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위픽
임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양이 이야기를 좋아할 것 같지만, 좋아하지 않는다. 가여운 길고양이 이야기는 현실에서 너무 많이 봐서 소설에서 또 보고 싶지 않고, 인간이 지어낸 고양이가 떠난 후 뒷 이야기 같은건 달갑지 않다. 덮을 정도는 아니어서 끝까지 읽긴 했다. 


만화를 그리던 나는 미루고 미루던 마감일에 납치를 당하고 곤란하다. 알고보니, 고양이에게 죽기 전의 대기실 같은 곳으로 납치당했다. 고양이는 존재감 없는 나에게 감명 받아,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고양이들이 길에서 살 수 있도록 존재감을 없애는 법을 배우고 싶어한다. 짠둥이.. 친구 고양이들, 제가 낳은 아기 고양이들이 존재감을 없앨 수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제목의 0000은 화자가 연재하는 만화의 제목이다. 통장 잔고, 인간관계, 행동반경, 메신저 알림 모두 0,0,0,0 인 화자의 일상을 다룬 만화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데는 성공하지만, 0000의 삶에 업데이트는 없다. 연재 두 달만에 소재 고갈로 제목 따라 조회수 0, 별점 0, 댓글 0, 추천 0, 또 다른 무관심의 0000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저랑 비슷해서 잘 봤어요. 라는 독자를 만나기도 하고, 존재감 없애는 법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시도해보기도 한다. 결국 성공하고, 다시 돌아가기로 한다. 납치 당했을 때의 이야기를 소재로 가지고. 


요즘 시류에 맞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요즘 시류라고 해봤자, 다양한 삶이 있겠지만. 이전에 비해 좀 더 와닿는, 좀 더 많은 독자를 지닌 이야기일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두사의 웃음 -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최초의 선언 앳(at) 시리즈 10
엘렌 식수 지음, 이혜인 옮김 / 마티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여성적 글쓰기에 관해 그것이 무엇을 할지에 관해 말할 

것이다. 여성은 자기 자신을 써야/써져야 한다. 즉 여성은 

여성을 써야 하고, 여성들을 글쓰기로 오게 해야 하는데, 

그녀들은 자신의 몸에서 난폭하게 멀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와 

동일한 이유로, 동일한 법에 의해, 동일하게 치명적인 목적으로

글쓰기에서 멀어졌다. 여성은 자기 자신을 출산하고 역사를 

시작하듯이 자발적으로 텍스트에 착수해야 한다. (12-13)


엘렌 식수를 읽고 나면 늘 구멍이 많다. 이전에도 그랬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이전보다 낫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구멍이 있는대로 기록 남긴다. 독특한 판형이 원서에서 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뒤에 보니, 프랑스어로도 절판되고 잊혀졌다가 영어권에서 인기 끌고, 다시 프랑스어로, 그리고, 이제 이렇게 한국어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언어를 건너면서 잘려나간 말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부분이 나온다. 지금 내 프랑스어 레벨로 원서로 읽는다고 더 잘 읽을리 없기도 하다. 내 친구 푸코, 내 친구 데리다 그러는데, 나는 푸코도 데리다도 읽은 적 없어서 벽을 느끼고. 


저자가 이야기하는 '여성적 글쓰기'는 나라는 독자를 만나서 더 조각날 수 밖에 없겠지만, 조각이라도 의미를 찾아본다. 70년대의 '여성적 글쓰기'보다 지금 더 나아진 부분도 분명 있고, 변하지 않는 부분들도 여전히 있어서. 그런 감각으로 읽었다. 

그러다보니, 글은 급진적이지만, 내용은 크게 급진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일견 보수적인 부분들도 느껴졌다. 


이론적 에세이와 시적 산문 사이의 글이라고 하는데, 내지 편집 디자인이 독특하다. 습관대로 왼쪽 페이지만 읽다가 다시 올라가서 왼쪽과 오른쪽을 오가며 읽다가 급기야는 글 뭉치를 읽어내게 하는 경험에서 얻게 되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 이상 과거가 미래를 결정하게 둬서는 안 된다. 

과거의 효력이 여전히 있음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그 효력을 공고히 하는 것, 거기에 운명에 

준하는 종신성을 부여하는 것, 생물학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을 

혼동하는 것을 거부한다. 앞지르기가 시급하다. 


그대는 왜 글을 쓰지 않는가? 글을 쓰라! 글쓰기는 그대를 위한 

것이고, 그대는 그대를 위한 것이며, 그대의 몸은 그대의 

것이니, 그것을 취하라. 나는 그대가 왜 글을 쓰지 않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왜 스물일곱 이전에 글을 쓰지 않았는지 안다.)

그건 글쓰기가 그대에게는 너무 높고, 너무 위대한 것이기에, 

'위인들', 다시 말해 '남성 위인들'에게만 할애된 것이기 때문이다. (18-19)



지난 몇 천년간의 과거의 효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벗어나기 위해 애쓰더라도 벗어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모든 생물이 멸종을 향해 달려가듯, 그와 같은 효력도, 막상 벗어나려고 하면,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이 다 맞춰지면, 쉽게 떨어져나갈지도 모른다. 정말로 과거는 과거에 두고, 미래를 보고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과거는 아주 찐득하고, 놓지 않으려는 기득권자들과 거기에 실려 가려는 소수자와 약자들로 힘이 아주 쎄고, 끈질기지만. 아주 작은 가능성이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일지라도 '글쓰기'라는 무기를 들어서. 여자의 몸으로 여자의 글쓰기를 하는 것. 



좁은 인형의 방에서 그녀들은 빙빙 맴돌며 방황했고, 바보가 

되는 치명적인 교육을 받았다. 실제로 감금하고, 지연하며, 

아파르트헤이트 짓에 심히 오랫동안 성공할 수 있긴 하지만, 

그건 단지 한동안일 뿐이다. 그녀들이 말하기 시작하자마자, 

이름을 말하는 그 순간부터, 그네들의 대륙은 검다고, 너는 

아프리카이니까, 너는 검다고 가르칠 수 있다. 네 대륙은 거매. 

검은 것은 위험하단다. 검은 것 안에서 너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겁을 먹잖아. 넘어질지 모르니 움직이지 마. 특히 숲에는 가면 

안 돼. 그리고 그 검은 것에 대한 공포, 우리는 그것을 내면화했다. (24-25)


에세이나 시적 산문이라기 보다는 선언문 같고, 선언문 같다고 이미 얘기하기도 했지. 



지금은 옛 여자에게서 새로운 여자를 해방할 때이니, 그러려면 

새로운 여자를 알고, 그녀가 곤경에서 빠져나와 지체 없이 

옛 여자를 초월함을 사랑해야 하고, 조화롭게 파동을 모으고

쪼개면서 단숨에 시위를 떠나는 화살처럼, 그녀 자신 이상이 

되기 위해 새로운 여자가 될 것을 마중 나가야 한다. (26-29)


내 안의 옛 여자, 과거를 사는 옛 여자를 해방시키는 방법은 새로운 여자를 아는 것, 새로운 여자를 사랑하고, 새로운 여자를 마중 나가는 것. 


또한 글쓰기는 여성에 의한 말의 장악을 기입하는 행위로, 

언제나 여성 억압 위에 형성된 역사 속에 여성의 요란스러운

입장을 기입하는 행위이다. 반로고스적 무기가

단련되게끔 글을 쓰기. 모든 상징 체계 속에서, 모든 정치적 

소송에서 마침내 그녀의 뜻대로, 그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이해관계자이자 전수자가 되기 위해서. 


지금은 문어와 구어 안에 여성이 일격을 가할 때이다. (38-39)


몸을 던지는 것. 글쓰기와 말하기로 몸을 던지는 것. 



집회에서 한 여성이 말하는 것을 (만약 그녀가 허망하게

호흡을 잃지 않았다면) 들어 보라. 그녀는 '말하는'게 아니라, 

허공에 자신의 떨리는 몸을 내던지고, 스스로를 놓아 버리고, 

비상하고, 목소리 속에 자기를 송두리째 실어 보내고, 자기 

몸으로 생생하게 그녀의 담화 '논리'를 지탱한다. 그녀의 육신이

진실을 말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녀는 실제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육체적으로 구현하고, 자기 몸으로 그것을 

의미화한다. 어떤 면에서 그녀는 자기가 한 말을 기입하는데, 

왜냐하면 충동의 통제할 수 없는 부분과 말에 대한 열정을 

거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담화는 '이론적'이거나 정치적일

때조차 단순하거나 단선적이지 않고 일반화된 '객관성'을 띠지 

않는다. 그녀는 역사 속에 자기 이야기를 끌고 간다. (40-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야기꾼들
보후밀 흐라발 지음, 송순섭 외 옮김 / 민음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벤야민의 이야기꾼 에세이를 읽은 후 픽션을 읽을때마다 종종 이것은 이야기인가 소설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좀 더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이야기 같고, 자신의 경험을 변주 시키고, 나에게 전해진 이야기는 나 또한 전해야 한다. 

Who was Grim Brothers 를 읽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림 형제는 많은 페어리 테일의 저자(아닌 저자) 로만 알고 있었는데, 당대의 지식인들이 그리스 로마 고전들을 찾을 때, 그들은 독일어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수집했다. 


얼마전에 읽은 고미숙의 '당신은 연결되어 있습니까' 도 당연하게 떠오른다. 말과 글과 쓰기로 연결되어 있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의 중심에는 '이야기'가 있다. 


보후밀 흐라발은 체코 작가로 작가의 다양한 경험들(기차역 배차원, 보험 대리인, 행상, 철공장 공원, 법학 박사, 무대 장치 담당자) 을 하고, 그 자신의 경험과 그가 그 일을 하면서 만났을 사람들의 경험을 그의 소설들에 '이야기꾼'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면서 풀어냈다. 


올해의 독서 계획 중 '책으로 세계여행' 이 있고, 다양한 국가의 책들을 시도해보려고 하고 있다. 막상 기록하며 보니, 몇몇 국가에 편중된 이야기들만 읽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름도 잘 안 붙는 보후밀 흐라발의 책은 상당히 문학적이고, 술술 읽히면서도 무슨 이야기인가 생각하게 만드는데, 체코라는 낯선 배경도 한 몫한다. 


그의 이야기보따리에서 풀려나오는 다양한 인물들이 흥미로워서 흐라발의 책들을 좀 더 읽어볼 생각이다. 가장 유명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아직 안 읽어보기도 했고. 


이 소설집에는 여섯 개의 소설과 두 개의 작품 해설이 있다. 첫번째 소설인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가 중편 정도의 길이이고, 나머지는 다 단편이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 가던 1945년 체코의 소도시에 있는 작은 기차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엄혹한 전쟁 중에도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일어나는 소시민들의 생활이 기차역을 무대로 펼쳐지고, 간간히 지나가는 독일군 열차와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로 긴장감을 놓치지 않다가 거대한 폭발로 결말을 맞는다. 좀 이상한 사람들,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이상한 면들이 있는데, 그런 면모들이 합쳐지면 새로운 이상함이 생겨나고, 거기에 '전쟁'이라는 커다란 재난이 함께 할 때, 웃기네, 정도의 이상함이 어울리지 않게 비장해지기도 하고, 위대해지기도 한다. 


기차가 배경인 <다이아몬드 눈>, 카페에서의 자살로 시작되는 <간이주점, 세계>, 수류탄 소리가 끊이지 않는 중에 '장난꾸러기들' 추임새 또한 끊이지 않고, 화가의 다양한 그림들에 대한 설명을 듣는 <이야기꾼들> 정신병동이 배경인 <이온토포레시스> 등 좀 이상하지만,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은 연결되어 있습니까 교양 100그램 10
고미숙 지음 / 창비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고, 생존 자체는 물론이고, 생기 있게 사는 것이 어려우며 '좋은 삶'을 꾸리기는 더더욱 어렵다. 나이들수록 관계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많이 봐왔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제일 좋은 나는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니깐, 니가 먹는 쌀을 위해 농부가..라는 곳까지 가지 않는 이상 말이다. 코로나 시절에야 혼자 집에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는 사람이 그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걸 알고,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깨달았다. 


싫어도 함께 해야 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은 학교와 회사, 그리고 가족과의 시간 정도일텐데, 나는 그 모든 것에서 거의 벗어났다. 지금 내게, 싫어도 함께 해야 하는 사람들은 없다.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 그렇다. 온라인은 좋아도 함께 가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고, 사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끌어오지 않아도 오프라인도 사실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지금도 혼자인 시간이 제일 소중하지만, 연결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서 사람 만나는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나가는 편이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참 부족하겠지만, 사람과 만남으로써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는 것을 요즘 부쩍 느끼는 중이라서 더 그렇다. 평범하지는 않은 이유라고 생각되지만, 혼자서 무언가를 파고 들 때 깊이를 얻을 수 있지만, 그리고, 그 시간 또한 꼭 필요하지만, 타인과 함께 함으로서 새로운 무언가가 더해지고, 만들어진다. 이걸 뭐라고 해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여기까지는 왔다. 


창비 교양 100그람 시리즈 궁금했는데, 고미숙의 이야기로 첫 스타트를 끊게 되었다. 내가 모토로 삼는 '쓰기 위해 읽는다' 는 이야기의 출처이고, 평생 공부를 설파하는 분이어서 내심 가까이 여기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또 좋은 말 듣고 담아두었다. 


인생은 하루다. 

읽고 말하기, 쓰기가 연결의 첫걸음이다. 


"물질적 요소가 충분히 충족된 후, 즉 일의 성취와 화폐의 축적이 이루어지거나 혹은 충분히 늙은 다음, 그때가 오면 정신 혹은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겠다는 식은 패착입니다. 


그런 시간은 오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그런 때가 도래한다 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물질과 소유만을 위해 전력질주한 다음이라 멈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가장 좋은 방법이 일상, 즉 하루를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느냐, 즉 오늘의 패턴과 방향이 인생 전체를 가늠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따라서 지금의 처지가 어떻든 하루에 단 1시간, 아니 단 10분이라도 정신활동의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54,55)


너무나 내가 좋아할만한, 내 입맛에 맞는 이야기라서 외려 더 말하기 힘든 이야기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느냐가, 오늘의 패턴과 방향이 인생 전체를 가늠한다." 


그렇거든요. 오늘을 뒤로 좀 늘린 어제, 오늘을 앞으로 좀 늘린 내일, 하고 싶은 일을 해내기 위해 늘 유지하는 마음. 

현재를 혹은 현재부터 가장 중요시하고, 아끼며 살아가는 것. 


연결되며 나오는 생기, 생명력 같은건 아직 모르겠다. 왠지 에너지 닳는 느낌인 내향인이긴하지만, 에너지 쓸 때는 써야 해서, 내 안에서 돌아가는 혼자를 위한 에너지 뿐만 아니라 연결될 때만, 부딪힐 때만 생기는 에너지들 또한 꼭 필요하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태어나서부터 죽기 전까지.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질문이라면, '당신은 연결되어 있습니까' 라고 묻는 질문이냐면, 이전과 달리 연결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이렇게나 크게 바뀐거면 시작이 반인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추분 위픽
신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 전에 개인적인 일들로 리뷰도 못 쓰고, 꼭 해야 할 일들만 해치우느라 책에 대한 감상이 많이 날아갔다. 고작 보름 정도로 이렇게 날아가는데, 그동안 뭘 믿고 기록 하나 안 남기고, 책만 읽고 깝쳤는지. 다시 한 번 shit 같은 글이라도 남겨야 겠다고 다짐하며 머릿속 어딘가 남아 있을 읽기의 기억들을 헤집어본다. 


애도의 글이었던 것 같다. 은조라는 친구가 죽었는데, 그 친구는 고라파덕을 좋아했다. 한 번 좋아한 것은 계속 좋아하는 친구였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을 넘어서 감정 쓰레기통이 되고 힘들어하며, 화자인 '나'는 은조를 세상이 너무 괴롭힌다고 생각했고, 자신만은 그렇지 않다고 믿었다. 


고라파덕을 파트너 몬스터?로 데리고 다니면서 (포켓몬 안 해서 잘 모르겠다.) 포켓몬 게임을 하느라 열심히 매일 7키로인가, 여튼 엄청 많이 걷는다. 이 책을 읽었을 시기에 스페셜 어쩌구로 서울숲에 포켓몬 하는 인구들이 너무 많이 모여 인파를 해산시켰다는 뉴스도 봤다. 포켓몬, 메이저인건가. 


걷는 것, 움직이는 것은 애도든 뭐든 도움이 된다. 내가 아침마다 눈물 질질 흘리다, 어느 날,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정말 평생 생각지도 않던 달리기를 시작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애도의 걷기, 애도의 달리기인 것일까. 


저자의 실제 경험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다. 뒤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보니, 완전히 다른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도 썼던 걸 보면, 완전히 픽션일수도. 근데, 실제 경험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고, 이렇게 경험을 독하게 쏟아내면, 다음 책은 뭘 쓸까 생각하며 읽었다. (실제 경험인지 아닌지 전혀 모름) 


위픽 100 권 스티커 붙이기 키트를 위픽에서 받은 이후로, 원래도 얇아서 도서관에서 보이면 잘 빌렸지만, 더 적극적으로 빌리고 있다. 표지 스티커를 포스터에 붙이는건데, 포스터에는 제목이 나와 있고, 알다시피, 흰 띠지를 벗긴 표지에는 제목이 없고, 책에 나온 인용문구만 나와 있어서 맞춰보는 재미가 있었다. 


위픽 시리즈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나는 위픽 시리즈를 좋아한다.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예쁜 책으로, 다양한 한국 작가의 소설을 읽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격대비 이야기 나오지만, 좋아하는 책이라면, 그게 무슨 소용있는 말인가. 요즘 밖에 나가서 뭐 먹으면, 진짜 별거가 다 만원, 이만원인데. 어떤 책이든 누군가는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가능성이 있다고 치고, 이 책도 리뷰 보니 제일 좋아하는 사람 있더라. 나도 나쁘지 않았다. 


위픽의 소설들 중 기억에 남지 않는 소설들은 있었을지언정, 읽으면서 이게 뭐야, 진짜 별로야 싶은 책은 딱 한 권밖에 없었다. 좋았던 책은 꽤 많다. 열 권 넘을 것. 읽은 책은 100권 포스터에 스티커 붙이면서 보니 4,50권 쯤 되었던 것 같다. 괜찮은 승률이지. 야구 3할 승률보다 높다. 


책 이야기 좀 더 하면, 글도 이야기도 나쁘지 않았고, 기억에 남은 것들도 있었다. 내가 원하는 애도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작가가 이 글을 쓰면서 (실제 경험이라면)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