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길을 잃어라 - 시각장애인 마이크 메이의 빛을 향한 모험과 도전
로버트 커슨 지음, 김희진 옮김 / 열음사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마이그 메이. 그는 3살 때 헛간에서 놀다가 화약이 터지는 바람에 눈이 멀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시각장애인이라고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일반인도 해 내기 어려운 일을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해 냈다.

그는 장애인올림픽에서 세 번이나 금메달을 획득했고, 알파인 스키 활강부문에서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장애인대회가 아닌 일반인 대회다), 사업가로 장애인을 위한 휴대용 GPS를 개발해 판매중이고, 세계 최초로 레이저 턴테이블을 공동발명한 발명가이기도 하며, 한 때는 CIA에서 일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금발의 미녀(진짜 미녀다)를 아내로 둔, 두 아들의 아버지이다.

[기꺼이 길을 잃어라]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데. 전반부는 그가 시력을 상실한 후 살아온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결혼할 때까지의 모습까지, 후반부는 46세에 두 번의 수술을 거쳐 시력을 회복한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잘 모르는 줄기세포를 활용한 수술이었다.

독자들은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수술을 통해 시력을 회복했으면 “그래서 그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고 끝나면 그만이지 그 다음에 또 무슨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나도 책 중반 쯤에서 주인공인 마이크 메이가 수술하는 장면이 나오고, 얼마 안 있어 주인공이 “보이네요. 보여요.”라고 말하는 내용을 보는 순간 책을 덮을 뻔했다. 다음 내용은 틀림없이 그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 볼 수 있다는 것이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설명한 내용일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반 이상이 남은 분량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는 순간,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국 400페이지나 되는 책을 끝까지 다 보고 말았다. 마이크 메이는 수술을 통해 시력을 회복하긴 했지만 시력장애자와 별반 차이가 없는, 어떻게 보면 더 어려운 삶을 살게 되었다. 보인다는 것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내 머리 속을 강하게 흔든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마이크 메이의 엄마인 오리 진이다.

하루는 메이가 엄마에게 월넛 크릭 시내까지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다녀와도 되는지 물었다. 그 곳은 교통량도 많고 집에서 5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리 진의   눈 앞에는 구급차가 달려오고, 아들이 피를 쏟으며 길거리에 쓰러진 모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학생이, 그것도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인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도심에 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린 진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로 오른편을 따라가는 게 중요하고, 차나 트럭소리가 들리면 그냥 멈추고 기다려야 해. 너무 힘들어지면 주저 말고 방향을 바꿔 돌아와야 하고, 그리고 혹시 말이야. 겁이 날까봐 걱정하지는 마라. 겁이 날 때 겁이 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녀 역시 아들이 집을 나간 다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아이를 데리러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엄마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의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3시간이 지난 후, 마이크는 “나 왔어요. 엄마”하고 문을 열고 들어왔던 3시간동안 아마도 오리 진은 지옥 끝까지 내려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에게 장애인이라는 의식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마이크 메이는 자신은 장애인이 아니고, 단지 눈이 불편한 사람일 뿐이라는 의식을 갖고 세상을 살아갔다. 달리기시합, 축구시합엔 반드시 끼었고, 스키 활강분야에서 세계기록을 보유한 사람이 되었다.

마음으로는 내 아이가 강한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아이를 키우는 내 모습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내 자신의 괴리를 느끼게 한 부분이었다.

두 번째는 시력에 대한 부분으로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다. 마이크 메이를 수술한 의사의 말로는 그의 시력은 우주비행사를 해도 될 정도의 시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메이가 볼 수 있는 것은 물체의 색깔과 움직임뿐이다. 글자를 읽을 수도 없고, 물체의 거리감도 못 느끼고, 사람들의 얼굴도 구분을 못하며, 물건을 식별할 수도 없다. 그저 앞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러다 보니 마이크 메이에게 계단은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한 칸씩 위로 올라간 것으로 보이지 않고, 땅바닥에 줄이 그어져 있는 것같이 보일 뿐이다. 사람의 얼굴도 눈, 코, 입, 귀가 붙여 있는 것만 알 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누드 해변가에서 나체로 다니는 사람을 보며 가슴이 나온 여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를 구분 못한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가슴이 앞으로 나온 것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본다는 것’은 눈 앞에 있는 물체가 눈을 통해 들어오는 수동적인 상황이 아니라, 그 정보를 해석하는 뇌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아주 어릴 때 시각을 상실한 사람은 정상인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세상에 대한 시각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 갑자기 길이 조금 어두워졌다고 치자. 그 때 일반인은 그것이 옆 건물 때문에 그림자가 생겨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그러나 마이크 메이와 같은 사람, 다양한 시각경험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평평한 길의 색이 갑자기 어두운 색으로 변한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림자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 메이같은 사람이 길을 가다 갑자기 색이 변하면 그림자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냐고? 물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길의 색이 갑자기 변하는 것이 그림자 때문만은 아니잖는가? 보도블록이 깨져도 그림자가 생긴다. 맨홀이 있으면 그곳도 색이 달라진다. 횡단보도역시 인도와 차도간의 높이 차이 때문에 색이 달라진다. 계단도 마찬가지이고, 길 가운데 통제라인이 쳐 있어도 색이 달라진다. 게다가 땅이 움푹 파인 곳도 색이 달라진다. 메이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다 같이 색이 달라진 것으로 보일 뿐이다. 한국 사람의 얼굴차이는 금방 알면서 흑인들은 다 비슷하게 보이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즉 시각적인 부분에 대한 정보 부족 때문이다. 한국사람 얼굴은 차이가 많고, 흑인은 대부분 비슷하게 생겨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2차원적인 사진에게 원근을 느끼고, 눈 앞에 보이는 풍경 속에서 거리감을 계산하고, 책상 위에 놓인 볼펜 하나를 거침없이 집을 수 있는 것도 눈이 아니라 뇌 속에 저장된 사물에 대한 정보 때문이다. 단지 이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뿐이다. (인간 뇌의 용량이 엄청나다보니)

세 번째는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한 마이크 메이의 문제 해결방식이었다. 그가 직면한 문제는 시각정보가 없다는 것보다 시각정보를 아무리 많이 입수해도 이를 처리해줄 시각신경 자체가 없다는 점이었다. 즉 아무리 노력해도 일반인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어릴 때 시력을 상실함으로써 보는 것과 관련된 신경세포가 다른 용도로 대체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앞으로도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물체간의 거리감, 물간간의 미세한 차이, 음영 등을 구분할 수 없는 평평한 2차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칼라와 움직임만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이 두 가지는 아주 초보적인 감각이기에 다행히 그에게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보다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 중에서 현 상황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능력을 찾기 시작했다. 즉 일반인보다 뛰어난 촉감, 잘 들리는 귀, 놀라운 기억력, 지팡이, 인도견 등이었다. 그리고 시각을 통해 모든 것을 이해하기보다 촉감으로 느끼고, 기억력을 통해 차이를 확인한 후, 시각을 보조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즉 누군가, 어떤 새로운 장소에 가면 먼저 만지고, 과거의 장소와 다른 점을 찾아 암기했고, 그 후 시각을 통해 확인하는 방법으로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 그는 나날이 나아지고 있다. 시각신경이 아닌, 기억력을 관장하는 뇌를 사용하여 부족한 시각신경 기능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시력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려 왔어. 제대로 기능하기 못하는 부분이 제대로 기능하는 부분을 따라잡기만을 기다렸지, 그 당시에는 그게 정답인 줄 알았어. 하지만 난 더 이상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거야.”

물론 시각정보를 대신해 기억력으로 그 부분을 메우겠다는 시도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엄청난 분량의 시각정보(어쩌면 가장 복잡한 정보가 시각정보 아니겠는가)를 모두 암기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오래 전에 오리 진(엄마)에게 배운 대로 자신의 삶을 기꺼이 걸어가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설사 그것이 남들이 볼 때는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그는 불가능하지에 도전했을 지도 모른다. 그가 여러 가지 위험이 도사린 시력수술을 결정했던 이유도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보기 위해 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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