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실명위기에 놓인 병사가 오늘 휴가를 나왔습니다. 그동안 혈액검사가 완료되었고, 결과는 유전성으로 전혀 구제의 방법이 없는 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한 병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병사의 어머니와 형도 검사를 했는데 형도 같은 병으로 밝혀졌으며, 안경을 끼고 있는 형의 시력이 아직까지 실명위기를 맞지 않은것은 의학적으로는 매우 이상한 일이라는 판명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이 병사의 어머니도 찾아오셨기에 만나도 보았고 또 분당 서울대병원의 시신경 전문의와도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았지만, 현대의 의학으로는 실명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2. 이 병사의 집이 저와 같은 지역인 대전의 용전동이라고 해서 오늘 집에 내려오면서 제가 태우고 왔습니다. 입원환자에게 무슨 휴가냐고 하겠지만 실은 지난 목요일 전공사상심의가 끝나고 이제는 전역만을 남겨둔 상태이기에 전역 대기를 위한 휴가인 것입니다. 그의 시력은 지난번보다 더욱 나빠졌습니다. 의사의 처방은 술과 담배는 전혀 해서는 안되며, 딱딱한 과일 즉, 호도나 잣등 기름기가 많은 과일은 먹어서는 안된다는 처방과 함께 조금이라도 시력 상실을 지연시키기 위한 약을 조제해 주었는데 그 약은 심장의 피를 조금 더 활발하게 온몸으로 공급하는 약이라고 합니다.
3. 그의 나이 이제 만 24세... 그가 앞으로 우리 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을 누린다고 하면 50년 이상을 앞을 못보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같이 차를 타고오면서 제가 그 병사에게 해 줄 말이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마음 굳게 먹고 잘 적응하도록 해라" 와 " 그 병은 증세가 악화되다가 멈출수도 있다니까...한번 기대를 가져보자" 그리고 신앙을 갖도록 권유하는 말이 전부 다 였습니다.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는데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고 합니다. 정말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였고 그와 같이 타고 내려오는 두 시간은 정말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4. 사무실에서는 그 병사돕기의 일환으로 모금도 하였지만 돈이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작년 4월에 군에 입대하여 아직도 신병의 때를 벗지못한 그는 정말로 순수한 동심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아직까지도 그는 자신의 앞날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하는듯 하였지만 실은 밖으로 들어내지만 않을 따름이라는것을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3주 정도가 지나면 그는 의병 전역을 하게 됩니다. 최종적으로는 국가보훈처의 보훈대상 심의를 거쳐야 보훈 등급이 결정 되겠지만, 유전적이라는 검사결과는 그의 보훈대상자 지정에 커다란 장애로 작용을 할것은 뻔해보입니다. 담당 군의관에게 유리한 소견을 적어주기를 당부도 하였지만 거짓을 말할수 없는 의사의 입장도 이해를 해야만 했습니다.
5. 이제 그는 제 곁을 떠나게 됩니다. 군인이 아닌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멀쩡했던 두 눈으로 입대를 했다가 안보이는 상태로 전역을 하고 제 곁을 떠납니다. 그의 병명을 알고나서부터는 단 하루도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그가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다고 제 뇌리속에서 사라지지는 않을겁니다. 다만 깊고 넓은 광속에 오랜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 깊숙히 놓여있어 자주 사용하는 물건처럼 늘 주변에 있는것은 아니라서 오랜 시간이 흘러도 가끔은 기억나는 일이겠지만 영원히 잊어버릴수 없는 이유는 결국은 제 마음속에 늘 담겨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망각이라는 편리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도 마음에 남는 상처는 그 꿰맨 자국이 영원히 남듯 그 상처도 영원히 남게될것 같습니다. 단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지금의 순수함과 순박함을 실명 상태에서라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고이고이 간직해 주기를 빌뿐입니다. 그 녀석의 집앞에서 내려줄 때 제게 경례하는 그 녀석의 맑은 눈동자는 제 마음속에 영원히 담겨 버리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