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가 이곳에 있다보니 운동 선수가 올림픽에 한번 출전하는 일이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금년은 올림픽 100주년을 기념하여 처음 올림픽이 열렸던 아테네에서 하계 올림픽이 개최되는데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운동 선수라고 아무나 올림픽에 참가를 하는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올림픽 축구팀이 중국을 2:0으로 꺾고 출전 자격을 획득한 것 처럼 매 종목마다 출전권을 따기 위한 시합에 참가하여 출전 자격을 획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올림픽 출전권 획득은 세계대회 10위권 이내, 또는 각 대륙 선수권 대회 4위 이내, 또는 단일 종목 세계대회 3위 이내 입상 등등 종목별로 각 대륙에 주어진 쿼터가 있어 이것을 따기 위해 종목별로 노력을 하는 것이며, 보통 올림픽 이전까지 서너개의 대회에 참가를 하면서 출전권 획득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그중에는 참가한 선수가 상위 입상하여 바로 그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을 하는 <권투>나 <근대 5종> 같은 종목이 있는가 하면 <유도>, <레슬링>,<태권도> 등등 출전권을 획득한 선수와 관계없이 국내에서 선발전을 통하여 출전 선수를 결정하는 종목이 있습니다.

3. 예를 들어 <유도>의 경우에는 남녀 7체급씩 모두 14개 체급이 있으나 우리 나라 선수가 전 종목에 출전을 할 수 있는것이 아니라 출전권을 획득한 체급만 출전이 가능하며 이 체급에서 출전 선수는 선발전을 통하여 출전을 하게 되는 것이며 실제 출전권을 따온 선수라도 올림픽 선발전에서 선발되지 못하면 그의 올림픽 출전은 좌절되는 것입니다.우리 나라의 체육 정책은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과 같은 생활체육에 기반을 둔 선수 육성이 아니라 특별한 선수를 국가대표라는 이름으로 선발하여 태릉선수촌에서 훈련을 하며 육성하는 엘리트 스포츠 위주입니다. 생활체육은 자기가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고 엘리트 체육은 말 그대로 오로지 메달을 따서 국위를 선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는 것으로 주로 후진국형 행태의 스포츠 정책인 것입니다.

4. 우리 나라의 복싱은 그나마 격기 종목으로 매 올림픽때마다 톡톡히 효도를 했던 종목입니다. 그래서 복싱 연맹에서는 각종 세계대회에 우리 선수를 출전시켜 출전권 획득을 하고자 무척 노력을 하고 있으며, 금년도에 들어서도 벌써 4차례의 해외 대회에 파견하여 격전을 치렀음에도 제대로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파키스탄에서 국제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이 대회는 각 체급별로 상위 2명만이 올림픽에 출전을 할 수 있는 대회로 각국에서는 올림픽이 열리기전의 마지막 출전권 획득 기회이기에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모두 참가를 하여 5월 16일 까지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5. 여기에 상무소속의 <홍무원>선수가 플라이급에 출전을 하고 있는데 현재 4강 까지 올라가서 일본 선수와 결승행을 다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일본 선수만 꺾게 되면 결승전에 올라 그토록 바라던 올림픽에 출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올림픽 중계를 지켜보며 단순히 우리 나라 선수가 잘 싸우기만을 바랐었는데, 그 중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엄청난 관문을 어렵게 뚫어야만 한다는 것을 이곳에 근무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입니다.

6. 더욱 중요한 문제가 우리 나라 스포츠계에 잔존하고 있는것이 문제입니다.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루면서 선발 인원을 각 단체별로 안배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체육 경기자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XX대학교에서 대표선수가 한 명도 없으면 안된다는 식으로 선발전에서 안배를 하여 선발을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행태는 국가의 명예를 고양시키는데 우선 목적이 있는것이 아니라 그 학교의 위신을 먼저 고려하여 대표선수를 선발하는 것입니다.

7. <홍무원> 선수도 최종 선발전에서 상대선수에게 무차별 주먹을 휘둘러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결과는 잔뜩 얻어맞은 모 대학의 K선수의 손이 올라갔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그 결과에 대해 불만스럽게 생각하여 이의도 제기를 했습니다만, 이런 이의는 전혀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자칫 하다가는 자신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 행위로 받아들여져 복싱감독이 자격 정지등의 징계를 받기 쉽상입니다. 억울함으로 흥분한 복싱감독을 달래고 그 울분을 그날의 저녁상에서 토로했었는데 이때 선발된 K 선수는 3차례의 국제대회에서 번번히 초반 탈락이라는 참담한 결과만 가져왔고 출전권 획득이 절실한 복싱연맹의 속을 태우게 만들었습니다.  <홍무원>선수는 풍부한 국제대회 경험이 있으며 국제군인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했던 유망주로 제가 판단하기에는 올림픽에 출전하면 무난히 동메달 이상은 획득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선수입니다.

8. 마지막 대회인 파키스탄 대회를 불과 10일 앞두고 다급해진 복싱연맹에서 한가지 제안을 해 왔습니다. 아직도 연맹에서는 K 선수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고 또 말씀드린 대로 특정 학교의 선수를 어떻게 해서든지 올림픽에 내 보내야 하기에 상무의 <홍무원>선수와의 재대결을 통하여 파키스탄 대회에 참가하여 출전권을 획득할 선수를 뽑자는 것이었습니다. 상무로 통보가 온 시기는 체중 조절에 상당히 어려움을 껶을 짧은 시간이었고, <홍무원> 선수는 매일 땀복을 입고 체중 조절을 위해 달리기를 하였습니다. 플라이급은 몸집이 작은 선수라서 살도 별로 없는 상태라 체중을 빼는데는 상당히 어렵지만 시합 당일 아침까지는 +200g 정도까지 몸무게를 맞출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라면 싸우나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조절이 가능한 체중입니다.

9. 최종 결승전은 태릉선수촌에서 벌어졌습니다. 그곳에서 훈련중이던 K선수는 미리 경기일정을 알고 있었기에 사전 체중 조절을 하여서 경기에 특별한 영향이 없었지만, <홍무원> 선수는 체중을 통과하고(주로 아침 8시 이전에 계체량이 이루어집니다) 영양식으로 마련한 죽을 먹고는 경기 시간인 오후 2시에 맞추어 12시 까지 잠을 자게 합니다. 출전하는 날 아침..  컨디션을 물어보니 "좋습니다"라고 답하는 <홍무원>선수는 그냥 슬쩍 밀었음에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비틀거렸습니다. 한마디로 제가 당사자가 아님에도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그런 모습이라 무척 측은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오후에 게임에 임했는데 저는 직접 관전을 못했지만 거의 두 배의 포인트로 통쾌하게 이겼습니다.

10. <홍무원> 선수는 K선수가 대결하여 패했던 선수들 모두 이겨본 경험이 있었고, 이번에 파키스탄에 출전해서도 K선수를 꺾었던 다른 나라 선수들을 많은 점수차로 누르고 준결승에 진출한 것입니다. 준결승 상대인 일본 선수를 얕잡아 보는것은 아니지만 일본 선수는 <홍무원>선수의 적수가 되지 못하기에 무난히 결승전에 오를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결승전에 올라 똑같이 올림픽에 출전할 자격을 획득한 상대방과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여기서는 꼭 이길 필요도 없지만 나중에 다시 격돌을 할것에 대비해서 사전 탐색을 하는 기회로 삼기를 바랄뿐입니다.

11. <홍무원>선수가 통쾌하게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게 되면 그 쾌거는 어쩌면 복싱연맹에 대한 통쾌한 반격이 될수도 있습니다. 국가보다는 체면을 중시하는 이 풍토가 다름아닌 우리 나라의 경기 단체의 실정입니다. 제가 실명을 거론을 했습니다만, 이는 비단 복싱연맹뿐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경기 단체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이런 행위야 말로 정말 반국가적 행위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홍무원> 선수가 무난히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고 올림픽에 참가하여 메달을 따서 엉터리 선발전을 치룬 연맹에 무언의 항의와 더불어 자성을 하는 계기로 삼게 될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도 열심히 응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올림픽이나 국제대회에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부담속에서 경기를 치루며 선발이 됩니다. 양궁같은 종목은 우리 나라의 선발전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것보다 더 힘들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일입니다만 이러한 관문을 뚫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우리 선수들에게 정말로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신다면 선수들은 사기백배하여 나라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따뜻한 격려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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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side 2004-05-12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그런 게 또 있군요. 어쨌든 홍 선수가 출전권을 땄다니 잘 됐네요.
화이팅 하여 좋은 소식 전해주길, 기다려봅니다.

비로그인 2004-05-12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쁜소식을 전합니다. 조금전 파키스탄에서 승전보가 날아 왔습니다. 일본 선수를 압도적인 포인트차로 누르고 홍무원 선수가 결승에 진출함과 동시에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을 하였다고 연락왔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마음속으로 성원을 보내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하며 기왕에 결승에 오른것이니 국제대회에서도 최고의 성적을 내기를 기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전화로 그간 홍무원 선수가 겪었던 심적 불안 요소를 한방에 날려 보내고 보란듯이 개선하라고 격려를 했고 홍무원 선수는 군인 특유의 정신으로 "녯!! 알겠습니다. 우승하고 돌아 가겠습니다"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좋은 소식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립간 2004-05-12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길 기원합니다.

비로그인 2004-05-12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홍무원 선수가 우승을 하였습니다. 상대방은 필리핀 선수였는데 많은 포인트 차이로 압도하여 우승을 했다고 알려 왔습니다. 결승은 출전권이 확보된 선수들의 싸움이라 박진감은 다소 떨어졌었겠지만 나중에 올림픽에서 다시 싸우게 될지도 모르는 선수이기에 탐색전과 더불어 최선을 다했던것 같습니다. 그냥 대충 하면 어떻냐고 하실지 모르겠으나 경기, 특히 복싱, 유도, 태권도 등 격투기 종목은 한번 지면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될 때 역시 자신이 없게 되고 승부에서도 패한다고 하는데 이참에 우승을 하고 돌아왔으니 올림픽에서 재 격돌이 되더라도 승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홍무원 선수에게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할 때 까지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라면서 우리 모두 "홍무원 화이팅!!!!!" 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1. 지난번 말씀드린대로 제 사무실의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전번 보다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직책이라 눈이 피곤할즈음이면 창가로 가서 바깥 풍경을 내다봅니다. 보이는 풍경이야 늘 변함없는 서울외곽 고속도로의 씽씽거리며 달리는 차들과 송파 I/C로 내려오는 차들이지만 그 풍경도 기후에 따라 여러가지 다양한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구름이 낮게 깔린 날이면 달리는 차들도 왠지 무겁게만 느껴지며 비오는 날에는 차들 조차도 추적추적 거리를 밟고 달리는것만 같습니다. 그렇지만 맑고 화창한 날씨에는 도로에서도 빛이 나며 모든 차들도 살아있는듯 움직이고 있습니다.

2. 제가 사무실을 옮긴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습니다. 말 그대로 제가 <상무의 조계사>라고 이름 붙일 정도로 담장 속의 바쁘게 돌아가는 부대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랍니다. 지금 상무가 위치한 이곳은 예전에 이름만 들어도 군인들이 설설 떨던 "남한산성"이라 불리었던 육군 교도소 자리입니다. 혹여 제가 지금 있는 곳이 중죄를 지은 병사들이 갇혀있던 독방 자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로 조용한 곳이랍니다. 사람들도 특별히 용무가 있어서 찾아 오시는 분이 아니라면 제가 사무실 사람들을 찾지 않는 한 사무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연구실에 콕~ 쳐박혀 있는 실정이니 말입니다.

3.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지난번 처럼 계분 냄새가 심하게 나지는 않아 걱정은 괜히 했던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조용한 곳의 책상에 앉아 있다보니 무심결에 흘려보냈던 소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후로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자연히 고개를 돌리는 버릇 마져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소리란 다름이 아니라 구급차의 싸이렌 소리였습니다. 워낙 도로에 차들이 많이 다니는지라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도 가끔 들리고 또 자주는 아니지만 급브레이크 소리 이후에 쿵~ 하는 추돌이나 충돌음이 들리기도 하며 곧이어 앵앵거리는 구급차와 구난차의 비상경광등 소리를 듣게 됩니다.

4. 오늘은 정말 출근부터 엉뚱한 기록을 측정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구급차 소리가 하루 근무하는 동안 과연 몇 차례나 나는가를 알아보고자 한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한심한 작태일지도 모르지만 그리 신경을 쓴다거나 힘이 드는일이 아니기에 사이렌 소리가 날때마다 바를 정(正)자를 만들어 가기로 한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사고가 발생하는지도 궁금해서 말입니다.

5. 점심 시간에 30분을 빼고는 밖에서 소리가 날 때 마다 바를 正을 그려 나갔습니다. 어떤 때는 5분도 안지난 상태에서 삐양~삐양~거리고 또 어느 경우는 한꺼번에 여러 대의 구급, 구난차가 한꺼번에 삥삥~거리며 달려가고, 또 어느 경우에는 2시간도 넘었는데도 삐앙~거리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하고....  그래도 저는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2분 이내에 나는 소리는 모두 한 건으로 취급을 하며 작대기를 긋듯 무심하게 바를 正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어 퇴근을 했는데 퇴근을 하며 작대기를 보니 9개 하고도 나머지 하나는 완전하게 바를 正자를 그리지 못한 작대기 3개의 모음....정확히 48번의 사이렌 소리를 들었던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6. 서울 도심의 큰 교차로에는 '어제의 교통사고 ㅇ 건, 중상 ㅇ 명, 사망 ㅇ 명' 이라는 통계치를 알리는 게시판이 있습니다. 제가 들었던 사이렌 소리는 구난차뿐만 아니라 중환자를 이송하는 구급차량, 그리고 소방차나 119 구급차 또는 교통 사고로 인한 사상자를 싣기 위한 차량,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경찰차, 도난 방지를 위한 무인 경보기의 경보를 듣고 급하게 달려가는 경비업체 차량 등등 무척 다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그것도 근무 시간중인 대낮에 48번의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무척 많은 사고, 사건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기록한 시간은 그나마 대낮이라 사고의 위험이 야간보다는 훨씬 낮으리라고 생각되며 한 밤중에는 낮 시간보다 훨씬 많은 차량의 사이렌 소리가 삐잉삐잉~, 왱왱~, 뾰삐뾰삐~ 등등의 소리를 내며 달려가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7. 48번의 소리가 모두 사고와 관련이 된 소리라고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이 수치는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 수치였기에 결과를 대하며 많이 놀랐습니다. 그냥 재미로..단순하게 생각했던 처음의 의도는 사람들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발빠른 움직임속에서 빚어지는 차량사고의 수치로 계산되기에 그만큼 살려고 노력하던 사람들에게 일어난 불행의 수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물론 두 번 다시 이런 숫자놀음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퇴근을 위해 사무실을 나서며 힐끗 처다본 도로에서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저마다 갈길 바쁜 발걸음을 기계의 힘을 빌어 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도로를 바라보는 제 기분이나 느낌에 따라 도로의 느낌도 변하는것 같습니다. 차라리 365일 늘 도로를 보더라도 항상 기분 좋은 나들이를 출발하는 차량의 모습처럼 밝은 느낌이 가슴 가득한 질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가라앉지 않는 밝은 마음으로 도로를 바라보는 혜안이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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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5-12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직책이 맘에 드시는지요?
저도 가끔은 직장이나 하는 일을 확 바꾸어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지만, 소망과는 달리 하루라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 갑갑합니다.
들려오는 구급차 소리 중 상당부분은 사고가 아닌 환자의 이송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희망사항?)
옛날에 응급실 당직 설 때 생각나네요. 구급차소리가 가까와오면 긴장했다가, 그 소리가 병원 앞을 지나쳐서 작아지면 한숨 놓곤 했던... ^^

비로그인 2004-05-12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새로운 직책을 맡으면서 느끼는 것이 바로 저의 이중성이랍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한가지는 무척 빨빨거리며 활동적인 성격이고 다른 하나는 조용히 앉아 책 속에 몰두하는 것인데 지금의 직책은 제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직책이라 너무도 좋습니다. 그동안 읽지 못해 쌓여있는 책들도 한권 한권 읽어가고 있습니다. 제 사무실 사람들은 모두가 연구원들인데 원래 연구라는것이 콩볶듯 금방 만들어 내는것이 아니고 다소 고무줄 같이 질찔 끌어서는 안되지만 여유가 있는 일이기에 조금은 앞만보고 달려온 제 주변을 돌아볼 기회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은 추적거리는 바퀴소리를 내고 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한번의 사이렌 소리도 듣지를 못했습니다. 어제 제가 글을 올린것을 알기라도 하는듯(아마 제 창문 주변을 지나가면서 사이렌을 끄는 모양입니다) 조용하군요. 그런데 창밖을 보며 느끼는 기분은 오히려 맑은 날 보다는 지금처럼 비가 내리는 날의 풍경이 훨씬 운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을산님....모든것을 팽겨치고 한번 일탈을 꿈꿔보세요......용기를 가지시고요...그러면 적어도 한번쯤일지는 모르지만 세상이 달리 보이실 것입니다 ^^~
 

1. 어제는 모임이 조금 늦은 시간에 끝이 났습니다. 오랜동안 모임을 이끌어 오시던 회장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시기에 환송연을 겸하다보니 석별의 아쉬움이 제법 길었던것 같습니다. 거의 자정이 다 되어 끝이 났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창밖으로는 밤공기가 싱그럽기까지 했습니다. 서울의 교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혼잡하고 저녁 7시 30분에 시작하는 모임 장소에 가려고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출발을 했지만 거의 2시간이나 길바닥에서 시간을 보내고는 도착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그나마 자정 무렵에는 차들도 제각기 잘 곳으로 들어가서인지 싱싱 달릴 수 있었습니다.

2. 예술의 전당 앞쪽에서 신호 대기중 언뜻 플랭카드가 눈에 들어오길래 읽어보았습니다. "내일은 어버이날...부모님께 전화를 겁시다" 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그러고 보니 내일이 어버이 날이었습니다. 어버이날은 카네이션이라도 달아드리려고 마음먹었었는데 잠시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양재동을 들리기로 하였습니다. 청계산 입구에 즐비한 꽃집이 생각나서였지요

3. 자정이 넘은 시간임에도 몇몇 꽃집은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어버이날이라서인지 호텔 등지에서 주문받은 카네이션 꽃다발을 만들고 있었는데 제가 카네이션을 사겠다고 했는데도 팔 물건이 없다고 합니다. 주문 받은 꽃다발을 만들 수량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불이 켜져있는 이곳 저곳의 화원을 들려도 모두가 같은 대답이었기에 마지막 집에 들어가서는 통사정을 해서 코싸지 2개를 겨우 구할 수 있었습니다.

4. 본가가 제가 사는곳과는 3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근무를 하면서 본가에서 다니고자 했지만 부모님께서는 두분이 일흔을 넘긴 상태에서 아들 수발을 할 수 있느냐면서 제게 원룸을 추천해서 그 말씀에 동의를 하고 원룸에서 생활을 하면서 처음에는 일주일에 적어도 3번은 본가에 들려야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뭐가 그리 바쁜지 1주일에 한번 찾아뵙기도 힘이 들더군요. 사실 아침 출근을 위해 아침밥을 지어줘야 하고 또 밤에 늦게라도 다니게 되면 걱정하시는게 부모님의 심정인지라 저도 부모님의 뜻에 따르기로 한것이지만 지금도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수시로 전화로 확인을 하시는 편입니다.

5. 오늘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서 본가로 갔습니다. 노친네들이시지만 이른 새벽이라서인지 두 분께서는 아직 잠자리에 계셨습니다. 주방에서 두 분이 깨실라 살그머니 쌀을 씻어 밥을 앉히고 미역을 넣어 국을 끓였습니다. 나머지 반찬이야 있는 반찬을 그대로 꺼내 식탁위에 상을 차렸습니다. 그 때서야 어머니가 먼저 일어나시고는 깜짝 놀라시길래 카네이션 코싸지를 가슴에 달아들이며 "감사합니다...그리고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 녀석아 속이나 썪이지 말아라.." 하시면서 그래도 흐믓해 하셨습니다. 출근시간이 다가와 저는 식사만 차려 드리고는 바로 본가를 나왔습니다.

6.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은 제게 더 없이 커다란 의지처이자 장애물이었습니다. 항상 제 눈에는 거대한 산 처럼 여겨졌고 그 거대한 산은 영원히 그렇게 존재할 줄 알았었습니다. 몇 년전부터 가끔 식사를 하면서 부모님의 옆 얼굴이나 마주 보는 얼굴을 대하면서 두 분에게서 이제는 세월의 골이 상당히 깊게 패여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몸의 살도 많이 빠지시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쪼그라드는 얼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길어야 15년이 이 두 분의 수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큰 아들로서 두 분께 너무 많은 걱정을 끼쳐 드렸음이 정말로 죄송함을 느끼게 만들더군요.

7. 한 5~6년전만 하더라도 TV뉴스나 언론 보도를 보며 아버님과 의견이 다르면 기를 쓰고 아버님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전형적인 보수적 사고를 가지신 부모님과 조금은 개혁적 사고를 가진 아들이 사사건건 부닥치는 일은 흔한 일로 그럴때마다 아버님은 저를 나무라고는 하셨지만 고집 쎈 아들녀석은 한번도 아버님에게 지려고 하지 않았었습니다. 제가 두 분이 이제는 늙었음을 가슴속에 받아들이고 나서는 아무리 아버님이 소위 <말 같지 않은 말씀>을 하시더라도 모두 수용을 하고 있습니다. 설령 제가 속이 뒤집힐 정도로 틀린 말씀을 하시더라도 이제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있답니다. 제가 철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부모님을 대하다보니 오히려 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말씀을 안하고 계실지는 몰라도 이제 두 분께서는 저를 든든한 산으로 여기고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두 분이 정정하게 살아계심 조차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 제가 누리는 큰 행복임이 틀림 없고 두 분이 큰 산에서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 힘을 예전 처럼 발휘하시지는 않더라도 제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렇게 큰 산으로 자리하고 계실 겁니다.

 단지 어버이날이고 제가 밥 한끼를 차려드려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어머니를 뵙고 출근을 하니 그렇게 마음이 가볍고 기쁠수가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다는것이 그나마 효도가 아닐까를 생각하면서 이제 조금 더 부모님을 많이가슴에 담아 둘 공간을 만드는데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돌아가시고 나서는 두 번 다시 뵙지 못할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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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4-06-30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분이군요 ^^
 

1. 그란 다름이 아니라 복싱을 하던 '심성영'이라는 친구를 말함입니다. 통합병원에서 전역 결정이 내려지고 육군 본부에서 최종적으로 전역 결정이 내려져서 그는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와 함께 전역 인사(통합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 소속이 변경이 되어 전역 신고는 통합병원에서 하게 됩니다)차 부대를 방문 하였고 우리는 그 동안 그를 위해 모금해 두었던 500여만원을 전달하였습니다.

2. 그는 무척 살이 쪄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복싱은 계체량 종목으로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에 운동 중에는 미처 살이 찔 틈이 없습니다만 잠시라도 운동을 멈추면 급격하게 살이 오르는데 이 친구도 시력악화로 운동을 하지 못하다보니 눈에 띄일 정도로 몸이 불어 있었습니다. 시력은 급격하게 약화되어 한쪽눈은 0.01로 나오고(0.01이라는 시력이 있다는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좀 나았던 눈은 0,1이 채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이 친구가 물음에 답변하는것은 시력이 보여서가 아니라 목소리로 판단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3. 말씀드렸었지만, 이 친구는 '눈의 유전적 요인 + 복싱선수로서 시합및 훈련간 머리의 충격'이 시력 약화의 직접 원인이 된것으로 판명이 났고 최종적으로는 국가보훈처에서 시행하는 중앙보훈심의 위원회의 결정에 의하여 장애등급이 판정이 날것입니다. 물론, 복무중 장애로 인한 전역이기에 원호대상이 되고 얼마간의 연금이 주어지게 될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만 23세의 그가 앞으로 두 눈을 버리고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하면 천만금이 나온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500여만원은 모금액으로는 체육부대에서 가장 많이 모아진 금액이라고 하는데 이 금액은 단지 그의 일생중에 찰나에 일순간 동안의 평안만 가져다 주는 미약한 정도일 뿐일것입니다. 식당에서 어렵게 일하시는 그의 홀어머니의 가슴에는 얼마나 커다란 상처가 남겠습니까?

4. 그는 그래도 웃으면서 저희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를 대하며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은 그 자리에 참석한 부대 관계자의 공통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뭐라 제대로 된 위로의 말을 찾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던 자리였던것 같았습니다. 저 자신도 지금은 그로 인해 마음이 무척 아프지만 언젠가는 그도 제 마음을 떠나게 될것입니다. 아니...그를 떠나보내게 될 제 마음의 간사함이 더욱 두려운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자신에게 닥친 불행이 다른 어던 불행보다도 크게 여기는게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어쩌면 두 눈의 시력이 감퇴되는 것은 그의 불행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일지라도 그와 함께 했고, 시합후 땀 범벅이 된 그를 껴안아 주었던 저이기에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가 웃으면서 제 곁을 떠나듯이 늘 그 웃음으로 세상을 이겨나갔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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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잠시 쉴 시간을 갖는 동안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해 두었던 슬라이드 필름을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슬라이드는 현상을 하고나서 마운트에 넣고, 매 장마다 84매로 구성된 이름표를 출력하여 어디에 있는 무엇을 찍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접착식으로 된 스티커를 붙여야 합니다. 책상이다 책꽂이다, 또는 책상 위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필름을 대충 추리니 언뜻 보기에도 2000장은 되는것 같았습니다. 한번 촬영을 나가면 보통 36컷 짜리 필름을 10통을 사용한다고 해도 360컷이 되고 몇 차례 다녀오면 금방 2000컷 이상의 자료가 발생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2. 화일에 들어 있는 필름을 한장씩 잘라서 마운트에 집어 넣는 작업은 필름면에 손가락이 닿지 않도록만 하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랍니다. 단순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조금은 지겹지만 말입니다. 문제는 그 필름이 무엇이라는 것을 마운트에 붙이는 것이랍니다. 한글에서 문서만들기를 택하고 거기서 슬라이드용 문서만들기에 이 필름이 무엇이라는 것을 인쇄를 해서 마운트마다 붙이면 끝나는 것인데 이것도 매번 촬영 대상이 달라 금방 식별이 가능하다면 그나마 빨리 마칠 수 있는데, 비슷한 대상을 찍었던 필름이라면 정말 분류에 애를 먹게 됩니다.

3. 예를 들어 건축물이나 석조물 등은 금방 구분이 가능하지만 내부의 단청을 찍었다던가 또는 탑의 세부를 촬영한 필름은 뒤섞이면 찾는데 무척 애를 먹게 됩니다. 어느 경우에는 찾다 찾다 어디 것인지를 몰라 미분류인 상태로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 하면 될것 아니냐고 하시겠지만 필름을 수십통 현상하다보면 그게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지요. 이렇게 분류를 마치고 스티커가 첨부된 필름은 필름 보관용 박스에 넣어져 보관을 하게 되는데 수 천장의 필름을 널부려뜨리고는 하나 하나 정리를 해 나가면 조금씩 방안의 여유 공간도 늘어나게 되지요.

4. 그런데 방금 끝날것만 같던 이 작업도 벌써 열흘이 넘었음에도 마치지 못하고 방과 거실에 깔려 있습니다. 출근과 퇴근시에는 침대에서 몸만 빠져나와 옷을 입고 널부러진 필름이나 필름 보관용 플라스틱 박스를 밟을까봐 조심 조심 발걸음을 옮기게 되고 퇴근 후에는 어디 필름만 정리할 시간이 있나요?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겨우 발을 디딜곳만 골라서 딛고는 또 내일로 미루고 넘어가게 됩니다. 말하자면 책상과 침대...그리고 세면장 입구를 제외하자면 온 바닥에 지뢰가 맏혀 있는것이나 다름없어 발걸음 하나 옮기기도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5. 뭐...위에 분류작업이 쉽지는 않다고 했습니다만 그것은 거의 제 게으름에 의한 산물이라고 해야 할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프로라서 필름으로 밥을 먹고 사는 실정이라면 절대 이렇게 방치하다시피 놔두지는 않겠지만 그것도 아닌지라 시간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들락날락 거리는 제 입장에서도 어서 치워야지...라는 의지만 굴뚝 같답니다. 그나마 하루에 십 수컷이라도 차근 차근 정리를 해 가니 발을 디딜 틈이 조금씩은 넓어지고 있어 다행이 아닌가 합니다만, 또 촬영을 하고 돌아오게 되면 지금 바닥에 널려 있는 필름보다 더 많은 필름이 깔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6. 오늘도 퇴근해서는 발을 높이 들고 지뢰밭을 피해 가야할것 같습니다. 기왕 게으름에 대해 이곳에 글을 올렸으니 조금 속도를 빨리해서라도 마무리를 지어야 할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게으름의 가장 큰 원인은 필름을 들여다 보다가 구분이 되면 바로 스티커 작업을 해서 출력을 하고는 붙여야 하는것을 그 필름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이러니 진도가 늦어지는것 같습니다. 오늘부터는 정말 후다닥~ 해 치워서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짜증날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할 것 같습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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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5-03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내심이 많이 필요한 작업일 것 같네요.

비로그인 2004-05-04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녜..맞는 말씀입니다. 인내심도 중요하고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전문성이 있기에 전업 작가가 해야할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참에 전업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