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료 한사람이 상관으로 부터 심하게 꾸중을 듣게 되었습니다. 눈이 온 뒤라 눈을 치워야 하는데  다른 부서는 모두 열심히 눈을 치워 깨끗해졌지만 이 친구의 담당구역은 아주 엉망이었던 것입니다. 모래를 쌓아둔 약간 높은곳에 올라가서 야단을 맞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제가 보기에도 미안하고 안스러울 정도로 딱해보일 정도였지요. 키가 자그마치 188이나 되는 이 친구는 그렇지 않아도 구부정하게 여겨지는 허리를 꾸중을 듣는 동안 더 구부리고 있는것 같아 보였습니다.

2. 상관이 야단을 마치자 이 친구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어디어디를 어떻게 작업하라는등 작업 지시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나무람을 마친 상관은 모래언덕의 약간 낮은 곳....제 동료의 뒷편으로 돌아가서는 반대쪽을 보고 있었습니다.  한참 작업지시를 내리던 제 동료가 좌우를 둘러보더니만 대뜸 "XXX 일마 이거 어데갔노?"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키였던 상관이 모래언덕의 약간 낮은쪽 뒷편으로 내려갔으니 높은곳에서 휘휘 둘러본들 눈에 들어올리 없고 보이지도 않으니 이 친구는 아마도 상관이 자리를 떠난것으로 착각을 하고는 마음놓고 한 마디 던진것 같았습니다.

3. "나 여기있어....왜??"  등 뒷쪽에서 자신이 어디로 사라졌는가를 묻는것임을 알아차린 상관이 그렇게 말하고 나타나자 옆에서 지켜보던 저도 "이크...이제 난리가 나겠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고...죄송합니더....저는 키가 작아 안보이는줄 모르고 가신줄 알았심더....용서하이소..." 큰 키를 읍조리며 연신 죄송함을 아뢰는 동료를 보면서 그 상관은 아뭇소리 안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어쩌면 속으로는 부하의 큰 키에 비해 상대적으로 20여센티미터나 작은 자신의 작은 키에 대해 비관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 위기는 그렇게 해서 끝이 났습니다.

4. 상관이 떠나간 후 저는 그 친구에게 다가갔습니다. 모자를 벗어든 그의 훤한 앞 이마(그 친구는 대머리는 아니지만 앞이마가 약간 넓었습니다)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습니다. 늘 서글서글했던 경상도 사나이도 자신의 실수에는 안절부절했던 모양입니다.  다행히 더이상 나무람이 없이 끝나고 말았지만 상하가 분명한 조직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야...너 천당갔다 온줄 알아라..."  제가 그렇게 말하자 그제서야 그 친구는  "아이고...아까 지는 죽는줄 알았심더..." 라고 말하면서 박장대소 하는것이었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오면서도

"XXX...일마 이거 어데갔노??"

"나...여기있어...왜?"    이 두마디 대사가 자꾸 떠올라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 如       村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립간 2004-01-19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갖고 있는 컴플렉스 중의 하나가 관용인데, 그 상관은 부하한테 관용을 베풀었군요. 손자병법에 나오는 지, 신, 인, 용, 엄 중에서 인과 엄의 조화가 어려운데.....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 하면 쉬운 것을 두개의 조화를 갖으라 하니 난감합니다. 어찌하였던 웃음으로 끝을 맺으니 보기 좋습니다.
 

1. 며칠전에 본가에 들렸었습니다. 아들 둘과 딸 하나가 각각의 보금자리를 꾸리고 떠난 후 덩그러니 큰 아파트에 두 분만 사시고 계십니다.  제가 장남인지라 같이 사시자고 해도 오히려 두분께서 불편하시다면서 이렇게 따로 사시는데 그나마 제 직장이 인근이라 가끔 들러서 저녁도 먹고가고는 한답니다. "저녁에 들릴테니 밥을 주시겠어요?" 물론 큰아들이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끼니를 챙겨먹기도 힘드는데, 식사시간에 가는데 밥을 안차려 주시겠습니까마는 제가 이렇게 사전에 전화를 드리면 무척 반가와 하시며 오라고 하신답니다.

2. 아버님이 중간 크기의 여행용 가방을 만지작거리고 계셨습니다. 사연인즉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시는데 다른 집에서 버린다고 하는 가방이 있길래 달라고 하셔서 가져오신 것이랍니다. 제법 유명상표의 가방이고 새것의 티를 아직 벗지 않았는데 넣었다 뺐다 하는 손잡이가 고정이 되지 않아서 버린다는 것이었답니다. 제가 달려들어 고장 원인을 살펴보니 그 손잡이에 톱니같은 걸쇠가 있는데 걸쇠를 잡아주는 고정핀의 나사가 풀려서 중간에 걸리지 않고 맥없이 쑤욱~ 빠지는 아주 고장같지도 않은 고장이었습니다.  나사 몇개를 꽉 조여주자 여행용 가방은 왜 나를 천덕꾸러기 취급을 했냐는듯 아주 멋진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멀쩡한 물건이 버려질뻔 했던 것이지요.

3. 어렸을 때... 지금은 시계가 많아서 차기 싫다고 하지만 중학생이 되어서도 시계하나 손목에 차기도 힘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 커다란 초침이 째각째각 큰소리를 낼것처럼 돌아가던 시계가 바로 "딸라시계"였습니다. 그 아이는 의정부에서 서울 우리 학교로 전학을 온 아이였는데 그 시계를 미군의 쓰레기통속에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때 벌써 미군은 분리수거를 하였는지 음식물 스레기와는 별도로 일반 쓰레기를 버렸는데 그 쓰레기통을 뒤지면 제법 쓸만한 신기한 것들을 많이 줏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고장이 난것이라고 해봐야 약간의 손길만 거치면 다시 새 물건처럼 쓸 수 있는것이 수두룩 하였다는 것입니다. "요요"라고 실 끝에 우주선 같이 납작한 실패가 달린것을 저는 그 때 처음보았습니다. 하여간 의정부에서 전학왔다고 "촌놈"이라는 놀림의 대상이었던 그 아이는 그런 요상한 물건으로 반 친구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지요.

4. 부모님이 계시는 아파트는 새로 건축된 아파트라 처음 입주시에는 이삿짐인지 버리는 물건인지 구분이 모호한 물건들이 아파트 마당에 그득했었습니다. 며칠씩 그 자리를 지키는 장롱이나 티 테이블, 의자, 침대, 심지어는 30인치가 넘는 티비등 전자제품 등등은 모두 버리는 물건이었습니다. 새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해서 아마도 집안에서 쓰던 물건의 일부를 새것으로 장만하고는 그냥 버리는 모양이었습니다. 저도 번듯한 책상과 의자...그리고 커다란 책장을 줏어다가 지금 쓰고 있지만 이런걸 버리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라는 궁금함이 들 정도로 버려지는 물건들이 모두 새것과 진배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비단 부모님이 계시는 아파트뿐만이 아니라 제가 사는 아파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끔 쇼파나 찻장, 침대, 장식장등이 멀쩡한 모습으로 버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 멀쩡했던것이 주인이 폐기를 결정하여 쓰레기더미로 분류가 되면서부터는 운반중에 망가지고 떨어져 나가는 경우도 생기는 모양입니다만 크게 망가지는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5. 우리가 이런 물질적 풍요속에 멀쩡한것을 버리게 된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얼마전 북한의 개성공단 착공식에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개성공단에 쌓은 축대의 흙포대중에 "이 쌀은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 정부에..."라고 적힌 쌀푸대를 이용한것을 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때는 유엔기와 태극기의 끝에 손이 달려 악수를 하는 그림위에  "이 쌀은 한국 국민을 위하여 유엔에서 무상으로 원조하는 쌀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진 쌀푸대가 주변에 흔하게 널려 있었는데, 그렇게 원조를 받아 살아왔던 시절이 불과 3~40년 전입니다만 이제는 쓸만한것들을 쓰레기로 버리는 풍요의 시대에 살게된 모양입니다. 물론 집을 늘려서 이사를 하게되면 집안의 구조와 맞지 않는 집기류가 많이 나오는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고 또 쓰던것을 남에게 주려해도 받는 사람이 기분 나빠할것 같아 꺼리고,... 그래서 그냥 내다버리면 재활용센터 같은 곳에서 수거하여 필요한 사람들이 싼 가격으로 사서 쓰게 될것이라는  생각으로 멀쩡한 물건을 내다 버린다지만 주변을 한번 둘러보면 의외로 그런 물품을 필요로 하는곳이 많다는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노인정이나 양로원은 물론이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될 수 있다면 그들이 어렵게 벌은 돈으로구했을뻔한 가전제품등은 요긴하게 사용하게 될것이고 또 그냥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리는 것보다 보람되게 사용하였다는 나름대로의 긍지와 뿌듯함도 갖게 될것입니다.

6.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어렵게 살았던 옛날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쇠고기 한점 먹으려면 제삿날이나 기다려야 겨우 가능했던 예전의 우리네 살림살이는 특별히 잘 사는 사람도 없었기에 돈이 있다고 해 보았자 살아가는 수준이나 상차림은 도토리 키재기였고 정육점에는 비싸서 잘 팔리지도 않는 쇠고기는 아예 가져다 두지도 않고 기껏 잘 먹어야 돼지고기였었지요. 한편으로는 먹고 싶거나 사고 싶은 것들을 돈만 가지고 가면 철커덕~ 철커덕~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에 내심 뿌듯하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이 외국의 경제학자가 보는 거품 경제나 아닌지...1인당 GNP가 겨우 1만불을 조금 넘겼는데 소비 행태는 3만불 이상의 GNP를 가진 국민의 소비패턴과 같다면 결국은 황새가 뱁새 쫒아가는 격이나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아직 쓸만한것은 그냥 쓰는 습관을 가져야 할것 같습니다. 정 쓰기 싫다면 "아. 나. 바. 다"운동에 동참하구요...     한가지 덧붙인다면 웬만하면 대물림해서 쓰도록 하세요...  나중에 혹시 후손들이 골동품으로 비싸게 활용하게될지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어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립간 2004-01-19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을 글을 읽으니 저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먼저 떠 오르네요. 저의 부모님도 아들, 딸 분가후 덜렁 두분만 계시는데......
물자절약에 관해서는 환경보호에 관한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개념을 갖고자 했지만 확실한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했습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의 원리에 나오는 상보성이 환경보호와 경제발전에 해당한다는 느낌만 갖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20대 초반이나 후반의 저 보다 비교적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 70년대 초반의 이야기를 하면, 도무지 이해를 하는 건지, 동감을 하는 건지......
제 스스로는 안빈락도 자체도 재미있는 삶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은 쉽지 않더라구요. '녹색시민 구보의 하루'에 나온 문구 '자발적 가난'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자연은 선조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고 후손에게 빌려온 것이다.'라고 말하면 조금 설득이 될런지
 

1. 오늘 저녁은 어느 분의 초청으로  일식집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송파구청 인근에 위치한 제법 으리으리해서 들어서기가 조금은 게름칙한(실은 촌스러운 제가 들어가기에는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집이었답니다) 일식집이었습니다. 식당이 저를 주눅들게 할 정도인줄 알았더니만 나오는 회나 또 셋팅도 다른집과는 조금 다르게 멋있게 나오더군요. 그런데 여러분들도 경험을 하셨겠지만, 너무 휘황찬란하면 입에 음식을 넣기가 조금 껄끄러운거 아시지요?

2. 초청받은 자리라 분위기도 비교적 차분하고 약간의 중압감을 느끼는 분위기였는데 여종업원이 무엇인가를 뒤에 숨겨서 들어와서는 일행중 단 한 사람에게만 좋은 선물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일행은 모두 4명이었는데...모두들 뭔가? 하고 의아함과 기대감속에서 궁금해하고 있는데 담배를 피우던 일행에게 선물이라고 식탁위에 올려놓는 것이 있었습니다. 보통 라이터보다 조금 두꺼워서 약간은 투박스럽게 느껴지는 라이터였습니다.

3. 라이터를 받은 일행이 그 라이터를 집어들자 차악차악~ 뭔가 속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는데 가만히보니 깨알보다 더 작은 빨간 은단같은 구슬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줄에 다섯개의 번호가 모두 9줄...그러니까 1부터 45까지의 번호가 적혀있고 그 번호 아래에는 작은 구슬이 담길만한 구멍이 있는것입니다. 아하~ 그러니까 수평으로 놓고 흔들다가 6개의 작은 구슬이 작은 구멍에 담기면 그 여섯개의 번호가 바로 로또복권인 것입니다.

4. 라이터를 가만히 뜯어보니 불길이 오르는 부분의 한쪽에는 "대박", 그리고 그 반대쪽에는 "로또"...불길을 조정하는 부분에는 "인생역전", 그리고 번호가 있는곳에는 바로 이 라이터의 이름인 "로또라이터"라고 씌여져 있었습니다.  번호를 고르는데 고민하는 사람의 심리를 이렇게 상술에 이용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참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역전의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이런 상품도 나오는구나....라는 씁쓸함도 생기더군요.

5. 저는 아직 한번도 로또를 해 본적이 없답니다. 언젠가 미국에서 바로 이 로또를 딱 한번 해 본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복권에 자신이 번호를 적어넣어 맞을 확율이 과연 수학적 확율과 같을까?  설마 그런 확율이 나에게 행운을 줄까? 라는 생각과 45개의 번호중에서 6개의 번호를 선택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은 일로 6개의 번호를 선택함에도 상당히 망설이게 된다는것은 다 아는 일이지요. 그러니 자동번호선택이라는 도우미도 등장을 하고 드디어는 손바닥 안에서 몇 차례 잘그락~ 거리다가 구멍에 들어간 구슬의 번호를 로또번호로 적어야 하는 기막힌 방법도 등장을 하게 된것이지요.

6. 제가 몇번을 해보니 요령이 없어서인지 빨간 구슬은 대부분 한편으로 몰리게 되더군요. 막상 이렇게 해서 로또용지에 번호를 적는다면 정말로 나온대로 적을수 있을까도 의문입니다,. 욕심많은 저는 그 집을 나오면서 제것 하나를 주인에게 특별히 요청해서 받아왔습니다. 왜냐구요?  그 집에서 재미삼아 하는데 마침 로또 추첨이 티비에서 진행되는데 일행이 장난삼아 라이터로 만든 번호가 당첨된 번호 6개와 단 한개만 틀리고 다 맞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이런일이..... 우연이라면 기가막히는 일이고...소위 "로또라이터"가 정말 잘 맞는것인지.....지금 당장이야 로또복권을 사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나중에 머리가 휘익~ 돌아 로또복권을 사게 되면 꼭 이 "로또라이터"로 번호를 선택하려는 것입니다. 아마 그 때는 6개중 5개의 번호만 맞는것이 아니라 6개 모두 "로또라이터"로 선택한 번호가 맞아줄것을 기대하면서, 이 기발한 발명품.....잘 사용하렵니다.(제가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라이터가 필요하거든요.....)

                                                   < 如      村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세상이 참 좋아진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온갖 증빙자료를 들이밀어도 요핑계 조핑계를 대며 어떻게 해서라도 안내주려던 은행이었는데 어제는 살다살다 별 희한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저도 어쩔 수 없이 은행을 이용합니다만, 이상하게도 은행은 저와는 별로 친해지지 않더군요. 은행에 가서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린다는것이 마치 병원에 가서 진단 결과를 통보받는것 같이 그리 유쾌하지 않으니까요. 더구나 대출이라도 받을 경우에는 완전히 죄인의 심정으로 은행 직원을 상대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2. 사실, 은행이나 출입국관리소나 다 마찬가지로 전산단말기의 모니터를 통해 나타나는 정보를 저희는 모르고 한쪽만 알고 있다는데서 불안이 시작되는것 같습니다. 전쟁도 그렇고, 무역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정보를 손에 쥔측이 안가진 측보다 훨씬 유리한것 아니겠습니까? 별로 지은죄도 없는데 출국심사시나 대출 심의시에 모니터의 내용을 모르니 불안한 마음이 가슴 가득인것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3. 그런 은행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적금이 만료된지 한참이 되었는데 찾지 않아 만기후의 이자율이 낮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데 다른 적금으로 바꾸거나 찾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몇 년전에 자동이체로 들었던 적금이 생각나는것 아니겠습니까? "맞다!!! 왜 그걸 몰랐었지??" 은행에서는 휴면계좌는 아니지만 조금 더 이율이 높은 금융상품으로 바꿀것을 권유한것인데...저는 잊었던 뭉칫돈을 찾은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4. 오늘...당장 나가서 찾았습니다. 그리 많은 돈을 적금한것이 아니기에 돈벼락을 맞은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명절을 앞두고 이런 즐거운 일이 벌어지다니 얼마나 다행인지요...말로는 공돈이라고 했지만 어디 공돈이 있나요? 제가 부은 적금을 제가 찾는데도  마치 어디서 눈먼 돈이라도 발견한양 이렇게 어리섞게 신나하니 참 우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은행측에서 전화를 해 주지 않았더라면 제 돈이 은행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 조차도 까맣게 잊고 살았을지 모릅니다. 기왕 은행에 간김에 넉살 좋게도 아주 오래전에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장학적금을 불입했던 것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본인이 직접 오면 가능하다는 답변이었습니다. 글쎄요...세월이 흘렀다고 해도 당시의 매달 5천원이 지금 수억으로 불어나 있을까요만 은행에서는 이자는 고사하고라도 원금이라도 돌려준다면 다행이 아니겠습니가?

5. 비단, 이번일뿐만 아니라 은행이 많이 달라진것은 여러가지로 느낄 수 있겠지요...  예전에는 대출을 받으러 가도 자기돈 빌려주는 양 거드름을 피우던 생각도 나고 심지어는 대출에 따르는 커미션을 요구하던 예전을 생각하면 요즘처럼 직장에 찾아와서까지 돈을 빌려가라고 읍소하는 모습은 정말로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잖습니까?  여러분도 혹시 자신도 모르고 있던 저같은 일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은행에서 하는 이야기가 "주 거래은행에 혹시 모르니 주민등록번호로 조회를 해 보세요.." "적금을 들면 자동으로 보험에 가입되는 수도 있으니 만일의 경우에 보험도 확인해 보세요" 였습니다.  그냥 모르고 넘어갈 일들이 의외의 소득을 가져다 주는 경우가 있으니 여러분도 한번 정도는 확인을 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혹시 알아요??  저 처럼 공돈같은 돈이 들어올지요...

                                            < 如     村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지금까지는 가만히 있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들어가서 물을 흐려 놓은 의지의 한국인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디에고 양지가 있다면 반드시 응달도 있는법이니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만, 나중을 생각한다면 조금 더 바람직한 상행위가 영위되어야 할것 같습니다. 중국에서도 언젠가는 한국의 퇴폐행위에 대해 날벼락이 떨어질것 같습니다. 왜?  얼마전에 일본인의 매춘 기생파티 때문에 중국이 한바탕 난리를 피운적이 있었잖습니까? 그와 유사한 일이 한국인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요.

2.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자랑스러운 몇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며칠전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국제가전제품전시회(CES)에서 한국의 전자제품이 일본 제품보다 인기가 훨씬 좋았다는 내용을 아시지요? 소니나 파나소닉제품보다도 더 비싸게 팔린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어깨가 으쓱하도록 했습니다. 일본제품 베끼기에서 이제는 일본이 우리 제품을 베끼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한국의 가전제품에 대한 인기나 상품의 질에 대한 내용은 상당히 고급품으로 인식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우리의 삼성이나 LG와 같은 전자회사로 HAIER라는 상표가 있었는데 종합가전제품 생산 회사입니다. 냉장고, 세탁기를 비롯한 각종 가전제품을 만드는데 중국인들은 이 회사의 제품보다 우리가 만드는 삼성이나 LG 제품을 더 선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인즉, 고장이 잘 나지 않고 제품의 디자인이나 성능이 훨씬 우수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비싸도 우리 제품을 사서 쓰려고 하고 중국의 중류층 이상은 대부분이 한국제품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3. 이런 현상은 비단 가전제품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들렸던 유명한 식당의 수도꼭지나 변기까지도 우리의 제품이었습니다. 과거 한동안 우리나라의 고급호텔 등지에 미국이나 독일제 수도꼭지나 변기가 사용되던 때를 생각하면 이제는 우리 제품을 다른 나라에서 쓴다는 것에 대단한 긍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실제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의 제품 생산수준이 높아졌고 그만큼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제품이 되었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4. 중국교수가 제 핸드폰이 어디 제품이냐고 물어서 국내의 S사 제품이라고하며 공항 출발 때 전원을 끈 제 핸드폰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유독 제 핸드폰에 탐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사용한지 1년이 조금 넘은 제품인데 중국에서의 한국 휴대폰에 대한 인기는 말 그대로 최고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핸드폰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가 하면 중국에서도 거의 국내에서 팔리는 가격으로 판매가 된다는 것입니다. 보통 2500위안~3000위안이니 약 40만원에 거래가 되는 셈이고 국내의 경우와 비교하면 중국은 물가가 싼편인지라 엄청난 고가에 매매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니 중국교수가 눈독을 들이는것도 당연했던것 같습니다. 이런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사람들은 돈을 모아서 우리 나라 생산제품을 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제 손안에 놓여있는 작은 물건이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몇번이고 쓰다듬어주었습니다.

5. 사족을 하나 달아야 하겠습니다. 중ㄱ구음식이 가격이 싼것에 비해 익숙치 않은 저로서는 먹기가 여간 고통스러운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바닷가라서 싱싱한 회를 먹을 수 있는것도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한국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을 시키고 값을 치루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중국내의 한국식당(청도에는 많은 한국 식당이 있었습니다)이면 가격도 중국의 실정에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되어야함에도 갈비탕 한그릇이 국내 가격과 같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도 모두 국내의 가격을 위안화로 환산만 하였더군요. 글쎄말입니다. (1)편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중국내 농산물이 대부분 우리의 1/10 이하의 수준인데 음식가격은 국내 가격과 똑같이 받는다는것이 이해가 쉽지 않더군요. 만약 그렇게 따진다면 국내에서도 중국음식중 뻬이찡 덕이니 냉채니 하는것이 우리음식보다 훨씬 싸야할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니...참 아이러니 입니다. 하여간 그 짠돌이라고 뙤놈소리를 듣는 중국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버는 한국 사람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물론, 그들이 번 돈은 전부 우리나라로 들어온다는 가정하에 하는 말입니다.

   서안의 당나라 유적이며 <법문사의 비밀>,<부처의 진신사리>의 주요 무대인 法文寺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如      村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