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우리시대 지식논쟁'에 기고한 글을 옮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89298.html). '지젝 신드롬의 허와 실'이란 주제로 세 차례 정도 지면이 할애될 예정인 것으로 안다. 거기서 내가 맡은 역할을 지젝에 대한 '지지' 논변이다. 주제의 선정 취지는 아래와 같다. 

우리시대 지식논쟁 / 지젝 신드롬의 허와 실 ① 이유있는 열풍

철학에도 유행이 있다면, 오늘날 세계 철학계의 최신 유행은 슬라보예 지젝이다. 모든 첨단 유행이 그러하듯이 지젝 또한 시대의 상식을 파괴한다. 마르크스, 헤겔, 라캉을 접붙인 그는 독일 고전 철학에 바탕을 두고 정신분석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뒤, 이를 디딤돌 삼아 다시 현대 철학의 새로운 사유를 개척하고 있다. 그는 ‘급진적인 정치 실천적 철학자’의 전형이기도 한데, 고국 슬로베니아에서 1990년 대통령 후보로 선거에 출마했다. 국내에서도 지젝 열풍은 심상찮다. 90년대 중반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됐는데, 2000년대 들어 그가 직접 쓴 책만 10권 이상 번역·출판됐다.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한겨레>는 이번주부터 이 ‘지젝 신드롬’의 속살을 파고들려 한다. 그의 사유에는 과연 새로운 영감으로 삼을 만한 자양분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난해함 빼고는 건질 게 없는 서구적 언어 유희에 불과한 것일까? 지젝의 저작을 국내에 번역·소개하고 관련 논의를 이끌었던 학자들이 그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한 이현우 박사가 첫 번째 글을 썼다. 그는 지젝의 사유로부터 우리 시대의 이념 지형을 이해하고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레닌의 혁명 전략마저 넘어서는 전복의 기운이 지젝에게 있다는 것이다.(안수찬 기자)

한겨레(08. 05. 24) 가장 어렵고 가장 대중적인 ‘철학계 괴물’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괴물입니다”라고 말하는 철학자가 있다. 자신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의 책을 경탄과 함께 읽어본 독자라면 ‘당신도 인간인가?’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세계 철학계의 이단아’라고도 하는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 슬라보예 지젝이다. 아예 그의 이론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술잡지가 나올 정도로 지난 20년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엠티브이(MTV) 철학자’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을 정도로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 그리고 아마도 가장 많은 책을 써낸 철학자, 그가 지젝이다. 그래서 열광하는 독자들까지도 그의 책을 다 따라 읽는다는 건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매년 두어 권씩 번역돼 나오는 ‘한국어 지젝’에만 한정하더라도 그렇다. 그런 이유만으로도, 한 비판자의 표현을 빌리면, ‘지젝주의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젝은 흔히 ‘슬로베니아 라캉주의 헤겔주의자’라고 불리지만 거기에 마르크스와 대중문화가 이론적 틀로 더해진다. 어떤 저자를 읽기 위해서 독일 관념론과 라캉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와 현대 대중문화에 ‘정통’해야 한다면 보통은 다른 저자를 알아보는 게 낫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지젝은 매혹적이다. 그는 가장 난해한 두 사상가, 헤겔과 라캉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헤겔을 어떻게 라캉으로 읽을 수 있으며, 반대로 라캉은 어떻게 헤겔로 읽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독해가 우리 시대의 이념적 지형과 대중문화를 이해하고 돌파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매혹은 동시에 그에 대한 혐오를 낳기도 한다. 그의 담론이 세련된 라캉적 분석과 덜 해체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정신분열적으로 분열돼 있다는 비판은 그의 이런 작업방식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비판 옆에는 그의 철학 ‘퍼포먼스’가 고상한 철학을 대중문화로 더럽힌다는 비난도 빠지지 않는다. 독창성도 진정성도 없는 ‘철학적 재담꾼’ 정도에 불과하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세기적인 ‘재담꾼’을 갖는다는 게 과연 불행한 일인지? 가령, 급진적 철학자로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그가 제시하는 ‘유토피아’에 관한 재담은 어떠한가?

지구의 종말을 상상하기는 너무도 쉽지만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점점 더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우리 시대의 패러독스라고 지적하면서, 지젝은 그럼에도 우리가 유토피아를 발명해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그것이 우리 시대의 긴급한 요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유토피아란 무엇인가? 그것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유토피아, 곧 ‘불가능한 이상적 사회’와는 무관하다. 유토피아는 어원 그대로 ‘자리가 없는’ 공간의 건설이다. 왜 자리가 없는가? 기존의 사회적 좌표계 내에서는 자리가 할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토피아적인 제스처의 사례로 지젝이 자주 드는 것은 1917년의 레닌이다.


레닌주의의 핵심은 자유주의적 ‘선택의 자유’ 대신에 선택 자체를 선택하는 데 있다. 곧 정치적 ‘활동’이 아닌 ‘행위’란 현 상황이 제시하는 강요된 선택 대신에 그러한 ‘정치적 계산’을 돌파하는 어떤 광기이다. 러시아 혁명을 가능하게 한 것은 불가능을 돌파한 레닌의 바로 그러한 ‘광기’였다. 하지만 레닌도 혁명 이후에는 대중의 창조적 역량에 대해 불신하면서 전문가 집단의 역할을 강조했고, 그것은 곧 스탈린주의로의 길을 예비하지 않았던가? 거대 은행이 없다면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 자본주의적 기구인 중앙은행을 더 크게, 더 민주적으로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젝은 이 지점에서 국가의 관리에 대한 레닌의 ‘전체주의적’ 프로그램을 우리 시대의 상황에 맞게 다시 읽기를 제안한다. 중앙은행의 자리에 오늘날 ‘일반 지성’의 상징인 월드와이드웹을 갖다놓아 보자는 것이다. 자본주의 신경제의 첨병처럼 보이는 월드와이드웹에는 동시에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폭발적인 잠재력이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 경우 레닌적 제스처는 국가기구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과 싸우는 대신에 그것을 사회화(국유화)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사회주의=전력화+소비에트 권력’이라는 레닌의 공식은 ‘사회주의=인터넷 무료접속+소비에트 권력’으로 변형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두 번째 요소이며, 그것을 통해서만 인터넷은 해방적 잠재력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중앙은행 사회주의’에 대한 레닌의 전망을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의 월드와이드웹에서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지젝의 ‘재담’이다.

물론 그의 재담은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젝은 또한 ‘소유의 종말’이 예견되는 디지털시대의 ‘탈소유 사회’에 대한 첫 번째 모형을 바로 스탈린시대 소련 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알다시피 원칙적으로는 아무런 서열관계도 없는 평등한 사회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계급사회인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스탈린주의 사회는 계급이 없는, 무계급 사회였다. 하지만 동시에 ‘권력서열’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특권층인 노멘클라투라와 기술관료, 군대 등의 순으로 정확하게 서열화된 사회였다. 거기서 지배계급은 소유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과 통제수단, 물질적·사회적 특권에 직접 접근이 가능한가라는 ‘접속 가능성’으로 결정되었다. 바로 오늘날 현 단계 자본주의에서도 특권이 직접적인 소유가 아니라 뒤에서 조정하고 교육과 경영·정보 등에서 각종 특혜를 누리는 것에서 확인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면하게 된 선택지는 사적 소유(사유재산)와 사적 소유의 사회화(국유화) 사이의 낡은 마르크스주의적 선택이 아니라 ‘위계적인 탈소유 사회’와 ‘평등한 탈소유 사회’ 사이의 선택이다. 여기서 선택은 물론 자명하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이다. 지젝은 다시 레닌적 제스처를 끌어온다. 그가 보기에 레닌주의의 핵심적 교훈은, 당이라는 조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정치는 ‘정치 없는 정치’, 말로만 하는 정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비판은 ‘혁명 없는 혁명’을 원하는 것과 다름없는 ‘신사회운동’에도 가해진다. 과연 폴리페서(정치교수)들처럼 체제에 편승하거나 페미니즘에서부터 생태주의와 반인종주의에 이르는 신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 말고는 ‘사회적 개입’의 방법이 따로 없는 것일까? 지젝이 보기에 이러한 운동의 한계는 보편성이 결여된 ‘단일 이슈 운동’이라는 데 있다. 곧 사회적 총체성과 연관돼 있지 않다는 것이며, 중도좌파와 좌파 자유주의에 대한 지젝의 비판은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다. 백포도주냐 적포도주냐 하는 선택은 ‘근본적인’ 선택이 아니다.

지젝이 “레닌을 반복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 반복이 뜻하는 것은 레닌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레닌을 반복하는 것은 레닌이 했던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실패한 것, 그가 잃어버린 기회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들이 한갓 ‘혁명을 연기하는 배우’의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레닌을 전체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 ‘괴물’의 광기와 열정을 지지한다.

08. 05. 24.

 

 

 

 

P.S. '가장 어렵고 가장 대중적인'이란 수식어구가 타이틀에 붙었는데, 지젝을 수식하는 거라면 절반만 옳다. 그는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이지만, '가장 어려운' 철학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어려운 것은 헤겔과 라캉 같은 가장 난해한 철학자/정신분석가를 다루기 때문이지 그의 탓은 아니다(그들과 비교하자면 지젝은 너무나도 쉬운 철학자다! 나도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게다가 지젝은 기본적으로 계몽주의자이다. 일부러 어렵게 말하지 않는다. 좀더 깔끔한 번역본들이 나온다면 지젝 독해의 어려움은 상당 부분 해소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본문에서 레닌과 관련하여 다룬 부분은 주로 <혁명이 다가온다>의 10장 '탈정치에 반대하여'를 정리한 것이다. 지젝의 혁명론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는 애초의 주문도 있었고, 국역본의 이 대목이 부정확하게 번역돼 있어서 교정 차원에서 언급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젝이 만난 레닌>이 곧 나올 줄 알았다면 생각을 달리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12장 '사이버 스페이스 레닌?'이 내가 이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 쉽게 번역돼 있기 때문에 이해에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만약 번역본이 좀더 빨리 나왔더라면 나는 다른 대목에 초점을 맞추었을지도 모른다...   


댓글(12) 먼댓글(1)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왜 지젝인가?
    from Dia's time capsule 2008-07-18 22:58 
    도착증자는 정신분석의 주체(환자)가 아니다. 그들의 도착적 향락은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인권이거나 자본에 의해 개발되어야 할 상품이지 결코 치료의 대상이 아니다.6 우리의 모든 개별적인 특징과 특정한 욕구, 관심, 믿음을 제거했을 때 남겨지는 것이 바로 주체이다. 37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토니마이어스 도서관에 다녀오니, 집이 잠겼다. 열쇠도 없고해서 극장엘 왔다. 5시에 인디아니존스를 본다. 지금 여긴 극장. 인디아나 존스에대한 기억?..
 
 
김상호 2008-05-23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앙은행에 대한 논제는 흥미롭군요. 제가 중앙은행에 다녀서 그런거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중앙은행의 지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당히 기괴하다고 생각하고 있읍니다. 국가/시장의 이분법에서 양자 모두 혹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게 바로 중앙은행이죠.
예전에 제가 술먹고 혼자 망상을 한적이 있어요. 주인 담론은 고전적인 경제학 담론(빗금친 주체의 자리엔 추상적인 합리적 개인, 주인기표는 보이지 않는 손, 균형이라는 이데올로기) 등등이죠. 문제는 삑사리가 났다는 ㅠ.ㅠ

로쟈 2008-05-24 00:06   좋아요 0 | URL
라캉-지젝을 좋아하시는군요.^^

김상호 2008-05-24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지 않는다면 책을 어찌 번역하겠읍니까 ^^

로쟈 2008-05-24 00:37   좋아요 0 | URL
아, '히치콕을 포기하고 라캉을 구할 사람'이시군요.^^

송연 2008-05-24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 생각>에서 이 주제로 다음주부터 진행한다고 했을때 로쟈님이 나오시겠구나 하고 예상했었지요.^^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08-05-24 14:30   좋아요 0 | URL
제가 적격자라고 하긴 어렵지만, '전문가주의'라는 게 또한 反지젝적이란 생각에 나서게 됐습니다...

yoonta 2008-05-24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공개적인 논쟁의 중심에 서시는 군요^^

지젝의 혁명론은 저에게도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지젝이 소환하고있는 레닌은 그러니까 월드와이드웹을 국유화된 중앙은행처럼 사용하는 그러한 레닌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인터넷과 같은 소통수단을 사용하면 기존사회주의국가가 가졌던 국유화의 문제점을 극복할수있다는 주장인데 그런데 결국 문제는 혁명이후 권력을 누가 가지게 되는가가 아닐까요? "물론 중요한 것은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두 번째 요소이며, 그것을 통해서만 인터넷은 해방적 잠재력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본문에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신사회운동과같이 지엽적이지 않은 "보편적 사회운동"이 되려면 '당'을 통한 정치활동이 필수적이라는 논리가 도입되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결국 권력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당에 의해서 독점되게 된다는 건데 이건 결국 구사회주의의 "당"들이 했던 행태를 반복할수있게 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월드와이드웹"을 통한 권력/당이기 때문에 그러한 집중화된 권력은 제어가능하다라고 이야기할수있을런지는 모르겠으나 이 지점에서 의문은 여전히 남네요. 권력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집중화되고 견제받지 않으면 부패하기 때문이지요. 지젝이 이야기하는 당이 정확히 어떤 당인가요?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된 레닌주의적 전위당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주장을 수용할 수 있는 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확보한 당인가요? 아닌가요? 그렇지 않다면 맑스주의나 레닌주의의 이러한 비민주적 성격을 비판했던 아나키즘적 조류로부터의 비판을 면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물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중앙집중적 당이 없이 어떻게 체제를 전복하는 혁명을 이룰수있는가? 하는 반론이 있을수 있죠. 저도 이런 반론에는 일정부분 동의합니다. 지엽적이고 이슈화된 조직화되지 못한 힘으로 이런 운동을 성공시키기는 거의 불가능죠.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조직화되고 집중화된 당이 권력을 잡은 이후에 이를 견제할 수단은 또 무엇인가하는 문제가 대두된다는 겁니다. 여기에 혁명의 아포리아가 있는 것 아닐까요?

로쟈 2008-05-24 20:13   좋아요 0 | URL
'논쟁'이란 표현은 과하구요, '지젝 신드롬'이란 표현 자체에 문제는 다 제기돼 있는 것이죠(이 또한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마디즘' 논쟁과 마찬가지로). 지젝이 이야기하는 당이 정확히 어떤 당인가는 지젝에게 물어보셔야 하는데요.^^ 제가 생각해보는 것은 1000만의 대의원을 가진 소비에트가 인터넷시대에는 가능하지 않느냐는 것이고요, 그것이 현행 대의제 민주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건 많이들 지적하는 것이죠. 더불어 '혁명의 아포리아'에 대해서는 그러한 '실패' 혹은 '부패의 가능성'을 의식한다는 게 일단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그걸 의식하고 있다면 집중화된 권력도 조금 다른 식으로 움직이지 않을까요? 레닌이 실패한 지점에서, 그가 잃어버린 기회를 반복한다는 것을 저는 그런 쪽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늘빵 2008-05-24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한겨레에서 로쟈님 글 봤습니다. :) 사진이 알라딘에 올라왔던 것보단 못하게 나왔어요. 알라딘엔 살짝 귀엽게(?) 나오셨는데. 전에 딸기님이 찍으셨던.

로쟈 2008-05-24 20:15   좋아요 0 | URL
워낙 사진을 잘 안 찍는데가 증명서 사진을 피해달라고 해서 강의하는 모습을 찍은 스냅사진이 들어가게 됐습니다...

드팀전 2008-05-26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젝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전적으로 로쟈님 덕분이었습니다.물론 여전히 어렵고 스스로 이해의 폭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 생깁니다만 다 이해하지 않고 가면 또 어떡겠나 싶습니다. 창문을 열어 놓으면 언제였나 싶게 먼지가 덮이는 것처럼 낙천적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갑니다.
제가 지젝을 만난 시점은 개인적으로도 시의적절했습니다. 왠지 예상치 않았던 뒤에서 날아오는 크로스카운터처럼 짜릿하더군요.^^ 로쟈님이 대중적인 지젝 책을 좀 써보심은 어떨지 모르겠어요.더 많은 팬클럽 가입을 위해 쉽게 쉽게....

로쟈 2008-05-26 22:53   좋아요 0 | URL
저도 기여한 바가 있군요.^^ 일단 발을 들여놓게 되면 일년에 두세 권씩은 읽어줘야 합니다!^^; 책을 쓰고 싶은 욕심은 저도 있지만 지젝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아직 감이 안 와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