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면의 가장 큰 화제는 연금개혁안을 둘러싼 프랑스의 대립 정국이다. 사르코지의 법안이 어제 상원을 통과했지만 노동계는 수용불가 방침을 밝혔다. 사태의 추이가 궁금한데, 프랑스 현지의 소식을 전하는 칼럼이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어쩌면 '제2의 68혁명'으로 전화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담고 있다.
경향신문(10. 10. 23) [목수정의 파리통신]제2의 68혁명이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프랑스가 폭발 직전이다. 연초부터 줄기차게 진행돼 왔던 총파업과 집회가 9월 이후, 7번째. 이 질긴 파업의 공식 이유는 연금개혁 반대지만, 한발자국 다가가서 보면 지금 프랑스는 신자유주의가 비틀어 놓고, 사르코지가 사정없이 밟아주는 반인간적인 사회시스템에 시민들이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는 중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민영화된 프랑스 텔레콤 직원의 연쇄자살 사태로 대변되는, ‘잔혹한 세상’을 이제 모두가 온몸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상원에서의 표결 결과와 무관하게 파업을 확대하겠다고 천명한 노조연합의 발표가 상황의 핵을 집어준다.
광역전철(RER)을 비롯한 전국의 모든 철도 운행이 중단 혹은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오를리 공항의 항공기 운항은 50%가, 샤를드골 공항은 30%가 취소됐다. 정유공장 파업, 석유저장기지 봉쇄로 이미 전국 주유소 3분의 1에서 기름이 바닥났다. 도로에서는 화물연대의 달팽이운행(서행) 파업으로, 평소보다 두 세배나 시간이 걸린다. 노동자의 도시 마르세유에서는 시위대가 공항을 세 시간 넘게 봉쇄했고, 기차역에서는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연대해 선로를 점거했다. 프랑스에 온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발도 파업으로 묶여있어야만 했다. 이쯤 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심히 불편해진다. 그런데도 이 파업에 대한 지지율은 갈수록 치솟고 강도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만 간다. 71%. 파업에 대한 가장 최근 공식지지율이다.
지금의 파업정국을 관통하는 주된 정서는 ‘분노’, 집회장을 휩쓰는 최고의 구호는 “나는 계급투쟁 한다”이다. 로레알사 상속녀 릴리안 베탕쿠르 집안의 진흙탕 재산분쟁, 그녀가 자신의 친구(?)인 사진작가에게 뿌려온 1조5000억원, 시장시절부터 사르코지가 로레알사로부터 받아 챙겨온 정치자금, 사르코지의 검은 돈을 관리해왔고 이번 연금개혁의 실무 장관인 노동부 장관 에릭 뵈르트, 베탕쿠르 집안에 회계담당으로 들어가 그들의 세금을 세탁해주던 장관의 마누라…. 한눈에 헤아리기조차 복잡한 이들의 추악한 커넥션은 연금개혁을 놓고 정부와 노동계가 벌이던 씨름 한가운데서 폭탄처럼 터져버렸고, 그 순간 투쟁은 ‘계급투쟁’으로 규정되었다. “이미 우린 충분히 돼지처럼 일해왔다. 이제 인간답게 살 것을 요구한다. 너희의 금고를 털 차례다. 돈은 베탕쿠르의 금고에, 부자들의 금고에 있다.” 시위대의 요구는 이처럼 선명하다.
노조 위주로 진행되던 파업이 고교생들의 적극적 참여로 번진 것은 지난주. 현재 1100개의 고등학교가 총파업에 동참할 것을 결정했고, 프랑스전국학부모연합은 이런 학생들의 결정을 지지하고 이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고교생들의 대대적인 참여는 사회 전체를 술렁이게 했다. 그들은 68혁명을 비롯한 지난 세기에 프랑스가 진행해온 모든 사회적 투쟁에서 언제나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단결이 주목할 만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가장 단순하고 명료하게, 그리고 노조집행부 같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핵심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지성과 야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르코지! 너 미쳤니. 애들이 거리에 나섰잖아.” 한 여고생이 집회에 들고나선 피켓은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치게 될 이 시퍼런 젊음과 사르코지의 야욕이 벌일 한판 승부를 예고한다. 귀막은 사르코지, 더 심각한 파업, 더 높은 파업지지율, 그 끝에는 새로운 프랑스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모두의 이마에 담겨있다. 이 무시무시한 파업 정국을 살아내면서 비릿한 활기를 코 끝으로 느낄 수 있는 이유이다.(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10. 10. 24.
P.S. 칼럼에 이은 후속기사도 옮겨놓는다.
경향신문(10.10. 25) "사르코지 ‘부자 정책’에 본능적 계급투쟁”
프랑스 상원에서 지난 22일 연금개혁 수정안이 통과되었다. 찬성 177, 반대 153. 모두가 예상했던 결과지만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상원에 연금개혁법의 250여개 수정안에 대한 일괄상정과 표결을 요청함으로써 다시 한 번, 토론과 합의를 요구하는 전 국민적 요구에 찬물을 끼얹었다. “정부가 그들의 승리를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지른 정신나간 짓”이었다고 주요 노조 ‘노동자의 힘(FO)’ 대표는 평했고, 우파언론 피가로지도 정부가 “법적인 대포”를 동원한 것으로 묘사했다.
법안은 이제 상·하원 합동위원회의 평가와 최종표결을 거쳐 효력을 갖는다. 야당은 1000개가 넘는 개정법안들을 내놓고 토론을 요구했으나, 집권당의 힘으로 사안은 신속히 처리되고 말았다. 그러나 상원의 표결이 현재 촉발된 투쟁의 끝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6개 노조연합 대표들은 표결이 진행되기 전, 결과와 무관하게 10월28일과 11월6일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열 것을 천명하였고 이후 벌어질 시민들의 행보는 모두 사르코지 정부가 자초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 금요일 2주간 방학에 들어간 학생들도, 26일에 전국대학생연합의 이름으로 집회를 열 것을 알리며 투쟁을 지속할 것임을 경고했다. “우린 파업을 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파업을 계속한다”고 선언한 정유공장 노동자들에 의해 12개의 정유공장은 여전히 멈춘 상태이며, 철도파업도 2주째 계속되고 있다.
계급투쟁. 평균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국민연금 금고가 큰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 시민들은 그런데 왜 이다지도 격렬하게 정부의 연금개혁을 거부하는 것일까. 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현 정치권이 행해온 불공정과 불평등이 그들의 가슴에 불을 댕긴 주요인임을 지적한다. “사르코지는 부자들에게만 더 벌게 해주고, 우리에겐 더 일할 것만을 요구한다” “그들은 우리를 레몬처럼 꼭 쥐어짠다”, “기업은 우리로부터 삶을 앗아가고, 정부는 우리로부터 연금을 앗아간다” “프랑스텔레콤처럼 많이 자살하진 않았지만, 우린 모두 우울증과 만성피로·긴장에 사로잡혀 있다”. 마리안지가 전국의 시위현장을 돌면서 담아온 증언들이다. 사람들은 연금개혁이 신자유주의를 강화하고 고착시키는 또 하나의 단계임을 알고, 반기를 든 것이다. “개혁이 필요하다면, 부자들의 금고를 털어라.” 시위대의 주문은 분명하다.
사르코지 3년, 명백해진 것은 “모든 사회관계에서 경쟁구조의 일반화, 공공기관을 비롯한 모든 영역으로 확대된 시장의 논리”이며, 이에 대한 저항은 2005년 유럽헌법 국민투표 부결, 학생들의 투쟁으로 좌절된 ‘최초고용계약’ 등으로 이어져 왔다. 연금개혁의 반대투쟁에 이르러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계급투쟁이 이제 제대로 펼쳐지고 있다”고 사회학자 크리스치앙 라발은 분석한다.
이번 연금개혁의 첫번째 수혜자가 대통령의 형인 기욤 사르코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 누벨 옵세르바퇴르지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기욤은 보험회사 메데릭그룹 대표다. 이 회사가 개인연금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은 2년 전. 내년 1월, 회사 규모 확대를 앞두고 보증공탁금고(CDC)와 국립신용금고(CNP)와의 합자를 이뤄냈다. 뒤의 두 회사는 국회의원과 전직 엘리제궁 비서관에 의해 운영되는 공기업이다.
대통령 형의 회사는 이번 개혁으로 생성될 개인연금 시장을 400억~1000억유로 규모로 내다보며 전체 시장의 17%를 차지할 것을 목표로 세우기까지 했다. 이 모든 국민적 분노를 산 연금개혁, 무리한 일괄처리의 압박 뒤에는 가족과 측근을 위해 한몫을 단단히 잡겠다는 사리사욕이 있었다. 무려 250여개의 조항을 개정하는 이번 과정에서 5년간의 의원 경력으로 40년간 일한 봉급생활자의 연금을 받는, 지나치게 큰 국회의원들의 특혜 조항들은 전혀 개정되지 않았다. “고통은 너희들의 것”이라고 말하는 가진 자들의 메시지도 분명하다.
20년 전부터 연 5주의 유급휴가를 누려온 프랑스인들이다. 그들은 자유, 평등, 박애가 짓밟힐 때 본능적으로 일어선다. 초강수 불통 권력자를 향한 그들의 계급투쟁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목수정 |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