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번 말씀드린대로 제 사무실의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전번 보다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직책이라 눈이 피곤할즈음이면 창가로 가서 바깥 풍경을 내다봅니다. 보이는 풍경이야 늘 변함없는 서울외곽 고속도로의 씽씽거리며 달리는 차들과 송파 I/C로 내려오는 차들이지만 그 풍경도 기후에 따라 여러가지 다양한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구름이 낮게 깔린 날이면 달리는 차들도 왠지 무겁게만 느껴지며 비오는 날에는 차들 조차도 추적추적 거리를 밟고 달리는것만 같습니다. 그렇지만 맑고 화창한 날씨에는 도로에서도 빛이 나며 모든 차들도 살아있는듯 움직이고 있습니다.

2. 제가 사무실을 옮긴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습니다. 말 그대로 제가 <상무의 조계사>라고 이름 붙일 정도로 담장 속의 바쁘게 돌아가는 부대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랍니다. 지금 상무가 위치한 이곳은 예전에 이름만 들어도 군인들이 설설 떨던 "남한산성"이라 불리었던 육군 교도소 자리입니다. 혹여 제가 지금 있는 곳이 중죄를 지은 병사들이 갇혀있던 독방 자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로 조용한 곳이랍니다. 사람들도 특별히 용무가 있어서 찾아 오시는 분이 아니라면 제가 사무실 사람들을 찾지 않는 한 사무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연구실에 콕~ 쳐박혀 있는 실정이니 말입니다.

3.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지난번 처럼 계분 냄새가 심하게 나지는 않아 걱정은 괜히 했던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조용한 곳의 책상에 앉아 있다보니 무심결에 흘려보냈던 소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후로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자연히 고개를 돌리는 버릇 마져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소리란 다름이 아니라 구급차의 싸이렌 소리였습니다. 워낙 도로에 차들이 많이 다니는지라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도 가끔 들리고 또 자주는 아니지만 급브레이크 소리 이후에 쿵~ 하는 추돌이나 충돌음이 들리기도 하며 곧이어 앵앵거리는 구급차와 구난차의 비상경광등 소리를 듣게 됩니다.

4. 오늘은 정말 출근부터 엉뚱한 기록을 측정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구급차 소리가 하루 근무하는 동안 과연 몇 차례나 나는가를 알아보고자 한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한심한 작태일지도 모르지만 그리 신경을 쓴다거나 힘이 드는일이 아니기에 사이렌 소리가 날때마다 바를 정(正)자를 만들어 가기로 한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사고가 발생하는지도 궁금해서 말입니다.

5. 점심 시간에 30분을 빼고는 밖에서 소리가 날 때 마다 바를 正을 그려 나갔습니다. 어떤 때는 5분도 안지난 상태에서 삐양~삐양~거리고 또 어느 경우는 한꺼번에 여러 대의 구급, 구난차가 한꺼번에 삥삥~거리며 달려가고, 또 어느 경우에는 2시간도 넘었는데도 삐앙~거리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하고....  그래도 저는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2분 이내에 나는 소리는 모두 한 건으로 취급을 하며 작대기를 긋듯 무심하게 바를 正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어 퇴근을 했는데 퇴근을 하며 작대기를 보니 9개 하고도 나머지 하나는 완전하게 바를 正자를 그리지 못한 작대기 3개의 모음....정확히 48번의 사이렌 소리를 들었던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6. 서울 도심의 큰 교차로에는 '어제의 교통사고 ㅇ 건, 중상 ㅇ 명, 사망 ㅇ 명' 이라는 통계치를 알리는 게시판이 있습니다. 제가 들었던 사이렌 소리는 구난차뿐만 아니라 중환자를 이송하는 구급차량, 그리고 소방차나 119 구급차 또는 교통 사고로 인한 사상자를 싣기 위한 차량,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경찰차, 도난 방지를 위한 무인 경보기의 경보를 듣고 급하게 달려가는 경비업체 차량 등등 무척 다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그것도 근무 시간중인 대낮에 48번의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무척 많은 사고, 사건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기록한 시간은 그나마 대낮이라 사고의 위험이 야간보다는 훨씬 낮으리라고 생각되며 한 밤중에는 낮 시간보다 훨씬 많은 차량의 사이렌 소리가 삐잉삐잉~, 왱왱~, 뾰삐뾰삐~ 등등의 소리를 내며 달려가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7. 48번의 소리가 모두 사고와 관련이 된 소리라고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이 수치는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 수치였기에 결과를 대하며 많이 놀랐습니다. 그냥 재미로..단순하게 생각했던 처음의 의도는 사람들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발빠른 움직임속에서 빚어지는 차량사고의 수치로 계산되기에 그만큼 살려고 노력하던 사람들에게 일어난 불행의 수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물론 두 번 다시 이런 숫자놀음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퇴근을 위해 사무실을 나서며 힐끗 처다본 도로에서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저마다 갈길 바쁜 발걸음을 기계의 힘을 빌어 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도로를 바라보는 제 기분이나 느낌에 따라 도로의 느낌도 변하는것 같습니다. 차라리 365일 늘 도로를 보더라도 항상 기분 좋은 나들이를 출발하는 차량의 모습처럼 밝은 느낌이 가슴 가득한 질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가라앉지 않는 밝은 마음으로 도로를 바라보는 혜안이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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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5-12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직책이 맘에 드시는지요?
저도 가끔은 직장이나 하는 일을 확 바꾸어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지만, 소망과는 달리 하루라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 갑갑합니다.
들려오는 구급차 소리 중 상당부분은 사고가 아닌 환자의 이송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희망사항?)
옛날에 응급실 당직 설 때 생각나네요. 구급차소리가 가까와오면 긴장했다가, 그 소리가 병원 앞을 지나쳐서 작아지면 한숨 놓곤 했던... ^^

비로그인 2004-05-12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새로운 직책을 맡으면서 느끼는 것이 바로 저의 이중성이랍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한가지는 무척 빨빨거리며 활동적인 성격이고 다른 하나는 조용히 앉아 책 속에 몰두하는 것인데 지금의 직책은 제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직책이라 너무도 좋습니다. 그동안 읽지 못해 쌓여있는 책들도 한권 한권 읽어가고 있습니다. 제 사무실 사람들은 모두가 연구원들인데 원래 연구라는것이 콩볶듯 금방 만들어 내는것이 아니고 다소 고무줄 같이 질찔 끌어서는 안되지만 여유가 있는 일이기에 조금은 앞만보고 달려온 제 주변을 돌아볼 기회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은 추적거리는 바퀴소리를 내고 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한번의 사이렌 소리도 듣지를 못했습니다. 어제 제가 글을 올린것을 알기라도 하는듯(아마 제 창문 주변을 지나가면서 사이렌을 끄는 모양입니다) 조용하군요. 그런데 창밖을 보며 느끼는 기분은 오히려 맑은 날 보다는 지금처럼 비가 내리는 날의 풍경이 훨씬 운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을산님....모든것을 팽겨치고 한번 일탈을 꿈꿔보세요......용기를 가지시고요...그러면 적어도 한번쯤일지는 모르지만 세상이 달리 보이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