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무실에 앉아있는 동안 계속 가까운 곳에서 꺼-억 소리가 들려왔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그 여운이 남아, 목구멍 언저리와 귓전이 불쾌하도록 간지러웠다. 저녁 식탁에 시래기 된장국이 떡 하니 올라와 있는 것을 보자 신물이 가득 섞인 굵은 트림이 참 오랫동안 참아줬다는 듯 기세등등하게 올라왔다. -.

도대체 사흘 째 시래기야? 시래기에 걸신 들렸냐?”

아니, 이틀 동안 아무 말 없이 잘만 먹더니 왜 그래? 오늘 게 제일 맛있는데, 괜히 시비야!”

아내가 아무리 변명을 해도 이 된장국은 최악이었다. 시래기는 너무 질겼고 된장국에서는 왠지 시큼한 냄새가 났다. 억지로나마 밥 한 공기를 비우긴 했지만 훈수를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시래기를 씻을 때 손이 좀 많이 가더라도 껍질을 한 번 벗겨내. 그리고 된장에다가 미리부터 마늘, 고춧가루, 청량고추, 멸치 가루를 죄다 넣어서 버무려 놓는 버릇은 어디서 배웠어? 귀찮아도 국 끓일 때마다 재료를 다듬으란 말이야. 잠만 9시간으로 줄여도 시간이 철철 남겠다.”

아니, 여기서 잠 얘기가 왜 나와? 다음부턴 네가 끓여! 요렇게 말할 줄 알았지?”

그러면서 아내는 잠깐 킥킥거리다가 혼잣말처럼 웅얼댔다.

어째 된장 맛이 좀 이상하더라. 그래도 설마 된장이 쉴 줄은 몰랐네. 허브도 맛이 가는 것 같던데.”

 

아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베란다로 가봤다. 역시나 로즈마리는 바싹 말라 있었다. 어지간히 오랫동안 방치해둔 모양이었다.

이봐, 마누라, 또 죽였어?”

? 죽었어?”

빛이야 하늘에서 오는 거고 물만 제대로 줘도 절대 안 죽는데, 벌써 몇 개째야? 라벤더도 말려 죽였잖아? 이제 그만 좀 사! 시체 치우기 힘들어.”

나는 베란다 쪽으로 걸어오는 아내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아내는 깔깔 웃으며 딴청을 피웠다.

좀 따뜻해지면 봉숭아 씨를 뿌려야겠다.”

싹도 안 날 걸.”

, 서방님아, 뭘 죽이려고 해도 일단 싹은 나야 할 거 아냐.”

 

아내의 말에 나는 혀를 끌끌 차면서 로즈마리 화분을 처리했다. 화분을 치우는 김에 베란다도 한 번 쓸어내고 거실 청소도 했다. 5층짜리 빌라 건물의 4층에 위치한 우리 집은 전망이 좋았다. 오늘 따라 남한산 기슭에 피어 있는 진달래꽃이며 무성하게 싹을 틔운 나무들이 아름다웠다. 신록의 푸른 냄새도 유쾌했다. 하지만 아직은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 들어와, 아내가 털갈이를 하는 고양이처럼 여기저기 떨어뜨려놓은 머리카락이 검은 잠자리처럼 날리곤 했다. 나는 아내의 머리카락들을 주워 올렸다. 그것은 몸뚱어리에서 막 떨어져 나온 팔다리가 꿈틀대듯 아직도 윤기를 뽐내며 하늘거렸다.

 

혜민아, 요즘 밤마다 이상한 꿈을 꿔.”

이상한 꿈? 전에 말했던 그거?”

, 내가 언제 말한 적이 있던가?”

시체 어쩌고 하는 꿈 아니야?”

아내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아내는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커다란 눈알을 굴렸지만 나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너도 참 큰일이다. 정말 생각 안 나? 나름 첫날밤이었는데. 아침에 눈 떴을 때 네가 헛소리를 했잖아. 혹시 트림 했냐고.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시체가 배를 누르는 꿈을 꿨다고 했잖아. 그 아르바이트 얘기도 해줬고.”

, 그랬나?”

아내의 말에도 기억은 영 되살아날 생각을 안 했다.

그뿐인 줄 알아? 그날이 4월 초순이었잖아. 다음 주말엔 봄놀이를 가야 된다고 박박 우겼더니 아르바이트 하러 가자는 거야. 지금 생각해봐도 참 어이없는 일이지 뭐야. 대체 무슨 아르바이트냐고 물었더니 네가 무뚝뚝한 얼굴로,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라고 하더라. 이래도 생각 안나?”

, 그건 생각난다. 네가 그렇게 무서웠다면서 가서 뭐하게?’라고 물었고 나는 둘이 꼭 부둥켜안고 엉엉 울자라고 했었어. 그래, 그러고선 정말로 갔던가?”

당연히 안 갔지! 미쳤어? 영안실에서 데이트하는 커플이 어디 있어? 아니, 그 꿈은 또 왜 꾼 거야?”

몰라. 그냥 결혼한 뒤로 계속 그래. 1년 됐나.”

! 그럼 나 때문이란 소리야?”

아내는 순간 버럭 화를 냈지만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 친구의 존재를 나한테 상기시키기도 했다. 한 번 연락을 해보라는 거였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사실 이젠 이름조차 가물가물한데 친구는 무슨.

 

그날 밤 우리는 사랑을 나누었다. 평소에는 몹시 수다스러운 아내도 관계를 가질 때는 벙어리가 됐는데, 오늘은 웬일로 혼잣말처럼 뭐라고 웅얼댔다. 우리 아이 만들까. 대충 이런 말이었던 것 같지만 아내는 곧장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얼마 뒤 나는 잠이 들었다. 눈앞으로 진분홍빛의 진달래가 어른거렸다. 그것은 아까 베란다를 쓸면서 본 그 진달래꽃이면서 동시에, 당시엔 여자 친구였던 아내와 처음으로 밤을 함께 보낸 뒤 기괴한 제안을 했던 그날 몽산포의 어느 펜션 앞마당에 보았던 그 진달래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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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날 일은 묵직한 추처럼 어딘가 내 기억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아버렸는지 좀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적어도 방학이 끝나 그 친구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 너 그 뒤로 괜찮았어?”

친구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난 기분 되게 더럽더라. 자꾸 이상한 꿈을 꾸는 거야. 그 사람이 나타나서 내 배를 닦아준답시고 배꼽 주위를 꾹 누르더라고. 나도 모르게 뱃속에서 꺼-억 소리가 들리는 거야. 나 참, 그런 일은 왜 했는지, . 자고 일어나면 밤새도록 오바이트를 한 기분이야.”

입을 다무는 친구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바로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시체 꿈을 꾸었다. 흡사 탈난 배를 만져주듯 내가 시체의 배를 꼭꼭 눌러가며 주물러주는가 하면 반대로 시체가 내 배를 손가락으로 사정없이 쿡쿡 찌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디선가는 꼭 꺼-억 소리가 났다. 이후 꿈은 조금씩 변주됐다.

 

나 혼자 햇빛이 환히 드는 방안에서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시체를 닦고 있었다. 시체는 팔다리를 들어가며 내 일을 거들었고 말동무 역할까지 해주었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과외비는 늘 30만원이에요.” 내 말에 시체는 곧장 대꾸를 했다. “그래? 요즘은 40만원씩 받는 애들도 있던데. -, . 아이고, 아까 먹은 김치찌개가 소화가 덜 됐나.” “내가 아저씨 배를 너무 세게 눌렀나 봐요. 어떻게 하면 40만원을 받아요? , 나도 몸값을 좀 올려야 되는데.”

 

한 번은 도서관에 앉아 있는데 누가 내 등을 톡톡 쳤다. 고개를 돌려 보니 내가 닦았던 알몸의 시체였다. 나는 아닌 게 아니라 반갑기도 해서 들뜬 목소리로 대뜸 물었다. “아저씨 벌써 깨셨어요?” “, 푹 잤어. 그런데 털도 좀 닦아주지 그랬냐? 아직도 뭐가 묻어 있잖아.” 그는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심지어 거웃에 붙어 있는, 이미 딱딱하게 굳어버린 희뿌연 액을 손으로 가리키기까지 했다. 꿈속의 나는 간밤의 자위행위를 생각하며 괜히 민망해했다. 하지만 시체 아저씨는 내 표정을 다른 뜻으로 이해했던 모양이다. “에이, 그런 표정 짓지 마. 내가 더 미안해지잖아.” 그러곤 무엇 때문인지 내 배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내 입에서 나온 꺼-억 소리가 도서관을 가득 메웠다. 그는 부끄러워하는 나를 혼자 남겨두고 꿈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또 한 번은 체중이 70킬로그램은 될 것 같은 거구의 여자 시체가 나왔다. 내가 영안실 안으로 발을 내딛었고 뒤에선 두꺼운 철문의 빗장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서슬 퍼런 빛이 깔려있는 가운데, 긴 탁자 위에는 이제 막 주문한 피자와 스파게티, 족발과 보쌈, 자장면과 탕수육이 가득 쌓여 있었다. 시체는 두툼한 뱃살을 몇 겹으로 접은 채 그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상대가 식사 중이라 좀 주저됐지만 투철한 직업의식에 사로잡혀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어기 지금 저어기 뭐냐, 닦아야 되는데요.” 그러자 시체는 입에 커다란 족발을 문 채로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아니,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 몰라요?” 결국엔 식사를 다 끝낸 뒤에야 내게 몸을 내주었다. “, 이제 닦든 밀든 맘대로 하세요. , 배불러!” 그러고서 시체는 만사가 딱 귀찮은 듯 대자로 뻗어버렸다. 10인분도 훨씬 넘는 음식물이 막 들어간 시체의 배는 어린아이의 무덤만큼 부풀어 있었다.

 

나는 친구와 만나 이런 꿈에 관한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뭉그적대는 중에 친구가 입대하는 바람에 영영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딱히 그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시나브로 다시 영안실을 찾게 됐다. 술이 너무 셌기 때문에 그 친구보다 갑절로 느껴야 했던 공포감을 이번에는 꼭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었을까. 어떻든 공포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간혹 공포감이 잦아들거나 감각 자체가 무뎌질 때는 있었지만, 그건 구토가 날 만큼 불쾌한 혐오감이 다른 감정을 압도한 탓이었다. 부검 이후에 얼기설기 봉해놓은 몸, 가재수건만 닿아도 살갗이 찢어질 만큼 혹독한 화상을 입은 몸, 하체가 몽땅 분쇄된 몸, 그 어떤 몸에도 고귀한 생명이니 숭고한 죽음이니 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감긴 눈, 반쯤만 열린 눈, 동그랗게 열린 눈 등에서 시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시체가 조금 전까지도 인간이었음을 말해주는 표식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니, 어쩌면 그랬기에 얼굴, 아니 머리통이 거의 다 뭉개진 시체를 본 순간, 나는 문자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응급실의 침대 위에서 눈을 떴을 때도 맨 먼저 보인 건 내 위로 드리워져 있는 어머니의 근심에 찬 얼굴이 아니라 끔찍한 사고로 얼굴이 아예 사라진, 얼굴 아닌 얼굴이었다.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시체의 얼굴이기도 했다.

 

대체로 여기엔, 시작이 그러했듯,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시간이 제 맘대로 흘러 나한테 억지로 나이를 먹였다는 이유가 아니라면 말이다. 더 이상 군 입대를 미룰 수 없었다. 전역한 뒤엔 곧바로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가 1년 뒤에 돌아와 복학했다. 그때 연애에 빠져들었다가 이별을 경험했고, 이와는 무관하게 졸업하고 취직했다. 다시금 이와는 거의 무관하게 시체 꿈은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내 무의식의 지평 너머로 사라졌다.

 

역시나 이와는 완전히 무관한데, 헤어졌던 옛 애인과 이제는 사회인으로 다시 만났다. 우리는 5년씩이나 헤어져 있다가 다시 사귀게 된, 드물면서도 은근히 흔한 일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의 운명적인 사랑과 상호적인 신뢰의 근거를 여기서 찾기도 했다. 이십대 때 현실에 대한 어떤 배려도 없이 순수하게 연애에만 몰두했던 만큼, 이번엔 결혼이라는 목표점을 향해 돌진했다. 이것만이 우리의 해후를 기념할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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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영안실에 도착했을 때 안내인은 우리 앞에 소주 두 병을 내놓았다. 쉰 살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아저씨였다.

일단 좀 마셔.”

에이, 안주도 없어요?”

나중에 치우기 힘들어.”

우리의 투덜거림에 아저씨는 알 수 없는 대답만 했다. 무뚝뚝하고 사무적인 어조였다. 우리는 잠깐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술잔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친구는 소주 세 잔에 이미 얼굴이 시뻘게지고 해롱해롱한 상태가 되었다. 반면에 나는 한 병을 다 마시고도 꼭 각성제를 복용한 듯 정신이 또렷했다.

 

다 마셨으면 냉큼 들어갈 것이지 왜 이리 빌빌거려?”

지금껏 묵묵히 먼 산만 바라보고 있던 아저씨가 우리를 재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툴툴대면서 우리는 아저씨의 뒤를 따랐다.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렸다. 육중한 소리가 들리며 영안실’, ‘시체와 같은 청각영상이 떠올랐다.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하지만 발길을 돌릴 틈도 없이 등이 떠밀려졌다.

교통사고 치고도 별로 안 망가졌더라고.”

?”

우리가 거의 동시에 반문했다.

시체 말이다, 시체. 배 좀 조심하고 시체 위에 토하지 마.”

마지막 말은 두터운 철문이 닫히는 소리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곧이어 빗장을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는 꼬인 혀를 놀리며 제법 호탕하게, 농담조로 소리쳤다.

에이, 아저씨, 우리가 겁쟁이인 줄 아세요?”

 

하지만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푸르스름한 빛이 내린 비좁고 갑갑한 방 안에 남겨졌다. 시퍼런 불빛 아래 하얀 천으로 뒤덮인 시체가 누워 있었다. 그 옆으로 물수건이 담긴 세숫대야, 고무장갑 몇 켤레가 보였고, 초등학교시절 교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양동이도 눈에 띄었다. 친구가 나를 툭 쳤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친구를 바라보았다. 친구의 얼굴에 번진, 알코올 기운에 반쯤 짓눌린 것 같은 공포의 표정이 나의 공포를 더 부채질했다. 우리는 벌벌 떨면서 시체를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섰다. 친구가 시체를 덮고 있는 하얀 천을 걷어 올렸다. 시퍼런 빛을 받은 탓인지, 시체는 살색과 회청색이 뒤섞인 기묘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힐끔 보기에도 서른을 넘겼을까 싶은 젊은 남자였다. 친구가 또 나를 툭 쳤다.

, 시작하자!”

.”

그러면서도 나는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술기가 감도는 웃음을 흘리면서 친구는 고무장갑을 꼈다. 나에게 시체의 발을 가리키며 저 쪽을 담당하라고 말한 다음 자기는 손을 닦기 시작했다.

 

나는 기계적으로 고무장갑을 끼고 물수건을 들었다. 빗장을 거는 둔중한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내 피부를 얼어붙게 만든 기분 나쁜 소름이, 자잘한 벌레들이 혈관 속을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점점 더 또렷해졌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닦은 것 같은 데도 이제 겨우 무릎께였다. 하지만 친구는 술기운 덕분인지 어느새 두 팔을 다 끝내고 어깨에지 이르렀다. 친구의 입에서 농담 아닌 농담이 나왔다.

, 이 사람 눈 뜨고 있어!”

, 그래?”

나는 여전히 무릎께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엉거주춤 대꾸를 했다.

아까는 왜 못 봤지? 반쯤만 뜨고 있어서 그랬나?”

입을 한 번 떼자 친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술기운에, 또 자기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고무되어 친구의 손에는 더욱더 힘이 들어갔다. 어깨, 가슴팍은 금세 끝났다. 그때도 나는 다리 하나도 처리를 못하고 있었다.

, 이 남자 운동 좀 했나 봐. 복부 근육이 장난 아닌데.”

친구가 감탄 비슷한 너스레를 떠는데 갑자기 괴상한 소리가 났다.

-.

, 너 트림했냐?”

친구가 흠칫 놀라며 내 쪽을 향해 거의 악을 쓰다시피 물었다. 침착해지려는 노력 때문에 목소리는 더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친구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으악, 비명을 지르면서 벽 쪽으로 달아났다. 그걸 보자 친구도 내 쪽으로 달려왔다. 벽 쪽에 붙어서 보니, 아뿔싸, 시체의 입 주위로 토사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눈물을 쏟아내며 조금 전에 마신 소주를 마구 게워냈다. 마른 멸치 하나 먹지 않았기 때문에 시큼한 물 뿐이었다. 구토가 진정되자 문을 잡아당겼다. 열릴 턱이 없었다. 우리는 두꺼운 철문을 두드리며 열어 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바깥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배를 조심하라는 말이 상기됐다. 시체의 뱃속에서 꺼-억 소리가 날 거라는, 아니, 시체트림과 오바이트를 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법했다.

 

이후, 우리가 어떻게 진정을 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문은 끝까지 열리지 않았고 우리는 다시 시체 앞에 섰다. 나는 거의 눈을 감다시피 한 상태에서 다리와 발, 골반 부분을 간신히 닦았다. 친구는 완전히 실성을 해버렸는지 빠른 속도로 상체는 물론이고 목, 얼굴까지 다 닦았다. 친구가 시체의 뒷부분을 닦을 때는 내가 몸을 받쳐주었다. 그때도 나는 시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차갑고 딱딱한 느낌, 등 뒤에 번져 있는 반점들만이 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일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함께 철문을 두드렸다. 철문이 열리자 냉큼 밖으로 나갔다. 뒤를 돌아보니 바깥의 하얀 빛이 서슬 퍼런 방안을 비스듬히 비추었다. 아무래도 죽기엔 너무 젊고 또 너무 건강해 보이는 몸이었다. 가늘게 뜨인 눈도 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냥 눈일 뿐, 시선은 아니었다. 어떤 우수나 미련이랄지, 아니면 서러움이나 분함이랄지(저렇게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하는 것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가 안을 둘러보곤 금방 나왔다.

왜 아쉬워? 그럼 나중에 또 와.”

이렇게 말하며 우리를 쳐다보는 아저씨의 시선은 아까처럼 무뚝뚝하고 사무적이었다.

처음이라면서 시체 위에 토를 하지도 않고.”

기특하다는 칭찬 뒤에 돈 봉투가 우리 손에 쥐어졌다. 병원 밖을 나와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러곤 곧장 술집으로 향했다. 돈은 그날로 다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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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퍼런 빛이 식칼의 서슬처럼 깔려 있는 싸늘한 방. 긴 탁자 위에 내가 죽어 누워 있다. ‘가 내 곁으로 다가온다. 무심한 시선을 한 번쯤 주기도 한다. 곧 뭔가가 내 몸에 닿는다. 싸늘하면서도 부드럽고 축축한 감촉. 내 몸이 닦이기 시작한다. , 종아리, 무릎, 허벅지손을 놀리는 솜씨가 제법 노련하다. 떨림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손길이 나의 허리께에 닿는다. 이어, ‘는 다소간 힘을 주어 내 다리 하나를 들어올린다. 그렇게 엉덩이까지 닦인다. 이제 나의 하복부를 건드린다. 그 다음, 배꼽을 스쳐지나간다. 배꼽 근처에서 가 잠깐 숨을 가다듬는다. 그러곤 손에 힘을 잔뜩 주어 배를 누르다시피 훔쳐낸다.

-.

죽어 누워 있는 내 배에서 꺼-억 소리가 깊은 울림을 내며 올라온다. 트림? 설마! 하지만 싸늘한 방이 위액이 뒤섞인 시큼한 음식 냄새로 가득 찬다. 순식간에 서슬 퍼런 빛이 와장창 깨진다. 나도 모르게 몸뚱어리가 나무토막 마냥 진동한다. 또 한 번 꺼-억 소리가 흘러나온다.

 

-억 소리는 자명종 소리에 묻혀버렸다. 눈을 떴다. 속이 쓰리다. 머리도 묵직하다. 또 이 꿈이라니. 나를 향해 돌아누운 아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내는 내 가슴팍에 손을 댄 채 어린아이처럼 곤히 자고 있다. 아침 630. 아내에겐 한밤중이나 다름없는 시간이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다시 방으로 왔을 때도 아내는 똑같다. 그래도 내가 옷을 입는 동안엔 잠시나마 눈을 떴다.

출근하는 거야?”

반쯤 감긴 눈엔 배시시 미소가 감돌고 목소리는 졸음에 겨워 나른하다.

빨리 들어와. 맛있는 거 해놓을게.”

두 번째 말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아내는 언제 잠에서 깼었냐는 듯 다시 곯아떨어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내가 쉬는 날이다. 보나마나 정오까지 침대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허리가 아플 때까지 누워 있을 것이다. 그렇게 중간 중간 끊기는 몇 개의 꿈을 이어서 웬만한 시나리오 하나쯤은 거뜬히 구성한 뒤 남은 잠마저도 싹 소진시켜버리는 게 아내의 해묵은 습관이었다.

 

문을 한 번 확인한 뒤 나는 집을 나섰다. 몸은 아까 꿈속에서와는 달리 자동인형처럼 빈틈없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차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하자, 간밤에 축적된 뉴스가 내 귓전을 단조롭게 맴돌았다. 얼마 뒤엔 대로로 나왔다. 신호등 앞에 이르러, 차가 섰다. 순간, 지금까지의 기계적인 움직임을 바꾸려는 듯 몸이 움찔했다. -. 아침을 너무 급히 먹었나?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 사이로, 또다시 그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내 뱃속에서 올라오는 트림인지 내 귓전을 맴도는 꺼-억 소리의 환청인지 나도 헷갈렸다. 신호가 바뀌었고 다시 차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억 소리는 집요하게 내 귀를 후벼 파서 급기야 뇌수로까지 잠입한 미국 대선 뉴스에 묻혀버렸다.

 

845. 사무실로 들어가 커피 한 잔을 타서 책상 앞에 앉았다. 다시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꿈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간헐적으로 계속 나의 무의식 속을 찾아들어선 나의 의식을 흩뜨려놓곤 했다. 하지만 한동안 뜸했던 그 꿈이 결혼 이후에 더 빈번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그보단 15년쯤 전에 한 친구한테서 그 꿈을 넘겨받은 것 같은 기괴한 느낌이 왜 자꾸 드는 걸까.

 

2.

 

대학교 1학년 때였다. 한 친구가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했다. 학과 동기라는 인연 탓에 함께 수업을 듣고 간혹 모임에서 술을 함께 마시곤 하는 사이, 전화를 하려면 번호 두어 자리가 생각이 안 나 수첩을 뒤적여 봐야 하는 그런 사이였다. 나는 선뜻 그러자고 했다. 특별히 용돈이 부족해서도, 인생의 경험을 쌓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돈이야 급하면 부모한테 갈취할 수도 있고 경험이란 원래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축적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니까. 한마디로, 친구 따라 강남 간 꼴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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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고 천둥번개가 치고 굉음이 일면서 성이 폭삭 무너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소영이는 피식피식 웃었다. 가방을 갖다놓은 뒤에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인기척을 듣고서 마녀의 개가 고개를 들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애쓰는 기색도 역력했다. 녀석은 최근 들어 심히 늙어버렸다. 올 봄부터는 마녀의 빗자루, 즉 운송용으로도 쓰이지 않았다. 가끔 산책을 나가긴 해도 거의 하루 종일 이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졸고 있었다. 그럴 때는 소영이가 다가가도, 쓰다듬어주어도 꿈쩍도 안했다. 한 번은 심술이 나 귀를 꼬집었다. 감각이 둔해진 탓인지 녀석은 그저 고개를 조금 쳐들고 눈을 반쯤 뜬 채 소영이 옆으로 비스듬히 내리쬐는 햇볕을 좀 음미하곤 다시 잠들어버렸다. 한 번은 열린 창문 너머로 동네 고양이들이 우르르 몰려 든 일이 있었다. 마녀가 깜박 잊고 음식쓰레기를 복도에 그냥 방치해둔 탓이었다. 온 복도가 고양이 울음소리와 바스락대는 봉지 소리로 가득 했다. 그때도 마녀의 개는 낭창하게 게으름만 피웠다. 한번쯤 귓바퀴를 달싹이고 콧구멍을 벌름거리긴 했지만 그냥 고양이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감상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녀석이 오늘따라 귀를 세웠다. 탄력이 없어 쫑긋서지는 못했지만 그 긴장감만은 소영이에게도 충분히 전해졌다.

어라, 너 왜 이래? 아줌마는?”

개는 대답이랍시고 컹컹 짖어댔다.

응가 하고 싶어? 배고파?”

 

소영이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개에게 줄 먹이를 찾던 중에 어항에 눈이 갔다. 연못에서 가져온 검정말이 물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소영이와 떡붕어 아저씨가 그 안에 풀어놓은 올챙이는 긴 꼬리를 흔들며 볼록한 배로 헤엄을 쳤다. 부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올챙이는 검정말 숲을 한번 통과할 때마다 쑥쑥 커졌다. 꼬리가 짧아지는 것도 눈에 훤히 보였다. 터질 것처럼 탱탱한 배에서는 앞다리와 뒷다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어항이 불안스레 진동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물과 올챙이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내 어항이 탁자와 부딪치면서 미묘하지만 또렷한 소리를 냈다.

 

소영이는 문득 아름이의 말이 생각나, 복도로 나갔다. 아까는 귀를 세우고 그렇게 짖던 개가 언제 그랬냐는 듯 곤히 잠들어 있었다. 소영이는 마녀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동안 집을 뒤졌지만 없었다. 그제야 마녀가 아직 학교에서 교사 놀이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맥없이 돌아서려는데 맞은편 벽이 뚫리면서 문지기가 나타났다. 그는 이제 여기서 살았다.

아저씨, 성이 흔들려!”

그 얘기 하려고 그렇게 뛰어왔어?”

문지기는 조금도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갑자기 등 뒤로 마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낡아빠진 마법인 걸, 흔들리는 성이라니.”

아줌마도 알고 있었어?”

, 글쎄, 그러다 하루아침에 폭삭 무너질 수는 있겠다.”

그 하루아침이 내일이면 어떡해?”

어떡하긴, 죽어야지.”

 

마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문지기도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벽을 뚫고 사라졌다. 소영이는 성도 저렇게 스윽, 사라져버리지나 않을까 염려됐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안하던 어항도 안정을 찾았다. 오후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다음 날도 별 다른 징후 없이 지나갔다.

 

며칠 뒤 어항의 올챙이는 모두 새끼 개구리가 되었다. 떡붕어 아저씨와 소영이는 그들을 놓아주려고 밖으로 나가 다리를 건넜다. 소영이가 성탑 노파의 나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유리 상자의 뚜껑을 열자, 개구리들이 폴짝폴짝 뛰어나갔다. 그 동안의 갑갑함을 모조리 보상받겠다는 듯 녀석들은 순식간에 여기저기로 흩어져 금방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보이는 건 무성하게 자란 부들과 연못가를 거의 다 덮은 개구리밥뿐이었다. 갑자기 부들과 줄풀이 서슬 퍼런 몸짓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떡붕어 아저씨와 소영이의 발에서도 진동이 느껴졌다. 둘은 벌떡 일어나 앞을 응시했다.

 

그토록 컸던 성이 점점 더 작아졌다. 천둥번개나 짙은 어둠, 굉음이나 자욱한 먼지 따위도 없었다. 그냥 돌멩이들이 서로 부딪치듯 마찰음이 들리면서 좌우, 상하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성을 이룬 석재와 철재가 모두 변해서 나일론처럼 쪼그라들고 종이처럼 구겨졌다. 이내 성은 낡고 이빨 빠진 모형이 됐는데, 그 모양새가 쭈글쭈글한 것이 종이로 만든 집 같았다.

 

아저씨, 저게 뭐야?”

 

성의 그 많던 방, 창문, 문틈, 벽 틈새, 심지어 땅 속에서 뭔가가 무례하도록 생기롭게 튀어나왔다. 그것은 언젠가 이 성을, 아니 더 오래 전에 이 곳 땅을 거쳐 간 망자들이었다. 그들은 죽기 직전이나 직후의 모습이 아니라 살아생전에 가장 아름답고 예뻤을 때의 모습으로 부활했다. 그러고는 그 절정이 가장 참혹한 기만인 줄도 모르고 바람처럼 숲속 어딘가로 사라졌다.

 

햇살이 따사롭고 공기도 맑은, 5월의 찬연한 아침이었다. 한창때의 성탑 노파의 모습이 맨 마지막으로 보였다. 그녀는 적당히 살집이 오른, 허리도 전혀 굽지 않은 몸을 똑바로 세운 채 튼튼한 두 발로 타박타박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문지기와 마녀, 그녀의 개와 고양이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그들이 아직 한 번도 죽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부활의 대열에 합류할 수 없었던 것이리라.

 

대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금괴만이 폐허 아닌 폐허, 잔해 아닌 잔해 위에 덩그러니 쌓여 있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그곳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횡 하는 바람 소리가 난 것 같았는데, 그는 이미 금괴를 품에 앉은 채 소영이 옆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들은 곧 그곳을 등졌다. 뒤에서 다리가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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