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컬트여행지' 연재에서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편을 옮겨온다. 중부 시베리아의 한 부분을 가리키는 광활한 지역인데, 나는 막연하게 시베리아의 한 도시 정도의 표상만을 갖고 있(었)다. 대학 1학년 때인가 러시아어 교재에서 유독 '크라스노야르스크'란 지명이 자주 등장했고, 그때 갖게 된 이미지이다. 이후로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지명인데, 레닌박물관과 수리코프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알게 됐다. 경관이 수려하다. 

경향신문(07. 08. 30) [세계의 컬트여행지](20)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시베리아라는 지명을 듣는 순간,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란 사실 학창 시절 배운 세계지리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동토의 땅 툰드라와 침엽수림지대인 타이가,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바이칼 호수가 있는 땅 정도. 조금 더 머리를 굴려보자면 19세기에 정치범들의 유형지였다는 정도일 터.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도 시베리아에 관한 정보란 요즘 여행객들이 찾는다는 바이칼 호수와 노보시비리스크, 이르쿠츠크 등 시베리아 도시들에 관한 것뿐이었다. 목적지였던 시베리아 중앙의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에 관한 정보라고는 예니세이강 부근에 자리하고 있으며 세계 3대 수력발전소 중 하나라는 크라스노야르스크 발전소가 있다는 것뿐이었다(*아마도 건설될 당시의 랭킹인 듯하다. 현재는 8위 이하로 떨어져 있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은 이렇듯 우리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다. 하지만 이 일대는 대형 신석기시대의 묘, 신석기인들의 사냥감인 동물과 훈족의 모습까지 새긴 샬라볼리노 마을의 암각화, 한때 레닌이 유형생활을 했던 슈센스코 등 다양한 유적이 남아있는 인류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지다.



신석기부터 레닌까지 인류의 역사가 남아있는 대평원

크라스노야르스크 공항에 내린 순간 ‘여기가 시베리아로구나’를 단연 실감케 했던 것은 서늘한 바람과 맑은 공기였다. 서울의 공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청량한 공기. 게다가 높고 푸른 하늘 아래로 시계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드넓게 펼쳐진 목초지와 밀밭, 검붉은 땅 위에 수직자세로 선 자작나무들은 이국의 여행자를 매혹하기에 충분했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은 러시아연방공화국을 형성하는 6대 지역 중 하나로 동서 길이는 1250㎞, 남북 길이는 3000㎞에 달한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에는 하카시아공화국과 에벵키 자치구, 타이미르스키 자치구가 포함돼 있으며 스텝과 타이가, 툰드라, 극지사막 등 다양한 지형이 나타난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 남부 일대는 시베리아에서도 오지에 속한다.

거대한 호수를 연상시키는 예니세이강을 따라 크라스노야르스크 남부지대로 향했다. 하카시아공화국에 들어서자 드넓은 초지에 검붉은 거석이 드문드문 서 있는 모습이 영국의 스톤헨지를 닮았다. 가까이서 보면 어른 허리께 정도 오는 작은 돌들이 대부분으로 스톤헨지와 비교하면 턱없이 작았지만 학자들에 따르면 10m가 넘는 거석도 있다고 한다. 낮은 구릉 위에 원형 혹은 방형으로 검은 돌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 역시 신비스럽다.

이들은 고대 무덤인 쿠르간의 범위를 표시하기 위한 일종의 지표석이다. 기원 전 10세기쯤 이 땅에 형성된 시베리아-스키타이 계열의 타가르 문화의 산물이다. 스키타이족들은 시신을 넣은 목관 위에 돌을 쌓고 그 위를 다시 흙으로 덮은 뒤 큰 돌로 무덤의 경계를 표시했던 것이다. 무덤을 발굴한 결과 많게는 20여 명이 함께 묻히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무덤은 하카시아공화국뿐 아니라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 남부 일대 곳곳에서 발견된다. 시베리아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미누신스크 박물관에 가면 하카시아공화국과 투바 공화국, 미누신스크 분지 등에서 발견된 토템 신앙과 거석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살아있음의 흔적을 기록하고자 하는 열망은 쿠르간뿐 아니라 암각화에서도 확인된다. 전형적인 러시아의 농촌마을 샬라볼리노에 가면 기원 전 7000년쯤부터 기원 후 14세기까지 이 땅을 스쳐간 인간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마을 뒤편 투바강을 따라 3㎞가량 형성된 샬라볼린스키 암각화에는 풍요로운 사냥을 기원했던 신석기인들의 바람이 담긴 사슴과 무스 등의 형상에서부터 시베리아를 따라 유럽으로 진출했던 훈족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때묻지 않은 소녀들과의 만남

기록에 대한 열망이 인간을 지배하는 원초적인 열망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암각화를 보며 되새기고 있을 때였다. 푸른 눈에 금발머리를 한 소녀들이 내 팔을 잡고 학교에서 배운 초보자 수준의 영어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저는 아냐고요, 얘는 마리냐, 얘는 야냐예요. 우린 11살이에요.” 묻지도 않았는데 금발머리에 푸른 눈을 한 소녀들은 한 명씩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소개했고 내 이름을 물었다. 시베리아에서도 깊숙이 박힌 오지에 사는 금발소녀들에게 검은 머리의 이방인은 아주 신기하고 낯선 존재인 모양이다. 별 것 아닌 질문과 대답에도 러시아어로 속닥이며 까르르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했다.

이 아이들은 내가 찾았던 문화재 발굴 현장의 일꾼이었다. 오랫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마을 사람들만 알던 암각화의 훼손이 심해지면서 최근 러시아의 고고학자들이 이 지역에서 발굴 작업을 펼치고 있다. 마을 주민들과 어린 학생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발굴 작업을 도왔다. 내가 방문하기 하루 전 찾았다는 사슴 암각화도 소녀들의 눈썰미 덕택에 발견했다고 했다.

때묻지 않는 아이들과의 짧은 만남은 수천년을 이어온 문화재를 보는 것만큼이나 즐거웠다. 대화를 나눴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사진을 보내 달라기에 e메일 주소를 적어달라고 했더니 말에 아이들은 정성들여 수첩에 무언가를 적어나갔다. 그러나 수첩을 건내받은 후 e메일 주소가 아니라 러시아 알파벳을 필기체로 쓴 우편 주소를 보고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세상사와는 무관한 듯 오지에 사는 아이들은 인터넷을 몰랐던 것이다. 한 아이는 기념품이라며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수력발전소가 새긴 10루블짜리 지폐까지 주었다. 카메라만 달랑 메고 이곳을 찾은 내겐 마땅한 답례품조차 없었다.

헤어지는 순간 아이들은 하나하나 나를 껴안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바라봤다. 작별 인사를 하고 났는 데도 아쉬웠던지 네 명의 소녀들은 내 양 팔짱을 끼고는 버스 앞까지 배웅을 해줬다. 버스에 있던 가방에서 쓰던 색연필이라도 줄까 싶어 챙기는 사이, 어느새 아이들은 잰걸음으로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카메라로 마구 찍어댔던 어떤 시베리아의 풍경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기대치 않았던 러시아 소녀들의 따뜻한 환대에 여행길 내내 감동했다. 척박하고 황량하다는 시베리아에 대한 인상은 이 소녀들로 인해 단숨에 사라져 버렸다. 아직 아이들에게 사진을 부치지는 못했다. 이번 주말엔 꼭 사진과 함께 그들이 모르는 미지의 나라, 한국을 떠올릴 만한 선물 몇 가지를 넣어 소포를 부쳐야겠다.

▲여행길잡이

크라스노야르스크로 들어가려면 비행기를 이용하거나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야 한다. 과거 인천~크라스노야르스크간 직항이 있었지만 현재는 중단됐으며, 크라스노야르스크와 중국 베이징을 연결하는 노선이 있다. 베이징에서 크라스노야르스크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기차로 하카시아공화국이나 투바공화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시차는 한국과 1시간이 난다. 위도가 높아 여름에는 백야현상이 나타난다. 숙소의 형편은 그다지 좋지 않다. 여름철엔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숙소가 다반사이며 호텔의 수준은 열악하다. 좀더 시골로 들어가면 ‘푸세식’ 화장실은 기본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갈 것. 크라스노야르스크 시내에는 레닌기념관과 화가 수리코프의 박물관이 있다. 슈센스코에는 레닌이 유형 당시 거처하던 집과 19세기 말 시베리아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시베리아 민속박물관이 있다.(크라스노야르스크|글·사진 윤민용기자)

07.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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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09-01 0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언젠가 로쟈 님께 한 번 러시아 여행을 위한 '준비물'들을 슬쩍 여쭤볼 참이었는데,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로쟈 2007-09-01 19:32   좋아요 0 | URL
준비물이란 게 지역과 기간(계절)에 따라 많이 차이가 날 듯합니다...

드팀전 2007-09-01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에 아이 업고..tv를 켰더니 상트페테르부르그 가 나오더군요.걸어서 세계여행이라는 프로였는데..별 구성없었지만 그림이 워낙 좋으니 볼만하더군요.소제목이 햐얀밤 예술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그..뭐 이런 식이었습니다.여름궁전,겨울궁전,그 도시와 함께 이웃에 있는 푸시킨시,무슨 섬에 있는 나무로만 만든 성당 '예수변모성당'이라나...그리고 공연물들,유명 예술인들의 묘지,빅토르 최가 묻힌 공동묘지 등등...로쟈님 생각이 나더군요.^^

로쟈 2007-09-01 19:32   좋아요 0 | URL
가볼 만한 도시들이긴 합니다.^^

소경 2007-09-01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베리아 문화에 관심이 가네요. 북동아시아 청동기 문화에 연을 갖는지 관심 갖을 만한 수업을 많이 들었는데. 계속 공부하다 언제간 찾을 날도 있을 것 같아, 꿈꾸며 잘읽었네요. ^^

로쟈 2007-09-01 19:33   좋아요 0 | URL
요줌 이 지역의 발굴기사가 많이 나더군요...

2007-09-02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02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근 부쩍 이미지 관리에 나서고 있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이번엔 웃통을 벗고 나서서 화제가 되고 있단다. 찬반 양론이 있다지만 대세는 찬사쪽인 듯하다. 러시아 여성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고 하니까 이 정도면 이미지 컨설팅을 받을 만하다. 가히 '푸틴 성대'(내년 대선이 변수이긴 하지만). 그의 측근인 '실로비키'들까지 가세해서 말 그대로 푸틴 천하이다(푸틴 리더십은 정치학에서 단골 연구주제이다). 관련기사들을 스크랩해놓는다.

중앙일보(07. 08. 28) '몸짱' 푸틴 사진에 러시아가 시끌

블라디미르 푸틴(사진) 러시아 대통령의 근육질 몸을 보여 준 사진이 공개된 지 열흘이 넘도록 여전히 화제가 되고 있다. 문제의 사진은 푸틴 대통령이 13~15일 남부 시베리아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투바 자치공화국에서 휴가를 보내며 찍은 것이다. 군복 바지를 입고 웃통을 벗은 채 강에서 낚시를 즐기는 모습을 담은 이 사진엔 운동광인 푸틴 대통령의 탄탄한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크렘린 공보실이 최근 이 사진을 대통령 행정실 공식 홈페이지에까지 올리면서 러시아 내에서 찬반 여론이 들끓고 있다. 대통령의 건강한 몸에 대한 찬사의 목소리와 함께 지도자의 품격에 맞지 않으며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인기몰이 행동이란 비판 여론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주류는 찬사 쪽이다. 현지 인터넷 사이트와 블로그는 푸틴의 벗은 사진과 그의 몸에 대한 칭찬 글들로 넘쳐나고 있다. 타블로이드 신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자사 웹사이트가 푸틴의 몸을 찬양하는 여성 독자들의 글로 도배됐다고 전했다.

신문은 22일자 기사에서 '푸틴처럼 되라'는 제하에 가슴을 드러낸 푸틴 대통령의 컬러 사진을 싣고 장관이나 주지사, 의원들이 대통령과 같은 몸을 만들려면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를 삽화까지 곁들여 소개했다. 한 라디오 토크쇼에서는 푸틴의 반(半) 나체 사진이 대통령의 권위를 떨어트리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던 진행자가 청취자들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동성연애자 사이트에는 대통령이 웃통을 벗은 것은 동성애에 대한 관용을 표시한 것이란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까지 등장했다.

이와 함께 사진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면서 이를 비난하는 여론도 있다. 일부 정치 전문가는 "푸틴 대통령의 벗은 사진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그의 건강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며 "그가 헌법이 금지한 3기 연임을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투기를 조정하거나 잠수함을 탄 대통령의 모습을 언론에 집중적으로 소개해 국민에게 강한 지도자상을 심어 온 지금까지의 정책과 다를 바 없다는 해석이다. 반면 스타니슬라프 벨코프스키 국가전략연구소장은 "대통령의 휴가 사진은 그가 은퇴를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 준 것"이라며 상반된 해석을 하기도 했다.(유철종 기자)

조선일보(07. 08. 27) 음지 '막강세력'으로 부활… 러시아 '실로비키'

소련은 망했지만 KGB(옛 소련 정보기관)는 러시아 최고의 실세로 되살아났다.’ 1991년 소련 공산체제의 몰락과 함께 청산 대상으로 추락했던 ‘음지의 제왕’ KGB가 러시아 전 분야에 걸쳐 ‘새로운 실력자’를 뜻하는 ‘실로비키(Siloviki)’로 떠올랐다고 이코노미스트 최신호가 전했다. 이들은 FSB(러시아 연방보안국·KGB 후신) 국장 출신의 블라디미르 푸틴(Putin) 대통령의 후원에 힘입어 러시아를 ‘스파이국가(Spookocracy)’로 바꿔놓았다.

◆“고위 관료 4분의 1이 정보기관 출신”
미하일 고르바초프(Gorbachev) 옛 소련 대통령이 정보기관을 무력화하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단행할 때 KGB 직원 50만명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설욕을 다짐했다. 그로부터 8년 후, 푸틴의 집권과 더불어 이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푸틴은 ‘올리가르히(Oligarchy·신흥재벌)’ 등 도전 세력을 거세하고 권력을 다지는 과정에서 KGB 동료들을 되살려냈다. 이들은 대통령궁인 크렘린은 물론 정부 각 부처와 군·언론·재계까지 틀어쥐었다. 러시아학술원의 사회학자인 올가 크리슈타노프스카야(Kryshtanovskaya)는 전국 고위 관료의 4분의 1이 실로비키라고 진단한다. 이제 국가 중대사는 푸틴의 옛 KGB 동료와 그의 고향 상트 페테르부르크 출신들로 구성된 실로비키가 좌우한다.

◆“실로비키는 국가 자체”
과거 KGB가 정치 권력에 열중했던 데 반해 실로비키는 권력과 돈을 한 손에 쥐었다. 푸틴 외에 “이들에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알렉세이 콘다우로프(Kondaurov) KGB 간부 출신 연방의원은 말한다. 이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막강한 실권을 휘두르는 게 특징이다. ‘음지에 있을 때 더 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뒤로 물러난 지금 이들의 정신은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다. KGB 시절과 달리 반(反)자본주의를 고집하지 않는다. 자신들도 시장경제의 수혜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 안팎의 ‘적’을 제압하는 것이 사명이라 믿는다. 이를 위해서라면 법도 발 아래에 있다고 여긴다. 이들은 러시아에 대한 최대 위험이 서방에서 온다고 본다. FSB 요원 양성학교인 FSB 아카데미는 ‘KGB 혈통’의 자녀를 우대하고, 실로비키끼리의 혼사를 권장한다.

◆국가경영 능력은 부재
하지만 실로비키는 무소불위의 힘에 비해 국가경영 능력이 의심스럽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국가를 ‘접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경제와 경영에는 문외한들이다. 정보기관 특유의 직업주의가 사라진 것도 위험 요소. 한 전직 KGB 요원은 “폭력을 쓰는 것은 다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실토한다. 이들은 국외에 적을 만들어 내분을 봉합하려 하지만 이것이 국가의 번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러시아는 고유가에 힘입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범죄율과 부패, 관료주의에 있어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서방에 적대적인 외교정책 역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전병근 기자)

07. 08. 27.

P.S. 이코노미스트지의 기사는 http://www.economist.com/world/displaystory.cfm?story_id=968262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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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2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푸틴은 참 오래 해먹는거(?) 같아요.

로쟈 2007-08-28 21:02   좋아요 0 | URL
이제 '시작'이라는 자세입니다...

털세곰 2008-01-05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하~ 정곡을 찔렀습니다 ㅋㅋㅋㅋㅋ
 

요 며칠 방문자수가 '이상하게' 뜬다. 일시적으로 그러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지속적'인 경우는 없었던 듯하다. 알라딘의 카운트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이다(이 밤중에 무슨 일로 몇 백 명이나 이 서재를 찾겠는가?). 그러나저러나 나는 나대로의 일을 할 뿐이다. 지난주에 스크랩해 두려던 기사를 이제야 시간을 내서 정리해둔다.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인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가 쓴 러시아 관련칼럼이다. 원문도 같이 붙여놓았다(왼쪽 정렬을 해놓아도 화면상으로는 양쪽맞춤으로 뜨는 탓에 유감스럽게도 단어들이 깨져서 보인다).

경향신문(07. 08. 18) 러시아, 강대국으로 복귀하다

지난 몇 년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는 다시금 자신감 넘치고 매우 공세적인 나라가 됐다. 필자는 20년전 저서 ‘강대국의 흥망’에서 이 거대한 나라가 많은 외압과 내홍에도 쉽게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세계 무대 중심에 이렇게 빨리 복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많은 이들은 석유와 가스의 값이 급등했고 러시아가 운좋게도 방대한 양의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러시아의 회복 배경이 취약하다고 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르웨이나 두바이처럼 석유 수입이 지혜롭게 투자될 경우 국가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늘어난 부가 크렘린에 공세적인 외교정책을 펴도록 자신감을 불어넣었다는 점이다.

현재 러시아 일방주의적 행동을 능가하는 이는 지난 6년간 백악관이 유일할 것이다. 미국이 국제기구에서 특수한 지위를 이용해 이스라엘을 보호해 온 것처럼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 행사로 코소보의 독립 희망을 짓밟았다. 푸틴 정부 관리들은 이웃 국가들에 러시아 에너지 공급에 대한 의존도를 인식시켜 압박하는 이른바 ‘송유관 외교’를 구사하는 데 능숙하다. 서구 석유 회사들도 러시아 정부가 에너지 사용계약을 법적 의무사항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러시아는 군축 협정을 폐기하는 속도로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패배와 치욕을 경험했던 전통적인 파워엘리트가 자산과 권위, 위협력을 회복하는 시점에서 보이는 단계적 행동 패턴이다. 만약 이같은 현상이 지금 더 눈에 띈다면 세계의 맹목적인 석유 의존도와 부시 미국 행정부의 이라크와 테러리즘에 대한 강박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국가주의 나아가 민족주의적 기운을 강화하기 위해 푸틴 행정부가 실행하는 광범위하고도 미묘한 조치들이다. 애국주의적인 청년단체 조직과 러시아 역사교과서 수정작업이 여기에 해당된다.

‘나시(‘우리들’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청년단체는 불과 2년 남짓 됐지만, 민주진영의 푸틴 정권 비판에 맞서 극우주의자 친위대로 삼으려는 정부의 의도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나시가 옹호하는 주요 정책들은 모국에 대한 경외, 가족과 러시아 전통, 결혼에 대한 존경, 외국인에 대한 혐오 등이다(나치 히틀러의 구호와의 유사성을 외면하기 힘들다).



푸틴이 고등학교 역사교범 집필자들을 불러 칭찬했다는 것도 그렇다. 역사학자로서 필자는 교육부가 국가의 과거에 대한 어떤 형태의 공식적인 의견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에 망설이는 입장이지만, 러시아의 역사 교범이 민주국가 연합에 참여하는 것이 미국에 주권의 일부분을 내주는 것으로 기술한 것은 충격적이다.

장기적으로 볼때 나시 극단주의자들의 돌출 행동은 역사에 모호한 자취로 남을 수 있다. 반면에 젊은이들에게 의도적으로 사상을 주입하고 그들이 물려받을 위대하지만 극심한 혼란을 겪은 국가의 역사를 수정하는 것은 우리의 21세기에 중대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정리|김유진기자)

WORRIED ABOUT PUTIN’S RUSSIA?: READ ON
By Paul Kennedy

For the past several years, the Russia of Vladimir Putin has been sending very clear signals that it is no longer the weakened, troubled and Western-dependent state that it was compelled to be following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Russia is now once again a proud and very assertive nation, increasingly recognizable by its actions to historians of its Czarist and Communist predecessors. Twenty years ago (in my book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I predicted that this enormous country, though deeply troubled by internal fractures and external exhaustion, would not go down without a fight; but I did not think Moscow’s return to the center of the world stage would occur so fast.

Now, many will say that this recovery is based on shallow foundations, in fact that it rests almost totally upon the high price of oil and gas — and Russia’s fortunate possession of vast supplies of those vital commodities. That is true. But oil revenues, if invested wisely (as has been done by two countries as different as Norway and Dubai during the past decade), can enhance national infrastructure, industrial and technological developments, and military security. The Dutch Republic was built upon the herring fisheries of the North Sea; the good burghers of Amsterdam knew how to reinvest their profits in other directions.

In any case, it is perfectly clear that not only is Putin’s regime making smart strategic investments — in infrastructure, laboratories, a revived and modernized military — but also that its flow of wealth is giving the Kremlin the confidence to pursue assertive foreign policies, secure for the moment in a set of global circumstances that has hobbled the United States, turned the attention of China and India elsewhere (toward growth and internal modernization), and given all the world’s oil-producing states immense leverage. Even the incompetent administrations of the late Messrs. Chernenko and Breznhev could not have frittered away such strong cards. And Putin seems, by all measures, a truly formidable poker player.

Right now, the list of Moscow’s unilateralist actions is probably only exceeded by those of the White House over the past six years. Take an obvious example: Russia uses its veto power on the U.N. Security Council to support Serbia and crush Kosovo’s hopes of independence, just as the U.S. uses its privilege to protect Israel and block pro-Palestinian resolutions in the world organization. In a similar negative way, Russia controls what the Security Council may, or may not, do regarding actions against Iran and North Korea.

The list goes on. Putin’s ministers are adept at using what has come to be called “pipeline diplomacy” to force neighbors like Belarus and Ukraine to bend to Moscow’s will and recognize their dependence upon Russian energy supplies, and it is clear that this is intended to have a secondary intimidation effect upon the states of Western Europe as well. Estonia and Latvia are browbeaten over what are regarded as anti-Russian acts, such as the removal of Soviet war memorials or treatment of Russian-speaking citizens.

Western oil companies are discovering that a contract for control of energy resources is not necessarily viewed by the Moscow government as a sacred legal obligation; as the Russian state returns to power, it is insisting upon altered conditions, all of which ensure that the Kremlin and its agencies have the majority share. Thus, massive international corporations such as BP, Exxon and ConocoPhillips, long regarded as powerful independent actors, are now, literally, being put over the barrel, forced to recognize their weaker bargaining position.

Many of their CEOs must have rubbed their eyes at the reports that Russia has just claimed extensive rights at the North Pole, with implications for rights to the exploitation of seabed energy resources. Moscow seems to be advancing its international claims with about the same speed that it denounces arms-control accords. Really, it is hard to keep up.

If all of this is unsettling, especially to Western business interests and to left-wing theorists of global capitalist conspiracies, it is by no means unusual. Actually, compared with extravagant policies and proclamations of Venezuela’s Hugo Chavez and Iran’s Mahmoud Ahmadinejad, Russia’s actions are rather predictable. They are the steps taken by a traditional power elite that, having suffered defeat and humiliation, is now bent upon the recovery of its assets, its authority and its capacity to intimidate.

There is nothing in the history of Russia since Ivan the Terrible to suggest that Putin is doing anything new. “Top-down” policies from the Kremlin have a thousand-year provenance. If they seem more noticeable at this moment in time, it may simply be because of two (possibly temporary) factors: the modern world’s blind dependence upon petroleum, and the Bush administration’s obsession with Iraq and terrorism. All Putin is doing is walking through an open gate — opened, by and large, by the West.

So the reports from Russia that interest me most are not those concerning drone submarines under the Arctic icecap, or putting the screws upon Belarus to pay backdated oil charges. What intrigues me are the broader and more subtle measures being instituted by the Putin regime to enhance national — and, even more, nationalist — pride. Unless I am mistaken, they point to something much more purposeful, and potentially quite sinister.

Two examples will have to suffice here: the creation of a patriotic youth movement, and the not-too-subtle rewriting of Russia’s school history books. The youth movement called “Nashi” (it translates as “ours” or “our own”) is only a couple of years old, but it is growing fast, encouraged by government agencies determined to instill the right virtues
into the next generation and to use this cadre of ultra-Russianists to buttress Putin’s regime against domestic (read: liberal) critics.

The policies that Nashi advocates are eclectic, although probably the same could have been said about the Hitler Jugend 70 years ago. Among the main features are reverence for the Fatherland, respect for the family, Russian traditions, and marriage (the phrase “Kinder, Kueche, Kirche” is hard for this historian to resist), and a pretty complete detestation of foreigners; it is hard to tell whether American imperialists, Chechnyan terrorists, or Estonian ingrates are at the bottom of their list of those who threaten the Russian way of life.

Right now, Nashi is training tens of thousands of young diligents; right now, they are in summer camps where they do mass aerobics, discuss “proper” and “corrupt” politics, and receive the necessary education for the struggles to come. Vast numbers have recently been mobilized to harass the British and Estonian ambassadors in Moscow (don’t say the Foreign Ministry was unaware of such stuff), following Moscow’s disputes with those two countries. According to The Financial Times, Nashi is training 60,000 “leaders” to monitor voting and conduct exit polls in elections this coming December and March. One doubts if their impartiality will reach that of, say, an international U.N. electoral observer unit. I find this all pretty creepy.

So, too, are the reports that Putin has personally complimented the authors of a new manual for high school history teachers that seeks to instill a renewed pride in teenagers of their country’s past and encourage national solidarity. As a professional historian, I always shrink from the idea that education ministries should approve some sort of official view of the national past, although I know that bureaucrats from Japan to France do precisely that, that the PRC leadership would get highly upset if it learned that schools in China could choose their own textbooks, and that American fundamentalists try to put their own clumsy footprint on what children in the land of the free should actually be exposed to.

But it is one thing for French kids to be told about Joan of Arc’s heroism or American kids about Paul Revere’s midnight ride; everyone is entitled to a Robin Hood or William Tell or two. It’s a bit more disturbing to learn that the new Russian history manual teaches that “entry into the club of democratic nations involves surrendering part of your national sovereignty to the U.S.” and other such choice contemporary lessons that suggest to Russian teenagers that they face dark forces abroad.

What does this all mean? Should oil prices collapse — should pigs fly — then Mr. Putin’s efforts at a Russian nationalistic renaissance might also tumble. But there is no doubt about the coherence of this plan to rebuild Russian pride and strength from the top down (BEGIN ITALICS) and (END ITALICS) the bottom up.

Over the longer run, the current street agitations against Britain’s ambassador and the tearing down of the Estonian flag by Nashi extremists may be obscure footnotes to history. By contrast, the deliberate campaigns to indoctrinate Russian youth and to
rewrite the history of the great though terribly disturbed nation that they are inheriting might be much more significant for the unfolding of our 21st century.

XXXX
Paul Kennedy is the J. Richardson Professor of History and the director of International Security Studies at Yale University. His most recent book is “The Parliament of Man,” about the United Nations.
COPYRIGHT 2007, TRIBUNE MEDIA SERVICES, INC. (8/10/2007)

07. 0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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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용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지만((찾아보니 현재는 이가서에서 나온 2권짜리 어린이용 그림책이 있다) 나로선 기억에 없는 <위대한 왕>(아모르문디, 2007)이 출간됐다.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바이코프(1872-1958)의 '백두산 호랑이' 이야기라고 한다. 비록 이번에 나온 완역본은 불역본을 대본으로 한 것이지만 저자와 책에 대한 흥미 때문에 따로 페이퍼를 쓴다(아래 오른쪽 이미지는 바이코프의 호랑이 이야기도 포함돼 있는 책 <정글의 왕>. 바이코프의 책은 러시아 인터넷서점에서 거의 뜨지 않는다. 저자의 이미지도 찾지 못했다).

Владыка джунглей

한국일보(07. 08. 11)  러시아 작가가 그려낸 동물의 왕 '조선 호랑이'

지금은 동물원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지만, 호랑이는 오랫동안 우리 민중들에게 영물(靈物)로 받들어져온 동물이다. 반면 서양에서는 동양만큼 호랑이가 상징성이 있는 동물은 아니기 때문에 어린시절 서양작가가 호랑이를, 그것도 조선호랑이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여겼던 기억이 새롭다.

Des tigres et des hommes : "Le Grand Van" et autres nouvelles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의 완역본이 선보였다. 1936년 처음 발표된 소설로 광활한 만주의 침엽수림을 지배하는 조선 호랑이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어린이용 문고판이나 만화 등으로 여러차례 선보였지만 완역은 이번이 처음. 러시아어판을 옮긴 것이 아니라 프랑스어판(1938년)을 텍스트로 삼은 점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지명이나 묘사, 사건들을 많이 생략해버린 기존 번역서의 약점을 극복하고 원본의 아우라를 잘 살려주고 있다.

주인공인 조선호랑이는 “단 한번 성난 눈길을 던지기만 해도 모든 작은 육식동물들이 겁을 먹고 맹종하는 왕”이다. 탄생, 사냥, 숲의 지배자로의 성장, 숙적인 인간과의 조우, 비극적인 최후 등 왕의 일생은 실제로 30여년간 만주의 자연을 치밀하게 관찰했던 작가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 의해 생명력을 얻는다.“넓고 반듯한 이마에는 ‘왕(王)’이라는 글자의 윤곽이 선명하고, 허공을 가로지르듯 유연하고 가볍게 위로 튀어오르는 모습은 차라리 새의 비상에 가깝다”“왕의 힘과 날렵함, 뛰어난 솜씨, 아름다움을 따라올 동물은 어디에도 없었다”“왕의 강인한 모습 전체에서 타고난 엄청난 힘과 꺾이지 않는 의지가 느껴졌다” 존엄한 왕자(王者)의 삶이라는 소재와 만주라는 공간적 배경이 잘 조화돼 남성적인 힘이 느껴진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러시아가 동청철도(하얼빈철도) 부설권을 획득해 만주개발에 뛰어들고 일본역시 한반도를 거점으로 만주진출을 꾀하던 시기. 이런 저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사냥꾼에 의한 왕의 죽음을 식민주의자의 피식민자에 대한 침탈로 읽거나, 문명에 의한 자연파괴라는 은유로 읽어내는 시도도 흥미롭겠다.(이왕구기자)

문화일보(07. 08. 11) 서구 근대문명과 맞선 ‘백두산 호랑이’

어릴 적에 소년소녀세계명작전집에 들어있는 한국 호랑이 이야기인 ‘위대한 왕’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러시아 출신 니콜라이 바이코프(1872~1958)의 ‘위대한 왕’(김소라 옮김·아모르문디)이 국내에서 처음 완역돼 나왔다. 270쪽에 달하는 청소년과 성인대상 소설이다.

책을 보면 ‘원래 어린이용 책이 아니었어?’ 하는 생각이 든다. 이어서 주로 서구작가의 작품 위주였던 명작전집에 어떻게 이 책이 들어갔을까 하는 호기심도 생긴다. 그 이유를 재일조선인 학자인 서경식(56·도쿄게이자이대 법학부) 교수의 서문을 보니 알 것 같다. 그는 일본 교토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고단샤(講談社)에서 나온 세계명작전집에 수록된 이 책을 처음 보았다.

“‘조선’이라는 말에 경멸과 조롱의 울림이 진드기처럼 늘 들러붙어 다니던 일본에서, 비록 ‘조선호랑이’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이 말이 경의의 뜻으로 쓰이는 사례를 접한 것이 처음이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나온 어린이 명작전집이 일본 것을 베낀 게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나이가 지긋한 독자들도 ‘위대한 왕’을 보게 된 것이다. 일본에선 그 시절 어떻게 조선호랑이 이야기가 명작에 들어갔을까. 
 

저자 바이코프는 제정러시아의 장교로 만주에 파견됐다가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만주로 망명,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을 만주의 밀림 속에서 보냈다. 그는 만주에서 생활하며 그곳의 동식물과 풍속을 세밀하게 관찰해 여러 편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에 ‘위대한 왕’은 1936년 당시 일본이 괴뢰정부를 세운 만주의 ‘만주일일신문’에 일본어로 번역돼 연재된 뒤 문예춘추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것이다.

‘위대한 왕’은 신령스러운 백두산 호랑이의 후예로 태어나, 만주의 거대한 숲의 바다(樹海)를 지배하는 군주로 성장한다. 이 호랑이는 광활한 숲의 왕자(王者)이자 준엄한 자연 법칙의 현현이기에 타이가의 모든 동물들은 왕에게 복종한다. 인간들도 위대한 왕을 산의 신령으로 모시며 순종한다. 왕은 굴종을 모르는 순수한 자연의 힘과 태곳적부터 이어져 내려온 밀림의 법칙을 대변하는 존재다. 이 왕에게 경외심을 보이는 이는 타이가의 현자 퉁리 노인이다. 그러나 철도로 대변되는 기괴하고 무자비한 제국주의의 손길이 만주 타이가를 송두리째 파괴하기 시작하자, 왕을 비롯한 숲의 터줏대감들은 새로이 등장한 인간에 맞서 반격에 나선다. 왕은 끝내 인간 침략자들과 맞서다가 당당한 최후를 맞이한다. 퉁리 노인만이 무릎을 꿇고 왕의 임종을 지킨다.

서 교수는 “‘근대문명’으로 말미암아 파괴되는 대자연과 멸절의 위기로 내몰리는 야생동물은 구미열강의 침략 앞에 내던져진 아시아 피압박 민족으로 읽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며 “이것이 단순한 동물소설의 영역을 초월해 정치적 암유(暗喩)의 색채를 띠는 이유”라고 이 소설의 생명력을 설명한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38점의 삽화(그림)가 수록됐다.(엄주엽기자)

경향신문(06. 04. 10) [여적] 시베리아 호랑이

니콜라이 바이코프는 러시아혁명 당시 백군에 가담해 적군과 싸웠고 그후 중국 동북지방으로 망명해 원시림을 무대로 동물소설을 쓴 독특한 이력의 작가다. 그의 대표작 ‘위대한 왕’(1936)은 시베리아 호랑이 ‘왕대(王大)’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인간의 발길이 깊은 숲 속으로 침투할수록 점점 더 좁아지고 살기 힘들어지는 동물의 세계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렸다. 왕대는 자신의 영토인 숲이 철도 개발로 처참히 짓밟히는 데 분노해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바이코프의 경고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호랑이는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 동물이 됐다. 돌이켜보면 인간은 호랑이를 살육하고 그 터전을 파괴하는 일에 얼마나 열중해왔던가.
시베리아 호랑이는 아무르 호랑이라고도 하며 인도·수마트라 등 세계의 호랑이 가운데 가장 크다. 수컷의 몸길이는 2.7∼3.3m, 몸무게는 180∼360㎏이다. 백두산 호랑이도 여기에 속한다. 백두산 호랑이는 남한에서는 이미 멸종한 것으로 보이며 백두산 일대에 몇마리 남아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호환(虎患)같은 표현에서 보듯 한국인은 호랑이를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 친근하며 덕성이 있는 동물로 받아들였다. 단군신화에 조급해 금기를 지키지 못한 동물로 등장하는가 하면 산군(山君), 산신(山神), 산수(山獸)로 받들어지기도 했다. 호랑이의 용맹성을 들어 무반(武班)을 호반(虎班)으로 부르기도 했다.

멸종 위기의 호랑이와 관련해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세계야생동물보호재단(WWF)은 러시아 아무르주에서 시베리아 호랑이가 태어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주로 연해주와 하바로프스크에 서식해 왔으며 아무르주에서 직접 새끼를 출산한 것은 1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또 중국이 ‘동북호(東北虎)’로 부르는 시베리아 호랑이의 개체수가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미세하나마 증가세로 돌아선 것으로 관찰됐다.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호성(虎聲)이 되살아날지 기대를 갖게 한다.(김철웅 논설위원)

07. 08. 12.

В горах и лесах Маньчжурии: иллюстрация 1

P.S. 바이코프의 책으로 더 눈에 띄는 건 1915년에 출간된 <만주의 산과 숲에서>이다. 저자가 42살에 펴낸 책이다. 그러고 보면 <위대한 왕>은 64살에 발표한 것이나 말년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짐작에는 러시아에서보다 일본에서 더 주목을 받은 작품으로 보인다(그 영향이 우리에게도 남아 있는 것이고).

P.S.2. 바이코프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시인 백석이 그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었다는 점. 아래 연보에 보면 1942년에 바이코프의 작품 <밀림유정> 등을 번역한 걸로 돼 있다(짐작엔 <위대한 왕>을 옮긴 게 아닌가 싶다). 일역본을 옮긴 듯하지만 백석이 러시아어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러시아어본을 옮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호사가'들이 좀 확인해주었으면 좋겠다... 

본명 : 백기행 (白夔行 1912년~1963년)
학력 : 아오야마가쿠인대학교
데뷔 :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 (1935년)
화제 : 시로 데뷔해 소설로 두각을 보임
약력 :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
-1918년(7세) 오산 소학교 입학.
-1930년(19세) 조선일보의 작품 공모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을 응모,
당선하여 소설가로서 문단에 데뷔함.
이해 3월에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 선발에 뽑혀 일본으로 유학.
도오쿄오의 아오야마(靑山) 학원 영어 사범과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함.
-1934년(23세) 아오야마학원 졸업.
귀국 후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서울 생활을 시작함.
출판부 일을 보면서 계열잡지인 여성(女性)지의 편집을 맡음.
-1935년(24세) 8월31일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이후 시작품에 더욱 정진함. 조광(朝光)지 편집부 일을 봄.
-1936년(25세) 1월 20일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
1월29일 서울 태서관(太西館)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짐.
-1939년(28세) 1월 26일 조선일보에 재 입사.
-1940년(29세) 만주의 신찡(新京,지금의 長春)으로 옮겨 가서
'신경시 동삼마로 시영주택 35번지'의 중국인 황씨 집에 거처를 정함.
-1942년(31세) 만주의 안동에서 세관 업무에 종사함.
러시아 작가 바이코프의 작품 [밀림유정] 등을 번역함.
-1945년(34세) 해방과 더불어 귀국,
신의주에서 잠시 거주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와 남의 집 과수원에서 일함.
-1947년(36세) 시 [적막강산}이 그의 벗 허준에 의해 신천지에 발표됨.
-1948년(37세) 김일성 대학에서 영어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고 전해짐.
-1949년(38세) 숄로호프의 소설 [고요한 돈강]을 번역 출간함.
숄로호프의 [그들은 조국을 위하여 싸웠다]를 번역 출간함(191면).
-1950년(39세) 국군이 평안도를 수복했을 때
주민들이 그를 정주 군수로 추대했다고 전함.
-1953년(42세) 파블렌코의 [행복]을 번역 출간함.
-1954년(43세) 러시아의 농민시인 이사코프스키의 시선집을
연변교육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함.

-1956년(45세) 아동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등의 평론을 발표함.
-1957년(46세)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발간함.
-1958년(47세) 시평 [사회주의적 도덕에 대한 단상]을 발표함.
-1959년(48세) 시 [이른 봄] 등 7편을 조선문학에 발표함.
-1960년(50세) 이해 12월 북한의 조선문학지에 시 [전별] 등 2편을 발표함.
-1963년(52세) 이해에 사망했다는 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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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13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지면엔 글 올라오셨던데... :)

로쟈 2007-08-1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21 말씀이신가요? 진작에 옮겨놨는데요...

마늘빵 2007-08-13 10:03   좋아요 0 | URL
헙. -_- 제가 못본거군요.

2007-08-17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8-18 01:14   좋아요 0 | URL
반가운 댓글이네요.^^ 백석의 <밀림유정>이 바이코프의 단편 <유로슈카>의 번역이라는 정보만으로도 유익합니다. 나머지 작품들도 곧 책으로 나오길 기대하겠습니다.^^
 

조선일보(07. 07. 28) 뿌리깊은 영국·러시아 갈등…‘신냉전’으로 가나

러시아 전(前)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살해용의자 인도요구 논란을 둘러싸고 외교전쟁을 벌이던 영국과 러시아가 무력충돌까지 갈 뻔했다. 지난 17일과 20일 두 차례나 러시아 Tu-95 전폭기가 영국과 노르웨이 사이 북해(北海)의 영국 영공까지 근접비행 했다가 영국의 토네이도 전투기가 출격하자 회항했던 것. 2001년 똑같은 사건이 발생한지 6년만의 일이었다.이번 갈등의 도화선은 망명지 영국에서 푸틴 반대운동을 하던 전 KG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독살(毒殺) 용의자 안드레이 루고보이의 신병인도 문제였다.

영국은 5월부터 러시아에 루고보이가 영국에서 재판을 받도록 신병을 넘겨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으나, 러시아는 이를 매번 거부했다. 발끈한 영국은 16일 러시아 외교관 4명을 추방하고, 러시아 관리들의 영국 입국비자 발급 간소화 문제를 재검토한다고 엄포를 놨다. 하루를 그냥 지켜봤던 러시아는 이날 “대응방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곧바로 전폭기의 근접비행을 시도했다. 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19일 영국 외교관 4명을 맞추방했다. 언론들은 이번 사태를 영국과 러시아의 ‘신(新)냉전’이라고 부를 만큼,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 외교관 맞추방 사건을 양국의 ‘작은 위기(mini-crisis)’라고 규정하고, “이는 극복될 것”이라고 완곡하게 말했다. 하루 뒤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부 장관이 “러시아는 영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한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영·러 갈등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왜 그럴까. 표면적인 갈등 이유는 살해용의자 인도를 둘러싼 자존심 대결이지만, 벌써 수백 년간 국제무대에서 벌이고 있는 영·러의 주도권 다툼과 감정적 대립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토니 브렌튼(Brenton) 주러 영국대사는 지난 22일 “영국과 러시아 관계는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놀랄 만큼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바꿔 말하면 그동안 양국관계가 불편했다는 얘기가 된다.

영국과 러시아의 감정싸움은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스크바국립대의 마리나 벨랴코바 교수는 “19~20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의 중흥기를 막은 나라가 영국이고, 이 때문에 러시아인의 마음 속에 영국은 적국(敵國)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고 했다.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을 물리친 러시아는 알렉산드르 2세(1855~1881년)가 황제에 오르면서 남진(南進)을 시도하며 영토 확장에 나섰다. 카자흐스탄 등 지금의 중앙아시아 지역을 점령해나가자 당시 인도를 식민지로 두고 있던 영국은 러시아 세력의 확장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양국은 결국 아프가니스탄에서 ‘거대한 게임(Great Game)’이라고 불리는 전쟁을 치렀다.

그뿐 아니다. 러시아는 1860년 아이훈 조약을 통해 극동과 사할린 일대로 영토를 넓혀갔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은 일본과 1902년 영·일 동맹을 체결했고, 여기서 러시아의 확장정책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러시아 학자들에 따르면, 이 같은 상황을 즈음해 러시아에서는 서구(西歐)주의자와 슬라브주의자 간의 대립이 발생했고, 결과적으로 슬라브주의자들이 승리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같은 세계의 대문호마저 1989년 타임(Time)지에 기고한 글에서 “서구는 영적으로 황폐한 곳이고, 러시아는 윤리적으로 고결한 곳”이라고 인식할 정도였다. 그만큼 영국이 러시아사에 남긴 그림자가 컸다는 방증이다.

다른 분석도 있다. 100년 역사에 가까운 양국 정보기관들의 경쟁심이 깊숙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영국 정보기관 MI(보안국)-6은 98년, 러시아의 FSB는 90년의 역사를 가진 최고의 정보기관들이다. 특히 소련시절 KGB와 그 후신인 러시아 FSB(연방보안국)에 대한 영국 정부의 경계심은 예사롭지 않다. 이번 사건의 본질도 영국의 사법권이 러시아 정보기관에게 유린당했다는 반발 때문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MI-6은 소위 ‘케임브리지 링(Cambridge Ring)’이라는 소련 고정 간첩망에 의해 1930년대부터 30여년간 유린당한 쓰라린 경험이 있다.

케임브리지 링은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당시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학생 5인방이 MI-6의 고위직에 이를 때까지 지속적으로 KGB 사주를 받아 소련을 위해 첩보활동을 한 간첩망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킴 필비(Kim Philby)여서, ‘필비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필비는 MI-6에 검거되기 직전인 1965년 소련으로 망명, 1988년 사망할 때까지 소련에서 거주하며 영웅으로 불렸다. 이 때문에 MI-6은 조직 자체위상이 흔들림은 물론, 미국 정보기관 CIA와의 협조체제에서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러시아 정보기관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다른 사례가 있다. 지난 2월 영국 부동산 회사 랜드마크그룹(Landmark Group)은 “KGB가 1950년부터 약 40년간 작성해온, 영국 내 103개의 주요 도시 현황에 관한 지도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지도가 건물 하나하나의 구조와 재질, 면적 등까지 기록해놓는 등 너무 정밀하게 제작돼 있어, 요즘의 디지털 지도보다 더 정확했다는 것. 지도전문가인 존 데이비스(Davis)가 “이 정도의 지도를 만들려면 공중촬영 후 지상을 걸어가며 직접 확인해 정보를 추가해야 가능하다”며 KGB의 능력을 평가했을 정도였다. 영국 정보기관도 이 지도를 본 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영국과 러시아의 정보기관은 1989년 외교관 11명 맞추방, 1996년 4명 맞추방에 이어 지난 16일 다시 4명을 맞추방하기에 이를 만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특히 이번 사건 때는 알렉산드르 그루쉬코(Grushko) 러시아 외교차관이 “영국외교관 80명까지 추방할 수 있다”고 경고할 만큼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현재 주러 영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 신분의 인력은 모두 45명. 그런데 어떻게 80명을 추방할 수 있다는 걸까. 이는 러시아내에서 비공개로 활동하는 정보기관 요원까지 모두 내보내겠다는, 러시아측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 셈이었다.

외교전쟁 촉발의 또 하나의 원인은 영국의 반(反) 푸틴 정서에서 찾을 수 있다. 루고보이 신병 인도 논란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영국, 그 중에서도 런던에는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러시아로서는 영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반푸틴 세력 결집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을 가질 법도 하다. 핵심은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란 말이 있다. 그는 지금도 반푸틴 쿠데타 등을 공개적으로 외치고 있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베레조프스키의 언급이 나올 때마다 “러시아의 정권 교체를 운운한 베레조프스키의 발언은 자신의 정치적 망명 지위를 넘는 것이기 때문에 영국은 더 이상 이를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러시아 정부는 반푸틴 활동을 벌이고 있는 망명객 21명에 대해 러시아로 신병을 넘겨달라고 요구했지만, 영국으로부터 거부당하기도 했다. 또 토니 브렌튼 주러 영국 대사는 작년 7월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는 러시아 국내단체 ‘다른 러시아(Different Russia)’ 회의에 참석했다. 크렘린은 사전에 “비우호적 행위”라고 반발했지만, 브렌튼 대사는 이를 강행, 친(親)크렘린 청년단체인 나시(Nashi·우리들)측으로부터 항의를 받은 사건도 있었다.

영국은 유럽연합(EU)을 이끄는 이른바 ‘빅3(Big3, 영국 독일 프랑스)’ 중에서 유독 러시아에 비판적이다. 올 초부터 폴란드·체코에 미국이 자국의 미사일방어(MD)의 일부인 요격미사일과 레이더기지를 각각 설치한다고 발표하고 러시아가 반발할 때, 독일과 프랑스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안보우려를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영국은 그렇지 않았다.

이처럼 복잡하게 꼬인 영·러 간의 갈등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모스크바 외교가에서는 양측 모두 칼을 빼든 만큼, 쉽사리 칼집에 다시 넣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은 더 이상 식민시대의 강국이 아니며 러시아는 단 한 번도 영국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영국 스스로가 잊고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24일 발언은 영국에 대한 러시아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영국에선 고든 브라운(Brown) 정권이 이제 막 들어선 만큼 러시아에 대한 강경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도 별반 다르지 않다. 푸틴 대통령이 내년 5월 퇴임하지만 이후에도 푸틴 대통령의 영향력이 유지됨은 물론, 후계자가 푸틴 정책을 거스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에는 영국계 석유 메이저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과 로열더치셸이 투자를 하고 있고, 국제무대에서도 이란 핵문제, 코소보 독립 문제, EU와 러시아 간의 파트너십 구축 등에서 양국의 상호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영·러 간의 갈등이 수면 아래로 들어갈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봉합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권경복 모스크바특파원)

조선일보(07. 07. 28) 푸틴 인기 높다보니…

보드카 ‘푸틴카(Putinka)’, 식용 해바라기씨 ‘푸트니예(Putniye)’, 만두 ‘펠미니 푸티나(Pelmini Putina)’…. 요즘 러시아 상점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Putin, 러시아어 표기 Путин) 대통령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푸틴 이름이 붙은 상품 판매가 늘고 있다. 그간 마트료쉬카(목각인형)와 티셔츠 등 기념품에 국한됐던 푸틴 상표 제품들이 푸틴 인기를 활용해보려는 일부 기업인의 발상으로 작년부터 술 등 식품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 상표등록법상 ‘푸틴’ 자체상표 등록은 불가능하지만, 단어형태를 약간 바꾸거나 합성어를 만들면 등록이 가능하다.

이런 상품은 경쟁제품에 비해 품질이 우수하지 않은데도 판매가 증가했다. 보드카 ‘푸틴카’의 품질은 중급 이하로, 0.5? 1병의 소매가는 220루블(약 8600원)이다. 판매량 1위인 고급품 ‘루스키 스탄다르트’(270루블)와 비교할 때 품질이 뒤지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터키계 하이퍼마켓인 람스토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올 상반기 푸틴카 판매량은 전년 동기대비 30% 이상 늘었다. 26일 발표된 ‘전(全)러시아여론센터’ 조사 결과, 푸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무려 83%로 나타났다.(권경복 모스크바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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