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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정 - 일곱개의 시선 - 거문고 독주곡집
허윤정 (국악) 연주 / 씨앤엘뮤직 (C&L)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 우리의 것을 어떻게 현대화 할 것인가.
- 전통의 고수固守와 발전적 변형
(아마도) 서양의 경우 전통 문화에 대한 고민을 동양만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산업 혁명이 그곳에 일어났고 문화적 급변이 일어났다고 해도 그 기반이 바뀐 것은 아닐테니까요.
이에 반해 동양은 서양의 산업사회 이후 식민지를 겪으면 급격한 문화이식을 경험하게 되고 과거의 문화와 융합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 전통 문화와 현대 문화라는 불연속성을 갖게 됩니다.
한 민족의 전통도 완벽한 순수함이란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의 회화를 보더라도 신라를 이어 받았을테고, 중국과 일본의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동남아시아나 서남아시아의 영향을 받았을런지도 모르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한 불연속성 때문에 전통의 유지와 대중적 확대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됩니다. 동양 무술의 경우 과거의 유지할 것이냐 대중 스포츠로 만들어 세계화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 음악의 음계의 경우 서양의 12평균율과 다르다고 합니다. 궁宮은 C, 상商은 D, 각角은 E, 치徵는 G, 우羽는 A라고 이야기 하지만 정확하게 맞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따라서 한국 악기로 서양 음악을 연주하거나 협주를 하면 어색함을 유발합니다. (제가 읽었던 reference를 못 찾겠어요. 틀렸다면 지적해 주세요.) 그리고 서양의 음악은 화음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만 국악은 부조화를 이룹니다. 국악은 부조화속의 조화를 즐긴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런 원리는 제가 국악과 친해지는데 있어 철학적 갈등이었습니다.)
가야금의 경우 12현을 현의 개수를 늘이고 다른 재료로 만들어 음역대를 넓히고 음색을 바꿨습니다. (개량 가야금을 찾아보니 15, 17, 18, 21, 22, 23, 25현 가야금과 저음, 중음, 고음 가야금을 따로 제작하기도 한다고 하네요.)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음역의 확대 보다 12평균율의 음계를 갖추어 서양 악보에 맞춰 연주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문고의 경우 제가 현대의 피아노를 연상할 만큼 기본적 악기였으나 (변화가 없기 때문인지) 국악 안에서도 소외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거문고와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다면 매우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음색만 유지하고 음계를 포기해야 할지.
이정주 앙상블의 연주를 인터넷을 통해 보았는데, 서양 악기와 협주하면서도 6현 거문고를 그냥 연주합니다. (여기서 거문고 음계를 서양 음계에 맞추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협주를 통한 외연의 확대인데, 거문고 고유한 맛이 희석되었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허윤정씨 연주는 거문고의 느낌을 유지하면서, 작곡이나 연주를 통해 현대적인 감각을 나타내 처음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승철씨는 “음악은 음악이지 음학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정답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에 불구하고 우리 것의 현대화라는 문제에 어딘가에 답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저에게 이 음반은 답에 근접한 것이었습니다.
cf 허윤정씨의 ‘낮선 규칙’은 왜 음반으로 나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