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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훔친 소설가 -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라는 부제가 무척 관심을 끈다. 문학, 아니 예술 자체가 공감이란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 하지만 이런 내용조차도 뒤에 ‘과학’이란 단어가 붙으니 뭔가 새로운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책 내용을 보면 문학도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들을 적어놓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책에 담긴 과학적 사실들이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예술, 문학이론에서 는 너무나도 기초적인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예술, 문학의 기본이론을 정리하지는 게 아니라 그 동안 이론적으로, 또 체험적으로 알고 있던 문학, 예술과 인간과의 관계를 과학적인 발견을 통해 다시 한 번 들여다보자는 데 의미가 있으니 그런대로 의미 있는 책이라 볼 수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학은 궁극의 인간정신을 표현한다. 모든 예술 장르 중에서 독보적으로 인지적인 문학을 연구하려면 결국 인간 정신에 대한 연구와 손잡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 역시 해부학, 의학, 생리학에서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영역을 포함하지만 결국은 인간의 정신과정을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저자는 문학을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아름다운 말의 향연도 아니라고 한다. 그는 문학을 인간에 대한 탐구보고서라고 보고, 작가는 인간의 속내를 읽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결국 문학은 신경과학 이전에 인간을 탐구하려는 인간의 시도였고, 과학은 그런 시도를 객관적인 시각을 통해 증명해 낸 것뿐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드라마작법 책이나 스토리텔링 책을 보면 반드시 나오는 말이 있다. 문장, 글쓰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고, 그 중에서 플롯이란 것이 중요하지만 이는 결국 주인공의 성격이,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특질이 결과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어떤 글을 쓰던지 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주인공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짓는 것이란 말이다. 즉 사람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독자로 하여금 글을 읽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 내용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했다. 타인의 생각과 행동에 공감하고 그것을 흉내 내려는 인간의 의식, 무엇엔가 몰입하고 창조하고, 이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잊어버리는 모습, 어떤 특정 상황에 안주하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모습이다. 저자는 이러한 모습들을 러시아문학 중에서 찾아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어떤 때는 문학책 내용을 인용한 분량을 한 페이지 반 정도 제시함으로써 원본 내용에 빠지게 만든다. 저자의 인용부분이 책에 나온 과학적인 입증결과와 너무나도 적확한 부분을 발췌해 제시하기에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책의 향취를 다시 한 번 느껴 볼 수도 있다.
그는 인간의 네 가지 행동을 ‘의미’을 찾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즉 인간이 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이유, 또 문학에서 이와 같은 모습을 묘사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이유는 이런 것들이 바로 단순한 생존이 아닌, 의미 있게 살아가겠다는 인간의 의지를 함축해서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가 책에서 얘기하고자 했던 것들을 몇 가지 요약해 보자.
창조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알려면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모짜르트를 봐라. 그러나 창조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지속적인 정보유입을 통해 뉴론과 뉴론 사이에 존재하는 시냅스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결국 창조를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것을 지속적으로 머릿속에 주입해야 한다.
몰입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몰입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행동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근거가 있어야 한다. 일에 몰입하는 것도 어떤 일에 몰입하느냐의 문제가 따른다. 마약에 취하는 것도 몰입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백경’에 나오는 선장의 모습을 보라. 그는 자신의 다리 한 쪽을 앗아낸 고래 한 마리에 모든 것을 걸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함께 고통으로 끌고 갔다. 몰입한 결과다.
기억력이 좋으면 다 좋은가? 물론 기억력이 좋다는 게 흠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살아가며 보고 느낀 것을 하나도 잊지 못한다면 그런 상황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아무 것도 잊지 않는 사람에게 어제 일을 얘기해보라면 하루가 걸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머릿속에는 매분, 매초의 상황들이 전부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잊는다는 것, 인간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축복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인간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것 이상을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다만, 과학이란 미명 하에 증명되지 않은 것은 허구라는 선입관이 우리의 지식을 가로막을 뿐이다. 인간에게 문자가 생기면서부터 시작한 글쓰기.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을 탐구했고, 그 결과 인간에 대한 수많은 모습들을 문학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는 소설 속의 인물을 보며 단순한 허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과학이 발달했다고 주장하는 현 세상. 신경과학이란 최첨단의 기술이 발견한 것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당연하다고 느낀 사소한 몇 가지 사실뿐이다. 인간의 공감할 줄 알고, 공감하면서도 허구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수준의 것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