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집어 던지기도, 계속 읽기도 고민가는 책을 잡아 들었다.
마이클 그루버의 <바람과 그림자의 책>이 바로 그 책인데, 이 책은 촘촘한 글씨에 600여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
소재는 셰익스피어와 고서, 저작권 변호사, 영문학 교수, 살인 등으로 굉장히 먹음직하다.

너무나 산만하고(이건 읽을수록 더함), 무엇보다도 재미 없어서, 별의별 책을 다 읽는 나이지만,
뒤에 남은 분량을 보니, 이건 '시간낭비닷' 하는 종이 머리 속에서 계속 울렸다. 

읽기 시작한 책이 지독하게 지루하고 재미없음을 발견했을때 나의 자세 :
1. 책날개와 책띠, 책 뒷면의 과장된 선전문구를 보며, 앞으로 어떤식으로 재미있어질 것인가를 예상한다.
예를 들면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 '대문호의 창작 과정에 얽힌 비화를 흥미진진하게 파헤친다' '마이클 그루버는 자신이 진짜 물건이며, 또한 그 이상임을 증명해보였다.'  오케이, 앞으로 그런 비화와 추격전과 작가의 물건이 나온단 말이지? 하며, 기운을 내서 다시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2. 컴퓨터를 켜고 독자리뷰를 본다. 
59개의 리뷰중 (꽤 많은걸?) 구매자 리뷰는 단 두개. (의심스럽다.) 이 책과 궁함도 안 맞는 사람들의 리뷰가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더 의심스럽다.) 아, 이 책 서평단 도서였구나. 기억해낸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의 독자리뷰는 지루하기 짝이 없어서, 읽을 가치 없뜸. 으로 결론, 땅땅. 보통의 경우에, 독자리뷰를 읽으면서 스포일러를 찾는다. 아, 이래서 이래서 이렇게 되는구나, 어디 더 읽어볼까나- 하는 식.

3. 그대로 책을 덮고 멀티리딩을 한다. (다른 책을 읽는다.)
워낙에 한번에 두 세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나로서는 (이건 꽤 적극적이어서, A책 50쪽까지 읽고, B책 읽던거 50쪽 더 읽어야지. 그리고 B책 50쪽 더 읽고, A책 챕터 4까지 읽는 뭐, 이런 식.) 책을 읽다가 덮고, 다른 책을 시작한다고 해서 찜찜할 이유없다. 비록, 그 책을 언제 다시 읽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런식의 소극적 멀티리딩하는 책들은 아마도 적극적 멀티리딩하는 책들의 열배정도는 족히 되지 않을까.  

4. 마구 화내고, 집어 던지며, 나를 낚은 출판사나 알바 리뷰어들을 저주한다.
성질 부리고, 남탓하는 본색이 나온다.

5. 책의 다른 용도를 생각한다.
깊은 책장 뒤에 쑤셔놓거나, 다리 하나가 빠진 사방책장의 다리로 괴어 놓거나, 불쏘시개로 쓰거나(아, 우리집에는 벽난로가 없구나), 냄비 받침이나, 컵라면 뚜겅 덮는 용으로.. 


+++

완전 무고는 아니지만, 마침 읽고 있던 '재미없을랑 말랑한' 책인 덕분에 <바람과 그림자의 책>이 도마위에 올랐다.  
버뜨, 위의 페이퍼를 쓰기로 마음먹은 후에 책은 조금이나마 재미있어졌다. (자신의 운명을 예지한 것인가, 책이여!) 여전히 산만하다. 사건이면 사건, 역사면 역사, 캐릭터면 캐리터, 시대사면 시대사, 뭐 어느 것 하나에 집중을 해야 책이 술술 읽힐텐데, 아니면, 작가가 천재라서 그 모든걸 하나로 잘 버무려내거나( 불행하게도 이 작가는 흥미로운 바이오그래피를 지녔지만, 천재작가는 아니다.) 해야 하는데, 쓰고 싶은 얘기를 다 써내까렸으니, 분량 많은 책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그래서 분량이 많은 거였어' 속은 느낌. 뭐, 책을 하나의 이야기로 읽지 않고, 흥미로운 사실들을 주어듣는 소스가 되어 버린다면, 그럭저럭 진도는 나간다. 끝까지 다 읽고는 스토리도 정리되겠지, 하는 마음. 그, 끝까지 다 읽게 만드는 힘이 되어준, 셰익스피어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나 책쟁이들 이야기들, 주인공이 저작권 변호사인만큼 저작권 관련 이야기들과 저작권과 소설, 허구, 뭐 이런 것과 '최고' 인 셰익스피어 와 연결한 것은 꽤 인상적이었다. 그런저런 매력들을 발견해나가면서 나는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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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미없는 추리소설을 대했을때 매니아의 자세
    from little miss coffee 2008-11-21 19:47 
    결국 재미없을랑말랑했던 <바람과 그림자의 책>은 아직도 그 때 읽었던 그대로다. ++ 재미없는 책을 대하는 독자의 자세의 결론은 '읽지 않는다' 혹은 잘 말해주어야 '영원히 읽는 중' 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 다른 질문 '재미없는 추리소설을 대했을때 매니아의 자세' 에 대한 답변은 무엇일까. 나 자신을 추리소설 매니아.라고 거창하게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추리'의 요소를 지닌 책들을 편애하는 편인 것은 분명하다.
 
 
hnine 2008-11-02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이런 페이퍼 한 편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군요.
어떤 책일까, 그렇게 재미없이 시작했다고 말씀하셨음에도 호기심까지 생겨나네요.

이매지 2008-11-02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의 그림자의 책>에 리뷰를 쓴 기억이 있어서 찾아봤더니,
전 서평단으로 받은 책임에도 별 셋 줬군요.

마노아 2008-11-02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덕분에 바람과 그림자의 책이 궁금해지네요. 하이드님표 책 페이퍼 재밌어요^^ㅎㅎㅎ

하이드 2008-11-02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hnine님, 딱 짚으셨습니다. 안그래도 그문항을 넣을까 말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이매지님, ㅡㅜ 서평단책으로 꼭 읽고, 리뷰 써야 했다면, 더 괴로웠을 것 같아요.
마노아님, 다행입니다. ^^ 제가 워낙 책 다 읽기 전에 이런식으로 설레발을 떠는 경향이 없잖아 있습니다. ㅎㅎ

비연 2008-11-0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주로 멀티리딩..;;;;

곰탱이 2008-11-04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그런 책은 수소문해서 빌려 본 다음에 '역시나...'하며 마음놓고 집어 던집니다. ㅎㅎ
왠지 안 읽으면 또 그렇더라고요 ㅡ,ㅡ

무해한모리군 2008-11-04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로 멀티리딩
잼있는 책을 동시에 읽으며 저에게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

별족 2008-11-06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가' 재미없게 읽은 책은 남 주기도 부끄러바서, 가끔 책 찾다가 좌절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을 빌려주고 못 받고, 이상한 책들만 책꽂이에 남아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