원'이라고 말했듯이,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를 포함한 풍부한 자원과 최근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인한 경제적 성장으로 자원 부국의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러시아의 인권과 민주주의 퇴보를 들먹이고 G8회담 보이코트까지 거론하며 러시아를 압박했던 서방국들도 러시아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는 실정이다.

-푸틴의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푸틴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권위주의를 강화하며 러시아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서방 정치인들의 발언에, "민주주의는 감자가 아니다, 감자가 자라지 않는 곳에 감자를 심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며 러시아를 건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통해 서방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러시아는 주권국가이니 러시아의 내부 일에 간섭하지 말고 러시아를 존경하라, 그렇지 않으면 협력(에너지)과 상호이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과거 소련시절의 대중 선동술을 이용해 G8의 의장국, 개최국의 모습을 러시아인들에게 보여주고 대국으로서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에너지 무기화 정책의 선봉장인 국영 에너지기업 '가즈프롬'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부시와의 단판 승부를 통해 마지막 남은 WTO 가입 동의안을 매듭지어 러시아를 글로벌 경제대열에 합류시키고자 한다.

-제2선에서는 체젠문제, 인권문제, 민주주의 퇴보, 언론의 자유를 거론하며 러시아를 비난하지만, 제1선에서는 에너지 협력과 공동 경협 프로젝트 및 투자 제안을 하는 서방국가들의 딜레마를 푸틴은 너무나 적절하게 잘 이용하고 있다. KGB출신 답게 심리전과 전략의 대가이다. 300년전 피터 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했던 야망을 푸틴은 자신의 고향인 이곳에서 G8 정상회담을 통해 실현시키려 하고 있다.

▲ G8회담에 맞춰 새롭게 단장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

06. 07. 16.

P.S. 한편에서는 G8 회담 반대시위도 있었던 모양이다. "양키 고우 홈!"이란 피켓도 보인다.

P.S.2. 동아일보의 칼럼 하나도 참고삼아 옮겨온다. 타이틀은 '푸티니즘'이고, 필자는 김순덕 논설위원이다.

동아일보(06. 07. 15) 어제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장 기뻐하는 사람 중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을 게 틀림없다. 석유생산량 세계 2위인 러시아의 대통령답게 국민의 지지도가 유가와 동반상승해 70%를 넘겼다. 오늘부터 러시아에서 열리는 G8(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의 참가자 가운데 이만한 인기를 누리는 지도자는 없다. 비결은 ‘강한 나라, 강한 리더’로 요약된다.

러시아 경제는 2000년 푸틴 대통령 취임 이래 연평균 6% 성장했다. 임금이 매년 10%씩 올라가니 국민은 대통령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유가상승 덕이 크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이룩한 ‘정치적 안정’이 없었다면 고도성장과 국민적 자부심의 회복이 지금만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G8 정상회의에서 북한 미사일이니, 에너지 안보니 아무리 큰 의제를 외친대도 러시아인들의 귀엔 안 들릴 것 같다. 그들의 주제는 하나다. ‘다시 보라, 세계무대로 돌아온 위대한 러시아를!’

푸틴 대통령의 카리스마를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시초프)의 증손녀 니나 흐루셰바는 ‘푸티니즘(Putinism)’이라고 했다. 스탈린 숭배, 공산주의, KGB 정신에 약간의 시장주의를 합친 변종 이데올로기다. 1991년 소련 붕괴 뒤 러시아인들은 극심한 혼돈과 빈곤을 체험하며 민주주의에 실망했다. 당당했던 소련과 러시아제국, 스탈린과 황제가 그리워졌다. 자유가 좀 없었지만 그건 일부 개인의 문제였다. 그때 일거에 혼란을 정리하고 국민을 사로잡은 영웅이 푸틴이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자유민지주의와 더 멀어진 나라가 됐다. 경제는 물론이고 의회와 사법부, 언론까지 몽땅 크렘린 손아귀에 잡혀 있다. 부패와 비효율이 엄청나다. 오일머니만 믿고 산업경쟁력을 키우지 않는 대가도 언젠가 치를 것이다. 아무튼 푸틴이라는 ‘괴물’을 어찌 대해야 할지 G7 정상들은 고민스러울지 모른다. 외교의 거장 헨리 키신저는 무겁게 말하고 있다. “적으로 여기면 잘못이다. ‘표트르 대제(大帝)’ 같은 러시아 파워가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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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 7월 15일은 1904년 7월 15일 세상을 떠난 러시아 작가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의 서거 102주기를 맞는 날이다. 2년전, 그러니까 2004년 7월 15일 서거 100주기를 맞이하여 모스크바통신에 올렸던 글을 정리해서 옮겨놓는다(페이퍼의 원래 제목은 '안톤 체호프, 혹은 등신스러움의 예찬'이었다). 이미지도 몇 개 같이 띄우고. 주말까지는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7월 15일)이 러시아의 작가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의 서거(逝去) 100주기를 맞는 날이다. 이미 지난 통신문에서 언급한바 있지만, 그가 독일의 한 휴양도시(뉴스에서 보니까 이 휴양도시 바덴바일러에는 체홉박물관이 생겼으며, 그가 묵었던 숙소도 인테리어는 달라졌지만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한 날짜는 러시아의 구력(舊曆)으로 7월 2일이고, 신력(新曆)으로는 7월 15일이다. 물론 그가 살았던 시대와는 달리 요즘에는 신력을 쓰기 때문에 오늘이 ‘공식적인’ 사망일인 셈이다(*아래는 바덴바일러의 체호프박물관. 앞에서 적은 대로 2004년 7월 15일 개관했다).  

그는 (구력으로) 1904년 6월 3일 의사의 권유에 따라 요양차 독일의 바덴바일러로 아내 크니페르와 함께 떠났었고, 건강이 약간 호전되는 듯하자 이탈리아 여행(콘스탄티노플을 거쳐서 얄타로 돌아오려고 했다)까지 계획했었다. 하지만 7월 2일 새벽 1시에 그의 병세(‘폐결핵’으로 기억된다)가 갑자기 악화되어 호흡이 곤란해지기 시작했고, 급하게 달려온 의사는 심장 쇼크라고 진단한다. 장뇌(樟腦)까지 동원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그는 점차 혼수상태에 빠져든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린 그는 얼음주머니로 가슴을 마사지하려는 아내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텅 빈 심장에는 얼음을 놓지 않는다오.” 의사가 새로운 산소통을 가져오도록 했지만, 체홉은 만류한다. “그들이 오기 전에 나는 죽을 겁니다.” 그는 새벽 3시에 숨을 거둔바, 마지막 순간까지 의연하게 평정을 지켰다고 한다. 샴페인을 마시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고도 하고(*아래는 바덴바일러에 세워진 체호프의 동상).



해서, 예의상 다른 할 일들을 잠시 제쳐놓고 그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한다. 물론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지만(이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최소한 ‘입막음’ 정도는 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이다. 잘 준비된 글을 쓰고 싶지만, 그건 한 ‘세월’을 필요로 할 듯하다(우리의 인생은 고작 몇 사람의 작가를 읽고 이해하기에도 너무 짧다!).

오늘 저녁 러시아의 채널 ‘쿨투라(=문화)’에서는 기념일을 맞아 <체호프를 찾아서>란 특집프로그램과 함께 그의 원작을 영화화한 <다락방이 있는 집>(1960)을 방송한다. 이미 읽은 단편인데, 내용은 영화를 좀 봐야지만 기억에 떠올릴 수 있을 듯하다(내 경우에 체홉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런 식이다. 즉, 강하게 각인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볍게 지나가버린다.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와는 달리, 체홉은 우리의 삶에 좀처럼 간섭하고자 하지 않는 작가이다. 그는 배우였던 아내 크니페르의 삶에도 간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녁 약속이 있어서 영화를 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쿨투라’에서는 어제 이미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1937- )의 <바냐 아저씨>(1970)를 방영했고, 내일은 세번째 시리즈로 니키타 미할코프(1945- )의 <피아노를 위한 미완성 희곡>(1977)을 방영한다. 다행스러운 건 이 두 편의 영화 모두 한국에도 출시돼 있다는 점인데(생각하면 이례적이다), 한번 비디오가게들을 뒤져 보시길. 모두 볼 만한 영화들이다. <바나 아저씨>는 한국에서 처음 봤을 때 좀 평범하다 싶었는데, 어제 다시 보니까 수작이다. 일단 캐스팅 면에서, 최근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레프 도진의 연극 <바냐 아저씨>보다 ‘사실적’이다...

저녁을 먹고 ‘꿀뚜라’에서 <피아노를 위한 미완성 희곡>을 보았다. 3일 동안 특집으로 편성된 체홉 작품 3편을 영화로 보았는데, 어제 본 <다락방이 있는 집>이 평범한 영화라면, 그제 본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바냐 아저씨>는 수작이고, 오늘 본 니키타 미할코프의 <피아노를 위한 미완성 희곡>은 걸작이다. <다락방이 있는 집>은 조금 늦게 보는 바람에 감독이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전형적인 ‘소비에트 문예영화’이며 작품의 줄거리는 그대로 옮기고 있지만 평면적이고 아무런 영감도 주지 않는다. 이런 영화들을 보노라면 미할코프-콘찰로프스키 형제의 영화가 얼마나 뛰어난가를 새삼 알게 된다.

<바냐 아저씨>의 경우 캐스팅 면에서 보다 ‘사실적’이란 얘기를 서두에서 했는데, 의사인 아스트로프 역으론 수염이 덥수룩한 세르게이 본다르추크(1920-1994)가 나온다. 9시간짜리 대작 <전쟁과 평화>(1967)의 감독 말이다(국내에서도 상영되었던 극장판은 3시간짜리 축약판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일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혹 본다르추크란 이름을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1960-70년대 소비에트 영화의 한 ‘권력’이었던 본다르추크를 타르코프스키는 혐오스러운 인물로 몇 차례 언급한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망명감독 타르코프스키와는 달리(타르코프스키는 ‘소비에트 감독’이 아니라 ‘러시아 감독’이다) 소비에트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의 한 명이자 배우였다. <전쟁과 평화>에서도 중요한 배역으로 나오며(*사진의 피에르 베주호프 역이다) 역시 자신이 감독한 푸슈킨 원작의 영화 <보리스 고두노프>에서는 주역인 ‘고두노프’로 출연한다. 더불어 나는 보지 못했지만, 체홉의 중편 <스텝>을 영화로 찍었다고 한다.

이 본다르추크의 ‘아스트로프’는 도진의 <바냐 아저씨>에 나오는 샤프하고 빈틈없어 보이는 ‘아스트로프’와는 달리 ‘바냐 아저씨’와 함께 피로한 나날의 일과에 찌든 중년의 사내로 등장하며 내가 보기엔 그것이 체홉의 원작에 더 충실하다(원작에서 바냐 아저씨는 47세이며 친구인 아스트로프도 비슷한 나이이다). 머리가 벗겨진 ‘세레브랴코프’도 도진 연극에서의 ‘김무생 같은’ ‘세레브랴코프’보다는 내가 상상하는 ‘세레브랴코프’와 더 잘 맞는다. 유모나 바냐의 모친도 연극에서보다는 더 적절한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내가 연극보다는 영화를 더 선호하는 탓일 수도 있다). 콘찰로프스키는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특별히 인물에 대한 클로즈업과 배경공간에 대한 딥-포커스를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화면에 깊이와 긴장을 부여하고 있다. 이 정도 수준으로 영화를 뽑아내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동생 미할코프는 한술 더 뜬다. 내 기억에 그의 세 번째 작품쯤 되는데, 30대의 감독 미할코프는 이미 거장다운 솜씨로 체홉의 미완성 희곡을 완벽하게 영화의 언어로 옮겨놓고 있다(이미 이전에 언급한바 있지만, 레프 도진이 연출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는 것은 역시 이 미완성 희곡을 무대에 올린 <제목 없는 희곡> 덕분이었다. 이 작품의 연출기가 그의 환갑을 기념해서 책으로 나왔다는 얘기도 이미 했는데, 곧 서점에서 구해볼 생각이다). 더불어 본다르추크와 함께 아마도 러시아에서 가장 대표적인 배우 겸 감독일 미할코프는 이 영화에서도 조연이긴 하지만 제 몫의 연기를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그가 맡은 역도 의사이다. 사진의 가운데 남자. 왼쪽의 여인은 소피야, 오른쪽은 플라토노프의 아내 사샤).

국내에 출시돼 있는 그의 영화는 이 영화를 포함해서 <오블로모프의 생애>(1979)(<오브로모프의 생애>로 돼 있다), <위선의 태양>, <러브 오브 시베리아>(원제는 <시베리아의 이발사>) 등인데, 그의 가장 뛰어난 연기는 주연으로 출연한 <위선의 태양>에서 볼 수 있다(이 영화에는 그의 딸 나디야가 함께 출연하며, 그가 황제 알렉산드르 3세로 등장하는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에는 큰딸 안나도 나디야와 함께 출연한다). 소비에트의 영화 권력이었던 본다르추크와 마찬가지로 미할코프 또한 포스트-소비에트의 한 영화권력으로서 모스크바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본다르추크와는 다르게 내가 일부에서는 국수수의자라고 비난하기도 하는 미할코프를 신뢰하는 이유는 순전히 그가 영화를 잘 만들기 때문인데, 더구나 그게 ‘체호프적인’ 영화일 경우에는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주는 수밖에 없다. 액션이나 스릴러 같은, 혹은 멜로드라마나 코미디라도, 장르영화의 경우에는 인간성이 모자라거나 더러운 감독도 잘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없이 체홉의 작품을 영화로 잘 만든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그것이 나의 편견이라면 편견이다). 왜 그런가? 체홉 작품의 중심은 ‘잘난 놈들’의 이념이나 행동이 아니라 ‘못난 놈들’의 무능력과 불가피한 회한이기 때문이다. 단편소설과 중편소설까지는 썼지만 그가 장편소설은 쓰지 못한/않은 이유가 나는 거기에 있다고 본다. 그는 장편을 지탱할 만한 이념이나 행동을 인물에게 부여할 수 없었다. 그가 쓴 것은 고작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드라마들이었다.

한 연구자의 표현을 빌면, 그의 희곡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하나같이 ‘등신들’인바, 등신들을 데리고는 장편소설을 꾸려나갈 수가 없다. 그들은 모험에 나설 만한 용기도, 여자들을 꼬실 만한 재간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고 사색가나 사상가들도 아니다. 그러니 무슨 ‘소설’이 되겠는가? 참고로, 그의 작품들에 자기 이름을 가지고 등장하는 인물들의 총 2,355명이다. 이건 내가 조사한 게 아니라 어제 나온 <니자비씨마야>의 신간 서평에서 읽은 것이다. 체호프에 관한 최신간의 제목은 <안톤 체호프의 모든 주인공 – 모든 러시아>(2004, 256쪽)인데, 저자는 마리나 트카첸코이고 책은 일종의 등장인물사전이다(요컨대 A에서 Z까지). 그리고 이 인물들의 숫자가 말해주는바, 책의 부제대로 ‘모든 러시아’ 혹은 ‘러시아 전체’를 카바하고 있다.

더불어 체홉의 작품을 영화/연극에서 연기한 유명한 배우들의 이름들까지도 망라하고 있다니까 러시아 ‘백과사전’으로도 손색이 없겠다(물론 서평자는 몇 사람이 빠졌다는 지적을 하고 있지만). 저자인 트카첸코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서도 완전한 등장인물 목록(=사전)을 만들 계획이라고 하는데, 그녀도 좀 오래 살아야겠다(책 구경을 하려면 나도 오래 살아야겠고). 하여간에 2,355명이 등장하는바, 그 대부분이 ‘등신들’이며 그러한 인간들의 무능력(나약함)과 회한을 이해할 만한 사람이라면, 인간에 대한 연민을 평균치 이상 갖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는바, 우리가 그런 사람을 믿어서 손해 볼 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학교수인 처남(세레브랴코프)을 숭배하면서 25년간을 그 뒷바라지 하느라 ‘도스토예프스키’(=잘난 소설가)도 ‘쇼펜하우어’(=잘난 철학자)도 되지 못한 우리의 ‘바냐 아저씨’의 경우가 웅변적을 말해주듯이, 체홉의 인물들은 “될 수도 있었던” 혹은 “할 수도 있었던” 삶의 중요한, 결정적인 모멘트들을 두 눈 다 뜨고 놓쳐버린 가련한 ‘등신들’이다(3막에서 분노가 폭발한 바냐는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있는 세레브랴코프에게 총을 쏘지만 그마저도 빗나간다). 그걸 확인한 이상, 차라리 ‘자살’이라도 하면 본때라도 날 테지만(<갈매기>에서 권총 자살하는 트레플료프처럼), 이 ‘등신들’은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무런 희망 없이 담담한 회한만을 가슴에 안은 채 예전의 삶으로, 일로 되돌아간다. 정말 등신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말이다. 누가 그들의 ‘등신스러움’을 비웃을 수 있을까? ‘도스토예프스키’와 ‘쇼펜하우어’가 아니라면, ‘영악한 놈들’뿐이다. 내 생각에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제법 잘난 소설가와 철학자들은 그다지 많을 거 같지 않으므로 대부분은 ‘영악한 놈들’일 확률이 높다. 다시 말해서, 만약에 당신이 체홉의 문학이 다소 싱거우며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다면(혹은 아직도 별로 읽은 게 없다면), 당신은 자기 생각에 아주 ‘똑똑한 사람’이며(적어도 ‘똑똑한 체하는 사람’이며), 나의 분류에 따르면 아주 ‘영악한 놈’이다.

이런 일에는 굳이 발뺌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세상의 한편엔 등신들이 있고, 다른 한편엔 그들을 등쳐먹고 사는 영악한 놈들이 있는 것이니까(가령, 자치단체 의원이라고 뽑아놓으면 해마다 남들 휴가철에 ‘의원외교’ 하러 ‘해외연수’ 가는 놈들 말이다. 혹은 외제차 타고 다니는 ‘일부’ 주지/목사님들 말이다. 또 짜집기한 리포트로 학점 잘 받았다고 좋아하는 ‘일부’ 대학생들이나, 표절한 논문으로 연구비 타먹는 ‘일부’ 교수님들 말이다). 이런 ‘영악한 놈들’이 권력의 맛을 좀 알면 ‘사악한 놈들’이 되는 건 시간 문제이다.

해서 나는 교육적인 목적에서뿐만 아니라 ‘세계평화’를 위해서라도 젊은 세대들에게 체호프를 보다 많이 읽히고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자신의 ‘등신스러움’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거나 한탄할 게 아니라 ‘등신스러움’의 그 유구한 보편성(!)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고, 등신들끼리의 ‘연대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합창하는 정신으로). 물론 세상은 등신들이 바꿔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건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혹은 ‘체르니셰프스키’)나 ‘쇼펜하우어’(혹은 ‘헤겔’)의 몫일 것이다(그런 결정적인 순간에 ‘도스토예프스키’와 ‘쇼펜하우어’를 주워섬기는 우리의 ‘바냐’는 얼마나 눈물겹도록 등신스러운 것인지!). 하지만 적어도 ‘영악한 놈들’한테 당하고만 살지 않기 위해서는 등신들의 확실한 주제파악이 필요하다. 자신이 등신인 줄 모르거나 8등신만 좋아하는 등신이 상(上)등신이므로.



<피아노를 위한 미완성 희곡>에 등장하는 ‘등신’의 이름은 ‘플라토노프’이다(사진). 그래서 체호프가 쓴 최초의 희곡이자 미완성 희곡(전집에는 ‘아비 없는 자식’으로 들어가 있다)인 이 작품은 <플라토노프>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35세이지만 이미 머리가 반 이상 벗겨진, 시골학교의 교사이다. 한편 소피야는 오래 전, 정확히는 7년 전에 헤어진 옛 애인 플라토노프와 우연한 자리에서 재회하는데, ‘젊은 이상가’였던 그가 고작 ‘교사’라는 사실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게다가 그에게는 소박하지만 촌스러운 아내 사샤가 붙어 있다. 반면에 플라토노프는 지적이면서도 강인한 여인 소피야가 어째서 한심하면서 유치한 ‘마마보이’ 귀족과 결혼했는지 의아해하며 그녀를 비난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엔 7년간 잊혀졌던 사랑이 다시 불붙는다. 이제 어찌해보기에는 너무 뒤늦은 사랑이…

미할코프는 러시아식 별장(=다차)의 파티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이런저런 얘기와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미묘하게 변화해가는 두 사람의 심리를 섬세하게 주시하면서, 때론 한 템포 늦춰 관조하면서 따라간다. 아마도 이 영화를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너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서 떠들어대는 초반부가 얼른 눈에 익지 않을 것이다(나도 그랬으니까). 해서, 이 영화의 진면목, 곧 체호프의 진면목은 두 번, 세 번 보아야 알 수 있다(나는 대여섯 번 본 것 같다). 체호프의 단조로운 듯한 단편들도 두 번, 세 번 곱씹어 읽어야만 제맛을 느낄 수 있듯이 말이다. 해서, 그 ‘제맛’을 좀 느끼게 되면, 이 한심한 인물들의 ‘회한의 드라마’에 웃음이 터지고 눈물이 나오게 된다. “우리가 원했던 삶은 이게 아니었어!”(“하지만, 난 벌써 서른 다섯 살이야!”)



영화의 절정에서 회한과 절망이 폭발한 플라토노프는 울부짖으면서 주연장을 뛰쳐나가고 곧장 바닷가의 절벽으로 내달려간다. 그리고 그 뒤를 아내인 사샤가 “미셴까! 미셴카!”(플라토노프의 이름인 ‘미하일’의 애칭)를 울부짖듯이 다급하게 부르며 쫓아간다. 그 다음 장면은 혹 이 영화를 직접 구해볼 사람들을 위해서 말하지 않겠다. 다만, ‘아, 미할코프!’(혹은 ‘아, 체호프!’)에 값한다는 것만은 장담할 수 있다. 얼마나 눈물겨우면서 웃기는 장면인 것인지!..  

04. 07. 15./ 06. 07. 14.

 

 

 



P.S. <피아노를 위한 미완성 희곡>이란 제목에서 ‘피아노’는 영어로 ‘mechanical piano’이다. 이걸 ‘기계피아노’라고 하는지 ‘자동피아노’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영화 초반에 이 피아노가 등장하는데, 하인이 연주하는 척하지만 연주곡이 입력돼 있는 자동 피아노이어서 사람이 건반을 치지 않아도 저절로 연주곡이 흘러나온다(이걸 보고 사샤가 놀라서 현기증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이 자동피아노가 상징하는 바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건 ‘손 한번 못 대본 삶’이다. 즉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버린 삶, 등신 같은 삶이다. 내가 결석한 삶이며, 나 없이도 잘만 굴러가는 세상이다. 혹 이런 자동피아노가 매혹적이라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등신이 아니라 ‘영악한 놈’일 확률이 높다. 더불어 ‘인간-등신들’보다는 ‘기계-인간들’의 미래를 더 선호할 가능성도.

‘기계-인간들’의 구호가 체르니셰프스키와 레닌의 구호, “무엇을 할 것인가?”(=슈또 젤라찌?)라면, ‘인간-등신들’의 구호는 “어떻게 할 것인가?”(=까끄 젤라찌?)이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떻게, 어떻게 할 것인가?”(=까끄, 까끄 젤라찌?)이다. 여기서 ‘어떻게’의 반복은 중요하면서도 필수적인데, 그것은 ‘어떻게’의 수단성과 방법론을 무력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젤라찌’라는 ‘하다(do)’ 동사는 별 의미가 없게 되며, 남는 건 “어떻게, 어떻게”(까끄, 까끄)이다. 이건 데리다가 조이스론에서 분석하고 있는 “예스, 예스(yes, yes)”의 체홉 버전이라고까지 말하고 싶을 지경인데, 어쨌든 이 “까끄, 까끄(kak, kak)”의 우리말 번역이 “어떻게, 어떻게”이며, 이걸 한 단어로 바꾸면 ‘어쩌자고’이다.

이 ‘어쩌자고’는 “이런 세상에, 어쩌자고, 세상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고 시인 이성복이 노래/탄식할 때의 그 ‘어쩌자고’이다. 그의 시구에서 ‘어쩌자고’ 대신에 반복되는 것은 ‘세상에’인데, 뒤집어서 말하면, “까끄, 까끄”의 또 다른 우리말 번역은 “세상에나, 세상에나”이며, 그것은 흔히 등신들을 일컫는바 “인간아, 인간아”로 번역되어도 무방하겠다. 이 ‘어쩌자고’의 문학, ‘세상에나, 세상에나’의 문학, ‘인간아, 인간아’의 문학으로서의 ‘까끄, 까끄’ 혹은 러시아문학의 한 갈래로서의 ‘까끄, 까끄’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더 자세히 말하도록 하겠다(나는 이런 ‘등신짓’을 할 게 아니라 당분간 번역을 해야 한다).

한편, 미할코프의 <피아노를 위한 미완성 희곡>이 국내에 처음 출시된 것은 1991년도이다. 내가 특별히 비상한 기억력을 갖고 있는 건 아니고, 정성일의 영화평에 그렇게 나와 있다. 그는 1992년 1월에 <91년 비디오 베스트 10>을 꼽으면서 그 중의 한편으로 이 영화를 지목했다. 그대로 옮기면 “소련의 해체 뉴스가 91년도 뉴스 베스트 10에 낀다면 다음의 소련영화는 비디오 10편에 선정되어야 할 것이다. 니키타 미하르코프의 <피아노를 위한 미완성 희곡>(우진시네마)은 소련영화가 모두 프로파간다라는 이쪽의 선전이 거짓말임을 보여준다. 안톤 체호프의 원작을 화면으로 옮긴 이 영화는 섬세하며 서정적이고 부드럽다. 이러한 문화유산이 있는 한 소련은 해체될지언정 쉽사리 잊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미하르코프’보다는 ‘미할코프’가 좀더 정확한 표기이며, “섬세하며 서정적이고 부드럽다”란 평에는 나도 동의한다(하지만, 후반부는 격정적이다). 

P.S.2. <시베리아의 이발사>(1998) 이후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니키타 미할코프가 두 편의 신작을 준비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그 중 한편은 <위선의 태양>의 속편으로 전편의 배우들이 대부분 다시 캐스팅되었다. 미남 배우 올렉 멘쉬코프(아래 사진)와 미할코프의 딸 나제즈다(나디야; 나쟈, 위의 사진)도 다시 선보인다는 얘기. 내년쯤 개봉할 예정인 듯한데 제법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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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6-07-17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이 아니라 <중간이층이 있는 집> 아닌가요? 주인공이 언니와 동생 두 여인과 회으주의적 남자주인공 나오는 그런 스토리 아닙니까?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에도 이 책 이야기가 나오는데...

로쟈 2006-07-17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자매와 풍경화가가 나오는 이야기 맞습니다. <다락방이 있는 집>이란 번역만 봤는데, <중간이층이 있는 집>이라고도 번역돼 있군요. 중간이층이라기보다는 우리식 개념으론 '옥탑방'에 가깝습니다. 2층 위에 방 하나 더 얹어놓은 것입니다...

사마천 2006-07-18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문열 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번안해가지고 문학회에서 자기가 지은 것처럼 발표했다가 망신을 당합니다. 당신만 외국어 아느냐고... ^^
당시는 불온서적이라 국내에 번역이 안되었다고 하더군요.
내용은 꽤 서정적인데 체홉까지 불온화하던 박정희 시대란 놀랍죠...

로쟈 2006-07-1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핏 기억이 나는데, 이 작품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