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에 관한 얘기를 쓰다 보니까 문득 아침 신문에서 읽은 작가 박영한씨의 별세 소식이 생각났다. 한때 이문열만큼의 지명도와 인기를 누렸던 작가이지만 근간의 소식은 뜸했었는데, 향년 59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까 좀 이른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병상에서는 "문학이 암보다 더욱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니까(그만큼 치열했던 작가정신의 토로이기도 하겠다) 그가 건너간 세상은 문학이 없는, 문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이기를 기원하면서 그의 명복을 빈다.

아침에 내가 읽은 건 경향신문의 기사였지만 한겨레의 기사를 발췌해서 읽어본다.

한겨레(06. 08. 24) <왕룽 일가> <머나먼 쏭바강>의 작가 박영한씨가 23일 오후 6시30분 경기도 고양시 일산백병원에서 별세했다... 박영한씨는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부산 초량동 산동네를 전전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3년 동안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부랑 생활을 경험했다. 스물셋 나이에 연세대 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곧 휴학하고 군에 입대하며, 베트남전 파병을 자원한다.

 

 

 



-1976년 서른 살 늦은 나이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이듬해 중편소설 <머나먼 쏭바강>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나선다. 베트남전 참전 경험을 살린 이 작품은 곧 장편으로 개작되어 작가에게 제2회 ‘오늘의 작가상’을 안겨주며, 책으로 출간되자마자 10만부가 넘게 팔리면서 당대의 화제작이 된다(*제1회 수상자가 한수산씨였고 제3회 수상자는 이문열씨였다). <머나먼 쏭바강>은 한국문학에서 베트남전쟁을 다룬 최초의 소설로 꼽힌다. 베트남전쟁의 국제정치학에 대한 엄밀하고 객관적인 시야를 확보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이후 한국문학이 베트남전쟁을 형상화하는 데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안정효씨의 <하얀전쟁>과 황석영씨의 <무기의 그늘> 등은 <머나먼 쏭바강>의 바통을 이어받은 셈이다.

-<머나먼 쏭바강>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방 한 칸’을 장만하기 위한 작가의 고투는 계속되었다. 덕소, 능곡, 김포 등 서울 부근의 도농 접경지대를 떠돌며 목격한 변두리 인생들의 삶의 세목은 <왕룽일가> 연작으로 갈무리되었다.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지옥에서 보낸 한 철>과 영화로도 만들어져 잘 알려진 <우묵배미의 사랑>이 바로 이 연작에 포함된 작품들이다. “서울시청 건너편 ‘삼성’ 본관 앞에서 999번 입석을 타고 신촌, 수색을 거쳐 50분쯤 달려와 낭곡 종점” 근처에 있는 변두리 마을 ‘우묵배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연작들은 서울에서 밀려난 이주민들과 예전부터 그곳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이 어울려 펼치는 ‘반농 반도(半農半都)’의 독특한 풍경을 돋을새김한다(*<왕룽일가>는 TV드라마로도 만들어져 많은 인기를 얻었었다).

-<우묵배미의 사랑>을 표제로 삼은 책의 후기에서 작가는 “인간을 생짜배기 알몸뚱이 그대로, 충분히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에서 좋은 소설이 나온다는 신념을 피력하고 있다. 이는 밑바닥 인간들의 삶의 진면목을 아무런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드러내려는 박영한식 소설 작법의 표현에 해당한다. 박영한씨의 다른 작품으로는 <인간의 새벽> <장강> 등이 있으며, 2002년에 펴낸 <카르마>는 그의 마지막 소설이 됐다...

장선우 감독이 만든 <우묵배미의 사랑>(1991)은 그가 만든 가장 좋은 영화에 속하는데, 원작 자체의 힘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겠다. 한편, 타계 며칠 전에 작가를 인터뷰한 세계일보의 조용호 기자가 아마도 그의 생전 소식을 전한 마지막 기사를 쓴 듯하다. 카피라이트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마지막 육성을 보존하는 것도 그만큼은 중요하겠기에 부분적으로 옮겨온다(앞으로 서평이 아닌 인터뷰 기사들은 필요할 경우 옮겨올 예정이다).

세계일보(06. 08. 21) “문학으로는 안 돌아가… 그거, 암보다 더 고통스러워.” 1978년 <머나먼 쏭바강>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문단에 나와 도시 변두리의 삶을 다룬 <우묵배미의 사랑> <왕룽 일가> 등을 펴내며 한국 문단의 중추적 작가로 살아온 소설가 박영한(59·사진)씨. 그가 지금 위암으로 생사의 접경을 넘나들며 힘겹게 투병 중이다. 20일 전 일산백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의사의 권유로 일반실로 내려와 진통제로 생을 버티고 있다.

-의사는 지인들에게 연락해 평소에 보고 싶었던 이들을 만나보도록 권유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가 병상에서 만난 그는 “퇴원하면 어떤 작품을 쓰겠느냐”는 질문에 암보다 더 문학이 고통스러웠다고 회고했다. 얼마나 문학의 길이 힘들었으면 흙빛이 된 얼굴로 메마른 입술을 겨우 달싹이며 문학을 증오할까.

-박씨는 2년 전 위암 판정을 받고 위의 3분의2가량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그가 평소에 즐기던 술과 담배를 여전히 끊지 못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통음과 하루 2갑이 넘는 흡연이 일과였다. 술 생각이 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술, 그거 만만한 놈이 아냐. 괴로워.” 오랜 친구의 병상을 지키던 김영창(59)씨가 “이제야 철이 든다”며 농을 한다.

-병실에는 그가 투병 중에도 가르침을 멈추지 않았던 인터넷 문학카페의 제자들 6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 있다. 제자들이 든든하지 않느냐는 말에 “하나도 안 든든해”라며 일축한다. 그는 “처음에는 열심히 하는 척하다가 매너리즘에 빠져버린다”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는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일일이 그들의 아이디를 호명했다. “네오, 똑순이… 가만, 너는 누구더라. 말하지 마. 내가 맞혀볼게…” 그는 제자들을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더니 고통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제자들은 스승이 기적처럼 병상에서 일어나 다시 특유의 호통을 치며 자신들을 이끌어주기를 기원하며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

06. 0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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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8-24 20:46   좋아요 0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비자림 2006-08-24 20:57   좋아요 0 | URL
앗, 오늘 신문 안 봐서 몰랐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암보다 더 고통스러운 문학"이란 말에서 문학을 대하는 고인의 치열한 장인 정신을 읽으며 숙연해집니다.

비로그인 2006-08-24 21:25   좋아요 0 | URL
마음이 아픕니다.

비연 2006-08-24 21:41   좋아요 0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푸른괭이 2006-08-24 23:24   좋아요 0 | URL
<머나먼 쏭바강> 재미있게 읽었고, <왕룽일가>는 어릴 때 티브이로 본 기억이 나네요. 요즘은 웬만하면 70, 80은 넘기는데,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