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벌써 열흘이 지나버렸는데,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김해에 다녀왔다. 지인의 결혼식이었다.
기차 표를 구하지 못해 버스를 타고 갔는데, 새벽 5시 20분에 출발해서 저녁 9시 20분에 집에 도착했다.
그 먼 거리를 이동하며 달랑 맛없는 김밥 한줄 먹고 온 화딱지 나는 사연은, 슬프니까 생략하자.
다만 이날의 교훈은, 한번 민폐형 인간은 계속해서 민폐형 인간이라는 것... 새삼 깨달았음...;;;;
(경전철 처음 타봤는데, 구간이 짧아서 곡선으로 달릴 수 있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 시간이 없어서 수로왕릉 못 보고 온 것은 꽤나 아쉬움....)
2. 4시 50분에 기상했던 터라 무척 피곤했지만, 바로 잠들 수는 없었다. 히든싱어 3에 이승환이 나오기로 한 날이니까.
방청하고 온 팬들이 있었음에도 결과는 극비에 부쳐져서 누가 이겼는지 알지 못했다. 예고편에 나온 대로 한 표 차이라니까 마지막 라운드에서 이승환이 한 표 차이로 이겼거니 했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였다. 그는 한 표 차이로 모창능력자에게 우승을 넘겨주었다. 세상에!
하지만 재밌게도, 하나도 분하지 않았다. 특집으로 편성된 두시간 방송은 아주 재밌었고, 무엇보다도 가수와 팬들의 진정성과 진심이 보였다.
함께 늙자고 외치는 팬들을 향해, 여전히 젊은 얼굴의 내 가수는 함께, '젊게' 늙자고 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젊게 삽시다. 이대로 함께 늙어 갑시다. 오래오래...
3. 지난 주 월요일 스포츠 시간이었다. 난 피구반을 맡고 있는데 학생 하나가 주웠다며 들고 왔다. 버릴 수가 없었다고.
노란색은 아니었지만, 바로 그 노란리본을 닮은 리본을 나도 어찌할 수가 없어서 들고 와버렸다. 바로 그날 유족들은 인양 대신 수색을 계속하기로 결정했고, 이튿날 황지현양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4. 저녁에는 다이빙 벨을 보았다. 우리동네 독립영화 전용관은 평일에 가면 늘 혼자이기 일쑤였는데 모처럼 관객이 제법 있었다. 영화에서 본 내용들은 대부분 고발뉴스를 통해서 이미 접한 것인데도 재차 삼차 분노가 치솟았다. 한순간, 이렇게 사악한 세상이 이대로 유지되는 게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신해철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아, 망연자실...
5. 굳이 고백하자면 나는 신해철의 팬이 아니었다. 그의 공연을 본적이 있지만 그건 이승환 보러 갔다가 같은 무대에 선 그를 본 경우였다. 그렇지만 나는 신해철을 좋아했다. 그의 거침 없는 입담도 좋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분위기와 '안녕 프란체스카' 같은 개그도 소화해낼 수 있는 유머 감각도 좋았다. 그 강인해 보이는 사내가 이렇게 일찍, 어이없는 이유로 우리 곁을 떠날 거라곤 짐작하지 못했다. 믿어지지 않는 죽음이었다. 그의 뮤직비디오를 보았다. 나는 그의 노래를 찾아서 듣는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내가 가사를 다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랬다. 그는 그렇게 우리와 한 시대를 공유한, 90년대를 응답해 주었던 좋은 뮤지션이었다. 아직 할 일도 많은 그가 이렇게 가버린 게 너무 아까웠다. 세상에 나쁜 놈 천지인데, 벌받아 마땅한 놈 투성이인데 왜 이리 아까운 사람이 먼저 가야 하는 걸까, 청소하면서 내내 씩씩거렸다.
고마웠어요, 해철 씨. 계속 기억할게요.
6. 세월호 침몰 200일이었던 지난 토요일에는 조계사에 다녀왔다. 내가 자주 들여다 보는 82쿡에서 세월호 기금 모금 2차 바자회가 열렸다. 1차는 소식을 늦게 알아서 못 갔는데, 2차도 행사 당일에 언니가 말해줘서 알게 되었다. 다현양과 함께 셋이서 가보니 사람이 엄청 많았고, 먹거리는 많이 빠졌으며, 커피는 원두가 다 떨어졌다며 잠시 문을 닫는다고 할 정도로 북적였다.
정지영, 이충렬, 방은진 영화 감독과 노희경 작가, 문소리. 장혁, 이선균, 김제동의 애장품들이 경매로 팔렸고, 이철수 박제동 화백의 작품들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조희연 교육감도 오셨다고 들었는데, 이것저것 먹거리 장터 줄 서느라 하나도 못 들음...;;;;;
아무튼, 자원봉사자들의 수고가 가득한 봉사의 현장이었다. 이날 우리 가족이 사온 것들은 이러하다.
해지스? 헤지스? 사용하지 않은 정품이라며, 오유에서 지원나온 청년이 매대에 올리지도 못하고 득템하시라며 강조하던 가방이었다. 옆에서 언니가 쿡쿡 찔렀다. 저거 잡으라고! 오케이! 4만원에 낙찰. 언니가 생일 선물 땡겨준다며 입금해 주었다. 이게 글케 좋은 거야?? 마침 정장용 가방 사려고 생각하던 참이어서 더 좋았다.
투명병에 든 노랑리본 목걸이는 다현이와 둘이 하나씩 걸었다. 노랑리본 브로치는 엄니 드리려고 샀는데 엄니가 있는 브로치도 안 하신다며 거부하심...;;;;
노랑리본 귀걸이도 예뻤다. 벽에는 내 님이 고운 턱선을 자랑하고 계심~
저 투명한 병 목걸이, 어쩐지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또 솟아오르고 있음.
이러다가 대량 주문할지도...;;;
7. 사실은, 영혼이 피폐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그건 지난 금요일의 일이었는데, 팟캐스트 고상만의 수사반장 2주치를 이어서 듣다가, 그 사연 속의 기막힌 인생들이 너무 가엾고, 그 고통이 너무 끔찍해서, 멘탈에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지난 MB 정부 때부터 늘 이런 방송만 들어왔던 것이다. 공중파를 믿을 수가 없어서 찾아 듣게 된 시사 방송, 그러다가 가지치게 된 온갖 팟캐스트 방송 속에서는 너무 가엾고 억울하고 기막힌 죽음과 사연이 가득했다. 그걸 기억해 주고, 알아봐 주고, 그렇게 연대해 주어야 하는 게 맞다고 여기며 지내왔는데, 그러다 보니 이놈의 더러운 세상 그냥 콱! 망해버려라-소리가 쉽게 나오는, 그런 마인드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고작 방송을 들어주는 것 뿐인데도 이렇게 힘들어한다는 게 또 미안하지만, 그것도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자동 다운되게 설정해 놓았던 많은 방송들을 구독 해지했다. 가끔 몇 가지만 발췌해서 들으리라. 일단은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그래도 아직도 듣고 있는 게 많다. 다 놓지는 못하겠다.
8. 어제는 다시 스포츠 시간. 원래 내 수업이 아닌데 내가 출근하기 이틀 전에 떠안겨진 스포츠 두시간.ㅡ.ㅡ;;;;
아해들은 일년 내내 피구를 하더니 지겨워 죽겠다고 한다. 날도 추워졌다. 내가 생각해도 재미 없어 보였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철물점에 가서 고무줄을 사왔다. 나 어릴 적 한줄에 20원 하던 고무줄은 한줄에 500원이 되어 있었다. 아, 세월 앞에 장사 없는 이 물가!
고무줄은 사왔는데, 문제는 내가 너무 오래 전에 해본 놀이라서 잘 생각이 안 난다는 거였다.
한줄 고무줄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와 "무찌르자 공산당~"은 생각이 났는데, 이런 노래를 가르쳐줄 수는 없지 않은가.ㅡ.ㅡ;;;;
두줄 고무줄은 에너지는 많이 쏟지만 상대적으로 덜 재밌고, 아해들이 많으니까 적당하지 않았다.
세줄 내지 네줄 고무줄을 하고 싶었는데 가장 적당한 것은 '장난감 기차'였다.
노래는 생각나는데, 놀이 방법이 안 떠올라 고민하던 차,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찾았다.
그래, 생각났어! 저거였지!
하지만, 아해들의 호응을 얻기란 무척 어려웠다. 일단 고무줄 세대가 아닌 이 아이들은 그런 걸 왜 해요? 반응이었다.
한번 해보라며 설득했지만 싫다고 한다. 흥.칫. 피!
그런데 내가 계속해서 빙빙 돌면서 하고 있자니 하나 둘 관심을 보인다. 그러다가 한명씩 서서는 같이 뛰었다.
하지만 똑같이 따라하는 애가 한 명도 없었어...;;;;
훨씬 어려운 아이돌 가수 댄스는 따라하는 애들이... 이런 게 문화 차이고 세대차이겠지...;;;;;
암튼, 그렇게 백만 년 만에 고무줄 놀이를 해봤다. 완전 추억 돋는 놀이였다. 그렇지만 다음 주도 할 수 있을런지....
9. 어제는, 두달 만에 수영장에 갔다. 지난 8월 중순에 아이스 스케이트 타다가 넘어졌고, 그 바람에 상처를 꽤 크게 입었다.
한의원에 병원을 반복하다가 나중엔 너무 부풀어 올라서 주사기로 피를 뽑아야 했다. 움직이지 말라는 조언대로 9월 한달은 운동을 쉬었다. 10월 한달은 연구수업 준비하느라 쉬었다. 어거지로 연구수업 떠맡은 기막힌 이야기는, 역시 슬프니까 패쓰하자. 이미 지났으니 짐은 내려놓았으니 됐다.
오랜만에 물에 들어가니 기분은 좋았는데, 숨이 너무 찼다. 마침 어제 날짜로 새로 오신 선생님은 완전 빡세게 돌라 하심. 하아, 힘들어...;;;;;
그렇게 고무줄에 수영까지 하고 나서 집에 왔더니 병났다. 밤에 잠들려고 하니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아...
10. 도서정가제 시행 전에 구간 도서를 장만하느라 분주했었다. 주말에 열심히 주문하고 났더니 2015년 달력이 짠!하고 나왔네. 늘 나오던 달력이겠거니 했는데, 오마나 백희나 작가네! 피터 레빗은 좀 성에 안 찰 거야... 하고 세뇌를 하려 했는데, 아씨... 이것도 예뻐. 책읽는 명화는 말할 것도 없고... 하아, 세가지가 다 예뻐. 너무해. 알라딘 너무해...ㅠ.ㅠ
평소 탁상달력이 그림이나 사진은 뒷면에 있고 스케줄러가 앞쪽에 있어서 그림 못 보는 게 불만이었는데 나란히 앞면에 있어... 내가 원하던 디자인이야. 하아, 장바구니 미어 터진다. 꿰매 써야겠다. 글썽...;;;;
덧글) 책베개 결제 끝났던가?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