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쓴 시를 한편 더 옮겨놓는다. 이 또한 '코믹시'로 분류해야 할 듯싶은데, 사실 출전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으나 스피노자의 경구로 잘 알려진 "내일 지구에 종말이 와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내겐 언제나 유머로 들렸다. 시는 왜 그것이 유머인지를 나대로 '증명'하고자 한 시도였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
내일 지구에 종말이 와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그런 농담으로!)
왜 사과나무뿐이겠니
감나무 배나무 살구나무
자작나무 미루나무 은행나무 은사시나무
왜 한 그루뿐이겠니
여기에 한 그루 저기에 두 그루
뒷집 마당에도 한 서너 그루
강 건너라고 가리겠니
한 열 그루 심자꾸나
너는 구덩이를 파고 또
너는 물주전자를 가져오려무나
내일이 종말이란다
어서들 심자꾸나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우리가 철인(哲人)이 되겠니
어차피 종말이란다
뭔들 못하겠니
나무나 심자꾸나
용되자꾸나
어서 어서들 모이거라
자, 사과나무에
이젠 목매달자꾸나
내일이 종말이라는데
아, 기분 한 번 내보자꾸나
자, 어서 어서들-
07. 11.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