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G8 서방 선진국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다. 이전엔 'G7+1'이라고 표기했던 듯한데, G8이라고 하는 걸 러시아도 당당히 '선진국'  대우를 받는 모양이다. 하긴, 경제적으로야 아직 거기에 못 미치지만 외교적, 군사적으로야 못 끼여들 건 아니겠다. 오마이뉴스(06. 07. 15)에서 관련기사를 옮겨온다. 필자는 정인고 기자이고, 타이틀은 '푸틴, 피터 대제의 꿈에 도전하나'이다. '표트르 대제'를 '피터 대제'라고 표기하는 것으로 보아 필자는 러시아통은 아니고 영어권 보도을 종합해서 기사를 작성한 듯하다.

피터 대제의 야망이 반영된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 G8 정상회담의 공식로고(왼쪽)와 피터 대제의 청동기마상

-1703년 피터 대제는 핀란드만과 네바강의 어귀에 상트 페테르부르크(영어 ST. PETERSBURG), 즉 '성베드로의 도시(상트 - 성, 페테르 - 베드로, 부르크 -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한다(*이 도시는 1712년에 완공된다. '성베드로의 도시'란 뜻도 가지지만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의 도시'란 뜻도 포함하고 있다). 서구 유럽 지향적 전제 군주의 결정에 따라 러시아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고, '서구를 향한 창', '북방의 베니스'는 이렇게 해서 탄생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천국의 열쇠를 쥔 사도 베드로처럼 발트해로 나가는 열쇠이자 서구로 향하는 길목의 열쇠를 지니고, 러시아의 황실 문장인 '쌍두 독수리'처럼 동과 서를 바라보며 세계의 중심을 이곳에 건설하겠다는 피터 대제의 야망과 의지가 반영된 도시이다. 이제 피터 대제의 장엄한 모습은 G8의 로고 모델이 되어, 30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대작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의 현대판 짜르 푸틴에 의해 그 꿈이 실현되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서방 선진 8개국 회담의 올해 의장국인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열리는 이번 G8회담을 통해 러시아의 재건을 다짐하고 있다. 이번 G8회담의 공식 의제는 에너지 안보, 전염병 예방, 교육 세 가지다. 여기서 푸틴의 야심은 에너지 분야에 있다. 이미 올 1월 우크라이나와의 가스분쟁을 통해 전세계에 러시아의 야욕을 보여줬다. 냉전 시절 러시아가 핵무기 보유국으로 미국과 함께 세계를 지배했던 강국이었다면, 오늘날의 러시아는 에너지를 기반으로 과거 소련시절 초강대국의 면모와 위상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President of the Russian Federation Vladimir Putin

-한편 임기를 1년 남긴 푸틴은 이번 G8회담을 통해 자신의 인기와 권력을 더욱 견고히 하여, 순조로운 권력이양 또는 3선 전략을 추진하고자 한다. 러시아 대통령은 헌법상 연임만 가능하나, 헌법을 개정하거나 벨라루시와의 통합을 통한 신 헌법에 의해 장기집권의 길을 실현시킬 수 있다.

인권 들먹이는 서방국들, 뒤로는 자원협력 손 내밀어

▲ G8 정상회담이 열리는 콘스탄틴 궁전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인공위성,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것은 러시아의 자원'이라고 말했듯이,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를 포함한 풍부한 자원과 최근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인한 경제적 성장으로 자원 부국의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러시아의 인권과 민주주의 퇴보를 들먹이고 G8회담 보이코트까지 거론하며 러시아를 압박했던 서방국들도 러시아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는 실정이다.

-푸틴의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푸틴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권위주의를 강화하며 러시아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서방 정치인들의 발언에, "민주주의는 감자가 아니다, 감자가 자라지 않는 곳에 감자를 심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며 러시아를 건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통해 서방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러시아는 주권국가이니 러시아의 내부 일에 간섭하지 말고 러시아를 존경하라, 그렇지 않으면 협력(에너지)과 상호이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과거 소련시절의 대중 선동술을 이용해 G8의 의장국, 개최국의 모습을 러시아인들에게 보여주고 대국으로서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에너지 무기화 정책의 선봉장인 국영 에너지기업 '가즈프롬'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부시와의 단판 승부를 통해 마지막 남은 WTO 가입 동의안을 매듭지어 러시아를 글로벌 경제대열에 합류시키고자 한다.

-제2선에서는 체젠문제, 인권문제, 민주주의 퇴보, 언론의 자유를 거론하며 러시아를 비난하지만, 제1선에서는 에너지 협력과 공동 경협 프로젝트 및 투자 제안을 하는 서방국가들의 딜레마를 푸틴은 너무나 적절하게 잘 이용하고 있다. KGB출신 답게 심리전과 전략의 대가이다. 300년전 피터 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했던 야망을 푸틴은 자신의 고향인 이곳에서 G8 정상회담을 통해 실현시키려 하고 있다.

▲ G8회담에 맞춰 새롭게 단장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

06. 07. 16.

P.S. 한편에서는 G8 회담 반대시위도 있었던 모양이다. "양키 고우 홈!"이란 피켓도 보인다.

P.S.2. 동아일보의 칼럼 하나도 참고삼아 옮겨온다. 타이틀은 '푸티니즘'이고, 필자는 김순덕 논설위원이다.

동아일보(06. 07. 15) 어제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장 기뻐하는 사람 중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을 게 틀림없다. 석유생산량 세계 2위인 러시아의 대통령답게 국민의 지지도가 유가와 동반상승해 70%를 넘겼다. 오늘부터 러시아에서 열리는 G8(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의 참가자 가운데 이만한 인기를 누리는 지도자는 없다. 비결은 ‘강한 나라, 강한 리더’로 요약된다.

러시아 경제는 2000년 푸틴 대통령 취임 이래 연평균 6% 성장했다. 임금이 매년 10%씩 올라가니 국민은 대통령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유가상승 덕이 크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이룩한 ‘정치적 안정’이 없었다면 고도성장과 국민적 자부심의 회복이 지금만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G8 정상회의에서 북한 미사일이니, 에너지 안보니 아무리 큰 의제를 외친대도 러시아인들의 귀엔 안 들릴 것 같다. 그들의 주제는 하나다. ‘다시 보라, 세계무대로 돌아온 위대한 러시아를!’

푸틴 대통령의 카리스마를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시초프)의 증손녀 니나 흐루셰바는 ‘푸티니즘(Putinism)’이라고 했다. 스탈린 숭배, 공산주의, KGB 정신에 약간의 시장주의를 합친 변종 이데올로기다. 1991년 소련 붕괴 뒤 러시아인들은 극심한 혼돈과 빈곤을 체험하며 민주주의에 실망했다. 당당했던 소련과 러시아제국, 스탈린과 황제가 그리워졌다. 자유가 좀 없었지만 그건 일부 개인의 문제였다. 그때 일거에 혼란을 정리하고 국민을 사로잡은 영웅이 푸틴이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자유민지주의와 더 멀어진 나라가 됐다. 경제는 물론이고 의회와 사법부, 언론까지 몽땅 크렘린 손아귀에 잡혀 있다. 부패와 비효율이 엄청나다. 오일머니만 믿고 산업경쟁력을 키우지 않는 대가도 언젠가 치를 것이다. 아무튼 푸틴이라는 ‘괴물’을 어찌 대해야 할지 G7 정상들은 고민스러울지 모른다. 외교의 거장 헨리 키신저는 무겁게 말하고 있다. “적으로 여기면 잘못이다. ‘표트르 대제(大帝)’ 같은 러시아 파워가 부활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