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끼 키우기
클로이 달튼 지음, 이진 옮김 / 바람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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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독서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논픽션 북클럽을 하는 것이다. 내년이 될지, 내후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아름다운 책이 논픽션 북클럽의 첫 책이 될 것이다. 


작년 논픽션 분야에서 상도 많이 탔고, 좋은 책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야생의 산토끼(Hare) 를 키운다는 것이 H is for Hawk (메이블 이야기)랑 비슷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어 미루고 있었다. 좀 힘든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고양이를 키우는 나는 고양이 책을 실용서 외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동물 좋아하지만, 많이 가리는 편이고, 소설을 읽어도, 동물 나오면, 구글에 ㅇㅇ 죽나요? 검색해보는데, ㅇㅇ ㅈ까지만 검색해도 자동완성 되는거보면 나같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산토끼 이야기가 특별했던 것은 산토끼가 결국 죽어도 책을 끝까지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검색해보긴 했다. 안 죽음) 


어떤 책들은 앞에 한 두장만 읽어도 이거다 싶은 책이 있는데, 이 책 또한 그렇다. 프롤로그만 읽어도, 야생의 아기 산토끼를 향해 달려가는 개 짖는 소리만 들어도 아기 산토끼가 되어 두근두근 두근두근 


정치 고문이자 외교전문가로 일중독자였던 저자는 세계가 멈췄던 코로나 시기 시골에 지어두었던 자신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길에 노출되어 있는 갓 태어난 산토끼를 마주하게 되고, 순간 그대로 놔둬야할지, 데려가서 봐줘야할지, 안 보이는 수풀 속으로 넣어줘야 할지 고민하다 사람 냄새 묻히면 안 될 것 같아 그대로 두고 온다.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온 곳에 새끼 산토끼가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최대한 냄새를 덜 묻히기 위해 천으로 덮어 집으로 데리고 가서 근처에서 농장을 하는 언니에게 SOS 를 보낸다. 


동물 친화적인 언니와 달리 도시인인 그녀는 가뜩이나 산토끼를 집에서 키우기 어렵다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새끼 산토끼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게 된다. 분유를 타 먹이면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게 접촉을 최소화하며 산토끼와 함께 살게 된다. 그렇게, 야생을 집에 들인 그녀의 공간은 점점 더 야생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산토끼의 개체수가 많이 줄어든 것은 인간 때문이다. 인간의 효율을 위한 기계식 농업으로 인해 살던 터가 없어지고, 숨을 곳과 쉴 곳이 없어지며, 트렉터에 갈리고, 찢긴다. 산토끼는 흔한 동물이었다가 지금은 보기 힘든 동물이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산토끼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는데,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고, 얻을 수 있는 대부분의 지식은 산토끼를 잡는 수렵인들로 부터 왔고, 몇 세기 전에 산토끼를 키웠다는 시인의 시에서 겨우 무엇을 먹는지 알 수 있었다. 


저자와 함께 독자 또한 산토끼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게 되고, 왜 부정적인 이미지로 책에 묘사되는지 (토끼와 거북이의 교활한 이미지라던가)에 대해서도 이유를 찾는다. 앞으로 책에서 Hare 보면, 무슨 이야기이든 클로이의 산토끼에 대해 떠올릴 것 같다. 


반려동물로 진화하지 않은 야생의 산토끼, 그거 아시나요? 산토끼가 치타보다 빠르다는 것? 그렇게 빠르고, 잘 도망치고, 잘 경계하고, 예민한 산토끼는 그런 특성으로 인해 취미 사냥감으로 잡혀서 죽고 있다. 사냥이 취미다? 욕하고, 저주하고. 


코로나 시기에 결코 멈추지 않고, 가속하기만 할 것 같은 세상이 멈추었고, 그 멈춘 세상에서 사람들은 각각 무언가를 배웠다. 저자는 새끼 산토끼로 인해 그 시간에 더 많은 성찰을 하게 되고,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된다. 


"가끔 책상에서 빠져나와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곤 했는데, 녀석의 차분하고 평온한 모습이 놀라웠다. 산토끼가 지닌 평온함과 안정감을 오랜 세월 나의 삶을 지배했던 미친 속도감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삶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고 온갖 예측할 수 없는 일들과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자의와 타의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놀랍게도 자연으로 확장하게 된다. 야생 산토끼와 함께 비와 바람 또한 집으로 들이게 된다. 인간이 없앤 생울타리를 주변 농지 주인들의 협조하에 이전으로 돌리고, 나무를 심고, 풀을 심는다. 이렇게 땅을 사서 보존하고, 터를 내주는 것, 아무것도 없는 땅을 숲으로 만든 그 인도인만큼 대단히 큰 뭔가는 아니지만, 그렇게 자신이 가진 집과 땅을 이전으로 돌려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것 또한 대단하다. 


부정적이기만 했던 야생의 동물을 죽이고, 씨를 말려버리는 인간의 무심함과 잔인함과 끝없는 욕망에 대한 회의는 지난 번 '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 에서 보전생물학에 대해 알게 되면서, 약간의 희망으로 돌아섰다. 비관적인 태도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고, 희망과 행동만이 현실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든다. 덜 나빠지게 만든다. 나빠지는 속도를 줄인다. 그 연장에서 이 책을 읽게 되어서 다행이다. 약간의 희망에 약간의 희망이 더해졌다. 


이 외에도, 야생의 산토끼를 야생으로 두기 위한 동시에, 그의 집을 은신처로 삼은 산토끼를 존중하며, 외출하는 산토끼를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그 마음이 뭔지 너무 잘 안다. 돌보는 길고양이들도 많이 생각났고, 곰 생츄어리의 곰들도 생각났고, 많은 길 동물들과 숲 동물들, 그들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생각났다. 


"동물에 대한 애정이 전혀 다른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과의 관계에서처럼 온갖 후회와 복잡미묘함, 타협으로 얼룩지지 않은 감정이었다. (...) 말로 소통할 수 없다보니, 우리는 동물들의 필요를 이해하고 채워주기 위해 우리 자신을 확장하고 그 대가로 그들과 함께 하는 기쁨과 재미를 누린다. 그들의 삶이 우리의 삶보다 훨씬 짧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는 언젠가 다가올 피치 못할 고통에 대비해야 한다. 어린 산토끼가 죽으면 내가 엄청난 고통과 슬픔을 느끼게 되리란 것을 알았고 생각만 해도 몸이 움츠러들었다." 


저자의 글이 너무나 아름답고, 묘사 글쓰기의 정석 같고, 서술이 대단해서, 읽으면서 감탄하고, 질투나고, 아이들과 같이 읽으면서 글쓰기 훈련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였다. 


"처음 보았을 땐 털이 젖은 흙 빛깔 비슷한 짙은 갈색 같았다. 그러나 한 가닥씩 찬찬히 살펴보니 한 올의 털에 짙은 갈색과 엷은 갈색이 번갈아 나타났다. 처음엔 잘 이해가 안 갔지만, 얼마 후 그것이 '아구티 색상 agouti colouring'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구티 색상은 한 개의 털에 여러 색의 띠가 나타나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산토끼를 비롯한 수많은 야생동물들에게 필수적인 위장 기능이며 수천 년에 걸친 자연 선택의 결과였다. (...) 눈가의 엷은 색 털은 마치 눈화장을 한것처럼 둥글게 검은 테가 둘러져 있었다. 목털은 세상에서 가장 보드라운, 식어버린 재의 회색이었고 그 어느 부위보다도 털이 짧고 가늘었다. 코와 입 주변은 상아색이었고 조그만 입은 항상 놀란 것처럼 조그만 'O' 모양으로, 그을음 같은 털이 테를 둘렀다. 콧구멍도 어두운 회색 털이 테를 둘렀다. 등에 난 털은 얼룩덜룩하고 수북했다. 귀는 아래쪽이 좁고 위로 갈수록 점점 넓어지다가 다시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고 뾰족해졌다. 귀 끝부분은 얼마나 새카만지 마치 먹물에 담근 것 같았다. 앞발도 페인트를 밟고 지나간 것처럼 끝부분이 희었다." 


산토끼의 꼬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동그란 솜털 방울 모양이 아니었다. 길쭉한 막대처럼 생겨서 양쪽으로 살랑거릴 수 있었다. 꼬리 윗부분은 거친 회색 털로 덮여 있었지만, 아래쪽은 눈부시게 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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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 - 멸종, 공존 그리고 자연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임정은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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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전생물학 : 인간과 동식물이 서식지를 지킬 수 있게 하는 실천적 학문


보전생물학이라는 학문을 이 책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보전생물학은 단순히 동물을 연구하고 보존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이 동식물과 그 서식지를 함께 지켜나가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진 실천적 학문이라고 한다. 


저자에게 보전생물학의 정신은 "사랑과 호랑이의 공존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이다. 


멸종 위기의 생물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파괴되는 생태계를 보호하고, 복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개입하여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보존과 복원, 그리고 '공존' 이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생물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들여다보게 되고, 멸종 위기로 모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인간과의 공존을 위한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등을 함께 공부해야 한다. 


저자는 대학생 때 대전의 오월드에서 아무르 표범의 실물을 보고, 이 일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보존 생물학이라는 알 것 같지만, 몰랐던 개념과 활동을 실감나게 소개시켜주는 것과 함께 저자의 삶의 방향성과 추진력, 회복 탄력성 등이 놀라웠다. 제인 구달 전기 볼 때와 비슷한 느낌. 맨 땅에 헤딩하면 머리나 깨질 것 같은데, 큰 목표 하나를 정하고, 내 모든 선택들을 그 목표로 가는 길로 집중하면, 기회들이 오고,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 


멸종 위기의 생물을 보존하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 싫어, 인간 나빠, 인간 몰아내로만 머리가 돌아갔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아니, 여전히 인간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어떤 일도 해결되지 않고, 체스 둘 때처럼 굉장히 여러 수를 앞서 보고, 다양한 경우를 대비하는 일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예를 들면, 러시아의 보존 활동을 돕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한국에서도 주요한 일이라고 하면, 왜인가 싶지만, 러시아의 표범이 북한과의 국경을 넘어 한반도로 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한반도에서는 인구 밀도가 높고, 개발되지 않은 곳이 좁아서 자리 잡기 힘들거라고 보고 있지만, 확률이 있다면, 가능성을 열어두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작은 가능성들이 모여서 뜻하는 바에 가까워진다. 


보전생물학은 생물 다양성의 위기와도 떼어 놓을 수 없는 주제인데, 저자는 이를 젠가 게임에 비유하고 있다. 하나씩 하나씩 멸종해가며 생태계가 무너진다면, 결국에는 와르르 무너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보전생물학을 연구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진짜 거의 가능성이 없는 일에 바위에 계란 부딪히듯 계속 시도하다가, 아, 여기까지인가보다 하면 뭐가 보이고, 아, 여기까지인가보다 하면, 또 뭐가 보이고, 그렇게 실질적인 일들을 해낸다. 


저자가 오지의 보존 구역에 자리 잡고 살며 정부와 트러블이 있는 부족들에 접근할 때 '의료'와 '교육'으로 다가간다. 의료와 교육이라고 하니 거창하고, 단체나 기업이 해야 할 것 같지만, 저자는 혼자 그 둘을 다 한다. 교육을 받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영어 수업을 해주고, 구급함의 비상약을 아낌없이 푼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동물과 사람간의 공존의 해답에 가까워진다. 불법으로 보존 구역에 자리잡고 있지만, 그 곳에 경제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들을 위해 호랑이 기념품을 만들어 팔 수 있게 하면서 돈도 벌고, 호랑이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도 자리잡게 하고, 마주쳤을 때의 방법들도 교육하는 등, 다양한 접근 방식을 취한다. 


어려운 일들이 끊임없이 사방에서 닥쳐올 때 그가 받은 조언은 '하려는 일이 목표에 부합하는지만 생각하고, Yes 면 Go' 

사명감과 애정, 보람이 있는 어떤 일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다할 수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나도 뭔가와 싸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들었고, 내가 하는 일, '읽기'로 싸울 수 있는 일이 뭔지 생각해봤고, ㅇㅇㅇㅇㅇㅇ와 싸우겠어! 혼자 으쌰 했다. 


생물들은 점점 멸종해 가고, 지구는 망할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이 책을 보다보니,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놀라웠고, 꼭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보면, 할 일이 생겻을 때 더 잘 할 수 있겠지. 


세계를 누비며 멸종과 공존을 위해 애쓴 저자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영어 공부를 소흘히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상대의 신뢰를 얻어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현장에서 영어는 여전히 강력한 도구다. 영어 실력은 열정이나 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경쟁력임을 실감한다고, 조금 뜬금 없는 것 같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일에서 너무 당연한 이야기여서 마지막으로 적어두었다. 


책 안의 내지 디자인이 예쁘다. 이런 에세이들에 글의 양이 부족한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글도 많고, 이야기도 꽉 차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동물원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니깐, 나는 그게 문제다. 인간 싫어, 동물원에 전시 싫어, 하고만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 간격을 줄이는 일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멸종 위기의 동물일수록, 다양한 유전자 보존이 중요하고 (근친으로 약한 개체가 나오기 쉽기 때문에) 이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근래 곰 생츄어리, 말 생츄어리들, 청주 동물원 같은 곳들 보면서 보호하고, 마지막을 책임지는 장소로서의 역할이 강화되는 것에 대해 뭐든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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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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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를 펼치고 나면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책을 놓기 힘들다. 

집 나간 집중력 찾는데 도움되지 않을까. 


독서 모임에서 읽은 책인데, 너무 재미있었다. 첫 페이지부터 충격적이고, 마음이 굉장히 불편하고 힘든 상태에서 책을 읽게 된다. 루이즈라는 완벽한 보모가 왜? 아이들을 살해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면서 이야기가 쌓이는 것을 따라가게 된다. 


미리엄은 아이를 낳아 완벽한 엄마가 되고, 가족을 이루고 싶었지만, 육아와 집안 일에 지쳐가고 일 나가는 폴이 미워지며, 다시 일하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둘째를 낳고, 상황은 악화되기만 한다. 폴 또한 자신의 세상이 좁아져서 지옥같다고 느끼며 회피한다. (니가 그러면 집에 있는 미리엄은 얼마나 더 지옥이겠니) 


친구를 만나도 열등감만 느끼며 자신의 모습을 자학하다가 우연히 만난 법학과 동창 파스칼에게 일자리를 제안 받고 계시로 여기며, 보모를 뽑게 된다. 엉망인 여럿을 지나 첫 눈에 반한 금발 머리 인형 같은 루이즈를 들이게 된다. 루이즈의 나이를 계속 궁금해하면서 읽었는데, 루이즈의 외모가 완벽하게 단정하고, 인형 같다는 묘사가 반복되는 것에 비해 나이는 모호하다. 루이즈의 딸 스태파니를 생각해보면, 4-50대 정도가 아닐까. 5-60대일 수도 있고. 


저자는 모로코에서 17세까지 살다가 프랑스로 이주해서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배우로도 일하다가 기자가 되어 소설을 쓰고, 이 소설은 두 번째 소설로 공쿠르상까지 수상하며 대히트를 쳤다. 


영어 제목은 미국판은 perfect nanny, 영국판은 lullaby 이다. 이번 모임에서 이 책을 우리말로 읽은 사람들과 영어로 읽은 사람이 이 있었고, 감상이 크게 달랐다. 아시아 저자의 책을 영어로 읽으면 굉장히 다른 느낌인데, 프랑스어 소설을 영어로 읽어도 다른 느낌일까 궁금하다. 제목만 보면 '달콤한 노래 changson douce' 와 perfect nanny 완벽한 보모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고 보인다. 


이 소설은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걸로 알려지는데, 깔끔한 엔딩이 아니라 앵? 했다는 사람도 있어서 실제 사건을 찾아봤다. 뉴욕에서 내니로 일하던 사람이 각각 여섯 살, 두 살 아이를 키친 나이프로 찔러 죽이고, 자신의 목과 배를 찔렀으나 자살에는 실패했다는 사건이었고, 동기는 시간당 18불을 받았는데, 돈문제가 있어서 더 일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거절 당해서 그런 것으로 나와 있다. 


소설과 많은 부분이 겹쳐 있다. 


요즘 많은 소설들이 읽고 나면 비슷비슷해서 여기서 봤나, 저기서 봤나 싶고,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읽고 나면 금새 잊혀지는데, 이 이야기의 많은 부분들은 오래 남을 것 같다. 


미리엄은 아이를 가지고 싶고, 아이에게 가장 좋은 엄마이고도 싶고, 변호사로서 성공도 하고 싶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이라도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진리인데, 둘 다를 욕심낸다. 그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정도의 차이이지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아이러니일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 좋은 것을 하기 위해 해야할 번거롭고 힘든 일들이 잔뜩이다. 그런 그 앞에 나타난 완벽한 보모. 아이를 돌보는 것 뿐만 아니라 (정당하게 돈을 주고) 요청하거나, 부탁하지 않은 집안 일까지도 완벽하게 해내서 아이를 낳기 전보다도 더 완벽하게 집이 꾸려져 돌아가게 된다. 


그런 완벽함이 현실에 존재할 리 없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의존하게 되고, 그 완벽해 보이는 현실에 안주하기 위해 루이즈로부터 받게 되는 쎄한 신호들을 무시하고 회피하게 된다. 


루이즈라는 인물은 내게 캐릭터라기보다는 '실제하기에는 완벽해 보여서 말이 안 되는 어떤 것'으로 느껴졌다. 그런 루이즈라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루이즈의 비인간성은 작품 속에서 인형 같은 외모로 자주 묘사된다. 청소와 정리, 그 외의 집안 일들을 완벽하게 해내고, 아이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길들이고, 결국은 미리엄과 폴까지도. 그런 어른스럽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남편 자크로 인해 얻은 빚과 청구서들, 그리고 월세까지 외면하면 없어질거라는듯, 묻어두고, 변호사인 미리엄이 도와주겠다는 제안까지도 거절하는 생활력 없는 모습, 아이 같은 모습이 대조적이다. 인형 같고, 아이 같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묘사되는데, 완벽한 보모인. 비인간적이고, 비현실적인 아슬아슬한 완벽함이다. 


그런 루이즈가 미리엄과 폴에게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둘 다 선택하고 누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달콤한 노래' 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 책의 첫 장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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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나와 우는 우는 - 장애와 사랑, 실패와 후회에 관한 끝말잇기
하은빈 지음 / 동녘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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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다가 도서관에서 보고 빌려서 읽게 되었다. 우는 나와 우는 우는이라니, 우가 세 번이나 나오는데, 무슨 뜻이지. 우는 은빈과 우는 애인 우의 5년여의 연애를 돌아보는 에세이였다. 


책을 읽고 나서 우에 대해 좋고, 안타까운 느낌만 남았다면, 우는 멋진 사람이구나라는 느낌만 남았다면, 그건 책을 쓴 빈이 우를 그렇게 보았거나, 우에 대한 기억을 그렇게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거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마지막에 우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덜어냈다고 얘기하긴 했지만, 그리고, 이야기 사이에 어떤 이야기들이 채워질지 짐작하는게 그리 어렵지 않아서 책에 쓰인 힘듦과 비교도 안 되는 고단함이 있었을거라는 것을 알 수 있긴 하지만. 


가장 빛나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잊지 않고, 돌아보고 남기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안 하고 싶지만,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는 근육병에 걸린 중증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애 이야기이다. 


이 책과 따로 일라이 클레어의 <눈부시게 불완전한> 이라는 책 이야기도 많이 봤는데, 하은빈이 그 책의 번역가인건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고, 두 책을 떼어놓고 생각하지 못할 것 같다. 


아픈 몸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찾아 읽었다. 아픈 몸과 장애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찾아 읽는 주제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아픈 몸과 소수자 이야기에 대한 책들도 많다. 아니, 충분히 많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여튼, 이 책인가? 하고 들었다가 반쯤은 미루고, 반쯤만 읽었는데, 장애에 관해 읽은 책들 중에 <우는 나와 우는 우는>만큼 장애에 대해 다른 배리어 없이 평범하게 읽었던 책은 없었다. 왜 그럴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도 바로 생각나긴 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여서 그랬을거다. 그간 읽었던 책들이 장애인이 화자이거나, 온전한 돌봄의 대상이었다면, 이 책에서는 서로 주고 받고, 일견, 비장애인인 저자가 더 많이 받은듯 보이기도 한다. 옆에서 우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생각한다면 또 마음이 복잡해지지만, 독자라는 위치만큼 떨어져서 보는한 사랑하는 만큼 사랑 받았고, 혹은 더 큰 사랑을 받았고, 그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다 힘들었구나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니, 적어도 그만큼은 한 발 다가간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게 더 멀어진건지, 그냥 자리만 옮긴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쓴 사람이나 이 책을 읽는 사람이나 쓰는 동안, 읽는 동안 그만큼 더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건 더 나아지는 일이지 않을까. 


저자가 글을 굉장히 절절하게 써서, 글을 읽는 내내 저자의 절절함이 절절하게 묻어나서, 이 이야기가 이야기거리로만 소비되고 잊혀지지 않고, 내내 기억할 것 같으니 말이다. 


어떤 페이지의 어떤 글을 옮겨도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페이지를 넘기며 보는 글마다 저자는 사랑에 감사하고, 그 사랑에서 벗어남에 기뻐하고, 기뻐한 자신에게 상처받고 있잖아. 그게 다가 아닐텐데. 


모두가 똑같이 살 수는 없잖아. 3월의 마지막에 읽은 책에서 이두온은 사람의 쓸모에 대해 고민했다. 

4월 첫 날 하은빈의 책을 읽는 동안 바로 전에 읽은 책의 '쓸모'라는 주제가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런건 없다. 쓸모라는 말이 사람에게 쓰이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쪽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야겠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만큼 하는거지. 그렇게 일을 하는 동안 너무 힘들지 않게, 마음 다치지 않게. 마음 다치지 않게. 


책 마지막 장의 끝말잇기. 빈과 우가 하던 끝나지 않는 끝말잇기는 이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연결될 것이다. 


"우리는 자주 끝말잇기를 했다. 좀체 서로를 이길 생각이 없는 끝말잇기였다. 어쩌다가 '산기슭'이나 '나트륨'으로 상대를 끝장낼 기회가 와도 다른 재미없는 단어를 고르는, 혹은 '슭이로운 생활'이나 '륨어티스 관절염'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그러면 머리를 맞댄 채 승인 여부를 근엄하게 검토하곤 어쩔 수 없다는 듯 또 다른 지루한 단어를 찾아나서는, 얼렁뚱땅 멎었다가도 어물쩡 재개되곤 하던 무료하고 끊임없고 영원한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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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쓰면 죽는 병 위픽
이두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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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쓰면 

죽는 


"무슨 일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소설을 계속 쓰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 그리고 건강이 필요합니다. 작가의 삶을 꾸려간다는 것은 이 조건들을 감당해낸다는 의미일 텐데, 저는 이 문제에 있어 무력감을 느낀 지 퍽 오래되었습니다. 늘 돈, 돈이 문제였어요. 돈에서 시작된 문제가 다른 조건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두온 같은 미친(positive) 작가가 돈이 없다니, 세상이 이래도 되냐.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것은 돈을 어느 정도는 벌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 '어느 정도'라도 되기까지 보잘것 없는 잔고가 널을 뛴다. 


단편이지만, 작가의 무한한 상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장편을 바라요) 

치트키와 젠틀맨의 당근 만남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물품은 알랑뽕따ALRANGPPONGTTA 44 사이즈 원피스. 

젠틀맨은 한숨을 쉬고, 44 사이즈라곤 성인되고 입어본 적이 없는 치트키는 동생 주려고 한다고 하찮은 변명을 하지만, 젠틀맨은 도망가고, 치트키는 쫓아가는 웃긴 상황에서 치트키의 벙거지 모자가 벗겨지며 그녀 머리 꼭지의 종기, 주먹만한 그것이 노출된다. 


플람마FLAMMA, 돈 안 쓰면 죽는 병의 증상은 머리꼭지가 대머리가 되면서 혹이 자라는데, 성인 주먹에서 세 살 아이 머리 크기까지도 자라서 폭발! 머리와 함께 터져버림! 터지는 모양이 불꽃 내지는 횃불 같아서 이를 뜻하는 라틴어인 플람마라는 명칭이 붙었다. 


불치병이고, 과소비나 충동소비, 예쁜 쓰레기 소비와 같은 소비만이 이 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자본주의병이라고. 모두가 쓸모없는 소비를 하기 위해 일에 몸을 갈아 넣고, 쓸모 없는 소비를 하지 않으면 죽는다. 


쓸모 없는 소비와 사람의 '쓸모'와 '돈'을 기가막히게 연결시키며 이 사회를 굴절 겨울로 반사시켜 보여주고 있다. 

무쓸모가 쓸모인 세상에서 자신의 쓸모만을 좇으며 살아왔던 주인공은 당장 답을 내리지 않고 달아나며, 독자에게 공을 넘긴다. 이 다음에 이어서 바로 읽는 책이 <우는 나와 우는 우는> 이어서 정말 생각이 많아졌다. 생각이란 걸 하고 싶지 않아졌다. 하나마나 말을 하고 싶지도 않고, 당장 답이 보이지 않는 질문의 답에 매몰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들을 읽고, 그냥 넘어가고 싶지도 않다. 


작가 인터뷰에서 건진 한 줄을 염두에 두고 생각을 멈추지 말 것. "쓸모는 말 그대로 제 상황에 따라 쓸 가치가 있는,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무언가일 거예요. 다만 쓸모의 대상이 저 자신이거나, 주변의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저자에게 요즘 가장 쓸모 있는 것은 기후동행카드와 커피, 가끔 먹는 팥빵이라고 한다. 


나에게 요즘 가장 쓸모 있는 것은 오더블과 도서관, 클린하우스(재활용과 쓰레기 버리는 곳)와 드립백 거치대( 세상에 이런 것이 있다니, 생긴거나 자리 차지하는건 별로지만, 컵에 담겨서 컵 두 개로 쇼하던 것에서 벗어나 컵 하나로 가득 내려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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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2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 안쓰면 죽는 병이라나 저 같은 가난뱅이는 절대 걸리며 안되는 후덜덜한 불치병이네요 ㅜ.ㅜ

하이드 2026-03-30 16:57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죽어요. ㅜㅜ 근데, 결과만 보면 현실과 같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