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라, 남자 - 농부 김광화의 몸 살림, 마음 치유 이야기
김광화 지음 / 이루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남자. 여자와는 다른 신체구조와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의 한 유형이긴 하지만 그들의 삶을 바라보면 여성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남자이기에 울어서는 안 되고, 남자이기에 가족을 책임져야 하고, 남자이기에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되고, 남자이기에...하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났다. 물론 여성들도 ‘여자이기에’ 하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며 자라났겠지만 남자인 나는 모르니 그건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남자가 가장 자존심 상할 때가 자신의 가정을 책임질 수 없다고 느낄 때이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워서인지는 몰라도 가족의 먹고 살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때, 가족을 위험으로부터 구해줄 수 없을 때, 가족의 여러 가지 일들을 앞에 나서 해결하지 못할 때 남자는 남자로서의 위치를 상실했다고 느낀다. 물론 세상을 살아보니 나도 이제야 비로소 이게 다는 아니라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아직도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 숨어 가끔 나를 힘들게 한다.




예전에 스티브 비덜프가 쓴 <남자, 그 잃어버린 진실>이란 책에서도 남자의 우울한 현실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분명히 신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세상을 이루는데 필요하기에 만들었을 텐데 날이 갈수록 남자의 위치와 역할이 애매해 진다는 것이다.




오래 전 인간들은 힘이 센 남자가 일을 하고 곡식을 키우고 사냥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렸다. 그리고 그러한 권위를 갖고 가정을 이끌었으며, 동시에 자손에게 가족의, 사회의 가치와 질서체계를 가르쳐줬다. 그러나 세상이 변해 이제 힘이 세다는 것은 사회생활에서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차피 힘쓰는 일은 기계가 하게 되었고, 인간은 어디서, 어떤 일에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한지 판단하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 되었다.




다니엘 핑크는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이러한 상황을 존 헨리의 이야기를 통해 재미있게 표현했다. 존 헨리는 공사현장에서 굴을 뚫는 기계인 굴삭기와 경쟁하다 죽은 사람이다. 즉 기계와 인간 중에 누가 더 힘이 센지, 굴을 더 빨리 파는지 시합을 했다가 결국 순간적으로 너무 많은 힘을 쓰는 바람에 죽은 사람이다. 다니엘 핑크는 이런 상황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존 헨리의 죽음은 산업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하나의 일화로서...이제 기계는 어떤 면에서 인간을 압도하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인간이 지닌 존귀함의 척도 또한 변화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면에서 밀리는 남자. 힘쓰는 것은 당연하고, 머리 쓰는 것, 돈 버는 것, 사람 관계를 유지하는 것 등 모든 면에서 여성과 대등하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하다못해 덤프트럭(예전에는 남자의 전유물) 운전기사 중에도 여자가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남자의 아픔과 슬픔은 나날이 커져만 간다. 여성은 모르는 남성만의 자괴감이라고 할까.




이 책은 이와 같은 남자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해 목숨까지 끊으려했던 한 남자. 힘을 쓰는 것에서, 남자의 포용력에서, 가족의 안전을 책임지는 면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한계를 느낀 한 남자가 어느 날 살아남기 위해 결단을 내린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곳을 찾아 시골, 그것도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외지에 들어가 살아가는 이야기다.




저자는 아무 것도 없는 그곳에서 직접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집까지 직접 지어가면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언뜻 보기에는 도시민의 농촌 정착기처럼 느낄지 모르나 내 눈에, 내 가슴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한 남성이 자연 속에서 자연적인 남자상을 찾아가는 힘겨운 삶의 역사처럼 느껴졌다. 책 내용 곳곳에 아내와의 갈등, 힘을 되찾는 모습, 남자이자 가장으로서의 역할 회복 등의 내용이 나온다.




‘피어라, 남자’. 책을 덮고 다시 본 제목은 처음 책을 열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책 내용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제목 같다. 나는 이 책을 남자로서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자신의 존재가치와 세상에서의 역할을 상실한 남자들에게 그와 같은 자괴감은 자신의 능력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회자체가 남자의 모습을 이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의 남성은 전 인류의 반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이, 감성이, 습관이, 세계관이 자리 잡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시절의 교사 중 남성은 10%도 안 된다. 여성 교사에게 삶의 모습을 배운 남성들. 그들이 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본형의 The Boss - 쿨한 동행
구본형 지음 / 살림Biz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직장생활에 대해 직장인들에게 물어보면 ‘재미있는 일’이란 자신이 하고 싶고 잘하는 일에 몰입할 때이고, ‘괴롭고 힘든 일’이란 바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다. 특히 직장상사와의 관계가 어렵게 되면 이는 직장 생활 자체가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그것도 아침 9시에서 저녁 6시까지의 삶 자체가 엉망이 된다. 그리고 아무리 피곤해도 상사를 피해가거나 외면할 수 없는 직장인 위치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 따라서 상사를 잘 만나면 직장은 천국이지만, 잘못 만나면 그 순간 지옥이 된다. 상사. 내가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전혀 손 댈 수 없는 부분이기에 더욱 가슴 아프기만 한 것이다. 누구 말대로 직장은 선택할 수 있지만 상사는 선택할 수 없는 게 직장인이 처한 상황 아닌가.




나도 20여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상사를 잘 만나 편안하게 직장생활을 했던 적도 있지만 재수가 없어 이상한 상관 밑에서 뼈 빠지게 고생한 적도 있다. 여기서 ‘뼈 빠지게’라는 표현은 중 노동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뜻이다. 상사가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구역질이 날 정도라면 할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한 상사 밑에서 살아가는 것은 길어야 2~3년 정도. 그 정도만 죽었다 생각하고 살다보면 상사는 바뀌게 되어있다. 내가 진급해서 다른 곳으로 가든가, 상사의 위치가 바꿔 다른 곳으로 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2~3년이란 세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이다.




저자가 쓴 내용을 보면 상사의 기본적인 생리가 무엇이고,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특히 ‘쓰레기’같은 상사와 함께 당당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무척 재미있게 표현했다. 아마도 저자 스스로가 과거에 상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 봐서 그런가 싶다. 자신이 표현한대로 성격 자체가 외형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서두에 말한 것으로 봐서는 말이다. 현재 상사 때문에 고민하는 직장인이라면, 특히 신참 직장인이라면 이 책에 나온 상사에 대한 생각을 봐 두면 좋을 것 같다.




다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상사를 좋은 상사와 나쁜 상사로 확연히 구분한 것이 조금 눈에 거슬린다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나와 함께 일했던  상사 중에 ‘쓰레기’라고 표현할만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저자가 그런 표현을 쓴 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그들의 느낌을 전달하려고 한 것이겠지만, 그 단어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쓰레기’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좋은 상사 밑에 좋은 직원, 나쁜 상사 밑에 나쁜 직원이 있게 되고, 이는 역으로 생각하면 좋은 직원 위에는 좋은 상사가 있을 수밖에 없고, 나쁜 직원 위에는 나쁜 상사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상사 중에 부하 직원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사람 없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제 시간에 완수하려다 보니, 자신도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강요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지 마음 자체가 쓰레기인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직장 다닐 때에는 그렇게 믿고 원망스럽던 상사가 회사를 떠나 되돌아보니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막상 내가 상사가 되어 부하직원들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그럼 나도 쓰레기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동일한 생각이 들곤 했다.




상사와 부하직원간의 문제는 의사소통의 문제이고, 서로가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부하직원 자체가 상사와의 관계를 잘못 규정했다는 점이다. 직장은 대학교 서클이 아니기에 나름대로 조직의 규범이 있고 위계질서가 있다. 여기서 여직원을 성희롱했다거나, 직원의 급여를 착복했다거나, 직원이 당연히 받아야 할 상을 가로채는, 그것도 의도적으로, 상사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이 책에서 언급하는 ‘쓰레기’ 상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이미 범법자(어떤 것은 민사, 또 어떤 것은 형사범으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논해야 할 상사학이란 상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상사에게 맞출 것인가의 문제로 바로 자존심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저자가 나름대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 현재 직장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썼지만 직장 내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역학관계인 상사와 부하직원간의 관계를 조금 적절하지 못하게 정리한 것 같다.




나도 한때 직장인이었지만(퇴사한지 2년) 직장인은 자신의 시간을 회사에 돈 받고 판 사람이라는 점, 상사는 회사가 자신을 관리하기 위해 배치한 감독관이라는 점, 그렇기에 직장인에게는 복종의 의무가 있다는 점이다. 일이 잘못됐을 경우 부하인 당신은 부서만 이동하면 그만이지만 상사는 퇴사한다.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고 상사의 권리는 이상하게 바라본다면 거기서 만족스러운 관계가 만들어 지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첫 30일 - 삶의 모든 변화를 위한
아리안 드 봉브와젱 지음, 김세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변화라는 것이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변화란 자연스러운 것이고, 삶 자체가 변화이며, 또 즐거움의 원천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즉 우리가 파도타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물의 변화를 통해 느끼는 것이며, 롤러코스트를 타고 즐거워하는 것도 바로 그것의 극적인 변화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우리 주변에 변화가 없다면 계절도 없고, 자라나는 것도 없고, 아침, 점심, 저녁도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평소 변화를 즐기며 사는 우리도 살아가는 삶 자체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제 봤던 창문이 그대로 있기를 원하고, 문 열고 나가면 나를 반겨주는 가족과 강아지가 그대로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가방 들고 갈 직장도 그대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동일한 삶이면서 한편으로는 변화를 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정을 원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잘못된 것인가? 어쨌든 사람들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고 그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어려움을 공감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될 것 같다.

책을 보면서 강하게 느낀 것은 변화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향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고, 그 과정을 통과할 수 있는 힘을 우리는 이미 갖고 있다는 점이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기에, 그 힘을 사용하려 하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하면서 거부한다는 말이다. 아마도 이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면 그 동안 변화를 회피하고 두려워했던 것이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책 내용은 무척 부드럽고 자상하며 변화의 의미를 독자에게 잘 전달하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변화를 경험하고 이를 몸으로 체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현재 변화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변화 자체가 두려운 사람, 안정만이 진정한 행복을 준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번 보라고 권하고 있다. 두렵게 다가왔던 변화 속에, 자신의 기반을 허물고 황량한 들판으로 자신을 몰아버리는 변화의 속성 안에 평소 느끼지 못했던 참된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저자가 나이가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한 변화라는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조금 이르지 않나하는 생각은 있지만(책 뒤에 나온 변화보고서에도 변화의 중심에 결혼과 자녀 출산이란 것이 있다)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책을 본다면 내용 자체로서는 흠 잡을 때 없는 매우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누구인가라는 가장 깊고 오랜 질문에 관하여 - 인생의 참주인을 찾는 깨달음의 길
사쿙 미팜 지음, 안희경 옮김 / 판미동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람들은 요즘 살기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언제는 살기 좋다고 외쳤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돈이 궁하다는 것 말고 다른 때와 다른 게 뭐가 있는지 잘 이해가 안 되고,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 세상사람 누구도 돈이 풍부했다고 느꼈던 시절은 없었을 것같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부자대로 돈이 더 많은 부자를 보며 가난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돈 천 만 원이라도 안정되게 들어오는 사람들은 돈 오천만원을 버는 사람 보면서 자신은 불행하다고 느꼈을 테니까 말이다. 단지 요즘은 몇 년 전보다 돈 벌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뿐이다. 특히 주식이나 재테크니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닐 게 거의 다 없어졌으니 말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자기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외부 환경을 믿지 못하니, 세상의 변화를 쫒지 못하니 믿을 거라고는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누구냐는 것이다. 허구헌날 남들이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 그들의 표정에서 희열을 얻던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돌아갈 집이라고 자신을 돌아보니 그게 어디 있는지 잘 모르는 상황이다.

어떤 사람은 지금 같은 상황을 우리 스스로가 자초했다고 한다. 자기가 가진 힘과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며 거기서 삶의 기쁨과 경제적인 안정을 찾은 게 아니라, 현실로 존재하지도 않는 돈의 부풀림에 목숨 건 결과 아니냐는 것이다. 100원에 산 집이 200원이 되는 세상, 가만히 앉아 돈이 커가는 것을 보며 세상살이 편하다고 외치고 있었으니 그게 얼마나 오래가겠냐고 한다. 재테크. 어쩌면 인간이 만든 유령이 아닌가 싶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인간의 마음속에서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끼게 만든 장본인이자. 있지도 않은 허상을 실제 세상이라고 현혹시켜 자신의 존재 자체를 하나씩 갉아먹어버리는 그런 것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일정한 모습을 가진 실체가 아니라는 말이 나를 편하게 해주고, 고통과 슬픔, 아픔 모든 것이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의식일 뿐이라는 말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게 해 준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삶인가? 그리고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며, 이들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주면서.

책을 덮은 지금도 분명히 기억나는 내용이 있다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일정의 관계 속에서 자라며, 이 결과는 내가 어떤 씨앗을 심고 키웠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우리 머릿속에는 하루에도 수천 번 오만가지 생각이 흘러지나간다. 그 중에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잡아 내 안에 심느냐에 따라 어떤 열매가 맺을지 결정된다는 것이다. 고통과 아픔, 분노, 후회의 씨앗을 심고 거기에 지속적으로 양분을 주면 열매는 당연히 분노와 고통의 열매 아니겠는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고통을 잡고 늘어지면 거기서 기쁨이 생기리라 기대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논리지식과 인과관계를 고민하는 우리 스스로가 고통을 심고 기쁨의 열매를 바란다는 그 말은 무척 충격적인 말이었다. 내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를 괴롭힌 사람을 잊지 않고 복수하겠다고 마음먹고 산다면 언젠가는 그 뜻을 이룰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진정한 기쁨이 존재하냐 는 것이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죽였다고 해서 얼마나 충만한 기쁨 속에서 살아갈까? 조금 심오한, 우리가 지나가는 말로 개똥철학 같은 말이지만 저자의 말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정신적 지도자들이 쓴 책을 볼 때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이들의 말은 인간의 모습을 초월하여 신의 경지에서 세상을 살아가자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런 느낌을 받을 때마다 신의 경지에서 살려면 그냥 영혼의 차원에서 머물지 무엇 때문에 인간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인간은 인간만의 삶이 있고, 그것이 바로 저자가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현재 아닌가. 그렇다면 구지 나를 초월해 살아가는 삶, 즉 인간의 모습을 초월한 영적인 삶, 에 대해 애착을 가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래 살아봐야 100년의 세월, 아마 영원불멸한 영혼의 눈으로 볼 때는 눈 깜빡할 사이도 안 되는 아주 작은 시간일 것이다. 이 찰나의 순간마저 육체를 가졌기에 느껴야 하는 희노애락을 외면한다면, 그래서 명상을 하고 신과 같은 수준이 되어야 한다면 그건 이미 인간의 삶이 아니지 않을까 싶다. 인간을 초월한 삶, 죽은 후에 얼마지 가질 수 있는 그 삶을 왜 인간의 모습을 가진 현 상황까지 이토록 추구해야 하는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춤추는 고래의 실천 - 켄 블랜차드 자기경영 실천편
켄 블랜차드 외 지음, 조영만 외 옮김 / 청림출판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 매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에게 책이야기를 해준다. 본 수업을 진행하기 전에 30분정도 시간을 할애해서 학생들이 알았으면 하는 주제에 대한 책을 소개하고, 그 책에서 무엇을 느끼면 되는지, 그 내용이 우리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야기해준다. 여기서 ‘이야기’란 의미는 “저자는...” 또는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은...”식으로 독서하랍시고 책 소개를 한다는 게 아니라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기반으로 나와 너의 이야기를 해 준다는 의미다.

딱딱한 전공수업을 하기 전에 책이야기를 해주면 학생들의 수업몰입도가 무척 높아진다. 어쩌다 진도 때문에 막 바로 본 수업에 들어갔을 때와 비교해보면 수업에 대한 몰입도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책이야기를 통해 배워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기고, 공부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어서 그런 것 같다.

가끔 사람들과 강의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나에게 힘들지 않냐고 묻는다.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하는 것 말이다. 물론 매주 책 한권을 이야기해주려면, 소개할 책 한권을 고르기 위해 3~4권을 봐야 하고, 그 중에서 고른 한권의 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해야하기 때문에 부담스럽긴 하다. 그리고 내가 책에 담긴 의미를 학생들에게 정확히 전달했는지 걱정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학생들이 읽기엔 조금 어려운 책도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업 중에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표정 속에서 뭔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한 학기를 마치고 학생들이 나에게 고마움을 표할 때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낀다. 그들 스스로가 책을 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가끔 나를 보고 “책밥푸는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학생들의 태도와 행동이 배우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것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그때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무엇을 배웠는지, 당시에는 나도 변해야지라고 결심했던 것 자체를 잊어버린다는 점이다. “그저 좋은 이야기를 들었으니 됐어” 하고는 그만이다. 물론 배운 것을 모두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배우는 순간 뭔가를 결심했다면 그것만이라도 변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다이어트를 원하는 사람들, 그들은 한 가지 다이어트 방법에 실패하면 또 다른 다이어트 방법을 찾아 나선다. 자신이 예전에 실패한 이유는 방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보면 어딘가에 파랑새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신기루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계속 또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다닌다.

살이 찌는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하다. 먹은 만큼 내 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방법은 먹은 것 이상 몸 밖으로 내보내도록 좀 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설 방법을 정리한 것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지간에 자신의 의지가 필요하다. 예전에 사용했던 방법이 자신의 의지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새로운 방법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성격은 다른 곳에 가서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이 책은 이와 같은 상황, 즉 자기계발에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열중하면서도 아무런 변화를 얻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해결방법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책장을 처음 넘겼을 때는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를 무엇 때문에 구지 책까지 만들었을까 궁금했지만 내용을 읽어보며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평소 생각하지 못한 허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저자는 원인을 세 가지로 이야기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반복하라고 말한다. 그가 말한 원인은 첫째, 지식을 너무 많이 흡수하기 때문이며, 게다가 지식습득이 쉽다보니 그것만을 쫒아 다닌다고 한다. 둘째, 부정적인 의식 때문이라고 한다. 도움이 될 말을 들어도 일단 부정적인 시각으로 내용을 받아들이다보니 그것이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셋째, 의지의 문제다.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은 세 가지 원인을 어떻게 해결하면 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야기체라 이해하기도 쉽고, 게다가 우리가 평소 궁금했던 점들을 미리 지적해 설명했기 때문에 책을 천천히 읽다보면 저자의 생각에 동참하게 된다. 자신의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