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한편을 더 옮겨놓는다. '황새의 멈추어진 걸음'이란 글에 포함돼 있었지만 시만 따로 빼놓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병 속의 시간

그대를 그리워하다 남는 시간은 빈병 속에 넣어둔다
시간은 시간의 과욕이며 연적(戀敵)이다
그리움이 막막할수록 부질없는 시간은 빈병 속에서 묵직해지고
나는 어느덧 텅 빈 세상 하나를 거느리게 되었다
빈병 속 보이지 않는 자갈이 깔리고 보이지 않는 꽃들이 핀 길
그대가 원한다면 느티나무 두 그루를 마저 심겠다
보이는가, 저 텅 빈 세상의 물살과 바람과 먼지……
그대를 그리워하다 남는 시간이, 아아 더 소중해 보인다
시간은 시간의 변덕이며 불가피한 오용이다
그대를 그리워하던 다락 같은 방도 이젠 저 빈병 속에 있다

 

10. 09. 17. 

P.S. 이 시는 아마도 짐 크로스의 노래 '병 속의 시간(Time in a bottle)'을 염두에 두고 썼을 것이다. "만약 시간을 병 속에 저장할 수 있다면"이라고 시작하는 노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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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go 2010-09-17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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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초우ve 2010-09-17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감상 잘했습니다 ^^

로쟈 2010-09-17 23:09   좋아요 0 | URL
^^

비로그인 2010-09-1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병 안에 들어가고 싶어져요.

로쟈 2010-09-17 23:09   좋아요 0 | URL
흠, 좀 답답할 거 같은데요.^^;

trenwelling 2010-09-17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새의 멈추어진 걸음','빈병속의 시간'모두 시적 모호함을 담을 수 있는 훌륭한 용기들 이군요. 로쟈님 시들 가끔 보았지만, 시는 좀... 하는 생각이었는데. 좋은 시네요.몇번씩 더 읽고 싶게 만드는.황새의 멈추어진 걸음이 산문인지 모르겠지만 한번 보고 싶군요.
'그대를 그리워 하던 다락같은 방도 이젠 저 빈병속에 있다'. 아... 가슴이 저릿.

로쟈 2010-09-17 23:10   좋아요 0 | URL
맘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자꾸때리다 2010-09-17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없는 소리지만 '자작시'를 지젝시로 읽은 1인입니다.


아 그나저나 그대를 짝사랑만 하던 답답하던 20대 초반도 이젠 저 빈병 속에 있다....ㅜㅜ

로쟈 2010-09-17 23:20   좋아요 0 | URL
지금은 20대 후반이신가요?^^

자꾸때리다 2010-09-18 00:33   좋아요 0 | URL
86년생임다...

2010-09-17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7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