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주의 ‘발칙 칼럼’ ] 한국의 남성들에게;“무슨 남자가 그것도 못 해?”
마립간 : 그래, 나는 못 한다. 니가 해라.
“무슨 남자가 이렇게 숯불을 못 피우세요?” “그럼, 누가 그렇게 숯불을 잘 피우는데요?” (재연 상황으로, 실제 상황과는 말투가 약간 다릅니다)
휴대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 전원주택의 석양 무렵, 분위기 좋았다. 문제는 숯불. 남편은 숯불이 아니라, ‘좀 데워놓은 숯’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의외의 반격에 ‘숯불 잘 피우는 남자’를 떠올려봤다.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늑대와의 춤을’에 케빈 코스트너? ‘내 머릿 속의 지우개’의 정우성? 음…. 아무도 아니었다.
내가 아는 ‘~피우는 남자’는 주로 담배나 바람 쪽에 강했지, 숯불은 영 아니었다. 연탄· 가스 보일러 주택에서 살다 중앙난방 아파트에 사는 ‘보통 서울 남자’에게 숯불을 잘 피우지 못한다고 타박한 건, 분명 억울한 일이었겠다.
여자들은 때로 남편을 ‘돈 벌어주는 아저씨’로 생각하면서도 그에게 심심찮게 ‘장쾌한 남성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잖다. 군살없이 적당한 몸에 돈 잘 벌고, 아내에게 충실하고, 아이에게 온화한 아버지 정도가 아니다.
직장상사의 호출에 단박에 일요일 저녁상을 박차고 나가면 “무슨 남자가 그렇게 비굴하냐”, 친구의 전화일 경우 “무슨 남자가 친구라면 껌뻑 죽느냐” 버전이다. 복권에 단 한번도 당첨되지 못하면 “무슨 남자가 그렇게 못 찍냐”, 남들 다 알아듣는 농담을 듣지 못하면 “무슨 남자가 그리 센스가 없냐”, 아이가 어느 대학 어느 과에 원서를 넣을지 확실하게 정해서 반드시 ‘합격’을 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남자가 그렇게 감(感)이 없냐”.
물론 이런 생각에는 백그라운드가 강하다. ‘남성은 여성보다 용맹스럽고 호전적이고 활기차며 창조능력이 천재적이다’(1871, 다윈 ‘인류의 유례와 성 선택’) 같은 ‘주술적’ 분석은 ‘남성성=전지전능’ 같은 허황한 신화를 만들어냈다.
극장에서 짜증나는 건, 무서운 장면에서 “꺄악” 하고 남자 품에 안기는 여자 모습이 아니다. 15초만 기다리면 다음 장면이 나오는데 “오빠, 저건 무슨 장면이야?”라고 묻는 ‘여동생들’에게 ‘오빠들’은 “저건 남자가 회상하는 거야” 식으로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남자에게 ‘지적 만족감’을 주고 싶은 여성의 ‘배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런 여자들이 결혼하면, “무슨 남자가…”를 연발할 확률이 더 높다. 헤밍웨이는 “남자는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무책임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런 말 믿고 ‘나, 자신있다구’를 연발하면, 여성들의 “무슨 남자가”의 압박, 당신의 일생을 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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