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배려 - 직원의 마음을 읽으면 회사가 즐겁다
애틀랜타 컨설팅 그룹 엮음, 이강용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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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는 무척 간단하고 대부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책 내용이 스토리텔링 방식이라 그런 지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를 보는 듯했고, 그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치 가슴 어딘가에 깊이 감춰진 기억들을 되살려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았다.

책에 나오는 주인공은 무척 고지식한 사람이다. 아버지로부터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완벽하게  배웠지만 그가 배운 것은 사업성공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항상 사업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라.’ ‘비용을 최우선적으로 감축하라.’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가차 없이 응징하라.’ ‘목표를 세웠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달성하라.’ 등이다. 여기에 주인공은 하나 덧붙여 잘못한 상대방을 나무랄 때 그의 인격까지 무시하며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공은 심장마비로 죽고 만다. “어어!“ 하면서 쓰러진 것이다. 그러나 천상에서 한 천사를 만나고, 그 천사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자신이 제안하는 다섯 가지 원칙을 실천하면 다시 살려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잠시 세상으로 되돌려 보낸다는 전제하에. 천사, 즉 셀레나가 해리에서 제안한 삶의 다섯 가지 원칙은 아래와 같다.

하나, 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인격을 나무라진 마십시오.

우리는 대화를 하다보면, 또 상대방에게 문제를 제기하다보면 문제 자체를 넘어 상대방의 인격를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상대방에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준다.

둘, 저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해주십시오.

상대방과 말할 때 주의할 것은 그가 말하는 것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의 입을 막음으로써 그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심하면 오해하게 된다.

셋, 따뜻한 마음으로 저에게 진실을 말씀해주십시오.

상대방에게 뭔가 할 말이 있으면 이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단 부드럽고 진실 되게. 그래야만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말을 돌리는 것, 언뜻 보면 멋있어 보이지만 그만큼 오해를 가중시키는 것도 없다. 그리고는 뒤에서 욕한다.

넷, 애정이 담긴 저의 뜻을 꼭 찾아봐주십시오.

실수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그러나 결과만을 문제 삼는다면 상대방은 시도자체를 안하게 된다. 많이 움직일수록 많이 실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문제없는 삶이란 죽은 삶이다.

다섯, 저에게 숨겨진 장점을 인정해주십시오.

좋은 인간관계는 서로의 장점을 찾아 이를 키워주는 관계다. 상대방이 뭔가를 잘못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와 함께 보다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고,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그만의 장점을 찾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내가 아직도 다섯 가지 원칙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구나 하는 아쉬움이었고, 또 하나는 그 동안 나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많이 힘들었겠다 는 생각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천사가 말한 다섯 가지 원칙을 알고는 있었지만, 나 역시 이 책의 주인공처럼 이 내용은 비즈니스와는 거리가 먼 착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라고 외면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건 돈 벌 생각 없이 착하게 살겠다는 느들이나 잘 해“ 하면서 말이다.

거의 10년 전의 일이었다. 하루는 여직원이 외부에 나가 제휴업체와 업무제휴를 위해 몇 천만 원의 자금지원을 약속하고 돌아왔다. 당연히 상대회사의 직인이 찍힌 제휴계약서를 들고 말이다. 나는 그 내용을 보고받고는 화가 나 그 직원을 30분 동안이나 야단쳤다. 말이 30분이지 그 오랜 시간동안 사무실이 쩡쩡 울릴 정도의 소리로 야단맞는다고 생각해 보라. 죽을 맛일 거다. 

왜 야단쳤나요? 팀장도 아닌 대리밖에 안된 놈이 시건방지게 한두 푼도 아닌 몇 천만 원의 지원을 약속하고 돌아왔다는 점, 그리고도 뭔가 해냈다고 기고만장하며 보고했다는 점, 게다가 평소에 너무 설친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직원은 울고 말았다. 그것도 훌쩍 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경기를 일으키듯이 온 몸을 떨며 울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무척 만족했고 말이다. 아마 이런 생각이었을 거다. “이 놈. 이 정도 당했으면 다시는 이런 짓 안 하겠지!.”

하지만 당시의 내 모습은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 원칙을 모두 위배했다.

우선 야단치는 과정에서 나는 그녀의 인격 자체를 완전히 깔아 뭉겠다. “대체 너란 인간은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딴 정신 같고 어떻게 대리가 됐냐? 그 돈이 너희 집 돈이라면 그렇게 쓰겠어?” 하면서 말이다.

두 번째, 그녀가 왜 그 돈을 써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묻기도 않고 결과만 갖고 야단쳤다. 당시는 야단치겠다고 마음먹은 상황이니까 설사 이야기를 했다손 치더라도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 번째, 그녀가 왜 야단맞아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나에게 물어보지 않고 맘대로 결정했다는 것만 갖고 야단쳤을 뿐이다. 그 의미는 다시 말하면 “네가 뭘 안다고 혼자서 결정하는 거야?” 란 의미였다. 직원 한 명의 사기를 완전히 죽였고, 내가 모든 것을 다 결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폼 잡기엔 최선의 상황이지만 과연 이런 자세가.......

네 번째, 그녀가 이 일을 통해 우리 팀에 어떤 기여를 하고자 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즉 그녀가 가진 팀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고 이를 키워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왜 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고 오로지 내가 느낀 상황,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만 중요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실수한다. 나도 마찬가지이고. 이런 상황에서 일한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일과 회사에 대한 애정과 관심정도는 저멀리 던져버리고 결과만을 논한다면 그 누가 위험을 무릎 쓰려 하겠는가. 

솔직히 되돌아 생각하면 그 날 일은 그렇게 야단칠 일도 아니었다. 어쩌면 칭찬받아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몇 천만 원의 돈은 필요하다면 내가 결정하면 그만이었고(상관에게 보고는 해야겠지만), 그 정도 돈으로 제휴하기 어려운 회사와 간단히 제휴했으니 칭찬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자기 일에 대한 열정과 순간적인 판단력 또한 대단하지 않은가! 제휴업체를 만나 ‘회사에 가서 물어봐야 하는데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심하게 보이는 게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당시 나는 그녀에게 일의 배경, 그 일에 대한 세부 내막,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 등은 묻지도 않고 그저 야단만 쳤다. 마치 “네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벌써부터 혼자 결정하고 난리야?” 하는 투였다. 

근데 이상한 것은 그때의 기억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글을 쓰는 지금 위장이 꼬이는 듯 아프고, 뭔가가 내 머리를 잡아 뜯는 것 같다. 실제상황이다. 당시에는 무척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 일이 기억나면서 내가 육체적인 고통을 느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당시의 일을 내 정신은 ‘해서는 안 될 일’, ‘무척 잘못한 일’로 각인시켜 기억 어딘가에 저장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의식과는 상관없이.

세상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게 있다면 아마 인간의 안전심리와 보상.인정심리일 것이다. 내 육신을 보존하고, 내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고, 이를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며, 자신의 행동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 말이다. 이는 상관과 직원관계이든, 부모자식관계이든, 교수와 학생관계이든, 친구 또는 애인관계이든 상관없이 존재하는 기본적인 마음이다. 따라서 이를 무시하고는 그 어떤 보상도 관심도, 언변도 힘을 잃고 만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것을 알면서도 가끔 상대방의 의견을 내리 누르는 내 모습이다. 세상은 경쟁관계이기에 상대방을 누르고 올라가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내가 옳다는 것을 주장해야 하고, 결국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고야 만다. 이런 행동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건만 되면 머리를 들고 내 입을 통해 칼날을 휘두른다. 그리곤 그 행동을 되돌아보며 괴로워한다. “이건 아닌데...정말 아닌데...”라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한다.

물론 오해하지 말 것은 내 행동을 보며 괴로워하는 이유는 이 책에 나온 다섯 가지 행동이 성공으로 이끄는 좋은 방법이라 그런 건 아니다. 도리어 자본주의 사회가 원하는 성공을 원한다면 다섯 가지 방법과 반대의 길을 가는 게 더 빠르다. 면도칼과 같은 논리와 상대방을 한 칼에 누를 수 있는 언변을 갖고 경쟁자들을 잡초 베듯이 날려버리는 게 더 효율적이란 말이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말이다.

내가 괴로운 것은 나와 너 사이의 관계를 경쟁구도로 가져가는 것이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얻을 수 있고, 그 관계는 서로가 이기는 관계일 때만이 가능하다. 이는 누가 이기고 지는 것 없이 서로의 의견이 정반합을 통해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어가는 관계이고, 서로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는 가운데에서 서로의 부족한 면을 보완해가는 관계다.

나는 이 책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꼭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하나 있다. 바로 “넷, 애정이 담긴 저의 뜻을 꼭 찾아봐주십시오.”란 말이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잘 듣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제는 나와 다른 의견이라도 그가 간직한 일에 대한 애정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서로의 의견을 좁힐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와 너’의 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애정에서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 모두 승리자가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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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반전 - 치명적 약점에서 벗어나 인생을 반전시킬 10가지 성공의 심리학
플립 플리펜 지음, 신준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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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온 인생을 몇 개로 나눠보면 첫 번째는 형편없는 자아개념을 갖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던 어린 시절(고등학교까지 포함), 두 번째는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힘차게 세상을 살아가던 시절(대학생시절부터 내 나이 30대 후반까지), 그리고 세 번째는 새로운 모습을 향해 변화를 시작한 시절(40중반부터 현재)이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전학 간 학교에서 반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아 항상 외톨이였다. 왜?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그들에게 따돌림 받지 않으려고 가방 들어주고, 맛있는 것을 사주면서 놀아달라고 애원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이 나에게 무척 큰 영향을 줬다. 그리고 머리가 커진 고등학생 시절, 나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싫어 혼자만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딴따라’ 짓이다. 학교파하기가 무섭게 담배하나 물고, 소주 한 병 허리에 차고, 기타 하나들고서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음악을 좋아한 것이 뭐가 문제겠냐만서도 이때 나는 음악가가 되고자 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도망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눈물이 글썽거린다. 무척 외로웠다.

그러나 이런 나에게도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종교단체에서의 봉사활동이었다. 세상에서 도망가려고 배운 기타솜씨가 나를 남들 앞에 세워줬다. 음악을 통해 신의 사랑을 전파하고,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숨겨진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것이 내 임무였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나도 세상에서 할 일이 있고,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을 치유하기보다 내 자신을 치유한 것이다.

그리고 군대생활을 통해 내가 정리를 잘한다는 것을 알았고(포상휴가만 3번 갔다), 복학, 전공을 바꿔 대학교 재입학, 대학원 공부할 때까지 성적은 수직선으로 올라갔다. 물론 학점이 다는 아니지만 말이다. (대학 1학년 학점은 3.1에서 대학원 졸업 시 평균학점은 4.1이다). 종교단체 시절의 경험이 너무나 강렬해 당시엔 모든지 하면 된다는 확신에 불탔고, 그 힘으로 30대 후반까지 살았다.

지금도 과거를 생각하면 아찔한 게 있는데, 만약 봉사활동의 경험 없었다면, 그래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지 못했다면, 귀가 안 들리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마도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신을 저주하면서 말이다.

지난 날, 좀비 같았던 나를 바꿔준 동력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성공에 대한 경험과 그런 경험을 만들어 준 재능, 그리고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주변 여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간의 자신감은 생각만 한다고 해서, 구호만 외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건 도리어 망상만 키울 뿐이다. 어린 시절의 내 모습처럼 말이다. 자신감에는 성공이란 경험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당사자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나이 50이 된 요즘, 강점과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바로 약점이다. 어릴 때부터 나를 괴롭혔던 약점, 특히 세상을 두려워하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모습,은 강점에 가려 잘 안 보이지만, 아직도 순간순간 내 강점의 가치를 반감시키고, 심할 경우에는 대인관계에도 큰 문제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뭔가를 찾고, 정리하고,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관심 있는 주제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몰입한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심해져서 급히 처리할 일 조차 미뤄버린다면 그건 이기주의자가 된다. 남의 사정은 생각지 않고 자기 할 일만하는 사람처럼 얄미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몰입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것이 환영받는 상황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상황이 있다. 따라서 자신의 재능이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그 안에 내재된 약점을 제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영원히 재능이고, 강점이기만 한 것은 없다.

<위대한 반전>은 약점에 대한 몇 권 안 되는 책 중의 하나다. 이 책을 읽어보면 저자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알게 된다. 부모간의 관계가, 저자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그의 자아의식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갔고, 그로 인해 저자는 오랜 세월 세상을 두려워하며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 저자는 약점이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음을 깨달았고, 그 후 자신을 치료하면서 그 경험을 살려 ‘약점해결사’가 되었다. 모두가 강점을 주장하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자리를 찾은 것이다.

그는 원숭이의 예를 통해 약점을 고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재미있게 전달한다. 호리병에 든 사탕을 꺼내려고 손을 집어넣은 원숭이가 있는데, 사탕을 한 아름 쥐고 손을 빼려니 손이 나오지 않는다. 사탕을 버려야만 손을 뺄 수 있는 상황인데도 원숭이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결론은 호리병에서 손을 못 빼 쩔쩔매는 동안 사람들에게 잡이고 만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약점을 좀처럼 놓으려 하지 않는다. 원숭이처럼 사람들은 약점을 고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자유를 희생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며 무력해지거나 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저자에 따르면 약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대수롭지 않은 약점으로, 부끄럼을 탄다거나, 남 앞에서 말을 조금 더듬는다거나, 아니면 겁이 많다는 것 등이다. 심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왠만하면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이다.

두 번째는 문제가 되긴 하지만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약점으로, 생각은 많지만 정리를 잘 못한다거나, 숫자계산에 약하다거나, 말을 잘못하는 것 등이다. 이런 경우에는 약점을 보완해 줄 파트너를 찾으면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런 유형이다.

세 번째는, 이것이 심각한 것인데 세상과 사람에 대한 가치와 태도문제로, 자신만을 극도로 생각하거나, 남의 잘못된 점만 찾으려 하거나, 사람을 우습게보거나, 어떤 일이 닥치면 우선 도망부터 가는 것 등이다. 이는 당사자 자신의 인생에 악영향을 주며 그의 앞길을 가로막기도 한다. 그런 약점의 특징 하나는 자신의 강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도 있다는 점이다.

몇 년 전 나는 내 강점을 찾는 과정에서 약점을 적나라하게 기술한 자료 하나를 봤다. 아래 내용은 그 자료의 일부다.

나의 강점은 객관적인 관찰력과 분석력, 핵심원리를 파고드는 집중력,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식견,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전략,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절제다. 그러다보니 내가 싫어하는 것은 비논리적인 것,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 감정에 좌우되는 것’이었다.

반면 나의 약점은 탐욕과 인색함, 편협한 시각과 냉소적인 태도, 지적인 교만과 오만, 행동력 부족과 가상현실로의 도피, 교류를 피하는 고립적 태도이며, 내가 가진 두려움은 ‘무능해질까봐’, ‘원리도 모른 채 아는 척 하다가 들통 날까하는 것이었다.

이 내용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 약점을 자세히 보면 대부분 강점과 깊이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많은 지식을 원하며, 특정분야를 파고들고, 절제와 효율성을 강조하는 사람이면, 지식에 자만심을 갖고, 지적으로 편향되었으며, 남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할 확률도 높다. 또 뭔가를 탐구하는 성격이면 남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할 것이고, 행동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많을 것이다. 즉 고립적인 태도를 가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약점은 강점의 어두운 그림자이기에 강점이 강해지면, 강점을 잘못 다루면 함께 강해진다는 점이고, 이것이 일정수준을 넘으면 그때부터 나와 상대방의 숨통을 조이는 옥쇄처럼 변한다는 것이다. 바로 저자가 말한 세 번째의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저자는 삶에 있어 치명적인 약점 열 가지를 이야기한다. 

‘방탄조끼형’ 고집이 무척 세며, 주변에서 반대하더라도 자신의 생각대로 밀어붙인다.

‘타조형’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겁이 많아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한다.

‘마시멜로형’ 인간관계를 너무 중시하다보니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한다.

‘비판형’ 남의 실수를 잘 기억하며, 문제점 지적을 삶의 목적처럼 생각한다.

‘좀비형’ 열의나 의욕이 없고, 비전 같은 것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불도저형’ 지나치게 주변 사람을 지배하려는 성격으로 멈출 줄을 모른다.

‘거북이형’ 변화를 거부하며 현재의 상태를 어떻게든지 유지하려 한다.

‘화산형’ 공격적이며 참을성이 없어 화를 무척 잘 낸다.

‘충동형’ 자신에 대한 통제력이 약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한다.

자! 위의 약점 중에서 당신에게 해당되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마도 ‘아! 내 약점이 저거구나’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나를 포함해서). 위에 나온 열 가지의 약점은 개인성격(또는 강점)에 내재된 것들이라 당사자에게는 무척 자연스러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더더욱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남을 심하게 비판하는 사람에게 그것이 당신의 약점이라고 말해봐라. 아마도 그는 “저는 비판하는 게 아니라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문제 생길 게 뻔한 데 지금 고쳐야죠. 그걸 알려준 저에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예전에 내가 이랬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럼 ‘방탄조끼형’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면 그 역시 “내 생각은 오랜 경험을 통해 얻어낸 거예요. 저를 설득시키려면 증거를 대세요. 그저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이것도 내 모습이었다)”라고 답할 것이다.

비록 지금은 웃으면서 약점을 이야기하지만 나도 이를 깨닫고 고치고자 마음먹게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것들을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내 생각에)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사람에게 한 마디 한 게 무슨 잘못이고, 내가 힘들게 얻을 것을 남에게 공짜로 주기 싫다는 게 무슨 문제인가. 게다가 할 일도 많아 죽겠는데 쓸데없는 이야기나 하러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당신은 이해되는가? 그렇다면 나보다 훨씬 성숙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잘못된 생각이고, 내 강점을 갈아먹는 벌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로 인해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못 받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 모습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할까? 움츠렸던 스프링이 뛰어나가는 것 같다고 할까. 뭐 그런 느낌이었다. 약점 때문에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인간관계 자체를 손상시키고 만다면 너무 억울한 일 아니겠는가. 그것도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말이다.

이 책은 오랜 시간동안 ‘약점’과 함께 살아온 저자의 경험담이자, 저자와 함께 약점을 고친 많은 사람들의 임상 치험례다. 그래서인지 책 내용이 무척 구체적이고, 누가 봐도 약점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실감할 수 있다. 약점 있는 사람의 행동, 그런 행동의 결과, 약점을 찾기 위한 체크리스트, 약점제거방법 등이 잘 정리되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약점이 있다. 그리고 그 약점은 때때로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기도 한다. 문제는 약점을 고치기 위해서는 스스로 깨닫고 이를 고치겠다고 마음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비록 300페이지 정도의 책에 불과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 책을 통해 약점을 고칠 수만 있다면, 당신은 책 한권을 읽은 것이 아니라, 성공으로 나갈 수 있는 소중한 열쇠를 얻은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골프레슨코치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우리에게 전한다. 약점을 고치려면 이렇게 하라는 것이다.

“플립(저자 이름), 모든 것을 단 한 번에 교정할 수는 없어요.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어요. 당신이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변화가 가장 커다란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당신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에 우선적으로 노력을 집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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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 센스
잭 트라우트.알 리스 지음, 윤영삼 옮김 / 다산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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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년 전, 나는 지난 20년 동안 나를 이끌어 준 힘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젊음밖에 없었던, 듣는 것조차 문제가 되었던 나를 도와줬던 것이라면 앞으로도 나에게 힘이 되어 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처음 했을 때 떠 오른 것은 재능이나 일에 대한 열성, 회사에 충성심 같은 것이었다. 남다른 게 있으니 직장에서 인정했을 것이고, 최선을 다해 일했으니 상관이나 경영자도 좋아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그러나 결론은 조금 달랐다. 물론 재능, 충성심, 열정 같은 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중요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타인의 도움이었다. 귀 문제로 집에서 한숨만 쉴 때 나를 회사로 이끈 사람은 대학교 선배였고, 시장조사회사에서 힘들어 할 때 일반회사로 이끌어준 사람은 친구였다. 약국사업을 경험토록 해 준 사람은 그 회사 회장이었고, 나를 SK로 안내해 준 사람은 신문기자였다. 물론 나를 받아준 사람은 또 따로 있었고.

지금 대학교에서 강의하지만, 이것도 내가 잘나서만은 아니다. 내가 강단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이건 진심이다, 나를 학교에 소개해 준 선배 덕분이고, 그 분의 말을 믿고 나를 받아준 고마운 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가 남다른 게 있었다면 학교에서 필요로 할 때, 필요한 지식을 갖고, 손에 닿을 만한 곳에 있었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내가 아무리 잘난들 누군가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할 때 곁에 없었다면 내 지식과 경험은 나만의 개인지식에 불과했을 것이다. 고마운 분들이다.

이제 세상은 평균 이상의 사람들로 넘쳐난다. 인터넷은 기본이고, 검색엔진은 거의 모든 것을 순식간에 찾아 눈앞에 보여준다. 자기계발서 한두 권 안 본 사람이, TOEIC시험지 한번 안 받아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부모 잘 만나 엄청나게 돈이 많거나, 암기력이 컴퓨터 수준 이상이거나, 너무나 예뻐 어디에 가든 눈에 띄는 모습을 가졌다면 모르지만,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서 혼자 잘났다고 떠들어 봐도 될 일이 없다. 

혹시 이런 말 들어본 적 있는가. 우리나라 대기업 회장 중 한 사람의 이야기인데, 자신은 회사만 생각하며 묵묵히 일만 했더니 어느 날 회장이 되었다고 한다. 이 내용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모든 것이 다 이뤄진다는 사례로 많이 활용된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개된 비밀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그가 일하는 모습을 전 회장이 봤고, 그 때부터 그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사람처럼, 아니 이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한 사람이 회장이 못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 사람이 일하는 모습은 회장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닌가?

나는 지금 줄을 잘 서야 한다,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요상한 이론을 주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열심히 노력해도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 누군가 자신을 위해 앞에 나서줄 때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뿐이다. 최소한 ‘성공’에 대한 이야기라면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방식으로 표현하면 ‘성공마’를 잘 골라 타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내가 뭔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호스센스>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 날 우리 사회는 많은 부분 민주적이고 평등해 졌다. 사람들은 당연히 노력한 만큼, 능력이 있는 만큼 누구나 공정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순진한 착각일 뿐이다. 댄 퀘일(41세에 미국 부통령이 된 사람)이 극적으로 증명하듯이 성공의 중요한 문제는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아느냐이다.”

즉 성공이란 내가 직접 만들기보다, 남이 나에게 선물하는 것이란 것이다. 따라서 성공하고 싶다면 자신만을 고집하며, 자기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밖에서 ‘성공마’를 찾으라고 한다. 그 말이 자신을 성공의 문턱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경우를 봐도, 잘 나간다는 기업들을 봐도 일리 있는 말이다. 우리가 아는 수많은 기술, 상품, 기업들. 사업 초창기 시절에는 그들 개인능력으로 시작했지만 그것의 상품가치를 알고 팔고자 한 사람이 없었다면 오늘의 성공기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애플컴퓨터. 스티브 잡스의 차고에서 워즈니악과 함께 시작한 조그마한 사업이지만 그것을 알아본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의 애플이 있었고, 3M의 실패작인 접착제 역시 그 가치를 알아낸 사람이 있었기에 오늘의 포스트잇이 존재한다. 켄터키 프라이치킨도, 맥도날드도, 하다못해 코카콜라까지도 그것을 만든 사람과 성공시킨 사람은 다르다.

이 책에는 자신이 올라탈 말, 즉 일반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마’중에 잊는 게 낫다는 말 세 개가 나온다.

우선 열심히 일하면 반드시 성공하리라 믿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달려가는 ‘근로마’다. 이런 사람은 일에 대한 몰입과 성공이 하나이기에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더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일하는 시간이 많다고 성공하는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으로는 아니라고 답하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신념처럼 믿는다. 나를 포함해서.

두 번째는 외부세계는 무시하고 자기 재능과 능력에만 초점을 맞춰 살아가는 ‘재능마’다. 남들이 무엇을 하던지 간에 자신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경우다. 그러나 재능과 성공과의 관계가 미약한 이유는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믿기에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외부변화에 눈과 귀를 막고, 한 곳만 바라볼 확률이 높다. 이 또한 내가 가진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다.

세 번째는 우리가 다 아는 ‘회사마’다. 즉 회사에 충성하면 언젠가는 자신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리라는 믿음의 말이다. 그러나 부장 정도라면 몰라도 그 이상이 되려면 충성심 하나 갖고는 안 된다. 우선 오너 눈에 띄어야 하고, 주위사람들로부터 시샘을 받아서도 안 된다. 또 무척 정치적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사가 될 사람, 특히 대기업 같은 곳에서,은 과장 말년정도가 되면 티가 난다. 뭐라고 할까. 우선 행동이 조심스럽고, 적을 만들려 하지 않고, 무리수를 두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가능하면 눈에 띄는 일을 골라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많은 일이 아니라 단 하나의 ‘대박’이다.

저자가 말하는 ‘성공마’에는 사람, 기업, 상품, 배우자, 가족이 포함된다. 자신의 재능을 남들에게 알려줄 사람(타인마), 자신의 사업을 함께 키울 사람(스폰서마), 대박 터질 사업이나 상품 아이디어(제품마 & 창발마)를 가진 사람을 가장 최우선적으로 찾으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살펴봐도 나이 30에 회장직함을 갖고 있거나, 갑부가 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런 말을 잘 고른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서 특히 내 관심을 끈 말은 제품마인데, 이것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을 발명해야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대부분 발명가하면 이런 생각을 하며 앉아있는 사람을 떠 올린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모습과 다르다, 우연한 경우를 제외하면 발명이란 대부분 자기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의 가치를 알아보는 일에서 시작한다. 자기 안에 머물지 말고 밖으로 나와야 가능한 일이다....마음이라는 허공에서 무엇인가 발명해 내려 애쓰지 말고, 외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피는데 천재성을 발휘하라. 발명가도 타고 달릴 말이 필요하다.”
실제로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자신의 상품을 알리고 팔려고 한다. 혼자서는 뭔가 새로운 것을 이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업을 생각하는 순간 자신이 무엇인가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신념 같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무실에 쳐 박혀 좋은 아이템이 없다고 투덜대다 지치고 만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이 ‘성공’이라면, 뭔가를 직접 만드는 것 역시 하나의 방법이라면, 나 보다 더 좋은 제품마를 올라타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그러나 막상 찾으려 하면 이런 말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왜냐고? 우리는 눈앞에 있는 상품을 상품 그대로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이 뭔가를 이야기하면 우리는 거의 습관적으로 트집부터 잡는다. 자신이 뭔가 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상품, 사업 하나를 이리 털고 저리 털어버리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순간의 만족을 위해 돈 통을 날려버린 것이다. 어쩌면 어제 당신이 본 것이, 지금 내 옆에 앉아있는 사람의 아이디어가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신은 공평하다. 어떤 사람에게도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지 않았다. 나에게 말이 되는 사람은 그에게는 내가 말이다. 내가 그 사람의 머리가 된다면 그는 내 다리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바로 상호의존의 법칙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성공시켜줄, 그리고 상대방에게 말이 되어 함께 성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순간적인 자존심 하나를 위해 날려버리는 경우가 자주 있다. 내가 아는 게 더 많다. 직급이 더 높다. 돈이 더 있다, 내가 너를 선택하는 위치라는 것을 주장하는 사이 그 말을 저 멀리 달아나 버린다. 그리고선 한탄만 한다. 나는 ‘왜 이리 운이 없지?’ 하면서 말이다.

나에게 필요한 말이 어떤 말인지, 나는 상대방에게 어떤 말이 되어 줄 수 있는지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도 이 순간부터 오랜 시간 내 눈을 가렸던 아집이라는 눈가리개를 벗고, 좀 더 큰 시야로 나와 함께 성공할 사람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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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중고등학교 시절.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당시에는 음악만이 유일한 안식처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빽판(원판을 복사한 판으로 조악하지만 그래도 들을만했다.)을 주로 사서 그것을 헤드폰을 끼고 밤 새워 들었다. 그 순간은 입시공부에 쪼들은 대한민국 고등학생이 아니라 수많은 청중을 앞에 두고 미친듯이 연주하는 뮤지션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심취했던 음악 중에서 지금도 곡조가 완벽하게 기억나는 것은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리냐드 스키냐드의 ‘프리버드’다. 특히 ‘프리버드’는 전자기타 4대가 동시에 뿜어내는 애드립으로 유명한 노래인데, 그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일반적인 록밴드는 리듬기타 하나, 리드 기타 하나로 연주하지만 리냐드 스키냐드는 3대의 전자기타로 연주했고, 더욱이 이 노래는 리드기타 하나가 더 추가되어 세 개가 각자 다른 음으로 애드립 연주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원을 마칠 때 갑자기 귀가 안 들리게 되어 그 다음부터는 음악을 듣지 못했다.  소리가 잘 안 들리는 상황에서 음악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었고, 보청기를 낀 상태에서는 음악을 들어봐야 예전처럼 정확하게 음색을 알아 낼 수가 없었다. 결국 천장이 넘는 백판을 다 버리고 그렇게 아끼던 기타, 드럼도 내다 버렸다.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노래는 1980년대 말까지다. 요즘 가끔 내 아이가 “아빠. 이 노래 알아?” 하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이 제목 자체를 처음 듣는 노래다.

내가 지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회사를 그만둔 다음부터 겪게 된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퇴사 후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하루 종일 보청기를 끼지 않아도 되니 자연스럽게 귀에 무리도 없고, 몸도 많이 편안했다. 게다가 하루 종일 확성기 같은 것을 끼고 따지고, 싸우고, 논쟁할 필요도 없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 삶인가. 

나는 퇴사하고 6개월 쯤 지난 후, 큰 마음먹고 좋은 헤드폰을 하나 사 음악을 들어봤다. 그 동안 귀가 많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근데 조금 창피한 일이지만 노래를 듣다말고 울어 버렸다. 헤드폰에서 들리는 소리, 볼륨을 최대한 키웠고, 귀도 많이 안정되었기 때문인지 오래 전에 듣던, 거의 원음에 가까운 음악 소리가 나를 감동시켰다. 가수의 고음 하나가 막혔던 혈관을 뚫어주는 것 같았고. 드럼의 베이스북 소리가 심장을 강하게 두들기는 듯 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 이런 소리를 몇 십 년 동안이나 못 듣고 살았다니...“ 하는 탄식이 나왔다. 내가 아무리 음악을 좋아했더라도 그까짓 흘러간 유행가 몇 곡 들으면서 눈물까지 흘릴 줄은 몰랐다. 음악이란 것이 이토록 강렬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순간이다.

근데 그 후 이상한 현상이 생겼다. 밤에 자고 일어나면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잠에 취해 화장실 같다가, 내 방으로 가 컴퓨터를 부팅하고, 부엌에 가 커피 한잔 타서 다시 방으로 돌아와 마실 때까지도 무슨 노래인지도 모르는 채 계속 흥얼거리고 있었다. 어떤 때는 찬송가를, 어떤 때는 나훈아, 남진스타일의 뽕짝을, 어떤 때는 팝송을, 그리고 어떤 때는 몇 개 알지도 못하는 가곡이나 클래식음악이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잠에서 깨어 흥얼거리는 게 아니라 꿈속에서도 계속 노래 불렀던 것을 잠에서 깬 바람에 알게 된 것은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생각해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노래소리는 계속 들렸다. 마치 내 옆에 라디오가 켜 있는 것처럼 가수의 목소리, 반주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들렸다. 근데 희한한 것은 조금 늦게, 그러니까 아침 6시나 7시정도에 깨면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흥얼거리는 모습은 이른 아침, 새벽 4~5시쯤에 깰 때만 생긴다. 

‘이게 뭘까?’ ‘내가 왜 이러지? 혹시 정신병????’ 어떤 때는 그런 내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근데 그 이유를 이 책 <뮤지코필리아>에서 찾았다. 저자는 어느 날인가 음악과 관련된 꿈을 꾸었는데 그 때 들리던 음악소리가 하루 종일 계속 되었다고 한다. (나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 나는 몇 시간 그러다가 그만두는데 말이다.) 그래서 자신의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저자에게 그 노래를 흥얼거려 보라고 했고, 그 노래를 들은 친구는 저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최근에 어린 환자를 포기한 적 있어? 아니면 문학 책을 버렸거나?” 근데 놀라운 것은 저자에게 두 가지 일이 모두 있었다는 것이다.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 마음이 연주하는 곡은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야. 아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지.”

저자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랬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라면 노래를 부르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의 상황은 자신의 마음이 꿈속에서 전날 있었던 사건에 딱 어울리는 상징물을 정확하게 찾아내 이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친구가 그 상황을 해석한 순간, 음악이 사라졌다고 한다.

근데 저자가 나중에 알고 보니 저자와 같은 상황, 즉 꿈에 음악을 듣고 그 노래가 하루 종일 계속 들리거나 ,어느 순간 갑자기 소음도 아닌 완벽한 하나의 노래가 생생하게 생각나는 것과 같은 현상이 별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무척 많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나처럼 몇 시간 계속되다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몇 날, 몇 해 동안 그것도 하루 종일 쫓아다니는 바람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될 경우다. 심하면 'Off' 스위치가 없는 전축 하나를 갖다 놓은 것처럼 되어 잠도 이룰 수 없는 상황까지도 간다. 이것을 ‘환청’이라고 한다.

저자는 환청 때문에 고통을 겪는 한 부인의 증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녀의 환청이 정신병의 징후가 아니라 신경의 문제로 일어나는 것이며, 이른 바 ‘방출환각’이라고 대답했다. 청각 장애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입력을 차단당한 대뇌의 청각 피질 일부가 자발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대부분 그녀가 예전에 들었던 음악 기억으로 구성된 음악 환청의 형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뇌는 끊임없이 활발하게 활동할 필요가 있고, 청각이든 시각이든 정상적인 자극을 더 이상 받지 못하면 자체적으로 자극을 만들어 낸다.”

결국 청각장애니 소리가 단절된 상황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소리를 관장하는 뇌를 사용하지 않으면 인간의 뇌는 자기 스스로 이를 사용하려 하고, 그 결과 환청이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란젤 박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오랫동안 신경성 난청을 겪었습니다. 가족 내력이지요. 음악 환청 증세는 난청에 수반되는 감각 과민증과 관련되지 않나 싶습니다. 중추청각의 경로가 과하게 작동해서 소리를 증폭시키는 겁니다.”

결국 내가 퇴사 후 듣게 된 일종의 환청은 예전에 비해 청각신경의 사용을 줄임으로써 발생한 게 아닌가 싶다. 요즘은 과거처럼 무리하게 뭔가를 들으려 하지 않지 않고, 혼자 일할 때는 보청기도 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단순한 상상이나 정신병이 아니고, 실제 음악을 들을 때 사용하는 뇌가 자가 발전한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환청(일상생활을 못할 정도의 환청)이 생기면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하기 어렵다고 한다. 뇌가 움직이는 것이지만, 이들의 뇌는 모두 정상으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이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뇌 활동 자체를 죽이는 방법밖에는 없다. 하지만 어떻게 뇌를, 그것도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대뇌부분을 죽일 수 있겠는가. 

정신과 의사 엔터니 스토어는 <음악과 마음>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부른 적도 없고, 어쩌면 원하지도 않았을 음악이 머릿속에 울려대는 것은 대체 무슨 목적 때문일까?”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질문에 대해 “그런 음악이 대체로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결론지었다. 즉 “지루함을 달래고 몸동작을 한층 더 리드감 있게 만들어 주고 피로를 줄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들려오는 소리는 일종의 꿈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기에 당사자가 그냥 지나치거나 억누르고 말았을 생각을 다시 살펴보게 해 준다고 한다. 즉 자기 뜻과는 달리 들려오는 노래 소리는 논리나 이성으로 판단 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당사자에게 ’이로우며‘ 일종의 ’생물학적 적응‘이라는 것이다.

음악은 논리적이지 않다. 어떤 특정의 의미를 담고 있지도 않고, 색깔도 없다. 게다가 문자처럼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들으면서 자기 스스로가 느끼고 이해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음악만큼 인간의 감정과 밀접한 것도 없는 것 같다. 내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말보다는 리듬이고, 그것이 바로 음악이다.

나는 앞으로는 잠에서 깬 후 뭔가를 흥얼거리고 있으면 그 노래를 기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노래가 나에게 게시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당시 내가 모르는 내면의 어떤 감정을 나에게 일깨워주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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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소원 - 살아가는 동안 꼭 이루고 싶은
게이 핸드릭스 지음, 이정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다섯 가지 소원>을 읽어보다 문득 내 앞에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가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봤다.

어느 날 저녁. ‘죽음’이 내게 다가와 나를 저승으로 데려가기 전에 이런 질문을 했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당신 인생은 완벽한 성공이었나요?”

아마도 지난 몇 십 년의 삶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것이고, 나는 내 삶이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것이다.

“아니요. 저는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완벽한 성공과는 거리가 멀죠.”

그러면 ‘죽음’은 또 다시 물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이 완벽하지 못했다면, 그럼 완벽한 성공이 되기 위해 바라는 것은 뭐였죠?”

나는 슬픔에 잠긴 표정을 지으며 말할 것 같다.

“너무 외롭게 살았어요. 항상 혼자 살았던 것 같아요. 물론 나를 사랑해 준 어머니, 동생, 아내, 아들도 곁에 있었지만 항상 나 혼자 세상을 사는 것 같았어요. 국민학교 4학년 때 다른 학교로 전학하면서 친구가 없어 그때부터 외톨이로 보냈고요.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친구가 한두 명 있었는데, 그나마도 지금은 어디서 뭐하고 사는지도 몰라요. 고등학교 졸업식 때 누가 와서 축하한다고 악수를 청했는데 저는 그가 누군지 몰라 누구냐고 물었죠. 그 친구 왈 ”야. 너랑 같은 반이야.“ 1년 동안 같이 공부한 반 친구를 몰라볼 정도면 할 말 다한 거죠. 대학교 때는 봉사활동 한답시고 나이든 어른들 사이에서 살다보니 과 친구들과는 자주 어울리지 못했고, 공부를 더하겠다고 다시 들어간 대학에서는 도서관에만 처박혀 살았죠. 직장 다닐 때는 항상 일만 생각했고, 누구를 만나든지 간에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주겠다.’는 식으로 대했어요. 저는 항상 사람관계는 정확한 게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거든요. 그러다보니 남들은 고향친구, 죽마고우 이야기하며 신나게 떠들 때 저는 항상 가만히 앉아있어야만 했죠. 직장 때 알던 사람들도 회사 떠나면 다 잊어버렸기에 항상 처음부터 시작했다고 할까.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살았어요. 저도 제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 잘 모르겠지만요. 그러다보니 살면서 많이 외로웠죠. 특히 마음이 아프고 세상살이가 절망적일 때는 혼자라는 것이 너무 서글펐어요. 모든 것을 저 혼자 이겨내야 했으니까요.”

‘죽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할 것이다.

“그래요. 그것이 왜 그리 중요한가요?”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 왜 중요하냐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평소 갖고 있는 생각대로 이야기하면 이럴 것이다.

“사람관계는 무척 중요하죠. 친구관계이든, 애인관계이든, 하다못해 부부관계, 부모자식관계도 모두 사람관계니까요. 사람들은 성공이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달렸다고 하지만 자기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죠. 게다가 세계제일의 갑부가 되고 대기업 총수가 되었다한들 자기 혼자 골방에 앉아서 무척 기쁨과 만족을 얻을 수 있겠어요. 저는 사람과 사람간의 열린 만남만큼 행복감을 주는 건 없다고 봐요.”

내 말을 들은 ‘죽음’은 그 말이 이루어진 것처럼 현재형으로 말해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내가 후회한 내용을 문장을 바꿔 말할 것이다.

“내 인생은 완벽한 성공이에요. 항상 마음을 열고 어떤 형식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며 살아요. 그들의 기쁨과 아픔이 내게 있는 그대로 전달되고, 나도 그들에게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죠.”

만약 ‘죽음’이 내 말을 듣고 다시 태어난다면 그걸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할 자신이 있냐고 물으면 나는 순간 멈칫하겠지만, 곧 바로 “예‘라고 대답할 것같다. 죽음을 앞에 둔 상황에서 생각난 것은 내 일생을 통해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들, 정말 이렇게 살고 싶었는데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이 또 없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둘. ‘현재 내 앞에 놓인 일과 사물 속에 몰입하면서 살아있다는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 것.’

셋. ‘안정된 자리와 직책 속에서 내가 연구, 탐구하고 싶은 것을 맘껏 공부하는 것.’

넷. ‘내가 느끼고, 깨달은 것을 저술이나 강의를 통해 남에게 부지런히 전달하는 것.

다섯. ‘내 가족, 어머니, 동생, 아내, 아들과 서로 깊이 아끼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

여섯. ‘일 년에 두 번 정도 나 혼자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으로 여행하는 것.’

일곱. ‘매일 땀 흘리며 운동하는 가운데에서 육체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것.’

여덟. ‘신과 함께 한다는 느낌 속에서 사는 것.’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가상의 이야기지만 ‘죽음’의 질문에 대답하는 동안 정말 이렇게 살고 싶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고, 이렇게 살수 있다면 죽음 앞에서도 ‘나는 완벽한 삶을 살았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왜 그렇게 살지 못할까? 어쩌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살수만은 없다’는 일반적인 통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앞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한 가지 느낀 게 있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삶, 완벽하게 성공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바라는 여덟 가지의 삶’ 중에는 특정의 자격증이나 학위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도 있고, 일정수준 이상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들은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다.

첫 번째의 사람관계는 당연하고 두 번째인 ‘현재를 느끼는 것, 네 번째인 ’ 책 쓰고 강의하는 것(물론 이것은 누군가 요청해야 가능한 것이지만), 다섯 번째인 ‘가족들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삼는 것’, 그리고 여섯 번째인 여행하는 것, 이것도 비용 을 따져봐야겠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게이 핸드릭스는 <다섯 가지 소원>에서 자신의 성공된 삶은 ‘나는 완벽하게 성공적인 삶을 살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모습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이를 통해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원하는 삶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

저자가 말한 자신의 다섯 가지 소원은 이렇다.

첫 번째.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다

두 번째.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나의 진실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상대방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아 그것이 마음을 항상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내 한계를 시험해 볼 수 있는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자신보다는 상대방이나 세상의 이목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 신성함과 우주의 진리를 이해하고 싶다

다섯 번째.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않는 현명한 삶을 살고 싶다.

나는 저자의 소원들을 보며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삶의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특히 두 번째 소원 ‘나의 진실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나도 무척 공감했다.

이 소원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상대방에게 전하지 못한 진심을 전해주고 그 동안 정리하지 못했던 것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소원인데, 그는 이 소원을 실천하기 위해 그 동안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한 진실’ ‘지키지 못한 약속’ ‘직접 전하지 못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 ‘갚지 못한 돈’의 목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가장 내키지 않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가장 어려운 것을 먼저 해내면 나머지 일들은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무리하는 행동의 효과에 대해 말한다.

“(목록의 일을 갖고)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하나씩 매듭지을 때마다 내 안 깊은 곳에서 신선한 에너지가 솟구쳐 나오는 것이었다, 마무리 지은 일이 새빨간 거짓말을 실토하는 것처럼 쉽지 않는 일이었을 때 특히 거기서 분출되는 에너지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다시 태어난 듯 한 기분이었다....마무리하는 행위는 우리와 우주의 인연을 축복한다. 우리가 우주에 조금씩 더 가까이감에 따라 우주는 우리에게 더 친숙한 공간이 된다. 마무리하는 일에 점점 능숙해 지면서 나는 미처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고 행복한 비명을 지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나는 이런 일들이 우주가 내게 보내는 윙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때마다 나도 감사하며 우주에 윙크를 보낸다.”

나는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우리 인생의 중요한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그려볼 수만 그런 삶을 사는 게 어렵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하며 나오는 ‘완벽한 삶’에 대한 대답은 남이 주어야만 가능한 것, 즉 갑부가 되고, 유명스타가 되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 등‘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완벽하게 성공적인 삶’의 모습이며, 사랑하고, 감동하고, 나눠같고, 이해하고, 존경하고, 열정을 불사르는 그런 모습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독자에게 제안한 방법, 즉 죽음을 생각하며 자신에게 묻는 ‘나의 완벽하게 성공한 삶의 모습’은 기존의 사명이나 비전 수립방법보다 간단하면서도 자신의 욕구를 즉각적으로 이끌어 내준다. 아마도 ‘죽음’이라는 상황을 가정한다는 것 (이 점은 사명작성법과 유사), 깊이 생각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따지지 말라는 의미다) 바로 대답하라는 것, 그리고 이유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다는 특징 때문인 것 같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바라는 완벽한 삶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고, 그런 삶을 살겠다는 자신의 의지라는 내용이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소원을 실현했다는 만족감에 숨을 들이쉬고, 모든 것이 마무리된 삶의 축복 속에서 숨을 내 쉬는 것이다. 한편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숨을 들이쉬고 내 쉴 때 마다 소원을 실현해 나갈 의지를 다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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