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한편을 더 옮겨놓는다. '황새의 멈추어진 걸음'이란 글에 포함돼 있었지만 시만 따로 빼놓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병 속의 시간
그대를 그리워하다 남는 시간은 빈병 속에 넣어둔다
시간은 시간의 과욕이며 연적(戀敵)이다
그리움이 막막할수록 부질없는 시간은 빈병 속에서 묵직해지고
나는 어느덧 텅 빈 세상 하나를 거느리게 되었다
빈병 속 보이지 않는 자갈이 깔리고 보이지 않는 꽃들이 핀 길
그대가 원한다면 느티나무 두 그루를 마저 심겠다
보이는가, 저 텅 빈 세상의 물살과 바람과 먼지……
그대를 그리워하다 남는 시간이, 아아 더 소중해 보인다
시간은 시간의 변덕이며 불가피한 오용이다
그대를 그리워하던 다락 같은 방도 이젠 저 빈병 속에 있다
10. 09. 17.
P.S. 이 시는 아마도 짐 크로스의 노래 '병 속의 시간(Time in a bottle)'을 염두에 두고 썼을 것이다. "만약 시간을 병 속에 저장할 수 있다면"이라고 시작하는 노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