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기자의 죽음

러시아의 여성 인권운동가가 또 피살됐다. 2006년 피살된 여기자 폴리트코프스카야의 친구이기도 하다고. 러시아 인권과 법치주의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사건이어서 음울하고도 씁쓸한 소식이다. 어제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9. 07. 17) 체첸 비판 러시아 인권운동가 또 피살

체첸의 인권 실태를 비판해온 러시아의 여성 인권운동가가 또다시 피살됐다. 영국 BBC방송 등은 15일 체첸 인권단체 ‘메모리얼’에서 활동해온 나탈랴 에스테미로바(50)가 납치·피살됐다고 보도했다. 에스테미로바는 이날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서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됐으며, 몇시간 뒤 인접한 잉구셰티야 공화국의 나즈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에스테미로바는 그로즈니 대학을 졸업하고 역사 교사로 일하다 2000년 인권운동에 뛰어든 인물이다. 2006년 살해된 여성 언론인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의 친구이기도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체첸 실태를 외부에 알려 2007년 여성노벨상 수상자들이 선정한 ‘폴리트코프스카야 인권상’을 받은 그는 유럽의회의 로버트 슈만 메달을 받기도 했다. 그의 사무실은 외국 취재진이 그로즈니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에스테미로바는 지난달 체첸 당국이 분리주의 반군의 집을 모두 불태우며 탄압하고 있다는 조사 보고서를 냈다. 또 지난 7일 그로즈니 도심에서 총격전이 벌어지자 보안군의 무력 남용을 맹비난했다. 



메모리얼은 이번 살해의 배후에 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대통령(32)이 있다고 밝혔다. 카디로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대통령이었을 때부터 그의 지원을 받아왔다. 체첸 독립운동 세력의 공격에 숨진 아흐마드 카디로프 전 대통령의 아들로 체첸의 분리운동을 강경 탄압해왔다. 그는 푸틴이 1999년 ‘2차 체첸전쟁’을 일으키자 사병 조직 ‘카디로비츠’를 이끌고 러시아군에 합세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체첸 정보국장을 맡아 푸틴의 신임을 굳혔다. 2004년 아버지가 숨진 뒤 부총리를 거쳐 총리로 초고속 승진했고, 2007년 3월에는 푸틴에 의해 체첸 대통령으로 임명됐다. 그가 체첸 석유를 빼돌려 재산을 불리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폴리트코프스카야 사건에 개입한 의혹도 있다.

그의 집권 뒤 체첸에서는 독립운동가 납치·고문·살해가 계속되고 있다. 메모리얼 측에 따르면 카디로프는 이를 비판하는 에스테미로바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카디로프는 “살인범은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배후설을 부인하고 있으나, 인권단체들은 “우리를 겁주기 위해 카디로프가 저지른 살인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사건으로 유럽과 러시아 간에는 인권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즉시 살인 배후세력을 맹비난하고 “러시아 연방정부 차원의 조사와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연방기구를 통해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성명을 냈지만 제대로 될지는 회의적이다. 올초 체첸 문제를 비판한 인권변호사 등이 피살됐을 때에도 메드베데프는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으나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취임 때 ‘법치 확립’을 강조했던 메드베데프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고 보도했다.(구정은기자) 

09. 07. 18.  

Наталья Эстимирова в Грозном, 1 сентября 2004 года

P.S. 에스테미로바의 인터뷰 동영상이다(http://www.youtube.com/watch?v=3oZsJzXKqI0). 고인의 명복을 빈다. 비록 러시아/체젠의 수치스런 인권상황이 개선될 때까지는 그녀 또한 편하게 눈을 감지 못하겠지만... 

 

P.S.2. 체첸이나 체첸분쟁에 관한 단행본 저작이 국내엔 아직 나오지 않은 듯하다.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 몇 권만 찾아보았다. 체첸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다룬 <야만의 시대>(황소자리, 2005)는 생소한데, 역시나 2004년에 나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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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무개 2009-07-19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초인가에 리벨리온이라는 리트비넨코에 관한 다큐 영화를 본적이 있는데요.. 거기에 나오는 안나 폴리코브스카야의 모습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정부의 비리를 폭로해도 그에 대한 반응조차 볼 수 없는 상황에도 끈임없이 진실을 알리기위해서 애쓰는 모습이.. 그런데 또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네요... 끔찍합니다...

로쟈 2009-07-19 18:40   좋아요 0 | URL
끔찍한 일이야 지구촌 곳곳에서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는데, 저는 더 끔찍한 게 이런 일에 차츰 '면역'이 돼간다는 거예요...

펠릭스 2009-07-20 09:36   좋아요 0 | URL
죽고, 죽이고, 대중의 이름으로, 민족으로 이름으로,,,
그리보면 살리려는 마음은 얼마나 값진 마음인가요!

람혼 2009-07-19 0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기사를 읽고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곧 로쟈님의 멘트가 있겠구나 생각도 했습니다). "지난해 취임 때 '법치 확립'을 강조했던 메드베데프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는 기사의 문장이 남의 나라 일 같지만은 않은 게 또 다른 문제겠지요...

로쟈 2009-07-19 18:39   좋아요 0 | URL
메드베네프는 이미 지난번에 무능력을 과시한 바 있지요. 푸틴을 넘어설 수 있느냐의 시험대이기도 한데, 별로 기대해볼 수 없지 않을까 싶어요...

펠릭스 2009-07-19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반도 역시 분쟁지역에 포함된다. 우리의 경우는 타민족간의
분쟁이 아니라, 자민족간에 분쟁으로 세계대전과 이념적 산물로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이다.

체첸과 러시아는 민족도 다르며, 종교도 다른(리시아:정교,체첸:이슬람)
타민족으로부터 독립을 갈망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나탈랴 에스테미로바(50)"가 납치·피살되었다.
기구한 운명이다. 용감하고 의로운 세계 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딸 역시 깊은 상처속에 자국의 현실에 재인식하겠지만,,,

우리의 경우도 남과 북의 통일문제가 해결되다면, 새로운 국면의
중국과 러시아연방과의 문제가 새롭게 부상 될 것이다.

우리의 임시정부 시절, 일본에 의해 희생되었던 독립투사들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한다. 시대마다 고군분투했던 조상들 있다.

코샤크족(고용한 돈강)에 비해 체첸는 러시아 문학작품에 거이
등장하지 않지만, 1940년대 스탈린에 의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는 체첸이 비극을 그린 "황금색 구름은 비쳤다(1987)"가
있다고 한다.

로쟈 2009-07-19 18:38   좋아요 0 | URL
야만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Sati 2009-07-20 22:20   좋아요 0 | URL
펠렉스/ 톨스토이의 '하지무라트'가 체첸사람일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