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내내 이어지던 토사곽란은 지사제 두 알로 일단 진정 시키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이동 중에 먹을 주먹밥을 장만해 가는 거였지만 택도 없는 소리였고, 지하철에서 일행을 만나기로 한 시간에 집에서 떠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니 지하철에서 내려서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경로가 얼마나 급했겠는가.
카이로 매연 상태가 세계 1,2위를 다툰다고 하더니 과연 명불허전! 손수건으로 호흡기를 막고서 길을 지나가야 했다. 도무지 숨쉬기가 어려워서 말이다. 게다가 이 나라의 특징이 누구도 신호를 지키지 않는 거라고 한다. 운전자도 보행자도. 무단횡단은 기본 중에 기본. 신호등은 거의 없지만 있어도 안 지킨다. 누구도! 재주껏! 도로를 횡단하고 질주한다. 어떤 길은 보도가 없을 때도 많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친구 팔 잡고 초긴장 상태로 도로 건너기. 아직 버스도 안 탔는데 어찌나 피곤하던지......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사막은 시와 사막이지만, 거긴 가는 데만 10시간이란다. 우리의 일정은 친구가 목요일에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1박 2일로 다녀올 수 있는 바하리야 사막으로 정해져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친구가 내게 보내준 일정표는 두 개였다. 바하리야 사막을 다녀올 것인지, 다합에 가서 홍해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할 것인지... 휴양지로서 다합의 명성은 드높았지만, 난 사막이 더 탐났다. 사막에서 붉은 노을을 보는 것과 쏟아지는 별들 아래서 잠드는 게 나의 로망. 덤으로 사막 여우도 만난다면 더 좋고~ 친구는 이집트 여행지 중에 다시 가고 싶은 곳은 다합이라고 했고, 이집트에서 17년을 산 전직 가이드 집사님은 시와 사막이라고 해서 둘 모두 가보지 못한 나로선 막 침이 넘어갔지만, 내가 당장은 갈 수 없는 곳이니 아쉬움으로 남길 수밖에.
사막의 밤은 분명 추울 테니까, 또 전날 피라미드 투어에서 추위를 맛본 나는 단단히 무장을 하고서 출발했다. 다만 걱정은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낮일 텐데, 사막의 낮은 얼마나 더울까 겁이 났다. 그렇지만 완벽한 기우였다. 2시간 반을 달리고 나면 휴게실이 나오는데, 사막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다 쓰러져 가는 이 판자집에서 내릴 때 칼바람이 살 속을 파고들었다. 사막은 뻥 뚫려 있어서 바람이 불면 겁나 춥다는 얘기를 그때 처음 들었다. 오오옷, 털 기모 바지를 입고 내복에 목티에 스웨터에 파카에 완전 무장을 했는데도 감당하기 어렵게 추웠다. 벌써 이렇게 추우면 새벽에 어쩌누....
두시간 반을 달려오면서 우리를 괴롭힌 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출발하면서부터 방송으로 내내 틀어놓은 꾸란 읽는 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화장실. mp3를 안 들고 온 게 무척 후회스러웠고 돌아갈 때는 부디 조용히 갔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품었다. 방광의 압밥을 느끼며 휴게실에서 우르르 화장실에 갔는데, 들어가는 순간 잠시 화면 정지! 으윽, 이건 한국의 시골 푸세식 화장실보다 더 하잖아!!! 차마 말로 설명 못하겠다. 대단히... 심각했다.
못볼 걸 본 화장실에서 뛰쳐나와 다시 버스에 탑승. 거기서 30분 머물렀는데 버스 문을 안 닫아주어서 내내 떨어야 했다. 다시 2시간 반을 달려서 도착한 바하리야 사막. 오아시스 지역인지라 마을 규모가 꽤 커보였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이집션과 결혼한 한국인 영선씨가 운영하는 미도 사파리. 미도는 큰 아들 이름이다. 둘째 딸 메이를 임신했을 때 한국에서 찍었다는 결혼 사진이 몹시 예뻤다. 영선 씨 왈, 이집션들이 무척 부러워하는 사진이라고... 한국인이 사진관 차리면 대박날 거라나... 확실히 다른 지역에서 본 현지인 사진관의 사진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광채가 나는 듯했다. 사막에 반해서, 가이드와 결혼까지 하게 된 영선 씨. 우리의 일정은 원래 돌사막 1박인데 다음 날 모래 사막을 하나 더 추가하기로 했다. 시와 사막의 고운 모래를 보지 못하니 꿩대신 닭으로 좋은 선택!
여권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점심으로 라면을 제공받았다. 이 고소한 맛은 아마도 안성탕면??? 나중에 밖에서 안성탕면 박스 발견! 역시 정확했으~ 5시간을 버스에서 시달렸더니 라면에 밥까지 말아먹고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았다. 우리 일행 네 명 모두.
지프차를 빌려서 사막으로 들어가는데 가장 적정 인원이 네 명이다. 우리가 갔을 때는 지프 대여료가 800기니였는데 1/4씩 분담하기도 적격. (우리 다녀오고 2월 1일자로 1,000기니로 가격 인상됐다. 하하핫..;;;) 사장님 이집트 살림 이야기 듣다가 여권심사 마치고 출발. 외국 여자만 네 명이 출발하니 현지 관광 경찰이 동행했다. 어딜 가나 투어 폴리스가 꼭 보이더니만 동행까지 하는구나!
경찰관 이름은 알리, 운전을 맡은 마흐무드, 어려보이는 도우미 친구는 한국 이름 '민수'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드디어 사막으로 고고씽!
안내 책자에는 여러 사막과 사진이 담겨 있었지만 그걸 다 가진 않았고, 코스 별로 정해져 있었는데 우리가 제일 먼저 간 곳은 흑사막이었다. 화산 활동이 있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검은 돌과 검은 모래가 짙게 보인다.
(사진 펑!)
적당히 사진 찍기 좋은 곳을 골라서 우리를 내려주면 우리는 바쁘게 사진을 찍고, 그러면 잠시 후 마흐무드가 "빨리 빨리~ 서둘러~"를 외친다. 그럼 우리는 까르르 웃으면서 다시 차에 탑승.
이어 도착한 곳은 크리스탈 사막(백사막).
크리스탈이라고 부르긴 거시기 하지만 어쨌든 하얀 사막이 주우욱 이어져 있다.
돌들이 이정표가 되어주는 사막 위의 도로.
다음에 도착한 곳은 갖은 기암 괴석이 즐비했던 곳인데 바위마다 이름도 붙어 있었다. 머쉬룸~ 치킨 바위 등등등
흥분한 나머지 겉옷도 벗고 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추워서 바로 차에 들어가 옷 줏어 입었다. 역시 추워...-_-;;;;
그리고 이동한 곳은 우리가 야영할 장소.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리는지 여기가 아우토반이냐고 외칠 뻔 했다. 체감으로 치면 인천에서 강릉까지 달린 것 같은 기분.
지프 차에 기대어 90도 각도로 천막을 두르고 저녁밥을 준비하는 마흐무드. 그리고 알리와 함께 민수는 우리가 잠들 텐트를 쳤다.
해지는 모습이 너무 고와 역시 비명과 함께 사진 찍기에 바빴던 우리는, 멀리 낙타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만다.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은 낙타로 사막을 건너는 장기 여행을 선호한다는데, 그때 가이드가 보이지 않게 뒤쫓아오는 게 조건이라고 한다. 사람 수나 생김새로 보아도 관광객같지는 않고 현지인 같았다. 아마도 베두인 족?
때로 바위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는 어찌나 안타깝던지... 사진 몇 컷을 찍는 동안 믿기지 않게 저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노을은 더 붉게 물들었고, 사막은 더 차갑게 식어갔다.
맛난 식사를 준비 중인 마흐무드. 몇 살로 보이나요???
식사 준비는 30분이면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1시간 30분이 걸렸다. 그 옛날 유명했던 코리안 타임을 능가하는 이집션 타임은 곳곳에서 마주친다. 30분 지났다고 하면 '인샬라~'로 답하는 그들!
고기가 익는 동안 타블라와 탬버린(?)으로 흥을 돋구어 주는 두 사람. 동행 경찰 알리는 조용히 박수 치는 걸로 보탰다. 마흐무드는 내내 물담배를 끼고 있었는데 무척 맛나나 보다. 야영 준비할 때부터 바로 곁에 끼고 있었음.ㅎㅎㅎ
그리고 드디어 완성된 우리의 밥상!
두 사람이 즐겨 외치는 '대~박!'을 우리가 돌려줄 차례. 비쥬얼도 훌륭하지만 맛은 더 일품이었다. 적당히 꼬들꼬들한 밥 위에 닭다리 하나씩 올려져 있고, 야채와 치킨이 섞인 카레 비스무리한 것 하나, 토마토와 오이가 적당히 버무려진 샐러드와 씨가 가득 든 이집트 귤과 바나나 그리고 코카 콜라.
딱 하나 흠이 있다면 양이 너무 많다는 것! 저 밥을 다 비우고 나면 또 한 접시를 가득 담아서 내민다. 거절이나 사양이 절대로 먹히지 않는다. 밥상을 물리고 나면 이집트 홍차인 '샤이'를 내미는데 설탕이 몇 주먹씩 들어간다. 3주먹을 집어넣었을 때 그만 넣어달라고 하니 우리 것 먼저 주고 자신들은 설탕을 몇 주먹 더 넣어서 마신다. 대단해!!
또 다시 풍악은 울리고, 먹거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물고구마를 장작불에 익혀서 내주고, 팝콘도 잔뜩 튀겨서 내온다. 물고구마는 한국의 고구마에 맛이 많이 못 미쳐서 배부른 가운데 못 먹었지만 팝콘은 인기가 좋았다.
이때는 상현달이 막 지났을 무렵인데 달이 너무 밝아서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무척 큰 아쉬움이었다. 달이야 새벽에 지고 나면 괜찮지만, 구름도 많이 끼어서 당최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겨울철 대표적 별자리인 오리온 자리는 기막히게 보이는데 북두칠성과 북극성은 생각보다 흐릿했고, 카시오페아랑 백조 자리를 본 것 같은데 이건 좀 자신이 없다.
사막 여우가 와준다면 좋겠다고 우리끼리 수다 떠는데, 정말 나타난 사막 여우! 배가 고팠나보다. 그릇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치킨으로 유인해서 사진을 찍었다. 치킨 물고 잽싸게 도망갔다가 다시 나타난 사막 여우. 알고 보니 두 마리였다. 부부였을까?
밤에 찍었더니 눈이 다쓰 베이더다. 카메라로 보고는 흠칫 놀랐다는!
대체 이 황량한 사막에서 이 친구들은 뭘 먹고 살았을까? 우리같은 여행객들 주변을 배회하며 닭다리 하나씩 얻어 먹었을까? 에버랜드 사막 여우가 더 귀엽기는 하지만 확실히 이 친구들이 야생답다.
밤은 깊어가고 신이 난 두 친구의 가락 소리는 더 높아만 간다. 사실, 난 조용히 고요함을 맛보고 싶었는데, 당최 두 사람의 노래는 끊어지지가 않는다. 시간은 밤 12시를 향해 달려가건만.
이렇게 온 우주에 나만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하는 곳에서는 흥겨운 노래 가락보다(게다가 알아들을 수 없는!) 고요한 침묵과 친해지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았는데 말이다. 근데 그런 생각은 나만 했나 보다. 다른 일행들은 무척 흥겨워보였다.
장작불 연기가 바람 따라 자꾸 나와 친구를 따라 다녀 우리는 십 분 간격으로 자리를 이동해야만 했다. 멀리 짝퉁 스핑크스 바위는 우리의 천연 화장실이 되어주었다.
마흐무드는 우리 나이를 궁금해 했는데 모두가 탑 씨크리트를 외쳤다. 나더러 23살 같아 보인다고 했고 최강 동안을 자랑하는 내 친구에게는 18세냐고 했다. 으캬캬캬, 기분 좋아서 실제 나이를 절대로 밝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노안을 자랑했다는.... -_-;;;
새벽에 일어나서 별을 보려면 일찌감치 자야 했는데, 이미 시간은 일찍이가 아니었지만, 우리는 텐트로 들어갔다. 1박2일에 나오는 침낭을 상상했지만, 텐트 안에 있는 침낭은 그냥 우산보다 얇은 재질의 천쪼가리. 게다가 바닥이 울퉁불퉁한 것도 모자라 허리 부위가 가장 높고 다음에 다리가 높고, 머리 쪽이 가장 낮은 것이다. 이미 입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입었고, 거기에 모자 쓰고, 손난로 주머니에 차고 직접 가져온 담요까지 두른 마당에 몸이 무거워 일어나는 것도 곤욕이다. 결국, 그 불편한 자세로 그냥 자기로 했다. 털썩~!
그리고 이 밤에 내 카메라는 밧데리가 다 되었는데 그걸 끝으로 그냥 사망해 주셨다. 한국에 돌아와서 서비스 센터에 맡기니 모래가 잔뜩 들어가서 줌을 해주는 모터가 갈렸다고... 부품 교체비 6만원 나와주셨다. 12만원 대에 샀던 내 카메라가 20만원 대 가까이로 신분 상승해 버렸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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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