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페미니즘 의견에 대한 질문과 답변

 

나의 글에 대한 의견과 질문이 있어 나의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나는 안티페미니스트, 두 번째 이야기 번외의 제목에 달린 댓글이지만, 질문은 나는 안티페미니스트, 두 번째 이야기시리즈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 나는 안티페미니스트, 두 번째 이야기 번외 http://blog.aladin.co.kr/maripkahn/7513273

 

질문자는 곰곰생각하는발 님이다. (이하 곰곰발 님으로)

 

제가 보기엔 마립간 님은 여성혐오자가 아니라 강박적 양성평등주의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공정을 이유로 똑같은 기준을 대는 것은 논리 모순적 측면이 있씁니다. 골리앗과 다윗에게 공정한 기회와 잣대라는 기준으로 싸움을 붙일 수는 없잖습니까. 골목 상권을 위해 기업형 마트에게 패널티를 부과하는 이유도 똑같은 기회를 줄 때 골목 상권을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 양성평등주장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정도 여성의 자립 기반이 균등하게 이룰 때 비로소 양성평등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명백한 사회적 불평등 관계에서 내가 4를 하니 너도 공정하게 4를 하라,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선 나는 정신과적 질환에 강박 신경증이나 강박성 인격 장애 기준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평균보다 강박성 성향을 가진 것은 맞다. 이것은 중복게제논란에서도 언급된 것이다. 나는 양성 평등주의자다. 그리고 곰곰발 님의 양성 평등주의자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데, 자유주의적 여성주의 의미도 갖는다. 나는 문화적 여성주의보다 자유주의적 여성주의를 선호한다.

 

그러나 나는 자유주의적 여성주의가 옳고, 문화적 여성주의가 틀렸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전제 조건에 따라 문화적 여성주의가 옳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전제 조건에서는 아직 결판나지 않는 논란, 논쟁의 상태에 있는 경우도 있다. 나는 양성 평등이든, 자유주의적 여성주의든, 적절한 설명이나 반례를 제시하면 나의 의견 주장을 철회하겠다.

 

평등의 관점에 따라, 기회의 평등, 조건의 평등, 결과의 평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기회의 평등만이 평등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내가 대화를 나눈 대부분은 100% 기회의 평등과 100% 결과의 평등은 틀렸다고 이야기 한다. 나 역시 그렇다.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 중에는 조건의 평등을 위한 제도를 도입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정당에서 실시하는 여성할당제, 대입에서의 지역할당제, 대형 할인점 영업시간 제한 등) 나는 이런 제도를 반대하지 않는다.

 

2003년 글이나 2015년 글에서 어느 부분이 조건의 평등’에 대한 제안을 반대하는 것으로 비춰졌을까 궁금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립간 2015-05-06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aladin.co.kr/maripkahn/910618
 

 

* 나는 안티페미니스트, 두 번째 이야기 4

 

* 가부장제

 

<페미니즘의 도전>을 정독을 하면, ‘여성주의라는 말을 고수하면서, 남성을 언급하지만, 중간에 가부장제을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여성주의가부장제라는 개념에서 비교적 일관성을 갖는다. (내 입장에서 국소적 반박은 남아 있으나.) 그러나 반가부장제는 여성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대개 여성이겠지만,) 남성도 그와 같은 주장을 했다. 바로 곰곰생각하는발 님이다.

 

* 불알후드 ; brotherhood의 한국식 표기'이다.

 

불알후드가 언급된 페이퍼는 각자 알아서 찾아보시기 바란다.

 

나는 곰곰생각하는발 님에게 반문하려 했지만, 하지 않았다. 이제 다시 묻게 된다. ‘가부장제를 대체하는 제도는? <페미니즘의 도전>의 글쓴이는 여성주의를 주장할 것이다. 여성주의는 공감, 배려, 소통, 이런 것들을 뜻한다.

 

진화론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게임의 법칙에 의해 환경적 조건이 불알후드여성주의의 균형점을 잡아준다.

 

이하의 글에서는 용어를 좀 바꾸겠다. 장제와 성주의는 성차별적인 용어이기도 하지만, 나도 내 스타일이 있다. 가부장제는 수직적 위계주의, 여성주의는 수평적 무위계주의로.

 

수직적 위계주의의 완전해체와 수평적 무위계주의로 완전 대체는 가능한가? 1) , 2) 아니요. 2) 번을 선택한 사람에게 다시 묻는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목표는 어디까지인가? A) (거의) 남성만 존재하는 사회의 수직적 위계질서정도, B) 남녀 혼합된 사회의 수직적 위계질서 C) 여성만으로 형성된 사회의 수직적 위계질서 정도. 여성만으로 구성된 수직적 위계질서 다른 A)B)에 비해 수평적이라는 근거는 없지만, 일단 가정하고.

1) 예와 2) 아니오- C)를 고른 사람에게 다시 묻는다. 어떻게?

 

나는 1)2)-C)에 대해서 비관적이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의 책에 언급한 여성지배자가 여성학 전공자이며, 진중권 교수님의 수평 폭력(이는 수평적으로 보이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시사), 여자 고등학교에 학교 폭력이 존재하는 점이 내가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근거들이다. 옛 속담에 호랑이기 주인인 산에 호랑이가 없어지면, 늑대가 주인이고, 늑대도 없어지면 토끼가 주인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현재 인간의 소비하는 에너지에 대한 대책으로 3가지를 제시했었다.

1) 또 다른 지구(와 같은) 행성의 발견

2) 예수님의 재림으로 물질적 한계 완전 극복

3) 문화-유전 공진화로 인한 소비적 인간성에서 절제節制적 인간성으로 진화

 

나는 다시 양성평등, 페미니즘에 관련한 2가지 대책을 제시한다.

1) 종교적 힘(절대자)에 의한 남성의 개과천선

2) 문화-유전 공진화로 인한 남성의 수직적 위계질서 성향에서 수평적 무위계질서 성향으로 진화.

 

나의 상상력의 한계는 여기까지다. 다른 분들이 대책을 제시해 주시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그리고 보면 <페미니즘의 도전>의 글쓴이 정희진 씨는 생략된 전제 조건을 고려하면 옳은 주장을 한 것이다. 2)번의 방법이다. 하이드 님이 언급했던 전체적인 사람들의 인식이 올라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인식 수준을 올릴 수 있다. 유전-문화공진화를 통해. 진화에 필요한 시간이 얼마가 될지는 각자 생각해 보시도록. 생략된 전제 조건이란 진화란 무목적적이며 조건에 퇴화(즉 남녀불평등의 악화)의 가능성을 말한다.

 

여기서 세 번째 제안을 한다. 여성학을 전공하시는 분, 또는 사회학을 전공하시는 분, 인류 역사상 수평적 무위계 사회가 있었는가? 수평적 무위계 사회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에 가장 근접한 사회는 무엇이었는가? 학위 논문으로 괜찮은 주제가 아닐는지. (이미 논문이 나와 있다면, 연과 결과 좀 알려주세요.)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맬 깁슨의 주연으로 나온 << 브레이브 하트 >> 에 보면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냐는 적의 질문에 ˝ 프리덤 !!!!!!!!!!!!!!!! ˝ 이라는 말을 남기고 죽습니다. 전 이 부분에서 꽤 웃었는데, 왜냐하면 < 자유 > 는 인간의 절대적 욕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러시아`가 자유를 얻자 많은 사람들은 기대에 부풀었지만 어느새 옛 소련 사회주의`를 옹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를 얻었으나 막상 규율 사회가 그리운 거죠. 이건 한국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자유보다는 어느 정도의 규율 사회`에 대한 향수처럼 보입니다. 수직적 가부장제를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규율 억압 사회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반면 수평적 모계사회는 자유 사회`죠. 규율 사회가 지속되면 당연히자유 수평 사회를 열망하게 되고, 자유 방임 사회가 되면 규율 사회를 희망하게 됩니다. 결국 한쪽만 되면 반대편에 대한 옹호가 시작된다는 점입니ㅏ. 그렇기에 규율 억압 사회와 자유 방임이 적절히 혼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 시장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 시장 경제에서 자유 방임은 대기업만 살찌는 구조`죠. 대기업은 늘 국가의 개입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끼리 그냥 공정한 경쟁을 하겠어. 이거거든요. 하지만 이건 당연히 대기업만 이기는 개임 아닙니까. 국가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대기업에 패널티를 주는 방식. 저는 이 두 개가 혼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립간 2015-05-06 10:25   좋아요 0 | URL
곰곰발 님과 같은 의견으로 저는 안티페미니스트의 입장의 선 것이죠. 다시 말씀드리면, 저는 양성 평등이나 페미니즘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이번 시리즈은 페미니즘의 입장을 <페미니즘의 도전>의 페미니즘으로 한정하여 반대합니다.)

대개의 페미니스트의 주장은 객관성이나, 생물학적 객관성, 수직적 위계 질서의 객관성에 반대합니다. 저는 그런 개념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틀린 개념에 틀린 실천 방법이 제안되기도 합니다. 저의 주장은 균형점이 필요하다는 것이구요.

마립간 2015-05-06 11:26   좋아요 0 | URL
곰곰발 님의 의견에 대한 제 의견을 페이퍼로 작성해 올렸습니다. 가독성을 위해 경어체 대신 평서체로 작성되었습니다.
 

 

* 나는 안티페미니스트, 두 번째 이야기 번외

 

나는 안티페미니스트, 두 번째 이야기는 상대가 있는 글이라고 이야기하고 시작했다. 원래 나의 기대는 하이드 님이 글을 쓰고 내가 댓글을 쓰려 했는데, 현재 내가 글을 쓰고 댓글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하이드 님은 답변 대신 여성 혐오를 검색해서 아래 웹페이지를 알려주셨다. 우선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내 글, 내게서 여성 혐오또는 여성 혐오자를 떠올리게 하는 모양이다. 나는 절대적 객관성은 없다고 생각하다. 거의 절대적 객관성이 존재한다. 사회의 객관성은 사회가 결정한다. *** 님과 나의 둘 사이의 객관성은 두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 님, 나를 원소로 하는 집합에서는 나는 50%의 여성 혐오자다.

 

http://blog.naver.com/euglena1106/220274463583

 

둘 사이의 객관성을 확장하기 위해 안해내가 여성 혐오자가 같냐고 물었더니 안해는 아니라고 한다. ***, , 그리고 나의 안해를 원소로 하는 집합에서는 나의 여성 혐오의 객관성은 33.3%로 준다. (내가 여성 혐오자가 아니거나 나와 안해는 불알후드 brotherhood이거나.)

 

진중권 선생님 글이 있는 웹페이지를 인용한 것은 꽤 적절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논술을 배울 때,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권위에 기대기 방법이다.

 

그런데, 나는 진중권선생님을 좋아하지만, 나는 진중권 선생님을 김규항, 강준만 선생님과 비교하여 경합하는 정도의 권위를 부여한다.

 

위 웹페이지는 다른 알라디너의 서재에도 인용되었는데, 그 분이 !’라고 감탄할 때, 나는 우우한다. 이런 트위터 댓글을 읽으면 열광과 감탄은 짧게, 성찰은 깊고 길게 해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녀불평등 111위 인정한다. (물론 표준편차 등 통계적 면을 언급하지면, 한도 끝도 없다.) 1위는 아이슬랜드이고 2013년 자료다. (발표연도가 2013년이고 조사년도와 조사방법은 원자료를 확인해야 한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19245

 

1위 아이슬랜드와 111위 한국의 남녀불평등의 차이가 페미니스트 때문일까. 만약 누군가 아이슬랜드에서 페미니스트의 기여한 바와 양성 평등이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사회학 연구 자료를 보여준다면, 나는 항복을 선언하겠다. 그리고 항복 선언에 대한 대가로 민우회3년간 후원하겠다. (최소 금액으로)

 

진중권 사모님은 양성 평등한 가정家庭이라고 생각하시면 사실까?

 

내가 생각하는 바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양성 평등 여부에 작용하는 기제는 페미니즘이 아니고, 사회제도 특히 경제 (불)평등이다. 트위터 캡쳐 사진의 가장 먼저 나오는 글은 불평등의 핵심은 경제적 불평등이라고 이야기하고 시작한다. ‘경제 취약층의 남성은 경제적 지위에서 여성들과 사실 큰 차이가 안 나.이 문장에서 페미니즘이 먼저 떠오르나? 나는 사회적 구조 모순이 경제 불평등을 매개로 남녀불평등을 조성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립간 2015-05-02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 휴일은 인터넷을 안 하는 이유로 어제 쓴 글만 오늘 알라딘에 올립니다.

마립간 2015-05-02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권 선생님의 트위터 글에 의하면 일본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군입대를 찬성, 마초주의 남성은 여성의 군입대를 반대했다고 한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2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엔 마립간 님은 여성혐오자`가 아니라 강박적 양성평등주의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공정을 이유로 똑같은 기준을 대는 것은 논리 모순적 측면이 있씁니다.
골리앗과 다윗에게 공정한 기회와 잣대`라는 기준으로 싸움을 붙일 수는 없잖습니까.
골목 상권을 위해 기업형 마트에게 패널티를 부과하는 이유도 똑같은 기회를 줄 때 골목 상권을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
양성평등주장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정도 여성의 자립 기반이 균등하게 이룰 때 비로소 양성평등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명백한 사회적 불평등 관계에서 내가 4를 하니 너도 공정하게 4를 하라,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립간 2015-05-04 07:51   좋아요 0 | URL
엉엉 (의성어), .. 면벽수련하는 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야 면장을 하는군요.
저에 대해서 비교적 정확한 판단을 하셨습니다. 저는 강박적 성향이 있죠. 양성평등주의자입니다. 곰곰발 님이 이야기한 양성 평등은 자유주의 여성주의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이 역시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주장을 강박적으로 주장하고 관철하지 않습니다. 모병제 지지에서 징병제로 지지로 전환은 저에게 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바꿨습니다. 적절한 설명만 있으면 여성주의에 대한 모든 주장을 철회할 수 있습니다.

곰곰발 님이 무의식적?으로 한 마트의 비교, 관점에 따라서는 저 주장을 지지하는 내용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사람과 쥐처럼 페이퍼로 쓰지요.

2015-05-03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4 0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3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4 0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나는 안티페미니스트, 두 번째 이야기 3

 

* 여성의 군 징병제

 

10년 전부터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나는 나 스스로를 보수주의라고 생각한다. 를 인보다 앞세운다. 자유를 평등보다 앞세운다.

 

나는 자율의 가치를 높게 사기 때문에, 징병제보다는 모병제가 나의 가치관에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서를 하면서 몇 책에서 징병제가 모병제보다 실제로 훨씬 건전한 군대를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발적 참여가 건전한 군대를 만든다는 생각과 정반대였다. 물론 건전한 군내는 사회 전체에도 긍정적이다.

 

이유는 군 특성상 폭력적인 부분이 있고, 이는 건전한 자원(남자)의 지원을 감소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사회적 하류 계층의 지원은 증가한다. 한번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양성 되먹임이 작용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모병제는 군 전체의 질을 저하시키고, 징병제는 이를 방지한다. 원리적으로 뉴욕 시의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같다. 그래서 나는 공리주의 원리를 적용하여 모병제 지지에서 징병제 지지로 의견을 바꿨다.

 

이들 책에서는 여성의 군 입대도 같은 방식에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성의 군 징병제는 최선인가?

 

(댓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반론도 내가 하겠다.) 여성의 군 입대는 여성 징병제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의 군 입대는 가능하나, 부사관이나 장교로 근무한다. 선발과 복무에 관해 bias가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여성 군 징병제는 두 번 있었다. 하나는 중국의 태평천국의 난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이스라엘이다. 세계사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태평천국의 난당시의 여성 징병제는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환영받지 못했고, 군사력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의 병역 업무를 고려하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현재 이스라엘의 여성 징병제의 효과는 어떠한가? 내가 알고 있는 바 없다.

 

여성 일각의 여성 징병제 반대의 근거는 모성의 보호다. 이스라엘의 경우 항시 전쟁을 하니 여성의 징병제가 실시되지만, 여성의 징병제가 항시 전쟁을 하는 나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충분히 고려해 볼 사항 정도이다. 찬성 50%, 반대 50% 정도. 연구가 사회 공리적 관점에서 약간의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을지 모르나 전면적인 시행에 있어 모든 여성을 군입대 시키는데 대한 비용이 과도하게 들 것으로 예상한다. 결국 국소적인 검토에서 긍정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전면적 사회 검토를 해 보면 실이 득을 상쇄할 것으로 예상.

 

모성의 보호를 전면에 내세운다면, 남성에 대해 양성 평등을 주장하는 논리의 기반에 모순을 보여준다. 아마 자유주의 페미니즘 liberal feminism이 여성 징병제를 찬성하는지 알 수 없지만, 문화적 페미니즘 cultural feminism이 반대할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두 번째 제안을 한다. 여성학을 전공하시는 분, 또는 사회학을 전공하시는 분, 이스라엘의 여성 징병제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학위 논문으로 괜찮은 주제가 아닐는지. (이미 논문이 나와 있다면, 연과 결과 좀 알려주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나는 안티페미니스트, 두 번째 이야기 2

 

원래 계획은 1) 일반인이 착각하는 통계적 오류의 양성 불평등, 2) 내가 생각하는 양성 평등과 그 계량計量, 3) 내가 양성 평등을 지지하는 이유 등을 먼저 쓰려고 했으나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주는 관계로) 이번 댓글 대화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었던 성희롱과 데이트 비용’, ‘여성의 군 입대에 문제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한다. (나머지 쓸지 말지 모르겠다.)

 

* 성희롱과 데이트 비용

성희롱, 성폭력, 성추행 등, (이 문제를 성불평등으로 생각을 하든 아니던) 성 관련 문제(이하 성문제)는 내가 아는 한, 답이 없다. 성문제가 해결책을 가지려면, 어떤 통제 변수와 상관성이 있어야 한다. 학력이 높으면 성문제가 적다 또는 많다. 경제력이 높으면 성문제가 적다 또는 많다. 그런데, 내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경제력, 학력, 지역, 정치적 보수-진보 성향에 유의한 상관관계가 눈에 띠지 않는다. 즉 통제할 변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희롱을 양성 평등의 주제로 삼으면 해결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혼을 주로 담당하는 변호사에게 물었다.

여성이 남성과 이혼하는 결정적 이유가 무엇입니까?

경제력 상실입니다.

그 이유가 어느 정도 차지를 합니까?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90%가 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일반화가 가능할까요?

다른 변호사와 이야기 해 봐도 비슷합니다.

 

예화 ; 어느 마을에 10쌍의 부부가 있는데, 5쌍이 이혼을 했다. 법원에 제출한 이혼사유는 남성의 외도다. (이것이 통계에 드러난 이유다.) 그런데 조사를 해 보니, 10쌍의 남자는 모두 외도를 했다. 그리고 이혼하지 않은 5쌍은 남편이 경제적 능력이 있고, 이혼한 5쌍은 남편이 경제적 능력을 상실했다. 그러면 외도를 이혼의 이유로 볼 수 있을까?

 

남성이 이혼을 원하는 경우 (본이이든, 상대든) 외도가 가장 큰 원인이다. 반면 여성이 이혼을 원하는 경우는 경제력이 가장 큰 원인이다.

 

2003년 지난 얼마 후 나는 알라디너 닉네임 강쥐님과 대화에서 이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했고, 내 의견에 대해 지지의견은 있었으되, 반론은 없었다. 내 주장은 여성의 성에 대한 대척점은 남자의 경제적 능력이다. 결혼 정보 회사에서 (회사 홍보도 할 겸) 결혼이 잘 이뤄지는 조건을 발표한다. 여성의 조건은 젊음(나이 어림)과 외모다. 남성의 조건은 직업과 돈이다. (어느 분이 여성의 조건이 젊음 1, 외모 2등에서 외모 1, 젊음 2등을 바뀌었기 때문에 트렌드가 바뀐다고 주장한다면 유머로 받아들이겠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대학생 때 주장했을 때는 비웃음만 샀지만, 2000년대 어느 시점에는 진화심리학 계통의 책들을 통해 상식이 되었다.

 

이번에도 나는 비웃음을 살 추측을 제안해 본다. (주장이 아니고 추측이다.)

남성 성희롱에 해당하는 여성의 대척점은 무엇일까? (혹시 눈치를 채셨습니까?) 나는 여성의 경제적 부담의 전가(예를 들면 데이트 비용의 남성 전담)를 떠올린다. ; 결과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원인적으로 작용할까? 잘 모르겠다. 여자가 데이트 비용을 반반씩 부담하면 남성의 성희롱이 줄어든다? 여기서 제안을 한다. 여성학을 전공하시는 분, 또는 사회학을 전공하시는 분, 성문제와 경제부담의 전가가 정말 상관관계가 있는지 학위 논문으로 괜찮은 주제가 아닐는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