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드 스크린 -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바꾸는 모바일 혁명
척 마틴 지음, 장세현 옮김, 박재항 감수 / 비즈니스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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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의 통신변혁을 저자는 우리 앞에 나타나는 화면이라 정의했다. 일반적으로 통신네트워크, 테크놀로지란 기계적인 표현보다 정서적으로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이다. 그는 첫 번째 화면을 TV라고 본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기업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재미있게 보는 화면으로. 당시 TV는 사람들에게 재미와 휴식을 주고, 정보를 일상화시켜줬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주는 것을 받는 사람일 뿐이었다. 볼 것인지 안 볼 것인지만 결정할 수 있는 수동적인 상태였다.

두 번째 화면은 컴퓨터다. 단순히 주는 것만 받던 모습에서 한 단계 진화해서 주고받는 스크린으로, 더 나아가 받은 것을 가공해서 기업체에 던지고 기업체에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야’라고 외치기 시작한 단계. 이때부터 고객은 소비자가 아닌, 진정한 고객이 되었고, ‘고객이 정답’이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그것도 개인차원을 넘어 집단 수준에서 기업에 전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바로 ‘서드 스크린’, 컴퓨터라는 고정된 물체에서 인간을 벗어나게 한 것, 그래서 자유롭게 세상을 활개 치고 다니며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내용을,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게 한 무선망이다. 물론 여기서 무선망이란 개념은 대표적으로 휴대폰을 일컫는 단어이고, 과거 문자와 통신만을 담당하던 피처폰도 포함하지만, 이보다는 컴퓨터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말한다.

저자는 모바일을 이렇게 표현한다.

‘개인이 갖고 다니는 개인성 기기’ ‘단순한 소리와 문자를 전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보와 콘텐츠를 오감을 총동원하여 다채로운 방법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기기’ ‘사용자의 시간과 위치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1:1 마케팅을 완벽하게 전개할 수 있는 기기’ ‘현존하는 거의 대부분의 콘텐츠를 개인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는 기기’ ‘웹의 발전 속도와는 달리 웹이 만들어놓은 모든 것을 활용하여 급격하게 성장, 발전하는 기기’ ‘기업이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 사용자 스스로가 모바일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셀프서비스 도구를 개발하는 기기’ ‘소비자 곁에서 항상 ’On'상태로 되어 있고,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기기, 그렇기에 소비자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기기’ ‘게다가 ‘다수의 국가에서 시장침투율이 거의 100%에 달하는 기기’다. 특히 이 상황은 매우 특이한 상황인데, 지구촌 인구 가운데 73%에 해당하는 50억 인구가 휴대전화를 소유하고 있다. 이는 다른 기기들과 비교했을 때 극적인 상황이다. 전 세계에 보급된 PC는 약 10억대이고, TV는 20억대다.

이제 모바일을 생각하지 않고는 자신의 상품을 고객에게 전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TV나 라디오와 같은 4대 매체의 힘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과거 광고의 총아로 평가받았던 배너광고도 이젠 효과 면에서 예전 같지 않다. 인터넷사이트를 볼 때 배너광고를 제외하고 내용만 볼 수 있는 툴도 나왔으니 말이다.

모바일. 특히 스마트폰. 개인적인 기기이자 수많은 사람과 연결된 네트워크 세상.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능동적으로 소화한다. 그러다보니 모바일이 이끌어가는 세상에서는 고객의 선택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거처럼 물량으로 밀어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제 아무리 좋은 걸 준다 해도 고객이 그걸 받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고객은 손가락 하나를 갖고 Yes와 No를 결정해 버린다. 상품광고? 아무리 휴대폰으로 날려봐야 ‘삭제’버튼 하나에 순간 공중으로 사라지고,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앱을 만들어도 고객이 이를 선택하여 다운받지 않으면 말짱 허사다.

저자는 모바일세상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간에 고객이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제는 고객에게 선택받으려면 반드시 그들이 원하는 가치를 함께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찾아내는 게 어렵다고 한다.

‘가치’. 마케팅에서 오랜 시간동안 외쳐왔던 얘기다.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찾아 그것을 주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치’ 그 자체보다 물량으로, 가격으로, 광고로, 유통으로 상품을 팔 수 있다고 믿었다. 또 실제로 그런 방법이 보다 편하고 쉽게 매출을 올려줬다. 그러나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가치’ 그 자체가 기업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핵심요소가 되었다.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내가 그들에게 가장 멋지게 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그들 입맛에 맞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사업의 핵심과제가 된 세상이다. 그 어느 때보다 ‘고객의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해야만 할 때다. 단순한 교과서 얘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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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맨 - 원시의 뇌가 지배하는 리더십의 탄생과 진화
마크 판 퓌흐트 & 안자나 아후자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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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리더십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항상 조직과 함께 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다보니,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들 스스로가 일을 완수하도록 독려해야 했다. 그 동안 읽은 리더십 책 중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책은 최근에 읽은 감성리더십이란 책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공감한다는 것, 그들에게 리더의 꿈이 자신의 꿈임을 알게 해 줘야 한다는 걸 알려준 책이다. 감성리더십의 저자는 리더가 사람들과 함께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라면, 당연히 그들로 하여금 리더의 뜻을 따르게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조직원의 감정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앞서 말한 책과는 또 다른 책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리더를 필요로 하는데 이는 리더의 권한이나 스킬 문제가 아닌 생존과 관련된 것이었고, 따라서 영장류에게는 리더를 찾아내는 능력이 유전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말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리더를 선정하라고 얘기하면 20~30초 내에 찾아낸다니 저자 말이 틀린 것 같지 않다.

이 책을 보며 생각해 볼 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리더는 스스로 리더가 된 것이 아니라  추종자가 있기에 리더가 되었다는 말이다. 즉 특정인이 나를 따르라고 해서 사람들이 따르는 게 아니라,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의식-누군가를 중심으로 모여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감각(유전자적인 본능)이 리더를 내세우게 한다는 말이다.

이런 의식이 인간 속에 내재하게 된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인간들 중에는 리더를 따르겠다는 의식을 가진 사람과 자신 혼자서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집단에 속하여 리더를 따르는 종족의 생존확률이 높아지게 되자 인류는 자연스럽게 리더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살아남아 지금의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리더는 추종자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는 것, 리더 스스로가 자신을 리더로 만든 게 아니라 추종자가 그를 리더로 내 세웠다는 말이다.

또 하나는 ‘빅맨’이란 단어의 의미다. 옛날 인류가 동물과 유사한 모습으로 살아갈 때 조직의 안녕을 보장하는 것은 강인한 신체와 정신력이었다. 인류를 위협하는 다양한 적, 같은 인류를 포함한,들로부터 조직을 보호하려면 힘이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유전자속에 뿌리박힌 리더의 모습은 힘이 넘치고 근육이 발달한, 남들보다 강인한 사람이었다. 인간은 그런 사람을 선택하게끔 프로그램되었고, 성별로도 여성보다는 남성을 우위에 두게 되었다. 인간은 그런 사람을 보며 안도감을 느끼고, 그를 따를 때 안전이 보장되리라 믿게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현대사회, 육체가 필요한 대부분의 일을 기계가 도맡아하는 현대사회에서 과거 시절의 빅맨은 그 힘을 사용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정보사회의 빅맨은 남보다 많은 자료에 접근할 수 있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문제는 인간 머릿속에 남아있던 ‘빅맨’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리더선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제 리더의 모습은 과거 빅맨은 아니기에 이를 조심해야 한다고 독자에게 경고한다.

그렇다면 과거 인류의 생존을 위해 유전자에 각인된 리더의 모습은 모두 잘못된 것인가? 저자는 여기서 올바른 리더를 선발하려면, 빅맨과 같은 특정의 리더모습은 폐기하더라도,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욕망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조직에 속하여 자신의 안정을 위해 리더를 따르지만, 리더에 종속된 것이 아닌 리더를 결정하고 그를 폐할 수 있는 권한을 추종자의 마음이다. 저자는 리더와 추정자의 관계는 위계상 상층인 리더와 하층인 추종자가 아닌, 모두가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보다 특질한 한 사람이 리더여야 한다고 정의한다.

그가 제안한 올바른 리더는 기업에서 실행하는 것처럼 위에서 선발된 리더가 아니라 추종자들이 스스로 결정한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결과도 추종자와 상관없는 리더와 함께 일하는 것보다 추종자가 선발한 리더와 함께 일할 때 더 많은 성과를 올린다고 보고한다.

저자는 현대사회의 올바른 리더 상으로 ‘자연적인 리더’를 이야기한다. 즉 특정의 기술과 지식을 갖고 있기에 조직성장과 생존에 도움을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기에 추종자들이 자연스럽게 리더로 선발한 사람, 이 사람이 바로 ‘자연적인 리더’다.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은 자연적인 리더가 되기 위한 방법인데, 자신이 잘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화하여 남들과 다른 능력을 보유하는 것,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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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해야 치유된다 - 중독 심리치유 에세이
선안남 지음 / 신원문화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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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출간되는 숫자만큼은 아니어도 영화 역시 많이 제작된다. 국내 제작편수만 따지면 많지 않지만 해외영화까지 합치면 숫자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특히 영화는 대본에 의해 대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번역해야 할 분량이 많다. 따라서 외국에서 상영된 것이든, 국내에서 상영된 것이든 따지지 않고 저술책보다 손쉽게 영화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나를 사랑해야 치유된다>는 책처럼 영화내용을 근간으로 저자의 생각을 풀어가는 책이 눈에 띈다. 영화, 드라마나 소설 같은 이야기 종류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특성인 인물 묘사 때문인 것 같다. 모든 이야기는 특정인의 성격과 그 성격으로 인해 야기된 행동의 결과를 추적(과거, 현재, 미래)하는 방식으로 쓰여 져 있다. 따라서 영화를 이해하려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주인공의 성격이 나와 비슷하거나 그의 행동에 공감하면, 또 주인공의 모습 속에서 대리만족할 수 있다면 계속 읽거나 보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만큼 인물 묘사가 중요하다. 그러다보니 심리학 관련자들에게는 자신의 주 전공을 살려 이야기를 풀어가기 아주 좋은 소재일 것 같다. 고전문학 같은 것은 분량도 많고, 이야기 전개도 복잡해 한 권씩 읽고 정리하기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이 책도 ‘중독심리’라는 주제를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을 통해 풀어간다. 주인공이 가진 중독심리 장면을 설명하고, 그런 중독 상황에 처하게 된 이유를 간략하게 해설한 후 저자 나름대로 중독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팁을 주는 방식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책에서 소개한 영화를 봤거나 이전에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영화라면 일단 관심을 갖고 읽게 된다. 자신이 영화를 봤을 때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부분을 저자(심리관련종사자들)가 클로즈업시켜 설명하니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 그때 그 장면이 이런 의미를 갖고 있었구나’하는 지적 만족감도 얻을 수 있다.

이 책 내용들 중에서 인상 깊게 본 부분은 치유 부분에 나온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영화 이야기와 ‘레이첼, 결혼하다’라는 영화 이야기다. 영화 자체가 인상 깊었거나 잘 만들어졌다는 의미보다는 영화를 통해 제시하는 저자의 말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았다. 전자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는 중독증상으로 고민하는 사람이라도 자기 스스로 고통을 이겨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 따라서 주위사람들이 보여주는 필요이상의 관심은 필요악이 될 수도 있다는 저자의 말이다. 이때에 중독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에게 반감을 가질 수 있는데, 이유는 상대방이 갖는 의식 때문이다. ‘당신은 나 없이는 혼자 일어설 수 없어’라는 우월감, ‘내가 당신을 낫게 하기 위해 희생하고 있어’라는 위협적인 도덕심 같은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저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 “가족이란 우리에게 가장 큰 기대를 하면서, 우리의 모든 치부를 알고 있으면서, 또 우리가 잘되기를 바란다는 이유로 듣기 어려운 잔소리와 가장 아픈 채찍질을 하기도 하는 존재다. 그러기에 그들은 우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장 많이 해하고 우리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존재일 수도 있다.”

우리는 평소 가족을 행복, 평화, 보호처, 안정감 같은 단어로 묘사한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고, 또 가족만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 보일 곳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이란 이유로 많은 것을 부과하고 자신의 정체성 자체를 바꾸도록 종용하는 경우도 많다. 사랑한다는 이유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 대한 저자의 논지는 영화 자체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 다만, 문제는 이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가족 간의 관계를 어떻게 잘 순화시킬 것인가 인데, 저자는 이 부분에서 영화의 결말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모순덩어리를 안고도 가족은 여전히 굴러간다. 가족이니까.”

영화를 대상으로 저술한 책은 글을 읽으면서 동시에 시각적인 장면을 연상할 수 있기에 일반 책보다 이해하기가 쉽다. 단순히 글만 있는 것과는 달리 영화라는 보조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소재로 한 책을 몇 권보면서 느낀 점은 ‘이렇게밖에 영화를 정리할 수 없는 것인가?’다. 처음 한 권은 호기심으로, 두 번째 책은 그렇구나 하는 마음으로 읽었지만, 세 번째, 그리고 네 번 정도 영화를 소재로 쓴 책을 보니 저자와 주제만 다르지 책 내용이 일정한 모양에서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주제에 대한 깊은 이론적 배경을 전달하지도 않고, 영화에서 준 감동을 독자에게 보여줄 수도 없고, 다양한 영화 속에서 보여준 공통적인 요소를 찾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영화 한 편에서 하나의 질환을 찾아 주인공 이야기를 해 주고, 그것을 잠깐 설명하는 정도의 내용들이다. 영화라는 조금 소재를 좀 더 잘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이런 식으로밖에 활용할 방법이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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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훔친 소설가 -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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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라는 부제가 무척 관심을 끈다. 문학, 아니 예술 자체가 공감이란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 하지만 이런 내용조차도 뒤에 ‘과학’이란 단어가 붙으니 뭔가 새로운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책 내용을 보면 문학도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들을 적어놓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책에 담긴 과학적 사실들이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예술, 문학이론에서 는 너무나도 기초적인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예술, 문학의 기본이론을 정리하지는 게 아니라 그 동안 이론적으로, 또 체험적으로 알고 있던 문학, 예술과 인간과의 관계를 과학적인 발견을 통해 다시 한 번 들여다보자는 데 의미가 있으니 그런대로 의미 있는 책이라 볼 수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학은 궁극의 인간정신을 표현한다. 모든 예술 장르 중에서 독보적으로 인지적인 문학을 연구하려면 결국 인간 정신에 대한 연구와 손잡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 역시 해부학, 의학, 생리학에서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영역을 포함하지만 결국은 인간의 정신과정을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저자는 문학을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아름다운 말의 향연도 아니라고 한다. 그는 문학을 인간에 대한 탐구보고서라고 보고, 작가는 인간의 속내를 읽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결국 문학은 신경과학 이전에 인간을 탐구하려는 인간의 시도였고, 과학은 그런 시도를 객관적인 시각을 통해 증명해 낸 것뿐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드라마작법 책이나 스토리텔링 책을 보면 반드시 나오는 말이 있다. 문장, 글쓰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고, 그 중에서 플롯이란 것이 중요하지만 이는 결국 주인공의 성격이,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특질이 결과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어떤 글을 쓰던지 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주인공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짓는 것이란 말이다. 즉 사람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독자로 하여금 글을 읽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 내용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했다. 타인의 생각과 행동에 공감하고 그것을 흉내 내려는 인간의 의식, 무엇엔가 몰입하고 창조하고, 이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잊어버리는 모습, 어떤 특정 상황에 안주하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모습이다. 저자는 이러한 모습들을 러시아문학 중에서 찾아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어떤 때는 문학책 내용을 인용한 분량을 한 페이지 반 정도 제시함으로써 원본 내용에 빠지게 만든다. 저자의 인용부분이 책에 나온 과학적인 입증결과와 너무나도 적확한 부분을 발췌해 제시하기에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책의 향취를 다시 한 번 느껴 볼 수도 있다.

그는 인간의 네 가지 행동을 ‘의미’을 찾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즉 인간이 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이유, 또 문학에서 이와 같은 모습을 묘사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이유는 이런 것들이 바로 단순한 생존이 아닌, 의미 있게 살아가겠다는 인간의 의지를 함축해서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가 책에서 얘기하고자 했던 것들을 몇 가지 요약해 보자.

창조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알려면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모짜르트를 봐라. 그러나 창조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지속적인 정보유입을 통해 뉴론과 뉴론 사이에 존재하는 시냅스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결국 창조를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것을 지속적으로 머릿속에 주입해야 한다.

몰입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몰입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행동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근거가 있어야 한다. 일에 몰입하는 것도 어떤 일에 몰입하느냐의 문제가 따른다. 마약에 취하는 것도 몰입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백경’에 나오는 선장의 모습을 보라. 그는 자신의 다리 한 쪽을 앗아낸 고래 한 마리에 모든 것을 걸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함께 고통으로 끌고 갔다. 몰입한 결과다.

기억력이 좋으면 다 좋은가? 물론 기억력이 좋다는 게 흠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살아가며 보고 느낀 것을 하나도 잊지 못한다면 그런 상황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아무 것도 잊지 않는 사람에게 어제 일을 얘기해보라면 하루가 걸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머릿속에는 매분, 매초의 상황들이 전부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잊는다는 것, 인간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축복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인간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것 이상을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다만, 과학이란 미명 하에 증명되지 않은 것은 허구라는 선입관이 우리의 지식을 가로막을 뿐이다. 인간에게 문자가 생기면서부터 시작한 글쓰기.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을 탐구했고, 그 결과 인간에 대한 수많은 모습들을 문학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는 소설 속의 인물을 보며 단순한 허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과학이 발달했다고 주장하는 현 세상. 신경과학이란 최첨단의 기술이 발견한 것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당연하다고 느낀 사소한 몇 가지 사실뿐이다. 인간의 공감할 줄 알고, 공감하면서도 허구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수준의 것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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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역습 - 오만한 지식 사용이 초래하는 재앙에 대한 경고
웬델 베리 지음, 안진이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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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는 게 많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반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우리 조상들보다는 무척 많이 알고 있지만. 나 같은 경우만 해도, 내가 관심 있는 분야는 어느 정도 알겠지만(그것도 제한된 부분에서만) 세상에 널린 수많은 지식을 모두 다 얻을 수는 없는 법.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겸손이 아니라 실제로 말이다.

지식을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주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 십 년 전쯤일까? 하지만 그때도 지식보다는 지혜가,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석학들의 저서 속에 간간히 들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요즘은 이성, 지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긴 어렵고, 지식이 모든 것의 해답이 될 수 없다는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말에 동의하는지 아니면 머리만 끄덕거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이젠 지식이 특정인의 소유물이기보다 검색할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보니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의식이 더 중요하게 되었고,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객관, 합리라는 단어보다 인간답게 풀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안다는 것. 이제는 한계에 온 것 같다.

이 책을 열면 초반에 인간이 가진 지식의 종류와 무지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다양한 종류의 무지, 넘치고 넘치는 지식의 종류를 나열할 수 있겠지만 저자는 몇 가지로 간단히 정의한다. 그의 주장은 매우 분명하고 간단하다.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의 한계를 모르고, 무엇을 모르는지 조차 모른다는 점이다. 그러나 몇 페이지를 더 넘겨보면 단순히 알고 모르고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지식이 무지와 합쳐져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를 망가트리고 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자체를 지금 이순간의 만족을 위해 하나씩 파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말 중에 뇌리를 떠나지 않는 말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좋다. 이것은 인간의 지식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하지 않는가’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물이 부족해 지하수를 파면 당장의 물 고생은 덜하겠지만, 그로 인해 그것의 지층에 문제가 생긴다면....집안의 위생관리를 위해 오물을 하수도로 버리지만, 그로 인해 하천이 오염되고, 강이 오염되어 버린다면...곡식을 헤치는 벌레들을 없앤다고 농약을 뿌리면 곡식의 수확량은 늘겠지만 그로 인해 다른 곤충도 죽어 생태계 자체가 변해버리면...결국 인간은 자신의 지식을 믿고, 그 지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리라 기대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말이다.

특히 현 자본주위 체제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자본주의의 정신을 이끄는 존재는 인간이 아닌 기업이며, 기업의 사명은 이익추구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각에서 자연은 활용해야 할 자원이지 인간과 함께 살아가야 할 무엇이 아니다. 따라서 개발해서 얻을 이득이 많다면, 산을 없애 평지를 만드는 게 기업 입장에서는 옳다. 그러나 그로 인해 주변에서 살고 있는 인간과 동식물은 어떻게 될 것인가?

책 내용 중에 다른 사람들도 알았으면 하는 내용이 하나 있는데, 벌목 일을 하는 찰리 피셔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나무를 벨 때 기계보다는 말을 사용한다. 트랙터 같은 것을 사용하면 훨씬 빠른 시간 내에 많은 나무를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은 숲이란 생태계를 망쳐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산 하나에서 벌목할 수 있는 모든 나무를 한꺼번에 다 가져가지 않는다. 비록 돈 벌이를 위해 벌목하긴 하지만, 그 후에도 숲 자체가 자생능력을 통해 원상대로 돌아갈 정도의 나무만 가져간다. 즉 자연과 인간의 대립이 아닌, 숲을 활용해서 이윤을 얻고, 자연과 자신의 모습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그는 주로 병이 들었거나 상했거나 다른 이유로 품질이 떨어져서 베어 내야할 나무를 필요한 수만큼 골라낸다.

찰리 피셔와 하루를 함께 했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3년 전에 나무를 베어낸 숲에서 사탕단풍나무와 붉은단풍나무가 빽빽이 자라는 모습은 찰리의 삼림 관리방식이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증거였다.” 그가 벌목을 나무를 찾을 때는 두 가지를 함께 생각한다. 즉 어떤 나무를 벨까의 문제와 어떤 나무를 남겨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10년, 20년 후에 내 아들이 베어낼 나무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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