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으로 따 꼽을 수 없는 할일들 가운데 두 가지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대해서 정리하는 것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다. 전자는 이번주 강의를 위해서이고, 후자는 다음달 연재를 위해서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강의도 한 적이 있어서 기억만 되새기면 되지 않겠나 싶지만, 그래도 읽어야 할 자료들이 아주 적지는 않다(주로 논문들이다). 마침 극단 산울림에서 이번 가을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대에 올린다. 1969년에 초연을 올렸다고 하니까 40주년 기념공연이다. 언제 시간을 내서 보면 좋겠다. 그 전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정독해보고. 공연리뷰와 함께 이번에 참고할 책 몇 권의 리스트를 꼽아놓는다(정말 몇 권 되지 않는다).   

뉴스컬쳐(09. 09. 20) 영원히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연출 임영웅)는 지루한 기다림으로 가득하다. 블라디미르(애칭 디디/한명구 분)와 에스트라공(애칭 고고/박상종 분)은 하염없이 오매불망 ‘고도’만을 기다린다. 언제부터 그를 기다려왔고, 왜 기다려야만 하는지. 두 방랑자는 어떤 질문에도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없다. 오로지 고도가 오면, 기다림이 끝남과 동시에 바라던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뿐이다.

무대는 둔덕과 쇠꼬챙이를 휘어 만든 듯한 나무 한 그루가 전부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황량하고 적막한 공간은 마치 감옥 같으며, 두 방랑자가 겪는 지루함을 더 부각시킨다. “우리 이제 뭘 한다?”, “기다려야지”, “만약 안 온다면 어떻게 하지?” “끊임없이 지껄여야 생각을 안 하지” 디디와 고고에게 ‘말(言)’은 지리멸렬한 기다림을 참는 이유이자, 살아있다는 증거다. 이들의 장난과 춤추기는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인다. 고도가 언제 올지 모를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초조와 낭패감을 극복하려는 온갖 노력들이 눈물겹다.

권력가를 상징하는 포조(전국환 분)와 운이 전혀 없어 보이는 하인 럭키(박윤석 분)가 가끔씩 등장한다. 부랑자들에게 아주 잠깐 재밋거리를 제공하지만, 역시 무의미한 언어와 행동들로 상황을 애매하게 만든 후 퇴장한다. 끝없는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 한 소년(윤준호 분)이 등장해 고도가 오늘밤은 못 오지만, 내일은 올 것이라는 전갈을 남기면서 1막이 끝난다. 그러나 2막의 다음날이 되어도, 고도는 오지 않는다. 우울함 속에서 잠시 자살을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그를 향한 기다림은 계속 된다. 다시 와야 할 이곳을 멀리 떠나지 못한 채. 



이 작품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e)의 희곡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주인공들의 연결 없는 대사들이 낯선 무대를 채우는 대표적인 부조리극이기도 하다. 다수의 부조리극이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해답 없는 줄거리가 관객들을 당황하게 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는 주인공 못지않게 관객들 역시 허무하게 만든다.

그러나 베케트는 전한다.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인도 모르고,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고도’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고 말이다. 뿌연 안개에 쌓인 듯 시간도, 장소도 희미한 현실. 애타게 바라고 있는 ‘고도’는 언제 올지 모른다. 그럼에도 웃고 울면서, 고도를 계속 기다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영원히 ‘고도’가 오지 않는다고 해도.(이주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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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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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지음, 임성희 옮김 / 청목(청목사) / 198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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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조리극
마틴 에슬린 지음, 김미혜 옮김 / 한길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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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첫사랑
사무엘 베케트 지음, 전승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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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로이
사무엘 베케트 지음, 김경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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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에 읽는 사무엘 베케트- 30분에 읽는 위대한 예술가 25
스티브 쿠츠 지음, 이영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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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그는 누구인가?
김정숙 외 지음 / 만남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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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베케트- 고뇌와 실험의 현장
김소임 지음 / 건국대학교출판부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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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소리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
권혜경 지음 / 동인(이성모)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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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베케트 극 연구
김혜란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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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과 문학비평
한국프랑스철학회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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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 2009-09-27 23:51   좋아요 0 | URL
'고도'는 단일한 텍스트가 아니라 인간의 수만큼의 텍스트입니다.
저마다 기다리는 '고도'는 대를 이여, 시대를 넘어 기다려야 할
운명 같습니다.

로쟈 2009-09-28 01:40   좋아요 0 | URL
열린 텍스트이면서 채워넣는 텍스트도 되지요. 한데, 해석은 의미를 좁히는 작업이기도 하구요...

2009-09-28 0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8 0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09-09-28 02:10   좋아요 0 | URL
민음사 책을 읽고 연극을 보았던 기억이 있네요. 보는 내내 묘하게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고도'를 기다리는 저를 발견했었구요. 저마다의 '고도'가 무엇인지,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공유할 수 있는 건지 고민하기도 했었습니다. 잠시 다시 생각하게 하네요.

로쟈 2009-09-28 09:50   좋아요 0 | URL
영화에 보면 교도소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연극이기도 하죠...

드팀전 2009-09-28 09:00   좋아요 0 | URL
지젝이 베케트의 '고도'에서 모더니즘의 전형을 찾으며 만약 포스트모던하게 '고도'를 다시쓴다면 '고도'가 육화된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하여 쾌락의 주체로 다닐거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가라타니 고진의 <역사와 반복> 읽다가 오에겐자부로와 하루키를 비교하는 대목에서 갑자기 이 비유가 생각이 났습니다. 더불어 지젝과 고진을 읽어주신 로쟈님두..^^ 잘 지내시죠.

로쟈 2009-09-28 09:52   좋아요 0 | URL
네, 일이 많아서 게으르게 지내는 것 말고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연휴가 짧아서 잘 쉬시란 말씀도 못드리겠네요.^^;

2009-09-28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8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09-09-28 11:07   좋아요 0 | URL
고도를 기다라며라 듣기는 많이 들었는데 아직 읽어 보진 않은 책이네요.고도는 어렸을적 비밀 일기라는 영국의 청소년 소설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소설속 주인공이 에스트라공의 이름은 무슨 피임약 이름 같다고 했다는....^^;;;;;

로쟈 2009-09-29 19:22   좋아요 0 | URL
'에스트라공'이 피임약이라... '에스트라'면 그럴 듯한데요...

외투 2009-09-29 20:53   좋아요 0 | URL
'에스트라'는 난포호르몬(estrogen) 대사물질을 관리합니다.
'estrogen'은 빈성(牝性) 발정을 유발시키며 부족하면 남성화(갱년기)됩니다.

봄날 2009-10-14 11:05   좋아요 0 | URL
하하하 정말 몇권 안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