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운동가 시몬느 베이유(1909-1943)의 <중력과 은총>(이제이북스, 2008)이 재출간됐다. 책의 제목은 그대로이지만 출판사와 표지는 바뀌었고, 그에 따른 것인지 저자의 표기도 '시몬 베유'로 변경됐다(나는 가급적이면 고유명사 표기를 갖고 장난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애장하고 있는 책이니 관심은 책의 내용이 아니라 표지이고 품새이다. 이번엔 이렇게 나왔다(알라딘의 표지가 작아서 교보에서 빌려왔다).

아직 실물을 보지 못해서 어떻다고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지난번 표지보다는 조금 나은 듯도 하다. 지금은 절판된 사회평론판은 이런 표지였다. 더 나오지도 않을 책에 '사색1'이라고 붙인 것부터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한불문화출판판. 역자가 동일하므로 내용이 그다지 바뀌었을 성싶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수집가들은 순전히 '표지'만 가지고도 유혹받는다.

세 권의 이미지를 모아놓으니 신간의 표지가 나쁘진 않아 보인다. 한데 어떤 책인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시몬 베유의 철학적 사유와 종교적 통찰을 묶은 책. 베유는 세상의 모든 것이 중력이라는 필연성의 영향 아래 놓여있으며 인간의 구원은 지성과 신앙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게 해주는 초자연의 빛인 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생전의 베유가 남긴 노트를 사상적 동지였던 귀스타브 티봉이 발췌해 엮은 것으로 1943년 처음 출간됐다."라는 게 설명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아니 '중력과 은총'이란 제목만으로도 충분한 책이다. 우리에게 충분한 영감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영감 때문에 나는 자작 시집 한권의 제목을 '중력과 은총'이라 붙였더랬다(http://blog.aladin.co.kr/mramor/933104 참조). 역자의 소개는 이렇다. "<중력과 은총>은 제목 그대로 밑으로 끌어내리는 중력에 맡겨진 인간의 불행과 초자연의 빛인 은총을 통한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주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책은 중교적 수상록이라기보다는 기독교적 비극성에서 출발하여 모든 인간이 처한 근본적 삶의 조건을 파헤친 인간 탐구의 기록이다."
'기독교적 비극성'에서 출발하지만 베이유의 기록에는 유머와 위트가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해마지 않는 아포리즘은 이런 것이다. "사랑은 우리들의 비참함을 말해주는 표시이다. 신은 자기 자신만을 사랑할 수 있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것만을 사랑할 수 있다."
당신 또한 이러한 인간적 삶의 조건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면 <중력과 은총>은 애장서로서 충분하다. 펴보지 않아도 된다. 다만 책장 가까이에 두시길. 우리를 잡아끄는 삶의 중력 속에서도 은총의 빛을 잃지 않도록... 물론 가끔씩 들춰봐도 좋겠고...
08.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