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용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지만((찾아보니 현재는 이가서에서 나온 2권짜리 어린이용 그림책이 있다) 나로선 기억에 없는 <위대한 왕>(아모르문디, 2007)이 출간됐다.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바이코프(1872-1958)의 '백두산 호랑이' 이야기라고 한다. 비록 이번에 나온 완역본은 불역본을 대본으로 한 것이지만 저자와 책에 대한 흥미 때문에 따로 페이퍼를 쓴다(아래 오른쪽 이미지는 바이코프의 호랑이 이야기도 포함돼 있는 책 <정글의 왕>. 바이코프의 책은 러시아 인터넷서점에서 거의 뜨지 않는다. 저자의 이미지도 찾지 못했다).

Владыка джунглей

한국일보(07. 08. 11)  러시아 작가가 그려낸 동물의 왕 '조선 호랑이'

지금은 동물원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지만, 호랑이는 오랫동안 우리 민중들에게 영물(靈物)로 받들어져온 동물이다. 반면 서양에서는 동양만큼 호랑이가 상징성이 있는 동물은 아니기 때문에 어린시절 서양작가가 호랑이를, 그것도 조선호랑이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여겼던 기억이 새롭다.

Des tigres et des hommes : "Le Grand Van" et autres nouvelles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의 완역본이 선보였다. 1936년 처음 발표된 소설로 광활한 만주의 침엽수림을 지배하는 조선 호랑이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어린이용 문고판이나 만화 등으로 여러차례 선보였지만 완역은 이번이 처음. 러시아어판을 옮긴 것이 아니라 프랑스어판(1938년)을 텍스트로 삼은 점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지명이나 묘사, 사건들을 많이 생략해버린 기존 번역서의 약점을 극복하고 원본의 아우라를 잘 살려주고 있다.

주인공인 조선호랑이는 “단 한번 성난 눈길을 던지기만 해도 모든 작은 육식동물들이 겁을 먹고 맹종하는 왕”이다. 탄생, 사냥, 숲의 지배자로의 성장, 숙적인 인간과의 조우, 비극적인 최후 등 왕의 일생은 실제로 30여년간 만주의 자연을 치밀하게 관찰했던 작가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 의해 생명력을 얻는다.“넓고 반듯한 이마에는 ‘왕(王)’이라는 글자의 윤곽이 선명하고, 허공을 가로지르듯 유연하고 가볍게 위로 튀어오르는 모습은 차라리 새의 비상에 가깝다”“왕의 힘과 날렵함, 뛰어난 솜씨, 아름다움을 따라올 동물은 어디에도 없었다”“왕의 강인한 모습 전체에서 타고난 엄청난 힘과 꺾이지 않는 의지가 느껴졌다” 존엄한 왕자(王者)의 삶이라는 소재와 만주라는 공간적 배경이 잘 조화돼 남성적인 힘이 느껴진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러시아가 동청철도(하얼빈철도) 부설권을 획득해 만주개발에 뛰어들고 일본역시 한반도를 거점으로 만주진출을 꾀하던 시기. 이런 저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사냥꾼에 의한 왕의 죽음을 식민주의자의 피식민자에 대한 침탈로 읽거나, 문명에 의한 자연파괴라는 은유로 읽어내는 시도도 흥미롭겠다.(이왕구기자)

문화일보(07. 08. 11) 서구 근대문명과 맞선 ‘백두산 호랑이’

어릴 적에 소년소녀세계명작전집에 들어있는 한국 호랑이 이야기인 ‘위대한 왕’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러시아 출신 니콜라이 바이코프(1872~1958)의 ‘위대한 왕’(김소라 옮김·아모르문디)이 국내에서 처음 완역돼 나왔다. 270쪽에 달하는 청소년과 성인대상 소설이다.

책을 보면 ‘원래 어린이용 책이 아니었어?’ 하는 생각이 든다. 이어서 주로 서구작가의 작품 위주였던 명작전집에 어떻게 이 책이 들어갔을까 하는 호기심도 생긴다. 그 이유를 재일조선인 학자인 서경식(56·도쿄게이자이대 법학부) 교수의 서문을 보니 알 것 같다. 그는 일본 교토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고단샤(講談社)에서 나온 세계명작전집에 수록된 이 책을 처음 보았다.

“‘조선’이라는 말에 경멸과 조롱의 울림이 진드기처럼 늘 들러붙어 다니던 일본에서, 비록 ‘조선호랑이’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이 말이 경의의 뜻으로 쓰이는 사례를 접한 것이 처음이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나온 어린이 명작전집이 일본 것을 베낀 게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나이가 지긋한 독자들도 ‘위대한 왕’을 보게 된 것이다. 일본에선 그 시절 어떻게 조선호랑이 이야기가 명작에 들어갔을까. 
 

저자 바이코프는 제정러시아의 장교로 만주에 파견됐다가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만주로 망명,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을 만주의 밀림 속에서 보냈다. 그는 만주에서 생활하며 그곳의 동식물과 풍속을 세밀하게 관찰해 여러 편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에 ‘위대한 왕’은 1936년 당시 일본이 괴뢰정부를 세운 만주의 ‘만주일일신문’에 일본어로 번역돼 연재된 뒤 문예춘추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것이다.

‘위대한 왕’은 신령스러운 백두산 호랑이의 후예로 태어나, 만주의 거대한 숲의 바다(樹海)를 지배하는 군주로 성장한다. 이 호랑이는 광활한 숲의 왕자(王者)이자 준엄한 자연 법칙의 현현이기에 타이가의 모든 동물들은 왕에게 복종한다. 인간들도 위대한 왕을 산의 신령으로 모시며 순종한다. 왕은 굴종을 모르는 순수한 자연의 힘과 태곳적부터 이어져 내려온 밀림의 법칙을 대변하는 존재다. 이 왕에게 경외심을 보이는 이는 타이가의 현자 퉁리 노인이다. 그러나 철도로 대변되는 기괴하고 무자비한 제국주의의 손길이 만주 타이가를 송두리째 파괴하기 시작하자, 왕을 비롯한 숲의 터줏대감들은 새로이 등장한 인간에 맞서 반격에 나선다. 왕은 끝내 인간 침략자들과 맞서다가 당당한 최후를 맞이한다. 퉁리 노인만이 무릎을 꿇고 왕의 임종을 지킨다.

서 교수는 “‘근대문명’으로 말미암아 파괴되는 대자연과 멸절의 위기로 내몰리는 야생동물은 구미열강의 침략 앞에 내던져진 아시아 피압박 민족으로 읽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며 “이것이 단순한 동물소설의 영역을 초월해 정치적 암유(暗喩)의 색채를 띠는 이유”라고 이 소설의 생명력을 설명한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38점의 삽화(그림)가 수록됐다.(엄주엽기자)

경향신문(06. 04. 10) [여적] 시베리아 호랑이

니콜라이 바이코프는 러시아혁명 당시 백군에 가담해 적군과 싸웠고 그후 중국 동북지방으로 망명해 원시림을 무대로 동물소설을 쓴 독특한 이력의 작가다. 그의 대표작 ‘위대한 왕’(1936)은 시베리아 호랑이 ‘왕대(王大)’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인간의 발길이 깊은 숲 속으로 침투할수록 점점 더 좁아지고 살기 힘들어지는 동물의 세계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렸다. 왕대는 자신의 영토인 숲이 철도 개발로 처참히 짓밟히는 데 분노해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바이코프의 경고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호랑이는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 동물이 됐다. 돌이켜보면 인간은 호랑이를 살육하고 그 터전을 파괴하는 일에 얼마나 열중해왔던가.
시베리아 호랑이는 아무르 호랑이라고도 하며 인도·수마트라 등 세계의 호랑이 가운데 가장 크다. 수컷의 몸길이는 2.7∼3.3m, 몸무게는 180∼360㎏이다. 백두산 호랑이도 여기에 속한다. 백두산 호랑이는 남한에서는 이미 멸종한 것으로 보이며 백두산 일대에 몇마리 남아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호환(虎患)같은 표현에서 보듯 한국인은 호랑이를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 친근하며 덕성이 있는 동물로 받아들였다. 단군신화에 조급해 금기를 지키지 못한 동물로 등장하는가 하면 산군(山君), 산신(山神), 산수(山獸)로 받들어지기도 했다. 호랑이의 용맹성을 들어 무반(武班)을 호반(虎班)으로 부르기도 했다.

멸종 위기의 호랑이와 관련해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세계야생동물보호재단(WWF)은 러시아 아무르주에서 시베리아 호랑이가 태어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주로 연해주와 하바로프스크에 서식해 왔으며 아무르주에서 직접 새끼를 출산한 것은 1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또 중국이 ‘동북호(東北虎)’로 부르는 시베리아 호랑이의 개체수가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미세하나마 증가세로 돌아선 것으로 관찰됐다.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호성(虎聲)이 되살아날지 기대를 갖게 한다.(김철웅 논설위원)

07. 08. 12.

В горах и лесах Маньчжурии: иллюстрация 1

P.S. 바이코프의 책으로 더 눈에 띄는 건 1915년에 출간된 <만주의 산과 숲에서>이다. 저자가 42살에 펴낸 책이다. 그러고 보면 <위대한 왕>은 64살에 발표한 것이나 말년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짐작에는 러시아에서보다 일본에서 더 주목을 받은 작품으로 보인다(그 영향이 우리에게도 남아 있는 것이고).

P.S.2. 바이코프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시인 백석이 그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었다는 점. 아래 연보에 보면 1942년에 바이코프의 작품 <밀림유정> 등을 번역한 걸로 돼 있다(짐작엔 <위대한 왕>을 옮긴 게 아닌가 싶다). 일역본을 옮긴 듯하지만 백석이 러시아어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러시아어본을 옮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호사가'들이 좀 확인해주었으면 좋겠다... 

본명 : 백기행 (白夔行 1912년~1963년)
학력 : 아오야마가쿠인대학교
데뷔 :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 (1935년)
화제 : 시로 데뷔해 소설로 두각을 보임
약력 :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
-1918년(7세) 오산 소학교 입학.
-1930년(19세) 조선일보의 작품 공모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을 응모,
당선하여 소설가로서 문단에 데뷔함.
이해 3월에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 선발에 뽑혀 일본으로 유학.
도오쿄오의 아오야마(靑山) 학원 영어 사범과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함.
-1934년(23세) 아오야마학원 졸업.
귀국 후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서울 생활을 시작함.
출판부 일을 보면서 계열잡지인 여성(女性)지의 편집을 맡음.
-1935년(24세) 8월31일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이후 시작품에 더욱 정진함. 조광(朝光)지 편집부 일을 봄.
-1936년(25세) 1월 20일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
1월29일 서울 태서관(太西館)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짐.
-1939년(28세) 1월 26일 조선일보에 재 입사.
-1940년(29세) 만주의 신찡(新京,지금의 長春)으로 옮겨 가서
'신경시 동삼마로 시영주택 35번지'의 중국인 황씨 집에 거처를 정함.
-1942년(31세) 만주의 안동에서 세관 업무에 종사함.
러시아 작가 바이코프의 작품 [밀림유정] 등을 번역함.
-1945년(34세) 해방과 더불어 귀국,
신의주에서 잠시 거주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와 남의 집 과수원에서 일함.
-1947년(36세) 시 [적막강산}이 그의 벗 허준에 의해 신천지에 발표됨.
-1948년(37세) 김일성 대학에서 영어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고 전해짐.
-1949년(38세) 숄로호프의 소설 [고요한 돈강]을 번역 출간함.
숄로호프의 [그들은 조국을 위하여 싸웠다]를 번역 출간함(191면).
-1950년(39세) 국군이 평안도를 수복했을 때
주민들이 그를 정주 군수로 추대했다고 전함.
-1953년(42세) 파블렌코의 [행복]을 번역 출간함.
-1954년(43세) 러시아의 농민시인 이사코프스키의 시선집을
연변교육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함.

-1956년(45세) 아동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등의 평론을 발표함.
-1957년(46세)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발간함.
-1958년(47세) 시평 [사회주의적 도덕에 대한 단상]을 발표함.
-1959년(48세) 시 [이른 봄] 등 7편을 조선문학에 발표함.
-1960년(50세) 이해 12월 북한의 조선문학지에 시 [전별] 등 2편을 발표함.
-1963년(52세) 이해에 사망했다는 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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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13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지면엔 글 올라오셨던데... :)

로쟈 2007-08-1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21 말씀이신가요? 진작에 옮겨놨는데요...

마늘빵 2007-08-13 10:03   좋아요 0 | URL
헙. -_- 제가 못본거군요.

2007-08-17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8-18 01:14   좋아요 0 | URL
반가운 댓글이네요.^^ 백석의 <밀림유정>이 바이코프의 단편 <유로슈카>의 번역이라는 정보만으로도 유익합니다. 나머지 작품들도 곧 책으로 나오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