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서점에서 얼핏 들춰본 책에 <대단한 책>(마음산책, 2007)이 있다. 저자가 일본 여성이라는 것과 의외로 러시아 작가들의 이름이 자주 눈에 띈다는 게 특이했는데, 오늘 몇 개의 서펑을 읽어보니 그럴 만하다. 저자가 일본에서도 아주 유명한 러시아어 통역사였던 것이다. 20년동안 하루에 7권씩 읽었다는 그녀의 다독/속독도 놀랍지만 나로선 러시아책들에 대한 독후감들을 구경해보기 위해서 책을 사들지 모르겠다(아님 도서관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거나). '대단한 책'이라기보다는 '대단한 독서광'에 관한 리뷰를 일단은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11. 17) '대단한 독서광' 그녀의 삼매경

<완전히 제압당해 재기불능으로 만들 것 같은 대단한 책>이 원제인 이 책의 저자 요네하라 마리(米原万里ㆍ1950~2006)는 20년 동안 하루 평균 7권의 책을 읽어치운 일본의 다독가이다.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잡지 <주간문춘>(週刊文春)에 연재한 ‘독서일기’와 10년간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서평을 담은 책이다. 그녀가 읽은 책 가운데 390권에 대한 서평이 실려있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한평생 책을 끼고 산 다독가의 삶이 흥미롭다. 요네하라 마리는 일본의 유명한 러시아어-일본어 동시통역사였다. 도쿄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를 따라 체코 프라하에 체류하면서 러시아어를 익혔다. 모든 수업이 러시아어로 진행되는 구소련 대사관 부속 학교에서 러시아어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책을 읽는 버릇이 생겼다. 일본어를 잊어버리기 시작하자 일본 문학작품을 읽었다. 일본에 돌아온 후에도 러시아어 작품을 읽으면서 러시아어 실력을 향상시켜나갔다.

어릴 때 붙은 책 읽는 습관은 한평생 따라다녔고 책 읽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먹는 속도, 걷는 속도, 책을 읽는 속도가 다른 사람보다 빨랐는데 먹기와 걷기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과 속도를 맞추라고 어머니로부터 잔소리를 들었지만 책 읽기는 아무리 빨리 해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입시에서 해방되었을 때부터 책을 읽는 속도가 매우 빨라져 몇 백쪽의 책을 20분만에 읽어치울 정도로 속독가가 됐다.

그녀가 읽어치운 책은 러시아와 일본 문학, 국제정치, 논픽션, 어학ㆍ사전류, 개ㆍ고양이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특히 국제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 일본의 역사교과서 파동, 2002년 한일 월드컵, 이라크전쟁 등에 대한 촌평을 읽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9ㆍ11테러 직후 그녀는 “고이즈미 총리의 눈매가 완전히 변했다. 일본은 미국의 속국이니 속국의 지혜인 면종복배를 관철시켜야 하나, 고이즈미 총리는 진심으로 복종한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고 적었다.

책에는 또 눈이 빡빡할 때 눈물이 나게 하는 책을 펼쳐 드는 등 군데군데서 독서광의 삶이 드러난다. 나이 들어 난소암에 걸렸을 때 암 관련 서적을 독파하면서 자신의 치료 경험에 비추어 책을 검증하는 서평을 쓰기도 했다. 그녀가 서평을 쓴 책들 가운데 국내에 번역 소개되지 않은 책들이 많지만 짤막한 소개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책은 인간의 감정을 흔들어 놓는 존재이지만, 내가 최고로 생각하는 감정은 언제나 바로 웃음이다. 웃음을 주는 저자가 가장 좋다”고 했다.(남경욱 기자)

07. 11. 18.

P.S. 저자인 요네하라 마리의 책으론 <프라하의 소녀시대>(마음산책, 2006)를 필두로 하여 댓 권의 책이 번역/소개돼 있다. 올해만 네 권이 나온 것이니 나름대로 '붐'이라 할 만하다. 아는 사람만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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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1-18 17:13   좋아요 0 | URL
부럽네요- 그렇게 빨리 읽으면, 정말 따라잡을 수 없잖아요-
저는 대학시절 제일 친한 친구가 책을 엄청 많이 읽어서, 그 친구를 따라잡겠다고 좀 더 많이 읽기 시작했었는데, 이미 저랑 속도 자체가 너무 달라서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로쟈 2007-11-18 17:22   좋아요 0 | URL
한때 속독법이 유행하긴 했었는데, 모든 책을 속독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가령 시집 같은 걸 속독한다는 게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요. 물론 필요한 책을 빨리 읽을 수 있는 건 부러운 능력이지요...

라주미힌 2007-11-18 17:38   좋아요 0 | URL
'프라하의 소녀시대'의 그녀군요...
이 책도 흥미롭게 읽었는데, 다독가로써의 그녀도 흥미롭군요.

로쟈 2007-11-18 17:45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제쳐두었었는데, 이번에 관심을 갖게 되네요...

소경 2007-11-18 21:22   좋아요 0 | URL
그래도 기사에 나올 사진인데 머리가 헝클어진 채 찍었던 건 예외네요. 그렇게 책을 빨리 읽으면 쥐어 짜는 일도 없을 텐데.....이론 책을 시집처럼 박터지게 읽는 저로써는 샘나네요.

로쟈 2007-11-19 12:28   좋아요 0 | URL
이론서나 시집이나 원래 그렇게 읽는 거 아닌가요.^^;

바람돌이 2007-11-19 00:20   좋아요 0 | URL
프라하의 소녀시대에서 참 건강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저런 능력까지... ㅎㅎ 마녀의 한다스도 볼려고 꽂아두고 앞부분 조금 읽었는데 꽤 재밌을 것 같아요.

로쟈 2007-11-19 12:28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에 '미녀의 한다스'인 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