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즐거움 - 은퇴 후 30년… 그 가슴 뛰는 삶의 시작!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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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 서두에 보면 노년은 ‘삼광의 나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나는 노숙, 즉 삶이 완벽하게 성숙한 것을 의미하고, 또 하나는 노련, 즉 솜씨나 재주가 최고의 경지에 다다라 있는 것을 의미하고, 마지막으로 노장, 즉 노숙과 노련을 겸한 상태를 말한다. 젊은이들은 가질 수 없는, 나이가 들을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보배와도 같은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아! 그래’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아무리 나이듦을 사람들이 찬양해도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곧 세상에서 은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단정 짓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나이 40이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 나이가 인생끝이라고 생각하기 않겠는가. 그 뒤의 나이는 어쩔 수 없이 죽지 못해 사는 나이이고. 그러다보니 아무리 나이든 것을 찬양하는 말을 해봐야 당사자 스스로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헛일이 되고 만다.

인생 80의 시대. 싫으나 좋으나 예전사람들보다는 거의 20년 이상을 더 살아야하고 그 동안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그저 과거처럼 60까지 자식 키워놓으면 그들이 먹여 살리리라 기대했다가는 쪽박 차기 십상이다. 내 나이 50이지만 지금 나이 20인 내 아들이 나를 부양할 것인가? 글쎄다. 내 머리 속에는 자식에서 부양받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고,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독립해서 자신의 먹을 것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 아마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 외로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남은 3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이듦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고민하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다. 인간이 오랜 세월동안 지구상에서 살아가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예전에는 그토록 바랐던 장수의 기쁨마저 왜소해진다. 어떻게 맞이하는 게 좋은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내가 살고 싶어 사는 게 아니니 나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체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나이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정말 나이가 들었다. 이제 뭔가를 하는 것도 귀찮고, 할 힘도 없고, 할 일도 없다는 표정. 책을 보라면 눈이 아프고, 밥을 먹으라면 잇몸이 안 좋고, 운동을 하라면 힘이 없고, 놀러가자면 돈이 없다는 사람들이다. 마치 나이가 들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며 나를 바라볼 때면 나 역시 할 말이 없어진다. 모두를 정상인 상황에서 나 혼자 피터팬처럼 살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면 노익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늙다리라는 말을 통해 노인의 멋을 재미있게 표현했는가하면, 행복한 노년을 위한 5금과 5권을 실감나게 설명하기도 한다. 저자가 설명한, 행복한 노년을 위한 5금은 ‘잔소리와 군소리를 삼가라’ ‘노하지 마라’ ‘기죽는 소리는 하지마라’ ‘노탐을 부리지마라’ ‘어제를 돌아보지 마라’다. 특히 어제를 돌아보지 마라는 말은 노년의 삶은 지금 이 순간부터 미래의 삶이 중요하지 과거에 내가 어쩌구 저쩌구 해봐야 아무런 도움도 안 되기 때문이다.

도리어 저자는 노년이 되면 다섯 가지를 적극 실현하라고 말하는데, ‘큰 강물이 흐르듯 차분한 상태에서 유유자적한 모습을 유지하라고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젊었을 때처럼 꼬장꼬장하게 굴지 말고 관대하라고 한다. 또 무엇보다 소식이 건강에 무척 중요하기에 먹는 것에 욕심내지 말며, 생각난다고 바로 움직이기보다는 머리와 가슴으로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면서 움직이라고 한다. 당연히 운동은 열심히 하라고 하고.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노년의 삶이란 평소 고민하던 것처럼 외롭고 쓸쓸한 삶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우리 머릿속에 부모의 삶이 자리잡다보니 그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노년의 삶을 미처 그리지 못한 것뿐이다. 하지만 이제 노년은 인생의 30% 이상을 남긴 또 하나의 길이고, 이 속에서 과거에는 느껴보지 못한 노숙한 삶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어차피 거쳐 가야 할 노년의 삶. 그 길을 어떤 생각과 모습으로 걸어갈 것인지는 자신이 결정할 문제이지만 결코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만은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분명히 전달한다. 노년의 삶에 대한 그림이 없다면 이 책속에서 저자의 삶을 보라. 젊었을 때의 연장선이 아닌 노년만이 만끽할 수 있는 새로운 즐거움이 책 구석구석에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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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의 인문공부 - 세상을 뒤바꾼 통합지성의 발견
슈테판 클라인 지음,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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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드 다 빈치. 왠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이름이다. 어떤 때는 철학자로, 어떤 때는 과학자로, 또 어떤 때는 화학자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깊이 각인된 인상은 ‘모나리자’를 그린 화가의 모습일 것이다. 눈썹을 그리지 않은 것인지, 원래 없는 것인지 아리송하게 만드는 한 여인의 그림. 미소를 짓는 것 같기고 하고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한 묘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다. 프랑스에 있는 세계적인 박물관, 루브르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그래서 사람들의 접근을 통제하기 위해 방탄유리 속에 들어 있는 그림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나리자가 왜 그런 느낌을 주는지는 잘 모른다. 책이나 우편엽서, 사진첩에서 자주 봤지만 실제 그림으로 본 적이 없어 비평가들이 하는 말을 듣고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면 모나리자의 모습이 왜 그런 느낌을 주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완성하지 않은 채로 갖고 다니면서 계속 수정했던 그림. 모나리자의 존재가 실제 인물인지 다빈치 자신을 그린 것인지, 아니면 창녀의 모습인지를 떠나 그 그림이 가진 위대한 발견의 뒷모습을 상세하게 그려줬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주 꼼꼼하게 그 이유를 추적했고, 그 내용을 보면 일반사람들은 실행으로 옮기기 어려운, 아주 오랜 시간의 투자와 노력 때문이란 것을 많은 증거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내용을 통해  다빈치의 열정, 즉 그가 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쏟아 부은 시간과 노력을 느끼게 된다.

모나리자의 모습에 담긴 비밀은 화가의 천재성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다빈치가 갖고 있던 빛에 대한 지식 덕분이다. 태양빛이 사람의 어떤 면에 도달하면 각도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 먼 거리와 가까운 거리의 명암은 어떻게 표현하면 되는지, 사람의 표정은 어떤 근육에 의해 움직이며, 이것이 평소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에 대한 정밀한 지식이다. 요즘 세상에서야 뇌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는 일이기에 우뇌와 좌뇌가 통제하는 부분이 다르고, 따라서 얼굴의 오른쪽 표정과 왼쪽 표정이 같지 않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뇌의 구조는 당연하고 그들의 기능조차 몰랐던 르네상스 시대에 이를 발견한 다빈치라는 인물은 너무나도 위대해 보였다. 아마도 그의 호기심, 세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열망이 그를 미지의 세계로 이끈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다빈치에 대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는데 그 중에서도 두 가지 내용이 나에게 크게 와 닿았다.

우선 첫 번째는 그리는 사람이 아닌, 보는 사람의 시각을 인식했다는 점이다. 당시 르네상스 시대에는 자연 그대로를 묘사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기에 화가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다빈치는 자신의 눈 역시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내가 아닌 내 그림을 보는 사람의 눈을 의식했다. 남들에게 이 그림을 어떻게 보이고 싶으냐의 문제다. 그러다보니 보는 사람의 시각적인 원리를 알아야 했고, 그 지식을 그림에 그대로 반영했다. 내가 보는 것보다 남이 느끼길 원하는 것, 그리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어떤 지식도 마다하지 않은 그의 정신이다.

두 번째는 그의 관찰 능력이다. 수학의 ‘수’자도 모르는 사람이 물을 이용한 도구를 만들고, 다양한 물체의 운동역학을 알아야만 가능한 전쟁무기를 개발했다. 나에게 궁금했던 것은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그가 어떻게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게다가 교육을 받았다 해도 당시 지식으로는 물체가 날라 가는 원리 자체를 모르던 시절이었으니 어떻게 그런 것들을 구상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해답은 다빈치는 자신의 궁금증을 남에게서 찾기보다 직접 실험했다는 것이다. 무기의 활공역학을 이해하기 위해 자루에 구멍을 뚫고 물을 넣어 물이 떨어지는 각도를 이해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의 지식을 한 곳에만 활용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확대해 나갔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되는 게 아니라 셋, 넷 이상의 결과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넘쳐나는 정보, 검색 한두 번이면 자신이 원하는 정보 이상을 얻을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다빈치의 사고방식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게 우스운 말이지만, 이 책을 보면 왜 우리가 거의 500년 전 사람보다 더 모르는 게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정보에 길들여져 있다는 점이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아니 주어진 것조차 버거워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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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수업 - 상처받고 지친 영혼을 치유하는 인생의 지혜
제럴드 G. 잼폴스키 지음, 막시무스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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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세상의 모든 것은 있는 현실 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고 한다. 무척 단순하면서도 진리에 가까운 말이다. 동일한 상황에 처한 두 사람이라도 그 일에 대한 태도가 다르고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상관이 직원 세 명을 불러 야단치기 시작했다. 일이 잘못된 탓이다. 아마도 야단맞을 동안 기분 좋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야단맞는 것은 육체로 치면 매를 맞는 것이나 진배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동일하게 상관에게 불려가 야단을 맞았다고 해도 그들이 모두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잘못한 것을 반성하고 다음부터는 잘해야지 마음먹는 가하면, 어떤 사람은 상관이 자신의 잘못된 점만 찾아내 트집을 잡는다고 씩씩거리기도 하고, 더 심하면 회사 더러워서 못 다니겠다며 사표를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 동일한 사건이지만 그 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에게 와 닿은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는 말이다. 특히 이 책의 전반적인 주제는 사랑과 두려움, 용서와 관련된 상황에서는 우리들이 가진 태도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이 책은 1970년대에 쓰여 진 책이다. 지금부터 거의 40년 전에 출간된 책이다 보니 책 내용이 무척 낮 익다.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이 저자의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인용하고 해석하면서 자신의 글을 썼기 때문인 것 같다. 간단한 문장으로 핵심만 저술한 저자의 글에 앞뒤좌우에 해석을 붙이면서.

하지만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가 떨어졌을까.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다고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고, 특히 저자가 말하는 사랑과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계속 진행 중이다. 어쩌면 지구상에서 인간이 멸망할 때까지도 계속될 주제인지도 모르지만.

저자는 인간이 가진 감정에는 두 가지 감정이 있는데, 하나는 사랑이고, 또 하나는 두려움이라고 한다. 사랑이 있으면 두려움은 함께 할 자리가 없지만 두려움이 생기는 순간, 사랑은 저 멀리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러 책에서 그 동안 많이 들어본 말이다. 하지만 이 내용을 실감하고 자신의 마음에서 사랑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저자는 공격이란 두려움의 표현이고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 게 있다는 표시라는 말을 했지만, 그런 시각으로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40년 전에 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은 자기 하기 나름이다’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그래. 어차피 내가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린 것이니까’ 하면서. 하지만 돌아서는 순간, ‘왜 세상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지’ 푸념하는 게 우리다.

나는 이 책과 같은, 거의 고전과 같은 책을 볼 때면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너무나도 명백한 이야기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향수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왠만한 말에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고, 그저 새롭고 또 새로운 것만 찾는 지식노마드같이 되어버렸다. 이런 세상 속에서 과거의 것은 지나간 유물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나간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관념 속에서 말이다.

최근에 나온 책 중에서 이 책과 유사한 주제를 갖고 쓴 책이 몇 권 있다. 그것들과 이 책의 내용을 놓고 문맥분석을 해 본다면, 아마도 거의 동일한 시각으로 작성된 책이란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바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내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고, 우리가 신처럼 믿는 ‘자아’라는 게 바로 우리의 시각을 왜곡시키는 최대의 적이라는 주장 같은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두 책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까? 물론 책이란 것은 동일한 주제라도 저자에 따라 다르게 표현할 수밖에 없고, 독자는 그 다름에 이끌려 책을 선택하는 게 당연한 상황 같지만 아마도 ‘최신’의 것을 고르지 않을까. 40년 전에 이미 다 한 말을 아직도 진리를 찾듯이 이곳저곳을 헤매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조금은 처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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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의 백지수표 -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19가지 특별한 주문
페기 맥콜 지음, 김소연 옮김 / 서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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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이 책에서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부자다. 내 삶은 풍요롭다’는 말로 끝나는 (단순한) 암시가 아닌, 그 메시지와 동반된 시각적 이미지와 충만한 감정을 온몸으로 느껴라. 그러면 의욕이 충만해지고, 수많은 기회와 마주치게 되며, 마침내 힘들이지 않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난 이미 부자야.“라고 선언하며 그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만 있다면 꿈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다만, 잊지 말 것은 단순한 상상이나 바람이 아닌 그 상황을 실제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많은 돈이 예금된 통장을 보며 행복감을 느끼듯이 말이다. 우주를 움직여 ‘부’를 끌어오기 위한 에너지가 바로 감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서 ‘부’를 얻을 수 있는 19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 이들을 요약하면 ‘첫째, ‘부’와 ‘돈’은 제한적인 것이 아니며, 공기처럼 무한하다는 것을 믿어라.‘ ’둘째, ‘부’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보며 내가 이미 갖고 있다고 확신할 때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셋째, 현재의 상황에 충실하며, 항상 감사하라. 감사의 마음은 자신의 감정을 더욱 긍정적으로 만들어 준다.‘이다.

그러나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를 얻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실컷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면서도 ‘부’란 자기 손에는 닿지 않는 것으로, 자신은 도저히 가질 수 없으며,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만이 누리는 것이라고 단정 짓고 ‘부’를 가질 수 없는 이유만 줄줄이 늘어놓는다고 한다. 그런 좁은 생각과 편견이 (부를 막는) 장벽임을 모른 채.

저자가 말한 ‘부’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들은


첫 번째, ‘부(돈)’는 제한된 것이다. 띠라서 누구나 원한다고 다 가질 수는 없다.

두 번째, ‘돈 버는 사람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기에 내가 그들처럼 되기 전에는 ’부‘를 가질 수 없다. 근데 나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

세 번째, ‘돈을 벌려면 정상적인 행동으로는 안 된다.’ 따라서 더럽게 살거나 아니면 청렴하게 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결국 사람들은 ‘부’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부’는 제한된 것이기에 남보다 먼저 갖거나, 남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세금을 안 내거나, 남을 속이거나, 줘야 할 돈을 안 주는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리고는 “나는 정직한 사람이니 당연히 돈을 못 벌수밖에 없지.” 생각하며 돈 없는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가질 수 없어 못 가진’ 것을 ‘가질 수 있지만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위로하면서.

상상할 수 없으면 감정을 움직일 수 없다.

나는 [시크릿]류의 책에서 말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믿는다. ‘정말 맞아!’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꿈이 실현될 것임을 믿고 확신하면서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이뤄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런 종류의 책에서 말하는 것과 내가 종교에서 배운 믿음이란 게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도리어 맨 날 입으로는 ‘믿습니다.’ 하면서 ‘진정으로 원한다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말을 안 믿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

그러나 문제는 내가 모르는 것과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상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며 더 나아가 저자 말처럼 이를 감정으로 느낀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포르쉐’를 원한다면 내가 지금 그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앞 차를 따돌리는 순간의 긴장감과 스릴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상상력과 확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단순한 바람, 되면 좋고 안 되어도 그만인 모습이, 게다가 머릿속에서 급조한 상상이 어떻게 감정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현실적으로 꿈꿀 수 없는 것을 꿈꾸며 자신의 바람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것은 아닌지. (여기서 현실적이라는 말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이 열악해 도달할 수 없는’ 이란 개념이 아니라 어떤 것이든 ‘감정적으로 이뤄졌다고 느낄 수 없는’ 이란 의미다.)


‘돈’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 현대인들.

‘돈은 현대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교환도구’로써, 경제학자들의 말처럼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것과 바꿀 수 있는 카드의 조커(Jocker)와 같은 것이다.(‘돈(화폐)’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수행하는 역할이 가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 아니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돈의 가치가 교환가치를 넘어선 것 같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모리교수가 말한 것처럼 ‘마음이 허전하고 의지할 곳이 없다보니 대안으로 돈에 맹종‘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학생들이 보낸 메일에 가끔 이런 말이 들어있다. “교수님. 요즘 제가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하루 종일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다보면 하루가 그냥 지나가죠.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요?” 이런 내용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오는 이유는 나도 한 때 이런 생각을 하며 내 자신을 학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물론 지금도 이런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돈이 있어야 학비도 내고, 결혼도 하고, 집도 장만하고, 아이들 과외공부도 시킬 수 있고, 남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인정받으며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우리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했으면서도, 하루를 마감할 때가 되면 항상 허전하다. 내가 뭐 때문에 살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나는 돈 벌기 위해 태어난 건가?‘

이제는 ‘부’의 개념을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4년 전, 직장을 그만둘 때 무척 두려웠다.(퇴직하는 직장인들 모두가 비슷한 감정을 겪을 것이다.) 안락한 목장을 떠나 황량한 들판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퇴직 후 육 개월 동안 나는 세상이 너무 두려워 사람도 거의 못 만나고, 낮에는 외출도 하지 못했다. 옆 집 사람이 “지금 이 시간에 왜 집에 있어요?” 라고 물을 것 같았다. 특히 오랜 세월동안 달고 있던 계급장을 떼고(명함 No, 직급 No, 회사브랜드 No, 안정된 급여 No) 맨 몸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나도 낮 설었다.


직장을 그만둔 후 가장 두려웠던 것은 돈 문제다. 퇴직할 때 받은 퇴직금도 곧 바닥날 터인데 그 후 어떻게 살 것인지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직장인일 때 받던 연봉에 맞춰 가계부는 커질 때로 커진 상황이라 더더욱.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조금씩 변해가는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는데, 바로 일에 선택 기준이었다. 나는, 일전에 잠깐 이야기한 것처럼, 헤드헌터에게 전화가 오면 엉뚱한 조건을 제시했다. 당장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학교 강의를 위해 일주일에 이삼일은 회사출근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헤드헌터들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기업고문으로 취직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일주일에 이틀 출근하겠다고 하니 당황하지 않겠는가.(아마 이런 상황에서 기업체에 근무할 방법은 사외이사나 자문위원 같은 직책밖에 없을 것 같다.)

‘부’라는 말은 ‘풍요로움’과 같은 의미 아닌가?

당시 내가 이런 조건은 내건 것은 ‘돈’이 필요 없거나 직장 다닐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도리어 간절히 원했다고 하는 데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겁도 없이(?) 내 걸게 된 것은 ‘부(돈)’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기 때문이다. 즉 ‘부’라는 게 ‘통장에 들어있는 돈’만으로 측정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 ‘부와 돈’은 ‘여유로움과 풍요로운 삶을 위한 수단’이지 여유로움과 풍요로움 그 자체는 아니라는 생각, 따라서 ‘부’란 개념을 ‘돈’이 아닌 ‘풍요로움’으로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에게 ‘돈’ 대신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물론 돈 많다고 과시하려는 사람은 이런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집안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 널고 아이에게 점심을 차려주는 것도 풍요로움을 주는 소중한 일이었고, 다가오는 사람에게 미소 짓는 것도 풍요롭게 만드는 중요한 일이며, 한 평생 고생하신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도 과거에는 느껴보지 못한 풍요로운 일이었다. 특히 새벽에 글을 쓰고, 학교에서 강의할 때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줄 것이 있다는 마음에 더욱 알찬 풍요로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백만장자라고 모두 여유롭고 풍요롭지 않으며, 지갑 속에 돈 천만 원이 들어있다고 세상 고민이 다 없어지는 것도 아니잖는가.(예전에 내가 자살을 생각했을 때 받았던 연봉이 억 단위였다) <몰입>을 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것처럼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먹고 살 수만 있다면 그 이상의 돈은 행복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에 감정이입하면 되지 않을까.

저자는 ‘부’를 얻으려면 실제 ‘부’를 얻은 것처럼 느끼고 풍요로움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으로 바라보며 항상 감사하라고 한다. 그러면 ‘부’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이다. ‘내가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돈 벌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는데?’ 고민하지 말고 실제 부가 생긴 것처럼, 그래서 풍요롭다는 것을 감정적으로 느낄 수만 있다면 나머지는 우주가 알아서 해 준다는 것이다.(인간의 뇌는 현실과 감정이 동반된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상할 수 없는 생각하려 애쓰지 말고 우리가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 그 모습을 꿈꾸면 되지 않겠는가?

나는 ‘부’를 풍요로움으로 대체했지만, 당신은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나는 요즘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이런 시간을 허락해 준 ‘신’에게 감사하게 된다.(물론 그런 자리에 있게 해준 선배님에게도 고마움을 느끼고) 그리고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듯한 안락함을 느낀다. 직장인일 때는 느껴보지 못한, 직급과 결재권을 흔들며 폼 잡을 때는 상상도 못해본 풍요로움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풍요로움’의 감정을 마음 한 가득 느끼며 그런 감정과 함께 살고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눈앞에 있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이런 감정이 많은 돈이 들어있는 통장을 바라보는 마음과 같다면, 그래서 이런 감정이 [끌어당김의 법칙]을 움직일 수 있다면 ‘부’는 자연스럽게 내가 느끼는 풍요로움에 맞춰 따라오지 않겠는가.

나는 ‘부’보다는 ‘풍요로움’을 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책에서 말하는 백만장자의 모습은 잘 모르겠지만 풍족한 마음으로 커피 한잔 마실 때의 모습은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지 상상하지 어려운 ‘돈’을 생각하기보다 ‘풍요로움’을 생각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내가 상상하며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는 최적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도 당신 나름대로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리는, 그래서 주위사람들을 보며 ‘감사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겠는가. 세상이 요구하는, 남보다 앞서기 위해 필요한,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얻어야 하는 뭔가가 아닌 진정으로 당신의 영혼이 기뻐 춤출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상상하며 감정적으로 느낄 수 그런 것 말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에서 원하는 감정이입. 쉽지는 않지만 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

물론 이런 마음을 갖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자주 ‘경제적인 문제’때문에 고민도 하고, 내일 일을 걱정하며 안절부절 못할 때가 많다. 게다가 통장에 든 돈이 바닥날 때면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돈 들어올 때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심호흡을 하며 아래 말을 생각한다.

‘오늘 나는 내 희망과 꿈을 이루기 위해 정확히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내가 걱정해서 달라질 것은 무엇인가?’
  

'걱정 대신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나는 이 일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 대답은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일을 찾아하면서 일이 해결되리라 믿고, 현재의 풍요로움에 감사하자는 것이었다. 고민한다고 안 될 일이 될 리도 없고, 두렵다고 해서 누가 나를 대신해서 문제를 해결해 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탱큐! 스타벅스]에 나오는 마이클 게이츠 길처럼 60 넘은 노인이지만 커피 잔을 나르며 그 일에서 만족과 풍요로움을 얻는다면, 그리고 그 감정이 진심이라면 저자 말대로 나의 풍요로운 에너지가 우주의 에너지를 움직여 내가 바라는 모습에 한 발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여지라도 생길 것 같다.




‘부’를 ‘돈’ 대신 ‘풍요로움’으로 바꿔보자는 것.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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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지능혁명 - 내 아이의 성공적인 미래 설계
홍성훈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아이큐검사. 오래전에 학교에서 받았던 검사이지만 지금도 당시 내가 몇 점 받았는지 기억이 난다. 아이큐검사를 통해 좋은 점수를 받으면 그것 자체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선생님의 눈초리가 달라졌으니까 말이다. 마치 한 인간의 우수성과 미래 자체를 결정해 버리는 듯한 검사였다.

하지만 요즘엔 아이큐라는 말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것 같다. ‘아이큐가 밥 먹여 주냐’는 농담도 나오는 것을 보면 더더욱 아이큐에 대한 가치가 평가 절하되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강점혁명’이란 말이 세상의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성공한 CEO들, 그들 모습에서 아이큐가 높은 엘리트의 모습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잘할 수 있는 일을, 자신이 편한 방식으로 일을 풀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주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강점을 자기 식으로 풀어나가는 성공한 경영자들 모습 속에서 자연히 ‘아이큐가 밥먹여주냐?’ 하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우등생이 아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학점과 사회생활과는 반비례한다’는 이야기들이 모두 이런 분위기를 설명해 주는 말들이다.

이 책을 보면 평소 우리가 알고 있던 내용과 상이한 내용들이 가끔 나온다. 하지만 가끔 나온다고 해서 내용의 비중이 작다는 의미는 아니다. 몇 가지 내용이지만 일상적인 인간평가 개념 자체를 뒤바꿔버리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지능과 재능은 같은 것이다’ ‘한 인간이 한 가지 강점만 가진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몰입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재능보다는 능력에 중점을 둔다’ ‘재능에는 8가지가 있는데 이들은 다시 특수재능과 기본재능으로, 다시 주 재능과 보조재능으로 나뉜다’ 등의 이야기다.

언뜻 들으면 과거처럼 점수 하나같고 사람을 평가하던 것보다 복잡한 것 같지만 책을 읽다보면 고개가 끄덕거리는 부분이 많다. 뭐라고 할까. 좀 더 인간적인 평가방식이라고 할까. 과거의 아이큐검사에서는 인간미를 제외한, 한 사람의 능력을 수리적인 판단 하나에 근거해 평가했다면 이 책에 나온 다중지능은 인간적인 면을 보다 많이 강조한 척도 같다. 인간이 원래 다중적인 면을 가진 생물이건만 그것을 무시한 채 하나의 숫자로 사람을 평가하겠다는 게 문제 아니었을까 싶다.

이 책의 주제인 다중지능은 용도가 무척 다양할 것 같다. 특히 사회인으로 살아갈 때 반드시 필요한 직업과 일을 선택하는 데 있어 무척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어떤 일이든지 간에 그 일에 관심을 갖고 몰입하면 해당분야 전문가가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하지만 동일한 시간을 투자해도 일에 대한 결과는 사람마다 다르다. 왜냐하면 일의 결과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그 순간 얼마나 자신의 일에 몰입하느냐에 따라서도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자신이 잘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상태가 아니겠는가. 다중지능 평가는 바로 이런 점에서 한 인간의 재능을 파악하여 그것과 일치하는 직업과 그의 일을 선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저자는 각 직업마다 필요로 하는 재능이 있기에 직업을 재능으로 인수 분해한 다음, 그것에 합당한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그 일을 추천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거꾸로 말하면 자신이 가진 재능이 무엇인지 알고, 그 재능이 가진 요긴하게 사용되는 직업을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재능과 연결된 일이니 남들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일을 배울 수 있고, 동시에 재미있으니 몰입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 책에는 다중지능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까지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모습을 한두 개의 수치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그가 가진 다양한 재능을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 아이의 재능은 스스로 인지하도록 만들어야지 그것을 사회적인 잣대나 부모 개인의 욕망에 의해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말은 자식을 키워 본 부모가 아니고서는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자식사랑의 표현인 것 같다. 아이의 재능은 부모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아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척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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