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피어라, 남자 - 농부 김광화의 몸 살림, 마음 치유 이야기
김광화 지음 / 이루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남자. 여자와는 다른 신체구조와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의 한 유형이긴 하지만 그들의 삶을 바라보면 여성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남자이기에 울어서는 안 되고, 남자이기에 가족을 책임져야 하고, 남자이기에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되고, 남자이기에...하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났다. 물론 여성들도 ‘여자이기에’ 하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며 자라났겠지만 남자인 나는 모르니 그건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남자가 가장 자존심 상할 때가 자신의 가정을 책임질 수 없다고 느낄 때이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워서인지는 몰라도 가족의 먹고 살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때, 가족을 위험으로부터 구해줄 수 없을 때, 가족의 여러 가지 일들을 앞에 나서 해결하지 못할 때 남자는 남자로서의 위치를 상실했다고 느낀다. 물론 세상을 살아보니 나도 이제야 비로소 이게 다는 아니라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아직도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 숨어 가끔 나를 힘들게 한다.
예전에 스티브 비덜프가 쓴 <남자, 그 잃어버린 진실>이란 책에서도 남자의 우울한 현실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분명히 신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세상을 이루는데 필요하기에 만들었을 텐데 날이 갈수록 남자의 위치와 역할이 애매해 진다는 것이다.
오래 전 인간들은 힘이 센 남자가 일을 하고 곡식을 키우고 사냥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렸다. 그리고 그러한 권위를 갖고 가정을 이끌었으며, 동시에 자손에게 가족의, 사회의 가치와 질서체계를 가르쳐줬다. 그러나 세상이 변해 이제 힘이 세다는 것은 사회생활에서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차피 힘쓰는 일은 기계가 하게 되었고, 인간은 어디서, 어떤 일에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한지 판단하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 되었다.
다니엘 핑크는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이러한 상황을 존 헨리의 이야기를 통해 재미있게 표현했다. 존 헨리는 공사현장에서 굴을 뚫는 기계인 굴삭기와 경쟁하다 죽은 사람이다. 즉 기계와 인간 중에 누가 더 힘이 센지, 굴을 더 빨리 파는지 시합을 했다가 결국 순간적으로 너무 많은 힘을 쓰는 바람에 죽은 사람이다. 다니엘 핑크는 이런 상황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존 헨리의 죽음은 산업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하나의 일화로서...이제 기계는 어떤 면에서 인간을 압도하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인간이 지닌 존귀함의 척도 또한 변화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면에서 밀리는 남자. 힘쓰는 것은 당연하고, 머리 쓰는 것, 돈 버는 것, 사람 관계를 유지하는 것 등 모든 면에서 여성과 대등하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하다못해 덤프트럭(예전에는 남자의 전유물) 운전기사 중에도 여자가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남자의 아픔과 슬픔은 나날이 커져만 간다. 여성은 모르는 남성만의 자괴감이라고 할까.
이 책은 이와 같은 남자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해 목숨까지 끊으려했던 한 남자. 힘을 쓰는 것에서, 남자의 포용력에서, 가족의 안전을 책임지는 면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한계를 느낀 한 남자가 어느 날 살아남기 위해 결단을 내린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곳을 찾아 시골, 그것도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외지에 들어가 살아가는 이야기다.
저자는 아무 것도 없는 그곳에서 직접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집까지 직접 지어가면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언뜻 보기에는 도시민의 농촌 정착기처럼 느낄지 모르나 내 눈에, 내 가슴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한 남성이 자연 속에서 자연적인 남자상을 찾아가는 힘겨운 삶의 역사처럼 느껴졌다. 책 내용 곳곳에 아내와의 갈등, 힘을 되찾는 모습, 남자이자 가장으로서의 역할 회복 등의 내용이 나온다.
‘피어라, 남자’. 책을 덮고 다시 본 제목은 처음 책을 열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책 내용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제목 같다. 나는 이 책을 남자로서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자신의 존재가치와 세상에서의 역할을 상실한 남자들에게 그와 같은 자괴감은 자신의 능력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회자체가 남자의 모습을 이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의 남성은 전 인류의 반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이, 감성이, 습관이, 세계관이 자리 잡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시절의 교사 중 남성은 10%도 안 된다. 여성 교사에게 삶의 모습을 배운 남성들. 그들이 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