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여성 동물행동학자 다케우치 구미코의 책이 또 번역돼 나왔다. <진화의 원동력 짝짓기>(디오네, 2006)이 그것이다. 이미 10년도 더 전에 <남과 여의 진화론>(일출, 1995)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나는 흥미롭게 읽은 바 있는데(그래서 <호모 에로티쿠스>도 갖고 있다), 저자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다기보다는 남녀의 진화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재담가 스타일이다. '구미코의 진화론 이야기' 정도가 딱 알맞지 않나 싶다. 내용이나 분량에서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도 장점이다(하지만 나로선 좀 불만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한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지금까지 나온 여섯 권의 책이 여섯 군데의 출판사에서 출간됐다는 것. 사이좋아 보이긴 하나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며, 저자로서도 불운한 것 아닐까?(저자는 무슨 생각으로 저작권을 배분하는 것인지?). 분량에 비해 비교적 자세한 서평기사 떴길래 옮겨놓는다. 제목이 아주 그럴 듯하다. '아담이 연애에 눈뜰 때..."
한국일보(06. 12. 16) 아담이 연애에 눈뜰 때...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는 대표작 <털 없는 원숭이>에서 인간은 수렵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지능이 발달했다고 주장한다. 머리가 좋을수록 사냥 도구를 잘 만들고, 그 도구가 좋을수록 사냥을 잘했다는 것이다. 머리 좋은 그들은 많은 사냥감을 손에 넣고 많은 자손을 남겼다. 지능 발달의 또 다른 계기는 전쟁이다. 머리가 좋아야 무기를 잘 만들고 군대도 조직할 수 있다. 전쟁이 반복되면 머리 좋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몰아내 지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일본의 동물행동학자 다케우치 구미코(竹內久美子)는 여기에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능력을 추가한다. 사냥이나 전쟁 이외의 이유로 언어가 발달했고, 언어 발달은 두뇌 발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사냥, 전쟁 이외의 이유가 무엇일까. 남자는 사냥하고 여자는 집이나 그 주변에 머무는 생활 양식이다. 다케우치 구미코는 이를 ‘남편은 아내의 정절을 믿고 사냥하러 나가고 아내는 남편이 사냥에만 전념할 것을 믿고 전송하다’고 표현한다. 늑대, 사자, 고릴라, 침팬지 등 어떤 동물 사회에서도 찾을 수 없는 인간 만의 방식이란다.
그러나 집을 떠난 남편이 문제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사냥하다가 여유가 생기자 더 많은 자손을 남기기 위한 ‘과외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질의 개체를 얻어 개체의 생존 확률을 높이려는 행위다. 새 여자를 유혹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능숙한 말솜씨다. 이렇게 해서 남자는 설득 능력을 발달시켰다.
아내는 남편의 바람을 막을 수단이 필요하다. 남편이 다른 여자에 열중하면 갖고 돌아오는 먹이가 줄고 최악의 경우 남편이 안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한 대응책이 이웃 아줌마들과의 수다다. 가까이 사는 여자들끼리 정보 제공의 동맹을 맺는 것인데, 이 때도 언어가 필요하다. 남자는 여자를 설득하기 위해, 여자는 남자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언어 능력을 발달시킨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언어 발달은 남녀 관계, 즉 짝짓기가 그 원동력이다.
고릴라 침팬지는 인간과 같은 영장류임에도,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거기에도 역시 핵심은 짝짓기다. 가령 고릴라는 지능이 매우 높지만 인간처럼 언어가 발달하지는 않았다. 대신 암컷을 둘러싸고 수컷끼리 싸워서 승자가 돼야 짝짓기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수컷은 몸무게가 200㎏이나 돼 암컷의 2배 가까이 커졌다. 반면 침팬지는 난혼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강력한 정자 생산이 필요하다. 그 결과 고환이 발달해 그 무게가 120g이나 된다. 체중이 자신의 다섯 배나 되는 고릴라의 고환 30g보다 4배나 무겁다.
잠자리는 수컷이 암컷의 목을 잡고 곡예비행 하듯 교미한다. 수컷이 교미 도중 암컷에 먹힐 수 있기 때문에 그 위험을 피하려는 뜻이다. 그런데 교미 후에도 암컷의 목을 잡고 있는 녀석이 있다. 암컷이 다른 수컷과 교미하지 못하도록 즉 불륜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꽉 붙잡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책은 다양한 짝짓기 전략을 소개하고 그 의미 분석을 시도한다. 물론 짝짓기 방식은 동물에 따라 다르고 그 배경에서도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것을 보여줌으로써 책이 강조하는 것은 분명하다. 짝짓기는 동물 진화의 핵심이고, 모든 짝짓기에는 고도의 생존 전략이 있다는 것이다.(박광희 기자)
06. 12. 16.
P.S. 이미지는 <남과 여의 진화론>(1995)의 원서. 표지가 더없이 촌스럽군. 출판대국도 표지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건지, 아니면 좀 '야시꾸리'한 책의 내용을 살려주기 위한 고려인지 헷갈린다(알고보니, 중국어판이다. 그럼 이해가 된다. 그러고 보니 구미코는 동아시아권 대표주자인가?). 참고로, '생존기계'가 아닌 '구애기계'로서의 인간의 마음에 대한 생물학적 해명은 제프리 밀러의 두툼한 책 <메이팅 마인드>(소소, 2004) 등을 참조할 수 있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조만간 따로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