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마음은 더 아프다. 그리고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없는 상황을 원망하기도 한다. 이 책 [샘에게 보내는 편지]의 저자가 바로 이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손자가 짊어진 짐을 대신 짊어질 수 없는 할아버지의 마음이랄까.

[샘에게 보내는 편지]의 저자는 평범한 심리상담가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인해 전신마비가 되었다. 몸이 안 좋아 거동이 불편한 아내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남편, 두 사람은 서로를 도와주며 살아야 했지만, 결국 그런 상황은 두 사람을 이혼으로 몰고 갔다. 서로를 절실히 원한다는 것, 좋은 면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서로를 숨 막히게 하는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자신을 버린 아내를 원망하며 살았다. 가끔 그녀가 어려움을 호소하는 전화를 하면 그 때마다 그는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버림받았다는 마음의 상처가 컸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아내(샌디)가 죽은 후 그는 외로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물론 샘에게 하는 말이었다. “너희 집에 갔다가 나 혼자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내 곁에 샌디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내게는 샌디가, 너를 보며 느끼는 이 기쁨을 고스란히 함께 나눌 수 있는 오직 한사람이었다. 그리움은 내 가슴을 슬픔으로 가득 차게 하지만,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샌디에게 화가 났을 때보다 훨씬 더, 샌디에게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닫아 걸었던 때에 비하면 마음은 훨씬 더 아프지만 그리워한다는 것은 내가 샌디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그러나 저자를 정말 괴롭혔던 것은 바로 딸의 아들인 샘이 자폐진단을 받은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닫혀있었던 자신의 마음을 열어준 귀여운 손자가 말이다. 그는 전신 마비자, 즉 남과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 로서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기에 자폐진단을 받은 손자가 걱정되었다. 그 아이도 남과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손자를 바라보며 그 아이의 삶에 무엇인가 도움을 주고 싶었고, 그것을 편지로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어린 샘이 세상을 살아갈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들을 글로 정리했다. 우리가 보는 이 책이 그 글을 모아서 만든 책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마음에 다가와 그의 아픔을 함께 느껴보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느끼기도 했고,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을 강조하는 내용에서는 힘들게 하루하룰 살아가는 내 모습을 불쌍히 바라보기도 했다.

저자는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는, 자신은 물속에 빠지지 않으려고 항상 헛발질을 하며 산다는 상담자에게 물 속에 빠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한 가지를 가르쳐 준다.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계속 헛발질을 하지 말고, 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가라앉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이고, 그런 모습은 오래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물에 빠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힘을 빼고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럽게 몸이 물 위에 뜬다는 것이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된다. 이것이 저자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삶의 모습이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 현재의 상황을 인정하고 조용히 세상의 흐름을 지켜본다는 것, 어찌 보면 쉬운 듯하면서도 이를 행하기에는 무척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우리는 항상 뭔가를 바라고, 갈망하고, 원하고, 요청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꿈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세상의 일부를 맡길 테니 잘 돌보도록 하거라. 그것이 네게 부여된 임무다. 다 크게도, 더 좋게도 만들지 말고 그저 잘 보살피기만 하거라. 때가 되면 내가 다시 가져갈 것이니, 그 때 너도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저자가 하나님이 가리키는 것을 보니 딱 삼밀리미터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 저자는 하나님에게 투정을 부렸다. 박사학위를 가진, 논문도 쓰고, 전문가 대우를 받는 제가 삼밀리미터만 관리하라고요? 그러나 저자는 깨달았다.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몫이고 자리라는 것을. 그것도 있는 그대로 돌보기만 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자식을 키우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이라고 한다면 이 말이 바로 그런 모습의 원형을 말해주는 것은 아닌지. 자식이 자신의 길을 걸어 가는 동안 잘되게 하지도 말고, 억지로 어떤 모습을 만들려고 하지도 않은 채 그저 돌보기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부모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지 생각해 봤다. 그는 샘에게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샘. 부모는 언제나 부모일 수밖에 없고, 자식은 언제나 부모의 인생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자식과 부모는 서로 보살펴야 한다. 자식이 부모를 보살피는 방법은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 그리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드리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보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스스로를 잘 보살피는 것이다. 부모가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그 아이들도 자기 매리를 행복하게 내다본다.“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무척 편해진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지금의 내 모습을 그대로 사랑하며,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언젠가 다시 한번 읽고 싶다. 그리고 나도 내 아들을 위해 편지를 써 보고 싶다. 다만, 지금보다 더 낫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며 자신의 길을 힘차게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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