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 (2disc) - 할인행사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 키아누 리브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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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을 보게 된 것은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본 멋진 특수효과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괴물 같은 것이 사람에서 튀어나왔는데 그것이 상당히 자연스러워 보였고 액션의 규모도 컸던 것으로 기억에 남았나 보다. 그래서 여자친구를 설득하여 DVD를 빌려 보았는데...보자고 한 것이 민망할 정도로 영화는 형편없었다.

키에누 리브스가 나온다는 점 말고는 3류 액소시스트 영화의 범주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적어도 악령의 목적이나 악령이 깃든 물건에 대한 최소한의 논리적인 배경도 전혀 없으며 주인공의 능력이나 캐릭터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다. 악마의 아들이 왜 여주인공을 영매로 삼으려는 지도 불분명하다. 키에누 리브스가 현세에 침입한 악마의 아들을 제거하고 세상을 구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줄거리만으로 영화를 억지로 끌어간다는 느낌이다.

배후로 등장하는 천사가 어설픈 자기 합리화를 하는 부분이나, 주인공 남녀가 사랑에 빠지려는 듯한 장면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피곤해서 이기도 했지만 최근에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졸았던 적이 없을 정도로 보고 나면 왜 흥행에 실패했는지를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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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부기 2005-12-18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 좀 별로였지. ㅋ
 
우리 역사 최전선
허동현·박노자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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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근대 100년의 역사에 대해 개인주의적 진보주의자 박노자 교수와 건강한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허동현 교수가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100년전 개화기와 현재의 국제정세가 놀랄 만큼 유사하고, 과거의 뼈아픈 경험으로부터 역사점 교훈 내지 시사점을 얻고자 하는 점은 두 교수 모두 공통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난 100년의 사건들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틀은 두 교수가 크게 다르다.

박노자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결코 자생적으로는 탄생하기 힘든 배경을 지닌 한국인이다. 외모만으로는 아직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가진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애정은 어느 토종 한국인 못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한국 사회와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신선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사회와 역사를 제3자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무척 진보적이다. 그의 지적은 기존 이론과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을 까뒤집는다. 적어도 그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인 기존 교육을 받은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에 반해 박노자 교수의 공격적인 지적에 대해 주로 반박글을 쓴 허동현 교수의 글을 읽으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이론이나 상식들이 완전히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고, 어떤 점에서는 문제가 있지만 박노자 교수의 지적에도 이런 문제점이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왠지 모를 안도감 같은 느낌이랄까.

두 교수의 논쟁을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근대화에 끼친 일본의 영향력을 논함에 있어서도 박노자 교수는 일본이 만든 ‘국민’이라는 개념에 주목하여 개개인에 앞서 사회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현상이 지금도 잔존하고 있음을 지적함에 반해 허동현 교수는 일본을 통해 번역된 근대라는 논점을 중심으로 아직도 우리 사회가 그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구한말 위정척사파 최익현의 평가에 관해서는 박노자 교수는 최익현을 빈라덴에 비유하면서 그의 자주성을 높이 평가하며 후기 자본주의 사회 지식인의 비애를 부각시킴에 반해 허동현 교수는 최익현은 몽상가에 불과하며 일부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는 있으나 결국 시대 흐름에 역행하였다고 주장한다. 박노자 교수는 자주성과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여 미군의 한국 주둔에 반대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미국의 패권에 대항하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제시한다. 그에 반해 허동현 교수는 현실적인 상황을 중시하여 세계적 패권국가인 미국의 존재와 영향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는 우리의 근대사의 여러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 두 교수의 논쟁의 핵심적인 사항의 하나는 근대화를 보는 관점의 차이에 있는 것 같다. 역사 발전의 보편적 과정 내지 단계로서 근대화를 인정할 수 있느냐가 여러 논쟁의 출발점이 아닌가 싶다. 흥선대원군에 대한 평가에서 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에 관해서 개인적으로는 허동현 교수의 관점에 더 많이 공감이 간다. 우리의 근대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는 박노자 교수의 지적이 시사하는 바가 많지만, 근대화 되는 것이 반드시 개개인의 삶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어도 근대화가 전 세계적인 역사의 흐름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런 근대화의 개념을 도외시 한 채 역사적 평가를 하는 것은 국제적인 현실을 배제한 이상론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두 교수의 논쟁을 읽으면서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우리의 근대 100년 역사에 대해 나는 어떠한 견해를 가졌는지 돌이켜 보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고, 교과서로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우리의 근대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 최익현과 빈라덴의 비교라든지 김일성과 박정희의 비교 등 - 무척 유익한 독서였다.

ps. 부록에 있는 ‘빈라덴의 편지’에서 빈라덴의 주장이 무척 논리적이고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도 빈라덴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인 미국의 공적 1호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로 모순적이고도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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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어웨이(1disc) - [할인행사]
게리 플레더 감독, 진 해크만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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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서 평결을 내리는 배심원이 공정하지 못하거나, 그들을 마음먹은 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그런 일은 생각만 해도 충격적이다. 재판이 사회적 갈등을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인데 배심원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사실상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영화는 이러한 충격적인 가정(?)에서 시작된다. 선거인단을 기준으로 배심원단이 선정되고 양측 변호인의 이의제기를 통해 추려지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인 배심원이 선정되고 재판기일을 거치면서 배심원들은 토론을 하면서 평결을 도출해 간다. 그런데 그러한 모든 과정을 조종하려는, 그리고 실제로 조종하는 자가 있다. 그것도 배심원 외부와 내부 두 곳에.

선정된 배심원단의 신상자료를 일일이 분석하여 재판에의 유불리를 따지면서 그들에 영향력을 미쳐 재판을 의도대로 이끌려는 신종 법조직업이 실제로 미국에서도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영화에서처럼 거대한 이권이 개입되어 있다면 그런 일이 없으리란 보장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의 전관예우나 학연, 지연 등을 통한 로비보다는 더 힘이 들고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재판의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더 결정적일 것이다.

물론 실제 현실이 영화에서처럼 딱딱 맞아 떨어질 수는 없다. 배심원을 조종하려는 자들이 예상치 못한 수많은 변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영화에서처럼. 그렇지만, 배심원 제도에 관한 사회적 합의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그러한 문화도 전무한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도입된다는 배심원 제도가 본래의 순기능 보다는 역기능이 극대화되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이제껏 생각하지 못한 충격적이고도 신선한 소재, 적당한 써스펜스와 액션, 탄탄한 캐스팅,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주인공이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과정 - 배심원 개개인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 -이 거의 생략된 것이 좀 아쉬웠지만 - 그런 면에서 열두명의 배심원들이란 영화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전반적으로 괜찮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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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 (감독판 + 극장판) (2disc) - [할인행사]
에릭 브레스 외 감독, 애쉬튼 커처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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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효과란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 달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과학이론이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이 영화는 어린 시절의 사건 하나가 개인,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란 점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영화는 주인공에게 일기장을 읽으며 과거를 연상하면 머릿속에 떠올리는 과거의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영화의 초반은 공포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 특히 주인공의 어린 시절은 가슴이 움찔할 정도로 음울하고 비관적이다. 그러나 영화적 장치도 참신했고 영화의 타이틀 - 나비효과 - 를 표과적이고도 강렬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꽤 볼만한 영화였다. 특히 시점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과거의 장면이 현재의 관점에서 설명되는 장면이 절묘하게 배열된 점도 흥미로웠다.

현재의 사소한 결정이나 사건이 미래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나비효과...주인공의 특수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는 그러한 능력을 남용하는 것은 신처럼 행동하는 것이라며 누군가는 과거를 조작한 피해를 입게 된다는, 가정적이지만 교훈적인 설정을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간여행이나 영화에서와 같은 특수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이익을 얻기 위해 과거를 조작하면 다른 곳에서 예상치 못한 불이익이 생겨나 결국은 균형을 이룬다는 관념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든다.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고, 신은 공평하다고 믿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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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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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쩌다 아파서 병원에 한번 가게 되면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건강에 대한 감사함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병원이 직장인, 그 중에서도 가장 극적이고 처참한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곳에서 근무하는 일반 외과 의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어떠할까?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위치에 있는 저자가 - 물론 엄청나게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는 점에서 평균적이지는 않지만 - 자신이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며 의사로서 겪은 일들을 담담하게, 그러나 가슴뭉클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이 내 몫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지금 우리가 우리의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데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웃에게 내민 그 손이 나에게 되돌아올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양심이라는 데에 공감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책을 통해 희노애락의 극단이 교차하는 병원에서의 인간사... 의사로서의 고뇌, 의료와 관련된 여러가지 사회 문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솔직히 받아들이면서도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따뜻한 마음(아마도 저자가 말하는 양심 아닐까)으로 끊임없이 이를 극복하려는 저자의 고분분투...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일반인이 경험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외과 의사의 경험을 통해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가 분통이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병원에 가지 않고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음을 감사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거의가 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할 것이다. 다만 그러한 간접경험을 얼마나 오랫동안 간직하고, 생활에서의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일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 한 가지 내 자신에게 한가지 물음을 묻게 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그동안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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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부기 2005-07-20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동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