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일상 토크쇼 <책 10문 10답>
10문 10답
찾아보기 귀찮아서, 머리에서 열심히 짜내어서 썼는데, 제가 그렇죠 뭐. 에피님의 글을 보고 반성하고,
열심히 찾아서 다시 올립니다.
1) 당신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을 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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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조, 마실래요?" 라고 물어보기에 나는 고맙게 우조를 한잔 받기로 한다. 이 우조 병이 또한 너무나 크다. 우조는 따뜻하게 식도를 통해 위 속으로 퍼져간다. "이거야 이거!" 라는 느낌이 든다. 어쩌고저쩌고 말은 많았지만 이제 우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체질로 변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여튼 토속주라는 것은 그 지역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맛이 깊어지는 법이다. 키안티 지역을 여행했을 때는 와인만 마셨다. 미국 남부에서는 매일 버본 소다를 마셨다. 독일에서는 시종일관 맥주에 절어 살았다. 그리고 여기 아토스에서는 그렇다. '우조'인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우천염천>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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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염천>은 하루키의 짧고 굵은 여행기이다. 이런 여행기..
거칠지만, 엄살없다. 위의 '우조' 이야기가 나오는 여행지는 그리스의 '아토스'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자만 들어갈 수 있는 그리스정교의 성지다.
'우조'는 40도가 넘는 그리스의 전통주이다. 한국의 소주 같은 술이라고 보면 되겠다.
저렴하고, 말처럼 병이 크고, 투명한 술이다. 한국의 그리스 음식점에서 마실때는 주로 글라스에 커다란 얼음을 넣고 언더락으로 마신다. 고되고 힘든 여행길에 마시는 따뜻한 '우조'라니
우조는 그 도수에도 불구하고, 약초향과 민티한향이 강하여 도수가 높은지 잘 모르고 마신다.(나만 그랬나;;) 아마 한국에서 마시는 우조는 그곳에서 마시는 우조와는 많이 틀릴 것이다.
크레타섬, 어느 조그만 수퍼에서 우조 한병을 사서, 이탈리아까지 들고 갔다가, 거기서 또 런던까지 들고갔더랬다. 마지막 여행길에, 도저히 그 크고 무거운 병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코벤트가든의 어느 코지한 호텔방에서 우조를 땄다. 그리스의 여운이 남아 있긴했지만, 그리스를 떠난 우조는 이미 우조가 아니였다. 코리안 레스토랑에서 마시는 소주가 그 소주가 아니듯이...
2) 책 속에서 만난, 최고의 술친구가 되어줄 것 같은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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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가 하숙집에 들어오자마자, 믹과 제이크, 닥터 코펠랜드가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싱어가 어디 다녀왔는지,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싱어는 그들의 질문을 못 알아듣는 체했다. 수수께끼 같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들은 각각 싱어의 방에 찾아와서 저녁 시간을 같이 보냈다. 벙어리사내는 늘 사려 깊고 차분했다. 여러 색이 섞인 눈동자는 마법사의 눈처럼 침울했다. 믹 켈리와 제이크 블라운트, 닥터 코펠랜드는 조용한 방에 와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무슨 말을 하든 싱어가 알아듣는다고 느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고.
카슨 매컬러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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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슨 매컬러스, 아메리카 서던고딕의 천재 여류작가, 그녀의 데뷔작이다.
론리헌터는 아마 어떤 시에서 따왔던걸로 기억되고, 그렇더라도 스물셋에 쓴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은.. 휴-
카슨 매컬러스의 책에는 기괴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남부가 배경이고, 쓸쓸한 마을이 배경이다. 그녀의 글에서 '외로움'은 공기와도 같이 항상 그 안에 떠돈다. 각각의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이 찾아가는 곳은 벙어리 싱어의 방이다. 내게 싱어는 예수와도 같이 여겨졌다. (내가 독실한 신자하고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무튼, 그런 느낌) 벙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웬만하면, 고독이나 외로움으로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가끔 싱어의 방에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릴때 있다.
술친구라는 것은 쉽지가 않다. 현재 나의 가장 좋은 술친구는 안타깝게도 술을 마시지 못한다. 그것과 상관없이 가장 함께 하고 싶은 친구고. 술을 함께 마시고 싶은.. 이라는 질문을 봤을때, 물론, 당연히 말로가 떠올랐다. 그도, 나도 함께 술마시는걸 좋아할 일은 없을듯하다. 페이퍼를 보다가 매튜 스커더와 함께 술 마시고 싶다는 사람을 본 것 같다. 맙소사. 알콜중독으로 끊임없이 괴로워하는 그와 술 마시고 싶다는 그것을 악취미라고 불러야 하나 뭐라고 불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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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 세이메이는 툇마루에 앉아, 등을 기둥에 기대고 있다. 구부린 왼쪽 무릎을 옆으로 기울이고, 오른쪽 무릎을 세워 그 오른쪽 무릎 위에 오른쪽 팔꿈치를 얹고, 오른손 위에 오른쪽 뺨을 괴고 있다. 약간 고개가 기울어져 있지만 그 기울어진 목이나 머리에 뭐라 말할 수 없는 색향이 떠도는 것 같았다. 가느다란 오른손 손가락에 옥으로 된 술잔을 들고, 안에 든 술을 가끔 입에 머금는다. 술을 머금기 전에도, 머금을 때도, 그리고 머금은 후에도 붉은 입술이 항상 희미한 웃음을 띠고 있다.
유메마쿠라 바쿠 <음양사>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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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인용 외에도 아베노 세이메이와 히로마사의 술자리는 <음양사>내내 계속된다.
뭐랄까, 귀신잡는 이야기이긴 한데, 나는 정말 이 분위기와 술과 달과 세이메이와 히로마사와
밤과 귀신과 세이메이 집, 술안주, 풀, 나무, 꽃, 바람, 등등등에 정말 홀랑 빠져서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정말이지, 앞으로 살고 싶은 집..이라고도 생각해보았고,
세이메이와 히로마사가 술 마시는 그 자리의 생선안주 뼈다귀라도 되어봤음 좋겠다. 고도 생각해보았다.
역시나 말이 필요 없는 술자리.. 와 술동무
3) 읽는 동안 당신을 가장 울화통 터지게 했던 주인공은 누구인가요?
이 질문의 답이 참 힘들더라. 왜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울화통 터지는 주인공이 나오면, 책을 집어던져버리기 때문이다. ^^;

표지는 엄청 이쁜데, 여기 등장하는 10살, 12살, 14살 애들이 아주 꼴배기 싫었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꼴배기 싫었는데, 가만, 이건 울화통 터지는 것과는 다른가? ^^;
그럼 나는 이전 페이퍼에서 썼던 <연민>으로 다시 가겠다.
호프밀러, 에디트, 케케스팔바 : 죄다 울화통
게다가 츠바이크는 그 울화통들을 너무나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딸의 사랑에 목을 매는 케케스팔바,
자신감이라고는 코딱지만큼도 없이, 호프밀러의 사랑에 목을 매는 에디트,
케케스팔바와 에디트 사이에서 우유부단의 왕과도 같은 호프밀러
확실히 울화통. 읽기가 너무 힘들었던 책이다.
4) 표지를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표지는 책의 얼굴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표지/최악의 표지는 어떤 책이었는지 알려 주세요.
사실, 나는 이 질문을 보고, 이 페이퍼를 포기하고 싶었다. 알다시피모르다시피 나는 표지에 엄청 집착하고, 표지 보고 책을 판단하지는 않지만, 표지는 표지대로 판단하고, '세상에 좋은 책은 많다. 세상에 표지도 예쁘고 좋은 책도 많다' 고 부르짖으면서, 괴상하고 시대에 뒤처지고 성의없는 표지들을 규탄하고, 잘 빠진 표지에 열광하는지라, 뭐라고 답하기 힘들단 말이다. ㅡㅜ
최악의 표지는 지난번에 말했듯이 보르헤스 단편집 1~5 이다. 이 책 정도나 되어야 눈물 머금고 가지고 있지, 다른 이상한 표지의 책은 사지도 않고, 혹시 사더라도 금새 추방한다.
최고의 표지는 ...

a) 구겐하임 북 : 뉴요커지의 구겐하임 카툰만 모아 놓은 딱 까놓고 말해서, 구겐하임미술관 선전책인데,
뉴요커 카툰, 구겐하임, 뉴욕.. 이다보니, 그 모든 특징을 잘 버무려서 이거봐라- 하는 이 책의 표지를 보고
나도모르게 손이...
b) 뉴욕의 노이에Neue 미술관에서 겟한 20세기 비엔나 디자인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앞의 비엔나도안과 이어지는 책등과
책뒤까지 아주 예쁘다. (내용도 알차다.)
c) 빈티지 인터네셔널에서 나온 까끌까끌한 표지를 사랑하는데, 물론 나보코브도 사랑하고, 롤리타도 사랑한다. 롤리타 50주년으로 나온 한정판 표지(이지만, 과연 한정판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d) 돌체 앤 가바나네들 창작의 원천은 애니멀 프린트이다. 런던의 예술서적 거리의 어느 작은 서점 지하에서 발견한 보물같은 책. 돌체 앤 가바나의 애니멀.. 저 표지에서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이 들어 있다. 최고최고!
e) 헤르만헤세의 페어리테일(우리나라엔 아마 환상동화집?) 헤르만헤세와도 페어리테일과도 독일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표지(실물이 더 예쁘다. )
f) 펭귄 90주년이던가..책표지도 예술인데, 책등의 레인보우 그라데이션.. 너무 멋지다.
예쁜 표지는 많지만, 일단 내가 두고두고 꺼내보는 표지들은 얘네들.
5) 책에 등장하는 것들 중 가장 가지고 싶었던 물건은? (제 친구는 도라에몽이라더군요.)
내가 물욕이 없나보다(설마;;) 책에 등장하는 것들 중 가지고 싶었던 ... 사람(구체적으로 남자)은 있었지만,
물건은 아무리 책장을 째려봐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니깐, 테메레르나 샤바케의 요괴들이나 뭐 그런것 말고는
돈 되는거? (; 내가 말하고도 급 부끄러움) 요정이 나타나서 세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면
1) 순간이동하는 재주 2)모든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 3) 돈이 끊임없이 나오는 지갑
뭐, 이런걸 바랬었다. 이 세가지가 등장하는 책이 있다면... 1)에 해당하는 무림비급이나 내공을 길러주는 천년묵은 버섯이라던가, 모든 독의 침해를 막아주는 이천년 먹은 구렁이라던가. 그런거? 영웅문에 분명 나왔던걸로 기억.

그러니깐, 답은
무림비급과 내공을 길러주는 영물
6) 헌책방이나 도서관의 책에서 발견한, 전에 읽은 사람이 남긴 메모나 흔적 중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이건 정말 실화인데, 당시의 증거사진을 도저히 못찾겠다.
책방에서 김전일을 빌렸는데, 매 화 맨앞에 나오는 인물소개란에 빨간 싸인펜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있고,'이놈이 범인'이라고 써 있었다. 이와 같은 얘기가 인터넷에 떠돌았고, 우리 동네 사는 개xx가 따라한 것으로 사료된다. 디게 오래전 얘기고, 지금은 김전일이나 코난같은 만화 자체가 많은 추리소설의 트릭따라하기라는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간 내가 본 것들은 레드썬!레드썬! 싫어하고, 볼 일 없다.
7) 좋아하는 책이 영화화되는 것은 기쁘면서도 섭섭할 때가 있습니다. 영화화하지 않고 나만의 세계로 남겨둘 수 있었으면 하는 책이 있나요?
책이 영화로 잘 만들어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하지만, 그 드문 경우가 있으므로, 나는 영화화되는 것 환영이다.
최근에 본 체호프의 <이바노프>가 각색된 아이슬란드 영화 <백야의 결혼식>이나 클뢰브 공작부인이 각색된 <아름다운 연인들> 모두 재미있었다. 각색이 아니라도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도 책과는 별도로 무지 좋아한다.
잘만 만들어진다면, 나만의 세계에 남겨둘 필요 있나. 영화로도 만화로도 연극으로도 자꾸 되풀이되서 갈증을 채우고 싶을 뿐이다.
8) 10년이 지난 뒤 다시 보아도 반가운, 당신의 친구같은 책을 가르쳐 주세요.

내가 아마 거의 처음 본 원서이지 싶다. 닥터스의 우리나라 번역본은 두권으로 나왔는데,
한권은 진한 녹색, 다른 한권은 연한녹색이었다. 로라와 버니를 너무 좋아해서, 영화나 드라마로 만든다면
당시 최고의 배우인 줄리아 로버츠와 톰 행크스가 좋을텐데 생각하곤 했다.
번역본도 원서도 열번도 더 읽었을듯. 대사들도 기억난다. ㅎㅎ줄거리도 당연히 세세하게 기억나고.
그 외에 <영웅문>
중학교때부터 올해까지 정기적으로 읽어주는 책이다. 곽정과 황용이 나오는 1부를 제일 좋아한다.
9) 나는 이 캐릭터에게 인생을 배웠다! 인생의 스승으로 여기고 싶은 인물이 등장하는 책이 있었나요?
이 질문도 쉽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에게서 조금씩 배운다. 어릴적에는 책속의 주인공
캐릭터를 일주일씩 따라하곤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성격이 급변했을텐데, 나의 어릴적 친구들이 나를 그저 새침한 아이로만 기억하고 있는걸 보면, 내 연기력이 그닥 훌륭하지 않았거나, 사실은 속으로 다 나를 다중인격자로 기억하고 있거나. 할 것이다.
10) 여러 모로 고단한 현실을 벗어나 가서 살고픈, 혹은 별장을 짓고픈 당신의 낙원을 발견하신 적이 있나요?
지난번 페이퍼의 Mondion에 하나 더 덧붙인다.
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아마, 이런 곳? 자연속에 자연인듯, 자연인척 자리잡고 있는 집을 짓고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