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여기 한 소설이 있다. 쉽게 반성을 강요하거나 도덕적 교훈을 들먹이지 않는, 인간을 보여주기만 하는 소설. 서늘한 긴장과 짜릿한 현장성의 묘미를 보여주는 소설. 시위하듯 가족애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가족 사이에 흐르는 감정선을 그려내는 소설. 가족은 서로를 다 아는 것일까. 몰라서 모르거나 알면서도 몰라야 하는 가족이라는 소통의 한계와 통점에 관한 이야기. 로드니와 조앤의 경우를 보면서 공감하고, 로드니와 레슬리의 교감 앞에서는 하루가 충분히 무기력해지도록 내버려뒀다. 어쩜 인간은 이리도 쉽게 변하지 않는지.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조앤은 곧 나였고, 때로는 레슬리도 나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통찰 깊고 서늘한 문장을 잣는 이가 누구시던가. 애거사 크리스티. 그니는 봄에 자신이 없었노라고 고백하지만 그녀는 매 봄마다 내게 올 것이다. 아니, 온 겨우내 내 왼쪽 심장에 똬리를 틀고 앉아 나를 괴롭혀댈 것이다

 

   소설적 소품 또한 얼마나 잘 활용했는지. 도마뱀(103, 111), 때 이른 10월 철쭉(96 레슬리를 향한 로드니의 마음), (내가 그대에게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색 바랜 파란 쿠션(258레슬리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초록빛 갈색머리(253 쿠션에 반사된 레슬리의 머리카락), 1미터(레슬리와 로드니의 사랑의 간격,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딱 그만큼의 거리), 코페르니쿠스(254,259) 등등 탐나는 설정들이 너무 많았다. 그 이름 애거사 크리스티.

 

   봄에 없었다. (absent in the spring) --> 내 식 해석으로 (Love was totally absent in the spring.)이라 하고 싶다. 제목 한 번 잘 지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찾아 읽고 싶은 밤이로다. 

 

   간단 내용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쓴, 추리 소설이 아닌 여성의 삶과 사랑을 다룬 소설.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런던 근교 크레이민스터에 사는 조앤 로드니. 변호사의 아내이자 삼남매의 엄마. 결혼한 딸 바버라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바그다드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폭우로 텔 아부 하미드 기차역 숙소에서 사흘간? 발이 묶이면서 내면 성찰을 하게 된다. 우연히 동창생을 만나 자신의 문제와 직면하는 시간. 전에는 몰랐던 사실들. 알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 기적처럼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가식과 위선의 그물을 걷어내는 과정.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매정했고, 그들을 괴롭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다시 크레이민스터의 집에 도착했을 때 조앤은? ···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쉽게 변한다면 사람이 아니다!

 

 등장인물

<스쿠다모어네 주변>

*로드니 : 다정다감한 변호사, 온정적 이해주의자, 조앤을 사랑하나 완벽하게 소통하지 못함, 농부의 삶을 원하나 현실은 변호사, 레슬리를 향한 내밀한 열정.

*조앤 : 냉정하고 이기적, 자식들을 자기 식으로 이해함, 자식들의 신뢰를 받지 못함, 오만한 동정심, 부지불식간의 이기심을 지닌 외롭고 허한 중년 여자.

*블란치 해거드 (도너번) : 여고 동창생, 경박하고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 악의는 없음. 이 소설의 주요 모티프가 된 인물

*에이버릴 : 냉정하고 무심, 단단하고 깐깐. 상처 입을 용기가 있는 맏딸, 나이 많은 의사 루퍼트 카길과 연애 사건도 있었지만 논리로 무장한 로드니에게 설득 당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레슬리를 사랑하는 경험을 토대로 에이버릴을 설득한다.(속으로 사랑의 아픔을 삭이면서) 에이버릴은 로드니를 신뢰한다. 주식중개인 에드워드 해리슨 윌모트와 결혼 후 런던 생활.

*토니: 아버지 일 이어받지 않고 남아프리카 로디지아의 오렌지 농장으로 떠나서 남아공 더반 출신의 여자와 결혼.

*바버라 : 열정적 감정적, 자제력 없음, 윌리엄 레이와 결혼 몹시라는 딸을 낳고 바그다드에서 자리 잡았다. 리드 소령과의 썸씽으로 자살 시도를 하고 앓아 눕는다. 엄마의 간병을 바버라 부부는 원치 않지만 엄마 조앤은 바그다드로 떠난다. 바버라가 아빠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엄마의 간병 기간이 그들 부부를 합심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되어 버림

*아그네스, 에드나 : 하녀

*호디즈던 : 로드니가 마음써주는 농부 할아버지

*머나 랜돌프 : 끼 많은 이웃 아가씨. 레슬리를 머나 랜돌프로 착각하기를 바랐던 조앤.

*마이클 캘러웨이 : 조앤과 섬씽 있을 뻔한 화가.

*길비 : 여고 교장 선생님, 단호하고 권위적이며 훈화적이나 통찰력이 있음.

 

<셔스턴 집안>

*찰스 셔스턴 : 레슬리 남편, 주정뱅이 은행장이자 공금횡령 전과자

*레슬리 :억척스럽고 소박한 여자, 역경조차 명랑과 긍정의 용기로 엮는 불굴의 여자. 분주하나 만족할 줄 안다. 로즈니의 사랑을 받다 암으로 죽음. 벤치에서 로드니와 1미터 간격으로 앉는 사이.

*: 큰아들, 미얀마 숲으로 떠남.

*피터 : 둘째아들, 로드니 회사 다니다 사건 일으켜 조종 훈련 배우러 떠났다가 사고사. 사기꾼 아버지와 용기 많은 엄마를 반반 닮음.

*막내딸 : 생후 6개월에 죽음.

<숙소>

*인도인 : 호텔 지배인 // *아랍소년 : 호텔 보이

 

<기차 안>

*사샤 : 알레프에서 이스탄불까지 동행한 너그럽고 지적인 러시아 공작부인, 박학다식한 부인에게 호기심을 느끼지만 조앤은 나중에 지겨워 함.

    

 

 

98어머, 이거 당신이 꽂았던 철쭉꽃이에요. 그냥 둬, 레슬리 셔스턴을 위해 그냥 두자고. 어쨌든 우리의 친구였으니까.

104열린 공간 – 그리고 상자 속에서 살아온 그녀의 전 인생. 허수아비 자식들과 허수아비 하인들과 허수아비 남편.

104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세익스피어 소네트 98번 일부)



105아이는 당황한 눈길로 엄마를 쳐다봤다. 상대방이 어떤 인간인지 궁금해하는 눈빛 같았다. 자식이 엄마를 그런 식으로 쳐다봐서는 안 되는 눈빛이었다. 결코 사랑스럽지 않았다.

130그녀는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머릿속을 조직적으로 정리하고, 광장공포증이라는 것의 본질을 철저히 파헤쳐볼 필요가 있었다.



201가끔 난 엄마가 그 누구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토니가 그렇게 말했다. 토니의 말이 맞았다. 조앤은 자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로드니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196교회 묘지. 레슬리 셔스턴의 무덤. 로드니의 코트에서 떨어진 큼직한 진홍색 철쭉꽃. 거친 바람이 5월의 고운 꽃봉오리를 흔드네.



197감정을 단련해라, 조앤. 표현을 더 정확하게 해.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건지 확실히 정해야지.

202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204 헌신적인 엄마 노릇을 한다는 데 끌렸던 건 아닐까? 아픈 딸과 심란한 사위에게 환영받는, 매력적이고 모험적인 자신을 기대한 건 아닐까? 이 먼 데까지 달려와 주다니 정말 좋은 분이에요 같은 말을 듣고 싶어서?

204 조앤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 두 사람은 크게 안도했다. 그들은 속마음을 숨기고 예의를 차리느라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붙잡았다. 하지만 조앤이 순간적으로 마음을 바꾸려는 기미를 보이자 윌리엄이 나서서 재빨리 그녀의 의지를 꺾어놓았다.



206그때 조앤의 마음속에는 옛 친구를 업신여기는 우월감이 가득차 있었다. 제가 그 여자와 다르다는 데 감사드립니다, 하느님. 그랬다. 조앤은 감히 그런 기도까지 했다. 지금 이 순간 블란치가 곁에 있다면 무엇이라도 내줄 것 같았다! 친절하고 느긋하고 너그러운 블란치.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 사람. 블란치를 만난 밤, 조앤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우월감에 휩싸여 기차역 숙소에서 기도했다. 몸을 가릴 천 쪼가리 한 장 없는 것 같은 지금은 기도라는 걸 할 수 있을까?

207난 외톨이야. 완전히 외톨이야. 무시무시한 고요. 지독한 외로움. 가여운 조앤 스쿠다모어, 멍청이, 헛똑똑이, 가식덩어리, 조앤 스쿠다모어. 사막에 혼자 있네.

213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그 구절을 외웠을 때 로드니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녀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11월이지." 그날 저녁 로드니가 "하지만 지금은 10월이지"라고 했던 것처럼.



213하지만 이제 그녀는 알았다. 물론 당시에도 알았던 게 분명하다. 두 사람이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던 이유를. 그들은 차마 더 가까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랬다. 그렇지 않았을까.



214상대는 머나 랜돌프가 아니었다. ··· 로드니와 랜돌프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사실을 못 본 척하려고 머나 랜돌프로 연막을 피웠다. 머나 랜돌프가 레슬리 셔스턴보다 인정하기 쉽다는 이유도 있었다. 로드니가 머나 랜돌프에게 끌렸다면 자존심이 덜 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레슬리 셔스턴은 아름답지도 젊지도 않고 되는 일도 없는 여자였다. 지친 얼굴, 우스꽝스럽게 한쪽이 일그러지는 미소를 짓던 레슬리 셔스턴. 로드니가 그런 여자를 사랑했다고 - 정말 열렬하게 사랑해서 1미터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고 - 인정하는 것이 싫었다.



215 로드니는 대리석 묘석을 내려다보면서 "레슬리 셔스턴이 이런 차가운 대리석 밑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지독하게 이상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홍색 철쭉꽃이 툭 하고 떨어졌다. "피 같아. 심장의 피." 그는 말했다. ··· "모두 다 용감할 수는 없어." ··· 그러다가 로드니는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다. 레슬리의 죽음이 초래한 병이었다. ··· 토니의 경멸에 찬 목소리. "엄마는 아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녀는 몰랐다. 왜냐하면 결코 알고 시피지 않았으니까.



218로드니는 부드러운 사람이기에 그녀와 싸우지도 그녀를 억누르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세상에서 사는 동안 완전한 남자가 아니었다. 로드니·····. 난 그것을 그에게 돌려줄 수 없어. 보상해줄 수 없어. 하지만 로드니를 사랑해. 정말로. 그리고 에이버릴과 토니와 바버라를 사랑해. (하지만 충분히는 아니었다 - 그게 답이었다 -)

223그녀는 얼마나 끔찍하게 잘난체하는 인물이었던가. 사막에서 밀려들었던 날카로운 혐오감이 지금도 남아 있었다. 자기혐오. 새로이 겸손한 마음이 생겨났다.



224이제는 도마뱀들이 구멍에서 쑥 나와 그녀를 위협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만났고 자신을 인정했다.

228~229친구들은 제게 ‘사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어’라고 해요. 터키인, 아르메니아인, 레반트인들처럼 말이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요. ··· 조앤은 자기도 모르게 이 묘한 부인에게 매료되었다.



229혹시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을 보는 중인가요? 엄청난 감정을 경험하거나 그런 감정을 지나쳐온 것 같아요. 슬픔? 아니면 엄청난 행복?



239···특이한 러시아 부인조차 마지막에는 지겨워졌다. ··· 부인이 조앤을 완전히 촌사람처럼 느끼게 했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누구와 견줘도 떨어지지 않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다독여도 소용없었다! 그 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 자체가 몹시 바보스러웠지만.



245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자식들이 그녀를 싫어한다는 상상, 로드니가 레슬리 셔스턴을 사랑했다는 상상. ···불쾌하기 짝이 없는 모든 일. 그 상상들은 모두 사실일까? 그녀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 로드니, 용서해요. 난 정말 몰랐어요. 로드니, 나 왔어요. 집에 돌아왔어요. 어떤 패턴으로 할까. 어떤 것이 낫지? 조앤은 선택해야 했다. ··· 그녀는 명랑하게 말했다. "나 왔어요, 로드니. 집에 돌아왔어요."



249엄마가 여기 오겠다고 전보를 보냈을 때 전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어요. ··· 전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별로 저항도 못했어요. ··· 사랑하는 아빠, 아빠 같은 분을 제 아빠로 두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사랑하는 바버라.



249그가 갑자기 죽는다면 조앤이 서류를 정리하다가 이 편지를 볼 테고, 아마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공연히 상처를 주고 절망에 빠뜨릴 필요가 없다. ··· 로드니는 방 한 구석으로 가서 바버라의 편지를 벽난로에 던졌다.



254"저기, 저는 코페르니쿠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라고 (레슬 리가) 말했다.



255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햇어. 로드니는 생각했다. ···그와 레슬리와 함께. 그리고 떨어져서. 고통과 가슴 타는 갈망. 두 사람은 1미터 남짓 떨어져 앉았다. 그 보다 가까우면 안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레슬리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259"음······ 코페르니쿠스예요? 귀한 그림인가요?" 조앤은 갸웃하며 그림을 보다가 물었다.

"나도 몰라." 그는 생각에 잠긴 듯이 같은 말을 되뇌었다. "나도 전혀 모르지……"



261"그래, 당신에게는 내가 있지."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 (맨 마지막)

98어머, 이거 당신이 꽂았던 철쭉꽃이에요. 그냥 둬, 레슬리 셔스턴을 위해 그냥 두자고. 어쨌든 우리의 친구였으니까.

104열린 공간 – 그리고 상자 속에서 살아온 그녀의 전 인생. 허수아비 자식들과 허수아비 하인들과 허수아비 남편.

104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세익스피어 소네트 98번 일부)



105아이는 당황한 눈길로 엄마를 쳐다봤다. 상대방이 어떤 인간인지 궁금해하는 눈빛 같았다. 자식이 엄마를 그런 식으로 쳐다봐서는 안 되는 눈빛이었다. 결코 사랑스럽지 않았다.

130그녀는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머릿속을 조직적으로 정리하고, 광장공포증이라는 것의 본질을 철저히 파헤쳐볼 필요가 있었다.



201가끔 난 엄마가 그 누구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토니가 그렇게 말했다. 토니의 말이 맞았다. 조앤은 자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로드니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196교회 묘지. 레슬리 셔스턴의 무덤. 로드니의 코트에서 떨어진 큼직한 진홍색 철쭉꽃. 거친 바람이 5월의 고운 꽃봉오리를 흔드네.



197감정을 단련해라, 조앤. 표현을 더 정확하게 해.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건지 확실히 정해야지.

202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204 헌신적인 엄마 노릇을 한다는 데 끌렸던 건 아닐까? 아픈 딸과 심란한 사위에게 환영받는, 매력적이고 모험적인 자신을 기대한 건 아닐까? 이 먼 데까지 달려와 주다니 정말 좋은 분이에요 같은 말을 듣고 싶어서?

204 조앤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 두 사람은 크게 안도했다. 그들은 속마음을 숨기고 예의를 차리느라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붙잡았다. 하지만 조앤이 순간적으로 마음을 바꾸려는 기미를 보이자 윌리엄이 나서서 재빨리 그녀의 의지를 꺾어놓았다.



206그때 조앤의 마음속에는 옛 친구를 업신여기는 우월감이 가득차 있었다. 제가 그 여자와 다르다는 데 감사드립니다, 하느님. 그랬다. 조앤은 감히 그런 기도까지 했다. 지금 이 순간 블란치가 곁에 있다면 무엇이라도 내줄 것 같았다! 친절하고 느긋하고 너그러운 블란치.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 사람. 블란치를 만난 밤, 조앤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우월감에 휩싸여 기차역 숙소에서 기도했다. 몸을 가릴 천 쪼가리 한 장 없는 것 같은 지금은 기도라는 걸 할 수 있을까?

207난 외톨이야. 완전히 외톨이야. 무시무시한 고요. 지독한 외로움. 가여운 조앤 스쿠다모어, 멍청이, 헛똑똑이, 가식덩어리, 조앤 스쿠다모어. 사막에 혼자 있네.

213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그 구절을 외웠을 때 로드니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녀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11월이지." 그날 저녁 로드니가 "하지만 지금은 10월이지"라고 했던 것처럼.



213하지만 이제 그녀는 알았다. 물론 당시에도 알았던 게 분명하다. 두 사람이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던 이유를. 그들은 차마 더 가까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랬다. 그렇지 않았을까.



214상대는 머나 랜돌프가 아니었다. ··· 로드니와 랜돌프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사실을 못 본 척하려고 머나 랜돌프로 연막을 피웠다. 머나 랜돌프가 레슬리 셔스턴보다 인정하기 쉽다는 이유도 있었다. 로드니가 머나 랜돌프에게 끌렸다면 자존심이 덜 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레슬리 셔스턴은 아름답지도 젊지도 않고 되는 일도 없는 여자였다. 지친 얼굴, 우스꽝스럽게 한쪽이 일그러지는 미소를 짓던 레슬리 셔스턴. 로드니가 그런 여자를 사랑했다고 - 정말 열렬하게 사랑해서 1미터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고 - 인정하는 것이 싫었다.



215 로드니는 대리석 묘석을 내려다보면서 "레슬리 셔스턴이 이런 차가운 대리석 밑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지독하게 이상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홍색 철쭉꽃이 툭 하고 떨어졌다. "피 같아. 심장의 피." 그는 말했다. ··· "모두 다 용감할 수는 없어." ··· 그러다가 로드니는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다. 레슬리의 죽음이 초래한 병이었다. ··· 토니의 경멸에 찬 목소리. "엄마는 아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녀는 몰랐다. 왜냐하면 결코 알고 시피지 않았으니까.



218로드니는 부드러운 사람이기에 그녀와 싸우지도 그녀를 억누르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세상에서 사는 동안 완전한 남자가 아니었다. 로드니·····. 난 그것을 그에게 돌려줄 수 없어. 보상해줄 수 없어. 하지만 로드니를 사랑해. 정말로. 그리고 에이버릴과 토니와 바버라를 사랑해. (하지만 충분히는 아니었다 - 그게 답이었다 -)

223그녀는 얼마나 끔찍하게 잘난체하는 인물이었던가. 사막에서 밀려들었던 날카로운 혐오감이 지금도 남아 있었다. 자기혐오. 새로이 겸손한 마음이 생겨났다.



224이제는 도마뱀들이 구멍에서 쑥 나와 그녀를 위협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만났고 자신을 인정했다.

228~229친구들은 제게 ‘사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어’라고 해요. 터키인, 아르메니아인, 레반트인들처럼 말이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요. ··· 조앤은 자기도 모르게 이 묘한 부인에게 매료되었다.



229혹시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을 보는 중인가요? 엄청난 감정을 경험하거나 그런 감정을 지나쳐온 것 같아요. 슬픔? 아니면 엄청난 행복?



239···특이한 러시아 부인조차 마지막에는 지겨워졌다. ··· 부인이 조앤을 완전히 촌사람처럼 느끼게 했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누구와 견줘도 떨어지지 않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다독여도 소용없었다! 그 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 자체가 몹시 바보스러웠지만.



245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자식들이 그녀를 싫어한다는 상상, 로드니가 레슬리 셔스턴을 사랑했다는 상상. ···불쾌하기 짝이 없는 모든 일. 그 상상들은 모두 사실일까? 그녀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 로드니, 용서해요. 난 정말 몰랐어요. 로드니, 나 왔어요. 집에 돌아왔어요. 어떤 패턴으로 할까. 어떤 것이 낫지? 조앤은 선택해야 했다. ··· 그녀는 명랑하게 말했다. "나 왔어요, 로드니. 집에 돌아왔어요."



249엄마가 여기 오겠다고 전보를 보냈을 때 전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어요. ··· 전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별로 저항도 못했어요. ··· 사랑하는 아빠, 아빠 같은 분을 제 아빠로 두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사랑하는 바버라.



249그가 갑자기 죽는다면 조앤이 서류를 정리하다가 이 편지를 볼 테고, 아마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공연히 상처를 주고 절망에 빠뜨릴 필요가 없다. ··· 로드니는 방 한 구석으로 가서 바버라의 편지를 벽난로에 던졌다.



254"저기, 저는 코페르니쿠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라고 (레슬 리가) 말했다.



255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햇어. 로드니는 생각했다. ···그와 레슬리와 함께. 그리고 떨어져서. 고통과 가슴 타는 갈망. 두 사람은 1미터 남짓 떨어져 앉았다. 그 보다 가까우면 안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레슬리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259"음······ 코페르니쿠스예요? 귀한 그림인가요?" 조앤은 갸웃하며 그림을 보다가 물었다.

"나도 몰라." 그는 생각에 잠긴 듯이 같은 말을 되뇌었다. "나도 전혀 모르지……"



261"그래, 당신에게는 내가 있지."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 (맨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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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1-11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ㅁㄴ만에 만나는 리뷰군요. 역시 명징하네요..

다크아이즈 2017-01-12 07:16   좋아요 0 | URL
리뷰랄 것도 없어요ㅠ 눈 오신다니 곰발님도 단도리 잘하고 길 나서시길요~

2017-01-11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0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4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1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7-01-26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크아이즈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세요.
새해엔 소망하시는 일 이루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7-02-02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2 17: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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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2 17: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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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루쉰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예문 / 2012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조화석습(朝花夕拾) -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라는 제목의 루쉰 자전적 산문집이다. 아침에 떨어진 꽃을 냉큼 주워 향기를 맡지 말고, 그 운치를 충분히 음미하고 저녁에 가서 비로소 꽃을 주워 드는 마음이랄까. 그런 느긋한 맘으로 당신의 책을 읽어 달라는 뜻일까. 아침에 일어난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게 아니라 저녁까지 기다려 현명하게 대처하자, 뭐 이런 뜻도 되겠다. 결실을 위한 기다림, 깊은 사유,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등의 의미로도 생각해봤다.

 

   루쉰만큼 근대 중국 상황 개조자를 자처한 이도 드물다. 21세기에 20세기 중국(중국 근대사의 암울함)을 얘기하는 시대적 역행에서도 어쩜 이리 얻을 게 많은지. 보편타당한 통점이 담겨 있는 어록들이 폐부를 찌른다. 루쉰의 시대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자국상(?)을 그의 글을 통해 확인한다. 과거이지만 결코 지난 게 아닌, 현재형 일침이 지금 우리 상황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폐부 깊숙이 느낀다.

 

   현재 우리 상황에서 루쉰 같은 사상가가 나온다면 세상의 반응은 어떨까 하는 흥미로운 생각을 해봤다. 패배자 의식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도 나올 것이고, 선지적 통찰가라고 추앙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분법적으로 그를 바라보는 눈과 상관없이 그는 난 사람이다. 학습된 악습과 게으른 미몽에서 헤어나게 하려는 중국인들의 구원 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니.

 

   왜곡된 진실이나 주권자로서의 뭉개진 자존심을 제대로 곧추 세우기엔 한두 명의 루쉰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새기게 된다. 청년 정신, 깨어있는 지성을 향한 부단한 외침에 메아리가 미흡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17(한 사람이 죽는 것은 큰 일이 아니라는 루쉰의 말에) L은 기분 나빠하며 말했다. "그것은 자연의 말이지, 사람의 말은 아니네. 자네 조심해야겠네." 나는 그의 말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21장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면서 괴상해지고, 노년에서 죽음을 맞기까지는 더욱 기상천회하게 변해 소년들의 길을 막고, 소년들이 호흡하는 공기를 자신들이 다 마셔버리는 인간들 말이다.

23청년들은 깊은 웅덩이를 메워 자기가 갈 수 있도록 해준 나이든 사람들에게 고마워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자기가 메운 깊은 웅덩이를 지나 멀리멀리 나아가는 청년들을 고마워한다.

30성인이 되더라도 오직 과거의 습관을 그대로 추종할 뿐, 그 역시 자식을 만드는 도구일 뿐, 인간의 부모가 되지 못한다.

31우리 중국에는 자식의 아버지는 많다. 그러나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인간’의 아버지다.

34먼저 자신에 대해 논평을 해야 하고 거짓이 없어야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으며 그래야 자기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떳떳하다.

49자녀를 해방시키려는 부모는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더더욱 합리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개조해야 한다.

51결사적으로 효도를 권장한 것도 사실상 효자가 드물었음을 증명한다. 위선적인 도덕만 제창할 뿐 진정한 사람들의 정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53자녀들을 내버려둔 채 전혀 신경을 쓰지 않거나 <효경>을 읽으라고 윽박지르고 옛날 가르침을 배워 자신을 희생하라고 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낡은 도덕, 낡은 습관, 낡은 방법의 책임이여 생물학적 진리 탓이 아니다.

54중국의 각성한 사람들은 어른을 따르면서 나이 어린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있다.

61노라를 위해서는 돈, 고상한 말로 경제가 제일 중요합니다. 남녀 간에 동등한 힘을 얻기 위해서는 싸워야 합니다. 참정권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격렬한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경제권을 요구하는 것은 참정이나 여성해방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번거롭고 어려울지 모릅니다.

65경제적인 면에서 자유를 얻으면 그것으로 인형이 아닐까요? 역시 인형입니다. 다만 남에게 조종당하는 일이 적어지고, 자기가 조종할 수 있는 인형이 될 수 있습니다.

67아주 커다란 채찍이 등을 후려치지 않는 한 중국은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 채찍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좋든 나쁘든, 어쨌든 분명히 내려칠 것입니다.

79놀이는 어린이들의 가장 정당한 행동이며 장난감은 어린이들의 천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생 연을 망가뜨린) 정신적 학살의 광경이 불현듯 눈앞에 떠올랐고 내 마음도 납덩이로 변해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79그런 일이 있었어요? 동생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81나는 침묵할 때 충만감을 느낀다. 나는 입을 열자마자 공허감을 느낀다.

95용감한 자는 분노하면 칼을 빼어들고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 향한다. 비겁한 자는 분노하면 칼을 빼어들고 자기보다 약한 자를 향한다. 구원의 가망이 없는 민족에게는 아이들한테만 눈눈을 부라리는 영웅들이 수두룩하다. 그 비열한 무리들!

96무엇을 사랑하든 독사처럼 칭칭 감겨들어라. 원귀처럼 매달려라. 낮과 밤이 없이 매달리는 자라야 희망이 있다.

119많은 인부들이 이 장성 때문에 고역에 시달리다 죽기만 했다. 장성 덕분에 오랑캐를 물리친 적은 없다. 나는 언제나 장성이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것 같다. 언제쯤 장성에 새 벽돌을 더 보태지 않아도 될까?

120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도가에서 말하듯 그렇게 초연할 수는 없는 일. 오히려 욕망의 덩어리다. 욕망을 차마 정면으로 드러낼 수 없기에 인간은 온갖 음모와 술수를 동원한다. 이로 인해 날로 비겁해진다.

123승리의 조짐이 보이면 와, 하고 몰려들고, 실패의 조짐이 보이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간다.

123우승자는 당연히 존경할 만하다. 그러나 뒤떨어졌으되 기어이 결승점까지 달려가는 주자와 그런 주자를 비웃지 않고 진지하게 보는 관객, 그들이야말로 중국 미래의 대들보들이다.

125우리는 너무도 쉽게 노예가 될 수 있으며, 노예가 된 뒤에도 매우 즐거워한다는 점이다. --줄곧 중국인들은 ‘사람’의 자격을 획득한 적이 없다. 잘해야 노예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노예보다 못했을 때도 많았다. 낡은 것이든 새것이든 어쨌거나 규칙을 제정하여 그들을 노예의 궤도에 올려주기를 바란다.

129노예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한 시대, 잠시 안정되게 노예가 되었던 시대.

135중국인들은 열등한 존재이기에 원래대로 사는 것이 어울린다면서 중국의 낡은 것들을 찬양하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

135(외국인들이) 자기 여행의 재미를 더하려는 사람들로 중국에서는 변발을 보고, 일본에서는 게다를, 고려에서는 갓을 보고, 복장이 똑같으면 재미가 없다고 여겨서 아시아의 서구화를 반대한다. 참으로 가증스럽다.

135요컨대 받들어 올림을 받는 것들은 십중팔구는 좋은 것이 아니다.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일시적 안일을 꾀하기 위해 여전히 받들어 올린다. --금송아지를 바라는 자에게는 황금쥐는커녕 죽은 쥐도 주지 말아야 한다. 복을 저절로 굴러 들어오게 하는 길은 내려파는 것이다.

149순하다는 것은 무능하다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것이니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다. (물에 빠진 개를 동정심 때문에 살려주면 화를 당하기 쉽다는 말의 우회.)

153선량한 사람들은 용서하라는 그 말이 옳다면서 악인을 구해준다. 그러나 악인들은 구제되고 나서, 자신들이 이익을 보았다고 생각할 뿐, 결코 회개하지 않는다. 얼마 안 가서 빛나는 명성을 되찾게 되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못된 짓을 한다.

156개혁가들만이 아직도 꿈을 꾸고 있으며, 늘 손해만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아직도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후, 이러한 태도와 방법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159선각자는 늘 고국으로부터 버림을 받으며, 동시대인들에게 박해를 받는다. 큰 인물도 항상 이러하다. 그가 사람들로부터 공경과 예찬을 받으려면, 반드시 죽거나 침묵을 지키거나 아니면 눈앞에 보이지 말아야 한다.

162먹으로 쓴 거짓이 피로 쓴 사실을 가릴 수 없다.

186온순한 것이 발전하여 무슨 일에서나 온순하기만 하다면, 이것은 미덕이 아니라 바보짓이라 해야 할 것이다.

200자기는 남에게 위해를 가하면서도 남의 보복을 받는 것을 두려워 관용이라는 미명으로 기만하는 것은 아닌가.

207고슴도치는 학습에 의해 마침내 적당한 간격을 발견하고, 이 거리를 유지하며 가장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사교의 필요 때문에 한 곳에 모여 살고, 또한 각기 싫어하는 많은 성격과 흉한 결함 때문에 떨어져 산다. 그들이 마침내 발견한 것은 ‘거리’다.

258더 이상 군벌을 위해 신선한 요리를 만들어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와 같은 청년들을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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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07: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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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17: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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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19: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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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서정주 전집 1 : 시 - 화사집.귀촉도.저정주시선.신라초.동천.서정주문학전집 미당 서정주 전집 1
서정주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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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기시가 좋더라 

  친일 행각, 기회주의자, 변절주의자로서의 시각은 잠시 보류하고 읽었다.

  흔히 미당의 시세계는 3단계로 나눈다.  화사집 때의 시기, 귀촉도의 시기, 신라초와 동천의 시기로. 누가 뭐래도 난 분화구 같고 관능미가 넘치던 화사집의 시기가 젤로 와닿는다. 화사집에 실린 자화상·문둥이·화사〉 등의 시는 덧댐도 없고 눈치 보지도 않는다. 탐욕도 없고 계산도 보이지 않는다. 진격의 옷소매 뒤에 수줍은 불길이 맹렬히 타오르는 걸 느낀다. 

  2단계인 귀촉도의 시기는 내게 덜 흥미롭다. 동양적인 구도의 의지와 내면 탐구, 전통적 정서 등은 그 시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초기 시의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국화옆에서그 시기의 시가 비교적 세간에 더 많이 알려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3단계로 알려진 신라초동천의 시기는 다분히 의도적 시적 형상화의 시기로 느껴진다. 신라 정신 계승과 동양 사상 및 불교 탐색의 시기는 시가 '와서' 쓴 것 같은 초기 때에 비해 시를 하나의 사상처럼 만들어 쓴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마재 신화 이후로는 어린 시절  또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 풍광을 짚어내어 한국적 정서를 확대해나갔다. 완숙미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초기시를 읽을 때의 손등 위에 얼음이 떨어지는 듯한 쨍한 느낌은 덜했다. 광맥 같은 완숙미도 초심의 염결성을 이기지는 못한다는 게 시집을 훑는 내내 들었다. 

 

 

   2. 시와 삶은 다르더라

  서정주는 국가다, 라고 고은 시인이 말할 정도로  시적 형상화에 있어서는 천의무봉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럼에도 고은 시인이 스승인 미당의 행보에 대해서만은 비판할 수밖에 없듯이 독자 역시 마찬가지다. 뛰어난 시인이 꼭 훌륭한 삶을 사는 건 아니니까. 일제를 찬양하는 10여 편의 시와 소설, 비평문을 남겼고, 독재자 이승만을 기리는 이승만 전기를 썼으며,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베트남 파병을 촉구하는 시를 발표했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설 때는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그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전두환의  56세 생일에는 축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고, 소극적인 자세로 가담했다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다음 두 시가 보여주고 있다. 너무 나가 버렸다.

 

   예시1)송정(마쓰이) 오장 송가 -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카제 특별공격대원 귀국대원 귀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져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예시2)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잘사는 이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육천만동포의 지지를 얻으셨나니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1987)

 

 

 3. 국정농단 사태를 예언했더라 

  - '순실과 그네'가 등장하는 시를 읽다가 빵 터졌다.

 

223편지 - 서정주

   

내 어릴 때의 친구 순실이

생각히는가

아침 산골에 새로 나와 밀리는 밀물살 같던

우리들의 어린 날,

거기에 매어 띄웠던 그네의 그리움을

 

그리고 순실이

시방도 당신은 가지고 있을 테지

연약하나마 길 가득턴 그 때 그 우리의 사랑을.

 

그 뒤,

가냘픈 날개의 나비처럼 헤매 다닌 나는

산나무에도 더러 앉았지만,

많이는 죽은 나무와 진펄에 날아 앉아서 지내왔다.

 

순실이

이제는 주름살도 꽤 많이 가졌을 순실이

그 잠자리같이 잘 비치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시방은 어느 모래사장에 앉아 그 소슬한 비상의 별빛을 펴는가

 

죽은 나무에도 산 나무에도 거의 다 앉아 왔거든

난들에도 구렁에도 거의 다 앉아 왔거든

이젠 자네와 내 주름살만큼이나 많은 그 골진 사랑의 떼들을 데리고

우리 어린 날 같이 다시 만나세

갓트인 연봉우리에 낮 미린내도 실었던

우리들의 어린 날 같이 다시 만나세

 

 

  4. 시 맛보기 - 밑줄긋기로 대신

 

27자화상 -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1937년 23세 추석, 1935신건설?)



31화사(花蛇) -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기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22세, 1936년)



85귀촉도 -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128신록 - 어이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 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미 꽃잎이 지고 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번 날 에워싸는데 못 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머리털과 같은 풀밭에 바람 속에 떨어져 내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135나의 시 - 어느해 봄이던가, 머언 옛날입니다. 나는 어느 친척의 부인을 모시고 성안 동백꽃나무그늘에 와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부분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는듯이 앉어 계시고, 나는 풀밭위에 흥근한 낙화가 안씨러워 줏어모아서는 부인의 펼쳐든 치마폭에 갖다놓았습니다. 쉬임 없이 그짓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그뒤 나는 연년히 서정시를 썼습니다만 그것은 모두가 그때 그 꽃들을 주서다가 디리던 ― 그 마음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제 웬일인지 나는 이것을 받어줄 이가 땅위엔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 내가 줏어모은 꽃들은 제절로 내손에서 땅우에 떨어져 구을르고 또 그런 마음으로 밖에는 나는 내 시를 쓸 수가 없습니다.



241동천 –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265선운사 동구 –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286한양호일 - 열대여섯짜리 소년이 작약꽃을 한아름 자전거 뒤에다 실어 끌고 이조의 낡은 먹기와집 골목길을 지내가면서 연계같은 소리로 꽃사라고 웨치오. 세계에서 제일 잘 물디려진 옥색의 공기 속에 그 소리의 맥이 담기오. 뒤에서 꽃을 찾는 아주머니가 백지의 창을 열고 꽃장수 꽃장수 일루와요 불러도 통 못 알아듣고 꽃사려 꽃사려 소년은 그냥 열심히 웨치고만 가오. 먹기와집들이 다 끝나는 언덕위에 올라서선 작약꽃 앞자리에 넹큼 올라타서 방울을 울리며 내달아 가오.



294가벼히 – 애인이여 너를 만날 약속을 이젠 그만 어기고 도중에서 한눈이나 좀 팔고 놀다 가기로 한다. 너 대신 무슨 풀입사귀나 하나 가벼이 생각하면서 너와 나 사이 절간을 짓더라도 가벼이 한눈파는 풀잎사귀 절이나 하나 지어 놓고 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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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6-12-25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예요. 다트 아이즈님~~
올려주신 글 반갑게 읽고, 내 어릴 때의 친구 순실이 읽을때는 ‘빵‘터졌습니다. ㅎㅎ
2017년에는 자주 뵈어요~~

다크아이즈 2016-12-25 17:20   좋아요 1 | URL
보슬비님 여여하신지요? 반갑습니다.
알라딘에서 뜨내기처럼 왔다갔다하는 신세라...
게으름이 덜해서 자주 찾기를 바랄 뿐입니다.
반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12-25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크아이즈 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2016-12-25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6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1-06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크아이즈 님 오신 것도 모르고 있었네요^^;; 죄송...
저도 서정주 읽을 때 말씀하신 그 부분이 참 걸렸었죠.
일본어로 시를 안 쓰고 더 모국어를 고집해 출판 가능한 곳에만 발표하다 그마저 폐간되자 시를 발표하지 못한 백석과 비교되기도. 헌데 북에서 주체사상 찬양 시를 쓴 백석 시가 망가진 것도 마음 아프더라는... 시대 속에 스스로를 굽히지 않고 나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다크아이즈 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다크아이즈 2017-01-09 00:53   좋아요 0 | URL
백석이 북에서 그런 시를 썼군요. 짠하네요.
완전히 굽히지 않고 살아갈 순 없는 게 인간 한계지요.
아갈마님도 새해엔 더욱 행복하시길~

2017-01-07 0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7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7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8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0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생각보다  긴 소설이다. 뒤로 갈수록 지루하다. 불필요한 부분 과감히 없애거나 차라리 처음의 중단편에서 멎었으면 더 아찔한 작품이 될 뻔했다. 필요에 의해 연재소설이 되다 보니 처음의 긴박감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다. 일본 특유의 만담적 요소가 많고, 메이지 시대적  영향으로  지적 허영심이 과도한 면도 없지 않다. 여성 혐오적 요소 역시  시대적 상황으로 이해하면 그리 거북하지 않다. 

 

통찰은 깊으나 기대만큼의 감동이 따르지는 않았다.  신선한 소설이긴 하나  쓸 당시의 젊은 작가로서의 통찰 정도이지 작가 말년의 깊은 내공에까지 이른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풍자의 묘미가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도 초반에서이다.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

 

지식인들의 이중성을 고발하고  자본가의 배금주의 사상을 비판하고, 나아가 인간 사회 자체를 풍자하는 것에 격하게 공감이 간다.  작가 자신을 상징하는 지식인 쿠샤미부터 책 읽는 척하는, 침 흘리는 보통 사람으로 묘사하는 데서 절로 웃음이 난다. 메이지 시대, 서양문물과 근대화라는 커다란 물결 앞에서 휘둘리고 저항하는 등장인물들의 면면이 곧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등장인물> 

 

*쿠샤미 고만고만한 분메이 중학교 영어교사, 위장병 달고 있고 곰보이다. 평범한 속성의 지식인 상징, 작가 자신 투영

*메이테이 허풍쟁이 미학자, 돈도 좀 있음. 비판적 허풍쟁이, 안드레아 델 사르토, 공작새 혀 요리 및 도치멘보 에피소드

*미즈시마 간게츠 엉뚱한 허위로 가득 찬 철없는 젊은 과학도. 쿠샤미의 제자, 목을 메어 자살하는 역학 강의, 개구리 눈알의 전동 작용에 대한 자외선 영향 박사 논문을 위해 유리알만 둥글게 감, 바이올린 취미, 최근 한 달 새 결혼함. 도미코의 관심을 받음.

*오치 도후(오치 고치) 고지식하면서도 잘난 척하나 감성이 풍부함, 신체시를 짓고 극을 함. 미즈시마 간게츠 소개로 낭독회 가입 권유 차 쿠샤미 만나러 옴

*키요 하녀, 고양이를 구박함.

*고토 선생 텐쇼인 얼룩이 주인집

*가네다 아내 간게츠를 사윗감으로 간 보기 위해 찾아 온 이웃집 부자 부인

**도미코 가네다네 딸

*아마기 주인 주치의

*스즈키 토즈로새끼 기업인. 공학학사, 쿠샤미가 절에서 자취할 때의 옛친구, 기회주의자, 편의주의자(서구 자본주의 상징)가네다네의 부탁으로 간게츠 염탐하러 구샤미에게 들름.

*인력거집 아낙네, 아들 얏짱 고자질쟁이, 울보

*소로사키(천연거사) - 쿠샤미가 좋아하는 친구, 실제 나쓰메 소세키의 글 친구

*다타라 산페이법학사, 쿠샤미 제자, 참마를 선물로 줌, 도미코랑 결혼하게 됨.

*톤코, 슨코, 아기 쿠샤미의 딸들

*야기 도쿠센 철학자, 얼굴이 길고 신선처럼 수염 기름. 이웃 학생들 야구공에 시달리자 마음을 가라앉히라고 조언해 줌.

*메이테이 숙부 메이지 시대의 노인 상, 챙 높은 모자를 씀.

*다치마치 로바이 텐도 코헤이라는 이름, 사색적 미치광이. 야기 도쿠센 영향 받음.

*요시다 토라조 형사, 도둑 들었을 때

*유키에 주인 조카딸, 여학생

*후루이 부에몬학생 제자, 급우 하마다가 도미코 골려주려고 연애편지 쓸 때 이름 빌려 줌.

 

*시로, 미케 이웃 고양이들. 각 군인과 벼호사 집 고양이

*검둥이 뒷집 인력거집 고양이, 몸피 굵고 힘 셈

*얼룩이 고토(일본식 거문고) 선생집의 암고양이, 내가 사랑했고 주인집에 사랑 받고 자랐으나 아파서 죽음.

 

 

 

밑줄긋기  (도서출판 홍H&book 기준.  이미지 없어 현암사 것 빌려옴)

 

<> 5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9집안사람들은 모두 주인이 대단히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당사자도 그렇게 보이려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 가끔씩 몰래 그의 서재를 들여다보곤 하는데, 낮잠을 자는 그의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9인간으로 태어났으면 교사가 되는 것이 최고다. 이렇게 자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고양이라도 못할 것이 없지 않은가. 그래도 주인의 말을 빌자면 교사처럼 힘든 일이 없다고 한다. 그는 친구가 올 때마다 이러쿵저러쿵 불평을 늘어놓곤 한다.

11인간과 동거하면서 그들을 관찰하면 할수록 그들이 매우 방자한 존재라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3~14원래 이 주인이라는 사람은 뭐하나 남보다 뛰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면서도 무슨 일이건 자꾸 손대려고 한다. --안타깝게도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그러면서도 한번 손을 대면 위장도 약한 주제에 정신없이 열중한다.

46하지만 주인은 5,6분 지나자 그 책을 내동댕이치듯이 책상 위에 던져버렸다. 이번에는 일기장을 꺼내서 이런 글을 써나갔다. --요리집 앞에서 게이샤가 봄가을용 키모노를 입고 하네츠키를 하고 있었다. 의상은 아름다운데 얼굴은 영 보기 싫었다. 어딘지 모르게 우리집 고양이와 비슷한 얼굴이었다.

47고양이는 거기에 비하면 훨씬 단순하다. --무엇보다 일기라고 하는 무용지물은 절대 쓰지 않는다.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주인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은 일기라도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없는 자기의 마음을 어두운 방안에서 발휘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고양이들은 그대로 일기가 되므로 굳이 그렇게 귀찮은 품을 들여서 자기 진면목을 보존할 필요가 없다.

119인간이란 동물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 억지로 입을 놀려서 우습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웃기도 하고, 재미도 없는 일을 가지고 좋아하는 것 말고는 재주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오기를 부려서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이야기를 떠벌려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120자기들은 수세미꽃처럼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초연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들 또한 세상의 명예나 이익에 대해 무관심할 수도 없고 욕심 또한 있다. 경쟁하는 마음, 이기려는 마음은 그들이 일상적로 하는 담소 중에도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한발 더 나아가서는 그들이 평소에 입이 아프게 매도하는 속되고 천한 성질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보일 정도니 고양이인 내 눈으로 보자면 딱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122세상일 맘대로 되지 않는구나. 얼룩이처럼 예쁜 고양이는 요절을 하고, 보기 싫은 도둑고양이는 아무 탈 없이 장난질을 하고 있으니.

142나오는가 싶으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한번 가면 영원히 돌아오는 것을 잊은 듯하다고요. 그건 칭찬인가요?하고 불안한 말투로 물었다. 칭찬이라고 봐야겠지요.

187크게 말하자면 공평성을 추구하고 중용을 사랑하는 하늘의 뜻을 현실화하는 기특한 거사이다. --고양이한테도 나름대로 각오가 있다.

188목구멍 구조만큼은 어디까지나 보통 고양이이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수가 없다.

189남에게 말해줄 수는 없지만 남들이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자각을 그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통쾌하다.

191자기처럼 대단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단 말씀이야.

221학문 좀 한다고 하면 거만해지기 일쑤이고, 가난하게 지내다보면 오기까지 생기니까요. 자기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는 점은 생각지도 않고 공연히 재산 있는 사람한테 대들려고 하니 말입니다. (스즈끼)

263쓸데없는 저항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세상사는 기술이고 공연한 말싸움은 봉건시대의 유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인생의 목적은 말이 아닌 행동에 있다. 자기가 뜻하던 대로 사건이 거침없이 진척된다면 그것으로 인생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스스끼 씨는 이런 편리주의로 성공하였고, 금시계를 차게 되었고, 가네다 부부의 부탁을 받았고, 이런 편리주의로 쿠샤미 군을 설득해 해당 사건을 거의 성사시켰다.

268원래 사랑은 우주적인 활력이다. 위로는 주피터부터 아래로는 지렁이에 이르기까지 이런 일에 있어서는 온몸을 불태우는 것이 만물의 이치이므로 우리 고양이들이 캄캄한 밤에 살벌한 풍류를 일으키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307그래서 나는 드디어 쥐를 잡기로 했다.

313걱정하지 않는 것은 걱정할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다. 아무리 걱정을 해봐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378완전히 직감만 가지고 쓰는 것이라 시인은 다른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없습니다. 주석이니 뜻풀이는 학자들이 하는 일이니 우리 쪽에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제 친구 중에 소세키라는 남자가 일야라는 단편을 썼는데 누가 읽어도 내용이 애매하고 종잡을 수가 없어서 당사자를 만나 도대체 주제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더니 당사자도 그런 건 모른다면서 상대도 하지 않더군요.

380~381야마토 혼!하고 외치며 일본인이 폐병환자 같은 기침을 하였다.--야마토 혼, 하고 신문팔이가 말한다. 야마토 혼, 하고 소매치기가 말한다. 야마토 혼이 일약 바다를 건넜다. 영국에서 야마토 혼의 연설을 한다. 독일에서 야마토 혼의 연극을 한다. --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본 사람도 없다. 듣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만난 사람도 없다. 야마토 혼은 그렇다면 신선 같은 것인가.

 

<> 33(서양인들은 강하니까) 긴 것에는 감겨라, 강한 것에는 휘어져라, 무거운 것에는 눌려져라 하고 그렇게 비굴하게 살다니 너무 불쌍한 인생 아닌가. 제발 같은 입으로 일본인이 잘났다고 말하지 말기 바란다.

36옷을 입고 경쟁하지 못하면 괴물의 차림새로 경쟁을 한다. 벌거숭이는 벌거숭이대로 어떻게든 차이를 두려고 한다. 이런 점을 보아도 인가는 도저히 옷을 벗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82큰사건만을 이야기하고 작은 사건을 빠뜨리는 것은 예로부터 역사가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폐단이다. 주인의 흥분도 작은 사건이 있을 때마다 더욱 정도가 심해져서 끝내 큰 사건을 일으킨 것이므로 그 과정을 순서대로 설명해가지 않으면 주인이 얼마나 흥분했는지 제대로 알기 힘들다.

119메이테이가 금붕어 먹이라면 스즈키는 짚으로 엮은 곤약이야. 그저 혼자서 미끌미끌하게 부르르 떨고 있을 뿐이지.

120자기 빵은 자기 마음에 맞게 자르는 것이 가장 좋아. --그러나 적합하지 않게 태어났으면 세상에 맞추지 않고 그냥 참던가, 아니면 세상이 나한테 맞춰줄 때까지 참을 수밖에. --자기 몸에 전혀 맞지 않은 양복을 억지로 입다보면 찢어지게 되어 있네.

125스즈키는 돈과 다수에게 굽히라고 가르쳤다. 아마기 선생은 최면술로 신경을 가라앉히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온 진객은 소극적인 수양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으라고 설법하였다.

180세상을 살다보면 얼토당토않은 일이 종종 생긴다. 고집을 부려서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 당사자의 인물 평가는 뚝 떨어져버린다. 고집을 부린 본인은 자기 체면을 세웠다고 굳게 믿고서 그 이후 남이 경멸해서 상대해주지 않는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행복을 돼지의 행복이라고 부른다.

184 양복 외투 숙부님, 간게츠, 메이테이, 가네다 여편네, 가네다, 낙운관 여러 군자들 이렇게 꼽아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치광이와 같은 패인 것 같네. 어쩌면 이 사회는 미치광이들이 모여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소 이치를 알고 분별이 있는 자는 방해가 되니 정신병원에 처박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자들이 보통 사람이고, 병원 밖에서 난리를 치는 자들이 오히려 미치광이라고 해야겠군.

207무능하고 무식한 소인배일수록 나서기를 좋아하며 어울리지도 않는 관직에 오르려하는데 그런 특성은 이렇듯 어린 아기 시절부터 싹트는 모양이다. 그런 성질이 이렇듯 깊고 원천적이니 교육이나 훈계로 고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님을 깨닫는다.

211일본의 인간은 고양이만큼의 기개도 없는 모양이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런 건달들에 비하면 주인은 훨씬 고급인간이다. 무기력하고 무능하다는 점이 고급이다.

228메이지 시대에는 남자라해도 문명의 피해를 입어 다소 여성적이 되어 있기 때문에 쓸데없는 수단과 노력을 들이면서 이것이 제대로 된 방법이다 하고 오해하고 있는 자가 많은데 이런 자들은 개화라는 업에 속박된 기형아입니다. --아무쪼록 솔직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해주셨으면 합니다. 인간은 속에 딴 생각을 품고 있으면 그것이 화근이 되어 불행의 원천이 됩니다.

253냉담함은 인간 본래의 기질이고, 그런 기질을 숨기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 솔직한 사람이다. 이럴 때 냉담함 이상의 무엇인가를 바란다면 그야말로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284아무튼지 여자는 전혀 필요가 없는 존재야. 하고 주인이 말했다.

330요즘 사람들의 자의식이라는 것은 자기와 타인 사이에 골이 깊은 이해관계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일세. 그리하여 이 자의식이라는 것은 문명이 진보될수록 하루가 다르게 예민해지니까 나중에는 일거수일투족도 자연스럽게 할 수가 없게 되지. --자나 깨나 나만 찾고 이런 나가 온 사방에 붙어 다니니까 인간의 행위나 언동이 인공적으로 치사해지고 스스로 답답해지기만 하고 세상 속이 괴로워지기만 하니,---

331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나한테 이득이 될까, 어떻게 하면 손해를 보지 않을까 하고 자나 깨나 그 생각만 계속하니까 당연히 탐정이나 도둑처럼 자의식이 강해지지 않을 수 없네. 문명의 저주야. 옛 사람들은 스스로를 잊으라고 가르쳤지. 요즘은 스스로를 잊지 말라고 하니 완전히 반대가 아닌가. 시종일관 자기라는 의식으로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지. 항상 초조한 지옥이야. 세상에서 제일 가는 약은 바로 스스로를 잊어버리는 약일세.

351제 생각으로는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귀중한 것이 바로 사랑과 아름다움이라고 봅니다. 우리의 정서가 우아하게 되고, 품성이 고결하게 되고, 감정이 세련되는 것 또한 바로 이 두 가지 덕분입니다. (도후)

367속 편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을 두드려보면 어딘가에서 서글픈 소리가 난다.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도쿠센 씨의 발도 여전히 땅바닥을 밟으며 다닌다. 속이 편할 지도 모르지만 메이테이 선생의 세상은 그림에 그려 놓은 듯한 세상이 아니다. 간게츠 씨는 공 깎기를 그만두고 결국 고향에서 부인을 데리고 왔다. 이것이 순리이다. 도후 씨도 10년이 지나면 무작정 신체시를 바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깨달을 것이다. 산페이 씨의 경우는 물 속에 사는 사람인지, 산 속에 사는 사람인지 도무지 알아보기가 힘들다. 스스키 토두로 씨는 어디까지나 둥글게 둥글게 굴러갈 것이다. 진흙이 묻어도 굴러가지 못하는 자보다는 활개를 치겠지. 고양이로 태어나서 사람 세상에 산 것도 벌써 2년이 되었다. --주인은 조만간 위장병으로 죽는다. 가네다는 욕심 때문에 벌써 죽었다.

374(물독에 빠져서) 나는 죽는다. 죽어서 이 태평을 얻는다. 태평은 죽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나무아미타불, 나마아미타불. 고맙고도 고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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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글쓰기 연습법, 베껴쓰기
송숙희 지음 / 대림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이르노니 - 노력 없는 글쓰기는 없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다 한 글이 좋은 글이라 할 수 있다. 쓰는 이나 읽는 이 두 쪽이 다 만족할 수 있다면 길든 짧든 분량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글을 조금이라도 써본 사람은 안다. ‘글 한 번 제대로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예를 들자면 시작할 때는 분명 ‘수다의 즐거움’에 대해서 써야지 했는데, 마무리 단락에 가면 어느새 ‘잔소리의 폐해’로 변질되고 마는 제 글의 모순 앞에서 낭패감에 휩싸이던 때가 하 몇이던가.

 

 

 

75쪽 - ‘문장을 짧게 쓸 것’, ‘첫 문단을 짧게 쓸 것’, ‘활기찬 표현을 사용할 것’, ‘긍정적인 표현을 쓸 것!’ 헤밍웨이가 근무했던 캔자스시티 스타 신문사의 문장 지침이다. 동시에 헤밍웨이 소설 문장의 특징이며, 세상으 소설가들이 헤밍웨이로부터 배우려는 문체의 핵심이다. 헤밍웨이는 신문기사를 쓰며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고, 신문기사를 쓰며 글쓰기를 단련했다. 예나 지금이나 신문기사는 단순하고 명료하며 정확한 것이 생명이다. 그래야 가독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재능이 아니다. 글쓰기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재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글쓰기는 오히려 기술에 가깝다. 이는 공부가 재능이 아니라 기술인 것과 같다. 가끔씩 쓴다는 것에 대해 지나친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 그것이 재능이나 예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글쓰기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어디에나 예외는 있다. 그리하여 드물게 예술가적 재능을 발휘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그건 그야말로 특별한 경우이다. 그러니 쓰고 싶다면 미리 기 꺾일 필요는 없다.

 

 

 

 

64쪽 - 나는 백석의 새로운 시를 만날 때마다 노트에 한 편 두 편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묘한 흥분과 감격에 휩싸여 손끝은 떨리고 이마는 뜨거워졌다. 나는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필사했다. 그런 필사의 시간이 없었다면 내게 백석은 그저 하고 많은 시인 중의 하나로 남았을 것이다. 그가 내게 왔을 때, 나는 그의 시를 필사하면서 그를 붙잡았다. 그건 짝사랑이었지만 행복했다. -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중에서 안도현

 

 

 

 

 

132쪽 - 미켈란젤로와 다 빈치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 지금껏 회자되는 작품을 남긴 슈퍼스타급 화가다. 반면에 라파엘로는 평범하게 태어나 노력만으로 스타 반열에 오른 화가다.

라파엘로가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을 때 이미 미켈란젤로와 다 빈치는 화가로서 명성을 구가하고 있었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그들의 재능과 명성 앞에 참패할 게 뻔했다. 선배들의 작품을 꼼꼼하게 살피면서 라파엘로는 자신에게 부족한 능력과 기술을 알아냈다. 그리고 피렌체로 떠났다. 시의회 홀을 찾아가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밑그림을 살펴보며 그들의 스케치를 따라 그렸다. 라파엘로는 선배 화가들의 아이디어와 기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긴 세월과 노력을 바쳤다. 그 결과 미술사학자들은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라파엘로를 승자로 꼽기도 한다.

 

 

 

 

 

 

 

  글쓰기는 다른 예술 분야와는 달리 아무나 도전할 수 있다. 다만 재능이 덜 필요한 만큼 감각과 열정은 더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예민한 손끝과 묵직한 엉덩이가 준비물로 필요하다. 그 두 도구를 활용해 읽고 쓰기만 하면 된다. 우선 ‘예민한’ 감각으로 다른 사람의 잘 쓴 글을 베껴 써본다. 좋은 시나 산문을 읽고 베껴 쓰다 보면 감이 온다. 지속적인 이 연습은 자연스레 나만의 문체와 나만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이때도 사람들은 착각한다. 머리(재능)와 가슴(감각)이 글을 쓰게 하는 줄. 단언컨대 글을 쓰는 원동력은 그 둘 다 아니다. 쓰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묵직한’ 엉덩이다.

 

 

 

 

 

81쪽 - 하루키는 말없고 근면한 마을의 대장장이처럼 누군가의 부탁이 없어도 꾸준히 부지런히 써간다고 한다. 나는 하루키의 이 방식은 전업자가가 아닌 생업이나 학업 등 우선은 더 바쁘고 중요한 일들 틈에서 글쓰기를 훈련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특히나 유용하며, 베껴 쓰기야말로 우리들에게 아주 걸맞은 글쓰기 훈련법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한 편씩 신문칼럼을 베껴 쓰는 것은 그가 말한 글쓰기에 반드시 필요한 근육인 집중력과 지속력을 강화하는 데 더없이 좋다. 하루키나 작가들은 쓸 게 없어도, 쓰지 못해도 무조건 일정 시간 책상 앞에 앉아 의식을 집중한다. 아직 쓸 게 없는 우리들은 매일 일정시간 신문칼럼을 베껴 쓰며 집중력과 지속력을 훈련시키기에 그만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하루키의 말처럼 ‘견뎌나가는 사이에 자신 속에 감춰져 있던 진짜 재능과 만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글 한 번 써보고 싶은가? 우선 취향에 맞는 책을 읽어라. 좋은 글을 쓰고 싶은가? 잘 된 글을 필사하라. 글을 오래토록 잘 쓰고 싶은가? 당장 엉덩이부터 의자에 앉힌 뒤 손가락을 자판에 올려라. 그리고 두드려라. 네 튼실한 엉덩이가 의자의 존재를 잊을 정도가 되고, 더 이상 예민해질 손끝이 없어질 정도로 쓴다는 것에 푹 빠지게 된 당신은 온몸으로 이렇게 적게 될 것이다. 글쓰기는 재능이 아니라 노력(기술)만으로도 이룰 수 있는 가장 매혹적인 단계 중의 하나라고.

 

 

 

 

 

 

*** 생일을 맞이하야 알라딘 친구들이 보내준 책과 음반.

     원하는 걸 말하라기에 뻔치 좋게 넙죽 받았다.ㅠ

     고맙습니다, 님들^^*

     그 중 한 권이 이 책인데, 글쓰기 입문자는 한 번 쯤 읽을 만하다.

     동어반복이 심해 나로선 별을 네 개만 줄 수밖에 없었다.

     1000자 칼럼 열심히 베껴 쓰다 보면 글 잘 쓰게 된다는 게 요지.

     웬만하면 글쓴이들의 노고를 생각해 별 다섯을 쏘는 데 이 책은 깊이와 넓이가 살짝 부족했다.

 

 

     고흐의 아몬드 트리 시리즈는 딸내미 선물. 센스 있네! 일인용 찻잔 맘에 쏙 든다.

     차 마시면서 스맛폰질 열심히 하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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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2-14 0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프로 공감입니다. 요즘 제 화두랍니다^^ 글 잘 쓰고 싶어요~~

댓글 수정,
언제 사진을? ㅎ
오홋 고흐 그림의 우아한 잔이랑 스마트폰 케이스 딱 제 스타일입니다. 역쉬 센스있는 따님^^

다크아이즈 2014-02-14 12:26   좋아요 0 | URL
이미 충분히 잘 쓰고 계시잖아요. 독서 관련 기고하신 글 보면 고수 중의 상고수^^*
세실님 덕에 책 언능 읽고 잠시나마 달아올랐어요. 열심히 쓰자, 뭐 이런 다짐.
작심 세 시간 갔지만요. 늘 고맙고 사랑스런 님~~
찻잔은 쪼깨 이쁜 것 같아요. 흐흐~~

비로그인 2014-02-13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리 기 꺾인 사람 여기있어요. 팜므느와르님. ~~^^




안도현의 글은 읽다가 울컥하네요.
필사를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저렇게 많은 작가들이 필사를 하셨군요.. 음..

한글 한글 모두 다 꼼꼼하게 읽어보았는데 모두 명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제게.. ~~

다크아이즈 2014-02-14 12:29   좋아요 0 | URL
에이, 새벽님 때문에 기 꺾일 사람은 있지요.(여기, 저요!)
에세이적 감수성이 빼어난 님 글 보면서 건조한 문체를 구사하는 저, 막 반성하고 부럽고 그랬지 뭡니까?^^* 깊어져야 님처럼 쓸 수 있지요. 눈여겨 보고 있답니다.

페크pek0501 2014-02-13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벌써 이 책을 사서 읽으신 건가요?
저도 이 책을 보관함에 담아 놓고 살까, 말까 결정을 못했어요.
이런 류의 책은 여러 권 읽었지만 여전히 끌리거든요.

필사하는 노력에 대하여 공감 공감...

다크아이즈 2014-02-14 12:30   좋아요 0 | URL
새 글이 안 올라오네요.
산뜻한, 청명한 글 기다립니다.
페크언냐님 페이퍼 읽으면 막 관련 책이 무조건 사고 싶어지는 심리는 뭘까요?
그만큼 관련 지어서 글을 잘 생산해낸다는 뜻이지요. 역시 배울 게 많은 님~~

감은빛 2014-02-13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저도 글쓰기에 대해 고민이 많습니다.
다 제대로 읽진 않았지만, 글쓰기 책들은 제법 사모았는데,
그거부터 제대로 읽어야지 생각 중입니다.(여전히 생각만 -_-;;)

그래도 글을 이정도라도 쓰는 건 예전에 좋아하던 작가들 글을 열심히 배껴쓴 덕이 아닌가 싶어요.

다크아이즈 2014-02-14 12:33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 정도' 라니요 - 감은빛 님은 그 정도 선이 아니지요. 이미 어느 경지를 넘어섰잖아요. 잘 쓰셔도 고민이 되는 게 글쓰기인가 봐요. 열심히 배울게요. 역시 감은빛 님도 베껴쓰기 과정을 거치셨군요.^^*

2014-02-13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4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4-02-13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글 잘 쓰고 싶어요. 글 잘 쓰신분들 글 읽으면 정말 부럽고 부끄럽고 그렇더라구요.

다크아이즈 2014-02-14 12: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부럽고 부끄럽고.... 이런 복합적인 심사.
꿈섬님도 열글 쓰시고 잘 쓰는 분인데도 이런 고민을 하시는군요.
끝이 없는 게 글 수련 과정인가 봅니다.^^*

기억의집 2014-02-14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저는 글쓰기도 재능이라고 생각하는데... 글을 쓰는 관점이 사람마다 달라서 글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것 같아요. 저는 죽어도 감상적인 글을 못 써요. 아무리 노력해도 그게 안 되더라구요.좀 차분하게 마음이 느끼는, 움직이는 글을 쓰고 싶는데 지식위주의 글을 선호해서 그런지 안되더라구요. 단 글은 쓰면 쓸수록 늘어나긴 하지만,,,,, 글쓰기에 재능 있는 사람은 못 쫒아갈 것 같아요.

다크아이즈 2014-02-14 12:42   좋아요 0 | URL
재능 맞아요. ㅋ 그런 분들은 글쓰기 관련, 범인들이 하는 고민을 아무래도 덜하겠지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재능 없는 보통 사람들도 노력하면 어느 정도 선까지는 쓸 수 있게 된다는 거였어요. 일등 아닌 이등은 할 수 있다, 뭐 이정도 타협안이요.
그나마 글쓰기는 타 예술 분야와 달리 노력만으로도 어느 정도 성과를 볼 수 있는 분야 같습니다. 글은 쓰면 쓸수록 는다, 는 님 말에 동의하는 거지요. 물론 재능 있는 사람은 열외예요. 그들은 인간이 아닌 게야. ㅠㅠ

노이에자이트 2014-02-14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년에 노트 1000페이지 이상(하루 3페이지 이상) 쓰기를 10년 이상 하고 있는데 그래도 일필휘지는 안됩니다.글을 한번 쓴 뒤에는 반드시 다시 검토해야겠더라고요.꼭 주술관계가 애매한 비문이 나오니까요.

다크아이즈 2014-02-15 09:22   좋아요 0 | URL
노이에님은 베껴쓰기가 아니라 노이에님의 글을 쓰시는군요. 실은 저도 그렇습니다. 베껴쓰기는 눈과 맘으로만 하게 되고 실제 글을 씀으로써 훈련합니다. 하루에 천 자 정도... 일필휘지는커녕 만날 헬렐레~~ 이런 상태에서 씁니다.
비문 생산이야말로 기본적 오점(누군가 시는 비문이 허용된다고 역설하는데 이것도 갖춘 뒤에나 가능한 일이지요.)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완벽하게 쓴다는 게 쉽지는 않아요.

오늘도 천 페이지를 겨냥하는 노이에님을 위해서 또 저를 위해서 파이팅을 외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2-15 11: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팜므느와르 님도 힘내세요.

테레사 2014-02-19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재능이 아니라 감각과 열정이라고 한 말이, 뜨끔하면서도....희망을 주네요^^.

다크아이즈 2014-02-23 11:02   좋아요 0 | URL
최고로 잘쓰려면 재능이 필요하겠지만
잘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겐 재능보다는 노력만으로도 가능한 게 글쓰기라고 생각해요.^^*

성에 2014-03-07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오니 사람 사는 동네 같습니다. 너무 좋은 분위기.
희망이 오래도록 현실이 되지 못하면 < 저주 >가 된다고 합디다.
내게 희망은 저주의 단계에 들어 있어요 . 그만큼 나에게 희망은 절실하게 닥아 옵니다.
내겐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 만큼 꼭 이루고 싶은 마음은 더욱
초조하지요. 글쓰기에 대한 성찰 , 하마 뒤뚱대는 내게 더없이 좋은 가르침입니다.
힘이 나고 또 용기도 생깁니다.
재능 보다는 노력, < 노력>은 아직 자신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