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이지만, MBC의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하면서 검찰이 제작진의 이메일까지 '증거자료'로 공개함으로써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헌법상에 보장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일 터인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이 사건을 지휘한 서울지검장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다. 이 사건 수사로 청와대의 호평을 얻었다는 후문도 있다). '비열한 법치주의'에 더하여 '편의적 법치주의' 또한 현 정부와 검찰의 신조인 모양이다. 이와 관련한 사설기사와 함께 '바람구두'님의 기고를 옮겨놓는다(어디 '장기 캠핑' 가신 걸로 알았는데, 멀리는 못 가신 모양이다). 문제가 된 김은희 작가가 MBC 작가 홈피에 올린 글에 대해서는 미디어오늘의 기사를 참조하시길(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0694).   

경향신문(09. 06. 21) [사설]간첩 수사 연상시키는 작가 e메일 공개  

검찰이 엊그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위험성을 보도한 MBC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제작진 중 한 명인 김은희 작가의 개인 e메일 3통을 공개했다. 지난해 작가가 가까운 지인에게 보낸 e메일에는 “이명박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를 때라서…” 운운하는 부분이 나온다. 검찰은 “e메일이 제작진의 (악의적인) 의도를 엿볼 수 있는 주요 자료라 판단돼 고민 끝에 공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뒤집어 말하면 작가가 대통령에게 강한 적개심을 갖고 있었으므로 프로그램 제작에 이 마음이 반영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정치적 목적을 갖고 시작돼 무리를 거듭해 온 이 수사가 이 대목에서 정점에 이른 듯하다. 왜 그런가. 첫째, 개인 e메일 공개는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 사생활 및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와 정면 충돌한다. 둘째, e메일 압수수색 권한을 인정하더라도 작가 개인의 정치 성향과 제작의도를 직접 연결하는 것은 비약이다. 이에 대해서는 방송작가협회가 성명에서 “개인적 생각이나 정치적 지향이 구체적인 방송 왜곡으로 연결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적절하게 지적했다. 이들은 “이것(정부에 대한 반감)은 법리적 근거라기보다 작가의 정치적 불온성을 강조하려는 이미지 전략”이라며 검찰이 개인의 머릿속까지 검열하는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사적 감정을 담은 e메일을 대발견이라도 되는 양 언론에 공표하는 모습에서 구시대적 사상 검증의 기억이 떠오른다. 지난 세월 공안기관들은 정권 안보를 위해 수많은 간첩사건들을 조작했다. 지난해 전두환 정권 당시 대표적 공안 조작사건인 ‘오송회’ 간첩단 사건 관련자 9명이 모두 2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의 주요 혐의는 김지하 시인의 <오적> 등 이른바 불온서적을 읽고 정치 현실을 비판했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안 듣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는 속담도 있다. 그런데 이젠 개인 e메일까지 범죄의 단서가 되는 시대로 후퇴하고 있다. 정치사건 수사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검찰과 이를 일말의 문제 제기도 없이 확대 보도하는 수구신문들의 작태가 전율스럽다.    

경향신문(09. 06. 22) [판]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초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했을 때, 범접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조직으로 보이던 검찰도 대통령 앞에서는 움찔한다며 통쾌하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대통령은 기업의 오너이고, 검찰은 휘하의 비서실이나 기획실쯤 되는 기관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권위주의 정권시절 검찰은 권력의 시녀로, 민주화 이후엔 가장 중요한 개혁 수단이자 파트너였다. 국민들은 검찰이 휘두르는 칼자루를 보며 정부가 추진할 개혁과 정책의 내용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이 ‘개혁의 수단’이 아닌 ‘개혁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희귀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인권변호사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검찰이 권력의 시녀나 정권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도구가 아니라,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 법질서 수호를 위해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조직이라는 상식을 일깨우려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사법부 개혁을 주장했던 판사 출신의 여성 변호사 강금실씨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해 검찰개혁을 시도했다. 임기 초반이었지만 검사들은 검찰의 독립과 존중을 내세우며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과거 정권 같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대통령은 국민을 상대로 검찰 개혁에 대한 의지를 직접 전했다.  

검찰은 권력을 잡았어도 예외는 없다는 본보기라도 보이듯 살아 있는 권력인 대통령의 측근까지 구속했다. 변화는 성공적인 듯 보였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지켜보면 사실은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다. 독립과 존중을 주장했던 검찰의 최근 행보를 지켜보면 당시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건 서열존중의 관행에 불과했던 것이 아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지도층을 이루는 불멸의 신성가족들은 임기제 대통령보다 강력한 힘과 뒤를 봐주는 결속·연대를 과시했다. 그들은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권력의 일원이었다.

임기를 마친 노 전 대통령이 미련 없이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국민들은 행복한 전임 대통령을 가질 뻔했다. 검찰은 드러난 혐의에 따라 수사했다지만 정권이 바뀌자마자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 보이는 검찰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그들의 진실성을 신뢰하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도리어 검찰과 전임 대통령 사이에 있었던 오랜 악연을 생각해보면 정치적 의도가 개입한 수사였을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설령 검찰의 해명을 받아들이더라도 재판에 들어가기도 전에 연일 수사 과정이 흘러나오고, 언론이 피의사실을 확정된 진실인 양 왜곡해 여론심판과 인격살인으로 이끌었던 현실이 뒤바뀌는 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양교도소에 전임 대통령을 가둘 독방을 비밀리에 추진했다는 보도는 이를 부인하는 법무부의 주장보다 신빙성 있게 들린다.

만약 검찰이 스스로의 억울함을 증명하고 싶다면 먼저 검찰이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 법질서 수호를 위한 조직이라는 상식을 증명해보여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해 제작진이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2008년 4월)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관한 사실을 ‘고의’로 왜곡했다며, 그 증거로 작가의 사적인 e메일을 들춰내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만약 이것이 증거라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 법질서를 부정하는 현실 속에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을 갖춘 바른 수사, 정치적 편파 논란이 없는 공정한 수사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받겠다는 검찰의 꿈은 너무 야무지다. 스스로의 존재 의의조차 자각할 수 없는 조직이란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있는 이때, 국민들의 머릿속엔 이 말이 떠오른다.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09. 0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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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6-23 08:54   좋아요 0 | URL
왜 영화보면 적들에게 쫓겨 아지트를 옮겨야 할 때 모두 소각하고 가잖아요...그런 생각이듭니다. 만약 '제 2한국전쟁' 유사한 것들이 발생해서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다면 알라딘에 있는 모든 글부터 추적당하면 빼도박도 못하겠구나...인터넷이 새로운 쌍방향매체로 해방의가능성도 있지만 다른면에서 보자면 훨씬 더 '총체적 관리사회'가 될 수 있는 면이 있다는 것의 예가 될 듯 합니다.아도르노가 여전히 유의미한..
편지는 불에 증거인멸이라도 하지 이메일은 지워도 남으니...이메일을 쓰지 않던지 아니면 정권을 쫓아내던지.

로쟈 2009-06-23 22:33   좋아요 0 | URL
후자가 더 좋은 선택 같은데요...

마냐 2009-06-24 02:22   좋아요 0 | URL
저도 전자는 별로 좋은 생각 같지 않슴다. 현실적으론 합리적 아이디어라 생각함에도 불구

무해한모리군 2009-06-23 09:14   좋아요 0 | URL
권력자들 대화내용 녹음은 사생활 침해라더니.. 검찰은 이메일 공표..
유전무죄 무전유죄

로쟈 2009-06-23 22:34   좋아요 0 | URL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합니다. 스스로는 얼마나 무능하고 졸렬한지 알고 있을까요?..

꼬마요정 2009-06-23 09:16   좋아요 0 | URL
이렇게까지해서 자기들이 얻는 건 뭘까요? 음.. 저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해가 안 가요.. 왜 이렇게 악수를 두는지.. 물론 그래서 국민들이 아우성 치고 경각심을 가질 수 있긴 한데요, 어째서 국민들을 달래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걸까요?? 채찍과 당근은 함께 가는 건데, 이 정부는 그저 휘두르기만 하네요. 정말 이해가 안 가요..

로쟈 2009-06-23 22:35   좋아요 0 | URL
지능이 낮은 건지, 극악무도한 건지 저도 헷갈립니다...

Mephistopheles 2009-06-23 09:39   좋아요 0 | URL
이젠...윈드토커란 영화마냥...
이메일도 나바호 인디언 언어를 체계로 암호화시켜야 겠군요..ㅋㅋ

로쟈 2009-06-23 22:35   좋아요 0 | URL
g메일로 옮긴다는 얘기도 많이 나오더라구요...

2009-06-24 0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주미힌 2009-06-23 09:44   좋아요 0 | URL
발암물질 함유 생수를 판 기업명 밝히는건 명예훼손 때문에 비공개라던데;;;
이젠 웃기지도 않아용...

로쟈 2009-06-23 22:36   좋아요 0 | URL
웃기는 법도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