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는 거의 개학을 했을 시점이어서 사람이 적을 거라고 여겼는데, 아뿔싸! 초등학교가 아직 방학 중이다. 아이들로 전시관은 바글바글했다. 지난 번 바로크 로코코 전에서 해설이 너무 별로였던 터라 도슨트 대여를 하려고 했는데 오후 대여는 이미 마감됐다고 한다. 마침 누군가 반납하는 걸 보았는데 그걸 내줄 줄 알았더니 마감했으니 안 내준다. 참 융통성 없네.;;;
반바퀴 쯤 돌고 나니 오후 해설이 시작되었다. 이번 해설사는 지난 번보다 훨씬 나았지만 마이크를 쓰지 않고 사람은 많고, 이분 목소리는 작고.... 해서 거의 들리지가 않았다. 아쉬운 부분...
외규장각 의궤에 대해서 자세히 들었던 건 대학에 들어가서다. 당시 한국사 교양 교수님이 이와 관련해서 김영삼 - 미테랑 대통령 때의 외교 실수와 KTX 계약 건에 대해서 얘기해 주셨는데 무척 흥미로웠고 인상적이었다. 후에 첫번째 연구수업을 유네스코 지정 한국 세계 문화 유산에 대해서 했는데, 그때 이 에피소드를 적절히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벌써 7년 전 일이다.
임진왜란 때의 무수한 소실 기억에 바다 건너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설치하고 귀중한 책들을 보관했는데, 하필이면 그 바다로 적들이 쳐들어오다니, 타이밍 하고는... 역사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무수한 곡절을 거친 그때의 책들이 무려 145년 만에 돌아왔다. 영구반환이 아니라 대여 형식을 빌렸다는 것이 참 거시기하긴 하지만, 어쨌든 실물을 마주하니 참 감개무량하다.
실물 의궤다. 임금님이 친히 보시는 어람용은 더 좋은 종이에, 더 공들여 쓴 글씨와 그림, 그리고 표지 장식까지 남다르건만, 여러곳에 분산 보관하기 위해 만든 분상용은 아무래도 솜씨가 떨어진다. 위 사진에선 오른쪽이 어람용이다.
전시실을 나오면서 들렀던 영상실에서 찍은 사진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시관을 보기 전에 먼저 영상 자료를 보는 쪽을 더 추천하겠다. 12분이던가? 별로 길지도 않다. 그림과 글씨, 그리고 종이의 질이 확연히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마지막 사진은 왼쪽이 어람용으로 종이의 밀도가 더 높다.)
전시실은 1부~6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 의궤의 개념과 구성
2부 : 왕권과 통치
3부 : 나라의 경사
4부 : 왕실의 장례
5부 : 추모와 기억
6부 : 1866년 병인양요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과정을 짚어보고 있다.
종묘제례에 사용된 제기들이다. 사람이 많아서 옆쪽에서 겨우 찍을 수 있었다.
플래쉬를 터뜨리지 않는다면 사진을 찍어도 무방하다.
현종과 명성왕후의 혼례 장면을 그린 것이다.
뒤쪽에서 어느 아주머니들이 명성황후가 여기도 나오냐며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 명성왕후는 숙종의 어머니다.
순조와 순원왕후의 혼례모습이다. 순원왕후는 그 유명한 안동김씨 김조순의 딸이다.
정조의 왕세손 책봉 옥 도장과 죽책이다.
죽책은 책봉 받는 이의 공덕을 칭송하는 글을 대나무에 새긴 것으로 일종의 임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유일본인『보사녹훈도감의궤』(1682년, 숙종 8) 중에 한글 문장이 적혀 있어, 의궤에 한글이 기록된 희귀한 사례로 주목된다.
신정왕후 팔순 기념 잔치를 병풍에 그려놓았다. 가운데 그림에는 등불과 촛대도 등장하는데 연회 시각이 저녁 때임을 알 수 있다. 신정왕후는 익종(효명세자)의 비로 헌종의 어머니며 풍양조씨다. 철종 사후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을 다음 왕으로 지목했던 인물이다. 이 잔치를 열고도 3년을 더 살고 죽었다. 험한 시대에 장수하셨다.
잔치 모습을 인형으로 제작했다. 무척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왼쪽의 춤추는 이들은 사실 경복궁 앞마당에 위치해야 했지만, 공간상 잔치장의 왼쪽에 위치하게 되었다.
오른쪽 끄트머리 부분이다. 고종과 순종이 앉아 있다.
사극에서 '복'의 의식은 가끔 목격하기도 한다.
장렬왕후의 장례 모습이다. 장렬왕후는 인조의 계비로 효종과 효종비 사후 상복을 얼마 동안 입을 것인가의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한 '예송논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인물이다.
의소세손과 문효세자의 무덤 부장품들이다. 의소세손은 사도세자의 첫 번째 아들로 정조의 죽은 형이다.
그리고 문효세자는 정조와 의빈 성씨의 아들로 의소세손과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에 죽었다.
드라마 이산을 떠올리면 한지민이 낳은 아들이다. ^^ㅎㅎㅎ
뒤쪽으로 영상이 나오고 있어서 반사되어버렸다. 잘 안보이는 부분의 글자는 '왕이 사후에 받는 이름은 시호 외에도'이다.
사도세자의 새 무덤을 조성하는 모습이다. 주작과 백호에서 사신도를 알아볼 수 있다.
영조가 지은 사도세자의 묘지명이다.
"늙은 아비로 하여금 만고에 없이 자식을 죽이는 일을 하게 했다"는 영조의 깊은 탄식과 변명이 적혀 있다.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었겠나. 이것들은 사도세자의 첫번째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사당인 경우궁의 모습이다. 비록 임금을 낳은 생모이긴 하나 정실왕후가 아니기 때문에 종묘에 모시지 않고 별묘에 모셨다. 1884년 갑신정변 당시 고종과 민비가 급하게 몸을 피한 곳이기도 하다.
정말로 그랬을 것 같다. 그토록 우습게 알던 동방의 조그마한 나라의 무지랭이 백성들의 집에도 반드시 있던 그 책의 존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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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조선에 왔을 때 블랑은 크게 세 번 놀랐다. 첫번째는 이 작고 외딴 나라에 자기들만 쓰는 말과 글이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양반들이 주로 쓰는 청나라 문자 말고도 그들 고유의 문자가 있다는 것은 적잖은 놀라움을 주었다. 두번째는 서책 때문이었다. 초가지붕 안에도 서책이 있고 글을 모를 것 같은 여종들도 이야기책을 필사해가며 나눠 읽고 있었다. 세번째로 블랑이 놀란 것은 조선인들이 죄다 대식가라는 점이었다. 큰 밥사발에 가득 담긴 밥을 어린아이조차 단숨에 비워내는 걸 보고 그만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때로 어떤 이들은 아무 반찬이 없이도 그저 큰 밥사발의 수북한 밥을 물에 말아서 먹었다. 감자밥, 강낭콩밥, 골동반, 보리밥, 찰밥, 콩탕밥 등 밥의 종류가 수십 가지 종류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된 후 블랑은 조선인의 강인한 체구가 밥에서 온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물론 그들이 늘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 배를 곯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먹을 기회가 찾아오면 한껏 엄청난 양을 먹어대곤 했다.– 리진 71-7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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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의 침략과정을 묘사한 주간지다.
전시실 가장 안쪽 벽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있다.
움직이는 영상인데, 의궤의 그림들을 3차원으로 재현해 놓았다. 실사 애니메이션 만들 때처럼 실제로 사람들이 직접 움직이는 모습을 촬영했다고 한다. 여러 컷을 모아 보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들이다. 그림이 재밌는 것이 한 방향에서 보는 시점으로 그린 게 아니라 다양한 방향에서의 그림을 그린 터라 서로 대칭되어 보이기도 하고 뒤집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그림이다. 멀리서 한 컷으로 찍었으면 좋을 뻔했는데 사람이 많아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출구 쪽에는 의궤 도록이 전시되어 있었다. 왼쪽의 작은 책은 8천원이었고, 오른쪽의 양장본은 38,000원이다.
오히려 자그마한 왼쪽 책에 더 손이 갔는데 내용은 전시회의 것과 동일하고 크게 추가된 것이 없어 보여서 사지 않았다.
내가 사온 것은 사임당의 초충도가 그려진 연필 세자루 뿐이다.^^
보는 내내 여러 책들이 떠올랐다.
첫번째 책은 전시 도록이고, 두번째는 최근에 신간이 나와서 광고하는 것을 보았는데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 저자의 신간이라고 해서 눈길이 갔었다. 줄거리를 보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신 박병선 박사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이분이다. 직지심체요절과 의궤를 찾아내신 분이다.
사건의 흐름을 보니 장미의 이름이 연상되긴 하는데 그래도 꽤 흥미롭지 싶다.
바야흐로 역사추리소설이 각광을 많이 받고 있다.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는 대학교 때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은 기억이 난다. 66세 영조가 15세 신부를 맞이했다고 하면 아이들은 경악을 하지만, 어쩌면 영조도 몹시 민망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땐 아무리 임금의 나이가 많아도 신부는 스무 살을 넘기지 않았던 때니까...;;;;
리진을 프랑스로 데려갔던 주한공사 콜랭이 직지를 함께 가져갔던 인물이다. 이 내용을 리진에서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자신이 없어지고 있다. 다른데서 읽었나?? 하여간, 그 바람에 리진도 같이 떠올랐다. 참 재밌게 읽었는데 어처구니없는 일로 언짢은 책이 되어버린 건 나의 비극이다.
화요일은 몹시 화가 나는 일이 있어서 전시회에 아주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다리품을 팔며 먼 길을 돌아온 책들을 들여다보니 어느덧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친구를 만나서 술 한 잔 하자고 전화를 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하소연 범벅이 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대신 집에 돌아가서 맥주 한 캔을 마셨다. 집에서 마시는 것도 처음이었고, 혼자 마셔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쓸쓸해서 그랬나?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역시 맥주는 친구랑 마셔야 해...
다시... 외규장각 의궤전은 무료 관람이다. 건너편에 바로크 로코코 전시도 진행 중이니 함께 다녀오면 더 좋겠다. 오늘 친구가 바로크 로코코 전시회 티켓이 생겼다며 같이 가겠냐고 물었는데 이미 다녀왔다고 하니 실망한다. 그래서 한 번 더 가도 좋다고 하니 이번 주말까지 유효한 티켓이라고 한다. 나는 내일 남쪽으로 출발하니 갈 수 없다.
그리고 오늘 '내 마음의 풍금' 뮤지컬에 당첨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토요일 3시다. 내가 아직 남쪽에 있을 시간이다. 타인 양도가 되지 않아서 날아가게 생긴 표다. 타이밍 하고는... 친구와 원래 이번주에 보려고 했는데 못 보게 되어서 다음 주로 미루게 되었다. 그런데 친구는 다음주 토요일에 동생과 캐리비안 베이를 가게 되었다고 해서 주중에 보자고 했다. 헌데 나는 월수금 수영이 있고, 친구는 화목 아쿠아 강습을 받는다. 것 참 타이밍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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