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잠시 쉴 시간을 갖는 동안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해 두었던 슬라이드 필름을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슬라이드는 현상을 하고나서 마운트에 넣고, 매 장마다 84매로 구성된 이름표를 출력하여 어디에 있는 무엇을 찍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접착식으로 된 스티커를 붙여야 합니다. 책상이다 책꽂이다, 또는 책상 위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필름을 대충 추리니 언뜻 보기에도 2000장은 되는것 같았습니다. 한번 촬영을 나가면 보통 36컷 짜리 필름을 10통을 사용한다고 해도 360컷이 되고 몇 차례 다녀오면 금방 2000컷 이상의 자료가 발생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2. 화일에 들어 있는 필름을 한장씩 잘라서 마운트에 집어 넣는 작업은 필름면에 손가락이 닿지 않도록만 하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랍니다. 단순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조금은 지겹지만 말입니다. 문제는 그 필름이 무엇이라는 것을 마운트에 붙이는 것이랍니다. 한글에서 문서만들기를 택하고 거기서 슬라이드용 문서만들기에 이 필름이 무엇이라는 것을 인쇄를 해서 마운트마다 붙이면 끝나는 것인데 이것도 매번 촬영 대상이 달라 금방 식별이 가능하다면 그나마 빨리 마칠 수 있는데, 비슷한 대상을 찍었던 필름이라면 정말 분류에 애를 먹게 됩니다.

3. 예를 들어 건축물이나 석조물 등은 금방 구분이 가능하지만 내부의 단청을 찍었다던가 또는 탑의 세부를 촬영한 필름은 뒤섞이면 찾는데 무척 애를 먹게 됩니다. 어느 경우에는 찾다 찾다 어디 것인지를 몰라 미분류인 상태로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 하면 될것 아니냐고 하시겠지만 필름을 수십통 현상하다보면 그게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지요. 이렇게 분류를 마치고 스티커가 첨부된 필름은 필름 보관용 박스에 넣어져 보관을 하게 되는데 수 천장의 필름을 널부려뜨리고는 하나 하나 정리를 해 나가면 조금씩 방안의 여유 공간도 늘어나게 되지요.

4. 그런데 방금 끝날것만 같던 이 작업도 벌써 열흘이 넘었음에도 마치지 못하고 방과 거실에 깔려 있습니다. 출근과 퇴근시에는 침대에서 몸만 빠져나와 옷을 입고 널부러진 필름이나 필름 보관용 플라스틱 박스를 밟을까봐 조심 조심 발걸음을 옮기게 되고 퇴근 후에는 어디 필름만 정리할 시간이 있나요?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겨우 발을 디딜곳만 골라서 딛고는 또 내일로 미루고 넘어가게 됩니다. 말하자면 책상과 침대...그리고 세면장 입구를 제외하자면 온 바닥에 지뢰가 맏혀 있는것이나 다름없어 발걸음 하나 옮기기도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5. 뭐...위에 분류작업이 쉽지는 않다고 했습니다만 그것은 거의 제 게으름에 의한 산물이라고 해야 할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프로라서 필름으로 밥을 먹고 사는 실정이라면 절대 이렇게 방치하다시피 놔두지는 않겠지만 그것도 아닌지라 시간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들락날락 거리는 제 입장에서도 어서 치워야지...라는 의지만 굴뚝 같답니다. 그나마 하루에 십 수컷이라도 차근 차근 정리를 해 가니 발을 디딜 틈이 조금씩은 넓어지고 있어 다행이 아닌가 합니다만, 또 촬영을 하고 돌아오게 되면 지금 바닥에 널려 있는 필름보다 더 많은 필름이 깔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6. 오늘도 퇴근해서는 발을 높이 들고 지뢰밭을 피해 가야할것 같습니다. 기왕 게으름에 대해 이곳에 글을 올렸으니 조금 속도를 빨리해서라도 마무리를 지어야 할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게으름의 가장 큰 원인은 필름을 들여다 보다가 구분이 되면 바로 스티커 작업을 해서 출력을 하고는 붙여야 하는것을 그 필름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이러니 진도가 늦어지는것 같습니다. 오늘부터는 정말 후다닥~ 해 치워서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짜증날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할 것 같습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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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5-03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내심이 많이 필요한 작업일 것 같네요.

비로그인 2004-05-04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녜..맞는 말씀입니다. 인내심도 중요하고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전문성이 있기에 전업 작가가 해야할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참에 전업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