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길을 잃어라 - 시각장애인 마이크 메이의 빛을 향한 모험과 도전
로버트 커슨 지음, 김희진 옮김 / 열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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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그 메이. 그는 3살 때 헛간에서 놀다가 화약이 터지는 바람에 눈이 멀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시각장애인이라고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일반인도 해 내기 어려운 일을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해 냈다.

그는 장애인올림픽에서 세 번이나 금메달을 획득했고, 알파인 스키 활강부문에서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장애인대회가 아닌 일반인 대회다), 사업가로 장애인을 위한 휴대용 GPS를 개발해 판매중이고, 세계 최초로 레이저 턴테이블을 공동발명한 발명가이기도 하며, 한 때는 CIA에서 일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금발의 미녀(진짜 미녀다)를 아내로 둔, 두 아들의 아버지이다.

[기꺼이 길을 잃어라]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데. 전반부는 그가 시력을 상실한 후 살아온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결혼할 때까지의 모습까지, 후반부는 46세에 두 번의 수술을 거쳐 시력을 회복한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잘 모르는 줄기세포를 활용한 수술이었다.

독자들은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수술을 통해 시력을 회복했으면 “그래서 그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고 끝나면 그만이지 그 다음에 또 무슨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나도 책 중반 쯤에서 주인공인 마이크 메이가 수술하는 장면이 나오고, 얼마 안 있어 주인공이 “보이네요. 보여요.”라고 말하는 내용을 보는 순간 책을 덮을 뻔했다. 다음 내용은 틀림없이 그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 볼 수 있다는 것이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설명한 내용일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반 이상이 남은 분량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는 순간,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국 400페이지나 되는 책을 끝까지 다 보고 말았다. 마이크 메이는 수술을 통해 시력을 회복하긴 했지만 시력장애자와 별반 차이가 없는, 어떻게 보면 더 어려운 삶을 살게 되었다. 보인다는 것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내 머리 속을 강하게 흔든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마이크 메이의 엄마인 오리 진이다.

하루는 메이가 엄마에게 월넛 크릭 시내까지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다녀와도 되는지 물었다. 그 곳은 교통량도 많고 집에서 5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리 진의   눈 앞에는 구급차가 달려오고, 아들이 피를 쏟으며 길거리에 쓰러진 모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학생이, 그것도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인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도심에 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린 진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로 오른편을 따라가는 게 중요하고, 차나 트럭소리가 들리면 그냥 멈추고 기다려야 해. 너무 힘들어지면 주저 말고 방향을 바꿔 돌아와야 하고, 그리고 혹시 말이야. 겁이 날까봐 걱정하지는 마라. 겁이 날 때 겁이 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녀 역시 아들이 집을 나간 다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아이를 데리러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엄마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의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3시간이 지난 후, 마이크는 “나 왔어요. 엄마”하고 문을 열고 들어왔던 3시간동안 아마도 오리 진은 지옥 끝까지 내려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에게 장애인이라는 의식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마이크 메이는 자신은 장애인이 아니고, 단지 눈이 불편한 사람일 뿐이라는 의식을 갖고 세상을 살아갔다. 달리기시합, 축구시합엔 반드시 끼었고, 스키 활강분야에서 세계기록을 보유한 사람이 되었다.

마음으로는 내 아이가 강한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아이를 키우는 내 모습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내 자신의 괴리를 느끼게 한 부분이었다.

두 번째는 시력에 대한 부분으로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다. 마이크 메이를 수술한 의사의 말로는 그의 시력은 우주비행사를 해도 될 정도의 시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메이가 볼 수 있는 것은 물체의 색깔과 움직임뿐이다. 글자를 읽을 수도 없고, 물체의 거리감도 못 느끼고, 사람들의 얼굴도 구분을 못하며, 물건을 식별할 수도 없다. 그저 앞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러다 보니 마이크 메이에게 계단은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한 칸씩 위로 올라간 것으로 보이지 않고, 땅바닥에 줄이 그어져 있는 것같이 보일 뿐이다. 사람의 얼굴도 눈, 코, 입, 귀가 붙여 있는 것만 알 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누드 해변가에서 나체로 다니는 사람을 보며 가슴이 나온 여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를 구분 못한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가슴이 앞으로 나온 것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본다는 것’은 눈 앞에 있는 물체가 눈을 통해 들어오는 수동적인 상황이 아니라, 그 정보를 해석하는 뇌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아주 어릴 때 시각을 상실한 사람은 정상인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세상에 대한 시각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 갑자기 길이 조금 어두워졌다고 치자. 그 때 일반인은 그것이 옆 건물 때문에 그림자가 생겨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그러나 마이크 메이와 같은 사람, 다양한 시각경험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평평한 길의 색이 갑자기 어두운 색으로 변한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림자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 메이같은 사람이 길을 가다 갑자기 색이 변하면 그림자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냐고? 물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길의 색이 갑자기 변하는 것이 그림자 때문만은 아니잖는가? 보도블록이 깨져도 그림자가 생긴다. 맨홀이 있으면 그곳도 색이 달라진다. 횡단보도역시 인도와 차도간의 높이 차이 때문에 색이 달라진다. 계단도 마찬가지이고, 길 가운데 통제라인이 쳐 있어도 색이 달라진다. 게다가 땅이 움푹 파인 곳도 색이 달라진다. 메이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다 같이 색이 달라진 것으로 보일 뿐이다. 한국 사람의 얼굴차이는 금방 알면서 흑인들은 다 비슷하게 보이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즉 시각적인 부분에 대한 정보 부족 때문이다. 한국사람 얼굴은 차이가 많고, 흑인은 대부분 비슷하게 생겨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2차원적인 사진에게 원근을 느끼고, 눈 앞에 보이는 풍경 속에서 거리감을 계산하고, 책상 위에 놓인 볼펜 하나를 거침없이 집을 수 있는 것도 눈이 아니라 뇌 속에 저장된 사물에 대한 정보 때문이다. 단지 이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뿐이다. (인간 뇌의 용량이 엄청나다보니)

세 번째는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한 마이크 메이의 문제 해결방식이었다. 그가 직면한 문제는 시각정보가 없다는 것보다 시각정보를 아무리 많이 입수해도 이를 처리해줄 시각신경 자체가 없다는 점이었다. 즉 아무리 노력해도 일반인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어릴 때 시력을 상실함으로써 보는 것과 관련된 신경세포가 다른 용도로 대체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앞으로도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물체간의 거리감, 물간간의 미세한 차이, 음영 등을 구분할 수 없는 평평한 2차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칼라와 움직임만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이 두 가지는 아주 초보적인 감각이기에 다행히 그에게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보다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 중에서 현 상황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능력을 찾기 시작했다. 즉 일반인보다 뛰어난 촉감, 잘 들리는 귀, 놀라운 기억력, 지팡이, 인도견 등이었다. 그리고 시각을 통해 모든 것을 이해하기보다 촉감으로 느끼고, 기억력을 통해 차이를 확인한 후, 시각을 보조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즉 누군가, 어떤 새로운 장소에 가면 먼저 만지고, 과거의 장소와 다른 점을 찾아 암기했고, 그 후 시각을 통해 확인하는 방법으로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 그는 나날이 나아지고 있다. 시각신경이 아닌, 기억력을 관장하는 뇌를 사용하여 부족한 시각신경 기능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시력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려 왔어. 제대로 기능하기 못하는 부분이 제대로 기능하는 부분을 따라잡기만을 기다렸지, 그 당시에는 그게 정답인 줄 알았어. 하지만 난 더 이상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거야.”

물론 시각정보를 대신해 기억력으로 그 부분을 메우겠다는 시도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엄청난 분량의 시각정보(어쩌면 가장 복잡한 정보가 시각정보 아니겠는가)를 모두 암기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오래 전에 오리 진(엄마)에게 배운 대로 자신의 삶을 기꺼이 걸어가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설사 그것이 남들이 볼 때는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그는 불가능하지에 도전했을 지도 모른다. 그가 여러 가지 위험이 도사린 시력수술을 결정했던 이유도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보기 위해 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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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넥션 - 너를 치유하고 나를 치유한다
에릭 펄 지음, 이병렬 옮김 / 북스넛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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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아이를 낳다 죽었다. 그녀는 기존의 ‘임사체험’ 책에 나온 내용과 거의 비슷한 과정을 거쳐 영원한 빛 가운데로 들어갔지만 그 때 어디선가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싫다고 거부하다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의 체험을 모은 임사체험 책을 보면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말을 한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그토록 죽기를 거부하던 사람이 빛 가운데로 들어가면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힘들긴 한가보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이 책, 리커넥션의 저자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후체험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이고.

저자는 어릴 때부터 조금 남다른 면이 있었다. 영적으로 발달했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기도 하고, 주변에서 무엇인가 오가는 물체를 느끼기도 하고, 또 몸 안에 이상한 전류가 흐르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지진이 일어날 것을 자주 느꼈다고 한다. 당연히 그가 예상한 지진이 곧 일어났고.

어른이 되어 카이로프랙틱 의사가 된 그에게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환자의 아픈 부위에 손을 대기만 하면 병이 낫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그도 이러한 상황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환자를 치료한 후, 환자가 아프다고 했던 부위가 아프고, 어떤 때는 환자를 치료한 후 자신의 손에 물집이 생기기도 했고, 또 얼굴이 마치 호빵처럼 붓는 것을 보며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곧 유명해 져서 TV, 라디오에 출현했고, 신문이나 잡지에도 그의 이야기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남다른 능력을 가진 치유자로서 의대에서 강의도 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치유방법을 강의도 한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저자 스스로도 인정하는 것이지만, 그가 환자를 치료하는 장면은 옆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기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힘을 쓰는 것도 아니고, 주문을 외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촛불을 키거나 예식을 행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저자의 손을 환자가 아프다는 부위 위에 가만히 얹히기만 할 뿐이다.

당신 앞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뭐라고 할 것인가? 뭔가 남다른 것을 보리라 기대 했건만, 당신이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의사가 환자의 몸에 손만 대고 있는 장면뿐이다. 얼마나 심심하겠는가. 하지만 저자는 치료는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자신의 몸을 이용하기에 저자 스스로는 할일이 없다고 한다. 도리어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어떤 힘의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에 환자가 낫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이 책, [리커넥션]을 보며 예전에 봤던 책 내용, 과거 내가 경험했던 일 등 많은 것이 생각났고, 책에 나와있는 저자의 행동이나 말이 전혀 낮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이제 시작인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즉 중세암흑시대에서 인간의 의식이 한 단계 수직 상승하여 르네상스세대로 넘어 갔던 당시의 상황을 보는 듯했다. (조금 과장된 해석인가?)

이 책에 나온 몇 가지 이야기 중 독자들이 머리를 갸우뚱할, 그러나 내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이야기를 해 보겠다.

우선, 어머니가 죽었다 살아난 이야기다. 임사체험과 관련된 책을 보면 사람이 죽으면 육체를 떠난 어떤 물질(에테르)가 되어 죽은 자신을 바라본다고 한다. 자신은 아직 죽을 것을 느끼지 못하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뭐라 말하지만 그들은 죽은 이의 말을 듣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리고는 마중 나온 누군가를 따라 어딘가로 가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온한 빛을 보게 된다. 영혼들은 그 빛으로 들어가기 직전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보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심판한다. 그리고 그 때 이 생에서 자신이 겪은 고통과 어려움이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내용을 보면 “에이. 순 뻥”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임사체험과 관련된 책에서 하도 비슷한 내용을 많이 봐서인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저자의 어머니 이야기 중에서 종교인들을 건드리는 내용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천당과 지옥은 없다. 왜냐하면 자신을 심판하는 것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악행과 괴로움도 자신의 영혼을 성숙시키기 위한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신은 하얀 빛으로 느낄 뿐이며  실체가 없으며, 그 빛이 바로 우리 영혼이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즉 우리의 영혼이 바로 신의 일부분이라는 의미다.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는 영혼이 이 세상으로 오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자신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한다. 온통 하얀 빛 속에서는 모두가 똑같기 때문에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저자가 환자를 치유하는 상황이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사람을 치유하는지 잘 모른다고 한다. 그저 어떤 힘이 자신을 도구로 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치유의식을 한답시고 촛불을 키고, 기도를 하고, 염을 외우고, 몸을 깨끗이 하는 것과 같은 것들은 치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치유는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가 자신을 통해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치유가 되고 안 된다면 그건 자신이 치유를 자신이 한다는 자만심이 아닌가? 저자가 강조하는 말이다.

세 번째는 무엇인가가(우주의 힘이든, 창조주의 뜻이든 간에) 이제 원래의 인간으로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한다. 즉 오래 전에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던 그 무엇과 다시 결합하기를 원한다(Re-Connection)는 것이다, 저자는 그 모습을 아담과 이브의 모습일 수도 있고, 지구상에서 사라진 애트란티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어쨋든 우리는 스스로 치유할 능력을 갖고 있기에, 과거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누구나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예전에 말한 것처럼, 스캇팩 박사는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인간은 자연법칙과 역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진 창조주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의식혁명]에서 인간의 정신적 수준은 뇌의 지적 수준이 아닌 파동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 높은 파동을 보이는 인간은 그것으로 인해 자신뿐만 아니라 수만, 수십만 명의 의식에 영향을 주게 된다고 한다. 파동을 통해서 말이다. 그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예수는 파동 측정 수에서 상위랭킹에 속한다. 최고는 아니고.

네 번째, 저자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끈의 원리’를 이야기 하면서, 우주에서 가장 작은 입자는 소립자보다 더 작은, 즉 특정 주파수로 진동하는 ‘띠의 고리’라고 묘사한다. 이는 우리가 사는 차원(4차원)이 전부가 아니고 동시에 10~12개 차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저곳, 그리고 또 다른 세계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 내용은 요즘 인기를 끄는 [시크릿]류의 책에 담긴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따라서 타임머신이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기계라는 것이다.

리커넥션(Re-Connection). 이 책은 어떤 평범한 의사가 어느 날 갑자기 놀라운 치유력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집중하면 ‘희한한 치유’를 소개하는 책이 될 것이다. 그러면 독자에게 중요한 것은 저자와 같은 치유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저자는 이런 내용을 마지막 장에 정리해 놨다. 다만 저자가 항상 강조하는 말, ’나에게 왜 이런 능력이 생겼고, 치유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나는 그저 내 몸을 빌려주는 것뿐이다.‘라는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시선을 돌려 왜 이런 류의 이야기(영혼, 영성, 치유, 오래된 미래 등)가 요즘 따라 빈번하게 이야기 되는지에 관심을 갖고 되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의 의식 자체가 서서히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미래학자인 존 나이스비츠는 [메가트렌드2010]에서 책 내용 전체를 영성과 사랑이란 내용으로 가득 채웠다. 그가 보는 미래는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인간 스스로가 영성과 타인에 대한 사랑, 환경과 인간 자체에 대한 애정을 통해 극복하는 과정이다. 마치 더러워진 환경을 스스로 자정하듯이 말이다. 나이스비치는 이런 자정활동이 가능한 이유를 점차적으로 높아지는 인간의 영성 수준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하늘을 바라봤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힘이 인간들로 하여금 원래의 모습과 재결합(Re-Connection)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리가 잊어버린 과거의 순수 파장을 되찾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요즘 서점에 가면 이런 단어들-‘사랑’ ‘감사’ ‘배려’ ‘믿음’ ‘신뢰’ ‘긍정’ ‘꿈; ’영혼‘ ’잠재의식‘ 등-들이 담긴 책을 자주 본다. 예전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쓰고, 또 많은 사람들이 찾는 책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봤다. 혹시 이런 현상이 저자가 말한 독특한 파동(저자의 표현으로 말해서)으로 인해 사람의 의식이 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무엇인가가 자원고갈 직전의 황폐해진, 뜨거운 열기로 지구 전체의 환경이 변하고 있는, 게다가 폭발직전의 지구를 구하기 위해 인간의식을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이성을 갖고 찾아낸 수많은  문제해결책들이 결국엔 우리의 숨통을 조르는 비수가 되어 돌아온 상황에서 말이다.

[Re-Connection]이라는 단어를 보며 예전부터 들어왔던 ‘오래된 미래’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에서 미래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 방법만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책 한권의 내용을 너무 확대해석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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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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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마음은 더 아프다. 그리고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없는 상황을 원망하기도 한다. 이 책 [샘에게 보내는 편지]의 저자가 바로 이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손자가 짊어진 짐을 대신 짊어질 수 없는 할아버지의 마음이랄까.

[샘에게 보내는 편지]의 저자는 평범한 심리상담가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인해 전신마비가 되었다. 몸이 안 좋아 거동이 불편한 아내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남편, 두 사람은 서로를 도와주며 살아야 했지만, 결국 그런 상황은 두 사람을 이혼으로 몰고 갔다. 서로를 절실히 원한다는 것, 좋은 면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서로를 숨 막히게 하는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자신을 버린 아내를 원망하며 살았다. 가끔 그녀가 어려움을 호소하는 전화를 하면 그 때마다 그는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버림받았다는 마음의 상처가 컸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아내(샌디)가 죽은 후 그는 외로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물론 샘에게 하는 말이었다. “너희 집에 갔다가 나 혼자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내 곁에 샌디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내게는 샌디가, 너를 보며 느끼는 이 기쁨을 고스란히 함께 나눌 수 있는 오직 한사람이었다. 그리움은 내 가슴을 슬픔으로 가득 차게 하지만,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샌디에게 화가 났을 때보다 훨씬 더, 샌디에게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닫아 걸었던 때에 비하면 마음은 훨씬 더 아프지만 그리워한다는 것은 내가 샌디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그러나 저자를 정말 괴롭혔던 것은 바로 딸의 아들인 샘이 자폐진단을 받은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닫혀있었던 자신의 마음을 열어준 귀여운 손자가 말이다. 그는 전신 마비자, 즉 남과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 로서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기에 자폐진단을 받은 손자가 걱정되었다. 그 아이도 남과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손자를 바라보며 그 아이의 삶에 무엇인가 도움을 주고 싶었고, 그것을 편지로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어린 샘이 세상을 살아갈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들을 글로 정리했다. 우리가 보는 이 책이 그 글을 모아서 만든 책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마음에 다가와 그의 아픔을 함께 느껴보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느끼기도 했고,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을 강조하는 내용에서는 힘들게 하루하룰 살아가는 내 모습을 불쌍히 바라보기도 했다.

저자는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는, 자신은 물속에 빠지지 않으려고 항상 헛발질을 하며 산다는 상담자에게 물 속에 빠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한 가지를 가르쳐 준다.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계속 헛발질을 하지 말고, 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가라앉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이고, 그런 모습은 오래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물에 빠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힘을 빼고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럽게 몸이 물 위에 뜬다는 것이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된다. 이것이 저자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삶의 모습이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 현재의 상황을 인정하고 조용히 세상의 흐름을 지켜본다는 것, 어찌 보면 쉬운 듯하면서도 이를 행하기에는 무척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우리는 항상 뭔가를 바라고, 갈망하고, 원하고, 요청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꿈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세상의 일부를 맡길 테니 잘 돌보도록 하거라. 그것이 네게 부여된 임무다. 다 크게도, 더 좋게도 만들지 말고 그저 잘 보살피기만 하거라. 때가 되면 내가 다시 가져갈 것이니, 그 때 너도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저자가 하나님이 가리키는 것을 보니 딱 삼밀리미터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 저자는 하나님에게 투정을 부렸다. 박사학위를 가진, 논문도 쓰고, 전문가 대우를 받는 제가 삼밀리미터만 관리하라고요? 그러나 저자는 깨달았다.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몫이고 자리라는 것을. 그것도 있는 그대로 돌보기만 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자식을 키우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이라고 한다면 이 말이 바로 그런 모습의 원형을 말해주는 것은 아닌지. 자식이 자신의 길을 걸어 가는 동안 잘되게 하지도 말고, 억지로 어떤 모습을 만들려고 하지도 않은 채 그저 돌보기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부모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지 생각해 봤다. 그는 샘에게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샘. 부모는 언제나 부모일 수밖에 없고, 자식은 언제나 부모의 인생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자식과 부모는 서로 보살펴야 한다. 자식이 부모를 보살피는 방법은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 그리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드리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보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스스로를 잘 보살피는 것이다. 부모가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그 아이들도 자기 매리를 행복하게 내다본다.“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무척 편해진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지금의 내 모습을 그대로 사랑하며,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언젠가 다시 한번 읽고 싶다. 그리고 나도 내 아들을 위해 편지를 써 보고 싶다. 다만, 지금보다 더 낫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며 자신의 길을 힘차게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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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워즈니악 - 최초로 PC를 발명하고 애플을 설립한 괴짜 천재의 기발하고도 상상력 넘치는 인생 이야기
스티브 워즈니악.지나 스미스 지음, 장석훈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애플컴퓨터를 안다. 한 때 퍼스널컴퓨터 시장을 이끌었고, 펀치카드 대신 명령어를 사용해 컴퓨터를 움직였고, 마우스를 사용했고, 그래픽과 칼라화면을 가장 먼저 컴퓨터에 사용했던, 상상력 풍부한 기업으로 말이다. 그리고 애플의 ,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컴퓨터 운영체계 시장을 빼앗기긴 했지만, 지금도 전문가용 컴퓨터 시장에서 굳건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애플을 이끌었던 스티브 잡스는 알지만, 애플의 초창기 상품을 개발했고, 애플의 제조철학을 만든 장본인이자 스티브 잡스와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은 잘 모른다. 경영이나 마케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강의하는 몇몇의 전문가들은 빼고 말이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어릴 때부터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덕분에 애플이란 회사가 돈방석에 앉을 때까지도 엔지니어의 꿈을 키우며 그 길을 고수했다. 자신이 만든 애플I 덕분에 회사를 창업할 때, 그는 경영자가 아닌 엔지니어로서 일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HP를 떠나 애플로 자리를 옮겼다.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떼 돈을 번 벤처 기업의 경영자가 아니라 엔지니어로써 살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스티브 워즈니악의 모습을 보며 뭐라고 할까? 답답하다고 말할까? 아니면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할까? 이도 저도 아니면 미쳤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까짓 엔지니어의 자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세계를 주무르는 기업의 경영자를 마다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스티브 워즈니악의 삶을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고, 그것에 집중할 때만이 자신의 존재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엔지니어로써는 타의 주종을 불허하던 그도 사업가로 손 댄 다른 일에서는 여러 번 실패의 잔을 맛봤기 때문이다. 그것도 건 당 몇 백만 달러 이상의 금액을. 물론 당사자는, 비록 돈을 잃기는 했지만, 자신이 최초라는 점에 만족하는 듯했다.

나는 어떨까?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나도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자리와 내가 가장 신나게 일하는 일이 따로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남들은 머리 아프고 힘든 일이라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별로 힘들지 않는 일이 있다. 그 일을 할 때는 일이라기보다 누군가와 게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일이 있다. 지난 번에 말했듯이 바로 기획업무다. 그 일을 할 때는 내 머리 속에 단 한가지 생각만이 존재한다. 주어진 시간에 최고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다.

세상에 널려진 다양한 생각들을 몇 가지 요인으로 묶어, 그 속에서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내 앞에 놓인 정보와 자료들을 저리 짜 맞추고, 그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다음, 전체적인 모습을 파워포인트 등을 사용해 보기 좋게 그려내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으면 마치 예술작품 만들듯이 일을 한다고 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지금 생각해 보면, 20여년의 직장생활동안 나를 높여준 일이 이 일이었고, 진급, 임금인상, 더 나은 직장으로의 전직 등을 이끌어 준 것도 바로 이 일 덕분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일로 인해 심심하지는 않다. 누군가 계속 일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엔지니어의 인생을 예술가처럼 살았다면, 나는 기획자의 삶을 예술가처럼 살아 왔다. (물론 내가 스티브처럼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아마도 누군가가 나의 주특기를 가지고 회사를 설립하겠다고 하면 나도 스티브 워즈니악과 같은 말을 할 것 같다. 나는 회사를 관리 같은 거 안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창조해 내는 일이다. 거기에 맞는 방 하나만 주라.

그래서인지 나는 저자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CEO자리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오로지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방 하나만을 요구하는 그의 모습을 말이다. 애플에 투자하겠다고 돈 싸 들고 찾아 온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사장하고 싶은 사람(스티브 잡스)보고 사장하라고 해.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은 나서고, 중간에서 중재하고 싶은 사람은 중재하고. 하지만 나같이 조용히 일이나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가만히 냅 둬.

하긴 동업자이면서 사장한다고 봉급 더 받고, 엔지니어 한다고 봉급 덜 받겠는가?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상품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저자(스티브 워즈니악)의 몫이 아니겠는가. 사장이 아무리 떠들어봐야 저자가 NO하면 그만인 것을 구지 사장하겠다고 나설 이유도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역시 사장이 낫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50년을 살아보니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최을경씨가 한 말이다) 앞에서 우선 일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다. 이들은 남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멋지게 설명할 줄 알고, 이 기술로 상대방을 설득하여 사업의 흐름을 잡는 사람이다. 또 한 사람은 조직 안에 조용히 앉아 사업에 필요한 동력과 기반, 이론, 정책 등을 구상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만든 것이 그 기업의 핵심 상품이고, 서비스이고, 그 기업의 운영체제다. 그리고 한 사람이 더 필요한데. 바로 앞에 나선 사람과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의견을 조정하고, 중재하고 연결시켜 줄 사람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이 필요한 이유는 앞에서 말한 두 사람의 시각과 관점차이가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숫자는 3, 예를 들어 삼위일체, 삼원색, 삼각형 등,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둘이면 대립이 생기고, 넷이면 파벌이 생긴다. 물론 셋이면 둘이 하나를 왕따 놓는 경우도 생기긴 하지만. 미국 육군 교범에도 가장 안정된 초병의 구조는 3인 1조라고 한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 온 것 같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어린 시절부터 알았고, 그 길을 변함없이 걸어왔다. 그리고 순간순간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라고 깨달으며 살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간다. 물론 그런 성격 때문에 실수도 하고, 이혼도 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단순히 말하기 좋아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으라는 말이 외부세상이 피곤해 자기 안으로 도피하라는 세상 부적응자의 말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자신이 가장 행복해 질 수 있는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생활의 음계를 찾아내는 일이다.

스티브 워즈니악. 그는 내가 가장 먼저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남들이 걸어 보지 못한 길을 걸어갔다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US페스티벌 같은 행사 때문에 몇 백만 달러를 날리고도 나름대로 보람을 찾는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먼저 소련과 공동공연을 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나는 어떤가? 나는 발명보다 발견을 좋아한다. 남들이 못한 것을 먼저 했다는 것보다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찾아냈다는 것에서 희열을 느낀다. 그럼 당신은 어떤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가? 그리고 살아오면서 자신이 가장 성공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할 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남들보다 계산을 잘하고, 기억을 잘하고, 사람을 잘 사귀고 하는 식의 단순한 재능을 아는 것과 함께, 재능이 가장 잘 표현되는 자신만의 행동패턴을 아는 것이라고 본다. 즉 자신의 재능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 때 가장 잘 어울리는지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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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다락방 -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이지성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요즘 생생하게 꿈꾸면 무엇이든지 현실로 이루어진다와 같은 종류의 책이 많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사 보기 때문에 여러 출판사가 경쟁하듯이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 해도 안 팔리는 책을 출판사가 만들어내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참고로 [시크릿]이란 책이 아직도 판매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당신의 꿈은 뭔가요?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바보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보게 된 것은 2~3년 사이 최근의 일인 것 같다. 미국 같은 나라와는 달리, 겸손하고 자기 생각을 강하게 표현하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의 성격 상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고, 게다가 꿈은 어린 시절에 갖는 동심의 세계이고, 어른은 현실과 싸워야 하는 전사라는 선입관도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는 내용을 책에서 처음 본 것이 4~5년 전이었고, 그 때만 해도 누군가 나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 사람이 꿈꿀 시간이 어디 있어?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라고 생각하며 지냈고, 꿈이 없다는 것 자체를 문제 삼지도 않았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문제로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스티븐 코비가 쓴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는 책을 봤을 때였다. 당시 나는 책을 읽으며 저자의 말에 공감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래 맞는 말이야. 당연히 소중한 것을 먼저 해야지. 그것이 바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길이니까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보니 그 다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란 다음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먹고 사는데 지장 없고, 하루하루 별 탈없이 지내는 것, 가족들이 별 문제 없이 지내는 것 정도만 만사 OK 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나는 내 꿈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시 내 머리 속에는 50세 넘어서의 모습이 없었다. 잘하면 80까지도 살아야 할 인생 길에서 남은 30년의 모습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쇼킹한 일이겠는가.(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라도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이제 청년과 노년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나이가 아니라 꿈을 꾸고 있는가가 아니겠는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뭐지? 내가 마지막 순간 나를 되돌아보며 만족하게 살았다고 느낄 수 있는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이런 질문과 대답 속에서 미래의 내 모습을 하나씩 그려나갔다. 머리 만들고, 가슴 만들고, 눈 붙이고, 손가락 만들듯이 하나씩 몸 전체를 조립해 나갔다.

지금 내 방에는 5개의 문구가 벽에 붙어있다. 나는 상아탑과 사회현실을 통합하여 세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대학교수다 나는 매주 주 5회 이상 강의하는 인기강사다 나는 매년 책이 1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나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창업컨설턴트이자 독서경영코치다 그리고 나는 가족과 내 이웃들에게 안정과 평화. 사랑과 여유로움을 전하는 행복의 전도사이다

그리고 매일 새벽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커피 한잔 마시며 그 글을 읽어본 후, 조용히 눈을 감고 내 꿈을 머리 속에 그려본다. 물론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까만 화면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원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대충 영상이 떠 오른다. 내가 어디서 어떤 복장으로 어떤 표정을 짓고 일하고 있는지 조금씩 머리 속에 그려진다. 이것이 바로 내가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삶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이런 일을 반복해서 인지는 몰라도 회사를 그만둔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그 동안 내가 그려왔던 일들이 하나씩 이루어지는 것 같다. 교수문제는 처음 임시특강강사에서 시간강사를 거쳐 겸임교수로 (이제 다음 단계는 전임 아니면 조교수다), 단 한 곳에서 시작했던 강의가 2군데를 거쳐 이제는 4곳으로, 책 쓰는 것도 처음엔 원고 하나 가지고 고민하던 모습에서 이제는 편집기획사의 도움을 받으며 글을 쓰고 있고, 손 내밀면 저술이야기를 논의할 수 있는 2~3개의 출판사도 알게 되었다. 기업컨설팅도 시작했고, 이제 해야 할 일은 컨설팅기법을  보완하여 업체의 실적을 높이면 될 것 같다. 독서경영과 관련된 강의만 빼고 대부분의 꿈이 조금씩 모양이 잡혀가고 있다. 아마도 독서경영부분은 다른 일에 비해 경력이 짧아 그런 것 같다. 이제 고민을 시작한지 5년 밖에 안됐으니 말이다. 

이 책 [꿈꾸는 다락방]에 나온 이야기 중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돈 문제를 꿈꿀 때는 얼마를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돈을 벌게 되었을 때의 감정을 느끼라는 말이다. 백만장자가 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 이란 성공했다는 만족감과 이로 인해 얻게 되는 삶에 대한 안정감과 여유로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R=VD 라는 공식을 강조한다. 즉 꿈이 현실(Reality)로 이루어지는 문제는 그 꿈을 얼마나 생생하게(Vivid) 꿈꾸느냐(Dream)에 달려있고, 무엇이든지 당신이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만 잊지 말 것은 꿈을 꾸는 것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 중간부터 독자들을 위해 생생하게 꿈꾸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말로 꿈을 표현하는 법, 글쓰기를 통해 하는 법, 그림과 사진으로 하는 법, 영화관에 들어가 영화를 보듯이 꿈꾸는 법, 칵테일파티기법, 상상의 멘토를 활용하는 법 등이다. 그리고 누구라도 이 책을 읽으면 R=VD라는 공식을 거부하기 어려울 만큼 구체적인 사례들을 많이 들고 있다. 자신도 이 책에 나온 사례들처럼 성공하고 싶다면 책에 나온 여러 가지 기법 중에서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하나 골라 해 보면 좋을 듯하다. 나도 그 동안 내가 했던 방법을 좀 더 보완해서 내 꿈을 보다 구체적으로 매일 써보자고 한다. 마치 일기 쓰듯이 말이다. 그러다 보면 내 꿈이 잠재의식과 연결되어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치 예언서를 쓰듯이 말이다.

다만 [꿈꾸는 다락방]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은 이런 종류의 책에서 자주 느끼는 것인데, 왜 꿈을 꾸면 그것이 현실로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구체적으로 풀어주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문제는 인간의 숨은 능력과 잠재의식을 완전히 이해하지 않는 한 누구도 풀기 어려운 문제일 것 같다.

또 하나는 너무 와 관련된 면을 강조한 듯하다. 책에 나온 사례들 중 대부분이 돈을 벌고, 큰 집을 사고, 유명세를 타고, 거대한 음식점을 경영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는 무척 중요하고, 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것은 윤택한 삶을 도와주는 수단인지 삶의 목적 자체는 아닐 수도 있다. 

내 자신도 앞에서 말한 내 꿈을 보며 가끔 이것들이 진정으로 내가 꿈꾸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대학교수, 인기강사, 베스트셀러작가, 경영 컨설턴트 같은 것들이 진정으로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이루면 그 때부터 나는 정말 행복해 질까?라는 의문이다. 물론 먹고 사는 것은 별 문제없겠지만 말이다. 독자에게 소중한 정보를 전해주는 고마운 책. 하지만 좀 더 본질적인, 진정한 행복을 꿈꾸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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