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오포노포노, 평화에 이르는 가장 쉬운 길
마벨 카츠 지음, 박인재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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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길에 이르는 가장 쉬운 길이라...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안정과 평화를 원한다. 하지만 그것을 얻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세상에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사람도 뭔가 한두 가지는 걱정이 있기 마련이다. 돈이 풍부하면 주위사람과의 관계가, 주위사람과의 관계에 문제가 없으면 가족 간의 관계에, 이도저도 아니면 건강상의 문제라도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은 바로 자신 안에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외부에서 찾는다고 한다. 그는 사람관계에 대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때만이 비로소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외로움 때문에 사랑하는 경우,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외로움을 스스로 이길 때만이 아무런 대가없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 같다.

하지만 이런 말에 대해 반감을 갖지 않게 된 이유는 내가 이런 상황을 조금씩 느끼기 때문이다. 뭐라고 할까. 예전에는 무척 외로움을 많이 느꼈고,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있기를 갈망하는 내 자신을 보며 살았다. 어릴 때는 누군가 옆에서 내 손을 잡아줘야만 편안함을 느낄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내가 느끼는 것을 상대방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본질적인 외로움은 서서히 사라졌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하고 책상 앞에서 일을 해도 그리 외롭지 않다. 과거처럼 누군가 곁에 있어야만 된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누군가에게 뭔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줄었고, 내가 해 준만큼 돌려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없어졌다. 그저 사람이 좋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좋은 것이고, 그래서 마음이 맞아 이야기가 잘되면 더 좋은 것 아니겠는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의 시작이 바로 이런 관계가 아닌가싶다.

저자의 말 중에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은 인간의 정신은 세 가지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초 의식, 또 하나는 의식,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무의식이란 말이다. 그녀는 초 의식은 신과 연결된 영역이고, 의식이란 우리가 평소 정신, 사고, 의식, 생각이라는 부분이며, 무의식은 우리가 느끼지는 못하지만 과거의 많은 기억을 담고 있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맞대면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담긴 곳이라고 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모든 문제는 외부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 무의식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을 없애려면, 외로움과 두려움, 슬픔과 같은 것을 없애기 위해서는 사람과 일에서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유심히 보면서 그것을 하나씩 지워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바로 자신 안에 있는 무의식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고통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일처럼 느낀다는 것을 보면 저자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세상의 어떤 일도 일 자체가 고통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나를 버린다는 것. 쉬운 일은 아니지만 특히 현대인들은 한번쯤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 문제는 할 수 없는 것보다는 할 수 있지만 자신은 못하는 게 문제이고, 남은 가졌지만 나는 갖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진 우리들이기에 그만큼 더 고통스러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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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스타일 - 4가지 인간 유형을 알면 인간관계 주도권은 내것!
로버트 볼튼.도로시 그로버 볼튼 지음, 김은경 옮김 / 길벗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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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과의 관계다.




직장인일 때는 물론이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사람문제다. 이는 단순히 직원을 고용하고, 상대방이 내 뜻을 따르고 말고의 차원을 떠나,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행복과 불행, 고통과 희열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내가 아무리 잘난들 이를 인정하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간들 그것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건 이미 높은 자리가 아니다. 사람들이 폼도 안 나면서 책임만 져야하는 자리에 가기 싫어하는 이유가 이런 것 아니겠는가.




<행복의 지도>를 보면 세상 어딘가에 행복할 수밖에 없는 나라를 참던 사람이 행복지수가 월등히 높은 10여 개국을 여행 한 후 내린 결론은 ‘행복의 본질’은 관계에 있다고 한다. 결국 주위환경과 생활수준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것이다. 자신과 어울리는 사람과 함께 살면 그곳이 천국이고, 잘 맞지 않는 사람과 살아가는 동안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직장이 지옥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이런 것 아닐까 싶다.




인간관계의 해결책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 주면 된다. 그러나...




인간관계를 가장 잘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려워 보이지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 그것을 해 주면 된다. 그가 조용한 것을 좋아하면 조용하게 말하면 되고, 강인한 것을 좋아하면 강한 척 하면 된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면 오만가지 자료를 같다주고 일장연설을 하면 되고, 간단명료하게 해 달라면 요점만 이야기하면 되지 않는가.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이렇게 말하지도 모르겠다. “아. 그 말 나도 알아요. 근데 상대가 뭘 원하는지 어떻게 아나요. 설득이니 협상이니 하는 책들 보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해서 그것을 해 줘라 는 식의 말을 하는데 그걸 누가 모르나요. 문제는 상대가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거잖아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남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게다가 지금 누군가와 협상을 하는 상황에서 그 사람보고 “내가 당신을 알아야 하니, 심리검사하고 결과를 가져오세요.‘라고 할 것인가. 상관과 사이가 안 좋은 직원이 상관의 성격을 알기 위해 상관에게 이상한 설문지를 드려 밀면 상관이 뭐라고 할 것 같은가. 아마도 “그래, 자네 말이 맞네. 조사까지 해야 할 정도로 자네와 내 관계가 심각하다면 자네와 나는 잘 안 맞는 것 같아. 그럼 자네와 나를 위해 자네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좋겠지. 안 그런가?”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상관이래도 그렇게 말할 것 같으니까 말이다.




사람관계의 핵심은 개별인간이 가진 가치와 태도의 문제다.




몇 년 전 나는 퇴사를 준비하면서 내 자신을 되돌아봤다. 당시 퇴사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의 생각은 전직, 즉 직장을 옮긴다는 생각이 아니라 1인 기업으로 살아가겠다는 마음이었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강점과 재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었다. 과거처럼 조직의 힘을 빌릴 수도, 회사의 보호막 안에서 안주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에게는 무척 시급한 과제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사람들의 재능과 성격,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삶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척도들을 발견했고, 그것들을 내 자신에게 대입해 보면서 나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그 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도 많이 알게 되었다. 특히 내가 어떤 특정의 일을 왜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특정의 사람을 미워하고, 어떤 사람과는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건 누군가가 잘했고, 잘못했다는 수준의 판단을 넘어 서로의 가치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였기 때문이다.




한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을 함께 봐야 한다.




당시 내가 사용하던 척도는 갤럽에서 만든 ‘Strength Finder<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와 최을경의 ‘12지 상관관계도<그대 영혼위에 뜨는 별>’ 그리고 ‘애니어그램<타고난 성격으로 승부하라>’였다.

 

세 개의 척도를 사용하여 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 첫 번째는 심리학, 사회적, 동양철학적인 시각에서 본 ‘인간이해척도’들이 거의 유사한 결과를 말해주고 있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이들이 한 인간의 다른 면을 강조해서 설명해 준다는 점이었다. 결국 세 개의 척도를 갖고 내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하나의 척도만을 사용할 때보다 더 다양한 입체적인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재미있지 않은가.




요즘은 당시의 경험을 살려 세 개의 척도를 사용해 창업대학원에서는 원생들에게 적합한 사업경영방식을 함께 고민해 보고,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비전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얻고 있다. 그리고 다행히도 많은 이들이 만족해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아마도 특정 조사방식에 대한 자격증으로 가진 사람들과 달리 다양한 분석 툴을 통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특정의 분석 툴을 고집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가의 문제다. 한 인간의 모습을 함께 고민한다는 것은 단순히 돈벌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나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와 다른 남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끔 심리관련 책을 보면 ‘너 자신을 알라’는 쪽에 너무 무게를 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의 비교대상이 되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은 채 자기 안으로만 들어가라고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둠이 없는 상황에서 밝음을 알 수 있겠고, 불행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행복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천국에는 ‘사랑’이란 단어 자체가 없을 것 같다. 그곳의 모든 것이 사랑 그 자체인데 구지 그 단어를 쓸 이유가 있을까. 마찬가지로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면 나와 다른 남이 어떤 점에서 나와 다른지 비교할 수 있어야만 한다. 내 성격이 급하다? 무엇을 기준으로 급한 것인가. 나는 꼼꼼한 성격이다? 그럼 꼼꼼하지 않은 성격이란 어떤 성격인가? 자신과 다른 반대의 사람을 알아야만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책에 나온 몇 마디 정의로, 그럴듯한 문장 몇 구절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남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나와 다른 사람의 모습과 나를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아! 이게 바로 내 모습이구나.”하며 확신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와 다른 남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기존에 나와 있는 척도들의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이런 척도들도 나름대로 시간을 들여 분석하면 상대방의 성격과 그 사람만의 독특한  행동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거의 실험실 상황에서만 가능한 것이고, 현실에서는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누군가와 흥정하는 상황에서 “저. 잠깐만요. 이 검사를 한번 받아봐 주시겠어요?”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MBTI도, Strength Finder도, 애니어그램도 마찬가지의 한계를 갖고 있다. 그 동안 재능, 성격, 특질 등을 분석해봤던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그 중에서 몇 명이 그 결과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결과를 자기 화시켰는가. 아마도 그저 순간적인 재미삼아, 아니면 그저 일부분의 정보수준으로 생각하고는 인쇄된 결과물을 휴지로 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왜?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남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 모습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에서 마커스 버킹엄은 분명히 말한다. 당신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손 치더라도 당신 스스로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것은 그저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이런 점에서 <피플스타일>은 좋은 도구로서 기능한다.




피플스타일의 장점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느끼는가’와 같은 내적인 문제를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즉 내가 바라는 모습이나 내 안에 숨어있는 욕구같은 것을 질문하지 않고, 오로지 외적인 모습만을 질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특성의 사람인지 알려면 구지 그에게 물어볼 필요 없이 그가 그 동안 겉으로 보여준, 즉 말이나 행동으로 보여준 것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유형을 확인하고 싶으면 그 사람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 된다. 당사자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고, 겉으로 들어난 모습만을 갖고 판단할 수 있는 분류체계라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가. 물론 이것도 식은 죽 먹기처럼 그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인간의 핵심적인 유형은 4가지라고 정의하면서 이들 유형은 각기 인구의 25%정도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다른 유형들과 다른데, 이를 정리하면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것이다. 즉 ‘사고를 다르게 하고, 결정을 다르게 하고, 시간을 다르게 쓰며, 일하는 속도가 다르고, 의사소통을 다르게 하고, 감정 조절을 다르게 하고, 스트레스 관리를 다르게 하며, 상충되는 의견 처리를 다르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람들 간의 차이로 인해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본질적으로 ‘관계 형성이 힘든 사람’이 있게 되고,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이 있으며, ‘같은 말을 해도 이해시키거나, 설득시키기 어려운 사람’이 있고, ‘특별히 해를 끼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경 쓰이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만약 당신과 잘 맞지 않는 상관 때문에, 부하직원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라면 이 책에 나와 있는 질문지를 갖고 상대방을 평가한 후, 그에 대한 대책대로 따라해보라.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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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결혼을 위한 레시피
케이트 캐리건 지음, 나선숙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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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중요한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결혼하는 순간 잊어버린 질문이다. 아마도 결혼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고, 남편, 가장의 역할은 돌아가신 아버지처럼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가족을 버리지 않고 그들 곁에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

결혼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어머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버지는 요즘 돈으로 수십억 원의 부도내고 어디론가 가 버렸고, 그 후 여자 혼자 몸으로 자식을 키운 장한 분이다. 당시 어머니는 가진 것을 다 털어내고도 모자라 거의 10년 동안 빚을 갚아야 했다. 버시는 대로 약간의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만약 어머니에게 오빠(나에게는 외삼촌)가 없었다면 우리 세 식구는 어떻게 살았을까.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학교선생님이 아버지를 뵙자고 하면 “애 아빠가 지금 외국에 나가 있어서요.”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애비 없는 자식이란 말을 듣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내가 어릴 때는 당연하고, 결혼할 당시에도 이혼가정의 자식은 조금 문제가 되었다. ‘애비 없는 자식’이란 말이 ‘욕’같이 들렸고, 상대방 부모도 실눈 뜨고 바라봤다. 그러다보니 자식의 결혼을 생각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이혼은 물론이고, 재혼 같은 것은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도 이혼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배다른 자식이 둘이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아버지 이름이 우리 호적에서 없어진 것은 그 분이 돌아가신 다음으로, 내 손으로 직접 그 이름을 지웠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변했는지, 아니면 이혼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부부가 평생 함께 사는 것이 ‘천연기념물’ 취급받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결혼, 부부라는 것이 무엇인지.

결혼! 나 같이 결손가정에서 자란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무척 어려운 단어다. 안다고 해봐야 부부가 싸우다 잠시 화해하여 폭풍전야 같은 고요함이 유지된다. 어느 날 눈 떠보니 아버지가 집에 없다. 근데 집에 사람들이 찾아와 돈 달라고 난리를 치더니 집을 남에게 줘야 한다며 조그마한 집으로 이사한다. 그 후 어머니와 친척들은 만나기만하면 집나간 아버지 욕을 해댄다. 뭐 이런 시추에이션 아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건 결혼이란 몇 년 동안의 연애감정 속에서 자식 낳고, 시간이 지나면서 싸우기 시작해서 상태가 심해지면 누군가 한 명은 떠난다. 몸이 떠나던 마음이 떠나든 뭔가 하나는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어떻게 살든지 불행하기는 매 한가지란 생각이다. 물론 이 말은 자식의 시각에서 부모를 보며 하는 말이다.

결혼 초기. 나는 ‘사랑에 빠진 맛’으로 살았다. 일하러 가서도 아내 생각만 나고, 빨리 집에 가서 ‘사랑스런’ 아내를 부둥켜안고 싶었다. 저녁밥도 대충 먹고 침실로 골인, 노는 날이면 뭔가 재미있는 곳으로 놀러갈 궁리만 했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자 애 재롱 보느라, 귀여운 아이를 낳아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으로 몇 년의 세월이 그냥 갔다. 어머니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태어났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말을 지나가는 말처럼 여러 번 했으니까.

그러나 세월이 흘러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지고, 성격이나 나쁜 버릇도 어느 정도 알게 된 후, 게다가 결혼이 단 둘 만의 삶이 아니라 양가 가족까지도 함께 붙어오는 것이란 것을 절감하게 되는 순간 나는 다른 곳을 찾기 시작했다. ‘뭐 좀 더 재미있는 것 없을까?’ ‘나한테는 지금 화끈한 것이 필요해.’ ‘이게 내가 바라던 삶인가?’ 이런 생각들이 서서히 사람을 유혹하면서 내 발걸음을 집에서 가능하면 먼 곳으로 이끌었다. 시쳇말로 사랑이 식은 것이다. 게다가 직장생활도 안정되고, 월급봉투도 두툼해지자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하긴 엄밀히 말하면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진정한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으니까 말이다. 그저 한 집에서 살고, 나를 가장 잘 알고, 문제가 있으면 함께 고민하는 사람. 자식 때문에 언성 높이고, 용돈을 좀 더 달라고 아부해도 되는 사람. 최소한 내가 입을 것과 먹을 것은 걱정 안하게 하는 사람. 그 사람이 아내다.

당신은 어떤가? 아직 결혼을 안 해봐서 잘 모른다고? 그럼 이 책을 봐라. 결혼생활의 진수를 알게 될 것이다. 상대를 바라보며 심적인 전쟁을 벌이는 내면의 진실을.

이 책에는 두 여자가 나온다.

한 명은 잘 나가는 30대 후반의 푸드 저널리스트로 미국의 상류사회에서 인정받는 캐리어우먼 ‘트레사’이고, 또 한 명은 ‘한번 결혼은 평생 결혼’이라는 전통 속에서, 부모가 결정한 결혼하게 된 트레사의 외할머니 ‘버나딘’의 이야기다. 두 명 다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었는데, 트레사는 결혼자체를 잘못했다고 엄청 후회하고 있고, 외할머니 버나딘은 처녀시절 만났던 한 남자를 잊지 못한 채 언젠가는 자신을 찾아오리라 믿으며 살고 있다. 물론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몇 십 년의 시차가 있다.

두 명에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두 사람의 남편 모두 아내를 위해 산다. 아내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아내가 원하는 것은 모든지 해 주려고 노력한다. 자기 곁에 가까이 오지 말라는 말까지도 말이다. 무척 운 좋은 여자들이다.

또 하나는 두 사람의 남편 모두 아내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는 다가가지 않는다. 대단히 맘 좋은 남편이다.

세 번째는 두 남자 모두 남편으로서는 무척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아내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녀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 준다. 문제가 있다면 트레사, 버나딘 모두 자신이 원하는 사람, 즉 사랑에 빠질 수 있는 남자, 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남편이 아닌. 지극히 재수 없는 남자들이다.

물론 남편들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단점이 있었는데, 트레사의 남편은 지적, 경제적 수준이 아내보다 못하고 (트레사가 살던 아파트의 관리인이었다), 외할머니인 버나딘의 남편은 나이가 무척 많다. 게다가 버나딘에게는 말 한마디 상의 없이 부모에게 결혼을 승낙 받았다. 버나딘 입장에서는 팔려간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여자의 고민은 ‘내가 그(남편)를 사랑하는가?’였고, 대답은 완벽하게 “아니다"라는 점이다. 한 여자(트레사)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남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며 딴 곳을 두리번거렸고, 버나딘은 첫 사랑만이 자신의 반려자라고 믿으며 남편과 거리를 두고 산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비상식적인 내용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우선 트레사, 나이 38세의 여자가 아무리 결혼이란 절차를 밟았다한들 완벽하게 잘못한 결혼이란 것을 인정하면서 결혼생활을 끌고 가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 남편의 밥 먹는 모습, 걷는 자세, 손톱 발톱 깎는 것, 게다가 친구들과 어울릴 때마다 신경 쓰게 만드는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외할머니 모습 또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처녀시절, 아무리 열렬히 사랑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바다 건너 사는 남자를 위해 남편이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두 여자의 이야기 속에서 결혼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본 것 같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저자가 자신과 할머니 이야기를 자서전처럼 쓴 것으로 알았다. 이들의 심리가 마음에 와 닿았기에 소설인 줄도 모르고 읽었다는 말이다. 결혼이란 아무리, 정말 열렬히 사랑해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사랑이 식을 것이고, 그때부터 심적인 갈등이 시작되는데, 이 책이 바로 사랑 없는 결혼생활 부분부터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책 내용은 결혼에 도달하는 상황에서 시작하지만 말이다.

나는 최소한 10년 이상 결혼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책의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을 한두 번은 경험했을 것이고, 이들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도 몇 번은 해 봤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질문이다. ‘이 사람이 진정한 내 짝인가?’ ‘나는 이 사람과 결혼했지 가족과 결혼한 건 아니지 않는가?’ ‘나에게 맞는 짝은 따로 있는데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그/그녀는 왜 저런 행동을 하지? 내 수준에 안 맞게.’ ‘나도 뜨거운 사랑을 불태우고 싶다.’ ‘진정한 내 사랑을 다시 찾고 싶다.’ ‘어떻게 헤어지자고 말을 해야 하나.’ ‘이렇게 늙어갈 수밖에 없는 건가?’ 등.

그리고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대부분 책에서 묘사한 두 여자 행동과 비슷하다. 어떤 때는 강하게 거부하고, 어떤 때는 현실과 타협하고, 또 어떤 때는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리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서글퍼지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이다. 물론 순간순간의 행복을 느끼면서 말이다. 단지 상대방의 복잡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기에 평온하고 행복하고 만족해 보일 뿐이다.

내 아내는 어땠을까? 아마도 그녀 역시 주인공들이 던진 질문들을 자신에게 수도 없이 물어봤을 것이고, 순간순간의 외로움에 둘러싸여 고민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도 행복하게 살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럼 나는? 당연한 것 아닐까. 우리 둘 다 좀 더 행복한 삶을 원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결혼했다면 언제까지나 상대방을 열렬히 사랑해야만 하는가? 그래서 남편, 아내를 보는 순간, 거기에 취해 행복하다고 소리쳐야만 그것이 완벽한 결혼인가?

사랑이라는 게 무엇일까? 사랑과 결혼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스캇 펙 말대로 ‘사랑에 빠지는 것이 자손 번식을 위한 유전자의 장난이라면 구지 결혼이란 제도가 필요 없을 것 같다. 우수인종을 만들려면 순수혈통보다는 다양한 유전자의 혼합이 더 유리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결혼이라는 구조를 만들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한 순종과 헌신, 봉사, 신뢰, 믿음을 베풀어야 한다고 규정지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유전자의 유혹으로 인해 낳은 자손을 안전한 상황에서 양육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사회가 그 기능을 가져가기 시작하자 결혼에 대한 규율과 구속력이 해체되고 있는 것이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쨌든 나는 이 책에서 사랑과 결혼간의 관계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사랑해야만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했기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감정이 없어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사랑해야만 헌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헌신할 때만이 사랑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로써 말이다.

‘뜨거운 사랑, 사랑에 빠졌다’는 개념이 결혼을 성립시키는 조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오랜 세월, 부모와 함께 살던 세월에 자식과 함께 사는 세월을 더한 기간보다 더 긴 세월(거의 40~5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부부라는 관계를 유지하는데 그리 중요한 요인은 아닐 수도 있다. 거기에는 사랑과 함께 인내, 봉사, 헌신, 수용, 존경, 충성 등의 기질과 가장 중요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더 소중한 요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랜 결혼생활동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버나딘은 남편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사랑과 결혼에 대해 이렇게 결론 내린다.

“제임스(버나딘의 남편)는 나의 인생이었다....마이클 터피(버나딘이 평생 그리워하던 남자)에 대한 내 사랑은 환상이었다. 내가 제임스와 함께 한 것이 진짜 나의 것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랑, 희생하고 타협하고 공유하고 견뎌야 하는 사랑, 실체가 있는 질기고 부드러운 사랑, 이것이 진짜다. 만질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으며 안아주고 보호해 주는 사랑, 항상 달콤하지는 않아도 친근한 맛과 향이 있는 사랑, 때가 되면 물처럼 필수적인 것이 되는, 삶과 호흡일 뿐인 사랑....

제임스는 인생을 같이한 사람이므로 내 인생의 사랑이었다. 하나가 사실이었듯 다른 하나도 사실이었다. 남편은 나의 빵과 버터였고, 나를 지탱해 주는 양식이었다. 그리고 마이클은? 그는 그냥 잼이었다....

완벽한 결혼은 죽음이 두 사람을 갈아놓을 때까지 삶의 대부분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정말로 세상에 없는 것은 쉬운 결혼이다....

결혼에서의 사랑은 불 꺼진 모닥불 가운데 숨어있는 금덩이다. 숨겨진 보물을 찾기까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찾는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제임스는 나에게 사랑을 주었으므로 우리의 결혼생활에서 행복했다. 그래서 결국, 나도 모르게 내가 남편을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못해 그리고 전혀 완전하지 않게.

하지만 삶에서 완전한 게 뭐가 있을까? 죽음을 제외하면.”

나는 이 말에서 ‘뜨거운 사랑’보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하는 것이 더 완벽한 결혼이라는 그녀의 말에 고개가 끄덕인다. 버나딘이 평생 그리워한 ‘마이클 터피’는 특정인물이기보다 그녀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순간의 욕망이었고, 현재의 지루함을 잊기 위한 망각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잼’이었다.

올바른 결혼에 대한 레시피는 없다. 사람마다 결혼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삶에 대한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의식적이든 아니던 간에 서로를 의지하며 산다는 것,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곁에 있어준다는 것뿐이다. 이는 순간의 열정은 없지만, 대신 '평상심'과 '고요함' 그리고 '인간에 대한 믿음'에 기반을 둔 삶으로, 완벽한 결혼을 '열정'과 '사랑에 빠진 상태'과 동일시하는 상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사랑의 표현방식이다.

우연이든 필연이었든간에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세상한파를 겪으며 50~60년의 세월을 함께 살아가다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 배웅을 해 준다는 것. 순간적인 쾌락이 지배하는 요즘 세상에서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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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 바다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스티븐 캘러핸 지음, 남문희 옮김 / 황금부엉이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생각하는 고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끝이 어딘지 잘 모르겠다. 내가 경험한 고통 자체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또 육체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이 가장 큰 고통같이 느껴지지만,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눈물 섞인 말을 듣다보면 그것이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 같기도 하다. 게다가 돈이 모든 것인 양 생각하기 쉬운 현대사회에서 돈 문제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보면 그 또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고통의 크기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차라리 어떤 고통이 더 큰 고통인지 판단하는 것 자체를 중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고통의 객관적인 크기보다 고통 받는 사람이 느끼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여러 권의 책을 읽다보면 요즘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기계발전문가들은 자신의 고통 하나를 통해 강사나 저술가로 변화한 사람들이 가끔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아니 가끔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내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만 봐도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스티브 도나휴, <내 인생을 바꾼 스무 살의 여행>을 쓴 브라이언 트레이시, 얼마 전에 서평을 썼던 책인 <위대한 반전>의 플립 플리펜, 자기계발서의 원조와 같은 <성취의 법칙>을 로버트 콜리어와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를 쓴 앤서니 라빈스, 영성분야의 스터디 셀러인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의 에크하르트 툴레 등이 바로 고통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이를 사람들에게 저술과 강연을 통해 전파하면서 유명해 진 사람들이다. (이 외에도 나열하라면 A4용지 몇 십장을 쓰고도 부족하겠지만)

이 책 역시 일반사람들은 생각하기 어려운 저자만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이고, 저자는 이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즉 구명보트 하나로 막막한 대서양에서 76일 동안이나 표류함으로써 몸무게는 20kg이나 빠졌고, 땅에 내려 제대로 걷기까지(오랜 시간 바다 위에서 생활하다보니 딱딱한 땅에 익숙해지지 못해) 거의 한 달여 시간이 걸린 상황까지 갔었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사실 조금 덤덤했다. 타고 가던 배가 침몰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조그마한 구명보트 하나에 의존한 삶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거기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잘 몰랐다. 두려움, 안타까움, 목마름, 배고픔, 인내 등 우리가 평소 자주 듣는 이야기 이상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표류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저자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해 낼 수 있겠는가? 큰 바다라고 해봐야 하와이에서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한가로이 칵테일 마시던 경험이 전부였던 내가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며 나도 모르게 서서히 저자의 급박한 상황과 심리적인 동요, 그가 탄 구명보트의 허술함 등이 마음에 와 닿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저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기 시작했다.

저자의 상황은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망막한 대서양 한 가운데에서 보이는 것은 짙푸른 바다, 거기에 지름 1.5m, 두께 15cm의 둥그런 고무보트에 혼자 앉아 잘 듣지도 않은 태양열 증류기와 약간의 음식(일주일 정도 먹을 수 있는 분량)과 창살, 나이프 등 몇 개의 소지품만 가진 채 타고 있었다.

한 번 생각해 보라. 경포대에서 이런 보트를 타고 어디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나 전복되지 않은 채 떠 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만약 큰 파도가 밀려온다면 그것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볼 것인지, 게다가 하루에 250ml(일반적인 컵 한잔 분량)의 물만 먹으며 버틴다면 말이다.

저자의 표류기 중에 가장 가슴을 저미며 봤던 부분은 구명보트의 바닥에 찢어져 바람이 새는 장면이었다. 자신이 잡은 물고기가 도망가면서 보트에 상처를 낸 것이다. 바람이 빠지는 상황에서 그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조금전만해도 15cm이었던 바닥이 6cm로 급격히 줄어들면서 자신의 몸 자체가 물속으로 쑥 빠지는 그런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어라도 지나가면 아마도 물밑으로 쑥 내려와 있던 그의 다리가 먹이인줄 알고 물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는 결국 바람 빠진 구명보트를 정비할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씩 생각해 보며 수리에 필요한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책에서 자주 말한다. 항상 이성과 감정이 싸우는데 그럴 때마다 이성적인 판단을 위해 자신의 몸을 학대했다고. 항상 몸을 움직임으로써 나약해지려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그 결과 구조되었을 때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육체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는 죽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쉬울 것 같아 살기 위해 모든 힘을 다 썼다고 한다. 멋지지 않은가. (물론 저자 입장에서는 이런 표현 자체가 듣기 거북하겠지만 말이다.)

만약 자신의 고통 때문에 삶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세상을 원망하며 모든 것을 내 던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면 이 책을 보라. 그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 주변에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축복받은 삶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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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애의 기술 - 아이디어로 상대를 끌어당기는 설득의 힘
리처드 셸.마리오 무사 지음, 안진환 옮김 / 북섬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구애의 기술.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연애하는 것과 관련된 책인 줄 알았다. 구애라는 단어 자체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제목과는 전혀 다른 책이었다. 연애에 대한 책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으로 하여금 지지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책이었다. 그러나 처음 느낌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킨다는 것 역시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고, 이를 관철시키고자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제안의 논리성과 이를 증거 할 수 있는 자료, 그리고 조리 있게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설득에 대한 책을 보면 서두에 결론을 이야기하고, 상대방이 생각지 못한 것은 잠깐 이야기하다가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대화기술들을 많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재미있는 예가 하나 나오는데, 어떤 관리자가 자신의 연봉을 인상하기 위해 경영자와 미팅을 했다고 한다. 그때 그는 책에서 본 ‘머리부터 집어넣는 방식’을 사용했다. 즉 자신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금액의 세 배를 맨 먼저 부른 다음, 경영자가 거부하면 그 다음 정상적인 가격을 부르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결과는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이유는 경영자가 그 관리자를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맨 처음 너무나 높게 부른 가격에서 얼마 되지도 않아 그 가격이 반도 안 되는 연봉액수를 부르자 그를 믿을 수가 없었다. 아마 당신도 이런 관리자를 만난다면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저자는 구애한다는 것은 상대방과 협상을 통해 그를 누르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대화에 대한 스킬이나 기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가 가장 중요시 여긴 것은 바로 관계다. 즉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이 자신을 평소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말을 <보랏빛 소가 온다2>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세스 고딘 역시 회사에서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내용의 논리성보다 자신의 생각을 지원해 줄 세력이라고 한다. 동일한 이야기라도 이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을 때와 반대하는 사람이 많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기에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자신의 주장하는 말을 어떻게 포장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이 책은 전체 구성이 10장으로 되어있지만 크게 4단계의 과정으로 나눠져 있다.

1단계,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는 단계로 제일 먼저 자신의 입장과 상황을, 자신의 아이디어와 목표를, 조직에서 자신이 부딪칠 수 있는 도전들을 먼저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2단계,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때가 되면 현실 속에서 여러 가지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조직사람들 모두가 내 의견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만나게 될 장애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봐야 하는데, 결정권자와의 부정적이거나 모호한 관계, 자신에 대한 부족한 신용문제, 상대방이 원치 않는 방식으로의 커뮤니케이션 문제, 또 듣는 사람이 가진 가치나 신념과 대치되는 의견, 더 나아가 이해관심사의 충돌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용문제로,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저자는 뭔가를 판매할 때 상대방을 잘 구워삶으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시도가 먹히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한다.

3단계,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으면 이제 상대방에게 설득력 있게 제안할 시간이다. 그러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들은 많은 자료를 준비하고 검토한 다음에는 그 자료들로부터 결론을 논리적으로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직감을 통해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 결론을 내리던 그 후에는 반드시 자신의 결정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필요하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구애할 때,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던 상관없이 논리적으로 타당한 이유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결정자 역시 누군가에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4단계는 자신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지켜내는 일이다. 아무리 누군가가 자신의 아이디어에 동의했다손 치더라도 조직 내부의 여러 곳을 거치는 동안 반대표가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고 마음 놓고 있다 보면 중간에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좀 더 굳건하게 만들 행동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외부세력을 통해 지지의사를 표현하게 한다거나, 제 3자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회사에서 승인했다는 것을 알려 그 일을 중단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 등이다.

이 책의 내용은 기존 설득과 관련된 책에 나오는 것보다 좀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단순한 스킬 이야기가 아니라, 상대방과의 사전관계가 자신의 의견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데 더 기여한다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뭔가를 결정할 때는 항상 상대가 있기 마련이고, 그가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내용의 가치가 달라진다. 제안한 내용이 담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상관없이. 그런 점에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의견을 팔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설득에 대한 세부적인 방법은 많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평소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것, 즉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가 설득의 핵심임을 분명히 알려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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