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07. 07. 28) 뿌리깊은 영국·러시아 갈등…‘신냉전’으로 가나

러시아 전(前)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살해용의자 인도요구 논란을 둘러싸고 외교전쟁을 벌이던 영국과 러시아가 무력충돌까지 갈 뻔했다. 지난 17일과 20일 두 차례나 러시아 Tu-95 전폭기가 영국과 노르웨이 사이 북해(北海)의 영국 영공까지 근접비행 했다가 영국의 토네이도 전투기가 출격하자 회항했던 것. 2001년 똑같은 사건이 발생한지 6년만의 일이었다.이번 갈등의 도화선은 망명지 영국에서 푸틴 반대운동을 하던 전 KG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독살(毒殺) 용의자 안드레이 루고보이의 신병인도 문제였다.

영국은 5월부터 러시아에 루고보이가 영국에서 재판을 받도록 신병을 넘겨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으나, 러시아는 이를 매번 거부했다. 발끈한 영국은 16일 러시아 외교관 4명을 추방하고, 러시아 관리들의 영국 입국비자 발급 간소화 문제를 재검토한다고 엄포를 놨다. 하루를 그냥 지켜봤던 러시아는 이날 “대응방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곧바로 전폭기의 근접비행을 시도했다. 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19일 영국 외교관 4명을 맞추방했다. 언론들은 이번 사태를 영국과 러시아의 ‘신(新)냉전’이라고 부를 만큼,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 외교관 맞추방 사건을 양국의 ‘작은 위기(mini-crisis)’라고 규정하고, “이는 극복될 것”이라고 완곡하게 말했다. 하루 뒤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부 장관이 “러시아는 영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한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영·러 갈등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왜 그럴까. 표면적인 갈등 이유는 살해용의자 인도를 둘러싼 자존심 대결이지만, 벌써 수백 년간 국제무대에서 벌이고 있는 영·러의 주도권 다툼과 감정적 대립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토니 브렌튼(Brenton) 주러 영국대사는 지난 22일 “영국과 러시아 관계는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놀랄 만큼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바꿔 말하면 그동안 양국관계가 불편했다는 얘기가 된다.

영국과 러시아의 감정싸움은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스크바국립대의 마리나 벨랴코바 교수는 “19~20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의 중흥기를 막은 나라가 영국이고, 이 때문에 러시아인의 마음 속에 영국은 적국(敵國)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고 했다.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을 물리친 러시아는 알렉산드르 2세(1855~1881년)가 황제에 오르면서 남진(南進)을 시도하며 영토 확장에 나섰다. 카자흐스탄 등 지금의 중앙아시아 지역을 점령해나가자 당시 인도를 식민지로 두고 있던 영국은 러시아 세력의 확장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양국은 결국 아프가니스탄에서 ‘거대한 게임(Great Game)’이라고 불리는 전쟁을 치렀다.

그뿐 아니다. 러시아는 1860년 아이훈 조약을 통해 극동과 사할린 일대로 영토를 넓혀갔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은 일본과 1902년 영·일 동맹을 체결했고, 여기서 러시아의 확장정책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러시아 학자들에 따르면, 이 같은 상황을 즈음해 러시아에서는 서구(西歐)주의자와 슬라브주의자 간의 대립이 발생했고, 결과적으로 슬라브주의자들이 승리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같은 세계의 대문호마저 1989년 타임(Time)지에 기고한 글에서 “서구는 영적으로 황폐한 곳이고, 러시아는 윤리적으로 고결한 곳”이라고 인식할 정도였다. 그만큼 영국이 러시아사에 남긴 그림자가 컸다는 방증이다.

다른 분석도 있다. 100년 역사에 가까운 양국 정보기관들의 경쟁심이 깊숙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영국 정보기관 MI(보안국)-6은 98년, 러시아의 FSB는 90년의 역사를 가진 최고의 정보기관들이다. 특히 소련시절 KGB와 그 후신인 러시아 FSB(연방보안국)에 대한 영국 정부의 경계심은 예사롭지 않다. 이번 사건의 본질도 영국의 사법권이 러시아 정보기관에게 유린당했다는 반발 때문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MI-6은 소위 ‘케임브리지 링(Cambridge Ring)’이라는 소련 고정 간첩망에 의해 1930년대부터 30여년간 유린당한 쓰라린 경험이 있다.

케임브리지 링은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당시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학생 5인방이 MI-6의 고위직에 이를 때까지 지속적으로 KGB 사주를 받아 소련을 위해 첩보활동을 한 간첩망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킴 필비(Kim Philby)여서, ‘필비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필비는 MI-6에 검거되기 직전인 1965년 소련으로 망명, 1988년 사망할 때까지 소련에서 거주하며 영웅으로 불렸다. 이 때문에 MI-6은 조직 자체위상이 흔들림은 물론, 미국 정보기관 CIA와의 협조체제에서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러시아 정보기관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다른 사례가 있다. 지난 2월 영국 부동산 회사 랜드마크그룹(Landmark Group)은 “KGB가 1950년부터 약 40년간 작성해온, 영국 내 103개의 주요 도시 현황에 관한 지도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지도가 건물 하나하나의 구조와 재질, 면적 등까지 기록해놓는 등 너무 정밀하게 제작돼 있어, 요즘의 디지털 지도보다 더 정확했다는 것. 지도전문가인 존 데이비스(Davis)가 “이 정도의 지도를 만들려면 공중촬영 후 지상을 걸어가며 직접 확인해 정보를 추가해야 가능하다”며 KGB의 능력을 평가했을 정도였다. 영국 정보기관도 이 지도를 본 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영국과 러시아의 정보기관은 1989년 외교관 11명 맞추방, 1996년 4명 맞추방에 이어 지난 16일 다시 4명을 맞추방하기에 이를 만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특히 이번 사건 때는 알렉산드르 그루쉬코(Grushko) 러시아 외교차관이 “영국외교관 80명까지 추방할 수 있다”고 경고할 만큼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현재 주러 영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 신분의 인력은 모두 45명. 그런데 어떻게 80명을 추방할 수 있다는 걸까. 이는 러시아내에서 비공개로 활동하는 정보기관 요원까지 모두 내보내겠다는, 러시아측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 셈이었다.

외교전쟁 촉발의 또 하나의 원인은 영국의 반(反) 푸틴 정서에서 찾을 수 있다. 루고보이 신병 인도 논란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영국, 그 중에서도 런던에는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러시아로서는 영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반푸틴 세력 결집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을 가질 법도 하다. 핵심은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란 말이 있다. 그는 지금도 반푸틴 쿠데타 등을 공개적으로 외치고 있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베레조프스키의 언급이 나올 때마다 “러시아의 정권 교체를 운운한 베레조프스키의 발언은 자신의 정치적 망명 지위를 넘는 것이기 때문에 영국은 더 이상 이를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러시아 정부는 반푸틴 활동을 벌이고 있는 망명객 21명에 대해 러시아로 신병을 넘겨달라고 요구했지만, 영국으로부터 거부당하기도 했다. 또 토니 브렌튼 주러 영국 대사는 작년 7월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는 러시아 국내단체 ‘다른 러시아(Different Russia)’ 회의에 참석했다. 크렘린은 사전에 “비우호적 행위”라고 반발했지만, 브렌튼 대사는 이를 강행, 친(親)크렘린 청년단체인 나시(Nashi·우리들)측으로부터 항의를 받은 사건도 있었다.

영국은 유럽연합(EU)을 이끄는 이른바 ‘빅3(Big3, 영국 독일 프랑스)’ 중에서 유독 러시아에 비판적이다. 올 초부터 폴란드·체코에 미국이 자국의 미사일방어(MD)의 일부인 요격미사일과 레이더기지를 각각 설치한다고 발표하고 러시아가 반발할 때, 독일과 프랑스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안보우려를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영국은 그렇지 않았다.

이처럼 복잡하게 꼬인 영·러 간의 갈등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모스크바 외교가에서는 양측 모두 칼을 빼든 만큼, 쉽사리 칼집에 다시 넣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은 더 이상 식민시대의 강국이 아니며 러시아는 단 한 번도 영국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영국 스스로가 잊고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24일 발언은 영국에 대한 러시아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영국에선 고든 브라운(Brown) 정권이 이제 막 들어선 만큼 러시아에 대한 강경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도 별반 다르지 않다. 푸틴 대통령이 내년 5월 퇴임하지만 이후에도 푸틴 대통령의 영향력이 유지됨은 물론, 후계자가 푸틴 정책을 거스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에는 영국계 석유 메이저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과 로열더치셸이 투자를 하고 있고, 국제무대에서도 이란 핵문제, 코소보 독립 문제, EU와 러시아 간의 파트너십 구축 등에서 양국의 상호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영·러 간의 갈등이 수면 아래로 들어갈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봉합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권경복 모스크바특파원)

조선일보(07. 07. 28) 푸틴 인기 높다보니…

보드카 ‘푸틴카(Putinka)’, 식용 해바라기씨 ‘푸트니예(Putniye)’, 만두 ‘펠미니 푸티나(Pelmini Putina)’…. 요즘 러시아 상점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Putin, 러시아어 표기 Путин) 대통령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푸틴 이름이 붙은 상품 판매가 늘고 있다. 그간 마트료쉬카(목각인형)와 티셔츠 등 기념품에 국한됐던 푸틴 상표 제품들이 푸틴 인기를 활용해보려는 일부 기업인의 발상으로 작년부터 술 등 식품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 상표등록법상 ‘푸틴’ 자체상표 등록은 불가능하지만, 단어형태를 약간 바꾸거나 합성어를 만들면 등록이 가능하다.

이런 상품은 경쟁제품에 비해 품질이 우수하지 않은데도 판매가 증가했다. 보드카 ‘푸틴카’의 품질은 중급 이하로, 0.5? 1병의 소매가는 220루블(약 8600원)이다. 판매량 1위인 고급품 ‘루스키 스탄다르트’(270루블)와 비교할 때 품질이 뒤지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터키계 하이퍼마켓인 람스토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올 상반기 푸틴카 판매량은 전년 동기대비 30% 이상 늘었다. 26일 발표된 ‘전(全)러시아여론센터’ 조사 결과, 푸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무려 83%로 나타났다.(권경복 모스크바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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