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라캉의 셋째딸이라는 '시빌 라캉'의 회고록이 출간됐다. <한 아버지: 수수께끼>(Un pere: puzzle)가 그것이다. 책은 최근에 나온 것이 아니라 지난 1994년 갈리마르출파사에서 나왔다(이후에 스페인어와 독어로도 번역됐다). 하지만 이 책에 관한 리뷰는 최근에 읽었다. 다음카페 '비평고원'에 김남시님이 올려놓은 리뷰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한 욕망 : Sibylle Lacan <한 아버지>'(06. 11. 19)를 옮겨놓는다(필자가 참조한 책은 독역본이다). 김남시님은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그린비, 2005)를 우리말로 옮긴 바 있으며 현재는 독일 유학중이다. 리뷰에서 '쟈크 라깡'이란 표기는 '자크 라캉'으로 통일했으며 원어는 우리말로 음역하고 일부 문단을 조정했다. 그리고 각주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아버지는 없었다.” 시빌 라캉(Sibylle Lacan)의 회고록 <한 아버지 : 퍼즐>은 이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건 이 책 전체를 관통해 흐르고 있는 ‘부재하는 아버지’를 자신의 아버지로 만들기 위한 그녀의 안쓰러운 투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부재했던, 바로 그 부재로 인해 그녀 생애 전체를 규정했던 그녀의 아버지 이름은, 쟈크 라깡이다.

시빌 라캉은 쟈크 라깡이 첫 번째 부인 마리-루이즈 블롱댕(Marie-Louise Blondin)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쟈크 라깡은 그녀와의 사이에서 세 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이후 교통사고로 죽게 되는 첫째 딸 카롤린(Caroline)과 둘째 아들 티보(Thibaut)에 이어 1940년, 이 회고록을 쓰게 되는 세 번째 딸 시빌을 낳는다. 그녀가 태어난 지 1년 후 라깡은 블롱댕과 이혼한다. 그녀의 말처럼, 아버지를 의식하게 될 나이의 그녀에겐 이미 자신의 아버지는 부재했던 것이다. 

시빌은 위의 문장으로 시작되는 자신의 회고록 앞에, 특이하게도 ‘일러두기(Hinweise)’ 라는 제목을 단 ‘서문’을 붙였다. 거기서 그녀는 ‘이 책은 소설도, 소설 형식을 띤 자서전도 아니다. 이 책엔 어떤 픽션도 없다. 독자들은 여기서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들거나 책 부피를 늘리기 위한 어떤 꾸며진 이야기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기억 속에 있는 모든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들을, 내 아버지와 나 사이에 일어났던 모든 것들을 기록하려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자크 라캉이라는 인간자체에 대한 것도, 정신 분석학자로서의 쟈크 라깡에 대한 것도 아니다. 이건 나의 아버지 쟈크 라깡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썼다.

실지로 그녀가 이 책에서 전해주고 있는 자크 라캉의 모습은 온전히 그의 ’버려진‘ 딸, 시빌의 관점으로 채색되어 있다. 그녀의 회고록은 자크 라캉에게 버림받은 후 광고 삽화가와 부띠끄 점원을 전전하며 어렵게 세 아이를 양육해야 했던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자신의 생부이지만 법적인 타자였던 라캉에 대한 그녀의 양가적 감정, 나아가 그가 두번째 부인 실비아 바티이유(Sylvia Bataille; 조르주 바타이유의 아내였다) 사이에서 낳은 딸 주디스 바타이유(Judith Bataille) - 그녀는 이후 라깡의 제자였던 자크-알렝 밀레르(Jacque Alain Miller)와 결혼해 주디스 밀레르(Judith Miller)라는 이름을 갖는다 - 에 대한 그녀의 깊은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저 유명한 정신분석 이론가는, 이미 세 명의 아이를 낳은 부인에게 또 아이를 낳기를 요구하다 그를 거부한 부인과 이혼하는 이기주의자이자, 전 부인과 자식들이 사는 거리 바로 맞은편 호텔에서 버젓이, 그것도 약속시간을 어기면서까지 여자와 동침하는 파렴치한으로, 나아가 이혼한 부인과 자식들에게 오랫동안 궁핍한 생활비만 제공했던 인색한으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버지 자크 라캉에 대한 관계를, 그의 ‘아버지 역할’에 대한 요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혹은 읽어낼 수 있는, 아버지의 부재를 극복 혹은 부정하려는 그녀의 집요하고도 애처로운 의식적, 무의식적 노력은 이 책을 읽는 독자를 인간적 연민과 스노비즘적 경멸 사이를 오가게 한다. 부재하는, 유명한 아버지 자크 라캉에 대한 그녀의 권리 주장은 그녀의 깊은 피해의식과 열등감과 결합되어 있는데, 이는 라캉이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주디스 바타이유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이혼한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어머니 성을 따르자는 제안을 거부할 정도로, 아버지 라캉에 집착하고 있던 그녀에게, “Who‘s who” (유명인 인명사전)에 실린 'Jacque Lacan'의 소개 글은 충격적이었다. 거기엔 정신분석학자 라캉에겐 한 명의 딸, 'Judith Bataille'만 있는 것으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아래 사진이 '주디스 라캉' 혹은 '주디스 밀레르').

자신에겐 태어날 때부터 부재했던 바로 그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현존하는 아버지로 인정받고 있는 배다른 동갑내기, 라캉이 자신의 진료실에 커다란 그녀 사진을 붙여놓을 정도로 자랑스러워 했던 유디트(*주디스?)의 첫 만남이 그녀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는 충분히 예상할 만 한 일이다. “유디트와의 첫 만남은 내겐 치명적이었다. 그녀는 너무도 사랑스럽고 완벽했고, 나는 너무도 조야하고 서툴렀다. 그녀는 완벽히 사교적이고 재치 있었고 나는 거칠고 직접적이었다. 그녀가 성숙한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데 반해 나는 어린애 같았다...나는 완전히 내팽겨지고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내가 언어만 공부했던데 반해 그녀는 철학을 공부하기까지 했다. 아, 얼마나 자주 그녀가 소르본 앞에서 마치 모르는 사람인 양 내 앞을 스쳐지나 갔던가.”

그런데, ‘자신에겐 부재했던 아버지를 가지고 있는’ 유디트에 대한 그녀의 피해의식과 열등감은 자기 언니이자, 라캉이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째 딸 카롤린에게도 향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네 살이 많았던, 그리하여 라캉을 4년이나 더 ‘아버지’로 가지고 있었던 카롤린에 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녀는 모든 능력과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성숙하고 모든 여성스러움을 갖추고, 길고 탄탄한, 그리고 우리 가족 중에선 보기 드문 금발머리였으며 르노아르 그림의 주인공처럼 화사했다. (그에 반해 나는 우리 반에서 가장 작았고 버릇없는 소년 같았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답다는 소리를 들었고 (나는 그냥 귀엽기만 했다), 특별히 재능이 많고 지적이었다. (그녀는 학생시절 내내 1등이었고, Concours General 상을 받고, 우수한 대학 성적을 거두었다. 난 성적이 좋긴 했지만 그를 위해 무척 애써야 했다.) 한마디로 말해, 그녀는 육화된 여신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 (나와 오빠)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았다.”

그녀에 의하면 이 카롤린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라캉은 그녀에게 두 번째로 - 첫 번째는 메를르 퐁티가 죽었을때 -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 아버지 (라깡)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고, 그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확실히 카롤린은 아버지와 어머니 이 둘의 유일한 자식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가지고 있었던 다른 딸들의 아름답고, 지적이며 성공적인 여성성을 아버지가 부재했던 자신의 볼품없고 초라한 삶과 대비시킴으로써 불러일으켜지는 꺼림칙한 연민의 감정은, 자크 라캉의 자식이기를, 태어날 때부터 부재하던 그를 자신의 아버지로 전취하려는 시빌의 파라노이드적(*편집증적) 집요함 앞에선 엽기적 섬뜩함으로까지 발전한다. 라캉이 죽은 후 그의 묘지를 방문한 그녀는, 함께 방문했던 남자 친구를 묘지 입구에서 기다리게 한다. “나는 아무 목격자도 없이, 내 아버지와 단둘이 있고 싶었다. (내 남자 친구의 모욕받고 기분상한 반응에 대해선 침묵하기로 하자.) 그건 사적이고도 내밀한 만남이었으니까.” 그녀는 아버지의 차가운 묘석에 손을 얹고는 마음 속으로부터 이야기한다. “내 아빠,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은 내 아버지에요. 그걸 아시겠지요.”

한편 또 한 명의 라깡의 딸, 철학자 주디스 밀레르 역시 아버지 라캉과 관련된 책을 출판했다. 1991년 Le Seuil 출판사에서 나온 <라캉 앨범. 내 아버지의 얼굴>이 그것이다.

06. 11. 19.


 

 

 

 

P.S. 알다시피 자크 라캉의 생애와 관련하여 가장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책은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의 <자크 라캉>(새물결, 2000)이다. 그리고 슈나이더맨의 <자크 라캉, 지적 영웅의 죽음>(인간사랑, 1997)도 참고할 만한 책이다. '생초보'라면 다리언 리더의 <라캉>(김영사, 2000)부터 읽는 것이 좋겠다.

흥미롭지만, '아버지'와 관련하여 읽어야 할 최적의 문헌은 '아버지의 이름(the Names-of-the-Father)'을 주제로 한 라캉의 세미나이다. 자크-알렝 밀레르가 편집한 이 세미나가 작년에 쇠이유출판사에서 출간됐으며, 곧 영어와 러시아어로 번역됐다. 영어본은 저널 'Lacanian Ink'(27호)에 들어 있는데, 그 일부 발췌내용은 아래와 같다.

The figure of the father is not a concept born in psychoanalysis, but rather a figure inherited by psychoanalysis. If the plural is an allusion to the end of this cursed tradition, it is because it is introduced in a logic of the Name-of-the-Father in which the latter appears as a function that can be sustained by diverse statements, which, from then on, play the role of said name.

Thus the Name-of-the-Father, as one of these elements, should not be the ultimate instance nor the ultimate response. It remains to be given a status and distinguished as element and as function. But, what function? If we refer to what Lacan denominated the paternal metaphor, it is the function of metaphorizing the desire of the mother, of barring it. In this sense, the Name-of-the-Father is, par excellence, an operator of metaphorization, to such an extent that, as element, it already is in itself the metaphor of the father, of the presence of the father. Let us write it this way:

The Name-of-the-Father can not only operate in the absence of the father (this is why Lacan criticizes the theories that relegate psychosis to the lack of the father), but it can also make him absent. If it is a matter of the father spoken through the mother, as a theme of the discourse, it is well to stress that it is an empty reference there, that he is made absent by the verb. And for that reason, without myth, one can affirm that it is a matter of the dead father as the subject of the signifier, which is writt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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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11-20 06:47   좋아요 0 | URL
마지막 “내 아빠,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은 내 아버지에요. 그걸 아시겠지요.”가 의미심장하네요.

로쟈 2006-11-20 08:19   좋아요 0 | URL
모든 딸들의 코멘트 아닐까요?..

비로그인 2006-11-20 11:12   좋아요 0 | URL
라캉.. 저는 어렵습니다.
유디트의 사진, 전형적 프랑스 엘리트계층 여인의 풍모입니다.
시빌이 열등감을 느낄법도 합니다.


2006-11-20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1-20 22:59   좋아요 0 | URL
**님/ 블로그를 갖고 있지 않구요, 가보니까 (출처를 밝히지 않고) 무단으로 옮겨놓았더군요. 네티켓이 없는 분입니다...

2006-11-20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깽돌이 2006-11-21 02:12   좋아요 0 | URL
자녀는 하나여야 안전한가?! ^^

로쟈 2006-11-21 08:38   좋아요 0 | URL
상팔자는 무자식이죠...

테렌티우스 2006-12-01 10:32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팬입니다...^^

중간 이름의 우리말 표기는 쥐디트 라캉, 쥐디트 밀레르가 맞습니다. 국어 연구원의 외래어 표기법을 보시면 됩니다...

http://korean.go.kr/06_new/rule/rule05.jsp


로쟈 2006-12-01 10:54   좋아요 0 | URL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어연구원의 표기를 다 따르지는 않지만, 이 경우는 그게 맞는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