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전에 본가에 들렸었습니다. 아들 둘과 딸 하나가 각각의 보금자리를 꾸리고 떠난 후 덩그러니 큰 아파트에 두 분만 사시고 계십니다.  제가 장남인지라 같이 사시자고 해도 오히려 두분께서 불편하시다면서 이렇게 따로 사시는데 그나마 제 직장이 인근이라 가끔 들러서 저녁도 먹고가고는 한답니다. "저녁에 들릴테니 밥을 주시겠어요?" 물론 큰아들이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끼니를 챙겨먹기도 힘드는데, 식사시간에 가는데 밥을 안차려 주시겠습니까마는 제가 이렇게 사전에 전화를 드리면 무척 반가와 하시며 오라고 하신답니다.

2. 아버님이 중간 크기의 여행용 가방을 만지작거리고 계셨습니다. 사연인즉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시는데 다른 집에서 버린다고 하는 가방이 있길래 달라고 하셔서 가져오신 것이랍니다. 제법 유명상표의 가방이고 새것의 티를 아직 벗지 않았는데 넣었다 뺐다 하는 손잡이가 고정이 되지 않아서 버린다는 것이었답니다. 제가 달려들어 고장 원인을 살펴보니 그 손잡이에 톱니같은 걸쇠가 있는데 걸쇠를 잡아주는 고정핀의 나사가 풀려서 중간에 걸리지 않고 맥없이 쑤욱~ 빠지는 아주 고장같지도 않은 고장이었습니다.  나사 몇개를 꽉 조여주자 여행용 가방은 왜 나를 천덕꾸러기 취급을 했냐는듯 아주 멋진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멀쩡한 물건이 버려질뻔 했던 것이지요.

3. 어렸을 때... 지금은 시계가 많아서 차기 싫다고 하지만 중학생이 되어서도 시계하나 손목에 차기도 힘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 커다란 초침이 째각째각 큰소리를 낼것처럼 돌아가던 시계가 바로 "딸라시계"였습니다. 그 아이는 의정부에서 서울 우리 학교로 전학을 온 아이였는데 그 시계를 미군의 쓰레기통속에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때 벌써 미군은 분리수거를 하였는지 음식물 스레기와는 별도로 일반 쓰레기를 버렸는데 그 쓰레기통을 뒤지면 제법 쓸만한 신기한 것들을 많이 줏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고장이 난것이라고 해봐야 약간의 손길만 거치면 다시 새 물건처럼 쓸 수 있는것이 수두룩 하였다는 것입니다. "요요"라고 실 끝에 우주선 같이 납작한 실패가 달린것을 저는 그 때 처음보았습니다. 하여간 의정부에서 전학왔다고 "촌놈"이라는 놀림의 대상이었던 그 아이는 그런 요상한 물건으로 반 친구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지요.

4. 부모님이 계시는 아파트는 새로 건축된 아파트라 처음 입주시에는 이삿짐인지 버리는 물건인지 구분이 모호한 물건들이 아파트 마당에 그득했었습니다. 며칠씩 그 자리를 지키는 장롱이나 티 테이블, 의자, 침대, 심지어는 30인치가 넘는 티비등 전자제품 등등은 모두 버리는 물건이었습니다. 새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해서 아마도 집안에서 쓰던 물건의 일부를 새것으로 장만하고는 그냥 버리는 모양이었습니다. 저도 번듯한 책상과 의자...그리고 커다란 책장을 줏어다가 지금 쓰고 있지만 이런걸 버리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라는 궁금함이 들 정도로 버려지는 물건들이 모두 새것과 진배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비단 부모님이 계시는 아파트뿐만이 아니라 제가 사는 아파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끔 쇼파나 찻장, 침대, 장식장등이 멀쩡한 모습으로 버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 멀쩡했던것이 주인이 폐기를 결정하여 쓰레기더미로 분류가 되면서부터는 운반중에 망가지고 떨어져 나가는 경우도 생기는 모양입니다만 크게 망가지는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5. 우리가 이런 물질적 풍요속에 멀쩡한것을 버리게 된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얼마전 북한의 개성공단 착공식에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개성공단에 쌓은 축대의 흙포대중에 "이 쌀은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 정부에..."라고 적힌 쌀푸대를 이용한것을 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때는 유엔기와 태극기의 끝에 손이 달려 악수를 하는 그림위에  "이 쌀은 한국 국민을 위하여 유엔에서 무상으로 원조하는 쌀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진 쌀푸대가 주변에 흔하게 널려 있었는데, 그렇게 원조를 받아 살아왔던 시절이 불과 3~40년 전입니다만 이제는 쓸만한것들을 쓰레기로 버리는 풍요의 시대에 살게된 모양입니다. 물론 집을 늘려서 이사를 하게되면 집안의 구조와 맞지 않는 집기류가 많이 나오는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고 또 쓰던것을 남에게 주려해도 받는 사람이 기분 나빠할것 같아 꺼리고,... 그래서 그냥 내다버리면 재활용센터 같은 곳에서 수거하여 필요한 사람들이 싼 가격으로 사서 쓰게 될것이라는  생각으로 멀쩡한 물건을 내다 버린다지만 주변을 한번 둘러보면 의외로 그런 물품을 필요로 하는곳이 많다는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노인정이나 양로원은 물론이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될 수 있다면 그들이 어렵게 벌은 돈으로구했을뻔한 가전제품등은 요긴하게 사용하게 될것이고 또 그냥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리는 것보다 보람되게 사용하였다는 나름대로의 긍지와 뿌듯함도 갖게 될것입니다.

6.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어렵게 살았던 옛날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쇠고기 한점 먹으려면 제삿날이나 기다려야 겨우 가능했던 예전의 우리네 살림살이는 특별히 잘 사는 사람도 없었기에 돈이 있다고 해 보았자 살아가는 수준이나 상차림은 도토리 키재기였고 정육점에는 비싸서 잘 팔리지도 않는 쇠고기는 아예 가져다 두지도 않고 기껏 잘 먹어야 돼지고기였었지요. 한편으로는 먹고 싶거나 사고 싶은 것들을 돈만 가지고 가면 철커덕~ 철커덕~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에 내심 뿌듯하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이 외국의 경제학자가 보는 거품 경제나 아닌지...1인당 GNP가 겨우 1만불을 조금 넘겼는데 소비 행태는 3만불 이상의 GNP를 가진 국민의 소비패턴과 같다면 결국은 황새가 뱁새 쫒아가는 격이나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아직 쓸만한것은 그냥 쓰는 습관을 가져야 할것 같습니다. 정 쓰기 싫다면 "아. 나. 바. 다"운동에 동참하구요...     한가지 덧붙인다면 웬만하면 대물림해서 쓰도록 하세요...  나중에 혹시 후손들이 골동품으로 비싸게 활용하게될지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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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4-01-19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을 글을 읽으니 저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먼저 떠 오르네요. 저의 부모님도 아들, 딸 분가후 덜렁 두분만 계시는데......
물자절약에 관해서는 환경보호에 관한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개념을 갖고자 했지만 확실한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했습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의 원리에 나오는 상보성이 환경보호와 경제발전에 해당한다는 느낌만 갖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20대 초반이나 후반의 저 보다 비교적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 70년대 초반의 이야기를 하면, 도무지 이해를 하는 건지, 동감을 하는 건지......
제 스스로는 안빈락도 자체도 재미있는 삶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은 쉽지 않더라구요. '녹색시민 구보의 하루'에 나온 문구 '자발적 가난'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자연은 선조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고 후손에게 빌려온 것이다.'라고 말하면 조금 설득이 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